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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플라스틱만 보면 떠오르는 ‘죽음’… 이 비극의 정체는(권오윤)

영화 읽기

by 제3시대 2019. 5. 1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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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만 보면 떠오르는 ‘죽음’… 이 비극의 정체는

권오윤*

북태평양 하와이 제도에서 가까운 미드웨이섬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의 전초 기지로서, '미드웨이 해전'의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는 수십만 마리의 알바트로스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섬 곳곳에는 플라스틱 병뚜껑, 깨진 플라스틱 조각, 그물 뭉치 등이 뒤섞인 조그만 더미가 놓여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것은 플라스틱을 잔뜩 먹고 죽은 새들의 유해입니다. 새들의 몸은 썩고 뼈대 뿐이지만, 뱃속의 플라스틱은 그대로 남은 것이죠.  

왜 이 새들은 하필이면 먹이도 아닌 플라스틱으로 배를 채우게 된 것일까요? 왜 이렇게 죽을 정도로 많이 먹게 된 것일까요? 공공 예술 프로젝트 영화<알바트로스(Albatross)>는 미드웨이섬의 환경과 알바트로스의 생태를 장기간에 걸쳐 카메라에 담아 이'플라스틱 유해'의 비밀을 밝혀내는 작품입니다. 

날 수 있는 가장 큰 새, 알바트로스의 비극

알바트로스는 날 수 있는 새 중에서 가장 큰 종류로서, 날개를 다 펴면3~4미터에 이릅니다. 날개가 크고 활공에 유리한 체형이라, 일단 하늘에 뜨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한번에1600킬로미터까지 날 수 있다고 하죠. 이들은 바다를 방랑하다가 번식기가 되면 고향 섬으로 돌아와 짝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기릅니다. 한 번 짝을 지으면10년 이상 해로하는데, 그 때문인지 정교한 구애 의식이 발달돼 있습니다. 또한 짝을 지은 후에도 장기간 서로의 털을 고르며 친밀감을 높이게 됩니다.  

알을 품거나 새끼를 기를 때는 암수가 번갈아 가며 일을 나누어 맡습니다. 한 마리가 알이나 새끼를 지키는 동안, 다른 한 마리는1주일에서 열흘씩 바다로 배를 채우러 나갔다가 돌아옵니다.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는 바다에서 채운 뱃속의 먹이를 게워 곧바로 입속으로 넣어줍니다. 안타깝게도, 바로 알바트로스의 이런 습성이 새끼가 죽는 원인이 됩니다.   

알바트로스의 먹이는 물 위에 떠다니는 오징어 같은 해양 생물입니다. 바다 가까이 날면서 바다 표면을 부리로 걷어 올려서 배를 채우죠. 그런데,문제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무수한 플라스틱 쓰레기들까지 먹이로 오인하고 먹는다는 것입니다. 어미 알바트로스가 먹여준 플라스틱 이물질들은 새끼의 몸 속에 쌓이고, 배가 터질 정도로 몸에 차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죽는 경우부터 어느 정도 자라 성체로서 첫 날갯짓을 하다가 죽는 경우까지, 어린 알바트로스는 언제가 됐든 죽게 됩니다. 

이 영화의 감독 크리스 조던이 처음으로 미드웨이섬을 방문하게 된 것은2009년의 일입니다. 그는 동료 사진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마누엘 마케다와 함께 해양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미드웨이섬의 비극적인 상황을 전해 듣고 직접 취재에 나섰죠. 

섬에 와서 새들의 유해를 본 그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것을 찍어 세상에 알리기로 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진 작가들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미드웨이섬을 찾습니다. 이들이 담아낸 알바트로스의 생태와 비극적인 죽음의 순간들은10년의 세월이 흐른 끝에 다큐멘터리 영화로 완성됐습니다.

비관습적인 표현의 강렬한 효과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새의 유해가 적나라하게 등장하는 장면들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일단 동물의 사체를 본다는 데서 오는 거부감이 상당했습니다. '굳이 왜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죠. 그러나 이 환경 다큐멘터리가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금기시하는 표현을 무릅쓴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른 뉴스 화면이나 다큐멘터리에도 플라스틱 때문에 죽어가는 해양 동물 이야기는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대상과 객관적 거리를 두는 식으로 소개되기 때문에 딱히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 고래가 저렇게 쓰레기를 많이 먹고 죽었구나, 바다사자가 불쌍하다, 안 됐다' 이 정도 느낌에 가까웠죠.

그러나 이 영화<알바트로스>를 보고 난 느낌은 아주 달랐습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알바트로스의 일상과 생태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 대상과 관객의 거리를 지워버립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시간 내내 관객은 알바트로스의 삶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런 정서적 유대가 쌓인 상태에서 보여주는 충격적인 죽음과 시체들은 보는 사람의 감정을 강하게 뒤흔들어 놓습니다. 영화를 본 뒤,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 제품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알바트로스들의 비참한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구의 환경 문제는 편리한 생활을 추구해온 인류가 만들어낸 재앙입니다. 하지만, 정작 인간들은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미세먼지 때문에 며칠째 마스크를 써야 한다거나 이상 고온이나 한파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있어야 겨우 환경 문제를 떠올리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감각하지 못하는 곳에서 훨씬 더 끔찍한 피해를 입는 생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순간의 편리함을 위해 애용하는 플라스틱 포장재나 병, 비닐봉투 등이 지구 어딘가에 사는 다른 생물에겐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물질이 돼 버리니까요. 인간에겐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진 저작권자: www.albatrossthefilm.com)

*<알바트로스>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로서, 웹사이트(https://www.albatrossthefilm.com/)에서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2019년 5월 2일자 기사 <플라스틱만 보면 떠오르는 '죽음'... 이 비극의 정체는>(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532258)로 게재된 글입니다"

*** 필자소개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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