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진에세이] 눈멂 예술의 기원(백정기)

사진에세이

by 제3시대 2018. 2. 14. 14:05

본문

눈멂 예술의 기원

 

  1995년 미술대학 학부 시절, 당시는 하이퍼리얼리즘이 대세였다. (한편으로는 추상이나 비구상 회화가 많았다.) 그래서 학생들의 지상 과제는 사물을 사진처럼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었다. 당시 “L”교수는 과제 검사를 70%, 80%, 퍼센테이지로 평가하기도 했다. 100%는 사진과 같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옆 친구하게 물었다. “사물이 이미 저기 있는데 뭐 하러 똑같이 그리는 걸까?” 잠시 뜸을 들이던 친구는 “기숙사에 가서 밀린 양말이나 빨아야겠다.”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 후 오랫동안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1995년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박정자 저, <빈센트의 구두>에서 발견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옛날, 디뷰타드라는 사람에게 딸이 있었다. 딸은 내일 전쟁터로 떠나는 애인과 마주하고 있다. 딸은 애인의 모습을 애타게 바라보다가, 애인의 그림자를 따라서 벽에 금을 그었다. 그렇게 애인의 그림자는 벽에 영원히 각인 되었다.  

쉬베, <디뷰타드 혹은 그림의 기원> 1791


 흔히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말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못 보면 애타게 그리워한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림자에 테를 두르는 여인의 행위는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사물을 진솔하게 보는 태도이다. 눈앞에 있다고 해서 똑같이 본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늘 낮에 버린 음료수의 실루엣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그림과 어떤 글이 써져 있는가? 음료수 병을 도구로써 취급했을 뿐이지 진솔하게 보지 않는다. 그림자에 테두리를 두르는 것, 즉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물의 도구성을 벗겨버리고 사물 자체를 발견하는 깨달음이다. 

 

이미지 출처, http://9gag.com/gag/3633135


꼭 그림을 그려야만 사물을 진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 밖 풍경을 보고 상념에 빠져 본적이 없는가? 창 밖 세상은 평소 보아오던 세상과 감이 다르다. 창은 세상 풍경에 테를 두르는 일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도 사물에 테를 둘러서 관념 너머의 세상을 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개인전을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 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