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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퀴어] 막대사탕과 똬리 2 (이성엽)

페미&퀴어

by 제3시대 2018. 6. 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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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사탕과 똬리 2



이성엽

(한백교회 교인,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에서 공부 중)

 


경의선 첫 차는 문산역에서 5시경에 출발했다. 집에서 나와 문산역으로 가는 길은 철로를 따라 남쪽으로 쭉 걸어가면 된다. 새벽엔 주변에 빛이 없어서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아주 낮게 코앞까지 내려와 있는 것 같았다. 겨울에는 우리집과 문산역을 잇는 일직선 상에 오리온자리가 위치한다. 계절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오리온자리가 지면에서 떨어진 높이와 그 별들이 집과 역을 잇는 일직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지를 보면알 수 있었다. 경의선 첫 차의 주요 단골 승객 중 양키물건 장수들은 문산에서, 꽃장수들은 일산에서는 남대문에 내다 팔 물건들을 가지고 탄다. 양키물건 중 가장 위험한 물건은 담배다. 담배는 보루째 가슴아래부터 허리, 고쟁이속 다리 둘레에 천으로 된 끈으로 단단히 묶어 흘러내리지 않게 해서 운반하는데, 공간의 넉넉함 때문이었는지 양키물건 장수들은 늦게까지 한복을 입었다. 한 사람의 한복 속에서 나오는 물건의 양은 실로 놀랍다.


일산 꽃장수들이 머리에 이고 오는 꽃짐 덩어리의 크기는 팔의 길이와 목의 힘에 비례한다. 팔을 단순히 머리쪽으로 올리는게 아니다. 두 팔을 머리 높이만큼만 올려서 벌릴 수 있는 최대의 넓이로 크게 벌리고 목에 힘을 제대로 주어야먄 머리에 인 꽃짐 덩어리를 고정시킬 수 있었다. 머리에 이는 꽃짐은 한 사람이 한 덩어리 밖에 질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크게 덩어리를 만들어야 했다. 열차가 역으로 들어가면 꽃짐 덩어리는 주인보다 먼저 올려진다. 새벽 열차에 몸을 실은 문산의 양키물건 장수들은 곤한 잠이 들었다가도 꽃짐이 턱하니 내려지는 소리에 잠이 깬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졸린 눈을 하고 먼저 올려진 꽃짐들을 끌어당겨 안쪽으로 옮겨 주어 나중에 올라오는 꽃 짐들이 실릴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준다. 꽃 장수들은 꽃을 다 실은 후 올라와서 꽃짐들 사이에 두 다리를 넓게 해서 듬성듬성 선다. 난 언제나 그들 머리위에 얹혀 있던 손 때 묻은 똬리들을 보며 신기하게 여겼다. 어떻게 저리도 단단히 거기에 붙어 있는 걸까?


양키물건 장수들의 고쟁이와 일산 꽃장수들의 찌든 똬리를 통해 어린애였던 내가 본 것은 삶의 찌듦과 원망, 분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생기와 웃음도 있었다. ‘어른이 된’ 내가 그들의 삶에 가부장제, 억압과 차별, 구조적 모순과 같은 건조하고 차가운 단어들을 들이대고 있을 때, 나는 이런 질문을 해본다. 나는 그때 그들의 고쟁이와 똬리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요즘의 건방지고 못되먹은 나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한심스럽게 여기며, 갖지 못한 사람들을 은밀히 무시한다. 여성주의적 관점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여전히 내게 어려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가하는 건 아주 쉽게 할 수 있다. 내가 어떤 기분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을뿐더러 내 기분의 정당성을 증명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쉬운 것이다.


누군가가 여성주의적 관점을 갖지 않았다면 그는 다양한 층위의 권력과 기득권을 상대적으로 많이 갖고 있고, 그것에 대한 거부나 저항이 없는 것이라고 나는 단정한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갖지 못했다면 그는 마땅히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순화한다. 나는 어쩌다 주워 들은 한 줌 날 것의 얄팍한 개념들을 갖고 우월감을 느낀다. 어쩌다 주워들었다는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알게 되었다는 정도의 말일 것이다. 얘기가 글이었든 말이었든 그건 내가 노력으로 얻어 낸 환경은 아니었다. 우연히 나는 그런 자리에 놓여 졌다. 얄팍하다는 것은 나의 깊은 고민과 땀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천속에서 영근 결실은 더욱 아니다.


OOO 단체와 길지 않은 느슨하고 가는 연이 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그 단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갖기로 했다.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의무감으로 그 단체의 홈페이지와 활동가들의 페이스북을 둘러본다. 처음엔 새로운 내용을 접하는 게 재미있었고 내 이해의 폭이 넓어 지는 듯 해서 열심이었다. 시간이 지나가 피로감이 쌓인다. 누구가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적대시하는 분위기를 날 힘들게 한다. 마침내 질려 버렸다. 직장 상사를 안주거리 삼았던 뒷담화는 천 번을 반복해도 질린 적이 없다. 직장에서의 일상은 매일 반복되었지만 상사들은 늘 새로운 안주거리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나의’ 일 과 ‘남의’ 일의 구분은 이렇게 가능한 모양이다. 몇 번을 반복해도 질리는지 질리지 않는지에 따라서 말이다.


학기 초, 내 삶에서 가장 지질해 보이는, 그러나 그것이 절대 나의 잘못으로 지적될 리 없는 얘기들을 열심히 수집했다. 나의 못남으로 인해 저지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들은, 헤아릴 수 없어 서가 아니라 나의 못남을 드러내기 싫어서 밝히지 않는 것이다. 못남의 내용이 온전히 나 개인의 인격적인 문제인지 소위 사회 구조적 문제인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그 정도는 적당히 덮어 버릴 줄 아는 간교함도 살면서 터득해 온 바다. 아무튼 인식론적 특권이든지 뭐든지 간에 경험 소재의 풍성함이 내게 더 많은 학문과 실천의 가능성을 줄 것이라는 안일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도시의 철거민들, 물질적∙ 사회적 배경에 따른 차별, 기지촌, OOO단체의 당면 문제가 내가 직장 상사를 두고 가졌던 느낌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최근 미국에 살며 일본인 부모를 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커버링’이라는 책을 읽고 느낀 좌절감은 내가 그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온전히’ 였다. 하지만 그 책의 작가는 시인이었고 자기의 책을 통해 내 감정을 흔들어 대고 내 속을 아프게 할 정도의 실력은 갖춘 글쟁이였다. 그의 서술이 너무 생생했기에 나는 다른 어느 때 보다도 성소수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온전히’ 그에게 공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일종의 성찰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 자신을 스스로에게 과시했다. 그런 나는 또 나를 성찰했다. 성찰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좌절감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소설을 읽을 때 나타나는 감성적 반응 이상이 되지 못했다. 나는 어느 정도 그걸 감지했던 것 같다. 성찰적인 양하는 자기 과시와 깨달음이 내 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섞여 있던 좌절감이었다.


최근에 어떤 논문을 읽으면서 동자동 쪽방촌 사진과 기사들을 검색했었다. 그 과정에서 단지 내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에 그칠 까봐 경계하고 조심스러워했지만, 내가 저기에서 같이 살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던진 질문 하나에 나와 그이들 사이의 거리감을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자랄 때 마을이 철거되고 우리 가족이 천막에 살았다는 경험만으로 내가 어디든지 가서 함께 살며 삶을 나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나는 여성 OO회의 회장을 한 적이 있다. 그 임기 중 내 관심은 단체의 회원인 여성들에게 쏠렸고, 어떻게 해서든 회원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때 나는 진심으로 일했다. 그게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과를 내면 칭찬을 받고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서 그것 얻고 싶은 욕심. 그런 욕심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1920~30년대 사회주의 진영의 여성 운동가 중 정칠성이 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들 하지만 이는 김활란이나 나혜석, 허정숙과 같은 수퍼스타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고 정칠성이 내 귀에까지 들려온 이름이라면 이미 많이 알려진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며 그에 대한 연구∙발굴이 더 필요하다고 들 한다. 왜 사람들은 기억되지 않는, 기억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는 것일까?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인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에 대한 자기 연민일까?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을 때에도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일을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묻다가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내가’로 시작하는 질문에 매몰되어 있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종교사회에서 배웠다. ‘너’로부터 시작하는 질문을 하라고 했다. 너의 필요는 무엇이고 너에게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물을 때 사람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너’를 한심스럽게 여기고 은근히 무시한다. 나는 너에게 공감할 수 없고 너와의 거리감을 느낀다. 너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던 순간에도 그건 나의 명예와 욕심 때문이었다. 타 학과 학생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여성학이나 여성주의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모 종교의 신앙을 갖고 있는 한 학생이 여성주의자들은 모두 평화주의자 인줄 알았는데 요즘 안 그런 모습을 많이 본다고 했다. 평소 그는 자기 삶에서 평화주의를 실천하며 살고 싶어하는 자로 보였기 때문에 그의 발언에 반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페미니스트에게 요구되는 도덕적∙수행적 기대치는 종교적 사제들에게 거는 것만큼이나 높은 것 같다고 말해 주면서 같이 웃었다.


나는 왜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내가 아직 페미니스트가 아닌 이유, 못되는 이유는 위에서 충분히 설명되었다. 나는 왜 페미니스트인가? 내가 페미니스트인 이유는 내가 온전히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지 않아도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는 마음속 지향만으로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뻔뻔함과 비슷하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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