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아(청소년극 연구자)
이 연재는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중고등부의 91년 예술제인 뮤지컬 “그대 버려졌나”의 참가자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이다.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당시 공연 체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40대가 된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탐색하는 작업이다. [경동 예술제, “그대 버려졌나”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서는 본 연재의 초반에 소개한 바 있다.]
S는 당시 중 3이었으며 밴드의 일원이었다. 현재 혜화동에 있는 큰 병원에서 어린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인터뷰는 2019년 10월 19일 오전 10시 대학로 까페 락앤락에서 진행하였다. 지면상 대화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아래 대화에서 K는 나다. 나는 S와 당시 공연 그리고 중고등부 생활을 오래 함께 했기 때문에 대화에서 막역한 사이임이 드러난다.
S 에게 “그대 버려졌나” 공연 영상을 본 소감을 물었다.
S: 그게 떠올랐어. 맨날 연습 늦게 끝나가지고 버스 타고 가다가 졸아서 종점 가고 했던 기억? [...] 그 때 내 생활의 되게 큰 중심이었다는 생각을 했고 또 하나는 그 때가 내가 중 삼 때였어. 11월 10일이 [과학고] 입시날이었어 [...] 되게 신기했던게 [입시 직전 공연 참가를 허락하신] 우리 부모님이 무슨 생각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 또 한편으로 그 때는 정말 많은 자율성을 줬구나. (자신할 수 없다는 듯) 거꾸로 나는 우리 아이가 그런 상황이라면…
요즈음의 교육 현실과 S의 교육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다.
S: 우리 애들은 사춘기 시절이 즐거움으로 남으면 좋겠다.
K: 맞아.
S: 그런데 신우회 [중고등부 자치 활동] 특히 예술제가 되게 그런 것 같애. 사춘기 시절의 즐거움. 그런거 아닐까?
K: 사춘기가 행복해야된다는 생각은 어떻게 해서 하게 되었어요?
S: 내가 행복하게 지냈으니까.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순간이 한 오프로 되겠지. 그리고 한 45프로는 잿빛이고 오십프로는 되게 찌질했을거 같애 내 생각에.
K: 나도.
S: 그런데 돌이켜보니까 너무 행복해 […] 연습 마치고 늦었다고 막 하면서 버스 타고 가던 63-1 버스 안에서 봤던 창 밖 혹은 나왔던 노래. 아니면 깨보니까 “또 가락동이야” 이러면서 그 상황들도 생각이 나고. 그리고 시험 때문에 불안했던거? 그런 것도 다 돌이켜보니까 그냥 좋았다고 하는. 내 맘대로 다 결정할 수 있었던거. 그건 행복의 제일 큰... [녹취 내용이 안 들림] 라고 생각하거든 [...] 그런데 [본인] 아이들한테도 [그렇게] 잘 못하고. 요즘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거 같애.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게 별로 없는거 아닌가.
S 가 신실했던 기억이 나서 예술제에 임하는 마음도 그랬었는지 물었다.
S: 신앙적으로 독실하고 성숙했기 때문에 예술제를 한 것 같지는 않아. 다만 영향을 미쳤을 것 같기는 해. 중학교 때 수양회를 가거나 그러면서 가끔씩 이렇게 툭툭 사람들과 이야기했던 그런 내용들 하고 그 다음에 이제 신앙하고 예술제, 이 세 가지가[…] 그냥 녹아 들어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해. 그런데 만약에 꺼꾸로 신앙과 그거를 연결을 너무 하면 부담스러워 […] 아마 준비하신 분들이 조금 더 그런거를 녹여내려고 노력을 했을 것 같아 […] 고 2들이 정말 고민 많이 했을거야. W 누나나 Y 누나나 그 쪽 팀들이 아마 이게 그냥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교회에서 하는거고 주제를 정하고 전달하는 내용에 있어서도 실제로 고민을 많이 했던거고 그 고민을 나는 그냥 흡수한게 아니었을까. 근데 고민의 깊이는 비슷했던거 같애. [최근 공연 영상을 볼 때] “세상에는 나 혼자” 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맞아, 그 때 그게 나한테 되게 중요한거기는 했어.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대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일까 […] “왜 사는가?” 까지는 아니고 "왜 태어났지?" 그게 그 당시에 내 고민 중의 하나였던 그런 점에 있어서 그 키워드들과 상황이 되게 와 닿는게 있었고[...] 무대는 잠깐이었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을 해. […] 그래서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게 이런 것일 줄은 몰랐는데 막상 하다보면 어느새 그거의 일부분이 되고 삶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그래서 신우회 활동이나 예술제가 정말 생활의 되게 큰 부분이었지.
K: 중고등부를 떠올리면 지금 영향받은게 있는지?
S: 영향 많이 받았겠지. 왜냐하면 한게 공부 말고는 그거밖에 없으니까. 일단 나의 기본적인 삶에 대한 태도는 교회는 열심히 [...] 안 나가기는 하나 기독교적인 생각 그게 핵심이야. 그 당시에 한게 지금도 많은 영향을 미치겠지. 다만 그게 교회를 다녀서 그런건지 신우회 활동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어.
K: 이렇게 막 떡됐지.
S: 맞아. 완전히 떡이 됐지. 근데 그거를 분리할 수 있을까? 혹은 굳이 해야 하나? [목회자인 신우회 동기] J 랑 통화하면서 그 얘기를 했어. 여름 수양회 사진을 봐도 애들이 너무 적다고 이게 원래 그런거냐고 물어봤더니 J 말이 중고등부는 원래 더하다고 하면서 요즈음은 굳이 교회에 가지 않아도 신우회 활동 했던 것 같은 프로그램이 복지관에 많이 있다고 하더라. 당시에는 사실 그게 다 하나였잖아. 교회에서 띵가띵가 기타치고 드럼치고. 심지어 수능 백일 전에는 샴페인도 몰래 와서 터뜨리고 그런 것도 가능했는데. 그거 나중에 욕 엄청 먹었거든. 사실 그런 생활이 한 군데서만 이루어졌으니까 거꾸로 말하자면. 그런걸 해주는데가 없었으니까 학교 이외에서 영향을 미칠만한 일들이 다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
중고등부 시절, 내가 친구를 여름 수련회에 초대해 놓고 프로그램에 정신이 팔려서 그 친구를 잘 챙기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S 가 나를 따로 불러서 타일렀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K: 그 때 우리가 서로 챙겼지 그래도.
S: 많이 챙겼지.
[…]
S: 그게 지금까지 내 생활의 되게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야 사실은. 그러니까 아까 K 가 친구를 데려왔는데 그 친구가 되게 쭈볏쭈볏하고 있는걸 본다 그러면 그 사람이 안 불편해야 나도 안 불편한 그런게 지금도 있어 [...] 몰라, 그런게 보여. 그 때도 그게 보였고. 일단 나는 내가 잘 적응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게 약간은 있고. 아니,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그 때도 그게 보였고. 그 때보다 지금은 그게 더 잘 보이기는 해. 근데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고등부를 거치면서의 어떤 그게 영향을 미치는건 맞는거 같애. 그게 신앙의 한 면이지 않을까. 응. 그런거 같애. 그게 내 삶의 중요한 가치라서 사실은 [현재 재직 중인] 병원에 계속 있고 누가 개원 얘기를 할 때 개원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실 이런거야. 나도 만족하고 상대방[환자]도 만족할 수 있는게 사실 많지는 않은데 그게 하기 가장 쉬운 곳이 사실 여기이기도 하거든. 심지어 환자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거나 회복을 못한 채로 집에 가는 상황에서도 그 사람이 그 문제를 잘 해결하고 가는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게 큰 이유인데 다른 병원보다 여기서는 그걸 할 수 있거든. 그래서 그게 내 생활의 가장 중요한 가치고 아마 중고등학교 때의 생활이 아마 그런거에 대한 가치를 경험해서 그런게 아닐까. 어릴 때 그런 경험을 해서 그런게 아닌가 [...] 어느 틈엔가 점점 그게 내 생활의 중요한 가치이고 그 사람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듣거나 그 사람들이 만족해하면서 지나가면서라도 인사하고 가더라도 되게 나한테 중요한 문제로 항상 다가오는…
[...]
K: [환자를] 하루에 몇 명 봐요?
S: 보통은 칠십 명이고 많이 보면 한 팔십, 구십 가는데 한 명 한 명이 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좀 특이한 상황이라서 [...] 사실은 좀 복잡한 아이들이 많거든. 사실은 여기 말고 갈 데가 없는 환자들이 좀 있어.
S의 병원에 오는 환자들의 상태가 얼마만큼 복잡하거나 위중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K: 위험 부담이 큰 직업이네. 대단하다.
S: 뭐 내가 대단한건 아니야.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했으면 그 사람이 했을 일이야. 우리 병원에 우리나라에 없는 직종이 있어. 하루 종일 환자 보호자의 카운셀링만 하는거야. […] 엄마를 찾아가서 치료가 아니라 말벗이 되어주는 역할을 하는.
K: 그것도 병원 안에 있어? 그런 시스템이?
S: 우리 병원에만 있어. 그거에 대한 가치를 얘기를 해가지고 […] 사회복지사 하나가 그걸 시작을 하기로 했어 [...] 그 사람이 하는 일은 하루 종일 다니면서 그런 슬픔만 받는 역할을 하는거야 […] 그러면 보호자가 처음에는 너 왜 왔냐고… 막 쫓겨나기도 하다가 어느 틈엔가 […] 친구가 되는거야. 그 사람이 하는 제일 힘든 일은 친구처럼 된 사람의 죽음을 계속 맞이하는 일을 하는거야. 의료인도 아닌데 그런 일을 겪게 되는. 대학병원이 대부분은 급성 고칠 수 있는 병 치료하는 병원이야. 근데 우리 병원이 그런 것들을 하자고 했지. 급성 낫는 병만 보는게 아니라 만성 갈 데 없는 환자들의 삶의 마침표 찍는 것도 우리가 도와주거나 혹은 우리가 표준을 제시해서 나중에 전파를 하자. 그런 차원에서 시작된 일들인데.
K: 그래도 그런 정신이 아직 남아 있구나 여기는.
S: 그런 얘기를 누군가 제안을 하지. 나도 그 중의 하나여서 제안을 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뭐 받아들여지겠어?” 했었거든. 근데 병원 지도부에서. 오케이. 딱 도장을 찍고 하더라고. 그거 해주신 분이 대단한거지. 왜냐하면 그 분은 경영 압박을 엄청 받았는데 어차피 ㅇ 병원은 적자야. 그래서 기왕 할거면 차라리 가치 있는 일을 하자. […] 그래서 ㅇ 병원 나는 되게 좋은 직장 되게 만족하는게 여기는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아 [...] 생각을 조금만 가져오면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라는게 되게 괜찮은 것 같애.
[…]
병원 매점을 헐고 이층으로 이동하면서 거기다가 뭐를 할까 해서 세 팀이 나와서 프리젠테이션을 했었어. 한 팀은 검사실을 하나 만들어가지고 뭘 하자. 한 팀은 응급실을 넓혀가지고 활용하자. 그리고 세 번째 우리가 나랑 한 두 명이 얘기를 해가지고. “그러지 말자. ㅇ 병원에 힘들게 휠체어 타고 온 사람들이 진료를 하루 종일 봐야 되는데 있을 데가 없다. 그 공간은 그런 자리로 써라. 경영 수익 얘기를 했는데 그거는 딴데서 벌어라. 병원에 오는 사람이 몸만 낫고 마음에 상처받고 가는 것보다 실제로 병을 못 고치더라도 여기는 우리 병원이라는 생각을 하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말하고 내려왔어. 그랬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시끌벅적 하더라고.
K: 훌륭하다.
S: 아니 내가 훌륭한게 아니고 (멋적어하며 병원이 있는 쪽을 가르킨다) 저기가. 그치?
K: 그래도 남는거 자체가 하나의 선택인거잖아.
S: 그렇지. 받아주셔서 남는거지.
[...]
S의 일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그가 각 환아 마다 충분한 시간을 보내느라 병원에서 욕을 먹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 부모는 아이 병을 치료하려고 오지만 아이들이 병원에 오는 이유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나 미술치료 선생님 혹은 자기 친구 환자들 만나러 오는거지 병원에 나를 보러 오지는 않아. 근데 그게 치료 만큼이나 아이한테 중요하더라고. 내 환자 중에서는 그런 환자들이 많아. 그런 얘기를 나한테 해. "나는 당신 보러 온거 아니다." 그러면 “오케이!” 나도 괜찮다고 잡담하고 가. 애들은 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가. 외래 오면 어떤 애들은 진료를 봐야 되는데, 인사하자마자 갑자기 손 씻는데 가서 씻고 막 놀고 있어. 근데 걔는 내 방에 그거 하러 온거야. 엄마는 엄마의 질문 할게 있는거고 자기는 자기만의 루틴이 있어. 근데 그거 하는데 한 십오 초 밖에 안 걸려. 십오 초 동안 자기 할거 하고. 그 다음에 얘기 하고 하면 그 아이 나름의 [녹취 내용이 안 들림] 그게 내가 사실 제일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라서. 너는 너의 용건이 있어야 된다, 여기 온. 니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고.
[…]
K: 삶에서 중고등부 시절이나 예술제가 없었다면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S: 차이 많았을 것 같애. 뭐냐 하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교지가 있는데[...] 거기에 내가 뭐라고 썼냐 하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글을 썼어.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인데 중고등부 신우회 이전 초등학교 때 생각은 경쟁에서 우월한 사람이 되게 중요한 목표였던 것 같애. 그리고 성공의 기준도 그렇고 경쟁이 달리기고 그러면 […]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 그게 되게 중요한 가치였다고 하면 중고등부를 거치고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애. 그리고 그걸 넘어서는 뭔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지금은 뭐 경쟁을 잘 하면 좋기는 하겠지만 세상에 사는 사람은 소수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니까 사실은 그거에 상응할만한 다른 좋은 가치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지금 그대로 했다고 그러면 […] 아마 경쟁을 하는 일들을 많이 했겠지 [...] 그랬을 것 같은데 가치관이 많이 달라져서. 그게 더 좋으냐 덜 좋으냐는 모르겠어. 아무튼 뭐 다른 세상도 뭐 되게 좋은 것 같다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아. 그거에는 되게 큰 역할을…
[…]
오늘, 예술제와 비슷한 활동/공간이 있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S: 각 사람들이 뭘 이렇게 던져놓고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그런 공간 혹은 활동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야. 실패하지 않는 모습, 시행 착오하지 않는 모습이 요즘 되게 중요한 가치라고 하는데 나는 그걸 되게 아쉬워하는데… 안전하게 실패하고 이렇게 약점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제공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 그런 점에서 교회와 신앙이라는 이름 안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더 사람들한테 또 하나님한테도 이해 받는다는 느낌. 그런거 아니었을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기다려줄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 나도 옛날에 유난히 그런걸 많이 받았다고 생각을 해 […] 대체로 내가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들어줬던 것 같고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일인데.
K: 나는 신우회 영향을 많이 받아서 […] 관계라는건 [당시처럼] 그래야 한다고 아직도 생각을 하거든.
S: 나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애. 그래서 어쩌면 여기는 이래야 한다고 자꾸 제안을 하고 바꾸고 하는게 힘이 더 생기면 더 바꾸려고 하겠지. […] 말한대로 사회가 너무 빡빡하고 경쟁이 돼서 사람들한테 한치의 실수를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게 그게 나는 제일 문제라고 생각을 하거든. 실수 속에서 배우는게 제일 큰데 […] 실수 안하려고 하면 제일 좋은건 나의 패를 다 안 보여주는거거든.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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