해석을 생각한다 - +a와 상징의 세계




안호성

(종교심리학 박사과정 수료)


 

   서양의 해석학이 성경 해석을 둘러싸고 나타난 것처럼 나도 사춘기에 성경을 읽으면서 해석이 중대한 문제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어떤 수녀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 강좌가 있었다. 많은 것을 배우며 많은 것을 의심하였다. 겉으로는 모범생이었지만 속으로는 반골이어서 성경 해석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축자적인 해석에 만족하지 못했다. 

   당시 처음 니체의 기독교 비판을 읽고는 얼마나 흥분하였던가? 지금도 어려운 그의 사상을 알았을 리 없지만 니체의 기독교 비판에 깊이 공감하였다. 니체의 비판은 기독교를 순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니체의 초인은 결국 예수이지 않겠느냐고 단정하기도 하였다. 불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종교에 대해 더욱 더 다원적으로 되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해석의 문제와 씨름하기 시작하였다. 전공으로 사회학을 택하면서 종교에 대한 나의 사유를 심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대학 시절에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가운데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있다. 포퍼와 쿤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에 대한 논쟁은 이 시절 나에게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해석은 무한하지 않지만 언제나 다양하다. 쿤의 업적은 자연과학마저도 해석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쉬운 언어로 설명했다는 점에 있다. 자연과학에 대해 무의식적인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인문(과)학자들이 쿤을 환영했음은 아주 당연하다. 나는 포퍼보다는 쿤을 더 좋아하였다. 과학을 포함하여 형이상학을 전제하지 않는 이론은 없다. 예수의 말을 빌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진리는 오직 허위를 폭로하는 곳에서 드러난다. 비판을 거치지 않은 이론은 언제나 독단과 광기로 흐를 뿐이다.

   그런데 쿤의 논의가 종종 과장되는 경우가 있다. 그의 주장은 정상 과학이 패러다임이라는 논증이 불가능한 기반에 서 있다는 것을 논증할 뿐 무한한 패러다임이 가능하다거나 모든 패러다임이 타당하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소위 패러다임은 우리가 믿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에는 사람들의 의식을 넘어서는 곳에 각인된 패러다임이 전체 과학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한도 내에서 과학은 보편적이라고 불려도 좋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진화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내게로 왔다. 그때부터 나는 진화라는 아이디어를 버리지 못한다. 그래도 진화론의 도통(道統)을 지키는 일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반골의 자유를 즐긴다. 나에게 있어 종의 다양성은 진화의 역사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출현하였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특수한) 원숭이에서 진화했지만 그 원숭이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 원숭이 +a이다. 이 새로운 원리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질적으로 다른 삶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인간 이하의 동물은 필요(need)에 전적으로 지배되지만 인간은 요구(demand)에 매개된 욕망(desire)에 따라 산다. 이 차이를 설명할 때 +a가 요긴하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크게 두 가지 필요(본능)에 구속된다. 이 두 가지 본능은 자기 보존의 본능과 번식의 본능이다. 프로이트의 성욕과 공격성은 이 본능과 밀접하게 얽힌다. 성욕은 번식의 본능에서 공격성은 자기 보존의 본능에서 파생된다. 인간의 모든 성생활을 번식 본능의 변형이라고 설명하는 이론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 이론이 일리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따르지 않는다. 인간의 경우에 성생활은 동물의 번식(교미) 본능 +a로 설명될 수 있다. 단순한 해석이 언제나 미덕인 것은 아니다.

   음식을 예로 들어보자. 몸에 필요한 양분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 그렇지만 음식이 자기 보존과 관련된 양분의 논리를 따르는 것만은 아니다. 음식의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들을 보라. 백화점의 음식코너를 둘러보라. 요즘은 양분이 빈약할수록 고급 음식으로 통한다. 인간의 욕망들이 음식에 짙게 배여 흐른다. 인간에게 +a가 없다면 종교적 구도자들이 금욕하는 것은 오직 환상적이고 자학적인 광기로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아도 그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a가 있다고 믿으면서 산다. 

   인간의 고유한 특질로 지적되는 욕망은 오랜 진화의 단계에서 +a를 전제할 때에 (보다 잘) 설명될 수 있다. 덜 진화한 종을 설명하는 원리로 더 진화한 종을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설명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가령 인간을 몸으로 환원하는 의학은 인간의 삶에 대단한 유익을 주지만 의학적 설명이 인간을 전체로 설명한다고 주장할 때 의학은 독단이 된다.

   사람이 고유하게 가진 +a 때문에 인문(과)학은 자연과학에 비해 매우 복잡한 해석을 요구한다. 인간의 삶은 기호(code)가 아니라 상징(symbol)에 의해 얽힌다. 속담처럼 사람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계를 산다. 기호는 아무리 복잡하여도 오직 제한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가진다. 단순하게 말하면, 궁극적으로는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나눌 수 있다. 물론 아주 단순한 기호라도 인간의 삶에 연루되면 언제나 애매해진다. 

   자연과학이 쉽사리 정상 과학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들이 기호의 세계를 산다는 점과 관련된다. 벌들의 현란한 소통의 방식이나 개미들의 복잡한 구조들은 타고난 본능에 의해 획일적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본능은 상징이 아니라 기호의 세계를 구성한다.

   상징은 지극히 단순한 경우에도 아주 복잡한 해석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상징은 참과 거짓으로 나눌 수 없는 ‘나름대로 일리 있음’의 논리를 따른다. 거의 무한한 ‘나름대로 일리 있음’의 생산과 유통이 사람의 세계를 이루는 근본 사태의 하나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모든 것이 일정하다면’ 이라는 구절을 자주 만난다. 이 구절에서 단순화의 욕망을 읽는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서 일정한 것은 없기에 경제학 이론들은 과학으로 포장되기는 하지만 지배 지식-권력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분과 적분의 현란한 수사로 포장된 경제학의 ‘한계효용의 이론’은 효용이 적어도 정상적인 다수에게 동일하다는 가정을 받아들일 때에만 유효하다. 그러나 종종 나의 쓰레기가 다른 사람에게 보물이 되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가끔 학자들은 말들이 갖는 의미의 애매함과 풍부함을 견딜 수 없는 ‘빅브라더’처럼 말을 단순화하는 작업에 몰두한다. 전체주의자들은 언제나 상징을 기호로 만들려고 한다.

   인문(과)학이 직면하는 해석의 다양성은 사람이 기호의 세계가 아니라 상징의 세계를 산다는 점과 관련된다. 상징이 인간을 규정하는 특징인 한에 있어서 인문(과)학은 자연과학처럼 쉽게 정상과학이 되지 못한다. 정상과학으로 주장하는 대부분의 인문(과)학은 ‘나름대로 일리 있음’의 세계마저 벗어나서 억압적인 독단론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인문(과)학은 ‘위기상태’ 또는 정상과학의 전(前) 단계 상태를 항구적으로 견디어야 하는 운명을 갖는다. 인문(과)학자들은 정상과학이 주는 안락함을 버리고 독단적으로 되는 학(學)을 거부하면서 영구적인 주변인으로 살아야만 하는 지도 모른다. 인문학자들의 글에 유목이니 유배니 하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통속화된 표현을 빌면, 인문학자는 노마드이다. 그러나 ‘자유부동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반항하는 주변인을 닮았다. 

   해석은 기존하고 있는 해석들에 반대함으로써만 가치를 획득한다. 오랫동안 무시되던 면이 새로 부각되고 그 동안 과장되었던 면들이 마모되면서 텍스트는 새로운 삶을 획득한다. 해석은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의견을 생산하면서 기호의 세계로 환원되어 버린 텍스트를 다시 상징의 세계로 되살린다. 해석의 과정에서 해석하는 사람은 동물과 구별되는 +a를 소유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과학이 지속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 시간과 우연과 확률 같은 용어들이 엄밀 과학에 소개된 지도 오래 되었다. 이 새로운 변화는 베르그송의 지속을 참조하는 과학이 될 것인가? 나는 현대 과학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어서 답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전공하고 있는 또는 깊이 관심을 갖는 측면에서 사람으로-있음의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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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6]

바울신학과 탈식민주의I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왜 탈식민주의(포스트콜로니얼리즘)인가? 그것도 바울에 대해 말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탈식민주의라는 생경한 이야기를 꺼내들어야 할까? 오늘의 웹진에서 필자는 바울을 말하기 위해서, 또는 성서를 현실사회에서 의미있는 말씀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필요함을 역설해 볼 것이다. 탈식민주의가 아니라 탈식민주의적 관점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웹진의 전체를 걸쳐 필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성서를 현실의 삶 안에서 구체적 메세지로 읽어낼 것인가, 즉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다시 또한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해체주의라는 표현을 기억할 것이다. 영어로 Deconstructuralism이라고 번역하는데, 언뜻 해체주의라는 표현이 와닿는 표현이긴 하지만 데리다가 말했던 단어의 의미와는 조금 거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데리다가 말했던 것은 해체중심의 어떤 것이 아니라 구축주의(Constructuralism)를 벗어나자는 의지가 더 강했던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필자의 은사님이셨던 이경재의 독법을 따라 해체주의를 ‘탈구축주의’로 이해한다. 왜 ‘탈’이라는 표현에 대해 고민할까?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표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석할까? 포스트라는 표현이 ‘이후’라는 뜻이 있으니 ‘근대이후주의’라고 번역하면 알맞을 것 같다. 근대이후주의라고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은 근대시대이후에 나타난 모든 ~주의를 망라한 것이라는 표현이 된다. 그러나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때의 의미가 이러한 것이었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표현 안에 이미 모더니즘에 반하는 또는 모더니즘을 극복하려는 어떤 것이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 만약 그렇게 이해한다면 ‘탈근대주의’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에 대한 해석의 다의성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표현에 오면 더욱 심각해진다. 왜 ‘식민이후주의’라고 해석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식민주의가 끝이 났는가? 일본의 식민통치가 종언을 고했고, 이제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으니 식민주의의 시대는 끝이 났는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온갖 종류의 식민주의의 잔재들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가? 아니 전세계가 근대주의를 뒤덮었던 식민주의의 그늘아래 있지 않은가? 아니 구세대의 식민주의는 군사력과 땅의 정복을 필두로 하였다면 현대의 식민주의는 금융, 산업, 그리고 정보의 힘을 앞세우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이러한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의 그늘아래서 현실을 바라보고 이에 대한 메세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탈식민주의’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여기서 ‘탈’이라는 표현은 1960년대 이후, 유럽의 식민주의가 각지의 독립운동에 의해 종언을 고했다는 시각에 대한, 또는 식민이후주의라는 번역에 대한 저항이며 여전히 남아있는 식민시대의 효과적인 대안담론을 모색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언제나 식민주의라는 통치체제의 위에는 제국주의라는 정치이념이 자리잡고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통치의 가장 고전적이고 효과적인 예를 든다면 알렉산더가 이루었던 마케도니아 제국을 들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Alexander the Great) 타국이나 타지역의 부족들을 약탈하는 대신에 그리스문명을 소개하고 언어와 문화를 통일하여 그리스문명의 가치에 찬성하는 나라와 부족들을 흡수함으로 효과적으로 또한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팽창을 이루었다. 이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곳이 바로 로마였고 이후 로마가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공화정 중심의 국가에서 황제중심의 제국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제국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읽어본다면 제국주의는 민중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한 지배계급의 방어기제로 형성된 정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 과연 대표적으로는 마케도니아, 좀 더 과거로 가면 앗시리아와 바빌론제국, 로마 이후에는 대영제국 등으로 이어온 제국주의의 시대는 끝이났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시대를 Post-imperialism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로버트 영은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식민주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각주:2] 하지만 제국은 변했으며 세계 또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저항의 담론은 현실에 대한 바른 통찰이 없으면 공허함에 그치게 된다. 탈식민주의는 변화된 제국과 식민의 시대에서 구체적 저항의 방법과 실천을 모색한다.

   탈식민주의, 바울과 다리놓기

   이와같이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대해 살펴보다 보면 이들이 성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먼저 이스라엘 신앙의 뿌리 자체가 이집트 종살이의 해방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해방의 경험은 곧 야웨신앙의 중심이 되었고, ‘우르’라는 고대의 도시제국에을 떠나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아브라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많은 학자들이 구약성서의 근간에 오경의 편집연대가 바빌론 포로기라는 것은 바빌론 제국의 종교와 문화적 식민으로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 바로 구약과 유대교 생성의 근원이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구약은 바빌론이라는 제국하에서 신약은 로마제국 아래에서 편집되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성서, 또는 기독교의 근본 뿌리가 바로 제국에 대한 저항임을 말하는 것이다. 제국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면 성서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하며 저항의 담론을 뒤집어 지배의 담론으로 만들었고 이는 이른바 제국이라 일컬어지는 대영제국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므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코드는 성서를 읽는 여러 관점 중 하나라기보다는 수천년전의 성서와 현대의 우리의 해석을 역사적, 정치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마스터 코드’(Master Code)가 된다. 이 이야기가 새롭게 들리는가? 독재하에 한국을 뒤흔들었던 민중신학이 이야기한 민중의 시각에서 성서읽기가 바로 이것 아니었던가? 예수와 로마제국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러한 시각이 아닌가? 여성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이 지칭하는 ‘압제자’에 대한 비판과 ‘억눌린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시아신학이 말하듯 서구로부터 이식된 서구적 신학의 카테고리로부터 자체의 문화적 코드로 신앙을 읽어내려 했던 ‘토착화 신학’이 하던 이야기가 아니던가? 결국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서구의 인문학계는 ‘탈식민주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가, 여성이, 그리고 민중이 외치던 방법으로 텍스트를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론적 틀을 ‘탈식민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성서학’ (Biblical Studies)이라는 학문은 근대의 산물이다. 하나의 거대한 교회, 카톨릭시즘이 지배하던 중세의 교황권이 신학과 성서의 표준이 되던 시대가 종교개혁의 물결에 와해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성서를 읽고 이해하는 기준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와중에 등장한 것이 바로 ‘해석학’이라는 학문인데, 과연 “어떻게 성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학문으로 시작된 해석학은 근대적 주체로서의 인간관과 함께, 성서의 해석의 단초를 인간에게 놓게 된다. 물론 교권의 권위와 교리주의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성서해석은 이성의 토대 위에서 이해될 수 있는, 또는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에 넓은 의미에서 ‘역사비평학’(Historical Criticism)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쉽게 말하면 바로 성서와 동시대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이나 문화, 언어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성서 텍스트에 접근하여 그 메세지(Message)를 이해함을 통하여 현대에 성서가 말해질 수 있는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역사비평학’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쉴라이에르마허에 따르면 이러한 비평적 읽기는 두가지 지평의 가능성으로서 가능해지는데, 하나는 인간의 정신적(Psycological) 지평과 문법적, 또는 언어적(Grammatical) 지평에 의해서이다. 즉, 인간은 텍스트를 통하여 시대와 시간을 뛰어넘어 정신적인 공감대를 저자와 형성하고 언어적 읽기 (문법적, 문학적)를 통하여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신비평(New Criticism)- 역사적, 사회적 배경 이해를 전적으로 배재하고 텍스트 자체가 함의하는 뜻을 읽어보려는 다양한 시도-에 와서 와해되기도 하고, 그 이후 새롭게 재구성되기도 하면서 발전 또는 지양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성서학에는 남아있다. 적어도 ‘어떻게’ 성서를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답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왜’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쉬운 듯하면서 힘든 이 질문. ‘왜’ 성서를 읽어야 할까? ‘왜’ 성서에서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할까?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른바 ‘진리’라는 것을 담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소위 넓은 의미에서 ‘축자영감설,’ 즉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므로 신자는 그 안에서 삶의 표준과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라고 현대인들에게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성서가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벌’ 또는 현대의 인간의 삶의 군상과 현실을 반영하고 또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술작품들보다 더 심오한 삶의 진리를, 의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보통 진보진영에서 이에 대한 질문으로 흔히들 성서는 이미 성스러운 텍스트(Sacred text)로써 때로는 해방의 단초로서, 반대로 억압의 증거로서 사용되기 때문에 성서비평학의 책임은 무한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필자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서를 현대에서 강력한 진리의 계시로써 읽을 수 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으려면 종교적 믿음과는 다른, 시간의 넓디 넓은 틈을 연결시킬 수 있는 주제(Theme)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중신학이 민중의 역사를 구약의 출애굽에서 찾아서 읽은 것처럼, 갈레아의 예수를 현시대의 민중 안에서 재발견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강한 고리가 성서학에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민중의 관점, 여성의 관점, 흑인의 관점, 노예의 관점, 아시아인의 관점이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주제로 근대와 그 이후의 시대에 새롭게 대두되었고 그들을 통해 성서가 새롭게 읽혀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상은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이 변해버렸다. 지배와 압제는 스스로를 은폐하고 변화시켜 과연 누가 지배자이고 누가 압제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버렸다. 전태일 열사를 장렬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처참한 환경의 방직공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저개발국의 어느 곳으로 숨어버렸고, 우리는 값싸고 질좋은 옷을 발견했을 때 횡재한 듯 기뻐하며, 그 옷에 누구의 피가, 아픔이, 그리고 죽음이 숨어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삼성공화국을 욕하면서도 삼성의 신형 핸드폰을 조금이라도 값싸게 사기 위해 밤을 세워 인터넷을 누빈다. 현재에도 우리는 과거에 미국의 누군가에게 당했던 어떤 짓을 필리핀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행하고 있다. 언뜻 보면 나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종교, 정치, 경제들이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개인들을 수많은 연결고리들 안에 밀어넣고 있으며 우리는 수많은 다른 이름들과 관계들로 규정되고 파편화되고 있다. 결국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여 하나의 관점으로만 해석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그러한 세계에서 아직 식민주의는 끝나지 않았다는 탈식민주의의 사자후는 꽤나 설득력있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보기보다는 복잡한 관계속에서 간명한 구조를 가지고 세계를 보기 위한 탈식민주의 이론은 더욱 다양해지고 복합해져왔으며, 결국 탈식민주의는 지역적인 담론이기보다는 전지구적 담론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그리하여 탈식민주의는 끊임없이 초국가적 사회정의를 지향하면서도 지나치게 이상화된 정의를 지양하는 학문으로 발전되게 되었다.[각주:3] 지금의 세상이 복잡하다면 성서의 시대는 단순했을까? 그 복잡성의 정도를 따진다면 현대를 따라가기 힘들겠지만 성서의 세계 또한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예수가 논쟁을 벌이던 바리새인이 누구이던가? 로마제국의 앞잡이였던가? 아니 오히려 종교적 담론을 통해 소박하게나마 혁명을 꿈꾸던 세력이 아니었던가?(톰 라이트에 대한 웹진 참조) 예수의 제자들은 가장 낮은 민중의 정체성을 나누었다고들 하지만 복음서의 여러 여성들이나 군중들에게 군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훗날 예수의 우편과 좌편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하지 않았던가? 사두개인들은 친일파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었던가? 아님 유대종교라도 로마로부터 지키려 했던 현실주의자였던가? 과연 그러한 상황에 예수는 어떤 형식의 복음을 말했던가? 그것이 ‘복음’이 되었다면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분명 뜻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여러가지 질문에 답하려 하는 것이 탈식민주의와 신약성서, 또는 바울신학이라 할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또는 유대주의라는 허상

   이전의 웹진의 원고들이 이른바 NPP(New Perspectives on Paul),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중심으로 쓰여져왔고, 톰 라이트 또한 이와 먼거리에 있는 학자는 아님을 설명하였다. 필자는 이 새로운 관점들과 탈식민주의 관점이 그 줄기를 함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새관점주의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E. P. 샌더스가 말하고자 했던 근대초기의 유대주의에 대한 연구가 유대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반유대주의(Anti-Semitism)와 기독교적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결국 샌더스는 유대주의에 대한 이러한 여러가지 오해들이 유대주의를 기독교 경전의 뿌리이면서도 기독교교리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로 만들었음을 밝혔다. 물론 중요한 논쟁은 ‘이신칭의’나 ‘언약적 율법주의’등에서 불붙었지만, 샌더스의 업적중의 하나는 완전히 객관적인 학문으로 보였던 성서학이 어떻게 지배자의 논리를 정당화 시키고 보호하는지를 밝힌것에 있다. 샌더스의 책이 나온 1970년대말은 시오니즘으로 무장한 일련의 유대인들이 이미 이스라엘이라는 독립국을 손에 넣었고, 자본의 힘을 등에 엎은 유대인들과 우수한 유대계 학자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던 시대이므로, 이러한 샌더스의 업적인 나올 정치, 경제적 배경이 무르익었던 때였던것으로 보인다.[각주:4] 이른바 허상으로 만들어진 유대교에서 벗어서 (샌더스에 따르면) 바울을 바라보는 것이 새관점주의라는 엄청난 여파를 낳았다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또는 지배자의 논리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허상들은 없을까? 그것을 벗으려할때 가지게 되는 또다른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은 없을까? 바로 이러한 통찰이 바울에 대한 새관점과 함께 탈식민주의를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진리에 대한 탐구의 가능성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제임슨 던과 톰 라이트의 글들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시대에서 바울의 복음이 어떤 의미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임스 던에게는 민족우월주의를 넘어서려는 바울의 노력을, 톰 라이트에게서는 제국의 시대에서 새로운 신앙 공동체의 도래에 대한 바울의 목회적 노력이 핵심이었다고 한다면 바야흐로 탈식민주의에서는 제국과 자본주의, 신식민주의 아래서의 신앙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메시지가 주안점이 될 것이다. 먼저 탈식민주의는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라는 탁월한 이론가를 만나게 되면서 샌더스로부터 시작된 지배층의 논리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와 이른바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재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간단히 살펴보면서 바울과의 관계를 고찰해보자. 
   197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이드라는 학자가 출판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책이 인문학계를 뒤흔들게 된다. 사이드는 미쉘 푸코의 담론(discourse)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근대까지의 ‘오리엔트’(Orient)에 대한 서구의 연구가 객관적 연구의 결과라기보다는 서구의 중동과 아시아에 대한 일종의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했다. 푸코는 그의 유명한 담론에 대한 연구에서 당시까지 일종의 사적 또는 공적인 말하기나 여러 종류의 텍스트를 뜻하던 담론(discourse)라는 표현을 지식(Knowledge)이라는 영역으로 사용한다. 이른바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지식’이 유통되는 담론이라는 장은 자유롭게 지식들이 생산, 유통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곧 어떠한 것이 지식으로 인정되고 인정되지 않는지 결정한다. 근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육기관의 등장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던 인간이 발전시켜 온 기술과 학문들을 대학이라는 기관이 모으고, 분과학문별로 나누어 독립시키면서 근대적 스콜라쉽(Scholarship)을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언뜻 보면 지식과 학문이 전근대적인 종교와 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 개체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근대의 다양한 힘과 권력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거대한 하나의 지식산업을 형성하여 힘의 논리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의학’(Medicine)을 들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의학이 하나의 순수한 지식이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전문분야라고 생각을 하지만 푸코식으로 보면 의학이라는 것은 치료(Healing)라는 것이 무엇이고, 질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장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세계와 어떻게 관련맺어야 할지를 규정한다.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며, 어떻게 먹고 생활할지를 조정한다. 놀라운 것이 이러한 엄청난 힘이 규제와 억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설득의 방법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한의학이 대학을 통해 전파되고, 하나의 정치적 힘을 가진 단체로 성장하기 전에는 의학은 한의학을 하나의 미신으로 규정하고 의학의 분야에서 밀어냈었다. 수천년의 역사와 철학을 내포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담지한 학문이 단순한 미신과 질낮은 기술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단계가 순전히 자연스럽게 근대의 시대에 이루어졌다. 사이드는 이러한 담론이론을 가지고 와서 중동과 아시아에 대한 서구인의 지식이라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허상에서 이루어져왔음을 고발하고,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인들은 오리엔트를 지식의 영역에서 지배하고 자신들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반명제로서 사용해 왔음을 보았다.
   푸코의 이론을 이용한 사이드의 중동과 아시아를 향한 지식담론에 대한 비판은 거의 최초로 서구의 학문이 피지배 국가와 문화에 대한 연구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으며 일견 서구사회에서 주변담론으로 치부되던 중동과 동아시아에 대한 학문들이 다시금 탈구축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것이 신약성서학에 끼친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첫째, 서구성서학이 자신들의 논리와 성서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피식민지인들의 신앙과 문화에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제국의 그늘아래에 피식민인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남긴 성서의 전통이 제국과 식민주의의 영향을 감안하여 읽혀져야 한다는 인식을 낳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웹진에서 설명할 호미 바바(Homi Bhabha)의 이론이 중요한데, 기독교문화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보는 시각에서 유대문화와 제국의 문화 사이에서(in-betweeness) 생성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문화에서 성서가 어떻게 응답하는지, 복음은 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읽는 시도가 더욱 힘차게 개진되었다. 넷째, 근대의 제국주의가 낳은 산물인 인종차별, 여성차별, 계급차별에 대해 열린 눈으로 성서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시도가 행해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웹진에서 다룰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J. C Young, Post-colonialism: An Introduction (Oxford: Blackwell Publishers, 1999), 28. [본문으로]
  2. Ibid., 27. [본문으로]
  3. Ibid., 58. [본문으로]
  4. 유대인이라고 묶어서 부를 수 없음을 유의하자. 시오니즘을 주창하는 유대인들이 있는 반면 그에 대해 엄청난 비난을 퍼붓는 유대인들도 있다. 한국인이 그렇듯이 유대인들또한 무한한 다의성 -Multiplicity-을 가지고 있음을 유의하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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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신대는 ‘해석학과 윤리’를 개설했을까? (하)
: 이 냉소의 시대에 신학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유학하던 10년간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난 웹진 58호 원고는 마감되었다. 바로 그 잃어버린 10년을 추적해 들어가면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해석의 틀을 전반적으로 검토해보고, 지난 10년간 이루어졌던 윤리적 지형의 변화를 회고하면서 어떻게 신학은 반응할 수 있을지를 예단하는 것은 이번 봄 학기,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개설되는 <해석학과 윤리>의 몇 가지 주된 강의 목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너무나, 너무나도 윤리적인 Korean!

우리가 얼마나 윤리에 정통한 국민인가? 우리는 초등학교 6년 (바른 생활)-중학교 3년(도덕)-고등학교 3년(국민윤리), 총 12년의 공교육 기간 동안 국가주도하에 체계적이고도 주도 면밀한 윤리교육을 받은 백성들이다. 필자가 지금 윤리학 Ph.D 7년 차인걸 감안하면, 12년 동안 윤리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히 모두 윤리학 분야 박사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있어 ‘바른 생활’과 ‘도덕’과 ‘국민윤리’는 학창시절 각종 시험 때 마다 평균점수를 올리는 전략과목으로써 달달 외워 빈칸을 메우거나, 선생님의 구미에 맞는 적당한 말을 해주면 점수를 얻는 그런 하찮은 과목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로 시작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 쓰면 되었고, 중학교때는 국민교육헌장을 통째로 암기했으며, 고등학교때는 7.4 남북공동성명부터 전두환 정권의 통일 정책이라 할 수 있는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평화적 통일 정책이 지닌 장점을 북한의 적화통일 정책과 비교하며 남한의 손을 들어주면 그만이었다. 재수할때는 노태우의 6.29 선언의 의미를 쓰라던 문제도 윤리 모의고사 문제에 등장했었다.

이론적으로도 꽤 충실하여 ‘서양윤리사상의 흐름’과 ‘동양윤리 사상의 흐름’이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 Chapter 3장, 4장쯤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특별히 ‘서양윤리사상의 흐름’편을 보면 20-30페이지 남짓한 분량에 소크라테스부터 미국의 프래그머티즘까지 100명쯤 되는 철학자들의 이름이 현란하게 파워포인트 넘기듯 스쳐 지나갔었다.

당시에 있었던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지금도 외우고 있는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법인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 타당한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는 고2 어느 기말고사 주관식 3번 마지막 문제의 답이었는데, ‘네 의지의 준칙’을 ‘내 의지의 준칙’이라 썼다고 틀렸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윤리시험이 아니라 받아쓰기 시험이었던 게지.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초, 중, 고 12년 동안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윤리전문가가 되어 사회로 진출하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가 지닌 출생의 비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철저한 윤리교육을 받은 시민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사회는 너무나도 윤리적이지 못한 음란한 사회라는 점이다. 이유가 어디 있을까? 왜 우리는 윤리를 그토록 오래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가히 뼛속까지 윤리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윤리적이지 않을까? 혹여,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란 어떤 말하지 못할, 말해서는 안 될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혹은 대학입학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란 체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수호하는 도구로, 체제에 반하는 주의나 주장을 자행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구별 짓는 잣대로, 아울러 그들을 단죄하는 형벌의 근거로 작동해 왔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가 이 땅을 지배하던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유신헌법을 선포하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며 백성들을 헷갈리게 했었다. 언뜻 보면 보편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듯한데, 실상은 정반대다. ‘한국적’라는 개별성으로 ‘민주주의’라는 보편성을 포획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분단, 반공, 개발, 경제…등과 같은 당시 한국 상황의 특수성을 위해 민주주의를 제단에 헌납하겠다라는 선언이 유신헙법이었고 유신체제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유신체제를 편협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이렇듯 민주주의가 ‘한국적’이라는 재단에 열납되듯이, 우리에게 있어 윤리란 ‘국민의 윤리’였다. ‘한국적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종개념이고, ‘윤리’는 매개념에 불과하다. 그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분단체제 아래서 반공을 국시로 삼아야 하는 국민이고, 그 국민이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거대담론 아래 질서정연하게 줄 맞춰 삽질해야 하는 국민이며, 그 국민은 이제 자본의 재단에 몸과 마음을 기꺼이 맡겨야 하는 국민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윤리란 이런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정말 하찮았던 과목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가 갖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고, 슬픔이다.

해석학과 윤리

그렇다면, 해석학과 윤리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 것일까? 해석학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본문의 이해와 관련이 깊다. 저자와 독자(해석자)의 관점에서 text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지평에서 해석은 발생하는지? 신학은 이러한 해석학적 통찰로부터 무엇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이상은 해석학과 연관되어 전통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대표적인 질문들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이 질문들은 해석학의 역사에 대한 통시적 접근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 (이번에 개설되는 ‘해석학과 윤리’는 역시 슐라이이마허부터 레비나스까지의 해석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으로 진행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는 본문의 저자와 해석의 주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해석학적 긴장을 유발시킨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해석학의 아버지라 불릴 만하다. 그는 해석자의 위상을 저자의 위치로까지 격상시켰다. 그리하여 해석학을 Text 이해의 문제, 즉 본문에 대한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 이해(Verstehen)란 무엇인가? 라는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해석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팽팽한 긴장으로 인도한다. 
진리는 이성의, 이성에 의한 인식론적 개념 혹은 인식론적 과정이 아니고, 주체의, 주체에 의한 존재론적인 개념일 수 있다는 점, 이런 이유로 해석이란 진리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해석학적 경험이라는 점을 슐라이어마허는 말하고자 했고, 그의 시도는 이후 전개되는 다양한 해석학적 작업의 시금석이 되었다. 

이러한 해석학전 전환은 실천 철학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해석자로부터 타자적 위치에 있어왔던 Text가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와,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을 조장하고, 확고했던 우리의 믿음에 혼동과 긴장을 유발시켜, 우리를 불온한 신자, 불온한 시민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해석학과 윤리가 만나는 경계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윤리는 문제적이다. 
본디 윤리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 혹은 규범을 찾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그 규범은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positive한 내용보다는 negative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부정적 강제적 규범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사회가 이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아마도 이런 금지규범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십계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윤리를 규범적 차원으로만 한정시키려는 시도는 윤리의 차원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윤리란 규범의 차원을 넘어 선택의 차원으로, 그리고 그 선택은 필연적으로 어떠한 대상과 사건에 대한 판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윤리의 어려움이 있고, 바로 그 곳에서 윤리는 해석학과 대화한다.

갖추린 Syllabus

규범이 집단주체의 것이라면, 윤리는 개별주체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봉합선이었다. 근대적 주체란 자기들이 만들어 가야 할 세계의 빛나는 모습을 자신의 경험과 언어와 전통과 신화와 역사를 동원해 그려내고자 했던 주체였고, 근대적 윤리란 그런 개인의 확고부동한 서사를 뒷바침할 만한 주체의 행동강령을 모색하는 윤리였다. 이러한 근대적 주체에 대한 반성과 근대성의 윤리에 대한 회고를 하는 과정에서, 슐라이에르마허에서부터 리꾀르까지, 이른바 근대적 해석학이 걸어왔던 길과 겹치면서, 양자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이번에 개설되는 <해석학과 윤리>의 전반부 과제다. 

하지만, 21세기, 오직 자본의 욕망만이 이 땅에 존재하는 세상에서 근대적 주체, 근대적 해석학이 만들어 놓은 tool은 자본이라는 유령을 해석하기에 뭔가 석연치 않는 부분이 많다. 이런 이유로 나는 현대의 윤리란 일차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투철하게 응시하는 시선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그리하여 강의 후반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푸코와 데리다, 라깡과 지젝을 소환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본 강좌가 노리는 것은, 결국 타자의 해석학과 타자의 윤리학을 수강생들 스스로가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레비나스를 강의 맨 마지막에 배치하여 전체 강의를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에필로그

강좌를 진행하면서 수업시간에 논의되었던 이야기, 획득된 소득들, 남겨진 문제들에 대해서 웹진을 통해 소개할 것을 약속하면서 어설픈, 그리고 위태한 강의개요를 일단 접는다. 글을 쓰면서 내가 아직 얼마나 강의하기에 턱없이 준비가 안되어 있는 강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수강신청 한 학생들 앞에서 최소한 面이 팔리지는 않아야 할 텐데…..요즘 매일 악몽을 꾼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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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성서 해석학과 정치학

김진양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에서 구약학 Ph.D. 과정중)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과히 지난 20세기 성서 해석학에서 가장 중심된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서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해석적 담론을 지속적으로 쏟아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였고,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 성서학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끈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차원에서 이야기 될 수 있다. 첫째, 고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성서의 자체의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 11:16-17) 이스라엘이 가나안 도시를 단번에 완전히 정복하였다는 (all-at-once) 것을 서술하는 반면, 사사기서는 (사사기 1:9)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도시와 몇몇 영역들을 서술하고 있다. 성서학자들은 이런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의 모순된 진술에 대한 답을 소위 객관적(?) 증거를 제공하는 고고학에서 찾고자 노력하였다. 둘째, 고대 이스라엘 기원이라는 과거 역사의 재구성은 오늘날 현실 정치에 깊숙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난 100년동안 성서학자들의 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해석학은 팔레스타인 땅의 권리를 둘러싼 이민자 이스라엘과 토착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이라는 현실 정치의 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에세이에서 성서 해석학과 현실 정치와의 관련성을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1996년 키쓰 와이트럼(Keith Whitelam) 이라는 구약 성서학자는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e History (「날조된 고대 이스라엘: 침묵의 팔레스타인의 역사」)라는 도발적인 책을 출판하였고, 그리고 이 책은 성서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와이트럼은 “이스라엘 역사는 근대성에 근거한 성서 해석학의 결과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지난 20세기 성서해석의 담론을 일축한다. 지난 세기 성서 학자들의 주된 정치적 이념은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권리에는 침묵하였다. 다시 말하면, 성서 학자들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는 근대 이스라엘 건국의 성서적/이념적/정치적 합법성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은 성서 해석과 현실 정치의 연관성을 날카롭게 보여준 대작임에 틀림없다. 와이트럼은 20세기의 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세가지 전통적인 모델- (1) 평화 이주설, (2) 정복설, 그리고 (3) 민중 봉기설- 을 탈 근대의 담론으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1) 평화 이주설
평화 이주설은 알브레이트 알트(Albrecht Alt)의 1925년 논문 (“Die Landnahme Der Israeliten in Palästina”)에서 출발한다. 이 가설은 고대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으로 (당시 가나안 사람의 땅) 평화롭게 이주한 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고 것이다. 평화 이주설은 구약성서 사사기서가 서술하는 이스라엘의 기원에 가장 가까운 가설이다. 그러나 와이트럼은 “[평화 이주설]은 조작적 과거의 재구성으로서 1920 년대 급증했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시오니즘을 반영한다”고 비판한다 (와이트럼 1996, 74). 평화 이주설은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들과 매우 유사한 상관관계가 있다. 알트의 논문과 당시 시대적 상황이 1920년대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와이트럼의 비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평화 이주설의 핵심적 내용은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타자의 소유지를 빼앗은 폭력적 행위가 아니라, “비어있는 땅”(uninhabited land)에 평화롭게 이주하였다는 것이다 (Weippert 1971, 6).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비어있는 땅”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연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때 그 땅의 주인은 없었을까? 성서 어디에도 “비어있는 땅”으로의 이주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비어있는 땅”이라는 해석적 관점과 1930년대의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비교하면 더욱 흥미롭다.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은 1930년대 팔레스타인 사회는 내부적으로 와해된 국가라는 조직이 불가능한 소위 “비어있는 땅”과도 같다고 여겼다. 따라서 평화 이주설을 주장하는 학자나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은 월등한(주체) 이스라엘인이 열등한(타자) 팔레스타인을 대치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2) 정복설
정복설은 윌리암 팍스웰 올브라이트(W. F. Albright)가 처음으로 주장한 가설이다. 올브라이트는 구약성서 여호수아서가 진술하는 고대 이스라엘인의 가나안 도시 정벌이라는 성서의 기록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올브라이트는 소위 근대정신의 중심된 담론인 성서 기록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믿었던 객관적(?)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어떻게 읽어 내는냐에 따라서 다른 결론을 얻을수 있다는 도전을 받고 있다. 와이트럼은 올브라이트의 정복설을 결국 폭력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을 차지한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한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사실은 올브라이트는 결코 토착민 팔레스타인의 땅에 대한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팔레스타인을 멸종의 대상인 “타자”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올브라이트는 유대인들이 중동에서 유럽문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와이트럼은 “정복설은 이주민/상위계층/서구인이 토착인/하위계층/동양인(중동인)을 학살하는데 대한 성서적 혹은 객관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고 비판한다 (와이트럼 1996, 84-85). 와이트럼은 정복설의 정치적 이념은 “[서양의] 기독교가 열등한 [토착] 종교를 대치한 것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3) 민중 봉기설
조지 멘덴홀 (George Mendenhall)은 1962년 “The Hebrew Conquest of Palestine” 이라는 논문에서 고대 이스라엘은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문에서 멘덴홀은 고대 이스라엘은 타락한 토착 가나안의 정치/사회적 체계에 대항한 사회적 약자 연대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고대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하부계층과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연대하여 혁명의 (혹은 농민봉기) 결과라는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로서 The Amarna Letters에서 “하비루 (Habiru)”라는 하부계층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민중 봉기설이 초기 시오니즘의 유럽 국가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 민중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미국, 유럽,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다른 인종들이었지만, 동일한 사회적 억압을 경험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멘덴홀의 가설을 더욱 발전시킨 갓월드는 (The Tribes of Yahweh, 1979) 자신의 책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을 서술하면서 반 베트남 전쟁을 역설하였다. 갓월드와 멘덴홀은 이스라엘을 단일 인종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고대 이스라엘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배경에서 온 사회계층의 동일한 정치적 경험의 담지자들이 가나안 지배층에 대항 강력한 도전과 봉기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는 가설이다 (Gottwald The Tribes of Yahweh, 215). 갓월드는 민중 봉기설을 주장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을 옹호하였지만, 그러나 근대 팔레스트인의 “땅”에 대한 권리에는 철저히 침묵하였다.

위의 세 전통적 가설과는 달리 와이트럼은 팔레스타인의 “땅”에 대한 권리를 옹호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이라는 “타자”를 위한 성서 해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잔 콜린스의 지적처럼, 근대 아랍 팔레스타인은 기원 후에 등장한 인종으로서 고대 가나안인과는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인종임을 와이트럼은 간과하고 있다 (Collins 2005, 42).

위에서 살펴본대로, 근대정신에 바탕한 성서 해석학은 현실 정치와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와이트럼이 보여준 비판적 해석처럼 성서를 해석하고 과거를 제구성하는 가치관의 재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혹자는 종종 이러한 해석적 담론을 “탈 근대주의” 또는 “탈 식민주의”라고 부른다.

아래의 사진은 필자가 지난 2005년 1월 팔레스타인(현 이스라엘)로 Travel Seminar 갔을 때 찍은 예루살렘 장벽 사진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테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세운 단절의 벽이다. 당시 저 무시무시한 벽을 세우는 성서적/정치적 정당성을 성서학자들의 해석적 담론이 제공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낀 일이 생각난다.


참고문헌

Collins, John J. Encounter with Biblical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5.

Weippert, M. The Settlement of the Israelite Tribes in Palestine. A Critical Survey of Recent Scholarly Debate. London: SCM, 1971.

Whitelam, Keith.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e History. London; New York: Routiedg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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