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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그대를 찾아서 4(강윤아)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9. 10. 1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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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찾아서 인터뷰 4

강윤아(청소년극 연구자)

이 연재는 1991년 경동교회 중고등부의 몸으로 드리는 예배인 “그대 버려졌나”의 참가자들, 지금은 성인이 된 그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시리즈의 네 번 째 내용이다. 이번 인터뷰 참가자는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처음 인터뷰했던 것은 퍼포먼스학을 공부하던 십수 년 전인데, 당시 내가 속해있던 퍼포먼스 학과는 모든 형식 실험에 대해서 관대했었다. 내가 선생님께 “이번 연구에서는 나 자신을 인터뷰하겠다”고 했을 때 그 분은 빠르게 뜨개질 하던 손을 멈추고 “풉”하고 웃으셨다. 하지만 나는 나를 인터뷰할 수 있었고, 그 후로 다른 연구에서도 종종 셀프 인터뷰라는 것을 접하는 일이 생겼다. 이번 셀프 인터뷰의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화나 스카이프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는데 해외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거리상 대면 인터뷰 섭외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 자신을 인터뷰하기로 하였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인터뷰는 8월 13일 나의 집에서 90여분 진행하였고 이후 녹취록에 수시로 메모한 내용을 추가하였다. 이번에는 녹취록에서 발췌한 내용이 아니라 요약한 내용을 싣는다. 나는 “그대”에서 잃어버린 탕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대 버려졌나”를 떠올리면 기억에 남는 것은?

무대 위에서 몰입할 때 보는 사람들도 함께 몰입했던 기억이 나요. 우리가 너무 잘 노니까 보는 사람도 신나했던 기억이 나고요. 사람들이 감응해서 박수쳤던 일이 기억나고... 피날레 때 진짜 신나서 객석과 공을 주고 받으면서 열광했었는데 우리가 해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검열하지 않고 무언가 표현 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고요. 연습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춤추거나 신나는 것을 평소에는 많이 못해보다가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고 같이 있는 자체가 즐거웠던 것이 기억이 나요. 무엇보다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중학교가 너무 재미없었어요. 나는 삼년 반장이었는데 무슨 일제 시대 앞잡이처럼 이름대신 반장이라고 불리고... 삼년 동안 학년 초마다 집에서 반장 안한다고 한 달씩 울었어요. 학교라는 매트릭스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도 해야되는 것도 너무 뻔했다면 교회는 신세계였어요.

공정하고 평등했고 경쟁적 관계도 아니었고요. 진짜 친한 언니 오빠들도 있고 동생들도 있고. 관계 맺는 자체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그 자체가 뿌듯했던 기억이 나지요. 너무너무. 진짜 너무 재미있었어요. 어른이 된 다음에는 모인다는 자체에 그렇게 비중을 두지 않는데... 그 때는 뭔가 우리 구성원 하나하나... 이게 되게 중요했어요. 관계 맺고 싶은 욕망... 청소년기에 또래와의 애착이 중요하다는 것은 공부하면서 더 잘 알게 되었지만...

여름 수련회 가서 태풍 때문에 파도가 높게 치는데 거기 뛰어 들어가서 놀았어요. 그러다가 서울 오는 길에 버스가 고장났는데 집에 늦게 가서 너무 신나는거에요. 그렇게 막 빠져들었던거 같아요.

“그대” 할 때에도 연습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보니 친해져서... 틈만 나면 버스에서건 어디서건 같이 공연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던 기억이 나지요.

많은 친구들하고는 어릴 때부터 같이 성장한 것도 있었지만... 준목님도 늘 공동체를 강조하시고... 그래서 마음이 열리는게 있었고... 일단 어렸고요. 그리고 계속 일을 같이 하니까 친해지지요. 매 주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되고 수련회를 가더라도 학년별로 해야 하는 일들이 꼭 있고요.

 

신앙적으로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흡입력이 엄청나고 무언가 전적으로 열리는게 있었는데... 그것이 그냥 또래고, 친했고 예술 활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를 열게 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았나...막힌 담을 허무는... 기억나는 순간들이 많이 있어요. 목표 디아코니아 수녀회 갔을 때... 각자 자연과의 명상이라는 것을 했는데 혼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풀잎 하나를 쳐다보느라 밥 때가 한참 지난 줄도 모르고 내려오지 못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리고 나서 풀잎이라는 시를 써서 수녀회에 드리고 왔는데 그 시를 다시 보고 싶어서 대학생이 된 몇 년 후에 한 번도 연락 안했던 수녀회에 전화를 했었어요. 무언가 또래 자치 모임이라고만 생각했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찬란한 아름다움의 순간들... 기억이 많이 나지요. 여러 애찬식들도 ...수련회에 가서 로메로나 미션 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 정의를 이루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일이나, 예배 끝에 평화의 기도... 진지하게 불렀던 기억들이 나고요.

 

그 사건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끼친 점이 있다면?

그 사건은 경동교회라는 거대한 프로젝트, 그 안에서도 중고등부 신우회라는 꽤 긴 전통 속에서 삼십년 전에 일어났어요. 특수한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이고 이제는 사라지고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체험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 체험에서 가치 있는 것들이 무엇이었고 그것을 지금 현실의 어디서 누구와 공유할 수 있는지 계속 질문하게 되는 것이 이 사건의 영향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연극 공간이라는 제 삼의 공간에서 끌어올렸던 것이 아니었나... 내가 인격적인 존재구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구나, 내 옆 사람도 그렇구나... 몸으로 알게 된 계기 같은 것이었어요. 그 후로 줄곧 꿈꾸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고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언젠가는 나 스스로, 옆 사람, 신...과 진짜 내 모습으로 만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믿어왔고요.

그런데 당연한 일이지만, 청소년 시절에도 그 후에도 그러한 인식과 현실 사이에 거리가 컸어요... 그러한 괴리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새 하늘과 새 땅을 끌어올린다는 것이 사실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식의 깊이가 필요하다거나 현실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감내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신에게 돌아가는 근육은 여전히 키우고 있고요... “그대” 체험을 청소년 시절 무대에서 몸으로 했었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정직하고 이상주의적이었기 때문에 그 체험을 맹목적으로 확신했다면... 바로 그러한 이상주의의 한계나 앞에서 말한 한계들에 대해서 성찰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 체험이 생생한데...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한다기보다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 그 사건이 지금도 진행 중이고 무언가 영원한 것과 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끝)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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