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힘] 벌레, 아버지, 혹은 자신의 언어를 잃어가는 이들에 대한 단상 (유승태)
벌레, 아버지, 혹은 자신의 언어를 잃어가는 이들에 대한 단상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건넛방 이불 속에 커다란 벌레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그 벌레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아버지가 했어야 할 일들을 그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통해 그 벌레는 나의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그 벌레는 누운 자리에서 한참 텔레비전을 보다 비척이며 일어나 가느다란 관절들을 움직여 식탁의자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촉수를 불안하게 움직여 25단위로 인슐린 주사를 맞고는,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여기저기 흘리며 먹습니다. 이런 행동들을 보니 그는 영락없이 '아버지 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
시선의 힘
2010. 3. 6.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