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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마당] 혁명에서 일상으로 (이해청)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09. 4. 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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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5(일)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본문: 마가복음 11:1~11


혁명에서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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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청
(신약학 |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석사과정 수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마가복음 11장 1~11절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종려주일, 즉 사순절의 여섯째 주일이자 고난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본문으로 채택하는 본문이다. 한 마디로 교회는 예수가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시점을 종려주일의 시작으로 잡은 셈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마가복음11장 1~11절의 각본과 유사한 일련의 일들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왕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에 사람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를 외친다. 이 사람들의 환호는 금방 무엇인가 일어날만한 사건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 같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복음서, 예를 들면 마태와 누가에는 예수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는다. 하지만 마가복음에는 때가 이미 저물어 성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마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나리오, 즉 종려주일 날 성전에 들어가 장사꾼들의 판을 뒤엎는 일을 묘사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예수가 예루살렘에 너무 늦게 도착해 아무 일도 벌일 수 없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전한다.

왜 마가는 종려주일 날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이러한 식으로 설정했을까?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은 이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느 날이건 상관없이 성전에 들어가 판을 뒤엎은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마가에 따르면 성전체제와의 충돌이 교회가 설정한 종려주일 바로 그 날에 일어났느냐 일어나지 않았느냐가 중요하다. 확실히 마가에 따르면 그 날에 일어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 이것은 나의 판단에 따르면 마가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태나 누가에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마가는 자신의 다른 본문에서 예수와 다윗을 엮으려는 시도들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종려주일 이후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마가를 처음으로 읽는 독자는 이러한 비판을 알지 못한다. 마가복음 12장 35~37절은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관한 논쟁을 소개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예수는 다윗과 자신을 엮으려는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마가의 이야기를 처음 읽는 독자라도 종려주일 이전에 일어난 베드로의 고백에서 이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신은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수난을 당한다는 자신의 고백에 대한 베드로의 꾸짖음에 대해서는 불편해 한다. 이러한 비판들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사람들의 환호에 대해 마가가 일종의 불편함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마가는 그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설정했는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팁은 마가가 유대전쟁 이후에 자신의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가는 자신의 글을 씀에 있어 로마라는 제국의 눈을 의식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전쟁 이후 바리새인들은 로마와 적극적인 화친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랍비 유대교를 건설했고 이전의 젤롯당 운동들과의 관계도 거리를 두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유대회당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해 있었고 동시에 로마에 대한 반란죄로 죽은 예언자를 믿는 공동체로 바리새인들에 의해 로마에 고발당할 처지에 놓여 있는 마가공동체도 랍비 유대교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전의 전투적인 메시야적 전통들과의 단절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 점을 마가복음 13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장에서 마가는 적그리스도들이 끊임없이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한다는 본문을 제시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앞서 말한 베드로의 고백과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 때에 사람들의 환호 그리고 그리스도와 다윗의 논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준다. 확실히 앞서 보았듯이 마가는 다른 복음서들처럼 종려주일에 예수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는 사건을 전개하지 않는다. 종려주일 그 날 성전에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는 것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유대전쟁 이전에 예루살렘 군중들이 가졌던 혁명적 메시야에 관한 꿈에 동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서술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계속 지적했듯이 유대전쟁을 확실히 제압한 로마로 인해 마가는 랍비 유대교처럼 혁명적 메시야 상을 추종하는 자들과 거리를 두어야 했고 그래야만 그의 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잠시 마가의 이러한 전략 때문에 종려주일 날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종려주일 날 그 날에 예수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었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각각 자기들 나름대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하기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관련해 이 입성이 마가의 말처럼 딱 한번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이와 다른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이외에도 당나귀를 타고 입성한다는 시나리오는 구약의 예언서에서 빌려온 모티프이지 실제로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입성했는지에 관해 우리는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몇몇 학자들은 당나귀를 준비해두었으니 그것을 가져오라는 예수의 말은 기적과 예언에 속한 서술이지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마가복음 1장 1~4절에 제시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으로 예수가 사원에 입성한다는 신학적 모티프와 관계된 것이지 역사적 사실과 관계된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다시 말해, 유대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이후 성전과 관련해 자신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새로 설정해야 하는 마가에 의해 설정된 이야기라는 점이다. 마가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는 사원의 주인은 다윗이 건설한 유대인이라는 혈통적 유전적 성격을 나타내는 성전과는 더 이상 관련이 없는 이방인을 포함하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과 관련된 주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가의 예수는 종려주일 날 이후에 성전에 들어가 뒤엎는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 일이 이방인의 뜰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마가가 말한 대로 예수가 이방인의 뜰에서 이러한 성전정화 작업을 벌였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는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 문제와 달리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종려주일과 함께 시작되는 마가의 이야기는 대체로 역사적 사실의 문제가 아닌 마가의 신학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마가의 이야기에 예수는 유대 문화에 동화된 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유대 전쟁 당시 예루살렘에 입성한 젤롯당과는 다른 입성, 즉 유대교의 정결법과 관련한 최후의 전투를 벌인 입성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쨌든 마가가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를 설정했던 이유는 다수의 학자들이 말하듯 마가가 점차적으로 형성되어가는 랍비 유대교와 투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전쟁 이후 마가의 이러한 복잡한 상황은 마가로 하여금 로마나 랍비 유대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도록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그로 하여금 중심부에 속한 인물들이 아닌 주변부에 속한 인물들을 끌어들이는 쪽으로 나아가게 했다. 실제로 그가 설정한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사회의 문화적 지위에 기대에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꾸려나갈 수 있는 중심부적 인물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마가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공동체는 플라톤에게서 나타나는 이상적 인물이 공화국을 통치해야 한다는 명제를 지향하는 공동체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가가 그리는 공동체의 성격은 플라톤과는 다른 차원, 즉 한 사회의 주된 문화적 권력을 향유하는 계층에서 벗어난 인물들에 의해 구성되는 공동체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마가의 이야기는 유대전쟁 때 나타난 젤롯당의 뜨거운 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또한 이 전쟁에 살아남은 랍비 유대교에 속하는 중심부 인물들에 관한 것도 마지막으로 이 전쟁을 지배했던 로마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전쟁 이후 일상에서 삶의 아픔을 겪고 있는 주변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마가의 이야기는 유대 전쟁 이후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정결법으로 사람들을 묶어 갔던 랍비 유대교와 제국의 힘을 과시해 자신의 세계를 건설한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와는 다른 방식, 즉 정결법에서 제외되었거나 제국의 조세를 떠안고 하층민으로 멸시받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재건을 논했던 이야기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종려주일 첫 날에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군중의 환호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내린 마가의 이야기는 전쟁 이후 국가라는 거대담론을 중심으로 국가를 재건한 중심부 인물들에 관한 영웅적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 이후 국가를 구성하는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관점을 지녔다는 이유로 밀려났던 주변부 인물들 혹은 일상을 견디며 살아냈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분명 이 인물들은 국가체제의 전복이나 혁명을 논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의 이해의 틀에 따르면 이들은 자본주의에 포섭되었지만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혁명적 힘을 소유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노동에서 밀려난 인간들 그래서 혁명을 제기하기는커녕 노동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끊임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랑자로 지탄을 받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마가가 표현하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마가에 따르면 예수는 혁명적 전사가 아니라 부랑자들과 함께 하고 부랑자들을 비판하는 세상의 권좌들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서 행하실 거라는 묵시적 사상을 충실히 따른 인내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떠돌이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 믿고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마가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인간군상은 뜨거운 혁명을 논했던 전쟁이었지만 패배한 로마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것도 랍비 유대교에 속한 중심부 인물들이 아닌 주변부 인물들이 펼치는 일종의 비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앞서 본 것처럼 랍비 유대교와 로마 제국사이에서 살아야 했던 마가의 생존의 신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문화적 부랑자들에 대한 혹은 노동하지 못하는 부랑자들에 대한 관점의 이동으로 인해 마가는 뜨거운 혁명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즉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의 문제를 논한다. 그의 이야기는 국가라는 거대담론이 펼치는 정치권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이 정치권력이 하부적인 차원에서 펼치는 생활권력 혹은 국가 내부의 하위문화들을 국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지배적인 문화의 틀에 따라 일일이 감시하고 획일화시키고자 하는 규격화 권력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야기다. 실제로 마가의 이야기에는 감시병처럼 끊임없이 엿보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들, 즉 바리새인, 율법학자, 그리고 헤롯당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마치 파놉티콘처럼 예수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파고들어와 일일이 감시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들의 감시로 인해 마침내 예수가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마가복음 2장~3장 초반부에 나온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보면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하나의 원인은 정결법을 중심으로 욱죄어 오는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러한 마가의 설정이 역사적 예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이해하는 예수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마가가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에 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 자신의 공동체가 무엇을 의제로 놓아야 할지를 분명히 밝혀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종려주일 첫 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후 예수가 겪게 되는 고난과 투쟁은 정치권력이 아닌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에 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수의 수난에 관한 마가의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마가는 로마에 반기를 든 자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잔혹한 인물이었던 빌라도를 아주 온화하게 그리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설명한 반면에 예루살렘의 고위층 지도자들은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예수를 처형한 장본인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마가복음 14장 이후에 나타나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예수를 죽이라고 말했던 예루살렘의 지도층 인사들은 마가복음 2장과 3장 초반부에 나타난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헤롯당원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항상 마가에 따른 예수의 고난과 투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명심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예수의 죽음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예수가 유대교의 정결법을 어긴 인물이자 성전파괴를 예언한 인물로 고발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예수의 죽음은 결코 로마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 차원이나 대의와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차원에서 삶을 파고드는 권력에 관한 문제였다는 점이다. 분명 마가의 이해에 따르면 예수는 랍비 유대교의 삶의 규율화 혹은 규격화에 대해 저항을 벌인 인물이지 로마와의 투쟁이라는 거대 담론의 차원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다소 다른 맥락이지만 학자들이 복음서에서 반유대주의적 시선을 잡아내는 것도 예수에 대한 마가의 이러한 서술 때문이다. 확실히 마가는 이방인을 포함한 어떤 의제 설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예수를 철저하게 랍비 유대교의 삶의 권력의 문제에 대해 도전한 인물로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에 학자들이 판단하는 것처럼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에게 반유대주의적 시선을 강화시켜주는 길을 터주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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