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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정보: 고대 근동의 Sex & Sexuality 4]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송민원)

신학 정보

by 제3시대 2016.02.2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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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의 Sex & Sexuality –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송민원

(시카고 대학 고대근동학과 Ph.D. Candidate)


 

  4. 메소포타미아의 Sex & Sexuality – "결혼은 미친 짓이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라는 말은 “두 강 사이”라는 뜻으로, 지역적으로는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가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와 그 주변지역을 가리킵니다. 두 강이 주는 풍성함으로 이 지역은 현재까지 알려진 인류 문명 중 가장 오래된 문명의 탄생지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5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되는 수메르 문명으로부터, 기원전 2000년대에서 시작하는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문명이 바로 그들입니다. 남아있는 문헌과 유적의 풍성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물고기 뼈다귀처럼 생긴 쐐기문자(설형문자)로 된 그들의 문헌은 한 명의 학자가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현재 국제정치적인 이유로 이 지역의 발굴과 탐사가 어려워졌지만, 아마도 땅을 파는 족족 엄청난 것들이 계속 출토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Ancient Mesopotamia>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우리와 아주 멀게 느껴지는 문명입니다만, 사람 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닥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 시카고대학에서 바빌로니아 문헌을 배우고 있을 때 교수님은 각 학생들에게 손바닥만한 진흙판 하나씩을 나눠 주었습니다, 조심해서 만지라는 경고와 함께. 그 안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들을 여덟 시간 안에 해독해내는 것이 기말시험이었죠. 햇볕에 이리저리 비춰보며 글자 하나하나를 종이에 손으로 옮긴 끝에 그 내용을 파악하고는 그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문헌은 초기 바빌로니아어(Old Babylonian)로 되어 있는데, 시기는 대략 기원전 2000년에서 1600년 경으로, 달의 신을 섬기는 신전의 여사제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편지는 이런 저런 신들에게 가족들의 안녕을 비는 극히 전형적인 안부인사로 상당히 점잖게 시작하는데, 본론에 가서 그 톤이 확 바뀝니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왜 먹을 것을 보내주지 않냐며, 배가 고파 굶어죽을 지경이라고, 너희들 잘 먹고 잘 살려면 내가 여기서 계속 기도를 해야 하니 빨리 먹을 것을 보내달라고.

 

    사실 20세기 말미에 이를 때까지 서구인들이 바라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화는 온갖 “비정상”적인 것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제임스 프레이저 경(Sir James Frazer)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특징을 “풍요 숭배(fertility cult)”와 “성전 매춘(temple prostitution)”으로 규정한 이래로 후대 학자들의 상상력이 계속 덧붙여졌습니다.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난나/이쉬타르(Inanna/Ishtar)는 그 상상력을 자극한 핵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왕이 이난나로 분장한 여사제와 성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여신과의 합일을 통해 신성을 얻게 된다는 “성혼식(Sacred Marriage rite)”이나, 성적 결합을 통해 신도들을 구원, 혹은 정결에 이르게 하는 성전의 남녀 사제들, 남녀의 성기를 동시에 지니고 있거나 혹은 그 둘의 성적 상징을 모두 갖고 있는 “양성구유”적 사제, 그리고 황홀경 속에서 스스로를 거세하는 의식 등, 그동안 서구학자들은 그들에게 낯선 “동양의 문명”을 더욱 낯설게 만들었습니다.   


<Babylonian Marriage Market (Edwin Long, 1875)>


    이런 “동양에 대한 서구적 시각”은 그 기원이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매년 한 번씩 각 마을의 결혼적령기의 여성들을 한 곳에 집합시킨다. 남자들은 둥글게 그들 주위를 둘러싼다. 여자들은 한명씩 이름이 불려지며 경매가 시작되는데, 가장 예쁜 여자부터 시작한다. 그녀가 아주 비싼 값에 팔리고 나면 그 다음으로 예쁜 여자가 경매 대상이 된다. 이렇게 모든 여자들이 아내로 팔린다. 바빌로니아의 부유층 남성들은 미모가 빼어난 여성들을 두고 경쟁을 하는 반면, 외모에 별 관심이 없는 서민들은 못생긴 여자들을 금전적 보상(결혼지참금)과 함께 얻게 된다. (경매에는) 원하는 사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아주 먼 시골에서까지 와서 경매를 통해 아내를 맞이한다.” (히스토리아이 I: 196) 


    하지만 실상은, 그 수많은 메소포타미아 문헌들 속에 이런 상상력들을 확증할 만한 자료는 그다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기에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만약 남편이 있는 여자가 바람을 핀 것으로 보이는데,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면 여자는 “강의 신에게 데려가져야” 합니다. 즉, 물에 빠뜨려서 살면 여자의 무죄가 입증되는 것이고, 죽으면 신의 정당한 형벌을 받은 것이 되는 셈이죠.[각주:1] 하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헌들을 얕게나마 읽은 저의 시각에서는, 배고픔을 호소하던 신전 여사제처럼, 그들의 삶이 4000년 뒤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입니다. 출토된 유적들도, 문화관광부가 19금 판정을 내릴 만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는 다르게, 대부분 기껏해야 15금 정도입니다. 



<Erotic Plaque 1, 2>


    물론 수위를 좀 벗어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아래는 성행위와 음주를 동시에 즐기는 남녀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조차도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고 상당히 덤덤히 묘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Old Babylonian Clay Plaque (Israel Museum)>


    심지어 신들마저 우리 시대에도 흔히 벌어질 만한 사랑을 합니다. 


그녀(여신 이난나)는 사랑에 빠진 어린 소녀처럼 그녀의 집을 몰래 빠져나와 애인을 만난다. 그녀 자신처럼 빛나는 별들 아래서 그녀는 그의 애무에 몸이 서서히 녹아든다. 시간이 한참 지나(직역: “밤이 전진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집에서 몰래 빠져나온 것을 대체 어머니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를 보내줘요. 집에 가야 해요. 나를 보내줘요, 두무지(Dumuzi).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한답니다. 대체 어머니에게 어떤 거짓말을 해야할까요? 어떤 거짓말을 어머니 닌갈(Ningal)에게 해야할까요?” 그러자 두무지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어머니에게 가서, 여자친구들이 춤추러 가자고 꼬셔서 할 수 없이 갔다고 하라고.[각주:2] 


<Inanna and Dumuzi>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의 Sex & Sexuality의 독특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결혼제도”의 중요성과, 그 결혼제도에서 벗어난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를 들 수 있겠습니다. 


    두 남녀가 한 집에 살면서 시작되는 고대 이집트의 “간략한” 혼례와는 다르게,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결혼은 여러 금전관계가 얽혀 있는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약혼 시에 신부는 친정아버지로부터 받은 결혼지참금을 가지고 옵니다. 이 지참금은 남편의 소유로 귀속되지 않습니다. 혼인관계가 종료된 경우 (사별이나 이혼 등) 이 결혼지참금은 여자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됩니다. 여자가 죽고 나면 이 지참금은 남편이 아닌 그녀의 아이들의 재산이 됩니다. 예비신랑은 약혼 시 일종의 “보험금”와 신부 측 부모에게 줄 “혼인비용(보통 “bride-price”라고 합니다)”을 지불해야 합니다. 만약 예비신랑이 마음이 바뀌어 혼인을 취소하고 싶어지면, 보험과 혼인비용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 만약 신부 측 아버지가 약혼을 취소하고자 하면, 신랑이 가져온 혼인비용의 두 배를 벌금으로 내야합니다. 만약 다른 집안 사람들이 신부 측 아버지를 찾아와, 그 남자 말고 우리 아들하고 결혼시키자고 설득해서 약혼이 취소된다면, 신부 측 아버지는 응당 혼인비용의 두 배를 물어줘야 하는 것뿐 아니라, 파혼의 원인을 제공한 집안과의 혼사도 성사될 수 없습니다. 만약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성전에 속한 여사제가 되기로 한다면, 그녀의 아버지는 결혼지참금만큼의 재산을 그녀에게 주어야 합니다. 사회적 계층에 따라서도 아주 세밀한 차이들을 보이는데, 결혼지참금이나 혼인비용 등을 낼 수 없는 형편의 사람들인 경우, 또 그에 따른 아주 복잡한 계산법이 존재합니다.


    이렇듯,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결혼은 양가 집안뿐 아니라 차후에 생길 후세에까지 이르는,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이 제도의 바깥에 존재하게 되는 사회구성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섬세한 보호망을 구축하게 됩니다. “최초의 성문법”이라 (잘못) 불리는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은 “정상적인 가족제도”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각주:3] 몇가지 예를 들자면, 


128. 한 남자(“아윌룸”)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으나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면,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아내가 아니다. 

130.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약혼녀를 범했을 경우, 그 남자는 사형에 처한다. 그러나 여자는 죄가 없다. 

134. 한 남자가 전쟁포로로 잡혀간 후 그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아내가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갔다면, 그 여자는 죄가 없다. 

136. 만약 한 남자가 가출해서 도망가버려 아내가 다른 집으로 시집갔는데, 후에 그 남자가 돌아와 아내를 되찾고자 한다면, 그가 자신의 집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아내는 (전)남편에게 돌아갈 의무가 없다. 

137. 만약 한 남자가 아내와 이혼하기를 원하는데 그들 사이에 아이들이 있다면, 여자가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그녀의 (결혼 시에 가져온) 지참금에 더하여 남자 자신의 동산 및 부동산의 일부를 떼어주어야 한다. 그녀가 아이들을 다 양육했다면, 아들 한 명에게 줄 유산에 해당하는 만큼의 재산을 여자에게 상속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남자(직역: “그녀의 마음의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 

142. 만약 여자가 그녀의 남편에 대해 “당신은 나에게 결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고발한 경우, 그녀는 자신의 말을 입증할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만약 그녀가 옳다고 입증되면 그녀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지참금을 가지고 자신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Code of Hammurabi 1&2>


    물론 함무라비 법전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체제를 유지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 특히 여성의 권리는 체제유지를 위해 희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혼관계나 혼인관계 파탄의 귀책사유가 여자에게 있지 않는 경우, 고대 바빌로니아 사회는 여성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적이고 경제적인 보호장치들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런 사회보장제도는 남편과 사별한 미망인이나, 의지할 아들이 없는 여성들까지 포함합니다. 또한 결혼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독신의 성전 여사제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Code of Hammurabi 3>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결혼제도” 밖에 존재하는 동성 간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보테로는 사회적인 낙인이나 법적 제재를 전혀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로이 동성과의 관계가 존재했을 거라 주장합니다.[각주:4] 이렇게 그가 주장하는 근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법이 이 문제에 대해 거의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관계에 대한 제재가 없으니 아마 자유로웠을 것이라는 셈인데, 사실 보테로가 찾지 못했을 뿐, 꽤나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마리’라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도시국가의 왕 짐리-린(Zimri-lin)의 아내가 쓴 편지에는, 남편 짐리-린과 함무라비 왕 둘 다 남자 애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문 연감(Almanac of Incantations)”이란 문헌에는 각종 다양한 사랑에 대한 기도문이 열거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남자의 여자에 대한 사랑, 여자의 남자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남자의 남자에 대한 사랑도 같은 정도의 중요성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각주:5] 흥미롭게도 여성 간의 동성관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슘마 알루(Šumma ālu)”라 불리는 문헌은 사람의 성적 행위가 그의 미래에 미치게 될 영향을 예측하는 일종의 지침서인데, 여기에는 다섯 가지 경우의 동성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각주:6]


1. 만약 한 남자가 자신의 “친구(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와 성적 관계를 갖는다면 (직역: “뒤에서 성교를 한다면”), 그는 그의 동료들 중에서 으뜸이 될 것이다. 

2. 만약 감옥에 갇힌 남자가 성적 욕구가 넘쳐 남성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진다면, 그에게는 불운이 닥칠 것이다. 

3. 만약 남자가 남성 사제와 관계를 가지면, 근심에서 벗어날 것이다(?). 

4. 만약 남자가 궁정관리와 관계를 가지면, 일년동안 근심에 쌓일 것이나, 그 후엔 괜찮아질 것이다. 

5. 만약 남자가 노예와 관계를 가지면, 아주 험난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각주:7]


    사실 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엄청난 양의 메소포타미아 문헌들 중 동성관계를 언급한 부분을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에 동성관계가 일반적이었다는 식의 보테로 같은 해석은, 몇 안 되는 문헌들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슘마 알루를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1번의 경우만 분명히 긍정적이고 나머지는 부정적입니다. 3번의 경우는 해독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실 중기 앗시리아 시대(기원전 15세기 경)의 법률은 ‘아윌룸’이 동등한 사회적 신분의 다른 ‘아윌룸’과 동성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경우, 즉 아윌룸이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 동성이든 이성이든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언급이 없다는 것이 곧 그런 사회적 관계를 용인하거나, 심지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슘마 알루에 나타난 동성관계에 대한 표현들이 대부분 부정적이긴 하지만 법적 처벌의 대상으로까지 취급되지는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슘마 알루가 법률문서가 아니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 더 많은 자료가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태도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관심은 사회를 유지시키는 근간인 결혼관계에 거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결혼은 두 개인 사이의 관계를 한참 벗어나, 양가의 모든 구성원들뿐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세들까지 고려해야 하는, 게다가 혼인관계가 중단되거나 파탄나는 각종 다양한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의 “노예”들을 생산하기 위해 무조건 아이만 열심히 낳으라는 어느 나라의 미혼 대통령과는 다르게, 이 고대인들은 결혼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복지까지 걱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1. 함무라비 법전 132. [본문으로]
  2. Jean Bottéro, Everyday Life in Ancient Mesopotamia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2), 109. 여기서는 보테로의 번역을 의역했음을 알립니다. [본문으로]
  3. 함무라비 법전의 연대를 BC 1726년 정도로 잡는다면, 우룩아기나(Urukagina)의 법전은 그보다 600년 가량 앞선 BC 2375년, 우르남무(Urnammu)는 2100년, 에쉬눈나(Eshnunna)는 1750년 경의 것으로, 함무라비의 법전은 어떤 독창적인 성과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성문법과 관습법을 정리한 것입니다. 만약 발굴이 더 진행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증거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본문으로]
  4. Bottéro (1992), 100. [본문으로]
  5. David Greenberg, The Construction of Homosexualit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8), 126. [본문으로]
  6. 슘마 알루는 120 여개나 되는 판에, 천 개가 넘는 주문들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7. Martti Nissinen, Homoeroticism in the Biblical World: A Historical Perspective (Augsburg Fortress, 1988), 2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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