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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정보] 유신론과 무신론의 경계 선상에서(권오왕)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9. 1. 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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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과 무신론의 경계 선상에서

 

권오왕

(Ministry Partner, Knox United Church, Consort, Chinook Winds Region, United Church of Canada )



캐나다에 온 지도 벌써 1년 하고도 3개월 가까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는데 이제는 드넓디 넓은 프레리(prairie)가 너무나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변한 제 모습을 보니 ‘사람이란 것이 이렇게도 변화무쌍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저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캐나다 연합교회와의 목회자 상호인정협정에 따라 본 교단에서는 처음으로 Ministry Partner가 되었고, 이어서 캐나다 연합교회의 Chinook Winds Region에 속한 Knox United Church (알버타 주 콘소트 위치)로부터 청빙을 받아 목사로서의 직을 현재 감당하고 있습니다. 한글로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편한 일인 지 실감이 납니다. 원고를 쓰도록 허락해 주신 이상철 편집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저와 제3시대 그리스도연구소와는 제법 인연이 있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로 대표되는 기독교 현실주의와 존 듀이로 대표되는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시민의 참여와 능동적 역할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8년, 그리고 안병무 선생에 관한 논평을 가한 논문을 한 학술지에 개제했을 2016년 감사하게도 저를 연구소에서 불러 주셔서 발표하고 토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 또한 민중 신학자들이 지난 세월 도전했던 신학적 과제와 응답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상철 편집장님의 말씀대로 캘거리 특파원(?) 의 입장에서, 지난 세월 겪어 왔던 이런 저런 목회 경험과 신학적 여정을 토대로 캐나다 연합교회에서 일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서 고국에 알려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캐나다 연합교회에서 제가 하고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한국 교회에서 제가 체험하고 보고 느낀 것들을 소개하여 캐나다 연합교회에 공헌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캐나다 연합교회에 와서 느낀 점을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정말 크고 넓다는 것입니다. 일단 지리적으로 너무나 광활합니다. 이렇게 광대한 지역에 인구는 너무나 적어서 한국에서 살던 사람이 캐나다에 오면 심심하고 외로워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면 이렇게 넓은 땅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 캐나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날씨가 너무나 추운 날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할 때에도 항상 날씨가 중요한 변수입니다. 넓디 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캐나다 사람들은 날씨 이야기를 빼 놓지 않고 합니다. 날씨 때문에 취소되는 모임도 제법 많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연합교회는 이렇게 땅이 넓듯이 교단이 다루는 목회의 영역도 대단히 넓고 광범위합니다. 목회자들의 구성도 문화적, 인종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단히 다양합니다. 또한 캐나다 연합교회는 1925년 당시 캐나다의 주요 교단들 (주로 캐나다 감리교회, 회중교회 그리고 캐나다 장로교회의 약 70%)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교단이다 보니, 교단적 차원에서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에 일치와 합의를 이루면서도 개 교회의 특색과 다양성은 상당히 폭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교단의 주된 신학적 입장은 A New Creed라던가 A Statement of Faith, 그리고 A Song of Faith와 같은 교단의 공식적인 신앙 고백문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교회와 사회 등 신앙 고백이 담아야 할 중요한 핵심적인 주제에 관하여, 전통적인 안목 뿐만 아니라 오늘날 진보적인 신학적 동향까지도 망라하여 다루고 있는 훌륭한 신앙 고백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캐나다 연합교회에서 목회를 하기 위해서 최소한 이 정도의 신앙 고백에 관한 동의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캐나다 연합교회가 갖고 있는 진보적이고 신학적인 관용성이야 말로 연합교회로 하여금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는 목회자들이 폭 넓은 영역에서 사역하도록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큰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캐나다 연합교회 안에서 주목을 받는 총회 결정이 한 가지 내려졌습니다. 한국에도 제법 소개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토론토 지역의 West Hill United Church의 Gretta Vosper목사에 관한 것입니다. 몇해 전 Vosper목사가 공식적으로 자신은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하여, 소위 무신론자 목사가 캐나다 연합교회 안에서 목회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2016년 당시 Vosper 목사가 속한 토론토 연회에서도 목회를 계속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11월 캐나다 연합교회에 총회에서는 최종적으로 Vosper 목사가 West Hill에서 안수받은 목사로서 목회를 계속 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각주:1] 재미있는 것은, 결정을 하게 된 상세한 이유나 교단과 목회자간의 약속 혹은 합의 내용 같은 것은 아무 것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총회에서는 현재 총회장이신 Richard Bott 목사께서 공식 입장을 캐나다 연합교회 웹사이트에 올리셨습니다.[각주:2] 총회에서는 이 메시지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저희 한국 목사들에게는 이메일로 다시 보내 주셨습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총회가 얼마나 중요하고 긴급하게 판단했는지가 느껴졌습니다.

이 결정은 가장 진보적이라고도 알려진 캐나다 연합교회가 과거에 내렸던 그 어떤 결정 보다도 잠재적 파급력이 더 큰 결정이 될 수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중요한 의제들에 관한 논쟁의 경우, 그 사안의 민감성 혹은 사회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어쨌든지 소위 기독교인이라고 불리우는 서클 안에서 주장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시도들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번 결정은 이른바 교단이라는 체제, 그리고 그 체제가 형성한 신학적 사상과 이념에 대한 최소한의 동의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Vosper목사가 무신론을 주장하게 된 배경에 주목해 봅니다. 그녀는 2015년 파리에서 일어난 주간지 Charlie Herdo 에 대한 테러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캐나다 연합교회 총회장 Gary Patterson 목사께 보낸 편지에서 , 소위 기독교인들이 기도와 위로에서 근간으로 삼고 있는 유신론적 믿음, 초월적 신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바로 인류의 역사에서 끔찍한 테러와 역사적 비극을 일으켜 왔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각주:3]

저는 인간 개개인이,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체제가 저지르는 악마적이고도 사악한 죄의 속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습니다. Vosper목사의 주장대로 유신론적 신념이 가져온 해악은 어쩌면 유신론을 이용한 자들이 저지른 자살골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자신이 믿는 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신의 권위에 철저히 복종해야 했기 때문에, 아니면 신이라는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신의 뜻이라면 생명도 죽일 수 있다, 신의 뜻이라면 생명을 차별할 수도 있다. 봐라, 신의 명령 아닌가!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고 세상을 선동해온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근대적인 신 이해가 마주하게 된 한계 상황일 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포한 이후 데리다, 푸코, 그리고 레비나스와 같은 학자들은 근대성에 기초한 사상적, 문화적 한계를 지적하며 그것을 넘어서서 탈근대적인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한 사상적 도전에 응답하기 위한 신학자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Vosper 목사의 항변이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이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많은 이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수용하여 내면화 되어 있는 신, 그리고 신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형성되어 온 모든 세계관을 다시금 바라보도록 반성을 촉구합니다.

물론 이 결정에 대한 목회자들의 입장은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듯이 교단의 결정이니 받아들이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부터, 캐나다 연합교회의 신중하고도 사려깊은 신학적 포용성과 다양성을 입증한 중요한 도전이라는 입장, Vosper목사의 무신론이라는 것이 실은 유신론에 포섭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입장까지 각양각색입니다. 중요한 것은, 초월적 유신론을 외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은, 유신론과 무신론의 경계선상에서 초월적 유신론에 대한 다양한 비판에 직면하여 어떻게 무신론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도전 앞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 도전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연합교회는 놀라운 결정을 내렸고, 어쩌면 캐나다 교회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캐나다 연합교회의 도전과 응답 가운데 과연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이러한 영적 물음을 마음에 품고 두 교단의 경계 선상에 서서, 하나님 나라가 결국에는 온 우주에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웹진 <제3시대>



  1. https://www.united-church.ca/news/statement-rev-gretta-vosper. [본문으로]
  2. https://www.united-church.ca/news/moderators-message-rev-gretta-vosper. [본문으로]
  3. http://www.grettavosper.ca/letter-gary-paterson-regarding-pari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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