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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거리 둘 수 없는 공간에서 살아남기(이성철)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21. 2. 1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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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둘 수 없는 공간에서 살아남기

 

이성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

 

다시 쌀쌀해진 창밖을 보며 책상 밑 라디에이터에 닿지 않도록 발을 뻗는다. 엄마는 전화로 이제 내가 서울말을 쓴다고 했다. 서울말은 뭐냐고 물으니 그런 게 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혼자 발음해보는 서울말은 마스크에 걸려 어색하기만 하다. 서울살이와 코로나살이, 1년하고 한 달 정도 중랑구에 위치한 셰어하우스에서 버티고 있다. 대학원 학기가 시작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학교와 밖에서 보낼 것이니 집은 휴식의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2인 1실에 층별로 열 명씩, 스무 명 정도의 인원보다도 쌀과 식재료가 구비된 공용주방에 만족하며 입주했다. 그렇게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의 속도에 적응하기도 전에 코로나19로 공간이 천천히 멈췄다.

 

다행히도 그리고 불행히도 혼자일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학교와 직장이 아닌 집에만 머물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 룸메이트는 더 이상 거주공간을 공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24시간 삶을 공유하는 존재가 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등 뒤에서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게임 중인 룸메이트를 네 번 참다가 좋게 말했다. ‘205호 이용 시간 끝났으니 이제 짐 싸서 방에서 나가 주시겠어요?’ 작년에 대학에 입학해 상경한 룸메이트는 스무 살의 가장 많은 시간을 나와 방에서 보냈다며 억울해 한다.

 

학기 중엔 아침에 눈을 떠 책상에 앉아 온라인 수업에 출석을 하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둘 중 하나였다.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불렀거나, 와이파이가 또 끊어졌거나. 대부분 집에서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인터넷을 사용량이 늘어 와이파이가 느려진다. 한 번 수업이 끊어진 김에 주방에 내려가 점심을 준비하며 수업을 듣는다. 이내 점심을 먹으러 내려온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준비하는데 카톡과 전화가 울린다. 마이크가 켜져 떠들며 점심 준비하는 소리가 수업에 다 들린다고 뭐가 그리 즐겁냐고 했다.

 

기쁨도 짜증도 공유하는 집은 코로나도 공유한다.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가 1, 2단계였을 때, 저녁시간이 되면 함께 모여 밥을 해먹었다. 먼저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조,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조를 나눠 밥을 먹고 보드게임도 한다. 그러다 늦은 밤 같이 밥을 먹은 한 명이 코로나 의심증세가 나타난다고 단톡방에 알리면 우린 마스크를 쓰고 자기 방에 격리되었다. 다음날 저녁을 같이 먹은 사람들은 선별진료소로 가서 같은 주소를 적고 검사를 한 뒤 같은 집, 각자의 방으로 돌아와 격리된다. 단체 생활에서 같은 일을 몇 번 겪게 되니 갈 곳이 없는 우리는 이제 집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거리를 두고 생활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교시설은 엄격하게 단속하면서 목욕탕은 감염위험이 더 높은데도 3단계가 되어도 인원제한을 할 뿐 영업정지는 안 시킨다는 게 어이가 없다는 글을 봤다. 답글엔 감염에 취약하지만 여전히 온수가 나오지 않는 가정이 존재하고 노동자나 가정에서 기본적인 위생생활이 어려운 생활들이 있어 목욕탕을 폐쇄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쁨과 슬픔은 섞여 있고 안락과 숨막힘도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다. 205호, 집, 목욕탕, 서울. 거리 둘 수 없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의 거리는 너무 멀고, 또 너무 가깝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살만했을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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