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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너무나 사적인, 역사의 재구성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2019)>(이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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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3시대 2019. 8. 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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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사적인, 역사의 재구성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2019)>

이희승*

10편을 만들고 은퇴할 것임을 일찌감치 선언한 헐리우드의 이단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이자 9번째 영화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2019)>가 봉준호 감독의<기생충>과 나란히 올해 칸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비록 본상 수상에 실패했지만 개봉 전부터 지금까지, 개봉하는 곳마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반응으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습니다. 비디오 대여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온갖 장르 영화를 섭렵했다는 타란티노 감독은, 첫 장편영화 감독작인<저수지의 개들(1992)>로 다수의 캐릭터들이 쉼없이 이야기의 바톤을 주고 받는 독특한 구성, B급 영화 문법을 자유자재로 섞어 쓰는 명민함과 재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의 묘사 등으로 천재 감독의 칭호를 얻은 뒤, 곧바로 2번째 작품인<펄프픽션(1994)>으로 칸 영화제 대상의 영광을 누리죠.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기존의 장르 문법을 뒤집고 비틀면서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폭력의 미학을 가미한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한 거장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동서양의 모든 장르 영화에 오마주를 보낸 <킬빌> 시리즈나 흑인 노예 제도를 소재로 삼아 정통 서부극을 이미 한번 변형한 변종인 스파게티 웨스턴 형식을 도용하면서도 흑인 건맨을 앞세운 <장고: 분노의 추적자>,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연합군의 “반영웅적인” 활약상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등,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하나하나가 관련 장르들의 재미를 모아 놓은 종합선물세트이면서도 장르의 무덤이라고도 할 만큼 기존의 관습을 형체도 남기지 않고 분해해 버립니다.

아홉번째 장편인<헐리우드>는 과거의 타란티노 세계에서 좀 동떨어진 위치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호불호가 더욱 심하게 갈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특정한 장르나 계보를 레퍼런스로 두고 변주를 시도하기보다는,특정 시대(1960년대 헐리우드)와 특정 사건(찰스 맨슨 패밀리의 살인 사건)을 재현하면서 감독 자신의 사적인 향수를 표현합니다. 초기의 저항정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약물을 받아 들인 변종 히피 문화와 무한 경쟁에서 이기고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미국의 내재적 폭력을 영웅시하고 미화해 온 대중 문화의 상술이 만나 심각한 화학적 부작용을 일으키는 시대상을 포착하려는 연출 의도는 분명한 편입니다. 하지만, 여러 장르와 영화 문법, 전통을 혼합하는 영화적 실험보다는, 앞서 말한 주제의식과 아직도 순진함과 예술적 의지가 남아 있는 헐리우드 스타들의 인간적 매력에 대한 감독 자신의 노스탤지어가 뒤섞인 주관적인 역사의 재구성에 역점을 둔<헐리우드>는 혹자에게는 매우 불균질하게, 혹자에게는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한때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잘나갔지만 지금은 한물가고 술에 쩔어 사는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스턴트 더블이자 운전기사요 절친이기도 한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 내리막길을 걷는 릭의 커리어를 어떻게든 회생시키려고 동분서주하지만, 무한 경쟁을 부축이는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의 냉철한 상업주의는 미운정 고운정으로 똘똘 뭉친 이 두 사나이들의 노력을 처절하게 외면합니다. 다소 지루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영화의 전반부(영화 시작 후 1시간)는 의리로 뭉친 릭과 클리프의 궤적을 따라1969년 헐리우드 풍경을 세세하게 잡아 냅니다. 특히 영화가 대중매체의 선두주자로써의 자리를 텔레비젼 드라마에게 빼앗기면서, 옛 영광을 뒤로 한 채 자존심과 콧대를 꺽고 생계를 위해 두 매체를 오가야 하는 릭의 신세를 측은하게 조명합니다. 물심양면으로 릭을 돕고 보필하는 클리프의 우정(혹은 충성심) 또한 타란티노의 기존 영화들에서 본 적 없을 만큼 굉장히 인간적이고 따스하게 그려집니다.

젊은 감독 로만 폴란스키와 그의 아름다운 부인이자 신인 여배우인 샤론 테이트가 릭의 옆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상의 인물인 릭과 클리프의 세계와1969년 맨슨 패밀리의 손에 무참히 살해된 샤론 테이트와 그녀의 지인들이 속한 역사적 사건이 씨줄과 날줄처럼 영화의 내러티브를 촘촘하게 직조합니다. <보헤미안 렙소디>처럼 역사와 가상의 세계가 경계없이 어울어지는 영화들이 최근 영화팬들에게 각광 받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역사적 사건과 주인공의 불안한 상황을 섬세하게 교차편집하면서도 집착에 가까운 고증으로 당시 헐리우드 분위기와 대중문화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1960년대 헐리우드를 입체적으로 재현한 영화 <헐리우드>는 형식적, 시각적, 구조적으로 탁월한 역사 재구성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영화는 관객을 보는내내 불안하게 하는 샤론 테이트의 너무나 잘 알려진 비극적 죽음과 가상의 인물이지만 관객이 충분히 감정이입을 한 주인공 릭의 불안한 심리를 통해, 짐짓 평온하고 아직은 풍요해 보이는 헐리우드의, 미국 사회의 내부에 이미 자리잡은 피할 수 없는 파국을 예고하는 동시에 확인시켜 줍니다.  특히나, 실제 인물과 사건 그리고 그 시대에 유행하던 문화적 컨텐츠들을 단순히 나열하고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물망처럼 복잡한 헐리우드 인맥이라는 레퍼런스를 적극 활용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 사이에 벌이지는 소소한 사건과 대화들 간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인과관계들을 반추해 보게 하는 대목이 종종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늘 주인공만 하던 릭이 처음 악당을 연기하는 날,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술에 쩔어 있던 그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실수를 연발하고는 자신의 트레일러로 돌아와 뼈를 깎는 후회 끝에 심기일전하고 최고의 명연기를 펼치게 됩니다. 그저그런 스파게티 웨스턴을 찍어 내며 시큰둥하게 돌아 가던 촬영장의 스텝과 배우들은, 릭의 혼신의 연기로 이제 은막에서 사라진 서부극의 찬란한 모먼트를 상기하고 잠시나마 영화 만들기의 희열과 숭고한 열정을 경험합니다. 한편, 클리프는 우연처럼 몇번이나 마주쳤던 아리따운 히치하이커를 더이상 거절 못하고 차에 태우게 됩니다. 그리고 “푸쉬캣”이라 불리는 이 히피 여성이 클리프를 데리고 가는 곳은 실제로 맨슨 패밀리가 여러해 동안 거처하면서 범죄행각을 벌였던 버려진 서부극 촬영장이었죠. 유럽의 영화 산업이 전쟁으로 초토화된1920년대부터 덩치를 있는대로 불려온 헐리우드라는 거대 영화산업이 시대의 변화를 쫓아 구조조정을 하고 남긴 쓰레기 소각장같은 황량한 촬영장에, 소비사회를 등지고 과감히 주류 사회를 뛰쳐 나온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사는 히피 공동체의 모습은 괴이한 긴장감과 공포마저 느끼게 합니다. 결국 이곳에서 클리프와 마주친 젊은 남녀3명은 역사 속에서는 폴란스키 저택에서 샤론 테이트를 비롯해5명을 잔인하게 살해하지만, 영화 말미에서는 클리프와 다시한번 조우하면서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합니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여지를 남겨 놓은 타란티노의 신작<헐리우드>는 영화적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나무랄데 없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란티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시니시즘이 다소 진부한 센티멘털리즘으로 돌아 선 것이 아쉽지만, 꼼꼼한 만듦새에서 느껴지는 앞뒤없는 감독의 영화사랑은 여전히 온도가 높은 영화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다만, 가짜 뉴스와 가짜 역사가 난무하고,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보는 주관적 관점이 객관적 사실 위에 군림하는 것도 모자라서, 사실확인이나 공적 사적 발언에 대한 윤리적 책임의식을 논하는 것이 자유의사표현의 적이 되어 버린 오늘. 재주많은 명장이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에서,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한 역사의 재구성이라는 결코 신선하지 않은 영화적 시도를 읽은 저의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영화와 텔레비젼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라캉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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