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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정보: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 3] "그들도 우리처럼" (송민원)

신학 정보

by 제3시대 2015.12.2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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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Sex & Sexuality – "그들도 우리처럼"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3. 고대 이집트의 Sex & Sexuality – "그들도 우리처럼"

  

       “너는 발기를 못할 것이야, 널 고자로 만들어 버리겠어, 오 아포피스여, 태양신 레의 적!” – 이집트 사자의 서


      여태껏 살펴본 그리스와 로마와는 전혀 다른 세계, 고대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각 사회계층의 Sex & Sexuality가 달라졌다면, 이집트에서는 신분이나 계층에 따른 변화를 찾기 어렵습니다. 굳이 찾자면, 파라오를 비롯한 왕족 일가에 한한 근친혼의 풍습 정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땅에서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던 이집트의 왕족들이 신들을 모방하여 근친혼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태양신 라의 손주인 땅의 신 게브와 밤하늘의 여신 누트처럼, 여동생 네프티스와 결혼한 세트, 그리고 그를 질투한 오시리스처럼, 이집트 왕실의 계보 역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집트 18왕조 아흐모세 1세는 그의 누이 아흐모세 네페르티리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았고, 여자 파라오인 하셉수트는 이복형제 투트모세 2세와 혼인하였습니다. 아멘호텝 3세와 그의 아들 아케나텐(아멘호텝 4세)은 둘 다 자신들의 딸들과 결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친혼에 대한 금지나 비판이 이집트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근친혼이 이집트 전체에 널리 퍼져있던 풍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이집트 왕실에서 근친혼이 신화 속에서처럼 실제로 자주 일어난 일이 아니었고, 게다가 이집트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서구학자들의 무지가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집트어의 “자매”라는 말은 반드시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난 여자형제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아내나 애인을 부르는 호칭 역시 “자매”이고, 심지어 이모나 조카한테도 같은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호칭 역시, 생물학적 부모 외에도 조부모나 그 위의 조상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남편을 포함해 연상의 남자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 음식점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서도 형, 동생, 누나, 언니, 아저씨, 아줌마라 부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가족의 언어”로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양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근대 서구학자들이 이러한 상징적인 가족의 언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근친혼이 이집트 왕실 혼례의 규범인 듯한 오해가 생겼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할 것은 이집트 왕실에서 “결혼”의 의미는 남녀가 혼인하여 자녀를 낳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딸과 결혼한 파라오들의 경우, 아버지와 딸이 실제 부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딸들에게 “신의 아내”라는 호칭, 그리고 그 호칭에 걸맞는 대우를 내리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Mummy with a pennis>


    그러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 다른 고대근동지역의 문화와는 다른 이집트만의 독특한 Sex & Sexuality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죽은 사람들의 성생활까지 염려하던 고대 이집트인의 내세관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죽은 후에 현세의 삶과 비슷한 삶이 내세에도 계속된다는 믿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나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근동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제사 때 조상들에게 바치는 먹거리들은 내세에서도 사람들이 먹고 마셔야 한다는 믿음을 반영하죠. 하지만 죽은 후에도 성생활까지 계속된다는 내세관은, 제가 아는 한 이집트가 유일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낼 때 이 부분까지 아주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남성의 성기 모양이나 여성의 가슴 모양을 흉내낸 부속물을 미이라에 부착시키기도 했고, 무덤 안에 요즘의 섹스토이 같은 다산의 상징물들을 넣어놓기도 했습니다. 


<Egyptian Fertility doll>


    이렇게 “노골적인” 상징들 말고도 이집트의 무덤에서는 다양한 성적 상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그림은 갈대로 뒤덮힌 늪에서 사냥하는 것이나 혹은 잔치상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이런 그림들은 아마도 “(막대기를) 던지다”라는 이집트어 동사가 “창조하다, 자손을 낳다”라는 의미가 있고, “창을 던지다"라는 동사는 “사정하다, 임신시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언어유희일 것입니다. 또한 이집트어에서 “갈대 숲을 거닐다”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물레방앗간”에 담긴 성적 상상력과 맥이 닿는, 남녀상열지사를 뜻합니다. 잔치상이 묘사된 무덤 그림에서는 주로 다산의 상징인 거위나 오리, 푸른 수련 등의 그림이 그려져있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거나 나체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렇듯 “그들도 우리처럼” 죽어서도 성행위를 하며 자손을 낳는다는 믿음은 이집트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이집트만의 독특한 발상입니다.


    또한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생명이 잉태된다는 의학적 지식이 없었던 이집트인들은 생명의 탄생에는 남성의 정자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인 창조신 아툼(아텐)은 자위행위를 통해 쌍둥이 자녀를 얻습니다.


    “오 아툼이여, 그는 온(헬리오폴리스)에서 자위행위를 하였다. 자신의 성기를 움켜쥐고서 절정을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쌍둥이 슈와 테프누트가 탄생하였다.” 

(피라미드 텍스트 1248-1249)[각주:1]


    생명을 창조하는 힘이 정액에 있다고 믿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따라서 남성의 성적 능력이 특히 강조됩니다. 기원전 4천년대부터 존재했던 가장 오래된 신들 중의 하나인 창조신 “민”의 상징은 거대한 남근입니다. 보통 이렇게 오래된 신들은 신화 속에서 사라지거나 이름만 남아 그야말로 유명무실하게 되는데 반해, 이 신은 다른 젊은 신들과 계속 융합하여 헬레니즘 시대까지 그 놀라운 생명력을 유지합니다.[각주:2] 이렇게 남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발기불능이야말로 가장 큰 저주이겠습니다. 사후세계의 안내서인 이집트 사자의 서에 따르면, 죽은 자들은 이집트 버전의 지옥의 신인 아포피스(아펩, 혹은 아페피)를 만나면 그를 발기불능으로 만드는 주문을 외워야 합니다.[각주:3] 




<Egyptian deity Min>


    마찬가지로 여성들 역시 임신, 출산, 다산이 강조됩니다. 지혜와 용기로 죽은 아들 호루스를 살린 어머니 여신 이시스야말로 고대 이집트 여성들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반면 이시스의 자매이자 전쟁의 신 세트의 아내인 네프티스(네베트-헷)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이시스가 생명과 재생의 여신이라면 네프티스는 죽음과 사막의 여신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많이 등장하는 장면들처럼, 이집트 사회에서도 자녀가 많은 여자들이 복받은 여성으로 여겨졌습니다.


    남성의 생산능력과 여성의 출산능력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혼외정사는 당연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두 형제의 이야기”라는 문헌을 보면, 간통을 저지르다 발각된 여인이 살해당하여 그 시체가 개에게 던져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자기 일생을 뒤돌아보며 적은 “고백문”들에는 “나는 혼인한 여성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라는 대사들이 나오기도 하죠.[각주:4] 이 고백문들은 “부정적 고백(Negative Confessions)”라 불리는데, 그 내용이 “나는 무엇 무엇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질, 살인, 간통, 신성모독 등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내세에서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고백도 나오는 것을 보면, 고백자들이 반드시 사실대로 고백한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혼외정사를 법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혼인예식이나 결혼생활 전반에 관한 법률적 문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집트에서 결혼이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로 보여집니다. 결혼이란 두 남녀가 한 집에 같이 살게 되면서 시작되고, 둘 중 하나가 집을 떠나면 그 관계는 종료됩니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법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혼외정사 역시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후대의 신왕국 시대에 오면 혼외관계에 관한 법률적 문제를 다루는 파피루스들이 발견되긴 합니다만, 대부분 강간이라든가 강도 등 법률적 문제들과 연관된 경우들입니다.[각주:5]


    그렇다면 생산-출산과 관련이 없는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어땠을까요? 사실 이집트 문헌에서 이 부분에 관한 자료는 극히 적습니다. 일단 신화에서는 세트와 호루스의 일화가 유명한데요, 세트의 꾀임에 빠져 세트와 호루스 두 남신들 간에 성관계를 갖게 되는데, 이 때 호루스의 기지로 세트는 자신의 정액을 먹게 되어 임신하게 됩니다. 정액만으로 임신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계로 내려오면, 중왕국 시대의 문헌 “네페르카레와 사세네트 이야기”에서 네페르카레 왕은 그의 장군들 중 한명과 밤에 몰래 성적 관계를 갖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엄청난 스캔들로 여긴 것을 보면 이 시대에 동성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부정적 고백문”에서도 “나는 다른 남자와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성들 간의 동성 관계에 관한 이집트 문헌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 할 수 있는 P.Carlsberg XIII는 꿈 해몽에 관한 텍스트인데, 여성이 다른 여성과 잠자리를 갖는 꿈은 불길한 징조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렇듯 이집트 사회에서 동성 간의 성적 관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역시 법적 처벌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Sex & Sexuality는 법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불 속의 일을 국가가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21세기나 되어서야 간통죄를 폐지한 대한민국에 비한다면, 반 만년 이상 고대 이집트가 앞서 있는 듯 보입니다.


<Niankhnum>


    고대 이집트의 동성애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사람이 바로 니앙크눔과 크문호텝입니다. 사카라에서 이 두 남자의 합동묘를 처음 발견한 고고학자들은 이 두 남성이 마치 부부처럼 묘사된 그림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곧 이 둘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둘이 형제다, 쌍둥이다 등등 호모포빅한 해석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둘은 이집트 왕실의 매니큐어 담당자들이었는데, 파라오의 손톱을 직접 손질하는 꽤나 고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이 무덤에 그려진 그림들과 상형문자들을 통해 이 둘 모두 각기 아내와 자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둘의 관계가 정말 무엇이었냐 하는 것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무덤까지 함께 쓰는 두 동성의 친밀함을 묘사하는 것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Turin Erotic Papyrus>


    이렇듯 고대 이집트는 신화나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성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튜린 파피루스라 불리는 파피루스 55001입니다. 기원전 12세기 람세스 시절에 만들어진 이 파피루스에는 각종 다양한 체위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렇게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노골적일 리가 없다고 믿었던 초기 이집트 학자들은 이 그림을 인간이 아닌 괴물들의 묘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복원된 그림을 보면 아주 선명하게 남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과 성, 죽음과 내세를 아주 자연스런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고대 이집트인들이 문화적으로는 현대인들보다 훨씬 앞서 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출처: Ancient Egyptian Worldview Expressions: http://web.archive.org/web/20131116121410/http://www.albany.edu/faculty/lr618/we4.html [본문으로]
  2. 이집트 중왕기 때는 호루스와 융합하여 민-호루스가 되고, 신왕국 때는 아문과 융합합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신화의 목동의 신 판과 동일시되어 살아남게 됩니다. [본문으로]
  3. R. O. Faulker and O. Goelet (1994),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 104. [본문으로]
  4. 이 부정적 고백문들의 예들을 보시려면, http://www.touregypt.net/negativeconfessions.htm. [본문으로]
  5. C. J. Eyre (1984), “Crime and Adultery in Ancient Egypt,” Journal of Egyptian Archaeology 70, 9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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