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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광장의 정신, 세월호의 정신(이상철)

시평

by 제3시대 2019. 4. 2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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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정신, 세월호의 정신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주간)

지금 우리는 “진실, 부활을 향해”라는 주제로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 예배를 이곳 광화문 416광장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어쩌다가 이 자리에서 서서 증언을 하게 되었는지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예측 가능한 것은 제가 시무하는 한백교회가 광화문과 가까운 서대문에 있어서 오며 가며 이 광장을 많이 지나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냥 단순히 많이 스쳐갔다는 이유만으로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닌지 유가족들과 광장을 지켰던 분들에게 무척 부끄럽고 송구합니다. 

예배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저에게 증언을 부탁하면서 요청했던 것은 이 광화문 광장, 세월호 광장이 지니는 장소성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공간이 의미하는 역사성, 신학적 함의들이 무엇인지 짧게 회고하는 것이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오늘의 증언 내용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공부한다는 핑계로 한국을 떠나있었습니다. 10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를 한 후에 귀국한 때가 2014년 봄이었고, 제가 돌아오고 나서 한 달 있다가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귀국하고 모교인 한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제 강의를 듣고 있었던 대학원 원우들 11명 중 5명이 세월호 사건 후에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을 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저의 일상이 광화문 광장과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친 후에 단식농성하고 있는 광화문으로 달려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그날 배운 내용을 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학생들에게 제가 무엇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오히려 그 제자들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배웠고, 그 친구들 덕에 한국사회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내걸었던 요구조건은 2가지였습니다 “세월호의 진상을 밝혀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하지만 그것은 5년이 흐른 지금까지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2015년 세월호 1주기때, 청와대로 행진하던 가족들이 더 이상 행진하지 못하고 광화문 북광장에 고립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홀로 외로운 섬처럼 고립된 세월호 가족들을 많은 기독청년들이 밤새 에워싸고 지키면서 함께 그 밤을 지새웠드랬습니다. 그때 몇몇의 학생들이 잡혀 갔고 벌금이 몇십에서 몇 백만원씩 떨어졌습니다. 저희 교회 신학생은 당시 사건으로 300만원 벌금이 떨어졌는데, 항소를 거듭해 지금 대법원으로 까지 올라가 있는 상황입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제가 보호자 자격으로 재판장에 함께 갔습니다. 마지막 변론에서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저는 한신대학교 신학생입니다. 저는 책에서만 봐왔던 하나님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고,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라는 성서의 메시지를 비로소 깨닫고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현실의 법이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부모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이 땅에 인간에 대한 존엄이 여전히 살아있고, 죽음에 대한 애도와 진실을 향한 뜨거움이 살아있음을, 법의 위대한 정신으로 보여주십시오.” 돌아오는 다음 주 23일 대법원 최종판결이 나온다고 하네요. 그 학생이 무죄가 나올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세월호 1주기 부활절 예배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머리를 삭발하고 아이들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이 광장으로 걸어 들어오던 세월호 어머니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함께 통곡하고 기도하고 노래했습니다. 저는 그때 이 광장이 성소라는 생각과, 이곳이 바로 예수가 부활한 장소이고, 예수가 다시 이 땅으로 내려올 때 이 광화문 광장에서 재림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이 고난과 통곡의 공간으로,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이 광장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렇듯 광화문 세월호 광장은 우리들에게 장소의 힘이, 그 장소로 모이는 사람들의 힘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전해줍니다. 

지난 3월 18일로 기억하는데 광화문 세월호 천막이 유가족들의 동의하에 철거되고 대신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이 지난 금요일에 들어섰습니다. 1700여 일(4년 8개월) 동안 이곳을 지키면서 수백만명의 방문객을 맞이 했던 세월호 천막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저 같은 사람도 아쉬웠는데 세월호 가족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저는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장소와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억은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난 특정한 무언가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민중들이 지닌 어떤 장소와 연관된 기억의 힘과 그것이 야기할 파장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모든 시대 모든 권력은 봉기와 혁명의 추억이 서려있는 장소를 가리거나 지우려고 하지요. 그리하여 장소를 공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공간이란 말 그대로 텅 빈 장소입니다. 창세기 1장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다고 말합니다. 혼돈하고 공허했다는 말은 그 공간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성서의 역사는 텅 비어있는 공간 안으로 하느님을 따르는 인간들의 고백과 행위, 그리고 사건과 기억이 채워져 가는 역사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텅 빈 공간은 우리들의 서사로 들어찬 장소로 변모됩니다. 그러므로 장소는 더 이상 텅 빈 공간이 아닙니다. 장소에는 사람이 있고, 생명이 있고, 사건이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이 광화문 광장처럼 말입니다.  

제가 10년 만에 다시 광화문 광장을 찾았을 때는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세종대왕 상이 새로 생겼고, 광화문 광장은 잔디밭으로 예쁘게 단장되어 있었더군요. 아무 기억도 아무 추억도 없는 그 공간 안으로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우리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자 감신대 신학생들은 세종대왕상을 점거하면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외쳤습니다. 곧이어 한신대 학생들의 농성이 이어지고 기도회가 열리고 천막이 쳐지면서 이곳 광화문 광장은 텅 빈 공간에서 사건으로 가득 찬 세월호 광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저는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우리들이 바라는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코 지지 않습니다!” 광화문 광장은 이런 소중한 가르침을 우리들에게 선사하였고, 마침내 이 광장은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 세월호 아픔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아픔을 기억하고 애도했던 광장의 정신을 마음속에 품기를 바랍니다. 

그 광장의 정신이란, 우리가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고,

그 광장의 정신이란,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이기에 인간의 생명은 예외 없이 찬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 광장의 정신이란,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마땅히 애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애석하게도 세월호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현대사 속에서 그런 소중한 가치들은 별로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옳은 일이고, 그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우리는, 그 신념과 믿음을 버려선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광장의 정신입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외면하고 가렸던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리라 누가 상상했습니까. 그러나 그 신념과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세월호 가족들, 그리고 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에 의해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이룩하였고,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를 기억하고 애도하던 사람들이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어떤 조롱과 멸시를 당했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무모하고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바로 그런 “무모하고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진보하여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암흑가운데 있지만, 세월호 광장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벅찬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이기에,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모이고, 다시 세월호 광장에서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외치면서 행진한다면, 어둠이 걷히면서 우리는 찬란한 아침을 맞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월호의 정신이고, 이것이 바로 광화문 광장이 우리에게 준 교훈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으며 부활한 예수님을 따라 세월호의 부활을 향해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오늘 이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이 글은 4월 18일 광화문 416 광장에서 드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예배 “진실, 부활을 향해” 중 필자가 행한 ‘현장의 증언’을 수정. 보완했음을 밝힙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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