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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마당] 회억(回憶), 과거에서 날아드는 새로움(김윤동)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18. 11. 2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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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억(回憶), 과거에서 날아드는 새로움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신명기 24: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이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요시야와 신명기 법전


오늘은 신명기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저작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다국의 왕이었던 요시야왕이 다시 쓰기를 통해 만들어진 법전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열왕기하서와 역대기서에 기록되어 있는 요시야왕의 이야기는 주로 정치적인 업적보다는 신앙적인 업적이 두드러지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요시야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전체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통틀어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던” 가장 훌륭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던 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신앙적인 업적이란 게 무엇입니까? 일단 바알의 제단을 허물었습니다. 우상들을 다 허물고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또한 지방에 있는 산당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요시야왕의 신앙적인 업적으로 평가되는 것 중 다른 왕들과 구분되는 가장 특이한 지점은 바로 대제사장 힐기야에 의해서 율법책이 발견되는 사건입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을 정비하고 수리하면서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책에 있는 내용을 들은 요시야왕은 옷을 찢으며 회개하고 그 말씀대로 모든 이스라엘이 살기를 촉구하였습니다.

이렇게 겉만 보면 요시야왕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아주 잘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늘 보호해주셨을 것이고, 그 보호 아래 아주 편하게 재위했던 왕이었겠다 싶지만 요시야왕의 속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요시야는 기원전 7세기 경에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됐습니다. 역사에서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는 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뜻합니다.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은 즉위한지 2년만에 자기 신하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8세라는 어린 나이에다가 아버지까지 비명횡사한 요시야는 한마디로 언제 자기 아버지처럼 살해될지 모르는 매우 불안한 시간을 살아갔을 겁니다. 그리고 55년동안 할아버지인 므낫세왕이 재위할 때에 그 시절의 원로정치인들이 눈 시퍼렇게 살아서 그를 감시했을 겁니다. 특히 강대국이었던 형제의 나라 이스라엘국을 멸망시켰던 아시리아는 호시탐탐 유다국이 제대로 자기의 말을 잘 듣는지 조금이라도 반역의 움직임이 있으면 치기 위해서 유다국을 감시했을 겁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방패막 때문에 아시리아와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던 유다국도 이제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나서는 아시리아와의 관계가 아주 민감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조선 후기 시절에 친일세력들이 왕실을 끊임없이 교란하고 감시했던 것처럼 유다국 또한 친아시리아 세력들이 요시야를 감시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 아시리아 세력이라 함은 자기의 선대왕이었던 므낫세 시절에 힘을 떨쳤던 귀족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산당’이라고 알고 있는 지방 성소들을 장악했던 ‘부족장들, 지역의 유지’ 같은 사람들입니다. 지방 성소인 산당은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건 지방의 여론을 만들어내는 대단히 정치적 장소였습니다. 아무리 국가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해도 지방 유지들이 우리 지역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그러면 국가의 명령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국가 형태와는 많이 다른 느슨한 국가였으니까요. 그러니까 ‘산당’에 우상들이 우글대는 이유는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지방의 권력자들, 지방의 귀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게 아니라, 바알을 숭배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우겼습니다. 글자를 읽을 줄 몰랐던 일반 대중들은 아세라 목상을 갖다 놓고 이것이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제사라며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그게 가능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요시야는 친 므낫세적이고, 친 아시리아적인 귀족 세력들에 맞서서 자기의 세력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유다국이 아시리아의 말을 잘 듣는 노예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르는 ‘법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것은 요시야에게 아주 큰 딜레마였습니다. 함부로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가는 분명 아버지처럼 살해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냥 숨 죽이며 목숨만 보전하다가 겉만 번지르르하게 목숨을 구걸하며 노예로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다가 죽임을 당하느냐, 그 갈림길에서 고뇌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뭔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오래 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준 법입니다. 그리고 그 법전이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요시야는 그 법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겠지만, 그 법에 대해 해석해주는 산당의 소리들을 들었겠지만, 직접 법을 본 적은 없었을 겁니다. 그 법은 아주 오래 전에 주어졌지만, 그래서 겉모습은 아주 낡았지만 눈이 번쩍 뜨이는 새로운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기원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바로 떠돌이들, 유랑하는 사람들, 우리는 본래 족보 없는 노예로 살아가다가 하나님에 의해 무작위로 선택되어 거기를 빠져나온 자유인들, 법의 백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낡은 법전 안에는 요시야가 바라던,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던 ‘새로운’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요시야는 옷을 찢을 수밖에 없었고, 그 법을 읽은 이상, 읽어버린 이상 거기에 적힌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낡은 법전 안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요? 강대국 이집트의 파라오 밑에서 신음하던 히브리 노예들의 눈물겨운 삶이 들어 있었습니다. 자녀가 번성하지 못하도록 어려운 노동을 시키고,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 등 갖가지 일을 몇 배나 엄하게 시키는 체제 아래에서 신음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노예 생활을 벗어나기를 학수고대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이 바로의 군대로부터 구원해주시자 하나님을 찬송하고 모세를 극진히 따르다가도 하나님이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가실 광야 시절에 노예 생활을 다시 동경하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백성들의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또한 이집트 아래에서 고된 노동에 죽어갔던 백성들에 대해 생각하고, 모세와 바로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죽어간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생각했습니다. 전쟁과 광야에서 이렇게 저렇게 이름 없이 죽어간 백성들의 생과 사를 오가는 사투의 현장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마치 자기와 유다 백성들의 이야기를 보는 듯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속박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구원 받은 자유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현실을 대입도 해가며 상고했을 것입니다.

요시야는 자신들의 조상들, 히브리 노예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애굽이라는 우월한 체제에 속박된 노예로 살아간다면 노동이 고되긴 하지만, 하루하루 버티다보면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의 식량도 나옵니다. 죽지 않고 버티며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한다면 심지어 가끔 ‘성취나 보람’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예들은 크게 지어진 신전이나 왕궁을 보면서 ‘아, 저 건물에 내가 쌓은 벽돌이 몇 갠데?’ 하면서 정신승리 같은 것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어디 가서 애굽의 노예라는 게 그리 부끄럽기만 한 일이 아닌 겁니다. 마치 비정규 계약직이고 인턴이라고 하더라도 명절에 ‘너는 어디서 근무하고 있니?’라고 물어봤을 때, ‘대기업 00에서 일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랄까요?

요시야는 주변의 강대국들과 자기의 관계, 그리고 유다 내에 있는 지주들과의 관계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적응하기 나름이라고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맘에 안 드는 사람한테 고개도 숙여 보고, 우상에게 절도 몇 번 하다보면 익숙해질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겠지만 고통받는 소농과 민중의 편이 아니라 귀족들의 편을 들면 앗시리아와 편안히 지내고 부귀와 영화를 누릴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법’에서는 단호히 그런 생활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란 돈으로 빽으로 혈통으로 촘촘하게 계급으로 나뉘어진 애굽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고통 받는 자들, 쫓겨난 자들, 그리고 족보가 없는 자들이 평등한 공동체적 사회였던 것입니다. 야훼에게 선택된 사람은 남을 공격하고 혐오하려는 본능을 따르지 않고, 오랜 시간 광야에서 원 팀(One team)으로 훈련받은 ‘의(義)’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법의 백성이란 것은 하나님 아래에서 어느 누구도 잘 나거나 못나지 않고 평등하고 서로가 각자의 몫을 나눠 먹는 사이를 뜻했습니다.


회억, 과거를 대하는 다른 태도


우리는 이제 2018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해가 다가오니 새로운 것들이 요구되는 시간입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련의 시간인 것도 분명합니다. 이런 어려움과 시련의 시기에는 늘 시련의 극복을 위해서 새로운 것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전략, 새로운 활력, 새로운 전환점이 요구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강사도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세미나를 통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략들도 당연히 참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위기나 고난의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지나왔던 발자욱, 더 정확히 말해 그 발자욱을 통해 발생했던,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크고 작은 상처에 대한 기억과 애도의 작업입니다. 조금 더 신앙적으로 표현한다면, “교인 중에 누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 되었는가? 우리 교회 출신 중에 누가 잘 살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교회 안에서 상처 받았는가, 누가 우리 나의 크고 작은 언행들로 인해 실족했는가? 특히 교회의 언행으로 인해 실족해 버린 그 한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울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을 우리의 이야기에 소환하려고 합니다. 그는 유대계 문예비평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발터 벤야민은 유대인들이 학살 당하던 2차 세계대전의 시간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부당하고 고통스러운 일과 불의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아주 깊은 고민을 해온 학자입니다.

특히 그는 한국어로 ‘회억’이라고 번역되고 있는 단어, Eingedenken을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지금의 고통스러운 일을 그저 덮어버리고, 잊으라고 말을 합니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일을 바쁘게 하다보면 과거의 아픔이 잊혀진다고 그런 것을 권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에 그건 나중에 다 삶의 거름처럼 사용될 것이니 지금을 견디라고 말합니다. 잠깐의 위로는 될 말이지만 결코 그 말이 거대한 진실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벤야민은 그런 모든 망각이나 값싼 위로 대신 회억을 권유합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충분히 애도하기를 주장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억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회상과 다릅니다. 회억은 과거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태도입니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을 찢고 들어가 적극적으로 그 사건에 대해 성찰하고 기억하고 어떤 슬픔과 고통이 발생했는지 요모조모 살피고 뜯어보고 재배열하는 일입니다. 책임을 느낀다는 것은 ‘지나갔으니 이제 어쩌겠어! 엎어진 물을 어떻게 주워담아!’라는 심성과 정면으로 반대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거쳐야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새로움 자체가 과거 안에 있다는 것 즉, 과거의 재구성과 정확히 그 안에서 벌어졌던 고통의 재현(representation)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을 벤야민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날아드는 새로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애굽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는 말씀은 신명기에서 끈질기게 반복되고 있는 말입니다. 벤야민의 말을 빌리자면, 요시야는 회억을 수행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을 오늘 재구성하고 되살려내기 위해 모세의 그 명령을 지금 다시 가져와서 ‘반복’하고 있는 것(Deutronomy)입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는 말은 그 옛날 못 먹고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옛날에 애굽에서 있었던 고생들, 즉 이전에는 굶는 일이 허다했고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채찍질에 두려워했는데, 그런 것이 사라진 지금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애굽 시절을 기억하라는 게 아닙니다. 애굽 당시에 고통 당했던 사람들, 이름도 없이 이유도 없이 굶어 죽고 맞아 죽고 깔려 죽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곧 이스라엘의 기원인 존재들이며, 그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점, 우리가 그 안에서 함께 평화를 누리고,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도 예외 없이 법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 요시야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벤야민의 ‘회억’이라는 개념에 영향을 준 호르크하이머의 논문에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과거에 고통 받은 자들이 ‘그토록 기다려온 자’들”이라 표현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것들을 통해서도 치유할 수 없는, 이미 당해버린 과거의 사건과 사람들이 호소할 수 있는 그들의 유일한 상고 재판정”이라고까지 비유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그 한걸음이 과거에 부당하게 상처받고 고통 당했던 이들이 가슴에 맺혀 있던 것을 신원하는 걸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 부당하게 상처받은 이들의 패배한 과거를 다시 끝나지 않은 싸움임을 입증해줄 때 우리에게 비로소 새로운 미래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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