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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거짓 그리스도와 김용희(강군)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9. 2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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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그리스도와 김용희

강군(기독교학과 학부생)

1.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돌들이고 얼마나 장엄한 건물들입니까?”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 웅장한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3. 예수님께서 성전 맞은편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따로 예수님께 물었다. 
4. “저희에게 일러 주십시오.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마가복음 13:1~6

13:1-2. 오늘 드린 본문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은 성전이 파괴될 거라는 예수님의 예언과 그 파괴의 표징으로써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성전이 파괴되는 이유는 마가복음 11장에서 나온 것처럼 성전이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막 11,17)   유랑민족으로 살았던 히브리인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해 성전을 지었습니다.  튼튼한 돌로 지은 웅장한 성전은 히브리인들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출애굽 정신을 계승한 히브리인들의 정신은 빛이 바래지고 성전은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했습니다.  하느님이 성전을 파괴한 이유는 성전 귀족들이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을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성전의 파괴를 보면서 우리나라를 생각합니다.  3.1운동과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오늘의 촛불까지 우리 민중은 이 나라가 잘못된 길로 갈 때마다 공의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민중들의 피와 땀으로 이 나라 경제가 이만큼 성장했지만, 민중들의 삶은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주님이 경고하신 대로, 외부가 빛나고 튼튼해도 내부가 썩으면 그 어떤 성전과 건물도 버텨낼 수 없습니다.  성전이 강도의 소굴로 전락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진 것처럼,  제 이익만 챙기려는 강도들의 약탈로 민중의 삶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까 걱정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강도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을 우리는 강도라고 부릅니까?  강자가 약자의 권리를, 약자의 물건을 강탈하는 게 강도 아닙니까?  많은 걸 누리면서도 여전히 약자의 것을 탐내는 것을 우리는 치사하다고 부릅니다.  기업은 온갖 법의 혜택을 받지만, 노동자가 의지할 데라곤 헌법 제33조에 명시된 노동3권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노동자의 이 하나 남은 권리마저도 강탈해가려 합니다.  이 치사한 삼성 자본에게, 강도 같은 삼성 자본에게 우리는 당연히 누려야 할,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설교문을 작성하면서 김용희 님의 사진을 처음 보았습니다.  김용희 님의 초상에서 저는 삼성서비스센터 염호석 열사, 최종범 열사가 보였습니다.  삼성반도체 고 황유미 씨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삼성이 세운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경찰과 용역 깡패에게 머리가 터진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김용희의 투쟁은 김용희만의 투쟁이 아닙니다.  삼성서비스센터에 제대로 된 민주노조가 있었다면, 두 열사의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삼성반도체에 제대로 된 민주노조가 있었다면, 고 황유미 씨는 안전한 작업장에서 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치카랑 공장에 제대로 된 민주노조가 있었다면, 비정규직-정규직이 하나 되는 공장이 되어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노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민주 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너무나도 쉽게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투쟁은 이미 쓰러져간 민중들의 염원과 꿈을 계승하는 투쟁이고  앞으로 이 땅에서 노동하며 살아갈 민중들의 생명을 위한 투쟁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용희 님의 초상에서 저는 예수의 얼굴을 봅니다.   약자의 하느님, 고난받는 하느님, 고난받는 민중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봅니다. 이 사회에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그리스도인 여러분,   우리는 개인 김용희가 아니라 삼성과 투쟁하는 민중 김용희를 기억해야 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하늘 저편 멀리 숨어 있는 하느님을 고백할 게 아니라 이 땅, 이 민중이 참여하는 사건 속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고백합시다. 
 
13:3-6.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났습니다.  형량이 센 재산국외도피는 아쉽게 무죄가 나왔지만 고등법원이 무죄 판결한 부분을 원심파기함으로써 집행유예가 아니라 실형을 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 이후 우리나라 메이저 언론사는 일제히 삼성이 제공하는 홍보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에 사우디를 찾은 이재용이 대법원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임원들을 독려했다는 식입니다.  그 중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더 노골적입니다. 재판으로 삼성을 흔들면 우리나라 경제를 누가 뒷감당할 거냐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에서 삼성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으니 삼성을 마치 애국기업으로 포장합니다.  삼성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우리나라를 구원할 난세의 영웅이라도 된 것 같습니다. 

앞서 저는 성전이 파괴될 때 그 표징으로써 거짓 그리스도가 출현할 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드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쉽게 거짓 그리스도에 속으면 안 됩니다.  김용희 님은 1991년 노조 결성을 위해 투쟁하다 해고되셨습니다.  그 뒤로 거의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삼성의 덩치는 몇 배, 아니 몇 십 배가 커졌지만 삼성의 노동자는 여전히 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정부로 바뀌었지만, 삼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이 달라졌을 리 없습니다.  앞으로도 삼성은 우리나라에 경제 위기가 올 때마다 이를 빌미로 노동자의 권리를 더욱 억압할 것입니다. 언론은 삼성을 마치 난세에 나타난 그리스도로 만들어 민중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이 진정 이 민중을 구원할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은 투쟁하는 김용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를 표방하든, 민주주의를 표방하든 기업을 통제할 고삐, 즉 노조가 없으면 민중의 삶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김용희의 투쟁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투쟁은 이 나라의 정부와 기업이 우리에게 전파하는 거짓 신화를 폭파하려는 몸부림입니다.  삼성 자본과 자본주의 국가는 김용희의 투쟁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지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삼성이 작업장 안에 콩알만 한 노조가 생겨도 기겁을 하고 없애려든 이유는,  그리고 모든 정권이 삼성을 비호하고 삼성의 요청에 따라 경찰을 동원해 노동자를 구타한 이유는,  국가와 기업이 여러분의 삶을 구원할 그리스도라는 환상을 계속 주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신화를 깨뜨리기 위해 김용희는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거짓 그리스도에 맞선 투쟁에 힘껏 연대합시다. 이 땅에 진정한 하느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힘껏 싸워 이겨냅시다.  마지막으로, 기도 대신 투쟁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땅에 공의가 / 강물처럼 흐르는 그날까지  끝까지, 함께, 투쟁!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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