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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세이] 작가의 변 : 창고 유령, 2019(백정기)

사진에세이

by 제3시대 2019. 8. 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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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 창고 유령, 2019

백정기(미디어작가)

 

작품링크 : https://youtu.be/IUC9-Tbv7KM

  수진1동 578번지 2층 양옥집, 초등학교 때 이사 온 집이다.  지금은 칠순 어머니 혼자 사신다. 최근까지 형이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분당으로 분가를 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이 근방에 어머니처럼 혼자 사는 노인네가 많다고 한다. - 이곳은 69년 도시빈민 강제 이주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시다.

  이곳은 어차피 재개발될 지역이라, 집주인들은 집을 수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기 흉한 곳이 많다. 어느 날, 계단을 새로 칠해드렸더니 어머니가 쌍 엄지를 치켜세우며 좋아하신다. 내친 김에 더 손볼 곳이 없나 둘러보다가 보일러실을 열어보았다. 잡동사니 들이 문 앞까지 쌓여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 보일러실에 있는 쓸데없는 짐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참고: http://www.1ga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9837  

어머니도 동의하시고 이렇게 말씀 하셨다 : “어차피 1~2년 동안 안 쓰는 물건은 버리는 것이 맞다고 TV에서 그러더라.” 보일러실에서는 어마어마한 물건이 나왔다. 각종 도기, 그릇, 옷가지, 태극기, 우산, 가스버너, 텐트, 자동차 바퀴 등. 잡동사니들은 집 앞에 산더미처럼 쌓였다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실상은 이랬다. 내가 보일러실에서 짐을 꺼내면 어머니는 갖은 구실을 대면서 짐을 도로 가지고 들어가셨다. 보일러실에 쌓여있던 잡동사니는 자리를 옮겨 집 안 구석구석 재배치되었을 뿐이다.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내가 죽거든 다 버려라”

  내 명분은 충분했다. 수진1동 578번지, 보일러실에 있는 짐들은 부질없는 물건들이다. 수년 동안 쓰지 않는 물건은 앞으로도 쓰일리가 없는 물건이다. 안전과 위생을 생각하면 더욱 처분할 물건이다. 묵은 것을 정리해야 새로운 삶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야심찬 계획은 처참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행복 회로를 돌려 이렇게 생각했다. : 내가 어머니에게 다른 삶을 강요할 수 없듯이, 일그러진 삶이라고 해도 인정하고 관망할 수밖에 없겠구나.   

   이번 작업은 보일러실에서 나온 쓰레기로 만든 작은 공간을 만들고 어머니와 나눈 대화문을 낭독하는 퍼포먼스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 난개발과 재개발 사이에 놓인 어머니의 감성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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