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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사이코패스의 성공이라는 비극(강선구)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1. 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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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의 성공이라는 비극




강선구*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리키는 사이코패스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이나 책임감이 결여된 상태라고 한다. 한마디로 사이코패스는 관계적 자아를 인식할 줄 모르며, 오롯이 홀로인 상태에 있는 자신만을 인식할 줄 아는 고립된 자아를 가리킨다. 이러한 사이코패스를 그동안은 부정적인 유형으로 분류하고 주로 범죄와 연루될 가능성이 높은 위험군으로 여기곤 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최근 학계에서는 사이코패스들이 오히려 현대사회의 전문직종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인재상들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선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들은 높은 자의식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의심이나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받는 일이 없기 때문에,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높은 추진력과 뒤끝없는 쿨함까지 겸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몇몇 경제지에서는 이러한 사이코패스라고 여겨지는 인물들로 많은 대학생들의 롤모델인 초국적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유명한 CEO들을 예로 들며, 사이코패스가 성공의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사이코패스는 정신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인식능력이 부족하거나 현실감각이 떨어진 상태가 아니기에, 사이코패스로 진단을 받는다고해서 범죄 형을 감면받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기존의 선입견과는 다르게 범죄자들 중 실제로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은 통계는 매우 경미하며(약 5-10%),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는 범죄자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사이코패스에 대해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최근의 흐름 상 반사회적 ‘성향’ 정도로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효율적 업무성과를 위해서는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관계적 자아를 그토록 강조한 철학자인 헤겔과 아도르노는 사이코패스에 대해서 뭐라고 답했을까? 짐작컨대 당연히 부정적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두 명의 학자들은 자기 반성(자기초월)이 가능한 인간을 철학적 인간, 사유하는 인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헤겔은 이러한 자기반성 능력을 정신의 ‘소외’ 구조라고 보았다. 사유할 줄 아는 인간은 관계를 통해 보편적 자기의식이 가능하고, 보편적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를 분리(소외)시켜서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아는 정신의 구조를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로 살아갈 수 없기에, 관계적 자아라는 구조는 이러한 자기반성능력이 가능하고, 반성 후에 다시 자기를 통합하는 정신의 구조로 연결 될 수 있다는 것이 헤겔의 입장이다. 헤겔과 비슷하면서도 차이점이 있는 아도르노는, 관계적 자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쉽게 자기반성 능력으로 향하지 못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반성보다는 덜 고통스러운 자기동일시라는 기제를 발휘해 폭력적 구조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보았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이성적 사유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부정과 반성을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두 학자에 대한 논의가 흥미로운데, 어쨌든 두 학자 모두 자기반성이라는 자기 소외의 고통을 감수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사회의 사이코패스 예찬에 대해서는 두 학자 모두 고립된 자아의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이 초래할 비극에 대해 논할 것이라 예상된다.

사이코패스 입장에서는 두 학자 모두 쓸데 없이 관계적 자아를 버리지 못해 스스로를 고통받게 하는 것에 대해 비웃음을 칠 것 같다. 그저 나만 즐기고 성취할 수 있는 목표에만 집중하면 될 것을, 왜 두 학자는 관계적 자아를 지향하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고통을 감수하라는 걸까? 사이코패스가 성공을 위한 자아상으로 각광받는 것처럼, 관계적 자아는 경쟁과 효율성의 시대에 역행하는 자아상일 것이다. 경쟁과 효율이 이 시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를 신봉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 역시 고통스럽다 못해 처참하다. 최근에 한국사회에서 관심받고 있는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 역시 이러한 시대의 자화상을 반영하며, 경쟁과 효율에만 열중하는 삶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늘 나만을 위해 살라는 사이코패스가 되라고 종용하지만, 나만을 위한 삶은 오히려 나를 잃게 만들고 관계까지도 파멸시키게 만든다. 드라마처럼 사이코패스의 성공이라는 판타지는 역설적이게도 모두의 비극을 초래한다.

관계적 자아는 그런 의미에서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보다 열린 자아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구원이자, 운동이다. 관계적 자아는 나와 세계를 고정시키고 규정하는 억압체계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언제나 열려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향해 일으켜 홀로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관계적 자아로 인한 자기반성의 고통은 나를 해방시키고 관계를 해방시키는 생산적 고통이지만, 고립된 자아가 받는 고통은 궁극적으로 자기상실과 관계의 파멸이 될 것이다. 스카이캐슬 드라마의 애청자로써, 결말이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부디 사이코패스의 성공이라는 비극으로 마치지는 않기를 바라본다.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중



* 필자소개

현재 '목회적 삶'과 '목회자의 삶'의 경계에서 고민중에 있으며, 친구들에게는 네살 선구라 불리우고 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목사수련생 과정을 밟고있는 중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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