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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박여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4. 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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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박여라*

작년에 유럽에 갔다가 와인을 딱 한 병 사서 돌아왔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한 짝(12병)이나 적어도 반 짝을 갖고 돌아오더니 왜? 미국서 올 때는 와인을 아예 따로 포장해 비행기 타며 위탁수하물로 부치고, 도착해서는 영수증을 보여주고 세금을 낸다. 이번엔 여러 교통수단으로 돌아다니느라 와인을 들고 다니기 무겁고 번거로워 많이 가져오는 건 엄두를 못 냈다. 비행기도 여러 번 갈아타니 귀찮아질 가능성은 아예 없애고, 와인은 여정 후반부에 사자고 일찌감치 계획했다. 마지막 비행기 타기 전에야 한 병을 고르고 골라 가방 깊숙이 집어넣었다. 물론 거기 있는 동안 매일매일 최선을 다했다.

우리나라 주류 면세범위는 종류에 상관없이 ‘1리터 이하, 1병, 미화 $400 이하’이다. 이 세 가지 조건 하나하나 모두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한 병이 750mL짜리 와인은 억울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와인이 아니라 해외에서 와인을 사 오는 내가 250mL 어치 억울하다.

도대체 와인은 왜 1리터가 아니어서 이렇게 매번 250mL짜리 아쉬움을 갖게 하는가. 사실 와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주류는 ¾ 리터가 무역 표준단위다. 예전에 유리병을 만들 때 숨을 한 번 불어넣는 정도의 크기라서 많이 유통됐다는 썰이 있긴 하나 정확한 근거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 주류가 1리터짜리로 생산되지 않지만 1리터짜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면세 규정을 1리터로 정한 것은 편의에 의한 것 같다.

미국도 입국할 때 주류 면세 규정이 1리터 이하까지다. 이웃 나라 일본은 750mL ‘정도'(규정을 정확히 적용하는 일본스럽게….) 3병까지, 중국은 750mL가 넘지 않는 걸로 2병까지다. 홍콩은 ‘섭씨 20도에서 쟀을 때' 30도 넘는 주류는 1리터까지 (2008년부터 와인은 면세입니다~), 호주는 종류 상관없이 2.25 리터(그냥 3병이라고 하면 안 돼?), 뉴질랜드는 1.125 리터를 넘지 않는 증류주 3병까지 ‘그리고!!!’ 와인이나 맥주는 4.5리터까지 면세다.

EU는 면세 규정이 꽤 구체적이다. 알코올 농도가 22% 넘는 알코올/알코올음료 또는 80%가 넘는 변성 에틸알코올은 1리터까지, 또는 22%가 넘지 않는 알코올음료는 2리터까지가 면세다. 와인은 4리터까지, ‘그리고' 맥주는 16리터까지가 관세 면제다.(부가가치세와 소비세만 적용)

EU 국가들 사이에선 원칙적으로 제한이 없다. 하지만 개인이 소비하려 가져왔다고 보기에 어렵다고 정한 선은 있다. 이것보다 적은데 꼬투리를 잡으면 곤란하다는 거다. 그게 얼마큼이냐고? 증류주는 10리터, 주정강화와인처럼 알코올농도가 어중간한 것들은 20리터, 와인은 무려 90리터(스파클링와인 60리터까지를 포함해서), 맥주는 110리터다. 스케일 보소! 와인 90리터는 120병, 열 짝이다. 사흘에 한 병씩 마셔도 1년이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EU가 아니게 되면 얼마나 쓰릴까... ㅎ

물론 이 모든 면세 규정은 술을 마셔도 되는 나이 제한이 나라별로 있다. 이쯤에서 우리나라의 1병, 1리터 이하, $400을 넘지 않는다는 면세 범위를 다시 들여다보면, 술에 대해 관대해도 너무 관대한 통념에 비하면 주류 면세 규정이 옹색하다. 관세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한 병보다는 더 가져왔어야 한다.

성서 시대의 여행자는 어떤 사람들이었나. 생활하는 곳을 떠나야 했던 대부분은 가난하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방인은 도움이 필요했다. 내몰려서 길을 떠났지 오늘날 개념으로 스스로 즐기는 여행은 아니었다. 예수나 그 이후 제자들과 전도자들 역시 삶이 길 위에 있었다. 정복자의 얼굴이었던 보통사람들, 군인들도 집을 떠나 먼 곳으로 다녔다. 어느 시대라도 무역이 있고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다. 뱃사람들은 배 타고 멀리 낯선 곳에 가 이런저런 거래를 했을 것이다.

관세(customs)는 왜 생겼을까. 아주 옛날부터 보부상들은 어느 지역에 들어가면 지위가 높은 이에게, 거래 규모가 크면 왕에게 잘 봐달라고 자발적인 ‘관세'를 지불했다고 한다. 동서양 차이가 없이 오래된 관습(custom)이고, 여행이 많아지고 국가 이익을 지켜야 하니까 경쟁 속에서 점점 더 복잡해졌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는 존경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7~8절)

바울은 관세는 내고 서로 사랑하란다. 그래,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와인은 우리가 마시고.

*사진설명: 포르투갈 피냐우Pinhão 기차역. 포트 와인 생산지 중심이다. 역사 바깥벽에 포도밭의 한 해를 그린 아줄레주가 인상적이었다.

*필자소개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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