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부활하셨다(X) 예수가 부활했다(O)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terdiscipilinary Studies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후보생,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도둑들이 무덤 막은 돌을 굴려 버린 뒤 그 수의를 벗겨 가고, 다시 승냥이떼가 그의 죽은 몸을 물어 간 일이 입에서 입으로 옮는 사이에 좀 부풀리어 졌다손 네가 흔들릴 게 무엇이냐. 거기에 휘말린 줏대 약한 사람들이 헛것을 보고 그가 다시 살아 났다고 수군대며 다닌들 네가 두려워할 게 무엇이냐.”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 나오는 구절이다. 예수의 부활설에 놀란 주인공 아하스 페르츠가 그가 찾아낸 신적 존재인 ‘위대한 존재’에게 달려갔을 때 그 위대한 존재가 아하스 페르츠에게 해 준 말로 나온다.

물론 이 이야기가 예수의 부활에 관련해서 특별히 사실성이 더 있다거나 그럴 것은 아닐 것이다. 애당초 어떤 역사서 같은 것의 기록도 아니고 말 그대로 소설 중의 이야기니. 그래도 예수의 부활의 사실성에 대해서 이 정도로 심한 야유도 드물 듯 하다. 하긴, 아예 예수라는 사람의 실존 자체를 의심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니 그런 입장에서 보면 저런 야유도 필요없는 셈이긴 하겠다.


2. 

사실 성서에서도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극구 애쓰고 ‘증명’을 하려 드느냐고 묻는다면 꼭 그런 건 아니지 않나 싶다. 일단 잘 알려진 대로, 마가복음서는 초기 형태에서는 무덤이 비었다더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어서 나중에 다른 복음서 부활 기사 요약본이 덧붙었다. 다른 복음서의 기사들도 도마가 못자국에 손 넣어 봤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처음 봤을 때는 모르다가 어떻게 알게 되니 사라지고 없더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바울의 유명한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 이야기도 목격자 명단을 쭉 늘어놓다가 맨 마지막에 “나도 봤어요” 해 버리니, 바울이 예수를 생전에 봤을 리가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이거 뭐하자는 거야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기도 하고.

여기에 덧붙인다면, 이 모든 이야기들이, 외부에 예수가 부활했다고 시위와 선전을 하기보다는 내부 결속을 위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이들이 이미 많이 지적하는 대로, 성서 속에서의 부활한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만 나타났지, 그를 죽인 로마와 이스라엘 상층부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뭐 그래도, 확실한 것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예수가 처형당할 때 다 도망갔다가, 혹은 위에 언급한 예수의 실존 자체를 의심하는 견해까지 고려한다면 자신들이 그랬다고 말을 했다가, 예수가 부활했다고 말하면서 다시금 자신들의 활동을 재개했고 오히려 그 전보다도 더 활발한 활동을 했다는 것이겠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반전을 생각한다면, N.T.라이트가 말했던, 그 당시 누군가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면 예수의 빈 무덤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거다라는 말이 그럭저럭 말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서두에 소개했던 야유가 사실이라고 해도 빈 무덤 사진은 찍을 수 있는 거긴 하겠지만.


3. 

그러니 이렇게 한 번 물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이라는 것은, 그 추종자 집단이 아닌 외부의 눈으로 보면 어떻게 보였을까/보일까.

일단 부활이라는 것이, 생전의 몸과 같은 것이든 아니면 어떤 새로운 몸이든, 다시 생명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가 그 당시에 그리 드문 것만은 아니었다고 하니, 그런 이야기 중의 한 건으로 수용이 되려면 될 수 있었을 것도 같다. 물론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애당초 그렇게 손쉽게 수용될 이야기가 절대 아닌지라, 당장 복음서에도 에이 그게 말이 되냐 만약 그렇다면 예를 들어 형이 죽어서 동생이랑 결혼한 여자가 나중에 형이랑 동생이랑 자기랑 다 부활하면 어쩔려구 그래 이랬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서도.

그런데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어쨌든 수용이 가능한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부활한 사람이 ‘예수’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다. 일단 이렇게 되묻게 되지 않을까. 예수가 도대체 누구여? 존재 자체를 의심받을 정도로 남긴 기록이 없다시피 하니 이른바 듣보잡 아니겠는가.

듣보잡에서 조금 더 알아 보니 이 친구 사형수란다. 그것도 그냥 사형수도 아니고 불온분자를 처형하는 십자가형을 당한 사형수. 얼레? 그런데 그런 친구가 무려 부활을 했다니 이건 말이 되냐 안 되냐는 둘째쳐도, 불온하기 이를 데 없는 소리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듣보잡 혹은 불온분자가 부활했다고 이야기를 한단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는 것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란다. 속된 말로, 이게 말이야 방구야?


4. 

이게 말이야 방구야인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런 듣보잡 혹은 불온분자가 부활했다는 게 구원의 길이란다. 그렇다면 그런 구원은 지금의 삶을 그냥 유지하면서 혹은 더 상승시키면서 가능한 건 아니지 싶다. 어느 영화 대사를 문면만 보고 끌어 온다면, 오히려 인생을 망치는 구원, 듣보잡이나 불온분자의 길로 빠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받을래 말래라고 나를 밀어붙이는 그런 구원이라는 게 더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이런 구원은 다른 구원과 경쟁을 하거나, 혹은 다른 구원들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다원주의’에 걸맞는 구원도 아닐 터이고.

그리스도교의 구원이 그런 구원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달 국가조찬기도회인지 뭔지 하는 자리에서 그 자리에 설교하러 나온 목사가 아니라 축사하러 나온 대통령이 오히려 진짜 설교다운 설교를 했다고 칭송이 자자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구원의 길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대통령의 ‘설교다운 설교’보다는,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 본인이든 휘하 장관이든 계속 한국 기독교에 “적어도 이건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줄께”란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대상이 되는, 성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그 ‘설교다운 설교’도, “적어도 이건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줄께”와 연관이 전혀 없지도 않은 것이기도 하겠고.

그러고 보니 어느새 1년이 가까워 간다. 대선 토론 자리에서 또 한 번 “교회가 원하는 대로” 발언을 해 준 바로 그 사람에게 성소수자들이 항의를 하러 찾아갔던 바로 그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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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스도인
    2018.04.15 08: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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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의 기본은 성경을 믿는 것이다
    근데 성경을 안 믿는 신학?

    흔히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성경의 진리를 믿지 않고
    오히려 성경의 모순을 파헤치는 자들이 많다

    왜 성경도 안 믿으면서
    신학이란 이름으로 그렇게 연구를 하는가
    시간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다른 종교를 연구하거나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신학정보가 아니고
    차라리 불신학 정보가 맞겠다

    앞으로 불신학 정보란 이름으로
    글을 올리는 게 나을 것 같다





[성소수자 이슈에 자극된 생각들 4] 잔인한 구원, 무서운 구원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terdiscipilinary Studies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후보생,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그리스도교에서 구원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좋든 싫든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 중 하나가 이른바 '개인구원'이라는 단어다. 어떤 입장에서는 이 단어는 그리스도교가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목적이 될 것이고, 다른 입장에서는 이 단어는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거기에만 매몰될 경우 많은 폐해를 낳을 수도 있는 단어라고 할 터이다. 아마도 후자의 입장에 대해서 전자는 근본적인 목적을 소홀히 여길 우려가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 꽤 봤다 그러기도 할 터이고.

그런데 한 번 이렇게 물어 보자. 만약 정말로 흔히 말하는 '개인구원'만 생각하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 건가.

무슨 말인가 싶은 분들에게 일단 들려드릴 야그 하나. 구스타보 구티에레즈가 미국 어느 대학에 강연을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단다. 빵이라는 게 미국 같은 잘 사는 나라 사람들에겐 '육신의 문제'라고 칠 수 있더라도, 자신이 사는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에겐 '영적 문제'라고 말이다. 이 때, 빵의 문제를, 즉 살림살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이 이른바 '개인구원'을, 특히 흔히 상상되는 대로 '사회적 구원'과 연관되지 않는 '개인구원'을 받는다는 게 가능이나 한 것일까. 빵이 영적 문제라는데.

이렇게 묻고 보니, 이 시리즈에서 계속 이야기해 왔던 성소수자의 경우도 어쩌면 크게 다를 것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명색이 구원이라면, 특히나 '개인'구원이라면, 한 사람의 정체성 전체에 대한 구원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그 정체성 중의 중요한 한 부분인 성적 정체성 자체가 죄냐 아니냐라는 저울에 올려져 있다면 그걸 해결하지 않고서 구원이라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여기서도, '사회적 구원'과 연관되지 않는 '개인구원'이란 애당초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사회경제적 소수자에 해당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에서, '사회적 구원'과 연관되지 않는 개인구원이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럼에도 불구하고 개인구원'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일단 본인이 소수자라고 깨달을 일이 없었다는 말이 될 터이다. 자신이 소수자인 적이 없었다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큰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아니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든지.

조금 고약한 경우를 생각한다면, 이런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한 사람이 생각하는 구원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구원이 서로 대치가 되어서,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방해하는 걸로 자신의 '개인구원'을 이룬다는 경우 말이다. 충남에서 인권조례를 기어이 폐지시키고 만 사람들이 아마도 딱 맞는 예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개인구원'이란 말이 참 잔인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말이 되어 버린다.


2.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구원이란 말 자체가, 적어도 그리스도교에서는, 원래 잔인한 말이 아닌가 싶다. 무슨 말이냐고?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출발점은 사실 따지면 이것 아닌가. 우리 모두가 지금 딴 사람 목숨값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그리스도교의 구원 담론의 중요 포인트인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대로, 우리들의 죄 때문에 생목숨을 잃는 누군가가 있어서, 그 누군가의 목숨값으로 살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렇게 남들의 목숨값으로 내가 살고 있는 것이라면, 그 목숨값을 지불하게 만든 내 죄를 직시하거나, 그 목숨값을 치를 사람이 죄인으로 몰리는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현실을 직시할 일이겠다. 그러니 구원이란 곧 심판과 동의어가 될 것이다. 죄인이라는 족쇄와 죄인이 아니라는 착각이 동시에 풀려져 버리는 순간일 터이니.


3.

한국의 성소수자 혐오 영역에서 "이 구역의 미친 놈은 나"라고 대놓고 주장할 수 있을 국민일보에서 몇 년 전 한 트랜스젠더 노인의 삶을 보도하면서 동성애는 사랑이 아니고 혼자 늙고 결국엔 비참해 진다 운운하는 기사를 크게 실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기사를 본 사람들에게서 나온 반응 중의 하나는 성소수자이면서 사랑도 하고, 혼자 늙지도 않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언급하는 것이었다. 방금의 두 가지 중에 굳이 따지면 당연히 후자가 정상적인 사고이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여지도 있지 싶다. 혼자 늙고 비참해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말한다면, 그가 혼자 늙고 비참해진 것이 그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의 증거이지는 않을까. 그를 혼자 늙게, 비참하게 살도록 몰아붙인, 우리의 죄 말이다.

이런 방향으로 말을 꺼내고 보니 생각나는 이야기. 나이 드신 여성 지인 중에 이미 아들들을 성년으로 키운 나이인데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실현하고 살아가는 분이 있다. 이 분이 처음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기로 마음 먹고 그걸 주변에 고백을 하니,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말리는 사람들이 있더란다.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혼자 늙어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고.

앞에서 이야기한 트랜스젠더 노인과 같은 경우가 될 거라는 이야기인 셈인데, 그런 말리는 이야기를 들을 때 이 분은 그 이야기를 하나의 예언처럼 느끼셨단다. 입장의 동일함이 가장 치열한 연대라면, 그렇게 외면당하고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고 싶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그 길거리가 자본주의의 끝자리라면 말이다. 무섭고 두렵고 싫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그래서 이 분은 기도하기를, 그것이 예수님의 뜻이라고 해도 피하고 싶지만 그래도 이루어져야 한다면, 자신의 머리채를 휘어잡아서라도 그 자리에 끌고 가시라고 한다.

외면당하고 길거리에서 죽는 그 자리에 머리채를 끌고 가셔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일단은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구원이라면, 참 무서운 구원이다. 그러나 외면당하고 길거리에서 죽는 그 사람들이 우리의 죄의 증거라면, 그들이 우리의 죄를 지고 있다면, 그리스도교적 지평에서 그들의 자리와 나의 자리를 연관짓지 않고 존재하는 구원이란 존재할 수 없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때 구원이란, 그들이 지고 있는 우리의 죄, 곧 나의 죄를 자각하는,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거나, 그들의 자리가 나의 자리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일 테니, 어느 쪽이든 내가 지금의 나로 더 이상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일 터. 이것이 무서운 구원이 아닐 도리는 없다. 그러나 무서운 구원이라지만 그것 말고 다른 길이 없다면, 갈 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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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이슈에 자극된 생각들 3] 요 8:11과 마 7:1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terdiscipilinary Studies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후보생,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성소수자 혐오자들, 특히 기독교 계통의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기를 쓰고 ‘증명’하려는 것 중의 하나가 성소수자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때 굳이 ‘후천적’이라는 것을 기를 쓰며 주장하는 이유는,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이 ‘선천적’이라고 주장한다고 이들이 믿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반박하려는 것일 터이며, 나아가서는 ‘후천적’인 것이므로 당연히 ‘교정’도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실 ‘선천적’/’후천적’이라는 프레임은 성소수자 옹호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도 종종 채택하는 프레임이기도 하다. ‘선천적’으로 그렇다는 데 어쩔 거냐 그런데 왜 안 된다고 난리냐 이런 ‘옹호’ 의견이 종종 보이는 것도 현실이니까.

   어쨌든 저런 요설에 대해서는 바로 ‘후천적’이면 어쨌다는 건데란 반문이 나올 것이고 사실 이거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이야기해 볼 거리가 있다면,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선천적’/’후천적’ 프레임으로 읽는 것이 애당초 맞는가 하는 것일 터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이 자신들에게도 “어, 이상해, 나는 남들과 좀 다른 것 같아”라고 ‘발견되는’ 것이라는 것이며(그래서 어떤 성소수자 운동가는 이런 의미에서 성소수자는 비이성애자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자신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이 어떻게 성립된 것인지 추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니까. 이런 이야기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냐 아니냐’라는 식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것까지는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좀 더 성실히 읽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선천적이니 후천적이니 이런 야그로 읽어 치워 버리지는 말아야 할 것은 확실할 것이다.

  특히나, ‘기독교인’이라면 문제가 또 달라진다. 왜냐고? 당장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되새겨 볼 일이다.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모태신앙’이 아닌 이상 ‘선천적’이란 말은 못 할 테지만(사실 ‘모태신앙’이라고 해도 그걸 ‘선천적’이라 할 수 있는지는 또 의문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신앙이 ‘후천적’이라고, 지금 이 글의 맥락에서라면 ‘자기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신앙을 가지게 된 것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고백은 당장 걷어치워야 할 테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가장 중요한 정체성에 ‘선천적’/’후천적’이란 잣대를 들이댄다는 게 넌센스임을 이렇게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다른 이들의 성 정체성/성 지향성엔 그 잣대를 들이대겠다니, 이거야말로 코미디 아닌가.


2. 


  소위 ‘후천적’이란, ‘선택’이라고 굳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심보를 조금 더 뜯어 본다면, 그 심보를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들의 입에서 종종 오르내리는 또다른 이야기를 끌어들일 만할 것이다. 동성애가 그 당사자들간의 ‘선택’일 뿐이거나, 혹은 당사자 외에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인정해 주어도 된다면, 소아성애도, 근친상간도, 다 인정해 주어도 되느냐는 그 이야기 말이다.

  일단 바로 생각나는 말대꾸가 있다면 그거 다 ‘이성애’ 아닌가요일 것이다.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는데 왜 동성애를 끌어들여 지지고 볶고냐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대꾸가 틀린 거야 절대로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말대꾸를 하기 전에, 저 소아성애도 근친상간도 어쩌고 하는 말을 조금만 더 뜯어 보면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다. 그럼, ‘선택’일 뿐이거나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인정’의 근거로 삼고 나면, 소아성애니 근친상간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반대할 근거라고 들고 올 것이 더 이상 없어져 버린다는 것인가? 그렇게 근거가 없어져 버리니 소아성애니 근친상간이니 하는 것들을 인정해 줄 수밖에 없어져 버린다는 것인가? 그런데 그런 것들을 인정하면 안 되는 건 자명하니, 역으로 ‘선택’이니 ‘피해 없음’이니 하는 근거로 동성애를 인정해 주어서도 안 된다는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묻고 나면, 아무리 봐도 소아성애니 근친상간이니를 들먹이는 이 이슈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걸 들먹이면서 이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답시고 여기는 사람들일 것 같다. 그들이 그걸 들먹이면서 지키고자 하는 소위 ‘성윤리’라는 것이 속 빈 강정도 이런 속빈 강정이 없다는 말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 속 빈 강정 주제에 감히 남의 삶을 좌지우지하겠다고 지껄이고 있으니 더더욱이나.


3. 


  1과 2에서 언급했던 집단들이 목청을 높이는 이슈 중 하나가 ‘군형법 제92조 6항’이다. 남성 군인들 간의 합의에 의한 성관계마저도 처벌하는, ‘계간죄’ 어쩌고 하는 바로 그 조항. 어디서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걸 본 적도 있다. 남자들끼리만 모여 있는 군대에서 ‘동성애’를 허용해 주면, 그건 대놓고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당하라는’ 이야기 아니냐고.

  여기에 대해서도 바로 말대꾸를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면 하급자에게 강제력을 행사한 상급자만 처벌하면 그만 아니냐 왜 쌍방이 처벌되어야 하냐. 그리고 이런 경우도 아니고 ‘합의’에 의한 경우까지 처벌하겠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냐 이런 이야기부터. 이미 성소수자 군복무를 허용한 나라들이 있는데, 한국은 그런 나라와는 다른 ‘별종’들만 사는 나라라는 소리냐는 이야기도. 실제 군대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밝히게 되면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경우(물론 ‘성폭력’에 가까운 피해까지 포함해서)가 많다는 현실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말대꾸를 당연히 수긍하면서도 역시 여기서도 저 말 자체를 조금 더 뜯어보고 싶은 구석이 있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대놓고 ‘당하라는’ 운운하는 바로 저 이야기. 이걸 ‘당한다’ 어쩌고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상급자가 하급자를, 저항할 수 없는 하급자를 ‘여자’ 보듯이 할 수 있어서 ‘여자’에게 하듯이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터인데, 그럼 대체 평소에 ‘여자’를 어떻게 보고 있길래, ‘저항할 수 없는 조건’이 된다면 저런 행동이 만연할 것이다(고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말이다. 즉, 여기서도 정작 드러나는 건, 동성애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이성애자 남자들이 ‘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그 시선을 ‘저항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어떻게 옮기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4.


  성소수자들, 아니 비단 성소수자들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배제를 겪는 존재들에 대해서 동맹의 자세를 취하려 하면, 흔히 기독교인이라는 작자들이 반론이랍시고 들먹이는 성서구절이 요한복음 8장 11절이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말은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그런데 지금까지 글을 쭉 써오다 보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마태복음 7장 1절을 봐야 할 거란 생각이 든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가능하면 2절까지도 봐야 할 거다. 비판하는 그 잣대로 자신들도 비판을 받을 거다라는 그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아마 같은 장의 22~23절도 보면 더 좋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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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이슈에 자극된 생각들 2] 창조과학/과 동성애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terdiscipilinary Studies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후보생,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최근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다가 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고 결국 사퇴한 한 교수가 이른바 ‘창조과학’을 신봉한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었다. 물론 ‘사퇴’까지 이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른바 ‘뉴라이트’ 경향의 역사관에 따른 활동들이 노출되면서였지만, 그러한 부정적 요인들이 드러나도록 촉진하는 분위기가 처음 조성되는 데에 ‘창조과학’의 역할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듯 하다.

   창조과학이 한 공직 후보자의 평가에 이렇게도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담론들이 그만큼 비상식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며, 좀 더 깊게 들어가면, 그러한 비상식적인 점들은 이미 해당 인사가 공직 후보자에 오르기 전에 아예 걸러지거나 혹은 시정을 약속받아야 할 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처 없이 버젓이 등장했기 때문에 더더욱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오게 되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장관이 되기야 했지만 다른 부처의 장관 후보자도 이른바 ‘유사역사학’ 문제 때문에 비슷한 상황을 겪기도 했었고 말이다. 

  이렇듯 문제시되고 있는 창조과학의 비상식적인 속성은 역시 창조과학이 사실상 “성서에는 생명이 (진화가 아니라) 창조된 것이라고 나와 있으므로 그것이 맞다/맞아야 한다”는 전제를 미리 가지고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담론이라는 점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리고 그 ‘증명’을 위해서 과학적인 것인양 보이는 담론들을 만들어 내고 그 담론들에 과학과 동등한 자격을 부여해 달라고 우기는(그래서 역설적으로 ‘과학’의 권위를 더더욱 보강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대중들의 일각에 퍼져 있는 편견(그래서 유달리 많이 들먹이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생명이 진화되었다면 ‘최초의 생명’은 어디서 나온 거냐. 그러니 진화론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이기도 하다)을 끌어와, 자신들의 견해의 정당성을 보충하려 드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모든 모습은 결국, “성서가 생명이 창조되었다고 했으므로 진화가 아니라 창조가 맞다/맞아야 한다”는 전제가 깊이 뿌리박혀 있으므로 가능한 것일 터이다.


2. 


  그런데 이렇게 창조과학을 곱씹어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성서가 생명이 창조되었다고 했으므로 창조가 맞다고 우기는 것과, 성서가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했으므로 동성애는 죄다라고 하는 것 사이에는, 대체 다른 것이 무엇일까.

  일단 바로 앞에서 보았듯이 출발점은 다르지 않다. “성서가 그렇게 말했다니까”이다. 물론 성서에 등장하는 소위 ‘동성애’가 오늘날 정설로 정립된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가 아니라는 것은 그들에게 상관없다. 오히려 성서에 그런 동성애가 안 나오므로 동성애는 성적 지향이 아니라 성적 일탈이 될 뿐이라고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성서가 그렇게 말했다니까”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 특히 ‘과학’의 외피를 쓰고 있는 이야기들을 끌어 대고, 거기에 대중들의 편견까지 동원한다는 점에서도 둘은 다를 바 없다. 벌써 논파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오는’ “동성애=AIDS” 담론이나 전환치료 담론, 도덕적 타락으로 매도하기 등의 담론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하나 더 보탠다면, 동성애를 이렇게까지 매도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좀 이상한 건 맞지 않나라고 여기는 흔한 생각이 결국 저러한 매도의 연료가 된다는 것은 굳이 두 번 말할 이유는 없을 듯 하다.


3. 


  그런데, 이렇게 창조과학이나 반동성애담론이라 그 형성 원인과 작동 방식이 별 다를 바 없다고 한다면, 한 가지 질문이 머릿 속에 생긴다. 별 다를 바 없는 두 개의 담론 중, ‘창조과학’은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흠결’이 되는데, 어째서 ‘반동성애담론’은 거꾸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낙마시키고 대법원장 후보를 낙마시킬 뻔한 ‘동력’이 되는 것인가.

  그만큼 반동성애담론을 밀어붙이는 극우적 개신교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극우적 개신교의 집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창조과학도 집착 대상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저러한 차이의 이유를 ‘극우적 개신교’에서만 찾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을까. 아니, ‘극우적 개신교’의 입장에서도, 적어도 동성애 이슈에 대해서는 상대편에 ‘틈’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앞에서 이미 동성애를 강하게 매도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좀 이상한 건 맞지 않나라고 여기는 흔한 생각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생각이 명백한 하나의 ‘틈’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얹어 본다면, 동성애 이슈에 대해 인권보호라는 당연한 차원의 입장 표명을 못 하는 이유를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라고 후보 시절에 변명하고 아예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대선토론 때 이야기하기도 했던 현직 대통령과, 그 변명에 자신들 나름대로의 변명을 지지자들이 양산하는 모습에서도 그러한 ‘틈’이 보인다고 할 것이다.

  특히 후자의 모습을 곱씹어 보면, 그 지지자들이 대선토론 때의 후보의 문제발언에 대해 LGBT 운동가들이 항의 퍼포먼스를 한 것을 두고 “만만하니까 그런 항의를 하는 거냐”라고 거품을 물었던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자신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할 것이다. 이 때, 전자가 전형적인 ‘권력자’들의 행태(그럼에도 여전히 ‘노무현’을 들먹이면서 자신들을 ‘약자’라고 생각하는 행태도 보이지만 말이다)라는 것도 짚어 둘 만할 것이다. 물론 이 때의 ‘권력’은 흔히 생각하는 ‘소수에 독점된 권력’이 아니라 ‘다수’로서 행사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든지 ‘소수’에 대한 배제로 돌변할 수 있는 그런 ‘권력’이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쯤 오게 되면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던, ‘강하게 매도하진 않아도 좀 이상한 건 맞지 않나’와도 통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배제. 그리고 그런 배제에 대해서 No라고 말하라는 것이야말로 성서의 핵심 메시지 중의 하나라는 건 두 번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러니, “성서가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니까 동성애를 죄라고 하고 반대해야 한다”는 게 ‘성서적’ 신앙이라는 말 이상의 코미디가 어디 있겠나. 오히려 성서 모독으로 짤없는 지옥행을 예약한 언행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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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HRA
    2017.10.09 18: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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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는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에 법 질서를 깨고 무너트리는 죄다...
    당신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그렇게 소수의 인권이라 이야기할수 있는가...
    먹으면 정녕 죽는다...하신 선악과와 같이
    하나님이 죄라 하셨고 죽이라 명 하셨으니
    분명 죄고 하지 말아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
  2. jmh
    2017.10.11 14: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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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끼가 어찌 찍는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그 영화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이사야 10:15,16

    우리가 어떤 위치인가요? 도끼이고 막대기이며 몽둥이이지요..누구의 손에 붙들여있는지 안다면 경홀히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도 하지 않는 동성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지 맙시다.!



'[성소수자 이슈에 자극된 생각들 1] 그들이 ‘이단’인 이유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terdiscipilinary Studies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후보생,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인간 예수가 하느님이다”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부인할 수 없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그래서 더더욱 더 골치거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하느님인 인간 예수”가 있음으로 해서, 그리스도교는 같은 히브리 성서의 전통을 공유하는 유대교나 이슬람교와는 달리,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반드시 ‘삼위’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인간 예수 이전의 하느님, 하느님인 인간 예수, 인간 예수 이후의 하느님 이 3가지 현상을 반드시 함께 다뤄야 하니까. 한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3가지 현상을 관통하는 ‘한 가지’ 통일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하긴 오히려 그래서, 이 ‘3과 1이라는 두 숫자의 관계’에 대해서 담론이 풍성해지는 측면도 없지 않긴 하겠지만.

   게다가 이 ‘하느님인 인간 예수’라는 현상 자체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하느님과 인간은 철저하게 구별된다는 사고가 기본에 깔려 있는 것이 그리스도교를 위시한 소위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들의 특색인데, 갑자기 한 인간이 동시에 하느님이기도 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말이다. 실제로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 그리스도교 교회 중에서도, 사실은 ‘하느님인 인간 예수’가 아니라 인간성을 흡수하여 단일한 신성을 만든 ‘하느님인 예수’였다고 주장하는 교회들이 존재하니까.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서 현재 ‘정통적인 견해’는 이런 것이다. 예수는 “참 하느님이신 동시에 참 인간이다”라는 것.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쨌든 모두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래야만 예수라는 존재를 온전히 해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담긴 견해라고 할 수 있겠고, 필자도 그러한 생각에 큰 이의는 없다.

   그러나, ‘참 하느님인 동시에 참 인간’이라고 말을 하게 되면, 다른 질문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도대체 ‘참 하느님’과 ‘참 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2. 

   어느새 성소수자 인권운동 지지 기독교인의 대표격이 되어 버린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에게 다른 교단에서 엉뚱하게도 무려 '이단 시비'를 걸었다. 그 이단 시비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과정에서 요런 소리가 나왔나 보다. 성소수자 이슈 관련 신학적 논의에서 예수를 성소수자라고 한대나. 그러니 이런 '이단 논의'를 소개하려는 목사가 '이단'이 아니면 뭐냐면서.

   글쎄. 먼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긴 한지부터가 확인이 되어야겠으나(뭐 필자도 예수와 요한복음의 '그가 사랑한 제자' 사이의 관계를 동성애적 상상으로 읽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앞에서 본 것처럼 “참 하나님이자 동시에 참 “인간”이라는, 그런 인간인 예수인데, 그 인간 삶의 중요한 측면 중에 하나인 '성'이라는 측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비어 있다시피 하다는 것이다(그래서 덕분에 '막달라 마리아'와 짝짓기하는 상상이 종종 나오기도 하지 않던가). 웃기는 것은 그렇게 비어 있는 와중에도 '남성'이란 건 꼭 붙들고 앉아, 예컨대 여성이 신부나 목사가 되면 절대 안 된다는 근거 중의 하나가 된다고 우긴다는 것이지만. 

  사실 '그가 사랑한 제자'니 막달라 마리아니 뭐니 그런 상상하지 말고, 그냥 기록에 남은 대로 성 관련 이야기는 아예 없었다, 즉 성 측면에선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라고 한다면, 농담 조금 심하게 섞으면 '고자'라 해도 할 말 없고, 조금 진지 모드를 섞어 보면, LGBT가 AIQ로 확장될 때 A(무성애자)라고 해 볼 만도 할 텐데, 그럼 예수를 성소수자라고 한다고 해서 굳이 틀린 말이 될 것도 없을 지도.

   물론 기록이 없는 것뿐인데 함부로 추측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방금까지의 이야기가 ‘함부로 추측’이라면, 예수가 음경을 갖고 있었다고 ‘이성애자 남성’이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함부로 추측’이긴 마찬가지일 터.


   3.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라는데, 그래서 ‘참 하나님’은 무엇이고 ‘참 인간’은 무엇인가, 그래서 예수가 어떤 존재라는 것인가를 물으려니, 당장 ‘참’까지도 안 가고 ‘인간’부터 이렇게 그냥 넘어갈 수만은 없게 된다. 어쨌든, 예수가 ‘참’자를 달든 말았든 '신인 동시에 인간'이라면, 그건 1차적으로는 예수라는 존재, 더 나아가 그 예수라는 존재에 근거해서 신을 이야기해야 하는 그리스도교라는 지평을 깔고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예수에 근거해야 한다는 뜻일 것은 분명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나가 보면, 예수란 존재가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예수라는 존재에 근거해서 ‘신’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과 ‘인간’을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신'이란 것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는 '인간'이란 것의 모든 구석구석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렇다면 반대로 '인간'이란 것을 이야기할 때도 언제나 '지금 이야기되지 않은 것'에서 나타날 지도 모르는 '신'에게 뒤통수 맞을 준비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당장 바로 앞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한 종류인 성소수자 문제만을 고려해도, 상황이 꽤 달라지지 않던가. 

   인간의 모든 구석구석을 건드린다면, 그런 '신'은 우리에게 어떤 따라야 할 '모범'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방금 이야기했듯이 차라리 뒤통수 때리는 존재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아니 그래서, 그를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나를 소환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그래서, 필자는 "예수를 본받자"라는 이야기가 그다지 맘에 내키지 않는 편이다. 그건 이미 '예수'를 어떤 '모범', 즉 이미 현재의 세상에서 '모범'이라고 수긍이 되는 존재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테니. 또한, 인간의 모든 구석구석을 건드림으로써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신’이라면, 그 ‘신’을 이야기하는 근거가 되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예수’는, 1세기 팔레스틴에 살았다는 기록을 남긴 존재로서의 ‘역사적 예수’와 동일하지만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모든 구석구석을 이야기하면서 '신'이란 것을 찾아야 한다면, 예수를 통해서 '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런 의미라면, 예수를 통해서 이야기되는 '신'이 성소수자라는 게 '이단'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에 이단이라고 거품을 물면서 ‘신’은 절대 성소수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바로 그들이 '이단'이지 않겠나. 인간의 모든 구석구석을 통해 이야기되어야 하는 ‘신’을, 감히 ‘성소수자 인간’은 빼고 이야기하자고 덤비는 ‘신성모독’자들일 테니까 말이다.

   뭐, 길게 이 소리 저 소리 늘어 놓았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 한 마디면 될 일이다. 

   "아따, 성소수자도 되지 못하는 신을 어따가 쓸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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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기 민주정부'가 성공한다면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 딴지일보와 한겨레의 합작으로 김어준이 정당별로 비례대표 후보 1인씩을 골라 인터뷰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민주노동당의 인터뷰 주자는 단병호 전노협 초대 위원장. 그 인터뷰 에서 김어준이 물었던 질문 중 하나는 발모제를 바를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고, 단 위원장의 대답은 발모제를 바른다면 자신은 아마도 더 이상 단병호가 아니게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인터뷰를 마감하면서 김어준이 남긴 코멘트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는 '전봉준'이다. '동학'은 그의 '계급'이고, '백성'은 그의 '노동자'며, '구세제민'은 그의 '노동해방'이다. 그를 깨운 건 인간에 대한 연민. 무인정권의 탄압과 자본의 착취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 그 세력을 전국으로 규합하고 관에 맞선 '적두장군 단봉준'. 누군들 거저 사는 사람 있겠냐만 제 살을 깎아 남의 몫까지 대납하는 그 정도 삶 앞에선 주댕이 살짝 닥쳐 주는 게 예다.”

   이렇게 써 놓고, 그는 코멘트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고 있다. 

   “지난 17년간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노동계 야전사령관의 강철 화이바, 빨간 머리띠가 풀리는 날, 축배 대신 발모제를 도포해 주리라. 내 몫의 부채는 그렇게 변제하련다. 꾸벅.”

   이 인터뷰가 나간 후, 감동먹었다는 댓글이 대부분인 가운데, 이런 댓글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존경한다니까 권영길(필자주-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3.9%를 얻었고 이 당시는 창당 당시부터 민주노동당 대표로 재임 중이었음)이 다시 보이는군요.”


   2. 

   엄기호의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고 이렇게 논평한 구절이 나온다.

   “왜 우리는 노무현을 미워할 수 없었던가. 그는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분열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었다. 분열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전교조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공교육이 싫어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방학이면 아이를 불러 선행학습과 과외를 시킨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카페를 차리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후배는 주식 투자로 생계를 이어간다.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친구는 들어가 살 만 하면서 투자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살기 위해서는 삶이 분열되어야 한다. 이 분열의 빈틈에 적당한 합리화와 죄의식이 뒤죽박죽 엉킨 채 우리는 살아간다.

   노무현은 권력의 정점에서 이러한 분열적인 삶을 보여 주었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던 날 노무현은 멍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지금 국민들이 저를 보고 계십니까?"하고 읆조렸다고 한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그의 영혼과 그의 통치가 분열되어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집권 내내 항상 자신의 영혼은 통치자의 자리가 아니라 '당신들이 있는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이것이 집권 중에는 그를 변명으로 일관하는 비겁한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막상 그가 가고 나자 우리는 분열적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우리 모두의 초라하고 팍팍한 삶을 그를 통해서 만났다.”

   앞의 두 텍스트가 보여주는 견해에 동의하지도 않을 수도 있다. 이 텍스트들이 대상이 되는 두 사람과 각각에 얽힌 일들에 대해서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이 텍스트들의 밑에 깔린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도 등등.

   그렇지만 어떤 판단을 내리든지 간에, 이 텍스트들에서 이러한 느낌은 충분히 추출해 낼 수 있을 듯 하다. 단병호는 ‘존경’의 대상은 되어도 ‘동일시’의 대상은 될 수 없지만, 노무현은 ‘동일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실제로 그 현상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을 자임하는 이들의 삶과 관련이 크다고 말이다. 여기에, 설령 ‘존경’은 하더라도, 아니 어쩌면 ‘존경’을 하기에, ‘발모제’같은 ‘세련’을 덧붙이고자 한다는 것까지도 짚을 만 하겠다.



   3. 

   대선 기간 막바지에 문재인 후보의 인권변호사 활동에 대한 여러 가지 ‘미담’들이 지지자들 사이에서 돌았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이런 트윗이 나왔다.

   “경고한다. 정의당&노동당은 문재인 대통령님 앞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논하지 말라. 니네들 입으로 싸울 때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온몸으로 싸워오신 분이시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케이스이다. 그러나, ‘극단적’이긴 해도, 분명한 것이 이 케이스가 ‘극소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니, 설령 ‘극소수’였다고 하더라도, ‘극단’이 이렇게 나온다면, ‘주류’도 저런 식으로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속칭 ‘깜’도 안 되는 것들이 까불지 마라 이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문재인’과 같은 (유능한) ‘인권변호사’, 즉 지원자의 자리가, 당사자를 대변하려 하는(그렇지만 힘이 약한) ‘정의당/노동당’보다도 ‘노동문제’에 대해서도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공유할 것이라 보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닐 성 싶다. 물론 저런 언설과 이런 생각에서 노동자들의 자리는 ‘노동 문제’라는, ‘객체’의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비단 41%에 달하는 그의 대선 때 지지자들만은 아닌 듯한 요즘인데, 그렇다면 그 때 ‘성공’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지원자’의 자리에서, 노동자들과 ‘국민’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권익을 향상시키고 제도를 개선하고 싶을 것이다. 그 권익 향상과 제도 개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 상황이나 외교 관계의 호전 등도 물론이고. 그런 결과를 통해서 지지를 유지하고 재집권을 이루어낼 때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을까. 조금 덧붙인다면, 이런 일들은 아마도 ‘그의 친구’가 15년 전에 집권했을 때도 하고 싶었을 터일 테고.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그의 친구’의 완벽한 복권일 것이란 기대도 있을 것이다. 그의 추모식에서 그를 ‘앞서서 간 임’으로 모시며 ‘산 자여 따르라’고 노래 불러도 정당할 그런 완벽한 복권. 그렇다면, 그런 ‘성공’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게 되는 것일까.


4. 

   한국 사회 비정규노동 영역의 대표적 이슈 중 하나인 KTX 해고승무원 문제에 대해서 의외로 이런 반응들이 꽤 있다. 정규직 자리를 공정한 경쟁으로 따내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비정규직으로 들어간 후 정규직으로 만들어 달라고 우기는 ‘샛길’을 뚫어서 차지하려는 욕심이라는 것.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행보로 주목받았던 것이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였다. 그리고 일부 대기업들이 이에 호응해서 정규직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정규직화’는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 보면,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의 정규직’인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아마도 문재인 정부 재임 내내 이어질 것 같고.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의 정규직’도, 적어도 고용불안이라는 중요한 문제 한 가지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성과와 진전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정규직’과 ‘무기계약직’과 ‘자회사의 정규직’을 구분하는 기준은 대체 어떤 것일까.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가 본격화되면 어쩌면 이 ‘구분 기준’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일도 본격화될 터인데, 그렇다면 이것은 차별 철폐가 아니라 차별의 합리화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여기에서 바로 앞에 언급했던 KTX 해고승무원 관련 상황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사정은 딱하더라도, ‘공정한 경쟁에 따른 결과’라는, ‘합리적 차별’의 선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사실 KTX 해고승무원 케이스에 드러난 저런 시선은 저 사건이 처음 벌어진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미 한국사회에 일반화된 시선이기도 하다. 당장 얼마 전의 ‘교육공무직법’ 관련 사태가 딱 이런 경우이기도 했다. 능력이 있어서 공무원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 대한 불공정이라는 시선이 꽤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선을 보여 준 사람들의 상당수가 아마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에게 투표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그의 지지자들. 특히나 그 정부에 강한 동일시를 보이는 그 지지자들이 꿈꾸는 것은, ‘공정한 경쟁’과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공정한 대접’을 받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것.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 혹은 갖추기를 선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레토릭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 혹은 갖추기를 선망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기도 하겠고 말이다.


5.

   필자가 생각하기에, ‘사회적 연대’라는 차원에서는 오히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이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는 더 나았던 것 같다. 같은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갔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의 김주익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무관심 속에 죽어서 내려오고, 이명박 정부 시절의 김진숙은 ‘희망버스’와 함께 살아서 내려왔음을 생각한다면. 문재인 정부가 만들려는 것이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합리적인 차별’이고, 그것에 ‘능력’을 갖거나 선망하는 ‘보통 사람들’이 동의한다면, ‘사회적 연대’에서는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보다는 같은 ‘민주정부’라는 노무현 정부 시절과 가깝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은 기우일 뿐일까. 대통령 선거 당시, 그 때는 후보였던 지금 대통령 본인의 문제발언도 있었고, 지금 당장 육군참모총장에 의해 군인들이 색출되어 처벌을 받으면서도,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의 비난이 오히려 벌어지는 성소수자 관련 이슈의 상황은, 아마도 그것이 ‘기우’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실마리일 듯 하다.

   확실한 것은,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하에서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잘못할 때’의 ‘비판’이 아니라는 것일 터이다. 적어도 그 때 ‘비판’에 깔린 뉘앙스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비판’한다는 것이라면 말이다. 오히려 필요한 마인드는,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때, 그 ‘성공’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합리적인 차별’과 ‘능력에 따른 정당한 대접’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바램이 실현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라면, 그 바램을 제대로 비판해 내지 못하면 사회적 연대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보통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도 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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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토핑에서 민중신학까지–신은 명사일까 동사일까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세탁소 일을 두어 달 정도 했던 적이 있다. 세탁소에 처음 일하러 갔던 날 이것저것 일을 배우다가 어색한 단어 하나를 들었다. ‘배깅’이란다. 대충 bagging쯤 되겠거니 하고 이해했고 세탁물 포장하란 이야기인 줄이야 알아듣긴 했는데, bagging이라니 bag이 동사라도 된단 말인가 싶은 느낌.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현상이 부지기수다. 피자 토핑(topping) 같은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익숙한 말일 터이고, 요즘 한국에서도 건설회사들이 하우징(housing)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모양이다. 교통 벌금이 두 배가 된다는 말을 doubled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럴 듯 하다. 작년 미국 대선 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back이라는 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트럼프 지지자를 두고 those who back Trump 뭐 이렇게 쓰는 식이다.

   그래도 이런 단어들은 영어 사전을 뒤지면 동사로서 쓰는 경우가 있다고 나오긴 한다. 그런데, 식품점에 장을 보러 갔더니, 야채를 쌀알 비슷한 모양으로 잘라놓고 파는데, 포장에 Riced라고 써 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싶은 느낌. 아마 한국어로 직역하면, ‘쌀한’ 혹은 ‘쌀된’쯤 되려나? 그러니까 대강 이런 이야기가 되겠다. 명사나 형용사가 그대로 동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언젠가 서울시가 I seoul you라는 홍보문구를 내밀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이 있었는데, 위와 같은 상황을 깔고 보면 이해가 전혀 안 가지만도 않겠다. 물론, 그래서 저 문구에서 정작 ‘seoul’이 뭔 뜻인지가 아리송하다는 게 문제겠지만. 


  2. 

   Bag, house, rice 같은 말을 저렇게, 명사를 그냥 동사같이 쓸 수 있다니까, 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본다면, 이런 용례를 God이라는 단어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물으려니 속에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은, God, 즉 신이라는 말은, 어쩐지 굳이 따져 본다면 명사를 동사같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동사를 명사같이 써야 하는 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분들도 아마 이런 이야기에는 동의를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물론 ‘성서’나 ‘교회의 전통’ 등을 통해 더 많이 파악을 할 수 있다고도 하겠으나, 그것을 감안해도 결국은 ‘불가능’이긴 마찬가지다. 그 말은 곧 신에 대한 이해를 ‘명사’적인 방법으로 할 경우 그 ‘명사’의 내용을 완벽히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되지 않겠는가.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최근에 내신 책 제목마따나, 신은 ‘알 수 없는 분’인 것이다.

   그러나, 명사로서의 신이 ‘알 수 없는 분’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사건에 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하고 실제로 많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아니, 종교와 신앙이란 것 자체가 바로 그 ‘어떤 사건을 두고 그 사건에 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말하는 행위’의 집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집적된 행위들을 성찰해 가면서, ‘신’이라는 ‘명사’의 내용을 완벽하게는 불가능해도 더 많이 채우게 되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신’이란 단어의 1차적 의미에 가까운 품사는 명사라기보다는 동사가 아닐까 싶은 것이고, 명사로서의 신은 그런 동사의 집적에서 명사의 요소를 뽑아내고자 할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3. 

   신이라는 단어가 동사를 명사같이 써야 하는 말이라면, 당장 직면하는 현실은 그 ‘동사’가 정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즉 어떤 사건에 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할 때, 그 ‘어떤 사건’이라는 것이 정말 제각각이고, 그 제각각의 내용이 쉽게 타협이나 조정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 제각각 중에서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가리려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가능한 한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가리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이 두 가지 태도가 공존하면서 어떤 국면에서는 전자가 나타나고 어떤 국면에서는 후자가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필자는 굳이 골라야 한다면 차라리 전자를 고르고 싶긴 하다).

   그런데 만약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가릴 수 있다면, 그 때 그 ‘맞는 것’이 되는 ‘동사’로서의 신은 인간에게 ‘모범’이 되는 그런 ‘동사’일까. 일단 이 글은 ‘그리스도교인’ 대상이니까 ‘그리스도교’ 안에서만 이야기해 본다면, 그 ‘그리스도교’에서, 신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실마리라는 ‘예수’는, 더도 덜도 아닌 정치범 사형수다. 게다가 그는 생전에는, 그 당시 신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실마리라는 ‘율법’이나 ‘전통’을 두고, 그런 것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든 나는 이렇게 이야기할래 그게 맞어라고 뻗댔던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예수’를 두고 묻는 적절한 질문은, 흔히 생각하곤 하는 이런 질문이 아닐 수 있다. “예수가 신이라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닮을 것인가” 혹은 “예수가 신이라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오히려 그런 질문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런 질문 아닐는지. “예수가 신이라면, 정말 ‘저런’ 예수가 신이라면, 도대체 ‘신’이란 건 뭔가? 아니, ‘저런’ 예수를 신이라고 하는 세상이라면, 대체 그 세상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건가?” 즉, 예수를 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모범’이나 ‘절대자’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예수를 ‘신’이라고 밀어붙임으로써 세상을 당혹스럽게, 난감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당혹과 난감을 풀어내기 위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도록 강제하는 일이라는 뜻도 되겠다.

   이런 예수 이야기의 양상에서 ‘신’을 이야기하는 데 대한 지혜를 빌어온다면, ‘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해답’일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이고 ‘출발’일 것이다. 또한, ‘신’을 이야기한다고 어떤 ‘권위’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직 그 이야기하는 사람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삶에서의 ‘사건’에 다가가서, 자신의 출발점을 잡아내고 그것을 자신 스스로 얼마나 밀어붙일 수 있을까를 이야기할 수 있을 뿐. 그리고 ‘권위’나 ‘보장’이 없으니, 그 밀어붙임이 낳는 빛과 그늘에 솔직해야 할 뿐. 또한, 자신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닐 터이므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맞닥뜨리는 것을 감당해야 할 뿐.


   4. 

   민중신학 연구자 중 한 명인 필자의 사견은 방금 말한 것과 같은 방식의 신 이야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신학 중 하나가 민중신학이라는 것이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두고,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 사람은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강도 만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면, 즉 ‘구원을 주는 존재’라면, 이 지점에서 나올 수 있는 적절한 반응은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기보다는 “아니 그런 게 구원이에요? 그럼 도대체 그런 구원을 왜 받아야 해요?”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구원이라고, 그런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다”라는 말의 뜻이리라. 나는 이 자본주의 혹은 이 민주주의 세상에서 잘 살고 있으니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따로 구원이 필요없겠다 싶은 사람들에게, ‘잘 산다’는 것이, 그래서 ‘구원이 필요없다’는 것이, 착각일 뿐이라고 밀어붙이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것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다”라는 말의 효과라는 것이다. 이 말을 출발점으로 하여 조금 더 나가 본다면, 그런 ‘잘 산다는 착각’이야말로, ‘사람’이 ‘강도’를 만나게 되는 세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지금은 어떤 종류의 ‘잘 산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을 일단 권력의 자리에서 막 떨구어 낸 시간이다. 아마도 6주 정도 지나면, 저런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할 것 같아 보인다. 이른바 ‘정권교체.’ 뭔가 ‘진보적’인 일들을 할 거라는 정권이 들어선다는 ‘정권교체.’ 그 ‘정권교체’가, 다른 종류의 ‘잘 산다는 착각’을 재생산하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민중신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권력을 잡든지 간에, ‘강도 만난 사람’ 앞에서 당혹해 하고, 그 당혹을 출발점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내라는 강제를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갈 때까지 가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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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사회적 분열과 "비시민"의 출현에 대한 고찰(4)


-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서론


    2.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합의의 형성과 붕괴

     (1)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의 형성

     (2) 남한 국가의 형성과 근대화에 미친 미국의 영향 

     (3) 남한 사회의 사회적 균열의 시작 – ‘민중’의 출현

     (4) 남한 사회의 내부합의의 동요와 붕괴

     (5) 남한 민족주의의 분화와 분열


    3. 남한 사회에서의 ‘무능력자’와 ‘무자격자’ 형성의 구조

     (1) 민주화 시대 ‘시민’의 출현

     (2) 남한 경제구조의 신자유주의적 변화

     (3) ‘시민’ 내부의 사회적 배제와, ‘무능력자’와 ‘무자격자’의 낙인이 찍힌 ‘비시민’의 출현


   이승만/박정희 정부 때의 야당은 반공주의와 결합한 자유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고, 박정희 정부 때부터 등장한 민중운동은 반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포용했던 반면에,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와 거래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인 자유주의적 ‘시민’은, 위에서 언급한 기존의 야당과 민중운동 양자 모두에 대해 거리감을 두었다. 이러한 ‘시민’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사회의 규칙으로 수용하고,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과도한 반공주의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기존의 사회운동, 특히 민중운동에도, 자신들에게 과도한 도덕적 부담을 강요한다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각주:1] 그리하여, 이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에 걸맞는 ‘상식’을 아는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표준의 담지자임을 자처했다.[각주:2] 이 ‘시민’들은, 정부가 자신들과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저항을 불순한 것으로 비난했을 때, 즉 자신들의 ‘상식’이 정부에게 거부당했을 때, 촛불 시위나 인터넷 청원 등의 사회적 의례를 개발하고 실행함으로써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해 냈는데, 김진호는 이런 의례들을 ‘한국적 시민 종교’[각주:3]라고 칭했다. ‘시민’들의 인터넷 활용 능력은 이러한 ‘한국적 시민 종교’를 개발해 내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했다. 자유주의적 입장의 ‘시민’들에 의해 이러한 ‘시민 종교’가 개발된 이후, 보수주의적 입장의 시민들도 저런 ‘시민 종교’를 모방하여, 친미 시위를 개최하거나 카톡을 통해 루머를 퍼뜨리는 등의 의례를 개발해 내기도 했다.  


   1) '무자격자' 창출 현상


   그런데 이러한 ‘시민 종교’ 의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을 ‘무자격자’로 치부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광범위한 대중을 포괄하는 인터넷에서의 의례가 반복되는 중에, 이명박이나 박근혜 등의 보수주의적 대통령들을 일본식 이름으로 칭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이 자유주의적 시민들이 그 보수주의적 대통령들을 “외부인”, 즉 남한 사회 바깥의 인간으로서 남한 사회에 정당한 발언권을 가지지 못하는 인간으로 간주하려 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보수주의적 정당과 언론에 대한 자신들의 과거 조사를 통해 그들의 과거 식민권력에 대한 협력 사실을 찾아 내고 이에 근거해 그 정당과 언론들을 “친일파”로 칭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주의적 ‘시민’과 정당들은 상대편을 “친북주의자”로 칭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심지어는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서까지 이러한 호칭을 쓰는 경우도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적’으로 간주해 증오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종북주의자’라고 욕하는 자유주의적 ‘시민’들 역시, 북한을 ‘이상한 타자’(식민주의적 뉘앙스까지 담긴)로 간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시민’들 양쪽 모두 상대편을 ‘친일’/’친북’으로 딱지붙임으로써, 상대편을 ‘외부인’, 즉 한국에 살 자격이 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윤형은 남한의 사회구조가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각주:4] 이는 남한의 ‘시민’들이 자유주의자/보수주의자 모두,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상대편을 ‘북한인’과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규정된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을 민주주의의 대변자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이런 ‘외부인’ 창출 현상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에서도 나타난다. 보수주의적 시민들이 이전부터 그런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자유주의적 시민들에게도 그러한 적대감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런 적대감의 주된 명분은 그들이 ‘불법체류’를 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국민’들만 받아야 하는 복지혜택을 일정하게 받는다(혹은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대감은 경우에 따라서 결혼 이주자들에게까지 확대되는데, 이자스민의 경우가 한 예이다.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자로 새누리당의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이자스민은 그의 당적과 전 국적으로 인해 비난받았다. 그가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체류 여부에 상관없이 그 자녀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거주권과 복지를 보장하고자 하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이 법안이 ‘불법’ 이주노동자들이 합법 신분을 얻는 데 악용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보수주의적 시민들도, 그의 당적에 대한 비난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비난을 그에게 퍼부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시민’들은, 그들의 상대편이나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 등을 남한 사회의 ‘합법적’ 주체로서의 ‘국민’과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혹은 가져서는 안 되는 ‘무자격자’로 간주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의 연장선상에서, 남한 사회의 내셔널리즘은 ‘무자격자’를 창출해 내는 기제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자격자’ 창출 현상은 젠더편향적이기도 한데, 이를 드러내는 현상으로는, 여성들이 특히 병역 문제로 인해 남성들(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양쪽 모두)에게 동등한 시민으로 간주되지 못하는 현상이 있다. 


   2) '무능력자' 창출 현상


   남한 사회의 직업 안정성이 약화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경쟁이 극심해졌다. 그에 따라 남한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직업을 가질 만한 자격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심대한 노력을 해야만 하게 되었고, 특히 생계 전선에 막 뛰어든 청년들에게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중해졌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안정된 직업을 얻기가 상당히 힘들지만, 그들은 안정된 직업을 얻기가 힘든 것은 자신들의 능력부족 때문이며 그러므로 자신들과 자신들의 능력을 푸대접하는 사회에 저항하기보다는 더 많은 능력을 갖추는 데 집착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그리하여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직난을 자신들의 능력부족으로 돌리게 되면서,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특히 자신들이 불의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즉, 어떤 이들이 공정하고 평등한 고용이나 노동 조건 등을 요구할 때, 많은 남한 사람들은 그런 요구를 할 능력이나 자격도 안 되는 주제에 부당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해 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이나 정규직화 등을 요구할 때, 많은 청년들은 그들은 정규직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며, 만약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준다면, 정규직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공정한 처사가 될 것이라고 반응한다.[각주:5] 

   이런 분위기 아래에서, 장애인, 노숙자, 실업자, 노동빈곤자 등의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그들의 ‘능력 부족’을 명분삼아 정당화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능력 부족자’로 간주되는 이들과 소수자들의 사회적 상태는 점점 더 많이 중첩된다. 필자는 이러한 중첩을 “무능력자”의 창출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안정된 고용의 감소 현상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변화에 기인한 경제적 양극화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더 많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안정된 직업을 얻기는 상당히 어려우므로, 그들이 “무능력자”라는 딱지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무능력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효율성을 성취할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로 간주되므로, 자본주의 사회에 쓸모없는 “잉여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각주:6] 그러므로, 이러한 “무능력자”와 “잉여인간”의 딱지는, 흔한 생각대로 장애인이나 실업자 같은 소수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인 지구화 경제에 깊게 연루된 한국 사회의 누구에게라도 붙을 수 있는 딱지임을 알 수 있다. 


   3) "비시민"들의 공통점


   “무자격자”와 “무능력자”의 공통점은 둘 다 “시민”들에 의해 배제당하는 존재라는 점이며, 이 때 그 배제가 “외부인”이나 “능력 부족” 등의 그럴듯해 보이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두 범주를 “시민”에 의해 배제되는 “비시민”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합치고자 한다. 이 때, 앞에서 “무능력자”를 다루면서 언급했듯, “비시민” 현상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사회 전반적인 현상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무자격자”의 경우를 보더라도, 앞에서 언급한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라는 레토릭은,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는 “무자격자”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하겠다. 어떤 이가 “비시민”으로 간주될 때, 그가 어떤 일을 겪는지를 살펴 보는 데에는 소수자들의 고통이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살펴 보는 것이 참조가 될 수 있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대체로 아래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다.[각주:7] 


  • 소수자의 고통은 사회적 문제로 인정된다. 

  • 그러나 그런 인정이 존재한다고 해서, 소수자들에 대한 불법적이고, 위험하며, 무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인한 배제의 정당성이 의문에 붙여지는 것은 아니다. 

  • 심지어 민주화를 지지하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하여, 일부 시민들에게 그러한 배제의 정당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그러므로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시민” 역시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것을 확고하게 정당하고 있다. 

 


   4) 남한 사회와 민중신학에 대한 탈식민적 고찰의 실마리인 "비시민"


   한국 민중신학의 독특한 언명 중 하나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서남동에 따르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이유는,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 등의 진면목이 그 강도 만난 사람의 고통 앞에서 폭로되며, 그럼으로써 그들이 구원받을 지 못 받을 지가 바로 그 고통 앞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각주:8] 서남동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구원이란 오직 고난받는 이들이 다른 이들의 걸림돌이 되어, 그 걸림돌에 걸린 사람들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에서 구원의 길을 탐색하는 핵심 통로는 고난받는 이들, ‘민중’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각주:9] 

   앞에서 논의했던 ‘비시민’은 민중신학이 증언하고자 하는 ‘강도 만난 사람’, 곧 ‘민중’의 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시민’으로 자기를 규정하는 이들이 ‘비시민’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광범위하게 공유한다는 점과,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는 ‘비시민’으로 규정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시민’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은 배제를 폭로하고 그 배제의 명분이 틀렸다고 선언하는 일이 되고, 거기에서부터 배제의 시스템이 깨지기 시작한다. 즉, 증언은 ‘비시민’을 배제하는 바탕 위에 서 있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의 시작인 것이다. 엄기호의 표현을 빌리면, ‘시민’의 입장에서의 슬로건이 “사회를 보호하고 사람을 폭로하라”라면, ‘비시민’의 입장에서의 슬로건은 “사람을 보호하고 사회를 폭로하라”이다.[각주:10] 

   ‘비시민’의 배제에 동참하는 ‘시민’들은, 그 배제를 정당화하는 근거, 특히 내셔널리즘이나 자본주의 등등의 이데올로기를 광범위하게 공유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미국/일본이나 북한을 타자로 설정하고 있는 내셔널리즘은, ‘무자격자’를 창출하고 그들을 배제하는 주된 근거의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하위파트너로 세계화된 경제에 참여하려는 ‘제국의 눈’을 갖고 있는 ‘자유주의적’ 시민들이 내면화한 자본주의는 ‘무능력자’의 창출과 배제에 주된 근거가 된다. 따라서, 남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배제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배제 안에 뿌리박혀 있는 남한 사람들의 내셔널리즘과 제국주의적 욕망 양쪽을 모두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탈식민 사상과 운동은 탈식민, 탈냉전, 탈제국을 모두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각주:11] 천 꽝싱의 주장은 남한 사회의 현실을 분석, 비판하는 데 좋은 참조점이 된다. 특히, 천 꽝싱이 제안하는 ‘비판적 혼합’과 ‘타자 되기’의 방법론, 즉 식민화를 겪은 주체들끼리의 상호 동일시를 통해 연대를 구축하는 방법론은 민중신학에도 좋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각주:12]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비시민’은 남한 사회 내의 ‘강도 만난 사람’들, 즉 민중이며, 따라서 구원의 시금석이 된다. 따라서 남한 상황에서의 민중신학의 주 임무는 ‘비시민’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타자인 ‘비시민’의 배제의 현실을 증언함으로써 그 배제를 거부하고 그 타자와 연대를 시작하게 된다. 이는 ‘비판적 혼합’의 방법론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될 것이다.  


   4. 결론


   노암 촘스키의 한 강연에서 어느 MIT 학생이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한다. “교수님께서는 바람직한 발전의 모델을 이룬 나라가 현실 세계 중 어디라고 보십니까?” 촘스키의 대답은 이러했다고 한다.  

   “한국(South Korea)입니다. 한국 국민들은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딛고 일어나서,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동시에 독재 정권에 항거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해 냈습니다.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할 정도로 첨단 기술이 온 국민들에게 골고루 퍼졌고, 2002년에는 네티즌의 힘으로 개혁적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정도로 풀뿌리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각주:13] 

   이 에피소드에 촘스키의 반응이라고 소개된 내용에서는, 남한 사회의 자유주의적 ‘시민’의 관점인, 탈식민국가로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 소망하는 나라로 남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소망은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적 비전 중 하나로 공식화되어 있기도 하다. 민주화 역사 속의 많은 사건들이 현재 공식적으로 기념되고 있으며, 동시에 “국민소득 4만 달러로의 성장을 위한 경제적 기반 구축”이 공식적인 경제적 비전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마리 토끼 쫓기는 필연적으로 그 과정에서 ‘비시민’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비시민’의 출현은, ‘비시민’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도 ‘두 마리 토끼 쫓기’가 가능한 것인가라는 비판적 의문의 실마리가 된다. ‘비시민’의 존재가, 그들의 배제에 근거하여 남한 사회의 식민 이후의 경제적/사회적 구조가 유지되는 주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한, ‘비시민’은 남한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실존의 가장 심층을 건드리는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다. 따라서 ‘비시민’에 대한 배제를 거부하는 것은 사회적 실존의 급진적 변화가 동반되어야 가능하며, 이런 의미에서 ‘비시민’은 신학적 주제가 된다. 민중신학이 타자로서의 ‘비시민’의 이슈에 신학적으로 응답한다면, 남한의 타자로서의 북한이라는 이슈와, ‘시민’에게 내면화된 제국주의적 욕망이라는 이슈와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민중신학의 ‘비시민’ 증언 작업은 필연적으로 탈식민, 탈냉전, 탈제국의 동시 추구라는 탈식민의 관점과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한윤형. 안티조선운동사(서울: 텍스트, 2010), 249~250 [본문으로]
  2. 위의 책, 247 [본문으로]
  3. 김진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서울: 현암사, 2012), 68 [본문으로]
  4. 한윤형 “종북과 극단적 민족주의의 차이는?”, 프레시안 2015년 3월 12일 게재,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4610 [본문으로]
  5.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고양: 개마고원, 2013). 19 [본문으로]
  6. 최태섭. 잉여사회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3), 82~84 [본문으로]
  7. 졸고,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이다”-민중신학적 관점의 주체성 탐구”, 김진호/김영석 편저, 21세기 민중신학-세계 신학자들, 안병무를 말하다(서울: 삼인, 2013). 387 [본문으로]
  8.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서울: 한길사, 1983), 107 [본문으로]
  9. Kim, Jin-Ho. "The Hermeneutics of Ahn Byung-Mu." In Reading Minjung Theology in the Twenty-First Century: Selected Writings by Ahn Byung-Mu and Modern Critical Responses, ed. Yung Suk Kim and Jin-Ho Kim. Eugene: Pickwick Publications, 2013, 22 [본문으로]
  10. 엄기호,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1). 192~193 [본문으로]
  11. 천꽝싱, "세계화와 탈제국,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이정훈, 박상수 편, 동아시아, 인식지평과 실천공간(서울: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2010), 89 [본문으로]
  12. ______, 제국의 눈(창비: 2003), 153 [본문으로]
  13. 이원재,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서울: 원앤원북스, 2005), 177~17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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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사회적 분열과 "비시민"의 출현에 대한 고찰(3)


-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서론


    2.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합의의 형성과 붕괴

     (1)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의 형성

     (2) 남한 국가의 형성과 근대화에 미친 미국의 영향 

     (3) 남한 사회의 사회적 균열의 시작 – ‘민중’의 출현

     (4) 남한 사회의 내부합의의 동요와 붕괴

     (5) 남한 민족주의의 분화와 분열


    3. 남한 사회에서의 ‘무능력자’와 ‘무자격자’ 형성의 구조

     (1) 민주화 시대 ‘시민’의 출현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성취되기 이전에는, 남한 사람들 대다수는 자신들을 ‘국민’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이따금 민주화운동을 정당화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으나, 대체로 국가에 대한 복종의 함의를 갖고 있는 말이었다. 그 경우, 국민은 개인의 집합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단일한 실체로 이해되었다.  

   1987년 민주화 성공 이후에는 ‘시민’이란 용어가 출현하여 ‘국민’과 공존하게 되었다. ‘시민’의 출현은 민주화과정을 통해 시민사회의 제도적 기능이 정상화되었다는 한 증거이다. 김진호에 따르면, 그러한 정상화로 인하여, 남한 ‘시민’은 이제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와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각주:1] 이 ‘시민’은 일반적으로 ‘국민’과는 다르게, 개인 각자의 혹은 개인들의 집합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민중’이 일반적으로 하층 계급 사람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회운동의 지평에는 종종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담지하는 것으로 이해된 반면, ‘시민’은 국민국가 내부의 자유민주주의의 주체로 이해된다. 민주화의 진전과 사회주의 붕괴가 겹치면서, 남한 사회에서 ‘시민운동’은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남한 사회에서 ‘시민’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부터,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은 분리불가능한 상태로 사회적 정당성을 담지하는 명분이 되었다. 이 두 명분 중에 어느 쪽에 중점을 둘 지를 놓고 보수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간에 심각한 논쟁이 있긴 하지만, 이 두 명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화 이후 남한 국가의 기본 합의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병 치료’와 ‘문민정부’를 함께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의 슬로건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의 두 명분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의 슬로건을 앞세워 경제개혁을 시도했다가 심각한 실패를 겪었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던 정책들이 경제정책에 의해 제어당하면서 시민사회의 저항을 불러와, 민주주의에 대한 헤게모니를 상실했다.[각주:2] 김영삼 정부가 IMF 구제금융과 함께 마감되면서, 그 이후 정부들의 목표는 경제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경제에 의해 민주주의가 제어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앞에서 논의한 대로,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가속화시킨 것은 자유주의적 입장을 가진 정부들이었다. 금융/산업/노동 영역의 구조조정의 결과로 상당수의 기업과 은행이 사라졌고, 정리해고와 파견 노동 등이 일반화되는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우나 현대 등의 일부 재벌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LG 등의 대재벌, 특히 삼성은 IMF 이전보다 더 강력한 경제적/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은행이 산업 자본의 이해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실물 경제 바깥에서 자립하는 금융자본으로 자신을 재구축하게 되었다.[각주:3]  

   이런 모든 변화로 인해, 남한 사람들의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종신고용 시스템에 기반을 둔 라이프스타일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1990년 초부터 시작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화는 계속 가속화되어, 비정규직 노동이 고용의 주류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대부분의 청년 노동자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청년빈곤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중년 노동자들은 상당수 정리해고되거나, 정리해고를 모면한 경우라도 그들의 고용주들이 과거와 같은 이윤이 나오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게 되었다. 국가 경제 지표가 향상되고, 김대중 정부가 예상보다 일찍 IMF 구제금융을 상환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경제적 양극화 상황은 심화되고 노동계급의 삶은 더 불안정해졌다. 

   IMF 구제금융 이후의 남한의 자유주의 정부들은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초래된 대중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 복지 시스템과 경제 구조의 동시 개혁을 시도했다. 이 정부들의 사회복지 개혁의 노선은 ‘생산적 복지’였는데, 이는 복지 수혜자들이 구직활동에 적극적일 것을 요구하는 등의 ‘생산적 태도’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노선이었다. 한편, 이 정부들은 신자유주의적인 외부의 충격을 경제 구조 개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정책을 폈다. 

   외부 충격을 경제 구조 개혁의 지렛대로 활용한 예로 노무현 정부가 시도한 한미 FTA를 들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선진통상국가’가 되겠다는 기조 하에, 이를 동시다발적인 FTA 체결로 성취하려 했다.[각주:4] 한미 FTA는 중국의 빠른 산업화에 대응하여 경제 구조를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원래 계획되었던 시기보다 당겨서 추진되었다.[각주:5] 이 때 정부의 논리는, 가장 발달된 서비스 산업을 구축한 나라인 미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그에 따른 외부 충격이 남한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가속화한다는 것이었다.[각주:6] 자신을 ‘실용적 진보주의’의 추구자라고 정의했던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가 담지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적용이라는 외부 충격을 활용하여 재벌과 노동계급의 저항을 극복하고 재벌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특권(물론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을 제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각주:7] 하지만 삼성과 같은 대재벌들 역시, 한미 FTA가 초래할 영미적 자본주의 노선으로의 격변 속에서 일어날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잡고자 하는 의도 속에 FTA 체결을 지지했으며, 심지어 삼성의 경우, 노무현 정부의 일부 관료들이 증언한 대로, 한미 FTA 체결을 앞장서 제안하기까지 했다.[각주:8] 

   한미 FTA에 대한 수많은 찬반 논란은 대체로 민족주의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졌다. 한미 FTA 반대 담론의 대부분은 협상 결과의 대부분이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는 쪽으로 편향되었다는 주장을 근거로, 한미 FTA가 ‘미국의 경제 침략’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단정했는데, 이는 이 반대 담론들이 남한 사회운동의 전통적인 반미 경향 속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 준다. 반면, 한미 FTA 찬성 담론의 대부분은 한미 FTA가 “1조 7천억불 상당의 미국 시장”에 “한국의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었던 한미 FTA 추진 관련 광고를 보면, 한국 기업을 상징하는 기마부대들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영토를 행진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장면들은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 지도자들의 민족주의적 욕망을 보여 줌과 동시에, 남한 대중들의 민족주의적 욕망을 한미 FTA 추진에 동원하려는 의도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렇게 동원된 민족주의적 욕망이 제국주의적 욕망으로까지 나아간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 때 그 욕망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되는 것은 한미FTA를 비롯한 갖가지 FTA를 통해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장면들은 미국에 대한 식민주의적 선망을 통해 내면화된 남한의 “제국의 눈”[각주:9]을 보여 주며, 이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협력하는 하나의 양상을 보여 준다. 이 지점에서, 이 한미 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가 사회운동 일각의 지지와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리버럴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자신을 위에서 언급한 대로 ‘실용적 진보주의’의 추구자로 정의했음을 짚어 본다면, 이는 민주화운동 지지의 입장에 선 리버럴들의 대다수도 제국주의적 욕망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겠다. 

   2007년 보수주의 정부가 재집권하면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이끈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끈 10년 동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부들은 이전 자유주의 정부들의 경제개혁 정책을 전면적으로 이어받지는 않았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 변화를 지속하고, 4대강 등의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내수 경제를 진작하려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 정부들은 이전 자유주의 정부 이상의 경제 지표 향상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경제적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수립에 참여한 일부 보수주의적 지식인들이 ‘선진화’[각주:10] 등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리버럴들을 포섭하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2008년 촛불 시위 이후에는, 보수주의 정부는 반정부적 입장의 대중들에 대한 설득을 포기하고, 그들을 불순하다고, 더 심하게는 ‘종북’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서는 시민들과의 소통을 포기했다는 반대쪽의 비난이 뒤따랐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이러한 소통 불가능성과 경제적 양극화 등으로 인해, 지금의 남한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1. 김진호, “시민, 민주화-시장화 사이에서 ‘자기분열’”, 2010년 4월 14일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16128.html. [본문으로]
  2. 그 한 가지 예로, 김영삼 정부는 1996년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노동법 개정을 시도했다가 노조의 총파업과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개정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김영삼 정부가 헤게모니를 상실하는 결정적 지점이 되었다. [본문으로]
  3.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서울: 책세상, 2011), 276 [본문으로]
  4. 앞의 책, 398 [본문으로]
  5. 앞의 책, 400 [본문으로]
  6. 앞의 책, 403 [본문으로]
  7. 앞의 책, 400 [본문으로]
  8. 앞의 책, 400 [본문으로]
  9. Chen, Kuan-Hsing, Asia as Method: Toward Deimperialization.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10, 17 [본문으로]
  10. 박세일.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서울: 북21,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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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포항제철을 부인할 수 있을까 

–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단상



황용연

(본 연구소 객원연구원, GTU Interdisciplinary Studies 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박사후보생)


 

1. 

   지난 해 말 한국-일본 외교장관 간에는 이른바 ’12.28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얼마 전 그 합의에 따른 재단이 출범했고, 조만간 그 합의에 따른 10억엔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합의에 대한 서경식 교수와 와다 하루키 교수 사이의 지상논쟁이 지난 3월에 한겨레신문을 무대로 벌어졌다. ’12.28 합의’에 대한 서경식의 부정적 입장과 와다 하루키의 긍정 후 개선의 입장이 시종일관 엇갈리는 이 논쟁에서 특히 필자의 주의를 끌었던 엇갈림의 지점은 이 곳이었다.  


   “아시아 여성기금 사업은 네덜란드와 필리핀에서는 성공했다고 와다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피해자 중에서 가장 용감하게 이름을 밝히고 나서서, 끊임없이 일본 국가가 저지른 일을 비판한 얀 루프 오헤른Jan Ruff O‘Herne은 기금 쪽에 신청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이 한 사람의 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금이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적어도 ‘성공’을 자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녀야말로 일본 국가가 가장 진지하게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이고, 그녀가 용서를 해야만 용서를 받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서경식) 

   “네덜란드에선 피해자임을 밝히고 일본 정부를 비판해온 얀 루프 오헤른이 기금을 거절했다.”고 한 서씨는 “이 한 사람의 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금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정당한 평가라 할 수 없다. 필리핀에선 마리아 헨슨을 언급하며 “철두철미하게 일본국가에 유린됐던”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속죄금’을 받은 것을 두고 “마음의 평안”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헨슨은 기금을 받을 때 “지금까지 불가능하고 생각했던 꿈이 실현됐습니다.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  


   아시아 여성기금이 ‘반관반민의 모금 형식을 취한 위로금/사죄금’ 지급을 통해 국가범죄로서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배상을 대체하려는 시도였음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 기금에 대해 ‘얀 루프 오헤른’을 예로 들어 비판하는 서경식에게 와다 하루키는 ‘마리아 헨슨’ 같은 경우도 있는데 ‘얀 루프 오헤른’만 부각시키는 것은 부당한 비판이라고 대답하는 셈이다. 확실히 ‘마리아 헨슨’ 같은 케이스는 한국에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긴 하고, 와다 하루키의 글에서는 이런 케이스가 적어도 네덜란드와 필리핀에서는 적지 않았다는 뉘앙스도 받을 수 있다(사실은 한국에서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 오늘날에는 이미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와다 하루키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그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얀 루프 오헤른에게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여성기금이 그것을 수용한 피해자들에게 ‘불가능한 꿈의 실현’일 수 있었음을 인정하더라도, 수용하지 않은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이상 적어도 그들에게 필요한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는 아무런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 지점에서, “적어도 일부의 피해자들에게는 정의의 실현이 되었으니 그만큼은 성공하고 진전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이 때 ‘성공’과 ‘진전’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이 되는 것일까.


2. 

   와다 하루키의 입장에서 보면, 서경식이 아예 ‘반동의 물결’에 몸을 담갔다고까지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느낄 만도 할 것이다. 한일협정 때문에 법적 배상의 길이 막혀서라고 하든, 현재의 일본국이 전전의 일본 제국과 연속성을 갖는 국가이고, 과거 전쟁 범죄를 자기 손으로 심판해 본 적이 없는 국가라, 지금 와서 법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는 실제로 여성기금 출범 당시, 와다 하루키를 비롯한 찬성 측의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왔던 이야기다)이라고 하든, ‘국가의 법적 책임’이라는 형태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어렵다면 다른 해결책이라도 나와야 할 것 아닌가란 생각과 행동을 했을 테니. 그리고 앞에서 보듯이 그 여성기금을 ‘해결’로 받아들인 당사자들도 상당수 있으니, 그 당사자들의 선택을 “법적 배상을 피하려는 일본 국가의 의도에 놀아났다”고 폄하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부분, 위안부 당사자들이 바라는 정의를 실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역시 ‘얀 루프 오헤른’ 앞에서는, 그리고 그녀와 같은 거부의 입장인 한국의 피해자들 앞에서는, 와다 하루키는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여성기금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일 수 있다고 한다면, 혹시 그 해결은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서경식의 표현을 약간 수정해서 빌리면 “일본인 자신들의 ‘양심’을 위로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던가.”

   여기서 앞에서 언급한 일본국과 일본 제국의 연속성에 관해서 간단히 짚어보자. 잘 알려졌듯이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는 미국이 일본을 태평양 지역의 하위파트너로 활용하는 동맹 체제 위에서 가능했고, 그 동맹체제를 성립시키기 위한 조처 중 하나가 일본 제국의 핵심구조인 ‘천황제’를 ‘상징’으로서 존속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동맹체제의 핵심요소인 군사력을 ‘오키나와’에 집중시켜 본토는 ‘평화헌법에 기반한 군사력 청정지대’로 유지하고, 사회적으로는 ‘재일조선인’과 같은 타자를 만들어냄으로써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등장함으로써, 이 문제가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토대 중 하나인 ‘제국의 핵심구조를 비무장이라는 조건으로 존속시키는 대신 전쟁 책임을 면제한다’는 점에 대한 직접적인 폭로가 됨을 의식하고, 전후 책임 문제를 통해 일본 전후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도하는 지식인 그룹이 생겨났다.

   최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큰 논쟁을 촉발한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이 상황을 탈냉전 이후 할 이야기가 궁색해진 일본의 좌파가 ‘위안부 문제’를 통해 이야기거리를 찾았다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를 일본 사회 전체의 개혁과 연관시키기보다 ‘그 문제 자체에 집중했더라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국의 위안부]가 아시아여성기금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앞에서 와다 하루키에게 던진, 거부하는 당사자들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여기서도 유효하게 될 것이다.



3.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과거사 청산’ 작업이 꾸준히 이어질 당시, 그 작업에 대한 이런 비평이 나온 적이 있다. “도대체 역사나 과거라는 것은 ‘청산’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마치 결산서를 작성하여 집행하면 사라질 수도 있는 그런 것인가?”(문부식,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 중에서)

   이미 벌어진 일을, 있었던 피해를, 되돌릴 수 없으니, 역사나 과거라는 것이 ‘청산’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해 바로 그 가해자에게 계속 항의하고 있으니, 그 항의가 이어지는 한은 당연히 청산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겠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설령 그 항의에 대답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에서라도 이 피해의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결산’해 버린다고, 그런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방금 이야기한 ‘자기 마음대로의 결산’이 벌어지는 경우, 대체로 그 밑에는 위안부 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국가간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 문제가 되는 ‘12.28 합의’가 대표적일 것이다. 아예 대놓고,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면서 ‘결산’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조금 더 짚어 본다면, 이 문제를 ‘한일화해’로 풀길 바라는 의견들도, 이미 ‘한일’이라는 ‘국가간’의 구도를 전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국의 위안부]처럼 ‘한국과 일본’이라고 하든, 와다 하루키처럼 ‘조선 민중과 일본 민중’이라고 하든.

   그런데, 사실 위안부 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국가적 문제’로 보는 것은 위안부 당사자들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에게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위안부 당사자들을 “민족이 당한 피해”로 인식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 방식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최근 위안부 피해 관련 운동의 상징이 된 ‘소녀상’도, 대다수 피해자들이 나이 어린 여성들이었고, 식민지 조선에서 어린 여성들을 동원하는 것이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관련 전략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민족이 당한 피해”라는 이미지를 집약한 측면이 강함을 부정할 수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 ‘민족이 당한 피해’라는 말은, 위안부 당사자들이 커밍아웃하기 전까지 그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이데올로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기에 해방 후 한국전쟁 당시의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한 학자에게, 그 문제제기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꽤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민족이 당한 피해’라는 말이 그 ‘민족’ 내부에서 똑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도 된다. 상황이 이렇다면, ‘민족이 당한 피해’라는 패러다임이, 위안부 당사자들에 대한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어떤 긍정적 의미를 가질 것인가.

   그렇다면 ‘국가간’ 문제라는 시각 말고, 위안부 당사자들과 ‘(제국의 후신으로서의) 일본국’ 사이의 관계라는 식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피해자들을 굳이 ‘한국인’으로 제한할 필요도 없이, 제국의 후신으로서의 일본국이 져야 할 책임을 요구하는 주체들로서의 위안부 당사자들이라는 시각으로 말이다. 물론 이렇게 볼 때, 당사자들 각각이 일본국의 책임 완수를 어느 선까지로 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얀 루프 오헤른’과 ‘마리아 헨슨’이 갈라졌고, 한국에서도 여성기금 거부자들과 수령자들이 갈라졌듯이 말이다), 위안부 관련 운동의 입장에서라면, ‘수용’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그것대로 존중하되, ‘거부’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끝까지 그 거부의 입장을 관철할 수 있게끔 도우는 것이 운동의 본질이지 않을까.


4. 

   위안부 당사자들과 제국의 후신으로서의 일본국 간의 관계라는 방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게 되면, 그 일본국의 전후 책임 문제와 깊이 관련된 미일동맹구조에 현재의 한국도 발 담그고 있다는 것을 외면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한국의 ‘현재까지의 번영’에 한 기반이 되었다는 점도 외면할 수가 없게 된다. 국가간 법적 문제는 다 끝났다는 법적 핑계나, 미일동맹구조를 깨는 건 불가능하다는 구조적 핑계 양쪽으로 활용이 될 만한 ‘한일협정’으로 받은 ‘독립축하금’이, 다름아닌 포항제철의 건설 기반 자금이 되었다는 것은 미일동맹구조와 현재의 한국 간의 관계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한 예라 할 것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장 아메리는 이런 몽상을 했다고 한다. 독일인 스스로가 나서서, “굴욕의 날들에 자신들이 행한 모든, 심지어 동시대의 소산인 아우토반마저도 예외 없이, 가능한 모든 것을 부인하는 집단”이 되는 몽상이다. 이 몽상이 실현된다면, “피해자의 원한이 주관적으로는 풀릴 것이고, 객관적으로는 무용한 것이 될 것이다.”

   장 아메리의 몽상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인은 일본인대로 모든 것을 부인한다면, 한국인은 어떠할까. 방금 이야기한 대로 한일협정의 산물이 포항제철이라면, 한국인은 포항제철을 부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애당초 시작점인 장 아메리부터가 ‘몽상’이었고, 결국 그 몽상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니.

   하지만 여기서 나는, 체 게바라가 말했다는 그 유명한 문구를 이렇게 바꾸고 싶다. 

   “불가능한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리얼리스트도 될 수 없다.” 

   역사와 과거가 ‘청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포항제철을 부인할 수 있다는, 포항제철을 가능하게 했던 미일한 동맹체제를 부인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꿈을 꾸어야 , 그 역사와 과거에 최대한 귀를 기울일 수 있단 말이 될 테니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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