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신학가이드19]



조르지오 아감벤 II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바울서신의 쟁점을 크게 두개로 나누어 본다면 하나는 구원에 관한 것이고 두번째는 종말에 관한 것이 된다. 즉, 구원론과 종말론이다. 조르지오 아감벤은 바울서신을 메시아니즘을 중심으로 읽는 사람이기에 그에게 있어서 바울의 종말론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바울 이전시대에 있었던 유대 종말론을 메시아니즘을 통해 바울이 어떻게 재해석하느냐가 그 방점이 된다. 유대의 종말론은 신의 심판과 다스림이 현재의 역사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측면에서 바울을 이해하는 것은 이천년전이라면 모르겠으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매우 어려운 도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않는 재림의 그리스도를 포기하고 내세에 대한 소망을 신앙의 목표로 삼는다. 전통적인 바울의 종말론은 이 둘 사이에서 매우 애매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 대표적인 이해가 바로 ‘이미’와 ‘아직’이란 도식이다.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확실히 ‘이미’ 시작되었고 그 완성은 ‘아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고 있으며 여전히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지만 죽어서 가는 ‘천국’을 소망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에 몇가지 질문을 해보자. 첫째로, 곧 온다던 예수는 틀린 건가? 둘째로, 예수가 곧 온다던 바울은 틀린건가? 세째로 그들이 틀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먼저 첫째와 둘째가 맞다고 한다면 일단 신학적 서술에서 종말론을 빼버려야한다. 바로 종말론이 없어도 제대로 설 수 있는 신학을 구성해야한다. 실제적으로 요즘의 신학은 구원론 중심의 신학이다. 특히나 바울의 신학이 ‘이신칭의’가 강조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일 수 있다. 또는 결국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도덕적인 삶의 추구에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내세를 바라거나 메시아의 재림을 기리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을 딛고 서서 자신의 삶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학을 말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 최근의 성서신학은 몇가지 논쟁점을 남겨놓았다. 먼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종말론적 표현들이나 재림에 대한 표현들이 실제로 ‘역사적 예수’의 말인지에 대해서 의심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들은 이러한 심판과 재림의 메세지가 예수의 부활 이후에 성립된 것이라 생각한다. 특별히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에게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신이 분부한 삶을 실천하는 공동체를 이끈 혁명적 지도자로써 그려진다. 만약에 예수의 부활 이후에 성립된 것이 기독교의 종말론이라면 바울은 그러한 종말론을 구성한 일세대 신학자에 속하게 된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은 만약에 예수가 말한 것이 아니라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소위 종말론이라는 것, 즉 그리스도 공동체의 종말론의 1세대 정도되는 종말론 또한 ‘이미’와 ‘아직’이라는 도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아감벤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바울의 메시아니즘의 정수는 메시아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사람들의 죄를 해결하는 가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 자체를 새롭게 이해하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보통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라는 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은 새롭고도 보편적인 인간을 상상한다. ‘새시대 새일꾼’이라는 표현이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등은 이전의 역사를 끝마치고 새로운 역사를 열기 위해 뭔가 새로운 인간을 꿈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감벤에게 중요한 것은, 또는 아감벤이 생각한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시대를 어떻게 끝마칠 수 있느냐이다.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끝마치지도 않고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열수 있겠는가? 또는 이전의 시대를 맺음을 통해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 그 자체일 수는 없을까? 이를 맑스식으로 말하면 맑스가 꿈꾼것은 ‘새로운 계급’의 시대가 아니라 계급이 없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각주:1] 결국 핵심은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사건이 내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를 인식하는 조건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바로 ‘구원’이 된다.[각주:2] 바로 메시아닉한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결국 주체가 새롭게 구축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 아니라 주체가 그 현재의 기반을 잃어버리는 방법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확보되는 것, 즉 “오로지 구원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구원을 묵상할 수 있는” 것이다.[각주:3] 아감벤은 바로 이러한 일이 부활을 통해 일어났다고 바울은 생각한다. 그러므로 바울의 하나님 나라는 비유를 통해 설명되지 않는다.[각주:4] 이 세계의 개념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에 이 세계의 개념들을 하나님 나라와 대치시키며 긴장관계를 형성한다.

    바울은 메시아적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 두개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하나가 법이고 두번째가 시간이다. 지난 웹진에서 필자가 아펠레스와 포로토제네스의 이야기를 다룰 때, 바울이 어떻게 법이 분리시킨 유대인과 비유대인, 로마인과 비로마인의 분리를 어떻게 새로운 분리를 더함으로, 즉 육과 영으로 분리시켜 법자체를 정지시키는지를 논했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러한 바울의 논의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으로 이전것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것을 갈등의 극한으로 몰고감으로써 비판의 정점에서 반대로 완성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오랜 기간동안 바울서신에서 바울의 율법관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바울은 율법을 반대하는가? 그런데 왜 완성시킨다고 말하는가?(롬 10:4) 아감벤에 따르면 오로지 율법을 그 극한의 갈등으로 스스로 몰아넣어서 마지막에 율법을 완전히 무장해재 시키는 것이 바울이 바라보는 메시아닉한 관점에서는 완성이라고 보는 것이다.[각주:5]

    이후에 논하겠지만 이러한 방식은 알랜 바디우와 상극을 이루는 아감벤의 바울 읽기이다. 아감벤은 명확하게 바디우를 비판하는데, 아감벤은 ‘하나의 보편적인 생각이 어떻게 완전한 타자들의 기초위에서 동일성과 평등성을 나타낼수 있는지’ 의아해 한다.[각주:6] 바디우에게는 바울이 어떤 새로운 보편성을 더함으로 새로운 주체를 발견하는 것이었다면 아감벤에게 바울은 ‘유대인’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로 묶이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법에 의해 생성된 아이덴티티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포착할 수 없음을 말한다. 결국 법자체를 inoperative(활동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아감벤은 새로운 주체가 아니라 법이 중지되어, 그 어떤 주체적 정의에도 포함되지 않는 ‘남은 자’(Remnant)들이 바울에게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 남은 자들은 “전체도 아니고 전체의 부분도 아니고, 부분이나 전체의 불가능성”을 나타낸다. 즉 모든 사람이나 민족들이 그 자신을 전체가 아니라 남은자로 놓는 것이다. [각주:7]예를 든다면 모든 사람들이 부르주아나 프롤레타리아가 아니고 그 둘이 아닌 남은자가 될때 계급은 사라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아감벤의 논의는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상상력을 제외하고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감벤은 데리다의 논의를 바울로 이끌고 들어와 바울을 새롭게 해석하는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감벤의 바울읽기는 그의 시간에 대한 개념에도 나타나있다. 아감벤이 말하는 바울의 메시아적 시간은 다음 웹진에서 논해보자.


참고도서

Agamben, Giorgio. The Time That Remains: A Commentary on the Letter to the Romans.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6.


ⓒ 웹진 <제3시대>



  1. Agamben, The Time That Remains, 31. [본문으로]
  2. Ibid., 41. [본문으로]
  3. Ibid., 42. [본문으로]
  4. Ibid., 43. [본문으로]
  5. Ibid., 48. [본문으로]
  6. Ibid., 52. [본문으로]
  7. Ibid., 5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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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취지_

웰번은 뉴욕 포덤대학(Fordham University) 신약학 교수로, 바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입니다.
특히 곧 출간될 예정인 책 ["That There May Be Equality”: An Economic Ideal in Paul’s Letters. Paul in Critical Contexts]에서 웰번 교수는 바울의 평등론을 사회경제학적 정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는데, 이번 강연은 바로 이 내용을 이야기하는 자리이고,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관하여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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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7]

바울신학과 탈식민주의II

- 바울과 제국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왜 주류신학에서 탈식민주의를 말하지 않는가?
    
    이전의 웹진의 글에서 원래는 식민주의 시대 이후의 정치적 텍스트 읽기의 한 방법인 탈식민주의가 어떻게 성서 해석의 장으로 들어왔고, 성서가 쓰여졌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가를 논했다. 더 나아가 탈식민주의 이론의 발달로 인해 영미의 인문학과 신학이 자신의 오만을 반성하고 새로운 텍스트 읽기를 인정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이번 웹진은 그러한 탈식민주의적 성서읽기가 어떻게 신약성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짧게나마 다루어 보고자 한다. 하지만 먼저 그 전에 이른바 진보적 성서읽기가 왜 신학교의 상아탑이나 학문적 차원에서만, 그것도 소수의 학자들에게서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식민주의만 논할 것이 아니라 이른바 탈근대의 시대에 태동되었던 성서해석의 흐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대와 탈근대의 장구한 성서해석의 흐름을 짧게 요약하는 것이기에 많은 한계가 있을 것이나 적어도 현대 성서해석학의 위치를 조감해볼 기회는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근대의 시대가 계몽주의와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에 현실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안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카톨릭으로부터 개신교회가 독립하기도 하였지만 성서학에서 가장 큰 변화는 성서 이해에 대해 로마의 기독교화 이후부터 있었던 해석의 기준인 교황권이 약화되었다는 것이었다. 즉, 무엇인가 새로운 해석의 방법이나 관점을 발견하더라도 근대 이전에는 교황권의 인정을 받아야만 유통될 수 있는 담론이 바로 성서에 대한 해석이었다. 한마디로 신학과 성서학은 카톨릭의 권위 아래에서 검열되었고 유통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개혁을 꿈꾸며 혁명적 신학을 개진했던 인물들이 있었지만(둔스 스코투스 또는 보나벤투라 등) 거시적 지평에서는 정통과 이단의 기준은 교황권에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인해 그 권위가 일거에 사라졌다.[각주:1] 게다가 이미 ‘이성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이 세계를 덮고 있었다.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서 라틴어로만 번역되어 존재하던 성서가 여러 언어들로(특히 독일어와 영어) 출판되고, 이성을 기반으로한 과학적 사고가 전통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부수고 나오게 되자, 시대는 전통적인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뒤덮혔고 이제 학문은 전통을 인정하되 과학적 사고로 전통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쉽게 바꿔 말하면, 근대 이전의 시대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농작물을 키우는 일에 대해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그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농업에 대한 지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다. 바로 전통이 그의 직업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의 시대가 되면서 자연과학이 최고의 가치로 등장하게 되자, 제일 먼저 농부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성공하고 싶다면) 과학적 방법으로 발달된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야흐로 몇백년, 아니 몇천년동안 내려오던 전통적 방법에 물음표가 붙으면서 과학적, 이성적 방식을 받아들여 변화의 시대에 발맞추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농업을 예로 들었지만, 이러한 변화에 가장 민감했던 것이 바로 예술과 인문학이었을 것이다. 신적 권위를 드러내고 그 권위를 이해하는 것에 바쁘던 학문들이 자신들의 전통에 괄호를 치고 이성에 빗대어 질문을 던지면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더할 것은 더하면서 좀 더 새롭고 이성적인 담론을 산출하기에 온 정력을 쏟게 되었다. 신학과 성서학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계몽주의적 성서학의 태동이 신화의 시대에 갇혀있던 인간을 계몽시키고 역사 속에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질문없이 권위에 복종하며 참복음의 묵상에는 어쩌면 게을렀던, 그래서 너무도 쉽게 정치와 권위의 신하이기를 자처했던 성서학이 그 틀을 깨고 나와서 여러 다양한 비평의 시대를 연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성서학의 태동을 뒤집어서 보면,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성서의 생존을 위해서, 성서가 미신과 신화로 뒤범벅되었음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성의 시대에 성서를 구원해 낼 것이냐를 고민했던 결과가 바로 근대성서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기에 근대 성서학의 빛과 그림자가 있다. 신학교 신학생 시절 선배들과의 대화 속에서 중고등학교때까지 충실하게 믿었던 성서의 여러 기적이야기들이 한낱 신화적인 그리고 문학적인 문법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임을 들었을 때 물론 성서를 새롭게 보는 지평 또한 열렸겠지만 이전의 신앙적 양태를 폄하하는 교만의 시각도 함께 열렸다고 한다면 심한 억측일까? 새로움을 추구하는 근대적 학문은 중세의 그늘을 여는 눈부신 햇살이 되어 잠들어 있는 인간됨이라는 아름다움을 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지만 오로지 진보와 새로움의 추구는 자칫 잘못하면 다양성에 대한 지적유희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한 예로 근대의 성서학은 일세를 풍미했던 불트만이나 케제만과 같은 독일 성서학 시대와 사회학적 해석과 간문화적 연구를 필두로한 미국의 진보성서학의 시대를 넘게 되면, 구조주의적 비평과 신비평, 그리고 문학비평 등의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하나의 텍스트에 하나의 의미란 없으며 텍스트는 오로지 열린 것으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의 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추구가 현실의 콘텍스트를 잃어버리고 학문의 상아탑 안에 갇히게 되면 성서는 믿음의 텍스트로서의 힘을 잃어버리고 학자들의 지적유희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이는 현대 대학의 인문학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지만, 특히나 성서학과 교회의 괴리, 성서학과 현시대 상황과의 괴리는 참으로 진보성서학에게는 아픈 부분이다. 교회는 보수화되었기에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고들 하였다. 축자영감이나 주장하는 보수적 교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서학이, 바로 이스라엘의 해방, 예수 운동, 그리고 바울의 혁명적 교회론을 읽는 성서학이 현실에 귀기울이지 않고, 헬라어의 단어 하나, 몇개의 구절이 예수의 역사적 서술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골로새서가 바울의 저작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수백 편의 논문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 아닐까?
    그렇다면 탈식민주의란 것은 이러한 서구의 엘리트주의나 지적유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전 웹진에서도 설명했듯이 탈식민주의의 중요한 이론가들의 기반이 된 것은 데리다의 해체주의, 맑스주의, 라깡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푸코의 담론이론 등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인문학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쳤으나 몇몇의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고 쉽게 이해되기 힘든 담론들이며 성서학에서도 부분적으로 다루어지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론의 역사와 달리 탈식민주의는 서구의 식민주의 또는 제국주의 열강들에 대한 전세계적 저항의 역사를 담지하고 있는 민중들의 담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넓고도 복잡한 탈식민주의적 이론과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어떤 성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오늘 웹진에서는 성서의 가장 문제적인 주제인 ‘제국’을 가지고 탈식민주의가 어떻게 상아탑에 갇힌 성서를 탈경계화하고 성서해석의 역사만이 아니라 성서텍스트 자체에 대한 반성을 생산할 수 있는지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탈식민주의의 두 갈림길 – 제국과 성서, 그리고 탈식민주의 관점으로 본 제국

    제국(Empire) 과 제국주의(Imperialism)만큼 본 웹진에서 자주 언급된 주제도 드물 것이다. 이 주제는 이 웹진만이 아니라 전체 인문학과 성서학에 흔히 다뤄지는 주제인데, 때로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미국의 패권주의 등등의 다른 말들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만큼 제국이라는 말이 현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좋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국주의는 하나의 통치이념이다. 여기에서 Imperialism은 Imperator(임페라토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인데 이는 독재관(또는 황제)이라는 로마의 직책에서 유래한다.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로마는 전쟁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타개해 나갈 방법으로 독재관이라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전까지의 원로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지휘관의 개념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군사적 전권을 가지는 계급으로 로마가 황제정으로 가는 시발점이 된 직책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율리우스 시이저를 들 수 있는데, 당시의 로마의 군인들은 원로원이나 로마의 공적 기관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휘관으로부터 봉급을 받았으므로 독재관이라는 것은 명실공히 금권과 군사력을 동시에 가지는 독재가 가능한 직책이었다. 이후 이른바 종신독재관이라는 직책이 만들어지면서 황제정의 길이 열리게 된다. 이러한 황제정과 식민정책을 기본정책으로 삼는 것이 로마의 제국주의였고 이를 계승하려 한 것이 근대국가 이전의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이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근대국가들이 결국에는 제국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본의 팽창을 위해 끊임없이 식민지를 만들고 타국을 침략하여 군사인 힘과 경제적인 힘으로 정복하면서 다른 제국들과 경쟁하는 시대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후, 네그리는 그의 저서 ‘제국’에서 전지구적인 하나의 제국을 상정한다. 국가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등장하는 자본과 그들을 움직이는 힘들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자본의 힘으로 세계를 관리 감독하는 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모든 형태의 제국의 기본적인 체계가 바로 로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로마가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가던 시대에 신약성서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국가경영에 대한 정치이념에는 몇가지가 있을까? 깊게 생각해 보더라도 시민의 참여를 통해 국가의 경영을 결정하는 민주정치이념과 소수의 엘리트집단이나 개인에 의한 일당독재나 일인독재, 또는 황제정치(제국정치)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듯하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정치는 근대 이전에는 불가능했었는데, 민주정치에 대해 무지했다기보다는 이를 가능하게 할 인프라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2013년의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예로 들더라도 초고속 인터넷과 엄청난 정보고속도로가 있음에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인력과 자금이 들어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개표에 대한 의문들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물며 근대 이전에서 모든 국민들의 생각을 모은다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민주정치를 꽃피운 (비록 소수 남성 자유시민들의 정치였지만) 아테네 또한 조그만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어느 정도 크기 이상으로 팽창하게 되면 일인독재체제가 가장 효과적인 통치체제가 되는 것이다. 결국 제국주의가 기본 통치이념이 된 이후에 그리스 헬라 철학은 개인의 윤리와 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에피큐로스, 스토아학파) 정치에 대한 철학적 상상력은 그 종언을 고하게 된다.
    헬레니즘과는 다른 지역에서 발달하여, 헬레니즘의 거대한 물결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헤브라이즘이라 후대에 불리우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성막중심 공동체로부터 시작하여 솔로몬 왕에 이르러 성전 중심의 종교국가로 발전한다. 그러나 성막공동체가 야웨 하나님과 억눌린 자의 해방을 통한 정의의 공동체를 목표로 했음에 반하여 성전중심의 국가가 된 이후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시대를 정점으로 남과 북왕국으로의 분열과 성전종교의 타락 등으로 쇠락의 시대를 걷다가 결국 나라를 잃고 식민통치의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식민통치 시대에서 공동시대 70년쯤에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까지 남유다 멸망후 약 600년간 유대인들은 끊임없는 저항의 시대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에 그들의 중심이 된 사상이 바로 유대주의(Judaism)이다. 정치적 독립이 요원한 상태에서는 종교적인 담론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였고, 로마의 감독을 받는 이집트와 시리아 제국이 잠깐 한눈을 팔기만 하면 정치적 독립을 위한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 바로 유대의 역사였다. 자연스럽게 그리스 문화와 로마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생각도 생겨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열망도 있었다.(한 예로 쿰란 공동체를 들 수 있다.) 결국 제국과 성서에 대한 질문은 제국의 식민통치 아래에서 쓰여진 성서가 인간의 공동체와 국가를 경영하는 최종 모델인 제국이라는 이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느냐라는 것으로 모아지게 된다.
    성서가 인간의 제국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이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결과물로 예수를 성전중심의 브로커 체제(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적 역할로서의 종교)를 혁파하는 종교혁명가로 소개하였을 때, 닐 엘리엇이 ‘Liberating Paul’에서 바울을 로마 황제 숭배에 반해 그리스도를 주(Lord, kupios)로 고백함에 대한 정치성을 말할때, 당시의 학자들의 마음속에는 제국의 패도정치에 반하는 사랑과 정의의 화신으로써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복음서의 예수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권위주의를 해체시키고 아래로부터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후 전미성서학회(SBL: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에 ‘예수와 제국’(Jesus and Empire)라는 분과가 따로 생겨날 정도로 신약성서의 배경을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로 보고, 성서를 제국에 대한 저항문학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식민공간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담론들을 좀 더 깊이 살펴보기 위해, 잠시 눈길을 돌려 한국의 식민의 역사를 살펴보자. 대한 제국이 당시 일본제국과 한일합방의 치욕을 겪고 난 이후, 당시의 지식인들로부터 이후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저항의 물결이 해방을 얻기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대한제국은 조선시대 이후로 근대적 국가를 건설하려는 정치적 변화의 일환이었으나 본격적인 근대화에 첫 발을 딛기도 전에 식민의 시대의 질고를 지게 되었다. 일본제국의 식민하에서 조선독립운동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 것이 바로 첫째는 민족주의이고 다음은 맑스주의 또는 사회주의였다. 평등과 자유를 기본으로 하였던 맑스주의는 불평등과 자본주의를 중심으로한 식민통치에 저항담론이 되었고, ‘민족’이라는 단어는 저항의 구심점으로 조선민중들이 하나의 가치로 모여들게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 ‘민족’이라는 단어는 위정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하였다. 아직도 필자는 아침마다 왼 가슴에다 손을 얹고 외우곤 했던 문장들이 기억난다. “난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모든 국민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해야 할 민족이란 무엇일까? 바로 국민들이 아닌가? 자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것을까? 오히려 충성을 요구하는 어떤 집단이 자신들을 위해 ‘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뿐인 것 아닐까?
    다시 신약성서로 눈을 돌려보면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저항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 또한 민족이라는 개념이었다. 물론 근대 민족국가에서의 민족과 유대주의로 대변되는 유대민족주의는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구약성서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 멸망 이후에는 유대주의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져가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자의식은 제국의 지배와 함께 생성되어온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의 민족주의 또한 민족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애매함과 폐쇄성 때문에 여러 새로운 민족에 대한 해석을 낳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인가? 로마인들은 제국의 시민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혜택을 얻을 수 없는가? 이미 요나서에서 제국의 수도 니느웨가 하나님께 참회하는 꿈같은 장면이 그려지고 소아시아의 여러 지방에 건설된 회당이 이방인들에게 이미 개방되어 있었다. 예수 운동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러한 시대였다.
    그것은 예수라는 인물을 따르는 자들로 인해 시작되었고 성전멸망 이후에 유대교 회당에서 배태된 집단이었고, 예수라는 인물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였다.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저항담론을 만들었다. 그것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파괴력과 넓이를 보여주었고, 이방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새로운 이름의 제국(바실레이아)에 대한 열망이었고, 그 또한 여타의 제국이 가지고 있는 빛과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다.
   

    예수와 제국, 그리고 바울

    기독교제국(Christendom)을 비판할 때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확정하면서 주변에 머물렀던 기독교가 제국의 힘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위정자의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기독교 타락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신학과 교리는 기득권층의 이권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변하여 제국의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 그들의 우월성을 대변하고 식민치하의 민중들을 유혹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이러한 기독교의 과거에 대해서 던지는 질문은 과연 기독교 제국의 타락과 악행이 기독교제국의 위정자들에게서 나온 독극물이고 원래의 기독교 공동체는 그와는 다른 순전한 사랑의 공동체였을까? 또는 신약성서는 그러한 권위주의와 기독교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종래의 리처드 호슬리나 존 도미닉 크로산 등의 예수와 제국간의 갈등과 저항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복음서의 공동체가 예수를 당시의 황제의 명칭이었던 주님(Kupios, the Lord)로 부른다거나 황제의 방문을 나타내는 용어인 파루시아가 예수의 재림을 의미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예수의 공동체는 제국에 대한 저항 공동체임을 천명하였다. 로마제국이 황제종교의 성격을 오리엔트 지방에서 강화하면서 예수를 부활한 메시아로 받아들이던 공동체는 극렬히 저항했을 것이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것은 정치적 저항으로 읽혔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예수가 복음서를 통해서 말했던, 바울을 통해서 알려졌던 세상의 평화가 아닌 평화의 의미는 바로 제국의 선전물에서 흔히들 나오던 평화의 메세지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새로운 사회와 정치를 향한 염원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는 바울의 서신들 또한 중요하다.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를 예수를 믿는 공동체로 바꾸어버린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바울이야말로 제국에 대한 저항과 대안으로 예수를 붙잡은 사람이었는가?
    예수와 제국을 말하는 일군의 학자들과는 달리 탈식민주의 신약성서학자들은 유대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면서 초기의 기독교 공동체는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호미 바바의 미미크리(mimicry)이론에 착안하여 식민지하의 상황에서 식민인들은 제국의 담론을 증오하면서도 제국의 코드들을 창조적으로 전유한다. 로마황제의 제국 대신에 예수의 제국(바실레이아, basileia)를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로마의 제국 이후에 도래할 예수의 제국을 말함으로 로마제국의 지배구조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정신적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배계급으로 올라섰을 때 그러한 제국의 담론은 기독교 제국이 로마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하고, 혁명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지배계급을 만들어가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탈식민주의 성서학자들은 성서 내의 제국의 담론에 의문을 제시한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표현이 예수를 따르는 삶의 필요성을 말하기보다는 예수를 중심으로한 제국의 재편을 말하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군림하는 하나의 진리가 되어버리면 그안에는 어떤 삶의 가치보다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라는 차이만 존재하고 그 차이는 계급의 차이 또는 우열의 차이가 되어버린다. 특히나 기독교 중심의 세계에서는. 한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검을 든 이슬람 제국의 그림처럼(물론 이러한 담론은 후대의 기독교 역사가가 만들어낸 오리엔탈리즘이다.) 기독교 제국의 그림은 한손에는 성서, 그리고 다른 한손에는 자본주의라는 떡을 들고 타인종이나 타종교, 타국의 사람들을 유혹하는 전투적 선교주의가 된다. 그리고 그 그림이 이미 성서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탈식민주의 학자들의 논거라 하겠다. 제국에 대한 압제속의 저항의 몸짓이었던 성서가 지배계급의 도구가 되고만 가슴 아픈 현실을 비로서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교황권의 몰락은 단순히 인류의 정신사적 지평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의 지형과 경제적 변화가 가장 큰 이유가 되겠으나 여기에서는 단순화시켜 학문의 변화라는 관점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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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1]

어거스틴을 벗고 루터를 넘어…

왜 바울신학에 다시 귀기울이는가?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여행을 계획할때 당신은 무엇을 제일 먼저 고민하는가? 장소인가? 아니면 날짜인가? 장소를 먼저 고민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가고 싶은 어떤 곳이 먼저 생겼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았거나, TV 프로그램에서 보았거나, 아니면 문득 옛날에 가보았던 어떤 곳이 참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날짜가 먼저라면? 아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어서 가장 쉬기 쉬운 날짜를 고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부라는 길도 여행과 비슷한 면이 있다. 때로는 공부할 소재가 명확해서 마치 장소를 먼저 선택하는 여행과 같이 될때도 있고 이곳 저곳 마땅히 갈 장소를 고르다가 날짜에 맞는 좋은 장소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바울서신을 공부하게 된 것은 위의 두가지 상황이 차례로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는 역사학이나 조직신학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을 가게되고 자연히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신약신학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성서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교를 할때도, 목회를 할때도. 당시에는 대학원 이후 (필자는 학부 신학과 출신에 신학대학원까지 한국에서 공부했다.)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성서라도 잘 공부하는 것이 좋을것이라는 그야말로 막연한 생각으로 전공을 선택했다.

    대학원 생활이 반넘을쯤 다른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학부 동기를 만나 우연히 책 한권을 소개 받게  되었다. 도서출판 시공사에서 출간된 E. P. 샌더스가 쓴 [바울]이라는 200 페이지 정도의 책이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바울서신을 내 공부의 주제로 결정했고, 유학까지 결심하게 되었다. 단순한 생각으로 선택했던 대학원 전공이 평생의 학문에 대한 주제를 찾는 계기가 되었고 지루한 박사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 것이다. 앞으로 연재하게 될 바울신학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바울서신을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난 후 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나의 학문적 수행을 차례로 소개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서, 그럼 왜 나는 이 웹진의 귀중한 지면의 몇 페이지를 차지하고 앉아서 이 길다면 긴 바울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보자. 나는 바울신학이 앞으로 상당한 시기동안 현시대 사회와 상당한 연관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신학자들의 책이 출간되면 교회나 신학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그 책들을 사서 보고 토론하던 시절이 있었다. 불트만이나 틸리히등이 살았던 시대에는 신학이 사회의 통전적인 삶과 정치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에 귀기울이던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하지만 소위 포스트 모던이라는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모든 관심들이 한방에 사라졌다. 서점에서도 신학책들은 인문학중에서도 구석으로 밀려났고 자기개발도서나 유명설교자의 책들이 신학분과의 리더역할을 자처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신학이 다시 금의환양하는 시대가 되었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의 신학자들의 몫이다. 몇해전이었다. 필자가 공부하는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이웃에 위치한 Lutheran School of Theology라는 학교를 갔다가 시카고 인근의 에반스톤이라는 도시에 위치한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대한 공고문 앞에 한참을 서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컨퍼런스의 제목은 단 한단어 '루터'였다. 물론 그 밑에 여러 주제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미국의 종합대학의 인문학 컨퍼런스의 제목이 그저 '루터'라는 것은 현상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것으로 느껴졌다. 첫째로, '루터'라는 이름만으로 몇일간의 컨퍼런스를 개최할 정도로 '루터'와 현시대의 상관성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 지식들이나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학회는 노스웨스턴 종교학과가 중심이 되어 이끄는 것이었지만 노스웨스턴의 국제규모의 학회중 하나로 개최되는 것이었기에 단순한 종교적 관심을 넘어서는 여러 이슈들을 다루고 있었다.

    왜 신학에 이리도 관심이 생긴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원인중 하나로 들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와 리버럴리즘이 역사의 종언, 즉 더이상 진보할 수 없는 인류의 완성이라는 후쿠야마의 사자후가 완전한 구라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를 공언하고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 그 순간에, 세계는 전쟁과 테러, 기아와 경제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마치 911 테러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을때 안보국 국장이 나와서 말한 "Sorry, we failed you." (죄송합니다. 다 우리 잘못입니다.-의역-) 라고 말한것 처럼 이제 세계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계의 강대국에 왜 이시대가 이렇게 되었는가 질문하고 있다.

    만약에 현재의 자유시장경제체제 안에서 지금의 세계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면 신학은 편안하게 뒷방에 앉아서 신앙서적이나 뒤적이면 되겠다. 그렇지 않다면 신학은 새롭게 대두되는 여러 대안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어려더라도 현대 사회에 대한 윤리적 가치정도는 구축해야한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역사의 흐름을 본다면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기독교 담론이 정치화되거나 교회 밖에서 구체화 되었을때 얼마나 폭력적이고 몰상식할수 있는지는 가깝게는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일으킨 소위 이라크 성전이나 멀게는 십자군 정쟁등에서 확실히 나타난 사실이다. 영국의 식민정책과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의 사상적 뒷받침이 된 것도 성서와 신학이었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의 뿌리가 실은 성서에도 나타나는 반유대주의였다. 과연 성서안에서 우리가 다른 종교나 사상과 차별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비전을 생산할 수 있을까? 필자는 바울신학에 대한 재고를 통해서 신학이 생산할 수 있는 비전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고 그 여정을 이 글의 독자들과 함께 할 것이다.

    지금까지 앞으로 떠날 여행을 목적을 생각해 보았다. 목적지는 미래를 위한 비전이고, 그 과정중에 우리는 바울의 서신들과 1970년대부터의 바울신학의 한 귀퉁이에서 점점 크게 울려퍼지고 있는 목소리들을 살펴볼 것이다. 필자는 바울 서신에서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위기에 대한 상당히 적절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감히 덧붙이고 싶다.

 

스탠달이 바울신학에 미친 영향

    모든것에는 시작이 있다. 나는 바울신학 여정의 시작을 크리스턴 스탠달 (Krister Stendahl)이라는 학자로 시작하고 싶다. 하바드 대학의 교수로서 스웨디쉬 교단의 감독으로 깊은 신학적 통찰을 가졌던 그는 자신의 이전에 있었던 근대 바울신학의 흐름에 방점을 찍고, 새로운 바울이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젖었던 사람이었다. 

    한 평범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 한 사람이 접근하여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불쌍한듯 평범한 이에게 말한다. "형제님 당신은 죄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죄인임이 틀림없으니까.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심판에 잔뜩 겁을 먹은 이에게 전도자는 말한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을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해 이미 열어놓으셨습니다...." 이제 한순간에 죄인이 되었다가 살아난 평범한 이는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필자는 이러한 구원론에 대해 통채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직 예수만이 구원이라면 그 이전에 살았던 기독교를 몰랐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복잡한 답안이 주어지기 시작한다. 연옥이라는 둥.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한다는 둥. 하지만 만약에 위의 이러한 구원에 대한 말들이 바울에 대한 오해라면?

    스탠달은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것에 조금이나마 접근하기 위해서는 바울서신을 읽기전에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론 그에게는 서구인이었지만) 하나의 거대한 전제를 벗겨버릴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바로 "죄의식"이다. 필자가 고등학교때 읽었던 바울에 대한 책중의 한 표현이 기억난다. "10할 타자는 없다.” 무결점의 야구선수가 없듯이 죄없는 인간은 없다. 인간은 하나님앞에 모두 죄인이다. 오직 우리의 죄인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율법으로 구원받을 것이 라고,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은 다 틀렸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우리는 의인으로 하나님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면,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은 없으며, 교회 밖의 인간은 필연적으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거대한 하나의 구원론이 기반하고 있는 것이 바울의 서신이다. 여기에 "바울은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를 예수를 믿는 종교로 바꾸어 버렸다!"고 비판한 하르낙의 불만이 있고, 니체의 비판이 있다.

    인간은 죄인이며 바울은 “어떻게 죄를 용서받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바울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거스틴과 루터를 읽고 있는 것이라고 스탠달은 말한다. 최초의 서구적인간인 어거스틴은 자신의 영적 기록(고백록)을 기독교적 시각에서 저술한 최초의 서구인이자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어거스틴은 자신의 질문 “대체 어떠한 근거로 한 인간이 구원을 얻는가?”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의 이신칭의를 인간 개인의 죄의식에 대한 해답으로 해석했다.[각주:1] 사실 어거스틴 이전의 기독교 기록들에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한 언급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 믿기만 하면 되는가? 믿음은 행위라는 것을 수반하지 않는가? 어거스틴 이전에 이러한 질문에 관심을 기울인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스탠달은 그 이유가 초대 교회시절에는 바울의 의미를 잘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바울에게 칭의의 문제는 모든 인간 개개인의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열린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바울의 의견이었음을 이해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탠달은 바울의 서신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터나 어거스틴의 콘텍스트에서 이해된 바울이 아니라 바울이 살았던 콘텍스트에서 바울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거스틴과 루터에게 해결해야할 문제는 인간 개인의 죄와 구원의 문제였다면 바울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방인 선교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정작 바울이 말하였던 율법을 행함에 대한 비판은 유대교의 할례와 음식법등의 문제였지 인간 개인의 노력을 통한 구원에 대한 존재론적 비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각주:2]

    유대인들이 거절하고 로마인들이 십자가의 형틀에 죽여버린 예수가 부활하여 자신이 메시아임을 확증하였음을 믿은 바울. 그가 고민했던 것은 과연 이 부활한 메시아의 의미가 당시의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였다. 예수를 거절하였으니 유대인들은 심판받을 것인가? 로마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으니 심판받을 것인가? 유대교를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오랫동안 기독교는 하나님이 유대인을 버리고 이방인들중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구원을 주실것이라고 바울이 믿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질문들이 바울이 고민했던 것이고, 바울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 것이 그의 삶이자 저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나 스탠달은 개신교 핵심 교리의 뿌리인 로마서의 핵심은 3-5장이나 6장의 구원론이 아니라 9-11장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유대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바울의 생각이고, 미래에 대한 바울의 신앙을 드러낸 9-11장이 로마서를 이해하는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선교사인 바울에게 당시 메시아 공동체와 유대 회당의 관계는 중요했는데, 9-11장에서 바울은 결국 이 두공동체가 하나님의 계획속에 함께 공존할 것이라고 말한다. 놀라운 것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것인데 스탠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일때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때가 되면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받는다고 말할 뿐이다.”[각주:3]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정의가 아브라함의 약속에서 부터 계속 유대백성과 함께 했고, 이제 이방세계로 메시아 예수를 통해 열려졌고 그 사건은 단순히 인간 개인의 의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기에 이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고 선물이였던 것이다.

    스탠달은 바울신학의 새로운 해석을 위해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의 기준을 제시했고, 이는 현재까지 학자들에게는 논쟁의 이슈로 또한 후학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개종이라기보다는 부름 (Call rather than Conversion)
    사도행전의 바울의 체험은 개종사건이라기 보다는 이방인 사도로의 부름받음이다. 내러티브의 구조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을 부르는 사건들과 비슷하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면서도 유대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는다. 바울의 이름이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사울의 이름이 헬라지방에서 바울로 발음되는 예는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즉 사울에서 바울로의 이름의 변화는 종교적 정체성의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바울은 유대교전통의 선진자였고 그의 책무는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도래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이를 거절하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거절하지 않고 구원의 약속을 이룰것이다.)

    용서라기보다는 의인됨 (Justification rather than Forgiveness)
    불트만의 유명한 명제인 ‘신학은 인간학’은 적어도 바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흔히 의인됨과 용서받음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놀랍게도 바울서신에서 용서라는 단어는 단 한번 (롬 4:7)에서 발견되며 이또한 시편 32편의 인용이다. 용서라는 것은 용서받을 것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이 용서받아야할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언뜻 쉬운 질문인듯 하지만 실상 텍스트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말했듯이 ‘나’라고 표현되는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행한다. 그러한 자신을 보는것이 절박하고 괴롭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를 행하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안의 죄이다. (롬 7:20) 바울이 인간을 상황이 죄아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용서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다. 전통적으로 메시아의 도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의를 쟁취하거나 세상이 완전히 타락했을때 이루어진다고 묵시전통에 서술되어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분노가 예수 그리스도의 드러나심과 함께 시작됨을 말했는데 의인됨은 메시아에 대해 충성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용서받음의 문제가 아니다. 바울의 죄악된 세상을 말할때 그는 세상의 만연한 죄악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지 용서받아야할 개인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닌것이다.

    죄라기보다는 약함 (Weakness rather than Sin)
    바울에게 죄가 큰 문제가 아니었다면 과연 왜 바울은 그의 많은 서술에서 자신의 괴로움과 부족함을 토로하며 힘들어 했을까? 서신들을 살펴보면 사도로서 바울은 자신의 과업을 충실히 행하지 못했다고 생각될때 즉,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기 힘들때 자신의 부족함을 토로했다. 결국 죄에 대해 괴로워하기 보다는 자신의 약함을 고민했던 것이고 그 약함은 자신의 사역속에서 오는 여러 고난들이지 개인적인 차원의 성찰이나 영적인 죄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통합보다는 사랑 (Love rather than Integrity)
    바울의 칭의가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맞춤형 계획이라고 해서 바울이 구원의 문제를 타인의 입맛에 맞게 생각했다면 오해이다. 여러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바울이 노력했을 지라도 바울에게 믿음보다 소망보다 사랑이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사랑이 바울이 생각하는 기독교신앙의 정수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스탠달은 이때의 사랑이라는 것은 세금을 내는 행위와 비슷한 것이라고 보았다. 즉, 공공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이지만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행위가 바로 사랑인 것이다. (세금으로 정부가 뭘할지는 일단 예외로 해두자.)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의 내용이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공공을 위한 삶, 그것을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자신이 그 행위를 하는지도 잘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는 감정도, 인식도, 판단과도 다른 하나의 삶의 방식이며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충성, 즉 신앙의 결정체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모든 타인을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보편적이라기보다는 독특한 (Unique rather than Universal)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바울의 공동체 이전에 수많은 이방인 공동체들이 있었다. 바울은 로마에 가보기도 전에 로마의 교회들에 편지를 보냈다. 바울의 생각이 당시 교회의 보편적인 생각이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여러 다른 생각을 가진 독특한 공동체들이 있었을 것이다.


    짧게나마 스탠달의 다섯가지 기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스탠달의 기준들은 바울신학에 대한 이전까지의 연구들에 괄호를 치고 바울의 선교적 상황에서 바울서신을 새롭게 읽을 것을 학자들에게 종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바울을 연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후대의 학자들은 New Perspective라고 명명하였다. 다음 웹진에서는 소위 뉴페스팩시브라 불리우는 연구에 학문적 엄밀성을 부여한 E. P. Sanders라는 학자를 소개할 계획이다. 샌더스나 제임스 던, N. T. 라이트, 나노스, 캠밸, 엘리엇등의 학자들이 이름이 이미 익숙한 독자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웹진의 글들을 통해서 개괄적으로 새관점주의를 정리하기 보다는 그들의 독특성을 살펴보고 나름의 비판적 해체와 수용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바울에 관심있는 분들의 열독을 기대해본다.

ⓒ 웹진 <제3시대>

 

  1. Krister Stendahl, Paul Among Jews and Gentiles (Fortress Press, 1976), 16. [본문으로]
  2. 스탠달은 소위 어거스틴과 루터의 introspective conscience(자아 성찰적 의식) 라는 것이 전형적인 서구적 생각이고 이는 바울과는 상관이 없는 인간관이라고 보았다. Ibid., 18. [본문으로]
  3. 로마서 20:25-26참조. Ibid., 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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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3.07.04 21: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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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2. 한수현
    2013.07.06 08: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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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번 글을 겹쳐서 씀으로 해서 여러 오타가 있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이상철목사님 격려 감사합니다....
  3. 꾸도리
    2016.10.19 07: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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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러니깐 스탠달의 제안(?!)에 기본적으로 동조하며 새로운 바울 읽기를 시도한 이들이 마지막 부분에 열거해주신 사람들이고, 이들을 묶어서 "새관점학파"로 부르는건가요?^-^
    혹 연재 가운데 논의가 허락하신다면 왜 요즘 많은 철학자들(예컨대, 아감벤이나 지젝)이 바울에 관심을 갖는지도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한스
      2016.10.28 17: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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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관점 학파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새관점에 관한 글, 샌더스와 제임스 던에 다루었습니다.

      철학과의 연결은 스티븐 무어에 대한 웹진을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견딤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

 

주님이 명령을 내립니다. 천사장이 그 명을 받들어 소리를 내지릅니다. 그러자 좌우의 나팔수들이 거대한 나팔을 힘껏 불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울리는 그 소리는 순식간에 세상을 가득 메웁니다. 그러자 죽은 이들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이들도 하늘로 이끌려 올라갑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좌우로 길을 만듭니다. 주님이 그리로 오신 것입니다. 하여 그들은 거기에서 주님을 영접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는 마지막 때의 부활이 이렇게 청각적이기도 하고 시각적이기도 한, 한 편의 판타지 영화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묘사는 바울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바울스럽지 않은 바울의 묘사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시청각적 부활 판타지 속의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의 제2의 도시가 된 데살로니가는 본래 마케도니아의 유명한 항구도시였습니다. 기원전 4세기, 세계의 대제국이 된 마케도니아의 무수한 폴리스들 간의 국제교역으로 이 도시는 국제무역항으로 발돋움합니다. 해서 이 도시에는 여러 인종이 만나고 다양한 물품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다양성의 도시가 됩니다. 다인종이 드나드는 도시에는 으레 그들의 신전들이 세워지기 마련입니다. 또 그이들의 종교적 결사체들도 세워졌지요. 그중에는 이스라엘인들의 회당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당들 가운데 어떤 곳은 더 유대적이었고 다른 어떤 곳은 더 사마리아적이었지요.

그리고 기원전 2세기 중반에는 로마에 병합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도시를 마케도니아의 수도로 지정합니다. 그것은 이 도시가 이 지역 대도시들 가운데 로마에 가장 충성스런 도시였다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1~9절에 따르면 유대적 성향이 더 강했던 한 회당에서 바울이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바울은 시당국에 고소당하게 됩니다. 회당 당국은 시당국과 로마제국에 충성스러웠으며, 시당국은 로마에 적대적인 행동을 할 것으로 보이는 바울과 그의 추종자들을 기소하고자 하였습니다. 다행히 바울 일행은 도시를 빠져나와 피신했지만, 바울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당국에 의해 끌려가 고초를 당했습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전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 텍스트에서도 ‘유대인들’이 바울과 그의 추종자들을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동족에게서 고통을 받았다’는 표현(2,14)을 보면 바울과 그의 추종자들도 이스라엘인임은 의심의 여지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집단은 이방인들에게도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그들도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한데 ‘유대인들’은 그런 주장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저들이 바울집단을 괴롭히고 당국에 고소한 이유였습니다.

바울과 그의 측근들은 발 빠르게 그 도시를 빠져나와 남쪽의 오래된 도시 아테네에 당도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동료들은 체포되어 고문을 모진 당하였고 일부는 죽기까지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그런 정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해서 다시 데살로니가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갈 수 없었습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바울의 측근인 디모데가 그 도시로 잠입해 들어갔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의 협박과 회유에 고통당하고 있던 예수파 공동체가 전향할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디모데로부터 들은 정보는 공동체는 굳건히 믿음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마도 디모데로부터 공동체의 동요에 관해 전해 들었던 모양입니다. 죽은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산자들은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새겨졌습니다. 하여 그이들은 그 참혹함 속에서 기도합니다. ‘도대체 다시 오신다던 주님은 언제 오시나요!’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데살로니가전서」를 쓰게 했던 이유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죽은 자들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알 수 없다고. 사람들이 ‘평안과 안전’을 되뇔 바로 그때라고 말입니다.

이런 답변을 이야기하는 바울의 묘사는, 앞서 보았듯이,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청각적인 판타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묘사는 하나의 패러디라는 점입니다.

과거 기원전 2세기 중반, 카이사르가 마케도니아를 점령하고 데살로니가를 이 지역의 수도로 삼은 이후 이곳은 이 지방에서 가장 열렬히 로마를 지지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여 로마 황제가 다시 돌아올 때를 열망하면서 판타지처럼 묘사된 대중설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주’(퀴리오스)가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복음’(유앙겔리온)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용어는 황제의 등극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이가 도시로 되돌아오는 것을 ‘파루시아’라고 불렀지요. 사람들은 도시 밖으로 황제를 마중 나가 그이를 ‘영접’(아판테시스)합니다. 그때 나팔이 울려 퍼지고, 영접하는 도시 주민들은 길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황제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런 패러디를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 이야기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도시들은 도시로 들어오는 가도에 길을 따라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황제에 의해, 황제의 이름으로 죽임당한 이들의 시신들도 널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패러디는 하나의 음울한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황제에 의해 죽임당한 이들이 황제를 영접한다는...

한데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묘사합니다. 음울함은 다시 축제장면으로 역전됩니다.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돌아올 때에 황제로 인해 죽임당한 이들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구원은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신체훼손형벌로 처형된 이들의 몸이 회복되는 모습으로 이루어집니다. 몸의 부활의 상상은 바로 이런 갈가리 찢긴 육체가 깨끗하게 회복된다는 바람과 맞물려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주지할 것이 있습니다. 그때, 그 재림의 때를 바울은 사람들이 ‘평안! 안전!’(에이레네 카이 아스팔레이아)이라고 되뇔 바로 그때라고 합니다.

이것은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담은 선전 구호였습니다. 이 말이 도시 곳곳을 울려 퍼지면서 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평화를 선사하는 이, 안전을 주는 이로 갈망하게 됩니다. 이 구호와 함께 사람들은 제국의 질서 속에 확고히 포섭되게 되는 것입니다. 한데 바로 그런 ‘평안, 안전’의 구호가 울려 퍼지는 바로 그 순간, 주의 재림이 있습니다. 그때는 황제로 인해 처철하게 난도질당한 이들의 육체가 되살아나고, 그로 인해 갖은 핍박을 받고 있는 이들이 하늘에 오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울은 바로 이 날을 이렇게 강변합니다. 그날, 황제에게 회유당하지 않고 견디는 이에게는 황제가 주는 안전, 평안과는 다른 안전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로마제국이 아닌 지구화된 자본의 제국이 세계의 평안과 안전을 준다는 메아리가 널리 울려 퍼지는 대도시 서울에서 「데살로니가전서」를 읽고 있습니다. 서울은 지구적 자본의 한 복판인 뉴욕, 런던, 도쿄, 그리고 프랑크푸르트가 아닌, 주변부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그 대도시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지구적 제국의 논리가 판을 치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자본의 질서에 거스르는 이들이 무수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본의 추방령에 내몰려 스스로를 살해한 이, 몸이 불이 되어 잿더미가 된 이, 공장의 혹독한 질서 속에서 살해당한 이 등등. 그런 주검들이 도시 가도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고, 그 죽음을 기리며 메시아를 갈망하는 이들이 혹독한 자본의 질서 속에서 겨우겨우 숨 쉬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지구적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아니 그 신적 존재를 영접하기 위해 사람들의 안전과 평안을 희생시키며 제도를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에는 평안과 안전이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떠벌렸습니다. 지구제국의 핵심 도시들보다도 더 열렬히 그 지본의 신봉자가 되고 그것을 신격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해서 우리는 갈망합니다. 그 끝이 어디에 있나요?,라고. 바울의 「데살로니가전서」는 바로 이런 우리에게 견딤의 지혜를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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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독교인은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는가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얼마 전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나, 제목이 무척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 제목의 의미를 풀이해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겠다. 이 질문을 살짝 바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도 던져보면 어떨까? 왜 기독교인들은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는가, 라고.

성폭력 혐의를 받고 삼일교회를 사직했던 전병욱 목사가 최근 홍대새교회를 개척했다. 사임한 지 17개월 만이다. 줄곧 목회만 해왔고 나름의 목회 ‘성공신화’를 갖고 있던 이였으니, 그가 목사로 교회에 복귀하는 것은 사실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전병욱 목사의 교회개척 소식이 아니라, 그 교회에 700여명의 신도가 모여들었으며, 새벽기도마다 200명가량의 청년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언론보도였다.

피해자들의 신빙성 있는 진술이 다수 공개됐고, 언론을 통해 사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난 상황에서 전병욱 목사를 여전히 추종하는 현상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진실하게 사죄한 적이 없는데도, 그가 번듯하게 목회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전병욱 목사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목회자들의 부패・부도덕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다면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적어도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목회자의 위험성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없지 않을 텐데도, 지탄을 받아 마땅한 많은 목회자들이 여전히 교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목회를 하고 있다. 부도덕한 목회자나 지도자가 자신의 신앙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자기 교회의 목회자, 자신이 속한 기독교 단체의 지도자는 그런 사람일 리 없다고 믿거나, 너무 쉽게 그를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전병욱 목사의 교회 개척 소식에 교계가 발칵 뒤집혀 있을 때, 한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종교 집단에서 벌어지는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사례를 두 주 연속 보도했다. 한 여성은 미대를 졸업하고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기까지 했던 엘리트인데도 ‘선녀님’의 비상식적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폭력을 감내하거나 폭력의 가해자가 됐다. 이 피해자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지 않았다. 또한 강압적 상황에 놓여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종교 지도자의 터무니없는 명령을 거역하기는커녕 그에게 한 올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이 방송은 이러한 행동의 심리적 기반을 분석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도 했는데, 이 실험의 모형이 된 것은 1963년 미국에서 스탠리 밀그램이라는 학자가 수행했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다. 밀그램은 실험의 진짜 목적을 숨기고 ‘기억과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전문직 남녀 중 실험 참여자를 모집했다. 실험 참여자는 창문 너머에 있는 학습자(연기자)가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볼트씩 전압을 올리며 전기충격을 가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참여자가 상당히 높은 전압에서야 충격을 가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아예 최고 전압까지 올리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옆에 있는 과학자가 ‘치명적인 신경 손상은 없다, 실험을 계속하라’고 보증해주었기 때문이다. 권위자의 명령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하는 사회적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높은 전기충격을 가한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여자들이 누르는 단추의 최고 전압은 450볼트였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전압이다. 실험이 끝나고 실험의 배경을 설명한 후 최고 전압의 단추를 누른 사람들에게 왜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는지 물었을 때, 사회복지사는 “이런 교육법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전기충격으로 학습능력이 향상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간호원은 “평소 의사에게 처방이 맞는지 세 번씩 물어보기 때문에(의사가 괜찮다고 하면 자신은 거스를 수 없으니까)”, 수질검사관은 “난 내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했을 뿐(내게 책임은 없다)”이라고 답했다. 정리하면, 권위자의 명령이 자신의 윤리적 신념과 어긋나더라도 그 행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책감을 감면해주는 나름의 설명체계를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는 ‘설명의 언어’가 권위자의 부당한 명령을 분석하고 고발하기보다는, 권위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아를 타인과 자기 자신의 윤리적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주는 역할을 하기 쉬움을 보여준다.

요약하면, ‘권위자의 존재감’이나 ‘죄책감을 덜어주는 설명체계’가 개인들이 비윤리적 결과를 초래하는 명령에 순응하게 만드는 강한 요인들이다. 그리고 이 두 요인의 부적절한 조합은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차원, 체제 차원의 ‘악’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교회가 당연시하는 ‘목회자의 권위’는 교회 밖에서는 ‘몰상식’인 것들이 교회 안에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을 교인들이 거부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회개’를 개인의 고백적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신학은 어떠한 잘못도 하느님께 고하기만 하면 내가 피해를 준 타인과는 아무 관계없이 마술처럼 용서받게 된다고 믿게 만들고, 잘못된 교회 관행과 목회자의 부도덕함에 대해서도 눈감게 만들 수 있다. <밀양>에 나오는 살인범처럼, 전능한 하느님이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피해자(당사자)의 용서 없이도 자신은 죄 사함 받았다고 믿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믿는 것이 좋은 신앙이라고 보증해주는 교회의 ‘권위자’들이야말로 전병욱의 성폭력을 조장하고, 수많은 청년들이 그 사건에 대해 판단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든 원인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권위자의 존재감’이나 ‘죄책감을 덜어주는 설명체계’만으로는 전병욱 목사 추종 현상이나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는 여러 사례들에서 발견되는 ‘신자들의 자발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마지못해 이들 목회자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고 열광적으로 그들을 지지하고 신뢰한다. 애초에 자신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기독교인들은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면서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죄책감을 경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도 없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들 신자들의 자발성 안에는 일반적 상식에 따른 윤리적 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겠다. 이런 자발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병욱 목사를 추종하며 교회에 몰려가는 청년들,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는 신자들은 밀그램의 실험에서처럼 도덕성이 의심받지 않는 강한 권위자를 갖고 있지는 않다. 밀그램의 실험 참가자들은 명령이 내려진 이후의 상황에서 윤리적 판단을 할 것인가(명령 거부), 아니면 윤리적 판단 자체를 중지할 것인가 선택해야 했다면, ‘부도덕한 목회자 추종’의 경우는 명령을 내리는 자의 권위 자체가 심하게 손상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병욱 목사나 부도덕한 목회자에게는 그들이 상실한 도덕적 권위를 충분히 보충해주고도 남는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마 그들 목회자들 중에는 상대를 쉽게 설득할 수 있는 언변과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 조성 능력 등 소위 ‘카리스마’라고 불리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카리스마의 진정한 의미는 상대의 ‘설득됨’이 있을 때만 획득될 수 있다. 목회자들의 어떤 뛰어난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동의하고 감동 받는 신자들의 내면에 있는 그 ‘무엇’ 역시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 목회자와 신자들이 어떻게 상호 결속을 이루고 ‘외부’의 윤리적 개입을 거부하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일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아이디어로 ‘하나 됨’을 추구하는 교회 안의 인간관계를 떠올려볼 수 있다. 한국의 특수한 인간관계 이해를 기반으로 한국적 심리치료 방법을 고민한 학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한국인들이 관계 형성의 목표로 ‘심정이 통하는 관계’를 설정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이때 심정이 통하는 관계란 자신과 상대가 정서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하나 됨’의 느낌을 갖는 관계를 말한다. 즉, 상대와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관계를 ‘진짜 관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대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우리’ 관계를 재확인한다. 사실, 이 주장은 그다지 복잡한 주장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수행하는 관계맺기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진짜 관계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관계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이러한 관계맺기 방식은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촉매제로 작용해 매우 증폭된 형태로 나타난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고민이나 상처도 교회 안에서는 그 대화 상대를 찾기 쉽다. 그리고 서로 기도제목을 공유하는 문화나 많은 신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통성으로 자신의 상처를 울부짖으며 고백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은, 개인에게 심정을 토로할 때만큼은 아닐지라도, 익명의 교회 구성원들이 자신과 심정을 공유하는 ‘우리’ 관계라는 느낌이 들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우리’라는 신앙적 관계가 ‘우리’의 윤리적 우위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라는 관계를 지속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목적이 되며, 이 관계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목소리는 배제되기 쉽다. 그것이 아무리 옳은 소리여도 말이다. 때문에 ‘우리’에 대한 외부의 비판은 우리를 공격하는 목소리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러한 관계가 낳는 또 다른 심각한 부작용 중의 하나는 ‘우리’의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 안에 다양한 발언기회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누군가 다른 목소리를 낼 때 그가 더욱 힘내서 말할 수 있도록, 다른 구성원들의 목소리만큼 명확하게 들릴 수 있도록 그에게 물리적・심리적・제도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 ‘우리’는 결국 그 다른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혐의가 삼일교회에서 처음 불거졌을 때도 당회가 택했던 솜방망이 처벌은 전병욱 목사의 권위는 보전해줬을지 몰라도 피해자였던 공동체 구성원들의 울부짖음은 평가절하한 것이며, 결국 이들을 교회 안에서 침묵하는 익명으로만 남게 만든 것이다. 이는 하나가 된다는(또는 교회를 지킨다는) 미명 하에 공동체 안에 있는 타자 자체를 소멸시키고, 그래서 결국 타자와의 거리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 전형적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목회자의 권위, ‘회개’라는 신앙 양식, 그리고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문화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버려야 할 것은 없다. 다만 이 세 가지가 불의한 방식으로 조합을 이루고 있는 것을 끊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의 불의한 결합이 결국 외부의 비판에 대해 귀를 열지 않는 폐쇄적 신앙을 만든 것이라는 혐의가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성서에서 보여준 한 사례야말로 다소 진부하지만 그래도 가장 근본적인 대안을 우리가 상상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하고 싶다.

갈라디아서 5:18에서 바울은 ‘육체의 기회로서의 자유’와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종이 됨’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 종노릇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진정 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말하는 사랑은 막연히 모두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전반부에서 나온 ‘유대주의자들’로 인한 교회의 위기 상황에 대해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된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전반부에는 율법과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주의자들로 인해 초래된 분열과 위기에 대해 전하고 있다. 율법과 할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갈라디아 교회를 압도하고 있을 때, 이들이 맞았던 위기는 단순히 신앙논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질성의 회당질서에서 벗어난 사람들, 유대적 정체성을 추종할 사회・경제적 자원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밀어내는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때문에 바울이 ‘사랑하라’고 했을 때 염두에 둔 것은 이들 경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밀려나더라도 갈라디아 교회 자체는 남겠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곧 갈라디아 신앙 공동체가 ‘육체의 기회’를 따르지 않는 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종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때 ‘서로’에는 유대 전통을 따를 수 없는 타자가 포함된다. 이로써 공동체 안의 각 주체는 자신과 상대의 ‘거리’를, 주체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이때 거리는 각자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리가 아니라 서로가 섬기는 관계로 묶여있음을 의미하는 거리가 된다.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라는 바울의 권면에서 우리는 서로의 거리를 삭제하지 않고도 공존하는 ‘우리’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 이 글은 "왜 홍대새교회로 청년들이 몰리나?"라는 제목으로 <뉴스앤조이>에 실렸던 글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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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유대인이 아닌 이유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반나절의 여행이 주는 생각의 깊이는 많아야 반나절 정도입니다. 정보는 빈약하고 본 것에 대한 직관적 감정에 지배당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선입관이 미치는 감정에 대한 지배력은 가히 위력적입니다. 내게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반나절이 그랬습니다.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한 철학도의 안내를 받아 시내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유대인 묘지에 방문한 것은 그의 안내 코스의 끝자락에서였지요. 그는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의 사택도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한데 흔적도 남지 않은 채 얘깃거리만 남은 회당터를 거쳐 당도한 꽤 큰 유대인 묘지 앞에서 급격하게 냉소적으로 돌변해버린 나의 눈치를 보던 일행은 그날 관광을 거기서 마치기로 했지요. 일행에게 미안했지만, 그 순간 치밀어 오르는 심통을 더는 감추지 못했습니다.
 
묘소라기보다는 그냥 담으로 둘러쳐 있는 큰 공터라고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흠집투성이의 묘석들이 담 안쪽으로 옮겨져 안치된 듯한 공간이고, 별다른 기념비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벽 바깥으로 같은 크기로 검은 대리석 비슷한 벽돌이 가로 다섯줄로 수도 없이 박혀 있었지요. 거기에는 죽임당한 이 도시 출신 유대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외에 그가 죽임당한 곳, 죽은 날짜 등의 정보도 있었고요.

한참을 그 돌들만 쳐다보았습니다. 수많은 이름들, 날짜들, 수용소들. 수백 개쯤 읽으니 점점 기계가 됩니다. 생각은 비워졌고 그냥 알파벳 발음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 이름들이, 그저 이름만 읽을 수 있을 뿐이 그 이름들이, 어느 시간에 어느 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조차 없는 그 이름뿐인 것들이, 이젠 이름조차도 지워진 채 읽혀지고 있었습니다.

안네의 아버지처럼 은행가였을 수도 있고, 우리를 안내하는 철학도처럼 학생일 수도 있고, 노동자일지도 모르고, 공산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자유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나처럼 빵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키가 큰 사람일지도 모르고 뚱뚱한 사람일 수도 있는, ...., 모든 상상 앞에 열려 있는 그 이름들이, 어느 순간 내게는 아무런 상상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머리에 박혀버렸습니다.

비위가 뒤틀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내가 상상하는 대로 그 묘소가 조성되었을 거라고 단정하면서 하나의 음모론을 상상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고 그날 모두의 관광을 망쳐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오늘도 여러분과 나의 생트집잡기를 두고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이 누구의 음모는 아니겠지만 분명 우리를 환각에 사로잡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역사의 음모’라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의 주인공들은 어느 날 나치에 의해 ‘유대인’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별’ 문양의 기호로 표상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들은 독일인이었겠지요. 폴란드에서 일거리를 찾아 온 이주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남편의 나라로 이주한 이태리 여성일지도 모릅니다. 또 그이는 부르주아였을 수도 있고, 노동자였을 수도 있고, 학생일 수도 있었겠지요. 그들은 모두 각각의 모습으로 각각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정부에 의해 유대인이 되었고, 수용소에 구금되어 죽임당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후 이스라엘 정부와 세계의 유대인 협의체들에 의해 숭고한 인종주의의 희생자들로 규정되었습니다. 하여 그들은 하나의 범주, 곧 유대인이 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을 하나의 부류로 묶어놓고 그들을 숭고한 희생자들로 규정하면, 그 숭고한 자들과 동일한 범주에 엮인 산 사람들도 그 숭고함을 덧입게 됩니다. 죽임당한 자들과 산자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역사가 탄생하고 그 역사는 숭고함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 시오니즘이 그런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희생을 특화시킵니다. 그것은 자기 역사에 대한 특권화이고 다른 역사에 대한 무시와 멸시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들이 국가를 세운 땅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2천년의 역사를 무시하고 그들을 학살할 수 있었던 심성의 배경인 것이지요.

이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한 토론회에서 바울에 관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날 발제자의 주장에 대해 내가 시비를 걸었던 소재는 ‘바울이 유대인이라는 주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바울 연구사에서 중요한 발견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 바울이 아니라 유대인 바울이라는 것, 거기에서 바울에 관한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평소 주장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교를 창시한 이라는 낡은 주장은 현대 바울 학계에서는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낡은 관점이지요. 그런 점에서 바울이 수없이 말한 ‘교회’라는 표현은 후대에 그리스도교의 모임 혹은 장소를 지칭하는 용어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개혁운동의 한 지도자였지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데 나는 오늘날 바울 역사학계에서 일반화된 이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울 당대에 지중해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를 유대교라고 지칭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지역 도시들에서 이스라엘인들의 종교는 예루살렘 종교와 결코 동일한 범주에 묶였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들 대다수는 예루살렘 성전뿐 아니라 사마리아의 성전도 존경했고, 그 역사도 존중했습니다. 또한 지중해 지역의 회당들 각각 또한 매우 다양했습니다. 회당들은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정치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통합되어 있지 않았고,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했고, 단지 서로를 존중하며 야훼의 이름으로 네트워크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더욱이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의 층위로 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대중의 벽화 같은 것을 보면, 지중해 지역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지역의 종교와 문화에 상당히 동화되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대중들은 결코 야훼 순결주의에 물들어 있지 않았고, 다분히 혼합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야훼신앙은 이렇게 다층적이었습니다. 바울이 접한 지중해 지역의 이스라엘인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가 골방에서 세상을 말하는 사변가가 아니라 사람들가 몸과 마음을 마주하며 활동한 목회자이자 예언자였다면, 그는 이런 다양한 이스라엘 인들의 경험과 신앙과 무관하게 말하고 활동하였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바울은 유대화된 이스라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늘 예루살렘과 자신의 연결고리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대중의 눈높이와 함께 한 실천가였습니다. 더욱이 그의 대중은 주로 회당의 엘리트가 아니라 무지렁이 대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바울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바울은 유대인이다’라는 명제가 알려주는 정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말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바울을 유대인이라는 범주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현대 서양의 주류 학계가 빠져 있는 유대주의적 편견의 산물입니다. 나치의 범죄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그렇게 생각한 것이겠지요. 더구나 유대인 협의체들의 발명된 역사관과 이데올로기적 공모자의 자리에서 신학을 한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바울 자신의 말에 주목해봅니다. 그에게서 예수는 무엇일까요. 그는 분명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는 철저한 유대 순수주의자였습니다. 한데 예수를 알게 된 이후 자신의 순수주의를 포기합니다. 이때 그가 강조한 것은 ‘십자가’입니다. 알다시피 당시 십자가는 로마제국과 연관된 구체적인 표식입니다. 제국에 의해 처형당한 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필경 지중해의 이스라엘인들의 회당에서 십자가에 달린 자, 저 제국의 반대편에 서서 죽임당한 의인을 설파하는 이들이 있었고, 바울도 그런 이들로부터 예수에 관해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분을 받아들였고, 십자가를 자기 신앙의 중심적 가치로 이해했습니다. 한데 그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러한 바울의 성찰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그분에 관한 표식이 아니라 내면으로 들어온 그분의 표식이라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그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이라는 자의식, 유대인이라는 범주의식을 그가 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을 유대인이라는 범주로 묶어서 사고하는 것, 그 범주에서 어떤 삶과 역사를 특권화시키는 것을 포기했다는 애깁니다. 하여 그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제국만이 아니라, 제국에 의해 희생된, 멸망당한 식민 백성인 유대인을 특권화시키는 유대주의적 역사관과도 싸움을 벌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가르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고,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주인과 종을 가르는 일체의 분리주의, 그 분리주의를 정당화하는 범주적 유대주의인 것입니다. 해서 그는 결코 유대인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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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난주
    2011.07.27 00: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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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과 안네의 일기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세계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전파된 책이라는 점. 시오니즘의 욕구가 이미 들통났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책은 여전히 출판되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합리화는 당분간 지속되겠지요. 제 안에서 시도중인 합리화부터 성찰하고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천주교 '바오로의 해'를 맞아 우리신학연구소와 공동기획한 <바울과 현대> 강좌가 7강 중 마지막 2강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 인문사회학과 신학에서 바울을 재발견하고 있는 맥락을 이해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바울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사유하는 것을 목표로 박진우, 한보희, 김학철 세 분의 강사님들과 강의를 진행해왔습니다.

5월 15일(금)에는 마지막 7강을 열린토론회로 기획하고 수강자뿐 아니라 원하는 모든 분들께 무료로 참석하실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강의를 진행한 세 분 강사님이 모두 참석하신 가운데 우리신학연구소의 엄기호 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아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일   시 : 2009년 5월 15일(금) 오후 7시 30분
          ▲ 장   소 : 한백교회당(5호선 서대문역 1,2번 출구 사이 골목 30미터)
          ▲ 참가비 : 무료 (수강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참석 가능합니다.)
          ▲ 토론회 사회 : 엄기호(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 토론회 참여 강사 : 인문사회학 - 박진우, 한보희 / 신학 - 김학철
          ▲ 문   의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02-363-9190 / yminjung@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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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신학아카데미 탈/향 봄학기 개강


2009년 봄을 맞아 신학아카데미 탈/향을 개강합니다.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02-363-9190으로 연락하시거나, yminjung@chol.com으로 수강자 성함/연락처/송금자 이름를 적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수강료를 입금하실 통장은 신한은행 110-233-305565 (예금주 : 김진호)입니다.

*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에 수강신청을 미리 하지 않고 오시는 경우 수강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강좌 하나
 바울과 현대 - 현대 철학과 현대 성서학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사도 바울 탄생 2000년을 기념해 우리신학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바울을 인문사회학과 신학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강좌를 마련하였습니다.

• 장   소 : 한백교회 (5호선 서대문역 1번출구, 우체국 신한은행 사이 골목 50m)
• 수강료 : 6강 6만원 (수강신청 ☎ 02-363-9190,
yminjung@chol.com)
              마지막 7강은 열린 토론회로 따로 참가비를 받지 않습니다.
• 일   정 : 2009년 4월 3일 ~ 5월 15일(매주 금요일) 저녁 7:30~9:30


      - 1강   4.3   박진우 (사도 바울과 현대사상 I : 벤야민, 바디우, 아감벤의 바울 독해)
      - 2강   4.10  박진우 (사도 바울과 현대사상 II : 벤야민, 바디우, 아감벤의 바울 독해)
      - 3강   4.17  한보희 (무신론적 기독교와당파적 보편성- 지젝의 바울 독해)
      - 4강   4.24  김학철 (전장: 1세기 그레코-로만 세계 제국의 ‘복음’과 변두리의 갱신운동)
      - 5강   5.1   김학철 (사도: 바울의 삶과 그의 복음 배경, 내용, 구조)
      - 6강   5.8   김학철 (승전보: 바울의 복음과 ‘다른 복음들’)
      - 7강   5.15  왜 바울인가?(인문학과 신학의 만남) - 열린 토론회

• 강사 소개
   - 박진우 : 커뮤니케이션 사회학 / 파리5대학 사회학 박사
                 조르조 아감벤 저 <호모 사케르> 역자.
   - 한보희 : 연세대 비교문학 강사, 당대비평 편집위원.
                 슬라보예 지젝 저,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역자.
   - 김학철 : 신약학 / 연세대 신학 박사.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신약분야 최우수논문상 수상. (주제 : 사도행전의 바울)

• 미리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는 자료
   - 1강 :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 새물결, 2008
   - 2강 : 조르조 아감벤, <남겨진 시간 :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관한 강의>, 코나투스, 2008
   - 3강 : 슬라보예 지젝, <죽은 신을 위하여: 기독교 비판 및 유물론과 신학의 문제>, 길, 2007
   - 4강 : 슈테게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동연, 2009
   - 5강 : 게리 윌스,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돋을새김, 2007
   - 6강 : 월터 윙크,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강좌 두울
 포스트 예수운동의 사회사 - 역사로 읽는 성서I

지난해 말 출판기념회로 소개해드린 바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를 토대로, 초기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강좌입니다. 역사적 분석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성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교   재 : 에케하르트 슈테게만·볼프강 슈테게만 저,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동연, 2009)
• 장   소 : 한백교회 (5호선 서대문역 1번출구, 우체국 신한은행 사이 골목 50m)
• 수강료 : 8강 8만원 (수강신청 ☎ 02-363-9190,
yminjung@chol.com)
              (이 강좌는 회원강좌이므로 CMS 후원 신규 신청자와 기존 후원자는 무료입니다.)
• 일   정 : 2009년 3월 17일 ~ 5월 19일(매주 화요일) 저녁 7:30~9:30


       첫째 마당      3.17   1세기 지중해 연안의 경제와 사회
       둘째 마당      3.24   팔레스티나에서 유대교의 사회사, 그리고 예수 따름 (1)
         (휴강)        3.31          (휴강)
       셋째 마당      4.7     팔레스티나에서 유대교의 사회사, 그리고 예수 따름 (2)
       넷째 마당      4.14   팔레스티나에서 유대교의 사회사, 그리고 예수 따름 (3)
       다섯째 마당   4.21   로마제국 도시들 안에 있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사회사 (1)
       여섯째 마당   4.28   로마제국 도시들 안에 있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사회사 (2)
         (휴강)         5.5          (휴강)
       일곱째 마당   5.12   로마제국 도시들 안에 있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사회사 (3)
       여덟째 마당   5.19   지중해 세계와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여성의 역할과 사회적 상황
 
• 강 사 : 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당대비평』편지주간, 한백교회 담임목사 역임
                       『예수의 독설』,『반신학의 미소』,『예수역사학』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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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09.03.31 06:0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바울과 21세기 사상가들과의 대화’는 현재 미국내 진보신학 진영 내부에서도 뜨거

    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이슈입니다. 20세기 사상계를 지배했던 일군의 프랑스 철

    학자들 (라깡, 알튀세, 들뢰즈, 레비나스, 데리다 등)이 사라진 지금, 그들의 대를

    잇는 바디유, 아감벤, 네그리, 지젝 등, 21세기 사상가들은 공히 기독교, 특히 바울

    에 주목합니다.

    특별히 미국 사상계 내에서는 Standford 대학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바울에 대한 현

    대사상가들의 해석을 꾸준히 생산해 내며 그 열기와 관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요

    즘 많이 읽히는 바울과 현대사상과 관련한 서적중에서 대표적 저작이라 할 수 있

    는 바디우의 <St. Paul>, 아감벤의 <Time that remains>, 제닝슨의 <Reading

    Derrida/Thinking Paul>등이 모두 Standford 대학 출판사에서 시리즈물로 나온 작

    품들입니다.

    미국내 신학교 중에서는 제가 재학중인 시카고 신학교가 드물게 현대사상과 신학

    의 대화를 정식 학과목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단일 신학교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니

    체, 데리다, 맑스, 푸코, 레비나스, 지젝 등의 사상가들과 신학과의 대화를 도모하

    는 과목들이 개설됩니다.

    시카고 신학교에서 바디우와 아감벤, 지젝등 바울관련 이슈들을 다루는 과목은

    Marx class입니다. 지난 학기 <Reding Derrida/Thingking Paul>의 저자

    Jennings 교수님의 Marx class에 참여했는데 맑스의 저작들과 레닌의 저작들을

    읽고 나서, Post Marx에 관련된 독해를 David Harvey의 <condition of

    postmodernity>, 로쟈 룩셈베르그 <자본축적론>, 알튀세 <맑스를 위하여>, 데리

    다의 <맑스의 유령>, 그리고 바디우, 아감벤, 지젝 순으로 진행했는데, 그때 읽었

    던 책이 바디우의 <St, Paul> 과 아감벤의 <Time that remains>, 그리고

    <theology and Zizek>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바울이 20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유령처럼 부활하여 담론의 중심에 서

    있는가? 작년 맑스세미나의 후반부 주제이기도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20세기 말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이 휘몰아친 이후 일체의 진리가

    상대화된 상황이고, 아울러 사회주의 붕괴 이후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

    료된, 오직 자본의 논리만이 보편적 질서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고 가정할 때, 이러

    한 극단적 상대주의와 극단적 보편주의 속에서 인류가 해방이라는 원칙과 그를 위

    한 혁명을 다시 사유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바람에서 바울에 대한 독해는 다시 시

    작되고 있는 듯합니다. 다시 사건과 주체, 그리고 보편을 이야기 하면서 말입니

    다.


    저도 탈/향 강좌 <바울과 현대>에 참여해 배우고 싶어지는군요.

    나중에 자료 나오면 제게도 한부 보내주십시오.


    Peace


    시카고에서 이상철

2009년 3월 15(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설교
본문: 고린도후서 3:4~6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꽤 오래 전부터 떠도는 이야기이지만, 천국과 지옥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흉악해지다보니 지옥이 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옥으로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급기야는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담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천국측에서는 당연히 보수를 요구하였으나 지옥측은 태연히 버팅기고 있었습니다. 천국측은 도리없이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측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 몰라라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뱃심으로 그렇게 버티는지 천국측이 다그쳐 묻자 지옥측은 세상의 유능한 변호사가 다 자기네 소속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응수했답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특정한 법조인들을 폄훼할 할 의도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 곧 법적 논리가 지니는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이 우스갯소리는 법적 정의와 실체적 진실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꼬집고 있습니다.

심오한 법철학 이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법적 논리가 지니는 결함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 법적 논리는 그 나름의 일관된 논리와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덧붙여짐으로써 완결됩니다. 그 논리는 그것을 주장하는 편에 유리한 조건에 따라 구성되며, 어떤 사건에 관련된 내용들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명문화된 법조문에 의거해 그 시비가 비교적 분명히 가려질 수 있는 단서들을 중심으로 재구성됩니다. 여기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많은 단서들이 명문화된 법조문으로 시비를 가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부차화되거나 아예 사상되는 경우들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법적 소송은 진정한 의미의 실체적 진실보다는 완벽한 논리의 재구성 성패 여하에 그 판결이 좌우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욱이 법적 판결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강자에게는 충분히 배려되는 것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배려되지 않는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사회적 유력인사나 재벌 등이 범죄나 비리를 범했을 때 직접적으로 범죄 사건을 구성하는 요인 말고도 사회적 기여도 등이 폭넓게 감안되어 당사자가 형을 선고 받고도 그 집행을 유예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범죄를 범했을 경우 그 동기나 정황 등이 충분히 헤아려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도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좀도둑질만으로 완전히 인생의 행로가 뒤바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법의 집행이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현실을 말합니다.

법적인 논리 자체가 지니는 근본적인 한계에 덧붙여 그 집행이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면 법이 곧 정의라는 통념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정의를 보증해주는 것도 아니요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주는 것도 아니라면 그 법은 제도적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집행하는 일에 관한 논란이 뜨거운 관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수시로 법질서의 준수를 강조하고 있고, 대법관은 ‘촛불재판’에 지침을 내려 개별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국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보장하기보다는 권력의 안위만을 보장하려는 의도와 직결되어 있는 사태들입니다.

국회에서는 ‘입법전쟁’이라는 이상한 말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어쩌다 법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을까요? 재벌의 언론사 소유를 가능케 하는 언론관계 법안들은 이미 통과되어 버렸고, 이 밖에 국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 및 사생활 보호와 직결되어 있는 집회와 통신 관련법안, 재벌에게 더욱 큰 힘을 실어주는 금산분리 법안, 출자총액 제한 완화 법안, 민생과 직결된 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폐지 법안, 수돗물 민영화 법안, 비정규직 법안 등등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힘있는 이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고 힘없는 서민들을 더욱 옥죌 소지를 안고 있는 법안들입니다. 

법의 집행도, 법을 만드는 일도 온통 힘있는 사람들의 편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법이 곧 정의라는 통념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 주는 사태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질서의 준수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겠습니까? 그것은 끽 소리 말고 하라는 대로 살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의 한 대목을 함께 읽었습니다. 한편으로 율법의 속박을 강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그와 대비되는 믿음의 자유를 역설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린도후서 3:6).

오늘 본문 말씀은 일차적인 맥락이 있습니다. 사도로서 고린도교회 교우들과의 관계를 밝히는 대목에서 이 말씀이 등장합니다. 오늘날에도 추천장 제도가 있지만, 그리스-로마 세계 안에서도 추천장이 널리 통용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와 고린도교회 교우들 사이에 문자로 된 그 어떤 추천장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추천장을 내보여야 하는 관계도, 또는 추천장을 받아 그 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만큼 서로 신뢰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아주 아름다운 언어로 고린도교회 교우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표합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성하는 데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고린도후서 3:3).

여기서 사도 바울은 문자로 기록된 그 어떤 추천장이나 편지가 필요하지 않은 까닭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문자로 기록된 문서를 말하면서 한 걸음 나아가 율법의 조문을 유념하고 있습니다.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이라는 말은 율법과 믿음을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바울의 일관된 논지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따라서 오늘 이 말씀에서 말하는 문자는 율법 조문, 곧 법률 조문을 뜻합니다.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오늘의 현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제도적 폭력 내지는 제도적 테러의 결과입니다. 법 조문에 의거한 폭력이요 테러입니다.
  
사도 바울은 때로 법의 운용과 집행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예컨대 사도 바울이 율법의 완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율법의 긍정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남용을 문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보다 근본적으로 율법의 폐기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의 형식 그 자체, 법의 한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제한적인 의미에서 법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법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하느님의 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법 질서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구원의 희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삶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법의 제약 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떤 모양을 띠는지는 끊임없이 물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우선 지금 당장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결단하고자 할 때 우리의 선택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문자로서 법 조문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제약하고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법 질서를 준수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삶은 제도나 법조문 또는 문자의 격식에 매여 사람을 소홀히 하거나 죽이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 삶입니다. 그 격식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삶이 아니라 그 모든 격식에 앞서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 이어지는 내용의 말미를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고린도후서 3:17~18).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후손이 모세의 율법을 대할 때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서 너울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 너울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비로소 제거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영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함을 얻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역설합니다.

지금 읽은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런 힘에나 내맡겨져 굴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놀라운 영광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 영광에 이르는 삶을 소망하며 진정한 삶의 용기를 얻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 천안살림교회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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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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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준호
    2009.03.29 22:4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목사님 글 잘봤습니다. 은혜가 깔끔하네요^^

    - 부산에서 이준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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