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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고통너머 희망의 소리를(양미강)

시평

by 제3시대 2009. 2. 1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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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너머 희망의 소리를

양미강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 연구소 운영위원)

지난 주일 예배 찬송소리가 유난히 작았다. 노래가 어려워서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대충 눈치를 챘나? 교회 주보 알림난에 실린 교우소식. 그 난에 새겨진 김영승 선생의 일제고사 거부로 인한 파면소식. 나는 주보를 만들면서 어떤 표현을 써야 할지 난감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 걸까? 이미 교인들은 매스컴을 통해서 파면소식을 전해들은 것 같다. 중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파면통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맥이 풀리고 화가 난다.

지난해 10월부터 불거진 일제고사 거부로 인한 전교조의 대량해직 사태. 이미 서울에 있는 공립학교 선생님 7명이 해임, 파면된 상황이고, 사립학교에서는 김영승 선생이 유일하게 파면조치를 받았다. 강원도에서도 4명에 대한 중징계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80년대 전교조의 대량해직 이후 일제고사문제로 많은 수의 교사들이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갈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알려준 것이 교사가 학교현장으로부터 내몰려야 할 범법행위인가? 학생들에게 부모님과 상의해서 일제고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알려주는 일이 해임과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받을 정도인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는가? 아니면 판단할 권리가 없는가? 아이들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고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이 정 믿기 어렵다면 부모님들이 그 판단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그 선택권을 아이들과 부모에게 돌려주었다고 해서 교사에게 사형선고인 파면과 해임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말 미국에서 1년간의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의 모습은 횡횡했다. 미국에서 먼저 들어온 후배가 귀국할 때 심호흡을 하고 들어오라고 한 말이 실감났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들은 빨간색 좌파로 몰리기 일쑤였고, 날마다 국회로부터 각종 감사에 시달려야만 했다. 찍히면 죽는다 했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불순하게 규정되면 전후좌우 무시되고 오직 한가지, 솎아내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색깔은 ‘빨강과 파랑’, 그리고 방향은 ‘좌와 우’뿐인 것 같다. 그러니 세상을 표현하는 무늬는 동그라미 두 개 뿐이다. 겹쳐지지 않는 동그라미 두 개 말이다. 좌파와 우파만이 존재하는 이 세상. ‘편가름’과 ‘솎아내기’가 이 시대를 담아내는 키워드인 셈이다.

좌우 할 것 없이 입으로 되뇌던 다양성, 창의성, 민주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치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다양성, 창의성, 민주성은 옷에 붙이는 자크처럼 편리하게도 사용된다. 일제고사를 거부해서 나름대로 인생의 최대고비를 맞고 있는 교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왜 찍혔소? 남들처럼 적당히 살아가면 되지. 뭐하러 소신을 분명하게 말해서 ‘솎아냄’을 당했소? 수만 명의 교사가 다 그럭저럭 순응하며 사는데 당신 하나 소리지른다고 세상이 변할 것 같소? 혼자만 다친다오. 세상 더럽네 하면서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리고 살면 속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소?

그러나 차마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 당신이라면 뭐라 이야기할까?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에게 병 낫기 위해 거적을 가지고 연못가로 달려가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네 자리를 들고 가라고 말씀하셨던 태도를 보면, 그의 태도는 더욱 분명하지 않을까? 자리를 걷어차버려! 하면서 단호하게 호통칠 예수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 이거야... 남들은 파면을 당하면 다 끝났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아니야. 다시 시작이다. 이제부터라고 다짐하는 오늘 기자회견장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희망을 떠올리고 있다.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모여있는 아이들과 부모들, 그리고 선생님들에게서 고통 너머 희망의 소리를 듣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 한백교회 http://www.hanbai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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