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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어른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읽기와 쓰기 훈련(심범섭)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7. 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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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읽기와 쓰기 훈련



심범섭*



영어를 잘 하면 좋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쓰는 시간과 노력과 돈의 양은 엄청나다. 영어가 세계에서 가장 힘센 언어이고 온 세계와 교통하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어만 잘 한다고 국제적으로 잘 소통하는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영어로 전달할 실속있는 정보와 생각이 나에게 있어야만 한다. 더불어 상황에 맞는 소통의 기술과 지혜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원리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을 생각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한국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소통의 문제는 기본 언어구사능력을 넘어선 차원에서 발생한다. 상식(배경지식), 상상력, 예의(배려심), 합리적 사고, 감정 통제 능력 등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여기에서 빚어지는 나쁜 결과는 언어구사 능력이 모자라 일어나는 나쁜 결과보다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이런 차원에서 소통 능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능력은 크게 지식과 사고력과 정서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사고력을 기르는 방법으로서 읽기와 쓰기 훈련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언어를 이용하는 소통에서 사고력과 관련된 능력으로는 언어 표현을 정확히 이해하고 구사하는 힘, 자기만의 개성적 언어로 표현하는 힘, 맥락을 이해하는 힘,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구분하는 힘, 말해진 내용의 전제를 파악하는 힘, 논리적,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힘, 범주와 차원의 혼동을 피하는 힘, 주어진 표현의 다양한 의미 가능성을 인지하는 힘 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한 방식으로 읽기와 쓰기를 훈련하면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특히 혼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읽고 쓰는 활동이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에 전문가가 포함된다면 더욱 좋으리라고 본다.

학생 독서 지도사를 양성을 위한 교재로 저술된 <독서교육의 이론과 실제 1>라는 책에서는 학생 독서 지도가 필요한 이유를 다음 여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각주:1]


(1) 올바른 독서 습관을 기르고 스스로 독서하는 태도를 기른다. 

(2) 제대로 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균형 잡힌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 

(3) 성장 과정에 필요한 이해력과 감상력을 통해 독서 효과를 높인다. 

(4) 사고력 향상과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응용력을 기른다. 

(5) 표현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기른다. 

(6) 인성 교육과 생활 지도에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람에게 평생 교육이 필요함과 어른들도 인성 교육이 필요함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 및 글쓰기 능력이 미진함을 인정할 때, 위의 이유는 학생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전반에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4, 5번째 이유가 내가 관심을 두는 사고력 배양과 관련된 것이다. 이 두 가지 항목과 관련된 훈련에는 글쓰기가 포함된다. 저자들은 (4)와 관련하여, “독서 지도는 토의나 토론, 글쓰기 등의 활동을 통해 보다 발전적인 사고 능력을 갖게 한다”, (5)와 관련하여 “독서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말하는 방법과 글 쓰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각주:2]

그렇다면 어른들을 위한 읽기와 쓰기 훈련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방안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읽기를 위해서는 뜻이 맞는 사람 4-6명이 모임을 이루고 1-2주에 한번씩 만나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읽기 훈련을 시켜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이 사람이 모임을 주재하게 된다. 읽는 책으로는 길지 않은 인문 고전을 선택한다. 좋은 책을 정밀하게 읽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때 한 작품을 완독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지루함을 느끼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모임 한번을 위해 읽는 분량은 3-50 페이지로 한다.

책 읽기의 일차 목표는 내용 파악으로서 텍스트의 문자적 의미와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지만, 이럴 때에도 왜 이 차원의 이해가 불가능한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글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우리가 대화에서 강조하는 ‘경청’의 노력과 같다. 내용 파악은 늘 중요하지만 늘 쉽지는 않다. 이 과정 자체만을 위해서라도 글을 천천히 읽어야만 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내용 파악 다음에 ‘주관적 읽기’ 또는 ‘객관적 읽기’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다음’이란 개념은 시간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논리적 개념이므로 현실에서는 시간 차이를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관적 읽기는 독자 개인의 특수한 경험 및 내면 세계와 텍스트가 만나는 읽기를 말한다. 이런 읽기는 우리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수행하는 자연스러운 독해 방식으로 많은 경우 ‘이런 내용이 좋았다 / 재미있었다 / 마음에 와 닿았다 / 감명깊었다 / 감동적이었다’, ‘이런 내용을 읽고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 / 다짐하게 되었다’ 같은 표현으로써 사고화된다.

객관적 읽기는 읽은 내용을 “해석”하는, 곧 보편적으로 이해가능한 의미를 부여하는 읽기이다. 이러한 독해의 전형적인 예를 우리는 문학비평문에서 만난다. 물론 이러한 의미 자체도 독자의 개인적인 정신 세계에서 유래하므로 엄밀히 말해 객관적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주관적인 의미가 형성될 때 마치 일반적인 의미인 양 사고화되면서 독자 개인의 특수성은 감추어진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해 객관적 읽기는 ‘간접적으로 주관적인 읽기’라고 이름할 수도 있다.

소박한 예를 들자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라는 싯구를 읽고, ‘맞아! 갈 사람은 이렇게 조용히 보내야 하는 거야. 난 예전에 갑순이한테 그러지 못해 후회되는구만. 앞으로 이런 상황이 오면 이렇게 멋있게 조용히 물러나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주관적 읽기이다. 반면에 ‘이 구절은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보이지 않게 슬퍼하는 마음을 암시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객관적 읽기이다.

객관적 읽기를 잘 하려면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런 읽기를 잘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텍스트 부분부분의 이해와 전체 이해가 논리적으로 일관되어야 하고, 텍스트 안과 밖의 사실을 정확하게 원용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독서에서는 객관적 읽기가 주관적 읽기보다 더 중시되어야 한다.

어른들의 사고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독서 모임과 연계된 글쓰기 훈련은 주관적 읽기와 객관적 읽기를 글로 표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주관적 읽기를 글로 쓰는 것은 독후감적 쓰기가 되고, 객관적 읽기를 글로 옮기는 것은 비평적 쓰기가 된다. 이런 글쓰기는 아직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에는 책 전체에 대해 독후감을 쓰거나 또 (비평적 글쓰기의 한 유형인) 서평 쓰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 독후감과 서평 모두 내용 요약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에 더해 독후감에서는 글쓴이에게 의미있었던 부분을 이야기하는 반면, 서평에서는 책의 장점과 단점을 논하고 책의 주제와 관련있는 의미있는 문제를 제기한다. 독후감(적) 쓰기도 쉽지 않지만 비평적 글쓰기는 이보다 더 어렵다. 사고력 제고에는 비평적 글쓰기가 더 도움이 되므로 글쓰기 연습은 이 장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글은 1~2 주에 한 편을 쓰는 것이 좋고, 글 한 편의 분량은 5~700 단어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신중하게 쓰고 글쓰기를 지도하는 사람이 철저하고 세심하게 다듬어 주는 것을 조건으로 할 때 짧은 글이 더 적합하다. 한 사람이 쓴 글은 전문가의 지도와 더불어 다른 모임 구성원들의 논평을 같이 받는 것이 좋다. 정기적으로 이른 바 “합평회”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읽기와 쓰기 훈련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보지만 동시에 과연 이런 구상이 현실성이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과정이 진정한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이 “열과 성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력을 의미있게 키우는 읽기와 쓰기 연습은 운동에 비유하자면 근육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엄격한 기준에 맞추어 온 힘을 몰아넣어 근육을 찢는 “고통”이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른들이 이런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 문화의 뼛속까지 배어있는 대충주의이다. 우리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대충 하는 데에 너무도 철저하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의 사회인들이 너무도 바쁘다는 것이다. 나는 주로 2~30대 직장인들이 나오는 독서 모임에 많이 참석해 보았는데 이들에게는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2~40대 사회인을 대상으로 4-5주 진행되는 글쓰기 교실을 몇 번 연 적이 있었는데, 이때에도 참가자분들은 일주일에 짧은 글 한 편을 쓰는 것을 어려워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이 사람들에게 차분히 독서하고 사색하고 글을 쓰는 습관이 가능한 삶은 먼 나라 일인 것 같았다.

몇 년 전 한국에 정착해서 산 지 7년 되는 독일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한 말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다. 독일 사람들은 강가나 바닷가 같이 편하게 쉬고 노는 곳에서 “이머 레젠 (Immer lesen 늘 책을 읽는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이머 에센 (Immer essen 늘 뭘 먹는다)!” 그 양반은 이 말을 농담처럼 했지만 우리는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월드컵 축구에서 우리나라팀이 독일팀을 기적처럼 이기는 일이 있었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고 우리 축구팀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축구에서 독일을 늘 이기는 것과 우리나라 사람이 독일보다 더 책을 많이 읽는 것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두 번째 것을 택하겠다. 우리의 아름다운 아이들에게 책을 읽지 않고 격조 있게 토론하지 못하며 깊이 있게 글을 쓰지 못하는 사회를 물려주지는 말자.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 웹진 <제3시대>



  1. 박정진, 조재윤, 정래필, (사)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교재집필연구회, (주)한우리북스, 2017, pp.35-36. [본문으로]
  2. 같은 책 p.3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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