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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 여덟 번째

세미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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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개역개정판 열왕기상 19장 11-12절)

서방의 지중해와 동방의 아라비아를 잇는 중개무역로가 개통되었고 페니키아와 이스라엘이 국제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북이스라엘은 막대한 부를 창출하게 된다.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아합왕이다. 북이스라엘은 르호보암의 독재에 맞서 생겨난 나라였기에 평등을 지향하는 민중전통이 살아있는 왕조였다. 그러나 야훼의 평등주의 전통에서 다소 자유로웠던 비 이스라엘계의 용병출신 오므리는 외세의 위협에 맞서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부국강병의 길을 택하였고, 사마리아를 근거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고, 페니키아의 성읍들과 상업동맹을 맺으며, 남유다를 예속화하는 등 평등보다는 발전에 주력하게 된다. 그의 아들인 아합은 페니키아 연합 왕국의 공주인 이세벨과 결혼하면서 아버지에 이어 보다 강력한 절대왕정 국가를 지향하였다.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는 사건(왕상 21장)은 모든 땅이 야훼의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을 뒤집는 것으로 아합의 권력 남용의 정도가 어떠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왕상 17장)는 국가발전의 명목하에 벌어지는 처참하고 고달픈 민중의 삶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모든 정책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합은 야훼주의와 바알주의를 적당히 혼합하였고, 바알주의를 이용해 과도한 사유재산을 합법화하고, 사회불평등을 정당화하였다.

위에 인용한 성서 본문의 주인공인 엘리야는 바로 이러한 아합을 정면에서 공격한 하느님의 예언자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갈멜산의 대결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를 가져오는 절대권력과 야훼의 평등주의의 한판 투쟁이었던 것이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들과 850대 1로 싸워 승리를 거둔 사건은 어떤 하느님이 참 하느님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인 동시에 절대권력을 향한 욕망을 부수고, 그에 물든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야훼 하느님 신앙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사회에서 오늘날 교회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네 평범한 심정에서는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을 박살내는 장면쯤에서 야훼 하느님이 등장하시면 그야말로 최고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이 거대한 승리의 함성 속에 야훼는 현현하지 않는다. 대신 야훼 하느님은 승리의 싸움을 하고서도 다시 이세벨에게 쫓겨 차라리 죽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하는 엘리야를 채근하여 하느님의 산인 호렙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런데 그 야훼는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속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소리로 등장한다. 이러한 은유, 상징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읽을 때 생기는 위험과 오해와 편견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엘리야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문자 그대로 읽을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갈멜산의 대결에서 엘리야가 백성들을 시켜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잡게 하고 그들을 기손 강가로 데려가 거기에서 모두 죽였다는 기사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바알의 예언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물론 이들은 사회의 불평등의 구조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그래서 약자들의 피를 빨아 강자들의 배를 채우는 데 일조하는 인간들이다. 그래서 잡아 죽여 마땅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난 그러한 생각 속에 또 다른 폭력이 잉태하는 것을 본다. 변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너무 손쉽게 놓아 버리는 가벼움, 모든 성공에는 언제나 그 신화에 가려진 무수한 그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는 나 자신을,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여도 승리에 도취되는 순간 패배자의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는 우리네들의 한계를 본다. 악을 박멸하는 것에 목소리를 높일 때 내 안에 깊이 내재한 폭력이라는 또 다른 악의 모습은 살피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다. 불의에 저항하여 싸우는 용기도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상대편은 다 나쁘고 나는 무조건 옳다”는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도 경계해야만 한다. 어쩌면 바알의 예언자들은 더 잘 살고 싶고, 좀 더 편하고 싶고, 가끔은 내가 좋기 위해 남을 생각지 않는 평범한 우리와 같은 이들일 수도 있다. 

목회를 하다 보니 수많은 좋은 생각들이 서로 부딪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를 물리쳐야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가자고 외치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이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비난을 받는다고 그들이 파렴치한 인간이거나 게으른 인간은 아니다. 신앙이 없다고 함부로 평가받을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목사가 빠지는 유혹도 전부 이런 것들과 관련되는 것 같다. 성공한 목회 어쩌구 저쩌구, 삐까뻔쩍한 그 무엇을 이루어야만 되는 것처럼 한국교회의 분위기가 흘러갈 때 혹시 우리는 세미한 소리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은 영영 못 만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목회를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 가운데서 작은 성취와 기쁨을 누리게 된다. 심지어 영광스런 자리(?)로 떠받들어지기까지 한다. 아무리 못생겨도, 나이가 어려도, 키가 작아도, 돈은 벌지 못해도, “목사님, 목사님” 하며 떠받드는 소리들만 귀에 쟁쟁할 때도 있다. 홀로 기도하면서, 그것도 금식기도까지 하면서 오래도록 구상을 하고 발표한 목회계획이 “짜잔~” 멋지게 들어맞아 교인이라도 몇 십 명 늘면 갑자기 목이 굳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목사들을 많이 보게 된다. 몇 몇의 반대의견은 들을 필요도 없고 들리지도 않는다. 아흔아홉마리 양이 찬성하면 한 마리 어린양은 안중(眼中)에도 없다. 이렇게 되면 이제 슬슬 “하느님의 종”에서 “하느님”이 되어가는 징조가 보이는 것이다. 

나에게는 7살(선규), 4살(동규) 먹은 두 아들이 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수 십 번 아이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기에 윽박지르거나 내 맘대로 할 수는 없기에 아이들의 의견을 계속 묻는다. 아이들은 아직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판단을 못하고[각주:1] 자신들의 욕구에 따라 막무가내의 요청을 하거나 떼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다른 해결방식을 찾기 위해 엄청 머리를 쓴다. 잘 설명하기도 하고, 한가지로 쏠린 아이의 욕구와 생각을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안을 내놓기도 한다.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잘 해결되는 편이다. 

팽이를 놓고 두 아이가 싸운다. 팽이가 두 개나 있건만 둘째가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둘째를 혼낸다면 분명 울음소리는 더 키울 뿐이다. 잘못은 분명 둘째가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둘 사이에 협상할 거리를 찾는다. “선규야, 동규가 팽이를 무척 좋아하나 본데, 일단 두 개다 동규를 주고 선규는 이따가 동규 낮잠 자면 그 때 팽이 놀이를 하면 어떨까?” 실패다. 선규가 양보를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동규를 꼬신다. “동규야, 이 팽이는 형아 것이고 레이 유니콘 팽이가 네 것이니까 우리 하나씩 나누자.” 이것도 실패다. 동규가 두 개의 팽이를 두 손에 쥐고 놓지를 않는다. 다시 선규를 설득해 본다. “선규야, 아빠랑 숨박꼭질할까?” 이번에도 또 실패, 팽이에 필(feel)이 꽂힌 선규가 절대 포기할 기세가 아니다. 다시 동규를 꼬시기로 했다. “이게 뭐냐! 와~ 붕붕 자동차네, 삐뽀삐뽀 놀이 해볼까?” 아이들과 상관없이 내가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한쪽에서 새로운 놀이를 시작해 본다. 동규가 걸려 들었다. 금방 움켜잡았던 팽이를 놓아 버리고 자동차를 집으러 온다. 웬 걸! 이렇게 되자 큰 아이 선규도 이제 팽이에는 관심이 없다. 

개인의 작은 욕심들이 거대한 사회구조적 악으로 증식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또 하나의 자만심, 욕망, 지배욕, 고집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을 성찰하는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좋은 의견들을 놓고 싸움을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한 사람의 열걸음이나, 다섯 사람의 두걸음이나, 열사람의 한걸음은 모두 같은 열걸음이지만 공동체를 생각해 본다면 모두가 손잡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흔아홉마리를 들이나 산에 두고 한 마리를 찾으러 가신 예수는 아마 길 잃은 양의 세미한 소리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 내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서 침묵에 쌓여 있는 그 소리를 듣고 싶다. 어느 누구도 잘 돌아보지 않는 한 구석에서 조용히 그러나 부드럽게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그 소리를 듣고 싶다. 

갑자기 노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혹시 하느님의 세미한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입거나 욕을 먹거나 깜짝 놀란 것처럼 (조심)하라. 큰 환란을 제 몸처럼 귀히 여겨라. 왜 ‘사랑을 입거나 욕을 먹거나 깜짝 놀란 것처럼 (조심)하라’고 하는가? 사랑을 받으면 승진하고 욕을 먹으면 강등이 되는 법, 그러니 총애를 얻어도 놀란 듯이, 총애를 잃어도 놀란 듯이 하라. 그래서 사랑을 입거나 욕을 먹거나 깜짝 놀란 것처럼 (조심)하라고 말한 것이다.”(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上, 辱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道德經』 13장 중에서)
 
ⓒ 웹진 <제3시대>


  1. 물론 성인이라고 상황판단을 다 잘하는 건 아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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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 다섯번째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
- 땅위를 걸으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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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한국의 근현대사 100년의 세월을 돌아볼 때, 겉으로 한국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현대화에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무척이나 급박하고 빠른 사회변동 속에서 한국인들은 차분히 자기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내면을 성찰할 줄 아는 개인을 찾아보기 어렵고 아직까지도 가족, 학연, 지연 등 연고주의와 각종 권위주의 아래 각각의 사적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개인의 생존을 추구하는 모습이 만연합니다. 요한복음서를 읽다보면 한편으로 로마와 유대의 이중의 박해 속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한마음이 되어 똘똘 뭉친 요한공동체의 자신감 또한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실행하셨기에 예수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 안에 예수가 계실 수 있었듯이, 요한공동체는 자신들이 예수의 사역을 이어감으로써 자신들이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자신들 안에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요한공동체는 자신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만이 세상에 하느님을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마 오늘날의 세상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것일 겁니다. 경쟁과 폭력이 난무한 세상에서 사랑의 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리석음에서 바로 하느님을 봐야 하고 자신이 바로 땅 위를 걸어 다니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몸소 체현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설교를 마지막으로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는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다음에는 계속 이어서 실수투성 목회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향린의 창립정신과 복음서(4)
땅 위를 걸으시는 하느님
예레미야 31, 31-34 ; 요한복음 14, 6-14

[독립교회의 정신과 삼일 독립운동]

2006년 가을에 저는 <예수말씀과 공자말씀>이라는 성서공부반을 개설했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와 공자의 대화라고나 할까요? 2000년 동안 켜켜로 쌓인 교리와 교회의 덧칠을 걷어내면 피폐해진 조국의 백성들의 아픔을 껴안은 뜨거운 가슴과 하느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품은 한 젊은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청년 예수이지요. 쏜 살 같은 변화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고리타분하다는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순수하게 귀를 열어 놓으면 평생 몸으로 배우며 삶으로 고민했던 한 어른의 지혜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공(孔) 선생의 어록집 논어(論語)입니다. 공자 선생께서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람의 나이를 칭할 때 쓰는 두 글자가 대부분 여기에서 왔지요. 열다섯을 지학(志學)이라 하고, 서른을 이립(而立)이라 하며, 마흔을 불혹(不惑)이라하고 오십을 지천명(知天命) 또는 지명(知命), 예순을 이순(耳順)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공자의 일생을 표현하는 말에서 나온 것들입니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論語』 「爲政」4.) 이런 것들을 나누고 있는데 우스개 소리를 잘하시는 노경선 집사께서 자신이 상담을 해보니까, 이 “공자의 말이 다 거짓이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흔이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마흔살에도 마음을 못 잡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들이 숫하게 많다는 것이지요. 예순이 되면 귀가 순해진다고들 하는데 즉 마음이 넓어져서 관용의 정신이 생긴다고 하는데, 가는 귀가 먹어 잘 들리지 않는 분들은 많아도 오히려 옹졸해지는 사람들도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져서 서른이 되어도 독립하는 청년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노경선 집사님의 분석이었습니다.

향린교회의 네 가지의 창립정신 중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정신은 독립교회의 정신입니다. ‘독립교회’란 어느 교단에도 가입하지 않은 교회를 뜻합니다만, 전 ‘스스로 서는 교회’라고 더 넓게 풀어서 생각하고 싶습니다. 민족의 분단이 고착화되고 전쟁이 일어나 민중의 삶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 교회가 민족의 정신적 각성을 촉구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기는커녕 싸움과 분열만을 일삼고 있었기에 향린교회는 독립교회로 남아 교권싸움에서 어느 파에도 휘둘리지 않는 제3자의 입장을 견지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초기의 교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향린이라는 평신도 교회를 창설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쌍수를 들고 찾아와서 입적했다. 싸움 없는 교회, 아무 파에도 가담하지 않는 교회, 딸라의 배경도 없고, 선교사의 콧김도 없는 교회, 따라서 교역자라는 무관제왕도 없는 순수한 평신도의 교회, 이거야말로 한국적 교회가 아니겠는가![각주:1] 

‘독립’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딸라의 배경이나 선교사의 콧김에도 휘둘리지 않고, 세파에 흔들리지 않아 ‘홀로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든 민족이든 스스로 홀로서지 못하는 노예의 삶을 산다는 것은 살았으나 죽은 것이요,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짐승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민족은 지난 35년간 바로 살았으나 죽은 삶, 목숨만 붙어있는 거지같은 식민지 백성의 삶을 살았습니다.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길 것 같은 그 능욕의 시절을 경험하였습니다. 올해는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90돌을 맞는 해입니다. 90년 전 서울과 평양 등 전국에서 “조선독립만세”, “왜놈과 왜놈군대는 물러가라”, “조선독립정부를 세우자”, “조선은 조선 사람의 것”, “자유와 평등 만세” 등 구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며 길거리로 조선의 모든 민중들이 뛰어 나왔습니다. 

3․1 독립운동은 경술국치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 식민무단통치에 맞선 다양한 반일민족해방운동이 한 물결이 되어 터져 나온 성난 파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3․1 독립운동은 독립을 위해서 전쟁도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국내외무장투쟁조직을 지원한 비밀결사운동, 독립을 하려면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교육문화운동, 식민지 경제수탈에 맞서 농민․노동자들의 생존권 수호투쟁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레닌의 약소민족자결권선언이라는 국제적 변혁분위기에 맞춰 식민지 사회가 보여주는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모든 모순을 없애기 위한 전 인민의 노력이 분출된 운동이었습니다. 구한말 계속된 의병 투쟁과 그리스도교 민족주의자들의 주체적인 자주독립정신이 3․1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일본 자본가와 매판 자본가의 착취와 압박 속에서도 근근이 견뎌온 일부 민족 자본가들은 물질적 후원을 하였으며, 근대적 교육기관과 교회를 통해 배출된 교사․학생 중심의 일반 지식층과 식민지 예속 경제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상인․노동자․농민들의 지지는 확실한 대중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삼천만 동포가 하나 된 3․1 독립운동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바로 “독립”없이는 참다운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90돌을 맞는 3월 1일, 오늘 우리는 진정 주체적이고도 참된 삶이 무엇인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되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서의 탁월성]

요한복음서는 “땅 위를 걸으시는 하느님” 즉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참된 삶” 무엇이며, “참된 삶”이 가능한 하느님 나라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복음서입니다. 요한복음서가 탄생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는 요한복음서 내에 등장하는 예수께 사랑을 받던 제자(13:23)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전통적으로는 사도요한이라고 알려졌고, 예수께서 하느님의 품안에 계셨듯이(1:18), 유일하게 예수의 품 안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13:23) 그래서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옆에 예수와 가장 닮은 모습으로 그려 넣습니다만, 사실은 예수의 사랑받은 이 제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 살았던 상당히 지적인 인물이었으며, 아마도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예수의 곁을 끝까지 지켰으며, 예수가 재림할 때까지 이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요한공동체에겐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이 요한복음서의 저자라고 복음서가 말하고 있습니다(21:24). 

이 사람은 공관복음서를 다 읽었습니다. 구약의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는 예수와 그의 운동인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이 사람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관복음서가 말하는 예수 이야기로는 자신의 공동체를 이끌기엔 아쉬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자 한자 적어나가기 시작합니다.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요한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씁니다. 예수는 공관복음서가 말하는 대로 세례요한이 이사야 예언자의 글을 인용하여 예언한 구약의 성취로서의 메시아나(마르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거나(마태오), 역시 구약의 성취로서 세계사에 우뚝 솟은 성인의 반열에 드는 인물(루가)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셨던 하느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이 땅으로 내려오신 하느님, 그 분이 바로 예수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빛 중의 빛이며, 이 세상의 죄악을 없애시는 분이시며, 목마름이 없는 살아있는 물이며,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며, 선한 목자이시며, 길이요, 진리요,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서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붙일 수 없는 온갖 수사와 호칭으로 예수의 존재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요 10:30, 17:11, 21). 이것은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에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전도서 5장 1절)는 말씀처럼 창조주와 피조물의 간격은 천지보다 큰 것인데, 어느 누가 인간을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느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조차 금지하고, 그의 이름 부르기를 두려워하는 유대인들에게 “나자렛 예수가 하느님이다”라는 선언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의 소리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나사렛 도당에 대한 저주문”을 그들의 기도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요한복음서 저자는 당대의 모든 유대인의 사유와 인식체계를 뛰어넘는 모험을 감행한 것일까요?

[종교적 욕망과 신앙]

오늘 제가 나누려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왜 요한복음서는 육체적인 혈통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나사렛 촌 동네의 한 목수의 아들을 감히 하느님이라고 부르는가? 왜 로고스가 사륵스가 되었다 곧 말씀이 살(肉)이 되었다고 말하는가? 이것을 통해서 요한복음서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식물이나 동물과 달리 인간은 문명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바늘로 수십 번 찔러도 아프다는 소리하나 하지 않는 바위와 달리, 한곳에 머물러 한 평생을 사는 식물과 달리, 땅만 쳐다보고 기어가는 네발 동물과 달리, 인간은 하늘을 향해 사유하는 머리로, 두 발로 움직이는 행동으로, 민감한 감수성으로 지구상에 문명을 건설했습니다. 그래서 한 인간이 태어나서 성인이 되어 이 문명사회에서 제 스스로 서려면 보통 30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면서 서른이 되어서야 섰다(三十而立)라고 말했지요. 현대사회에서도 부모 곁을 떠나 자립하여 주체적인 인간이 되려면 서른은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태어나 부모의 돌봄을 받고(유아기 0-5세), 학교에 들어가고(유년기 6-12세), 사춘기(13-19)를 지나 청년이 되고 곧 사회에 적응하는 성인이 되는데 30년이나 걸리는 거지요. 인생의 각 단계에서 충분한 영양이나 정서적 돌봄, 지적 자극을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삶은 넘치는 생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타인 의존적 삶을 살거나 심한 경우 우울증에 노출되고 자기 파괴적 삶을 살게 됩니다. 성인기를 지나 장년기, 노년기를 거쳐 죽음을 맞이합니다. 누구나 두, 세 평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 평생을 살고 그렇게 살다가 죽습니다. 그 삶의 여정에서 신앙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는, 향린교회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또 하느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은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을 말하며, 하느님께 부르짖습니까?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성숙한 성인이 되는데 신앙생활은 어떤 도움이 되는지요?

제가 만난 상당수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하느님은 자신들 내부에 가득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는 대상이거나, 삶의 고뇌와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크고 안락한 침대역할을 하는 이였습니다. 프로이트가 비판한 대로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은 단지 한 때 자신이 사랑하고 무서워하던 유아기 때의 육신의 아버지를 이상화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과 상황이 안 되서 행복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신을 만들어서 그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것이 바로 종교라고 말하는 포이어바흐의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종교인을 저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망, 여러분의 욕구, 여러분의 자기보존 본능을 충족시키고 만족시키기 위해 하느님을 찾고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요? 상처가 회복되고,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고, 행복한 삶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그것이 전체를 보지 못하고, 좁은 소견으로 자기의 잘못된 이기적 욕망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그 욕망의 추구는 형제와 이웃, 그리고 공동체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십억의 돈방석에 앉기 위해 바로 다른 인간을 죽음으로 내몬 도시재개발업자들의 욕망을 우리는 보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욕망의 극대화로서의 종교는 역사 속에서 제도와 의식, 율법 등을 만들어 이제는 오히려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등장하게 됩니다.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종교인들이 그 종교 때문에 피폐한 삶을 사는지 보아서 알 것입니다. 그래서 제 후배 중 한명은 제게 교회보다 술집 많은 것이 더 낫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술집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반면 교회는 인간의 정신을 망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요즘 비종교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저 친구는 교회는 다니는데 참 사람은 괜찮아. 기독교인인데도 괜찮은 사람이라 말이지. 허 참.” 

[참 인간]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이제 인간다운 인간을 말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에 있다면 어차피 인간이 하느님을 들먹이면서 하는 모든 말 곧 신학이라든지, 신앙고백적 언어는 사실 모두 인간의 말일 뿐이라는 것을 요한은 깨달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요한은 새로운 창조이야기인 요한복음서를 쓰면서 거꾸로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을 기억해 냅니다. 요한복음서 10장 3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고 불렀다. 성경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10:35). 오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려 봅시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요한은 인간의 존재를 새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인간은 욕망 덩어리일 뿐인가? 요한은 예수라는 한 인간을 통해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신의 가능성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자신의 공동체 속에서 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타인을 이용해 먹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간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종과 여인과 제자에게 군림하며 부려먹는 주인과 남자와 선생이 있는 반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발을 씻기는 친구도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13장). 심지어 친구를 위하여 목숨도 버리는 그런 사랑도 있음을 말합니다(15:13).

욕망에 휘둘리며 타인에 의존적인 인간이 아닌 참된 것에 주체적으로 서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웃 종교인 불교의 선가(禪家)에는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고, 스승(祖師)을 만나거든 스승을 죽여라.”(殺佛殺祖) 부처에게 의존하고 스승에게 의존하는 마음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인간의 신성을 말하기 위해 하느님의 인간성 즉 인간이 되신 하느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고귀한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땅으로 내려오신 하느님의 자기 비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공동체는 신앙의 성숙을 위해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이나 메시아로만 인식했던 초기의 제자들에 비해 참된 삶, 영생이 무엇인가를 물었던 니고데모처럼 정치사회적 안정만을 통한 행복추구보다 더 고차원적 삶, 위로부터 거듭나는 얼로 가득하게 솟아나는, 다석 유영모 선생의 언어로는 얼나로 솟나는 삶을 고민합니다. 물로 씻어내는 정화의식을 통해 지은 죄를 용서받고, 다시 죄를 짓고 용서받는 죄의 순환을 끊고 사랑과 기쁨 가득한 혼인잔치처럼 축제를 통해 적극적인 선을 이루려고 합니다. 가나의 포도주 기적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상징하는 성만찬 의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이며 진정한 참된 하늘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고 자신을 고쳐준 사람을 예언자와 구원자로 부르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완전히 썩어 부패한 죽음의 동굴에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을 말합니다. 베드로로 대표되는 사도계 공동체들이 중시했던 조직과 규칙, 제도와 종교의식을 뛰어넘어 모든 이에게 평화와 화해와 유연성을 주는 자유로운 성령의 바람을 말합니다. 성령의 바람은 각 개인의 마음속에서 솔솔솔 예기치 못하게 불어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에 의하면, 이전에는 돌 판에 새겨진 율법을 따라야 했지만 앞으로는 마음 판에 직접 하느님께서 새겨놓은 그 음성을 따릅니다. 그래서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하느님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예레미야 31:34). 이것이 새로운 약속이고 우리가 제2성서를 신약(新約)이라고 부르게 된 경위입니다. 그래서 거대한 성전 건물을 때려 부숴도 참 성전인 양심은 사흘 만에 살아납니다.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육해공군은 때려눕힐 수 있지만 한 인간의 뜻은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論語』 「子罕」 25.).

[자유인으로 사는 것!]

홍근수 목사님의 파송사는 향린교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고, 홍 목사님은 향린을 떠나시며 은퇴설교의 제목으로 이 파송사를 선택하였습니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루터의 책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자유인이다’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시면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인간이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은 곧 하느님으로 산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적 자유를 가지고 무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신 것처럼 인간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녹아들어있는 유교(儒敎)에서는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엄청난 수행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자유란 사변이성적인 지식과 경험 축적적인 지식이 쌓여서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황에 꼭 들어맞는 적실한 행동이 나오는 것(不思而得, 不勉而中)을 말합니다. 공자는 그의 나이 70이 되어서야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從心所慾不踰矩). 유교의 길은 사람사이의 관계(禮)를 바르게 설정하기 위해 개인의 인문학적 수양(仁)을 강조하는 윤리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불교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일어난다는 깨달음 즉 연기(緣起)를 통해 일체의 집착과 탐욕에서 해방되는 자유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이 사건이 저 사건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는 같은 것의 양면일 뿐, 인간의 단견으로 구별 짓고 차별을 두는 것은 모두 깨닫지 못한 무지의 소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고타마 싯달타는 보리수 나무 아래서 이 모든 것을 깨닫고 깨달은 자, 즉 붓다가 되어 열반적정의 경지에 들게 됩니다. 불교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을 직시함으로써 참 자유를 누리는 깊고 넓은 심리학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럼 우리의 주인공 요한은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나요? 진정한 자유를 맛보고 주체적으로 서는 인간이 되기 위해 요한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서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34-35) 요한공동체 내에는 세례요한을 스승으로 모셨고, 예수도 그의 계승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적통을 중시하는 사람들, 이방인의 대표였던 사마리아인들, 유대교 회당에 여전히 적을 두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숨기며 눈치를 보는 사람들, 회당을 박차고 나와 떳떳하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강경파들, 베드로로 대표되는 조직과 제도를 중시하는 사도계 제자들, 그리고 애제자를 통해 예수의 이야기를 전수받았던 이들, 예수의 죽음 이후 부활한 예수를 만져보지 않고는 믿기 어렵다는 합리주의자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자본으로 덧칠한 거대 로마제국의 맘몬신이었고, 시시 때때로 맘몬의 사탄적 세력은 로마제국의 조직과 권력을 이용해 공동체를 위협하고 인권을 유린하였습니다.

내적으로 분열의 소지가 높았고, 외부에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없애려는 사탄의 세력이 분기탱천할 때, 요한공동체는 “서로 사랑”함으로 인간의 자유를 지키고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그리려 했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 말하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사랑의 이름으로 자칫하면 자신의 기준과 방식대로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방식을 말하기도 합니다(己所不欲, 勿施於人.). 그러나 유교에서 말하는 적극적 윤리의 길은 생존하기조차 버거운 이들, 지적인 배움에 동참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험난한 길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심리적 깨달음은 가족과 사회적 책무와 현실세계의 복잡한 관계를 몸으로 체험해야 하는 고달픈 삶속에서는 너무도 요원한 길이었습니다.

요한은 좀 부족한 사람들끼리라도 서로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의 약점과 아쉬운 부분을 이해하고 채워준다면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서고, 또 그 사랑 안에서 참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인간, 그리고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그 곳에 하느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기도하신대로 하느님이 예수 안에, 예수가 하느님 안에 있는 것처럼 요한공동체도 하느님과 예수 안에 있어 서로 완전히 하나 되는 길이라 믿었던 것입니다(17:20-26).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세상에 하느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일을 요한공동체는 해 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한국의 대다수의 교인이 그러한 것처럼 하느님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이 세상에서도 모자라 저 세상의 공간도 차지하려는 욕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향린교회에서 진행되는 모든 활동과 종교적, 대사회적 행위를 통해 유익을 얻고 그것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진정한 생명이 있는지, 성숙이 있는지, 서로 사랑이 있는지, 주체적 인간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자유가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제 성인이고 향린공동체도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기 죽음의 길과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자신을 살리며 지구공동체를 죽이는 길과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온생명을 살리는 길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죽어 많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12:24). 여러분들이 예수의 말씀에 주체적으로 선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셨던 그분에게 제대로 배웠다면,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세상조차도 사랑하셔서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땅 위를 걸어 다니는 하느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가 악합니다. 사탄의 세력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악법이 우리를 조여오고 있습니다. 사순절의 기간 동안 예상치 못한 고난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16:33) 그러니 너희도 세상을 이길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너희는 내가 없어도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면 이제는 너희가 땅위를 걸어 다니는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신의 친구가 되기 위해 인간의 친구가 되십시오.
사유하는 신앙인, 기도하는 노동자로 거듭 나십시오.
인간의 불완전함을 기억하되,
새 하늘 새 땅을 가슴에 품고, 노력하는 인간이 되십시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세상을 이기신 주님처럼 세상과 싸워 이기십시오.

ⓒ 웹진 <제3시대>

  1. 향린 40년사 87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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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 네번째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
- 잃은 사람들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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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교회의 사명은 어디에 있을까요? 교회의 존재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느님 나라의 운동을 지속하는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고 “하느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라고 한 것이고, 이들 모두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단기선교”라 이름 붙인 한국교회의 선교 풍조는 외국에 가서 적당히 관광을 즐기면서 형식적인 전도를 하는 것이거나 배타적 신앙관 속에서 타문화에 대한 이해나 존중 없이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심히 무례한 종교적 폭력을 가하는 것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선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잘못된 방식의 선교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점은 실제로 많은 교회가 제 몸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구제와 세상을 향한 봉사도 실은 제 몸을 불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되기에 교회가 존재해야할 본래의 모습은 자꾸 사라져 가는 듯 보여 안타깝기만 한 상태입니다. 하느님 나라 운동을 위해 최소한의 생존은 해야 하고, 바울 사도의 말대로 일꾼이 삯을 받을 수도 있지만 끝까지 자비량 선교를 하였던 사도들의 뜻을 살펴볼 때 양적 교회 성장에 매몰된 한국교회의 모습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께서 그리하셨듯이 타인을 위한 존재로,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아야 합니다. 그 정신에 비추어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교회는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때만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참으로 역설적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가 자신을 내어 줌으로 부활하셨듯이 말이죠.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이들의 모임인 각 교회가 처한 상황에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며 참된 선교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 것이 이번 하늘뜻펴기입니다.


향린의 창립정신과 복음서(3)
향린의 선교 - 잃은 사람들을 찾아
요나 4, 9- 11 ; 루가복음 19, 1-10

작년 한 해 향린교회는 선교비로 1억 6천만원 가량 사용하였고, 선교비는 총 결산의 약 28퍼센트의 구성비율이었습니다. 1994년 10월 교회갱신 실천결의문의 13번째 과제인 ‘적어도 예산의 30% 정도를 선교비에 할당하도록 한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향린교회가 선교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지난 15년 동안 남북화해와 동북아 평화, 한미군사동맹 철회를 위한 평화통일 선교,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해치는 전쟁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성차별, 소수자 차별반대 등의 인권선교, 농촌교회와의 농산물 직거래, 생태기행과 아나바다 운동 등의 생명환경 선교, 독거노인 목욕봉사, 반찬 만들기, 노숙인과 도시빈민을 위한 복지선교, 민주화에 역행하는 제도와 정책에 맞서 싸우고 교회의 비민주적 구조를 바꾸는 민주화 선교, 민중교회 지원, 1인 1사회단체 후원, NGO 기구들, 이웃종교들과 연대하는 에큐메니칼 선교를 해왔습니다. 목회자와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고, 교회의 예결산을 공개하고 있으며 더 투명한 재정운영을 위해 지금 복식부기 방식을 연구 중입니다. 또한 지역사회 발전과 교회의 지역사회 봉사의 일환으로 교회 건물과 시설을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출석교인 500명이 넘으면 분가하도록 하는 분가선교는 아직 논의 중에 있고, 장기적으로 사회선교센터를 세우는 것도 유급 사회선교간사를 두어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사회/선교부가 준비하고 있는 향린선교 정책 토론회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어린이/청소년 교우를 합쳐 700명이 넘는 우리교회의 선교활동을 보면 정말 다양하고도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1992년 공동의회 자료집부터 2009년 공동의회 자료집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두께가 점점 두꺼워 지고 있음을 볼 때, 향린의 선교와 활동이 더욱 다양하고 활발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마도 처음 교회를 창립했던 이들의 입체적 선교, 또는 입체적 교회라는 뜻이 지금까지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입체적 선교/교회라는 창립정신은 교인들의 삶 전체를 선교에 헌신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믿음과 생활을 일치시키며 생활 속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교의 전선에 나서게 한다는 말입니다.[각주:1] 비록 향린교회 초기와 같이 교인 전체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자기 직업을 통해서 선교하는 일은 교인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복잡하고 다원화 된 이 시대에 쉽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향린교회의 교인이 되어서 전 삶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정신은 오늘날도 살아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선교활동을 위해 향린교회에서는 11개 신도회, 8개의 각부위원회, 7개의 평화나눔공동체, 3개의 소모임, 구역모임 7개, 선교부 산하 5개 위원회, 사회부 산하 4개 위원회, 예배부 산하 3개 부서, 교육부 산하 5개 부서, 장기발전위원회, 당회, 공동의회, 제직회, 목회운영위원회, 향린공동체협의회 등등 59개의 모임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떤 모임은 1년에 한번 모이지만 어떤 모임은 월 1회, 또는 매주 모이는 모임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어떤 새 교우가 ‘미친 척하고 성경말씀대로 살아본 1년’의 저자 A. J. 제이콥스처럼 향린의 모든 모임에 참석해보겠다고 큰마음을 먹는다면 한 10년은 꾸준히 다녀야 향린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루가복음을 탄생시킨 공동체는 마르코 공동체보다는 훨씬 규모가 크고 다양성을 담보하던 공동체였습니다. 루가는 열두 제자뿐 아니라(6:13 이하) 70인의 제자를 언급하고 있으며(10:1 이하) 이들이 모두 많은 제자들 가운데서 뽑힌 대표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표들만 모두 82명이었으니 루가공동체는 아마도 59개의 모임이 있는 향린교회보다 더 큰 교회였을지 모릅니다. 전쟁의 급박한 상황에서 이방인 지역의 한 변두리에 모여 작은 소종파를 이루었던 마르코 공동체와는 달리 루가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작은 울타리를 벗어난, 어쩌면 로마에 터를 닦고 있었던 보다 더 포괄적이고 더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공동체였습니다. 그 공동체 안에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섞여 있었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있었으며, 열두 사도와 칠십인 대표와 같은 지도자들과 라오스라고 불리는 평신도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또한 루가복음서 저자는 경건한 유대전통의 그리스도교 계열에서 만든 예수의 어록을 읽었고, 이방인과 소외된 계층이 그리는 예수의 복음이야기인 마르코 복음서도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이전에 자기가 들었던 예수 이야기와 이미 읽은 모든 이야기들을 가지고 처음부터 순서대로 정확히 정리하여 한 로마관료에게 보냅니다(루가 1:3).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이제 더 이상 “어느 한 구석”(행 26:26)에서 일어난 불분명한 스캔들이 아니라 성령의 힘에 의해 모든 사회 계층을 꿰뚫고 들어가며 다른 민족, 인종 및 계층의 벽을 뒤흔드는 생명력 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가는 제일 처음 유대인인 세례요한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이야기로 끝을 냅니다. 우리는 루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이 같은 저자의 것임을 이미 알고 있고, 그래서 신학자들은 루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붙여서 루가-행전이라고도 말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 사회에 하느님 나라 운동이 펼쳐진 것처럼, 이제 이후 제자들과 평신도들을 통해 이방 세계가 변화합니다. 가난한 자들의 해방과 평등 경험에서 비롯된 이 공동체에 부자들이 동참하고, 로마 사회에 상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떼거리들이라는 의심을 받았던 상태에서 이 사회에 가치 있는 요소를 제공하는 공동체로 탈바꿈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하여 이제 루가는 예수 사후 그 운동을 이은 자신들의 선교를 통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온 세계에 하느님 나라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말하는 하느님 나라는 로마시민들이 좋은 황제로 기억했던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가 만든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보다 훨씬 더 낳은 평화를 만드는 나라임을 증명해보이고자 했습니다.

선교를 교회의 핵심으로 삼는 향린교회와 자신들의 선교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갔던 루가 공동체는 여러 면에서 아주 닮아 있습니다. 향린교회 구성원들이 교양 있고 주체적 안목을 가진 신앙인들인 것처럼 루가 공동체도 중상류층 이상의 교양인들이 쓰는 헬라어를 쓸 줄 알면서 주변 세계와 자신들을 성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사회적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해석을 하고, 그에 따른 선교를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 향린의 선교를 되짚어 보면서 루가 공동체의 경험을 살피려고 하는 것입니다.

실천신학자들은 흔히 교회의 역할을 보통 복음의 선포인 케리그마, 교육, 봉사, 친교 이렇게 네 가지로 봅니다. 이 중 ‘봉사’로 번역된 ‘디아코니아’는 섬김을 뜻하는 단어로 흔히 일반교회에서는 교회 내 봉사를 뜻하는 것으로 말들 하지만, 실상은 세상을 향한 봉사와 섬김을 뜻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물론 세상을 향한 선교의 기지가 되기 위해 교회 내적인 것도 잘 추슬러야 함은 당연합니다. 교회가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인식이 필요하고 자신들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며 백번 맞붙어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손자의 경구처럼 외부와 내부 모두를 살필 줄 알아야 적절한 선교가 가능한 것입니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쌓아온 민주정신을 이렇게 저렇게 실험하면서 실수도 하고 또 부족하지만 나름의 진보를 이뤄냈습니다. 그 10년을 ‘잃어버린 십년’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정권을 잡은 지금, 역사는 오히려 거꾸로 흘러 후퇴해 가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 국민들의 잘못이 큽니다. 투표권을 가진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가진 게 많고 그럴 듯한 학벌이 있고 힘이 있어 보이는 부자들이 나라 일을 잘 볼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일부는 돈이면 다된다는 생각에 물들어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세계의 경제적 위기가 갈수록 심해지는 이 때에, 정부와 여당은 계속해서 5~20%만을 위한 정책을 펴면서 나머지 80-95%가 죽어나가도 관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중산층들조차도 미국시민이 되려고 미국으로 가서 애를 낳는 원정출산이 유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정부는 중산층에 들지 못하는 가난하고 어려운 국민들에게는 관심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때리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1980년에는 전쟁에서 외국의 침략에 맞서 자국민을 보호해야할 군인이 국민을 폭도로 몰아 죽이더니, 2009년에는 국민을 보호하고 생명을 지켜줘야 할 경찰이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 죽였습니다.

머리 속에 삽만 들은 지도자가 국정 운용의 기조를 ‘실용주의’로 잡아 성과와 효율만 내세우고, 군인이 정권을 잡고 무식하게 독재를 펼치던 시절의 ‘하면 된다’라는 군대식 사고로 국정을 운영하려고 하기에 모든 정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을 경쟁의 소굴로 몰아넣고, 언론과 한 통속이 되어 나쁜 거짓말을 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이라도 하면 사진 찍고 누명 씌워 끝까지 잡아들여 감옥에 가둡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못하고,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그렇기에 조세희 작가는 오늘날 한국에서 행복해 하는 자는 도둑 아니면, 바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린 지난 70-80년대를 통해서 독재자의 말로를 보았고, 그들의 권력이 누구의 피땀을 착취한 것인지 온 몸으로 느끼고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렇게 시대를 역행하는 이 시기에 권좌에 있는 자들의 권력을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루가공동체는 로마대제국 안에 살고 있지만 로마의 황제가 마치 자신들이 신인 양 제 맘대로 하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루가복음서가 쓰이기 전의 로마를 다스리던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자신을 “주와 하나님”(Dominus et Deus)으로 부르게 한 첫 번째 로마황제였는데, 유대인의 세금을 따로 거두기 위해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90세 노인조차도 바지를 내리고 할례를 받았는지 조사하는 악독하고 교만한 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로마의 귀족들에게 암살당하였고, 루가는 이렇게 교만한 황제의 죽음 속에서 “권세 있는 자를 왕좌에서 끌어내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루가 1:51-52) 하느님의 뜻을 보았습니다. 로마가 워낙 거대한 권력이기에 직접적인 정면대결은 못했지만 예수의 시험이야기에서 마귀를 로마황제의 모습으로 상징화하고, 사도행전 12장 20절 이하에서는 헤롯 아그립바가 자신을 신격화 시켰기 때문에 죽었다고 말합니다. 루가공동체는 정치적 권력이 신성화되는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공격합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셔서 그 어른을 존중하고 그 어른의 삶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며칠 동안 명동성당에서 퇴계로까지 줄을 서서 조문하였습니다만, 그의 삶을 진정으로 되새기는 길은 그분을 성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와 역사를 위해 촛불을 들거나 남을 위해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눈을 기증하시고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이 장기기증을 했다는 데, 그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되살렸던 예수의 불꽃을 계속해서 되살리는 길이 진정한 추모입니다. 루가공동체는 사도행전을 남기면서 바울의 순교를 적지 않습니다. 그가 우상처럼 떠받들어질까 염려한 것입니다.[각주:2] 오히려 하느님 나라 운동이 왕성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으로 사도행전이 마치는 뜻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산헤드린 앞에서 선교 금지를 당한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들어 봅시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겠는지 한 번 판단해 보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행 4:19-20) 이렇게 말하고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사도들과 함께 모여 기도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주님, 주께서는 우리의 조상이며 주님의 종인 다윗의 입을 빌려 성령의 힘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방인들이 떠들어 대고 뭇 백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주님을 거슬러, 그의 그리스도를 거슬러 세상의 왕들이 들고 일어나고 군주들이 함께 작당하였다.’”(행 4:24-26) 후에 다시 산헤드린이 이들을 호출하자 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행 5:29)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선교를 실행하려고 하는 향린교회는 이 정부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른 교회들은 그렇지 않은데 향린교회는 왜 촛불 들고 거리로 나갑니까? 다른 교회들은 장로님이 대통령 되셨다고 한 마음이 되어 좋아하는데 향린교회는 어찌하여 설교시간마다 MB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합니까? 다른 교회들은 은혜로운 복음성가와 찬송가로 노래하고 교회도 크게 짓고 목회자들을 많이 두어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데 왜 향린교회는 좁고 낡은 건물에서 어려운 국악찬송을 부르게 하고 평신도들을 설교까지 하게 하는 불편함을 감수합니까? 그것은 사람보다 하느님께 좀 더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보다 하느님의 말을 듣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바른 길로 가고, 그리스도교가 예언자적 종교가 되어 사회에 정의의 외침이 살아나게 하기 위해 향린교회는 화살촉과 같은 역할 즉, 민족문화의 수용, 교회 민주화, 그리고 평화와 통일, 생명과 인권선교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더욱 투철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해 내야 합니다. 향린교회의 존재의의는 바로 이러한 선교적 사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향린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넓고 큰 품을 가져야 합니다. 루가는 예수와 함께 처형되는 두 강도를 구별합니다. 한 강도는 로마병사처럼 예수를 조롱합니다만 다른 강도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예수의 무죄를 변호하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런 장면을 통해 루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회심하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줍니다(루가 23:40-43). 심지어 그리스도교를 거절하는 사람도 루가에게 있어서는 잠재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혹시 압니까? 누가 압니까? 이명박 장로님도 회개하실지~.

루가는 바리새인들을 구별해서 볼 줄 압니다. 루가복음서의 전통적인 논쟁에서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바리새인들은 위선자로 그려지고 있지만(루가 11:37-54), 루가는 그리스도교를 지지하는 바리새인도 알고 있습니다(행 5:35 이하). 우리가 생각하는 답답한 보수적인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 중에서도, 또 기복적인 신앙관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분명 향린의 정신을 흠모하고 거기에 따르고자 하는 분들이 많이 있고 생길 것입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 마을에 못 들어오게 하지만(루가 9:51이하), 한 사마리아인은 이웃 사랑(루가 10:25-37)과 감사하는 신앙(루가 17:11-19)의 모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비판하는 대형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분들도 계시고, 하느님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감사함으로 자진해서 나서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싸잡아 비판하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잃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루가는 정부와 권력자들을 묘사할 때도 구분합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요한을 죽이는 악한 놈일 뿐이고(루가 3:19 이하), 예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루가 13:31 이하)일 뿐이고,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임을 알면서도 사형집행을 하는 폭군(루가 23:4, 14, 22)일 뿐이지만, 총독 서기오 바울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접하고(행 13:4-12)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바울에 의해 헤롯 아그립바 2세는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향린교회의 구성원들 중에는 상당한 학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근대화 과정을 겪지 못한 탓에, 성공한 모든 이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된 것으로 알고 그들을 일거에 부정적으로 판단해 버리기 쉽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다는 것을 향린교회에 오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청년은 자기 친구를 교회에 데리고 오면서 “존경할 만한 어른을 보려거든 우리교회에 와 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가진 전문성과 성실성, 바른 생각, 진정한 실력으로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관료가 되어야 하고 또 그러한 지도자를 키워야 합니다. 루가 공동체가 그러했던 것 같이 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 향린교회의 선교 현실이고 가능성이고 잠재성입니다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선교의 핵심은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루가는 예수님의 선교를 단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 모두가 함께 읽은 말씀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이 한마디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에토스인 예수 그리스도 휴머니즘을 발견합니다. 예수는 가난한 이들, 죄인들 그리고 비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간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는 잃은 사람들 당시에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 문화적으로 소외당하고, 때로는 여론에 의해 매도당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나눕니다. 우리는 잃은 은전의 비유, 잃은 양의 비유, 그리고 잃은 아들의 비유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 것인지, 선교의 핵심이 무엇인지, 방법은 어때야 하는지 정확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루가-행전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세례요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으라”(루가 3:11)고 말합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후원하라고 소수의 부유한 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세례요한의 말을 듣는 이들은 ‘오클로이’ 즉 가난한 민중들입니다. 이 말은 속옷 두 벌을 가지고 두 사람이 공유하며, 먹을 것도 여러 사람이 함께 소유하라는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함께 서로 어깨를 기대어야만 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루가-행전의 후반부의 주인공인 바울은 에페소의 장로들에게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나의 이 두 손으로 일해서 장만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도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명심하도록 언제나 본을 보여 왔습니다.”(행 20:33-35) 이 말씀은 부자들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대에는 자신이 일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면 부자로 여겨졌습니다. 이 고별연설은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자신의 경제적 독립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교한 것입니다. 바울은 경제적 독립보다 더 중요한 무엇을 위해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생계유지를 할 수 있었으나, 그 권리를 희생합니다.  즉 그는 부양받기 위하여 일하기보다, 오히려 주기 위해서 즉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일하였고, 그럴 때만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씀이 의미가 있게 됩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욥바와 다비다는 과부들을 위해 옷을 지음으로써(행 9:36-43) 좋은 모범을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단순히 돈 많은 세관장이라는 이유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식민지 지배 상황에서 세리들은 로마의 중개인 역할을 하면서 폭리를 취하기 일쑤였기에 세관의 우두머리라면 그런 혐의에 노출될 확률이 거의 100%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자캐오가 남을 속여먹었다는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8절에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을 갚아주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오히려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부자였고 세관장이었기에 매도를 당했던 자캐오가 오늘 자신의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구원을 얻었고, 예수는 그동안 소외된 삶을 살았던 자캐오를 방문하고 그와 함께 먹고 마시고 그로 하여금 나눔의 기쁨을 맛보게 함으로써 살 맛 나게 만들어 줍니다.

세례요한의 충고, 바울의 연설, 자캐오 이야기가 이루어 낸 선교의 결과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함께 수평적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공산주의(Communism of Love)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나누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남의 노동에 의해 자신의 경제생활이 가능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부자 될 권리를 포기하고 남에게 주기 위해 노동합니다. 그리고 부자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줌으로써 모두가 구원을 이루는 선교에 동참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명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하느님 나라의 가족이 됩니다. 이것이 루가가 꿈꾸던 선교였고 이상이자 목표였던 것입니다. 

개개인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돕는 실존적 차원에서의 선교이든지,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게만 고통을 지우는 구조적 모순을 깨뜨리는 선교이든지 이 모두가 지향하는 바는 바로 모두가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일 것입니다. 향린교회에 오신 분들이라면 모두 그런 세상을 꿈꾸며 그런 세상을 이루도록 도전할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청남 수련회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해 함께 공부했던 것, 지난 주 우석훈 선생을 모시고 강의를 듣고 토론했던 것 모두가 그런 노력의 하나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장기와 재능과 물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각양의 모양대로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 쓰실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땡전뉴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괘종시계가 9시에 가서 “땡”하고 울리면 제일 첫 소식이 전두환 씨의 소식이었기에 땡과 전두환 씨의 성을 따서 땡전뉴스라고 불렀던 것이지요. 땡전뉴스에 나오는 전두환 씨의 호는 “오늘”입니다. 언제나 뉴스에서 오늘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어쩌구 저쩌구 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그의 아내 이순자씨의 호는 다들 아시겠지만 “한편”이었지요. 그럼 이명박 대통령의 호는 무엇일까요? 제가 최근 한겨례 21을 읽고 안 사실인데 이명박 대통령의 호는 “한때”가 아닐까 합니다. 지난 1년간 이명박 대통령이 쏟아낸 말들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도 한 때 기업해봐서 안다.”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로 출발해 최고경영자가 된 터라 태생적으로 노동자 프렌들리다.” “나는 여러분 환경미화원의 대 선배다.” “나도 질문자 나이 때 황학동에서 일용직 노동일을 했다.” “나도 학생 때 학생회장 하면서 데모를 했다.” “가난의 대물림은 끊어야 한다. 내가 산 증인이다.” “나도 한 때는 여러분처럼 노점상인이었다.” “나 자신이 한때 철거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디 가서든지 “나도 한때는”이라는 말을 늘 하고 다닙니다.

우리가 선교의 현장에 서야 할 때 가장 주의할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나도 한 때는 무엇 무엇 해봤다~”. MB처럼 한 때에 무언가 해 봤다고 떠드는 사람은 거의 현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주의해야 할 단어는 “앞으로”입니다. “지금은 좀 어렵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 하겠다.”고 말하는 것! 이것은 과거와 대비해서 지금은 좀 어렵고 미래에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한 때 잃은 사람을 찾아 선교를 했다고 지금 잃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 분명히 말합니다. 지금 잃은 사람을 찾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도 거의 찾아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루가복음 9장 23-24절에서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한번 더 읽겠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 잃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제 목숨을 잃는 사람 즉 미래에 목숨을 잃어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 목숨을 잃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도 “한 때”나 “앞으로”가 아니라 매일 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한 때 십자가를 졌던 사람입니까? 앞으로 질 사람입니까? 아니면 매일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까?

하느님은 요나 같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와 하느냐? 이 땅 조선반도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수백만이 되고, 뭇생명들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하여 이 땅을 아끼지 않겠느냐?”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돈에 휘둘리지 말고 오히려 불의한 재물로 사람을 살리시오.
가난하더라도 떳떳함을 잃지 말고
부자가 되더라도 하느님 두려운 줄 아십시오.
고통 속에서도 넘치는 평화를 맛보고
눈물 속에서도 그리운 자유를 누리시오.
매일 그대들의 자리에서 예쁜 사람꽃 하나 피어나게 하시오!


ⓒ 웹진 <제3시대>


  1. 『향린40년사』, 79p. [본문으로]
  2. 사도행전 14:11이하에서 군증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생각했을 때, 바울과 바나바가 당황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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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 세번째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
- 기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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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지난 번 글에 이어 사복음서 연속 하늘뜻펴기의 두 번째 글을 드립니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벌이신 사건들을 잊지 못해 그리고 그 사건들을 재현하면서 쓰인 글들입니다. 참 사람 예수를 만난 이들의 신앙고백이지요. 개신교 전통이 만인사제설을 굳건한 뿌리로 가지고 있지만 예수는 누구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장벽도 없음을 설파하신 분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람인 이유만으로 하느님과 만날 수 있고, 사람은 사람인 이유만으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에 하나는 소수의 남성 즉 목회자나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 중심의 교회운영입니다. 목회자든 당회든 교회든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로 서면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런 공로나 중재 없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조직은 서로 사랑하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들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교인 모두가 주체적 신앙을 갖고 책임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평신도 교회의 정신으로 세워졌고 이미 목회자를 둔 지금에서도 그 정신을 이으려고 나름 노력합니다. 그 노력에 불을 질러 더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저는 마르코 공동체의 신앙고백들을 중심으로 두 번째 하늘뜻펴기(설교)를 했습니다. 많은 평신도들께서 그리고 목회자들께서도 누구나 하느님의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기억하면서 교회 내의 다양한 목소리가 어울려 하느님 나라의 멋진 하모니를 어떻게 일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향린의 창립정신과 복음서(2)
기쁜 소식
출애굽기 1, 15-21 ; 마르코 복음 7, 24-30

인터넷 포털싸이트에 들어가서 향린교회를 쳐 보면 여러 글과 이미지가 뜹니다만 그 중 하나인 위키백과사전에서는 ‘향린교회’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로 알려질 만큼 유명한 교회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이며 서울 중구 을지로2가에 있다. 초창기의 엄격한 모습에서는 점차 이탈했으나, 여전히 활발한 사회 참여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민주적인 교회 운영 방식으로 유명하다.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고, 국악예배 보급에도 앞장서 왔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사회와 한국교계에 향린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알려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평가는 한편으로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충고이기도 합니다. 초창기의 엄격한 모습에서 점차 이탈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향린교회가 더 이상 평신도 교회/독립교회/공동체생활을 하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그러하지만 공동체생활과 평신도교회 그리고 교권의 다툼과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교회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화두로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시간에 부르는 국악찬송가 217장 향린희년 신앙고백은 ‘하느님이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노래하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남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몸과 맘이고, 이 땅의 향기로운 이웃이며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는 생명의 숨결’입니다. 

‘향린희년 신앙고백’의 토대가 된 1993년의 “향린교회 신앙고백 선언”의 교회 항목을 보면 이렇습니다. “교회는 또한 예수의 복음에 의해 해방된 사람들의 해방공동체이고, 공동체 내의 모든 구성원이 자유하고 평등한 삶을 누리는 민주 공동체요 정의로운 평화 공동체이다. 부활한 예수의 몸인 교회 안에는 몸이 활동하도록 하기 위한 여러 지체들이 존재한다. 이 모든 지체들의 직무와 기능은 각기 다르지만, 각 지체들 간의 관계는 그 지위에 있어 우열이 있지도 않고, 어느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 예속되지도 않는다. 또한 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구성원들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평등하고 서로 함께 조화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며, 함께 하느님을 예배하고, 서로를 위하고 봉사하며,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이 고백문은 향린의 비전이며, 목표이고 지금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는 현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직(聖職)”이 주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자신의 생활터전인 직장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와 사회에서 예수의 삶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직분에 관계없이 모두 성직자일 것입니다. 또한 부활한 예수의 몸인 교회가 원활하게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면 목회자 또한 신학 쪽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평신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6년간의 조헌정 목사님의 목회활동의 핵심을 한마디로 하라고 한다면 부교역자인 저는 “평신도 목회를 위한 노력”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평신도 설교, 공동축도는 한국교회에서 보기 드문 것이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옆에 자기의 십자가 달기, 매월 첫 주 십자가를 상징하는 후드를 전교인이 목에 걸고 예배하기, 평신도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평화 나눔 작은 공동체와 각종 소모임들, 매주 목요일의 평화기도회 등은 모두 평신도 목회의 일환입니다. 각신도회와 부서대표, 그리고 당회와 목회실이 함께 모이는 목회운영위원회를 통해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 또한 평신도 목회를 통한 교회 민주화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평신도 교회를 향한 조 목사님의 목회철학은 그가 향린교회에 부임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3년 6월 15일 성령강림절 두 번째 예배이자 3대 담임목사 취임예배 설교 때 했던 조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3년은 향린교회가 희년을 맞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50년이기에 희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를 세우신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을 다시금 세우기에 희년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이 교회가 명동 입구에 명동성당 바로 앞에 위치한 상징적 의미가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은 신교와 더불어 동반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향하는 목회의 방향은 결국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교황으로부터 시작하는 수직적인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향린교회는 이에 반해 수평적인 체계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이 둘이 함께 만나 십자가를 이룹니다. 명동성당이 한국 기독교의 절반인 가톨릭을 대표하는 성당이라면, 우리 향린교회는 또 다른 절반인 프로테스탄트를 대표하는 교회라고 믿습니다. 혹자는 이 말을 독선 내지 교만, 그래 착각은 자유라고 비난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향린교회가 그러한 한국 교회의 사회사적인 위치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안병무 선생님이 평신도들이 설교에 참여함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초대교회 전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평신도가 주인이 되는 목회, 그리고 홍근수 목사님이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함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저 성전의 벽을 허물라는 예수님의 예언자적인 외침 속에서 교회 자체가 사회 안에서 평신도로 존재하고자 했던 또 다른 의미에서의 평신도 목회라면 저 또한 여기에 기초한 제3의 평신도 목회로 나아가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 제3의 평신도 목회가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는 여러분과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는 기존의 집회의 성격과는 많이 다르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특히 핵심이 되었던 것은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의 경험을 통해 대표권 없는 대의정치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성을 띠지 않고 일부 기득권자들의 이익집단이 된 것을 본 것입니다. 시민 모두가 주인이 되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꿈이 인터넷이나 통신의 발달로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 때에, 평신도의 주체성 강화를 통한 수평적 교회 구조를 만들고 누구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교회 공동체를 일구는 과제는 오늘의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수직적인 구조는 봉건적이고 위계질서적인 중세 사회의 재현이었고, 개신교의 장로들을 통한 회의제도는 근대의 대의정치의 구조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계획되었던 당회가 연기되어서 저는 희년청년회 모임에 잠시 들렀습니다. 3층 예배실에서는 평신도들의 모임인 정의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의 총회와 평신도아카데미 강의 모음집인 “평신도, 성전을 헐다”의 출판기념회가 이어지고 있었고, 희년청년회 모임 공간에서는 향린교회 예배에 대한 평신도들의 논의가 활발하게 오가고 있었습니다. 논의의 발단은 지금 곡조를 붙여서 부르고 있는 교독문에 관한 것이었지만 예배음악과 예배형식의 다양화로 확대되었습니다. 팽팽한 여러 의견들이 오고 가는 중에 한 새 교우가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이 논의 자체가 무척 새롭습니다. 평신도들이 예배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낯설어요. 예배에 대해 그렇게 세밀히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저 주어져 있는 대로 해 오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향린교회 정관에 의하면 예배형식에 관한 사항은 당회의 소관이지만, 우리교회는 예배부가 따로 있어 주일예배의 형식에 관해서 예배부와 의논하고, 특히 음악적인 부분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야 하기에 음악위원회와 함께 신중하게 논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주체는 교인 전부이므로 누구나 예배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또 필요하다면 목회운영위원회에 예배에 대한 좋은 안건을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향린교회는 평신도 교회의 정신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더 나은 모습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급진적으로 평신도 교회의 정신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평신도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정답은 목회자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조 목사님은 30명씩 분가해서 10개의 향린교회를 만들라고 설교한 적도 있었지요. 만약에 향린교회에 목회자가 없고, 을지로 2가에 위치한 이 건물도 사라진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임으로서의 교회 즉 건물도 없고 목회자도 없는 향린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 사역을 해 나갈까요?

서력 기원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의 거룩한 성소를 잃고 혼란에 빠집니다.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자 신앙의 중심지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성전이 사라졌으니 이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위기가 시작됩니다. 유대교 갱신 운동으로 시작되었던 예수 운동의 한 분파는 성전의 멸망에 당황하지 않고 전쟁을 피해 북쪽으로 자리를 옮겨 그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듭니다. 세례예식을 통해 기존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과 함께 각 가정에 모여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기억하며 빵과 포도주를 나눕니다. 그러나 새로 시작된 이 종교 또한 위기가 닥칩니다. 44년 교회의 세 기둥 중 하나이고 예수의 제자이자 사도 요한의 형제였던 야고보가 유대 서기관과 손잡고 있는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처형당합니다. 이때 베드로도 잡혔지만 하느님의 은혜로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이 일로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베드로의 권위는 떨어지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됩니다만 예수의 동생 야고보도 62년에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해 돌로 맞아 죽습니다. 60년대 후반에는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 가장 큰 지도력을 발휘했던 베드로마저 순교하고 그리스도교 교회는 지도자들을 모두 상실하는 상황이 되어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지게 됩니다. 

전쟁의 위기 상황이고, 지도자도 없이, 유리걸식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예수를 따라 제자가 되겠다는 마르코 공동체는 새로운 방식의 가족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교회를 만들어 갑니다. 이 새로운 가족공동체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데 이상하게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구절인 마르코 3장 35절은 이러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예수는 영생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누고 나서 나를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갑니다. 이 모습을 본 베드로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에서도 자세히 보면 아버지가 빠져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이것은 마르코 공동체가 처한 상황과 관계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태동한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제자단이었던 사도계 공동체들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마저도 그들에게 자신의 선교에 대해 허락을 맡아야 했으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이 사도계 공동체는 예수님의 평등한 관계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되었을 때, 야고보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고, 이들이 유대의 정결 예법을 지킬 것을 강요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절 이하에 보면 베드로와 바나바를 포함하는 유대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출신 기독교인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있는데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와서 이것을 비난했고, 베드로가 슬금슬금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피한 것에 대한 바울의 분노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수장이 되면서 유대교의 율법을 준수하는 기독교로 모든 교회를 통일하려고 했고, 야고보의 순교 이후에 예수의 삼촌 시므온이 수장이 되고 이후 도미티안 시대에는 예수의 동생 유다의 두 손자가 통치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가족들이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와야 한다는 근거를 가지고 계속 권력을 가지게 되자 초기 그리스도교 내부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저항과 불신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마르코 복음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12장 35-37절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을 문제 삼고 있고, 3장 20-35절에서는 예수의 가족과 예수의 불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1세기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는 바로 권력의 상징이고 예수 사후 예루살렘 교회가 가부장적 권력의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바울이 죽은 다음에 디모데전후서나 디도서의 기록자들인 바울 2세대들 또한 비슷하게 교회에 직제를 도입하면서 교회는 점차 제도화되어가고, 제도화에서 생기는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자세히 그리고 꼼꼼히 읽어보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열둘의 제자들, 특히 예수께서 수행원처럼 데리고 다녔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얼마나 무지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몰라주고, 하느님 나라 선교에 대해 몰지각한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하느님 나라 운동에 함께 하자고 초청한 이들이고 그 초청에 의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선 사람들임에는 분명하지만 갈수록 그들은 예수의 제자됨의 길에서 멀어집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한 것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받았으나,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들을 먹이는데 실패하고,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를 고치지 못하며, 세상을 향해 산 밑으로 내려가기는 커녕 산위에 좋은 집을 짓자고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나, 열둘 중에 그 길을 따른 남성제자들은 한명도 없습니다. 첫 번째 수난예고에서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가로막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는 호된 꾸지람을 듣고, 계속 되는 수난 예고 속에서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가 왕이 될 때 한자리 차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예수 곁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을 못 오게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막는가 하면, 누가 높은지 다투기 일쑤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열두 남자 중 하나가 예수를 배신합니다. 땀이 피가 되도록 고민하며 괴로워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드리는 예수의 마지막 기도에 함께 해달라는 요청에도 쿨쿨 잠이나 자다가 예수가 잡히자 모두 도망가 버립니다. 끝까지 예수를 따르겠다고 했던 베드로조차도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면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이런 모습이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권력을 추종하고 권력의 시녀가 된 집단의 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행태였던 것입니다. 그럼 권력을 상징하는 아버지를 없애버린 공동체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제가 태동고전연구소에서 사서삼경을 배울 때 한양대 철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선배와 마르코 복음을 함께 읽고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다 공부하고 나서 그 선배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그 선배가 하는 말이 이렀습니다. “여자들이 엄청 나오네. 논어에는 여자가 등장하지 않잖아” 그렇습니다. 논어에는 딱 한번 여인에 관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이렇습니다. “공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와 소인은 가르치기가 어렵다. 친밀하게 대해주면 불손하고, 좀 엄격하게 하면 원망한다”(子曰: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陽貨-25-01)

작년 가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화려한 색체에 언제나 여성이 등장하는 신윤복의 그림을 근거로 신윤복이 여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저는 혹시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는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나친 상상일까요? 마르코 복음서를 만들어낸 공동체는 여성들이 많은 활약을 보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의 사도들은 죽고 그들이 이끌던 공동체들은 유대교의 가부장적 제도와 권력으로 변질되는 상황에서 마르코 공동체에는 평등한 하느님 나라의 밥상공동체를 예수와 함께 준비했던 것을 기억하며 다시금 갈릴리의 예수 운동을 일으키려 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여인은 베드로의 장모입니다. 그는 열병을 앓고 있었고, 예수께서 열병을 고쳐주자 일어나 곧바로 그들을 섬깁니다. 처음 여성은 제일 낮은 자리에서 시중드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주목해 볼 여성은 12년 동안이나 하혈증을 앓았던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당시의 여성이 피 흘릴 때는 부정하다는 고정관념을 무시하고 예수께로 나아가 구원을 얻은 여성입니다. 남들에게 부정을 전염시키는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정하다/부정하다”라고 가르고 판단하는 인간들의 나쁜 습성을 깨뜨리는 행위였고, 예수는 그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세기는 엘리트와 대중으로 철저하게 계급을 나누고 계급에 따른 규정이 정해져 있는 것만큼 성별의 차이에 의해서도 역할 배분과 능력할당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자는 강하고, 용감하고, 관대하며 신중하고 이성적이며 절제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여성은 약하고 겁이 많고 소심하고 수다스러우며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며 절제되어 있지 않다고 여겼지요. 그래서 약하고 겁이 많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여성은 남성의 보호아래 가정의 영역에 갇혀 지내야 했고, 공적인 영역으로 나오는 것은 자신에게 수치이자 자신의 남편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물론 여기서 사람은 남자들이겠지만) 이런 시대적 인습을 깨고 나온 여성이 바로 하혈증 걸린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어떻습니까? 이 여성은 배울 만큼 배우고 상류층의 문화를 향유하던 헬라 여성이었고,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대 제국을 세웠던 페니키아 왕국의 후예였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의 딸, 즉 병들어 있는 다음 세대를 살리기 위해 모욕적인 언사를 참아가며 얼마나 지혜롭게 예수와 논쟁하는지 보십시오. 히브리 산파들이 이집트 대 제국의 황제의 명령을 그들의 기지와 재치있는 말로 거부하고 출애굽의 첫 관문을 여는 것처럼 오늘 이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인내와 지혜로 이방 땅에 복음이 전해지는 교두보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이 여성만이 유일하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음 등장하는 여인은 과부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으나 보상을 바랬던 열둘과 달리 그녀는 구차한 중에도 모든 것을 바칩니다.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십자가의 도상에서 열둘은 모른 채 하거나 피하거나 전혀 딴소리를 해댔으나 무명의 한 여인은 노동자의 1년 품삯이나 되는 향유를 마련해 예수의 메시아 등극을 준비합니다.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왕의 임명식에서 하는 행위였습니다. 여인은 예수에게 기름부음으로 진정한 메시아가 지는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냅니다. 열둘은 도망가고 아무도 남지 않은 십자가 아래, 시체를 뜯어 먹으려고 들개들과 까마귀만이 우글거리는 곳에 갈릴리부터 예수를 섬기며 따랐던 여성 3명이 남아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이들은 이제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대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만이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이들만이 갈릴래아에서 다시 예수 운동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전 향린교회 교인들 정도이면 목회자들이 없어도 마르코복음의 여성들처럼 얼마든지 하느님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사실 목회자 평신도 구분 없이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교회의 선교에 동참하는 분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금만 더 노력해 봅시다. 하혈증 걸린 여인처럼 시대의 인습을 깨는 일은 무척 두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믿음으로 12년이나 닫혀 있었던 생명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려면 시로페니키아 여인처럼 인내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의 모욕에 같이 화를 내고 싸웠다면 병든 후세들을 치료할 길이 없어집니다. 요즘 청년들이, 요즘 대학생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민족과 사회의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윽박만 지르고 한숨만 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론 과부처럼 모든 것을 아무 보상 없이 내어놓은 순진함과 신앙의 결단도 필요합니다. 2004년 6월 29일 열린 목회자와 평신도 토론에서 김경호 목사님은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이 합리성은 있으나 말씀을 지키려는 순진성이 부족하고 아는 것은 너무나 많은데 실천이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혹시 우리가 그렇지는 않은지요?

여인들만이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예수를 끝까지 따르며 섬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섬김부터 십자가 죽음의 현장의 섬김까지 새로운 공동체의 평신도들의 핵심 키워드는 섬김이었습니다. 예수를 섬기며 따르는 일에서 영광을 바라던 열둘은 실패하고 사랑으로 남을 돌보는 데 익숙했던 여성들은 참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없이 섬김의 길을 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길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렇게 조용히 남을 시중드는 일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고, 또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중드는 일을 하는 이들은 지치기 쉽고, 상처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왼손이 모르게 하는 오른손들이 많을 때 그 공동체는 온갖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됩니다. 드러내지 않고 하는 말없는 봉사가 많을 때 그 공동체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는 30배, 60배, 100배가 됩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처음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복음”은 한자 그대로 풀면 “복 있는 소리”이겠고, 오늘 설교제목처럼 “기쁜 소식”입니다. 원어로는 “유앙겔리온”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주로 로마 황제와 관련해서 쓰였습니다. 황제 임명식을 할 때 그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유앙겔리온”이라고 선포합니다. 제국의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가 궁전으로 입성할 때면 나팔을 크게 불며, 옆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유앙겔리온”하고 외쳤지요. 또 황제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손에 들고 “유앙겔리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황제의 “유앙겔리온”은 바로 폭력과 억압과 권력의 승리를 뜻하는 “유앙겔리온”이었습니다. 기원전 1년 6월 18일 힐라리온이라는 이집트의 한 노동자가 자기 아내 알리스에게 쓴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힐라리온이 알리스에게 진심으로 안부를 전하오. 또 나의 존경하는 장모님 베로우스와 나의 아들 아폴로나리온도 잘 있는지요. 우리는 아직 알렉산드리아에 있다오. 나만 빼고 다른 사람은 다 돌아갔는데, 나만 알렉산드리아에 남은 것을 걱정하지는 마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간절히 부탁하는데 내 아이를 잘 돌보아 주오. 이제 곧 내가 받은 품삯을 당신에게 보내리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아들이면 그대로 두고 여자 아이라면 내어버리시오. 이하 생략”

평범한 노동자의 편지에서도 나오듯이 당시의 기쁜 소식은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소식이 될 수 있던 것입니다. “사내 아이면 그대로 두고, 여자 아이거든 <죽도록> 내어버리시오” 황제의 경우 여자아이면 그 아이를 낳은 대리모와 함께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요? 뭐가 “유앙겔리온”입니까? 마르코는 말합니다. “사랑으로 섬김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지배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은 회개하여라.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다. 이제 서로 섬기는 평등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르코는 본론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가셨다는 말로 갈릴래아에서 본론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암시만 합니다. 그럼 본론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해답은 여러분 손과 발에 있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위가 어둡다고 불평하기 전에 한 자루의 촛불을 켜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세상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백 척 벼랑 끝에 섰을 때 오히려 한걸음 내딛으시오.
그러면 온 우주가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사랑으로 세상을 변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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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 두번째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
- 살아계신 예수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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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제가 시무하는 교회에서는 설교를 “하늘뜻펴기”라고 합니다. “설교”라는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풀어서 써 본 것이지요. 세간에서는 “잔소리하지 말라”는 의미로 “설교하지 마라”라고들 합니다. 설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어있지요. 그러나 목사인 저는 하늘뜻펴기를 할 때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땅에 두 발 딛고 사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인 제가 어떻게 감히 하늘뜻을 펼칠 수 있을까요? 제 입을 통해서 나오는 문장을 어떻게 무한의 깊이를 지닌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목사가 설교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다만 제가 떠드는 말이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굳이 해석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청중은 설교자의 말씀을 자신의 상황에 따라 새롭게 그리고 자유롭게 듣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석의 자율성! 저는 이것이 하느님이 설교자들에게 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으면서 저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늘뜻펴기 준비를 합니다. 기도를 하고, 하늘말씀(성서)을 곱씹어 읽고, 주석도 찾아보고, 성서가 담고 있는 세계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도 생각해 보고 더불어 그런 맥락에서 성서가 하는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처한, 특별히 저의 경우는 제가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처한 상황에서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모든 일상의 사건이 하늘뜻펴기의 소재와 의미가 되고, 제 머리 속에서 그 의미들이 이렇게 저렇게 얽혀지면서 얼개를 잡아갑니다. 칠흙 같은 어둠을 만난 듯, 복잡한 세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에게 저의 하늘뜻펴기가 한걸음 내딛게 하는 용기를 줄 수 있을지, 희미하나마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노심초사 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 갑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하는 말이 감히 하늘의 뜻이라고 할 만한 것인지 고민고민하며 찾아 들어갑니다. 가까스로 설교 한편이 완성되면 읽고 또 읽으면서 고치고 잘라내고 꿰매기를 또 수십 번 합니다. 마지막 교정이 끝나면 미리 시연을 해 봅니다. 하늘뜻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로 상대의 귀에 들려야 하니까요. 문어체이거나 어려운 단어는 다시 바꿉니다. 

하늘뜻이 제대로만 펼쳐진다면 아마도 청중의 삶 즉 교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귀에 들려진 말씀이 가슴을 때리고 그것이 손과 발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지요. 한 숟가락에 배부르지 않겠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을 모르듯이 어느새 하느님의 뜻을 새기는 사람들이 되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설교라면 저 또한 그 말씀으로 삶을 다잡으며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으로 저는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5편의 하늘뜻펴기를 하였습니다. 제가 시무하는 교회는 담임목사나 부목사나 6년의 시무를 하면 1년의 안식년을 갖는데 담임목사의 안식년이 되어 부목사 둘이 나눠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번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당시 목사가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풋내기 목사였고, 이런 상황에서 연속으로 5편의 설교를 해야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지만 “하느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무식한 용감함으로 하늘뜻펴기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중 4편의 하늘뜻펴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4편을 연재하는 이유는 제가 4복음서와 저희교회의 4가지 창립정신을 연결시켜서 설교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늘뜻펴기에서 제가 시무하는 교회의 이름이 그대로 나오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하늘뜻펴기는 분명히 구체적인 현장에서 전해지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현재의 담임목사는 3대째 목사이고 그의 첫 임기 6년을 마친 상태였기에 저는 부목사로서 다시 한 번 교회의 창립정신을 되돌아봄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4복음서를 택한 이유는 거기에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의 삶과 그의 가르침이 녹아 있으며, 그와 함께 하느님 나라 운동의 주역이었던 처음 제자들, 곧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증인들의 생생한 증언이 녹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서의 성립과정을 공부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복음서는 예수를 주로 믿은 공동체들의 삶의 현장에서 고백된 고백의 언어들이기에 오늘 한국 사회를 사는 우리들의 신앙고백과 함께 비교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앞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그럼 첫 번째 하늘뜻펴기를 적습니다. 4편의 하늘뜻펴기 연재가 끝마칠 무렵, 다양한 해석과 비판과 논의가 오고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제가 시무하는 교회의 이야기가 날 것 그대로 들어가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향린의 창립정신과 복음서(1)
살아계신 예수를 따라
미가 6, 6- 8 ; 마태복음 25, 31- 46

 참으로 어려운 시절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자태를 보여준 자가 있다면, 자기를 베고 찍고 상처를 내는 자들을 향해서도 향기를 발하는 향나무에서 무언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던 자가 있다면, 한평생 그 사람을 따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일 것입니다. 복음서들은 바로 그러한 한 사람을 잊을 수 없어서 쓰인 문서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4주 동안 복음서를 본문으로 연속 하늘뜻펴기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관한 글을 썼지만(루가 1:1) 우리가 가진 성서에는 4개의 복음서가 있고, 각각의 복음서는 그 복음서를 쓴 저자가 속한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다른 네 복음서를 텍스트로 하면서 동시에 향린신앙공동체가 처음 세워졌을 때의 4개의 창립정신도 더불어 살피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첫 교회들의 모습과 56년 전 향린의 초기 모습을 회상함으로써 우리의 오늘을 새롭게 하고 나아가 내일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마태오 복음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1세기 후반 유대의 역사를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복음서들을 기록한 이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것은 66년부터 72년까지 진행된 유대-로마 전쟁입니다. 유대-로마전쟁은 전쟁의 참혹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70년에는 로마군에 의해 거룩한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60만이 죽었다고 하고, 요세푸스에 의하면 110만이 죽었다고 합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 성전을 공략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주위에 반-영구적인 진지를 구축하여 성 높이만큼의 벽을 쌓아 성전을 나와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잡아 십자가에 매달았고, 전쟁이 마무리 될 때쯤 예루살렘 주위는 만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과격파 유대인들이 결사항전의 의지를 높이기 위해 모든 식량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려서 예루살렘 거주민들과 군인들이 굶어 죽었으며, 성전을 약탈한 로마군은 도망가는 유대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규군만 6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투입했습니다. 이 로마 군대는 진압작전을 펴면서 수만 명의 식민지 청년들을 징발했으며 이들은 로마군을 따라 무자비한 학살자 대열에 끼어야 했습니다. 같은 동족을 죽여야 했던 유대인들은 유대-로마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정신은 파괴되었고, 온갖 병과 전쟁의 충격에 의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대로마 항전에 실패하고 잿더미가 된 유대사회를 복구하기 위해 바리새파 계열의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얌니야에 율법학교를 세우고 유대인의 단결을 외쳤습니다. 그는 온건파로 전쟁에 반대했던 인물이었으나 2대 수장이 되었던 가말리엘 2세는 전쟁에 가담했던 행동파 바리사이 랍비 출신으로, 전임자보다 훨씬 공격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율법규정을 적용하여 모든 유대공동체의 신앙의 표준을 세우고, 이 가르침과 실천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집단을 구별해 내어 추방하고 잡아다 매질하였습니다. 이 때 18개조의 기도문이 만들어 지는데, 이 기도문의 제12조에는 예수를 따르던 회당 내의 사람들인 ‘나자렛 도당에 대한 저주’가 실려 있었고, 랍비적 바리새파의 숙청작업의 표적이 된 대상은 바로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었습니다. 

마태공동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만난 예수에게서 전혀 다른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줄파산이 나든 줄도산이 나든 말든 오히려 백성에게 김석기 시대의 물대포를 쏘아 대면서 자신은 한가로이 유인촌이라는 동네에 놀러가 어청수를 끼고 BBK 치킨과 ‘소망교’회를 안주로 배불리면서 ‘주가폭’락이라는 락음악이나 즐기는 명박도의 왕과 귀족들[각주:1]이 아니라, 애굽 왕이 히브리 어린이들을 죽이듯이 로마의 주구가 되어 자기 백성을 학살하는 헤롯 정권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함을 짊어지는 새로운 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멍에를 함께 메어주어 백성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고 백성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왕이었습니다(11:30). 그는 다투지도 않고 큰 소리를 내지도 않습니다.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습니다(12:17-21). 그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이방인의 갈릴래아로부터 하느님 나라의 운동을 시작합니다(4:12-17). 그래서 어둠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되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며(4:16),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겁니다(12:21). 당시의 모든 왕은 군마를 타고 입성하지만 예수 메시아는 나귀와 나귀새끼를 타고 겸손하게 들어옵니다(21:5).[각주:2] 그래서 그는 하느님이 택한, 하느님 마음에 꼭 드는 왕이었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왕은 전쟁으로 땅을 빼앗는 이가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5:5)라고 말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로마의 군주들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하느님의 아들딸이라고(5:9) 말하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로마의 핍박을 받은 것은 물론 같은 유대인 동족에게 끌려가 어떤 이는 매를 맞아 죽었고, 어떤 이는 집안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한 마을에 같이 살던 유대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해야 했고, 어떤 이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동료를 밀고해야 했습니다. 때론 밀고하고도 함께 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배신감에 분노하였고, 또 배신한 자신을 저주해야 했습니다. 온 동족을 학살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로마의 거대한 폭력, 또한 같은 동족에게도 수용되지 못하고 오히려 핍박을 받은 마태공동체는 무엇보다도 안팎으로 가득한 전쟁의 흔적과 폭력의 잔재들을 없애야 했습니다. 원수를 향한 분노를 삭일 수 없었던 공동체, 그러나 복수할 대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복수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공동체가 마태공동체였습니다.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가 표출되지 못하면 그것은 곧 자기 안에 생채기를 내거나 자기보다 더 약한 이에게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직장이나 사회에서 상처받은 가부장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하고, 남편의 가정폭력의 희생자인 아내는 다시 자녀를 때리고, 그 자녀는 학교에 가서 이른 바 ‘왕따’를 괴롭히는 폭력의 먹이사슬이 이어지게 됩니다.

마태오 공동체는 로마가 제공한 폭력의 먹이사슬에서 마지막희생양이 되었던 예수의 죽음을 기억했기에, 자신들이 그 폭력의 사슬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폭력을 넘어서는 엄청난 윤리적 힘을 자신들의 자아 정체성으로 삼고 견고한 자아구축을 시도합니다.

“겸손한 사람[각주:3]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3).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입니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 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예배하러 갈 때[각주:4]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교회에 가기 전에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예배를 드리십시오”(5:22-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앙갚음 하지 마십시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십시오.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 주십시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원수마저도 사랑하고 당신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5:38-42, 44).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10).

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정도의 놀라운 도덕적 가치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 늘 자신들의 곁에 계시다는 임마누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서의 처음을 장식하는 예수 탄생이 임마누엘의 약속의 성취로 시작되고(1:23), 예수의 마지막 명령이 임마누엘의 약속으로 끝이 납니다.(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공동체는 미가야 예언자가 외친대로 날마다 정의를 실천하고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매 순간 다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오 본문에 의하면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 끝 날의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 왕으로 오시는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25:40)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25:45) 

곧 우리 곁에 있던 보잘 것 없던 그 사람이 우리와 늘 함께 계셨던 하느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보잘 것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굶주리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강한 자만이, 원래 가진 것이 많았던 자들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헐벗고 병들기 쉽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가 되어 길바닥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정당한 항의라도 하려고 하면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들은 민주시민이 아니라면서 감옥에다 집어 넣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누가 보잘 것 없습니까? 어린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은 어린 녀석이 뭘 아냐면서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집니다. 생명 살리는 가사노동은 돈이 되는 직장의 노동보다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머리 쓰는 일보다 몸으로 하는 일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몸으로 일하는 사람도 역시 보잘 것 없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존재처럼 대우를 받습니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활개 치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역사의 모진 풍상을 겪은 어르신들의 경험이 무시되기도 합니다. 또 가끔은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보잘 것 없음에서 오히려 하느님을 발견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한 것이 바로 하느님께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가장 화려한 문명의 제국인 로마의 폭력과 그 폭력에 희생된 한 유대 청년의 작은 삶을 통해 바로 모든 폭력과 모든 억압이 바로 더 뛰어난 것, 더 강한 것, 더 효율적인 것,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온 물을 흐려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위해서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는 것 또한 공동체가 해서는 안 될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18:10-14). 그래서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예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고(18:19-20),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용서를 빌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21-22). 제국의 폭력이 자신에게 전염되었을 것을 염려하여, 가장 무력한 존재인 어린아이를 받아들여 늘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하였고(18:1-5), 보고(눈) 만지고(손) 걸어가는(발) 모든 행동이 누군가에게 악으로 작용할까봐 노심초사 하였습니다(18:6-9). 일상의 삶에서 녹아나는 진실과 정의를 실행하기 위해 겉으로는 옳은 척하고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찬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들보다 더 철저한 자기수행을 하였습니다(5:20, 48-6:4). 

참으로 어려운 시절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자태를 보여준 자가 있다면, 자기를 베고 찍고 상처를 내는 자들을 향해서도 향기를 발하는 향나무에서 무언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던 자가 있다면, 한평생 그 사람을 따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일 것입니다. 마태공동체는 자신의 주변에 언제나 함께 있었던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들 속에서 하느님을 봄으로써, 그들을 품어 안는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참으로 어려운 시절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큰물에 요동하지 않는 자태를 보여주었습니다.

 향린이 처음 세워 질 때, 이 땅 곳곳에는 식민지의 기억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온 산하는 참혹한 전쟁 소리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를 세운 이들은 하느님의 나라의 방주인 교회를 통해 자신들과 이웃이 구원받으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안병무 선생님의 말씀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도 만일 그대로 있다가는 남을 구하기는 고사하고 자신들이 그 사태에 휘몰려 갈 것 같았습니다. 우선 우리가 탈 방주, 그리고 우리와 인연이 된 이들을 건질 방주를 만들자! 그리고 남은 무리들에게도 이것을 권해서.... 절망한 저 무리들에게 살 수 있는 산 모델로서 보여야겠다. 우리 교회는 남을 위하기 전에 스스로 살고 싶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산다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여 구한다는 일과 유리될 수는 없었습니다.”[각주:5]

남을 살리기 전에 스스로 살고 싶어 세운 향린공동체는 폐허가 된 삼천리 반도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산 모델이 되기 위해 공동체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하루를 새벽기도회로 열고 저녁에도 성서공부 시간을 갖은 것은 삶 전체와 연결되는 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까맣게 잊고 살다가, 기도와 명상 등 영성생활에는 등한하다가 주일날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마는 것은 무력한 신앙으로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공동체 생활이라는 창립정신을 세운 것은 삶 전체가 하느님의 뜻 가운데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입니다.

향린이 태어난 1950년대부터 매 십년 단위로 각 년대를 대표하는 단어를 떠올리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를까요? 1950년대는 물론 한국전쟁일 것입니다. 1960년대는 4․19와 5․16, 1970년대는 유신헌법, 1980년 광주민중항쟁, 1990년대는 IMF, 2000년대는 촛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전쟁으로 시작해서 잠깐 민주화의 바람이 불 것 같다가 군인들의 폭압정치에 이어, 군인에 의한 국민학살, 급기야 경제혼란과 촛불 정국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도 폭력의 흔적과 죽음과 억울한 원성의 소리가 이어지는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삶의 신앙은 향린교회로 하여금 그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현장의 목소리로 울려 왔습니다. 향린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나서 60-70년대 독재에 맞서 싸웠고, 80-90년에는 민주화와 민족분단의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였으며, 2000년에 들어서는 사회의 약자들과 억울한 죽음, 가진 자들의 횡포에 맞서서 촛불을 드는데 앞장 서 왔습니다. 이만 하면 잘 해왔다라고 나름 자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뛰어오르려 하고, 건널 수 없는 강에 몸을 던지려 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꿉니다. 한순간 자만하고 안주하면 이런 꿈이 탐욕과 욕망으로 물들 수 있지만, 얼을 올곧게 하고 정신을 차리면 이런 꿈이 탐욕과 욕망을 넘어 하느님 나라의 이상을 이 땅에 이루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더욱 더 우리를 단련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주일만 잠깐 교회에 왔다가 돌아가는 교인(Church goer)은 아닌지, 우리 안에 세상에서 물들어온 경쟁과 폭력의 잔재는 없는지, 혹시 형제자매에 대해 껄끄러운 마음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 지, 어린이/청소년 교우에게 향린의 신앙을 잘 전수하고 있는지, 일상의 삶에서 신앙의 향기가 계속 피어나는지, 불의를 보고 과감하게 나갈 힘이 남아 있는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신속하게 옮기고 있는지, 매일 기도와 성서읽기를 통해 내공을 쌓고 있는지,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연기로 온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김연아 선수의 감각만큼이나 살아 계신 예수를 따라 가는 우리의 감수성이 발달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퇴계 이황은 지인(知人)들에게 보낸 편지글 22편을 뽑아 “자기를 살핀다”라는 제목의 책 <자성록>을 쓰는데 그 서문의 첫 구절에 논어를 인용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옛 사람이 말을 적게 한 것은 몸이 따라가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이다. 지금 친구들과 학문을 강구하느라 서신을 서로 나누면서 어쩔 수 없이 말을 하였지만 그래도 그 부끄러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겠다. 더구나 이미 말한 뒤에 저 사람은 잊지 않았는데, 내가 잊은 것이 있는가 하면 저편과 내가 다 잊은 것이 있으니, 이것은 부끄러울 뿐 아니라 거의 기탄(忌憚) 없음이 되는 것으로서 두렵기 그지없다.”

저 또한 오늘 설교가 끝나고 여러분은 제 설교를 잊지 않았는데 제가 설교내용을 잊을까 두렵고, 여러분도 잊어버리고, 저도 잊어버리고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될까 더욱 걱정입니다. 설교가 저를 비롯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성숙시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실 많은 고민이 됩니다. 이제 서 말이나 있는 구슬을 꿰는 일은 여러분에게 맡겨졌고, 진정한 예배는 예배실 밖으로 나가면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언젠가 신영복 선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것, 그리고 가슴에서 발로 가는 여행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머리의 깨달음조차 없지요. 머리로 깨달으려 하면 신앙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윽박을 질러대는 목회자로 가득하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향린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 묻고 싶습니다. 이미 많은 깨달음이 있는 향린의 식구들은 조심스레 하느님과 살아가기 위해 가장 먼 여행의 어디 쯤 가시고 계시는지요?

마지막으로 마태 공동체의 조언을 들으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며 무슨 상을 받겠느냐? 이명박 정권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수구꼴통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살아계신 예수를 따라 가십시오.
 한 사람의 종교인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한 사람의 참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성서의 밑줄을 그은 다음 이제 생활에 밑줄을 그으시오.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세상을 변혁하십시오.


ⓒ 웹진 <제3시대>


  1. 이명박 정부를 빗댄 어느 블로거의 글에서. [본문으로]
  2. 21세기에 예수님이 오셔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면 아마 ‘에쿠스’ 대신 지금은 없지만 ‘포니’를 타고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에쿠스’는 ‘개선장군의 말’이라는 뜻의 라틴어이고, ‘포니’는 ‘작은 조랑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겸손하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4. 원문은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이지만 현재의 맥락에 맡도록 고쳤다. [본문으로]
  5. 향린 40년사 74. 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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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들먹거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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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각주:1]
(향린교회 부목사)

2008년 12월 30일 오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의 할머니는 1911년생이시다. 그러니까 자그만치 98년이나 사시다 하늘로 가셨다. 무학(無學)이기에 무지몽매하지만 악착같이 살았다. 그러나 인생 내내 가난은 면치 못했고, 토속신앙을 오래도록 간직하다가 암 걸린 셋째 딸의 눈물어린 전도로 여든 살이 훌쩍 넘은 말년에 교회에 다니셨던 할머니였다. 나는 귀한 맏손자였기에 할머니께 귀여움을 많이 받으며 자랐고, 또 할머니랑 친하게 얘기도 나누고 흰머리도 뽑아드리고 귀지도 파드리곤 했다.

할머니는 TV를 보시며 언제나 중얼거리셨다. “참 좋은 세상이다~ 방안에 앉아서 세상 팔도를 다 보니 말이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것들이 움직이냐”며 마냥 신기해 하셨다. 언젠가 한번은 어머니가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신다. 네 할머니는 너랑 친하니까 네가 잘 말씀드려보라고~. 밤새 콩을 고르시다가 12시가 넘어서야 주무시는 어머니가 한번은 일이 많아 늦게 자서 피곤하다고 할머니께 말씀하신 모양이다. 그러니까 할머니 왈 “겨울은 밤이 긴데 왜 피곤해~” 어머니 왈 “밤이 길어도 12시 넘어서 자면 잠을 잔 시간이 얼마 안 되니까 당연히 피곤하죠?” 할머니는 이해를 못하신다. “겨울은 밤이 긴데 왜 피곤하지? 겨울은 밤이 긴데 말이야.” 이런 할머니의 쇠뿔 같은 고집과 우격다짐으로 나의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하셨다. 또 한 번은 옆 동네에 마실 다녀오시고서는 한 마디 하신다. “한태네 집에 갔더니 시계에서 뻐꾸기가 나와서 울더라. 근데 뻐꾸긴 산에서 울어야지 집에서 우니까 영 이상하드라.”

화투 치는 것을 워낙 좋아하셔서, 삼태기를 찾으며 “사쿠라가 어디 갔냐?”라고 말씀 하시던 분! 네 장씩 짝을 맞추며 홍단 청단 비약 똥약 등등이 있는 ‘민화투’를 치시다가 ‘고스톱’이라는 것이 동네에 들어오자 혼자서 세 패를 만들어 놓고 고스톱을 연습하시던 분이셨다. 일제 시대에도 일본순사들과 둘러 앉아 화투를 치셨다고 얘기를 해 주시곤 했다. 한국 전쟁 난리통에 피난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 왔는데 이불 속에 총알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는 이야기며, 중공군이 내려와서 무서워 방안으로 숨었는데 중공군은 부엌을 둘러보고 흐트러진 신발을 나란히 정리해 주고 떠났다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깨너머로 들은 풍월로 숙영낭자전을 외우셨고, 황국신민서사를 일본말로 하시던 기억도 난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일산 쪽으로 가다보면 마두(馬頭)역이 나온다. 할머니는 말머리 동네에서 태어나 거기서 사시다가 혼인하여 딸 둘을 얻고 남편과 사별한 후 나의 할아버지에게 재취를 하셨다. 우리 집은 교하니까 말머리에서 차를 타고 30분이면 오는 거리이다. 평생을 경기도 고양/파주의 한 지역에서 보내신 것이다. 9살에 3.1 독립만세 운동을 겪었을 것이고, 35살까지 일제치하에 살다가, 전쟁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다 겪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배움이 없었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모르고 그저 살기 위해 살았을 뿐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문덕이가 초등학교나 들어가는 것을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우리 문덕이가 대학가는 것이나 보고 죽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니 내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아 증손자까지 보시고, 하늘이 주신 수명을 다하고 돌아가셨다. 교회를 나가던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 제사에서 절을 안 하자 “저 망할 놈이 나 죽어도 제사 한 번 안 지내 주겠구먼!” 하시던 분이 내가 목사가 돼서 차를 타고 가면 “하느님,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죠! 차에도 계시죠. 그저 우리 문덕이 우로 가나 좌로 가나 앉으나 서나 늘 함께 해 주십사” 하시며 옛날 무당 불러서 굿하면서 손을 빌던 그 모양 그대로 기도하시던 분이셨다. 큰 글자 찬송가를 하나 사 드렸는데 그것을 달달 외우시며 특히 502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를 좋아하셨던 할머니셨다. 그렇게 교인이 된 어느 날 할머니의 딸들-나에겐 고모님들-이 찾아와서 이것 저것 물으셨다. “교회에 나가니까 어떠냐? 좋냐?” “뭐라고 기도하냐?” 등등 그런데 할머니의 대답이 가관(可觀)이다. “기도하지. 늘 너희들 위해서 기도해. 하느님 들먹거리면서 말이야”

1911년부터 2008년까지 촌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남편에게 대접 못 받는 대신 며느리를 구박하며 삶을 살아냈던 한 여인의 인생에서 교회는 어떤 의미일까?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 속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름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굴절되고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 세속사회로부터 칭찬이 아닌 비난을 함께 받아온 한국 교회는 이 땅의 민중의 삶에 무엇으로 기억되는 걸까? 방안에 앉아서 전 세계의 소식을 듣고, 숲 속의 뻐꾸기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과학시대에 종교는 무엇일까? 일제 식민지의 수치의 역사와 민족분단의 고통과 아픔 앞에서 그리스도교는 무엇이었나?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교회에서 교인들이 하느님 들먹거리며 기도하고 있다. 강단에서 목사들이 또 하느님 들먹거리며 열심히 외치고 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들먹거릴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어쩌면 하느님을 들먹거리기 전에 구구절절한 한 인간의 삶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구질구질 맞은 그 삶에서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아니 바로 거기서 그 자리에서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느님을 들먹거릴 때 과연 나의 신앙은 무엇일까? 한 인간의 삶과 죽음 앞에서,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서, 우리들의 신앙은 무엇일까?

마당에서 동네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시끄럽다며 물 한 바가지 퍼서 끼얹는 극성쟁이 할머니가 왠지 보고 싶다. 나지막하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덕아, 이리와 앉아라. 이 할미랑 얘기 좀 하자. 오늘이 며칠이냐? 초닷새라고? 으응~. 그래, 그래. 사람은 자기 얘기도 하고, 남 소리도 듣고 그러며 사는 게지. 이리 오렴~” ⓒ 웹진 <제3시대>

  1. 하느님 발길에 채여 산다는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하느님 발길에 채인 것이 자유라는 역설을 참으로 깨달을 날이 오기를 꿈꾼다. 하늘과 땅은 사랑하지 않는다(天地不仁)는 노자(老子)의 말과 한 걸음 물러나야 진정한 자기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退步就己)는 일본의 선승(禪僧)의 경구 그리고 전도서 5장 1절의 말씀 “하느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매일 중얼거리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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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09.10.20 21:5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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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민중, 체계, 생명 : 체계이론의 관점에서 본 민중신학의 생명론

연구저자:
전 철

연구발표: 한국민중신학회 7월 정기세미나

발표일시: 2009년 7월 9일 목요일 오후 6시

발표장소: 서울 향린교회

한글요약:

이 연구는 근대적 사유로서의 민중신학의 정신을 개괄적으로 조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민중신학은 고통과 고난을 담지하고 있는 민중의 문제를 어떻게 주목하는지를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성찰한다. 이를 통하여 민중신학의 방법론적 성격과 생명론의 현실적 의미를 오늘의 지평에서 헤아리고자 한다.

논문목차:
  1. 들어가며 : 민중신학의 방법론적 특성
  2. 근대적 사유의 탄생과 민중신학
  3. 민중신학과 생명의 체계이론
  4. 신체적 고통의 전유와 사회체계
  5. 나가며 : 고통의 생태학으로서의 민중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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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과 네팔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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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

안식년에 관한 소고

향린교회가 정한 안식년 규정(혜택)에 따라 2009년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의 기간을 가졌다. 6년 시무 후 주어지는 안식년 기간은 1년인데, 3개월은 재임 기간 중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참여하는 일과 기장 총회가 주관한 유럽평화기행 여행으로 이미 썼고, 남은 6개월은 임보라 목사가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년 가을에 가질 예정이다.

안식년(Sabbatical year)은 제1성서에서 나온 말인데,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7일째 하루를 쉬셨다는 안식일 개념이 년(年)으로 확대된 말이다. 성서는 7년째가 되는 안식년에는 땅을 쉬도록 명하고 있다. 땅이 쉬어야 한다면 노예들과 짐승들도 당연히 쉰다. 그리고 이 안식년이 7번이 지나 50년째가 되는 해를 희년(Jubilee year)이라고 하여 단지 땅을 쉬게 할 뿐만 아니라, 땅을 본래의 주인(지파로 대변되는 집안)에게로 돌려주도록 명하고 있다. 땅뿐만이 아니라 모든 빚을 탕감하고 노예를 해방하도록 명하고 있다. 결국 크게 보면 안식년이란 쉼과 휴식의 의미를 넘어 평등, 자유, 해방이라는 야훼 하느님의 창조의 본래됨을 회복하는 해인 것이다. 

현재 안식년은 대학의 교수들과 일부 목사들에게만 행하여지고 있고,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기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 안식년 제도를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쉽게 말하면 봉급의 7분지 일을 회사 혹은 노조가 적금 형식으로 보관하였다가 안식년 기간에 이를 되돌려 주는 형식이다. 드문 경우이지만 남한에서도 이런 안식년 제도를 시행하는 연구센터가 있다고 들었다. 일부 회사에서 5일 근무 중 하루를 재교육의 배움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게 하니까 제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고 일의 실적이 더 좋아졌다고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생각의 패러다임만 바꾼다면 전연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근 30년 전 뉴욕에 살 때, 가장 흔한 업소인 세탁소나 과일가게의 주인들(당시는 대부분이 서양사람)이 여름 한 달동안 휴가를 갔다고 문에다 붙여놓은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심지어는 구두 수선을 하는 가게에도 이런 표지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이후 주로 동양 사람들이 이런 가게들을 인수하면서 이런 일들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어떤 한국인 부부가 조그마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데, 여러 해를 이렇게 한달동안 여름 휴가를 다녀오는 경우를 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본다. 많은 경우 한국 사람들은 서양 고객들로부터 ‘너는 여름 휴가도 가지 않느냐?’는 약간은 조롱조의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조그마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던 우리 집도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가진 것은 적고 내야 할 비용은 많고 생존 자체에 허덕이는 동양인 이민자에게 휴가는 실상 그림의 떡이었다. 당시로는 전연 불가능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잘못된 가게 선택으로 인해 파산을 하고 말았다. 그래 몇 년에 걸쳐 온 가족이 밤낮으로 일궈온 모든 재산을 다 잃고 말았다(집과 차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오래된 TV까지도). 그럴 줄 알았으면 여름휴가나 열심히 다녔을 텐데, 그 누가 알았으랴!  귀 있는 자는 들으시라. 

나의 본래 3개월 안식년 기간은 일본과 네팔에서의 3주간 여행을 마친 후에는 미국으로 가서 2-3주간의 공동체 경험 그리고 약 한달 동안의 모교인 뉴욕 유니온신학대학과 하바드신학대학에 머물면서 공부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네팔에서 두 달을 머물렀고, 그중 한 달은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게 되었다.

네팔을 가게 된 동기

중고등학교에서 같은 클럽 활동을 하던 김두현이란 친구가 부모님을 따라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어려운 독학의 과정을 거쳐 40년 가까이 동경에서 살며 지금은 이름 있는 화가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돈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창의적인 필치로 독자적인 그림 세계를 갖고 있고, 일본 기독교단이 발행하는 신앙의 벗이라는 잡지에 20년 동안 교회 건물을 중심으로 한 표지 그림을 담당하여 왔고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여러 권 내었다. 그 중 말기 암에 걸린 어린이들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단체와 함께 일을 하여 그림책을 내고 싶어 하는 10살 어린이의 이야기를 함께 그림으로 그리는 과정을 일본 NHK 방송이 취재하여 여러 번 방송에도 나왔다. 불행하게도 이 어린이는 이 책이 발간되기 하루 전에 죽었다. 오히려 이 얘기가 화제가 되어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익금은 전부 이 단체가 갖는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오고 있다. 몇 년 전 그는 일본인으로 시인이기도 했던 첫 번째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매년 연하장을 보내왔는데, 엽서의 표지는 그가 그린 그림으로 뒷면에는 아내가 쓴 일본 시가 실려 있었다. 둘이서 시화전도 여러 번 했다. 죽은 아내는 단순히 인생의 짝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세계에 있어서도 진정한 반려자였다. 40대 중반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 또한 작년에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지금은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 또한 초기 유방암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의 아내는 죽은 아내의 친구이자 같은 교회를 다녔기에 잘 알고 있는 사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없던 그 딸을 어려서부터 교회학교에서 가르쳐온 선생으로 가끔 인생 상담도 하면서 아버지 노릇을 함께 해 왔다는데 정말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난 이 아내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오빠가 모두 기독교 목사이고 일제 시대 때 아버지는 북한 땅 압록강 근처에서 일본인 교회의 목사로 있으면서 일본 군부의 침략을 비판하다 한때 옥고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패전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어린 두 딸을 조선 땅에다 묻고 온 아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내 친구가 네팔과 관계를 갖게 된 연유 또한 두 번째 만난 아내의 언니가 여러 해 네팔에서 여성 직업 훈련소의 선생으로 있으면서 옷 만드는 일을 가르쳐주고 또 여기서 만들어진 옷을 일본 교회를 통해 파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이곳 네팔에 온 이유는 이 친구가 3년째 진행하고 있는 네팔 오지의 초등학교 두 곳에서 한주동안 진행되는 그림그리기 여행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여행 참가자를  모으기 위해 교회 잡지를 통해 전국에 광고를 내었다. 이번 참가자의 반은 교회에 다니고 반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물론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하더라도 배우자가 교회를 다니는 등 이렇게 저렇게 교회 인연은 있다. 참가비용은 보통 비용보다 두 배 이상이 든다. 왜냐하면 워낙 오직이기에 헬리콥터를 이용해야 하고 그림그리기에 필요한 도구 비용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은 어느 누구도 여기에 선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일이 남한에서 진행된다면 당연히 선교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모두 20명이고 우리 부부와 친구를 빼면 일본인은 17명이다. 이중 아주 간단한 영어로나마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한두명에 불과했다. 그러니 참가하는 한 주간 대부분은 친구가 통역을 해주지 않는 한 우리는 거의 꿀 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나이는 대부분이 70대에 가까운 은퇴자들이고 우리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5명뿐이었다. 이런 일을 남한에서 계획한다면 참가자는 대부분이 2, 30대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일본인 참석자는 반 이상이 60대 이상이다. 그리고 3분지 1은 이미 이 그림그리기 여행을 두 번 혹은 세 번째 참가하고 있다.

수도 카트만두

처음 나리따 공항에서 20명이 만나 방콕에서 하루 밤을 자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도착했다. 공항의 수속은 지루하며 소란스러웠다. 밖으로 나오자 마치 혼란스러운 시골의 장터를 빠져나온 기분이다. 그러나 날씨는 마치 초여름과 같이 약간은 후덥지근했다. 거리는 신호등은 물론 제대로의 차선도 없어 사람의 행렬과 자전거와 인력거와 택시와 버스 트럭 등이 도로에서 혼잡을 이루고 있었고, 때로는 교차로에서 먼저 가려다가 오히려 뒤섞여 엉켜버린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 때로 이곳에서 신으로 인정받고 있는 소가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이곳 카트만두의 대기 오염도는 세계에서 제일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주 후에 다시 카트만두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틀 만에 목이 심하게 붓는 편도염이 생겨 마이신을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다. 대기 오염도가 심한 이유는 차들이 너무나 오래되어 매연이 심하고, 도시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되어 있는데다, 건기에는 수개월째 비가 오지 않아 바람만 불어도 모래 먼지가 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데나 버린 쓰레기는 곳곳마다 악취를 풍기고 있었고 심한 경우는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아파트 앞마당이 그냥 수 년 동안 방치된 쓰레기들로 썩어가고 있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네팔의 현실이 그러하다.

국민소득이 하루 일인당 2불정도로 낮고 빈부의 격차가 워낙 심하고,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살아 있어 대부분의 가난한 문맹인 민중들은 주어진 상황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1년 내내 높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빙하 물이 곳곳에 넘치고 있지만, 네팔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수도라 해도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씩 하루 여덟 시간만 전력이 공급되고 있고, 수돗물은 더 열악하여 하루 2시간만 주고 있다. 이나마도 없어 식수만 차로 공급하고 있는 지역도 많다. 교회 앞 골목에서 네팔티벳 식당(여주인은 향린교인)을 운영하는 네팔 출신 주인 말에 의하면 네팔 정부는 전력을 인도에 팔고 더 비싼 값에 인도에서 전력을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무슨 사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도정부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과 네팔 정부 관료들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한다.

여행자들로부터 한 20불씩 환경비 명목으로 더 받아내어 이를 청소하는 일을 하였으면 어떨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지만, 자기 몫을 챙기는 일에만 열중하는 관료들이라 이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 첫날 비행장 주차장에서 가방에서 두터운 서류 종이를 꺼내어 읽던 한 여행 가이드가 이를 그냥 찢어서 길에다 버리던 너무나도 자연스런 모습이 떠올랐다.

고방에서의 첫날

카트만두에서 첫날을 자고 이튿날 경비행기로 한 시간 가량 걸려 포카라로 이동을 하고 나서 바로 비행장에서 헬리콥터로 목적지 고방의 나우리꼿이라는 오지 동네로 이동을 했다. 이곳은 8100미터가 넘는 다울리아기리라는 산이 바로 정면에 보이는 곳이다. 아래 흐르는 강물이 2,100미터이니까 골짜기 깊이가 무려 6천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가 있는 동네이다. 이곳에 일본인 아내를 둔 한 네팔 호텔업자가 아주 훌륭한 호텔(2층 건물에 방이 8개밖에 안되니까 우리 식의 호텔은 아니지만)을 지어놓았다. 하루 방값이 미화 50불(7만원)이 넘으니까 내가 트레킹을 하면서 머물었던 롯지의 50배가 되는 거액이었다.) 모두가 저녁을 먹고 자기 소개의 시간을 가진 다음날 초등학교에서 진행할 노래를 위한 연습과 몇 반으로 나누어 미술 과제물을 준비했다. 하모니카와 입으로 부는 아코디온과 피리로 반주를 하면서 사운드오브 뮤직의 주제가인 ‘도레미송’과 ‘우리 모두 다함께 손뼉을’ 두곡을 율동을 곁들여 연습하였는데, 얼마나 흥겹게 하는지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더구나 이들 대부분이 60세가 넘었고 몇 명은 70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주뻘에 해당하는 네팔 어린이들 앞에서 보여줄 율동과 노래를 준비하였다. 그 다음날 그들은 정말 온 마을 사람들이 둘러싼 가운데(그래봐야 백 명도 안되었지만) 약 50여명의 초등학교 아이들 앞에서 정말 재롱을 떨었다. 나도 미국에 있으면서 여러 번 멕시코 원주민 선교를 다녀보았고 한때는 백 명도 넘는 한국인 그룹을 인도하기도 하였지만, 할아버지 할머님들의 재롱을 보지는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조용하고 예절바르고 엄숙하기만 한 일본 사람들의 다른 면을 보았다.

안식년 서신에도 밝혀 놓았지만, 아내는 첫날 연습을 시작한 당시에는 괜찮았는데, 조금 있다가 머리가 아프다고 먼저 자리에 눕더니 급기야는 새벽에 고산병이 시작되었다. 약을 먹으면서 참고 견디다가 너무 심해져서 오후 늦게 급히 하산을 하여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작은 병원으로 긴급 수송을 해야 했다.(헬기를 이용하려고 보험회사에 알아보니 했는데, 한번 사용에 수천불이 들기에 보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밤을 보내고 포카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나도 일본인들과의 그림 그리기 여행은 여기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우리가 머물었던 지역은 2600미터밖에 안 되었지만, 헬리콥터로 갑작스레 이동을 하였기에 고산병이 왔던 것이다.(아내는 얼마 전 의사로부터 초기 고혈압 진단을 받았는데, 이것이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후의 경험에 의하면 고산병은 반드시 체력과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다. 5천미터 롯지에서 만난 한 가냘픈 서양 여성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건강한 일본인 남성 청년은 내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괜찮은데, 젊은 청년들이 힘들어 하는 경우도 보았다. 물론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더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 네팔에서의 본래 여행 목적을 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지라, 혼자서 트레킹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본래는 한 코스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세 코스를 하게 되면서 트레킹의 ‘트’짜도 모르던 사람이 트레킹의 ‘도사’가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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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멋지네용
    2016.02.17 17: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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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헌정목사님이야 말로 이시대의 진정한 진보개신교 목사님~!!!!! *^^********

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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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첫 번째 이야기 - 풋내기 목사의 꿈

“하느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름지기 말이 적어야 한다.” (공동번역성서, 전도서 5장 1절)

저는 목사안수를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풋내기 목사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목회에 관한 이러저러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에 덜컥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을 해 놓고는, ‘또 실수 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글 쓰는 것을 취소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무슨 말이든 쓰기로 했습니다.

저는 목회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해서 목회란 것을 하겠지만 그렇게 몇 십 년 목회를 한다고 해도 ‘목회란 이런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목사가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공간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특히 개신교에 대한 비종교인과 사회의 엄청난 불신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목사가 되어버린 한 인간의 나약한 삶을 그저 쓰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저는 목사가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교인들조차도 목사 앞에서는 웃으며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도 속으로는 “으이구, 저런 게 목사라니~” 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 있어서 교회와 목사는 이렇게까지 욕만 먹어야 할 곳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여섯 살 때부터 자그만 시골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는 저를 품어준 보금자리였고, 그 교회 목사님은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작은 시골교회에서 동네 사람들과 동고동락하셨고, 제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나이 지긋하신 인자한 할아버지셨지요. 그 목사님은 원래 음악교사셨는데, 아버님이 한국전쟁 중에 순교를 당하자 맏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목사가 되셨고, 평생을 그 작은 시골교회에서 어렵고 힘든 삶을 감당하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신나게 놀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얘기하고 웃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유년과 청소년, 청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그 교회에 가면 엄마의 품에서 쌔근쌔근 잠든 갓난아이처럼 포근하고 아늑함을 느낍니다. 제가 어쩌다가 목사가 되었는지 저도 사실은 잘 모르지만 20년 동안 저의 삶의 한 부분이었던 그 작은 교회의 아름다운 경험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는 지금도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제가 신학을 하고 목사까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땅에 뿌려진 씨가 저절로 자라듯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되었습니다(마가복음 4:26-29). 세상엔 온갖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 많지만 저는 한명의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신비를 믿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 인간은 땅에 있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문제 가득한 이 세상도 눈 크게 뜨고 보면, 잠잠히 입 닫고 고요히 있다 보면, 여기저기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하나님의 신비로 가슴 한켠에서 잔잔히 밀려오는 감동에 눈물 적시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생존의 욕구와 더불어 자아실현의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저도 욕망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지요. ‘돈’이 ‘하느님’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돈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내밉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욕망이 있다면 제가 그 어린 시절 작은 교회에서 느꼈던 그 행복하고 뿌듯하고 신났던 그 경험을 누군가의 삶 속에 일어나도록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가 이런 저의 욕망에 대해 꾸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웃긴 놈아! 그러니까 목사 쓰레기라고 불리는 거야. 알았어!” 그래요.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사람은 원래 사람들하고 함께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사는 맛도 느끼는 것이니까, 교회라는 곳이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 곳이 그런 곳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풋내기 목사로서 하느님께 뭔가 바치겠다는 성급한 생각을 할까봐 전도서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사실 제 주변에 가까운 분들은 제가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제 아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라는 거창고등학교에 써 있다는 직업선택의 십계명의 뜻을 생각하면서 아마도 전 계속 목사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목사가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 개인에게는 단 한번 지내는 일생이겠지요. 목사로서의 제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기 위해 몇 분들의 생각을 소개하고 첫 번째 글을 마칠까 합니다.

첫 글은 권정생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한 20여년 전, 친구한테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내용은 내가 만약 교회를 세운다면, 뾰족탑에 십자가도 없애고 우리 정서에 맞는 오두막 같은 집을 짓겠다. 물론 집안 넓이는 사람이 쉰명에서 백명쯤 앉을 수 있는 크기는 되어야겠지. 정면에 보이는 강단 같은 거추장스런 것도 없이 그냥 맨마루바닥이면 되고, 여럿이 둘러앉아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는 예배면 된다. 00교회라는 간판도 안 붙이고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하다면 '까치네 집'이라든가 '심청이네 집'이라든가 '망이네 집' 같은 걸로 하면 되겠지. 함께 모여 세상살이 얘기도 하고, 성경책 얘기도 하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서당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고, 단오날이나 풋굿 같은 날엔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담그고 해서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어려운 일, 궂은 일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어때요? 좋지요. 저도 이런 교회를 갖고 싶답니다. 프랑스 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베 피에르 신부가 하는 공동체가 있는데 거기에 누군가 찾아 오면 세 가지를 물어본다고 합니다. 

“주무시겠습니까? 드시겠습니까? 씻으시겠습니까?”

이 공동체에서는 이렇게 누구나 환영하고 함께 사는 이들은 자신이 먹을 것보다 조금 더 많이 일을 한다고 합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더 일하는 교회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에 사셨던 신앙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의 그리스도교 제도 내에서 목사를 하면서 정말 신을 사랑할 때 꼭 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을 사랑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무슨 행동을 할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떤 목회를 해야 할까요?”

두 손 모아 잠깐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성공회 주교였던 존 엘브리스 하인스가 설교를 시작할 때마다 했던 기도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느님, 우리가 당신께 아무런 뜻도 없는 일들을 습관처럼 행할 때, 우리를 용서하소서.”

ⓒ 웹진 <제3시대>

*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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