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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봄 회원강좌>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 강의 취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7). 사람들이 희망하는 대로 모든 일이 그렇게 처음에는 보잘 것 없었지만 훗날 번성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때린 놈은 편히 잘 수 없어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고 위로를 받아 왔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은 정반대다. 욥기는 그 부조리한 현실을 문제 삼으며 세계의 현실을 다시 보도록 촉구한다.
성서 가운데 가장 읽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진 욥기의 본문을 따라가며 현실을 부조리를 다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이 강의의 취지다.

• 강사_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외래교수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과 <신학사상> 편집장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뒤집어보는 성서인물><한국기독교와 권력의 길><반전의 희망, 욥> 등이 있다.

• 교재_『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최형묵 지음; 동연, 2009)

일시 / 수강료
- 4월 6일~5월 11일(매주 화) 오후 7:30~9:30  ※ 4월 27일은 휴강
- 수강료: 7만원(1회 수강시 1만5천원)
   이 강좌는 회원강좌이므로 CMS 후원 신규 신청자와 기존 후원자는 무료입니다.
   
교재는 별도/ 연구소에서 2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회원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운영됩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 장소_한백교회당
        (5호선 서대문역 1또는 2번 출구, 신한은행-우체국 사이골목 30미터. 좌측 안병무홀<1층>)

• 신청방법_
   02-363-9190으로 전화하시거나 yminjung@chol.com으로 신청 메일을 보내주세요.

• 강의구성_

날짜

주제

읽어올 부분

4.6

부조리한 현실과 고통의 기원에 관한 물음의 보편성

•욥기 1~2장,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4.13

두 세계의 대결 I: 경건한 지혜와 불경한 지혜

•욥기 3~15장,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4.20

두 세계의 대결 II: 흔들리지 않는 신학과 흔들리는 신학

•욥기 16~31장,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5.4

소멸의 잿더미를 딛고 일어서는 인간

•욥기 32~42:6,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5.11

꼭 보상을 받아야 하나?

•욥기 40:7~17,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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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0.03.08 11: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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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묵 목사님은 제가 중학교 1,2학년때 성경공부 선생님이었습니다. 사실 성경공부 한 기억은 별로 없고 김민기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너희가 이 노래의 가사를 전부 이해하는 순간 득도하게 될 거야"라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래서 저는 중학교 1학년때 김민기의 대부분의 노래들을 익혔습니다. 벌써 그때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득도까지는 아니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어렴풋이 알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그 첫걸음이 알수 없는 김민기의 노래들을 서투른 기타반주에 맞춰 부르던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최형묵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하시는군요. 멀리 미국에 있지만 참여하고 배우고 싶습니다.


<2010 봄 일반강좌>


급진적 자유주의자들_요한복음을 보는 새 지평


• 강의 취지

안병무 선생과 나는 요한복음 속에서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을 보았다. 한데 그들은 예수에게서 지적 향락계층의 자유를 얻어낸 것이 아니라 바닥까지 박탈당한 민중의 억눌림을 읽어냈다. 민중, 싸륵스, 한계까지 추락한 몸들, 그런 존재를 배제하고 망각하게 하는 ‘승자들의 제도’가 아웃사이더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꾸물거리고 있음을 이 문서는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문서가 어떻게 교회에 의해 오해되고 왜곡되어 왔는지를 「요한복음」을 통해 살펴보는 데 이 강의의 취지가 있다.

• 강사_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다.
한백교회 담임목사와 계간 『당대비평』 편집주간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요한복음』 『예수의 독설』 『반신학의 미소』 등이 있다

• 교재_『급진적 자유주의자들―요한복음』(김진호 지음; 동연, 2009)

일시 / 수강료
- 4월 5일~5월 17일(매주 월) 오후 7:30~9:30  ※ 4월 26일은 휴강
- 수강료: 8만원(1회 수강시 1만5천원)
 
(교재는 별도/ 연구소에서 2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 장소_한백교회당
        (5호선 서대문역 1또는 2번 출구, 신한은행-우체국 사이골목 30미터. 좌측 안병무홀<1층>)

• 신청방법_
   02-363-9190으로 전화하시거나 yminjung@chol.com으로 신청 메일을 보내주세요.

• 강의구성_

날짜

주제

읽어올 부분

4.5

요한복음 연구사

•교재의 「여행을 마치며―누구든 예수를 직접 보라」

4.12

말씀이 싸륵스가 되다

•요한복음 1장 1~18절
•교재의 「첫째 마당」

4.19

예수 이후, 성령, 파라클레토스가 오다

•요한복음 3장 1~21절; 14~17장
•교재의 「둘째 마당」과 「셋째 마당」

5.3

제도화와의 전쟁 I: 목마름과 배부름

•요한복음 4장 1~42절; 6장
•교재의 「셋째 마당」과 「넷째 마당」

5.10

제도와의 전쟁 II: 봄, 그리고 위선

•요한복음 9~10장
•교재의 「다섯째 마당」과 「여섯째 마당」

5.17

고통을 이기는 법

•요한복음 13~20장
•교재의 「일곱째 마당」과 「여덟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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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이웃
- 로버트 박의 방북사건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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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1

지난해 12월 24일, 로버트 박이라는 한국계 미국인이 북한의 인권개선을 부르짖으며 항의방북을 단행했다. 그는 28세의 청년이고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며 특정 기관에서 파송되지 않은 독립 선교사로서, 멕시코 노숙인들을 돌보는 사역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관한 남다른 호혜적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탈북자 문제로 관심이 옮겨가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는 활동에 참여했고, 급기야는 북한의 인권유린을 문제시하면서 입북을 단행한 것이다.

입북 당시 그는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죽어가는 북한 인민들을 살릴 식량, 의약품, 생필품 등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도와줄 물품들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국경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정치범 수용소를 폐쇄시키고 정치범들을 석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각종 고문과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도와줄 사역팀이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요구가 담겨 있다.

동시에 그는 한국을 포함해서, 북한과 연관을 맺고 있는 세계의 여러 나라나 국제기구 지도자들을 향한 서신을 타전했는데, 거기에는 김정일 정권에 의해 자행된 강제구금, 강간, 고문, 처형 등에 관해 고발하고 국제사회의 즉각적인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필경 그는 북한 인민의 고통의 심각성에 관해 누구보다도 긴박한 위기의식에 휩싸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방관하고 있다는 것에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하여 그는 목숨을 걸고 혈혈단신 입북을 감행한 것이겠다.

물론 그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북한 인권을 다루는 세계 100여개 단체간 네트워크 조직인 ‘자유와 생명 2009’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입북 경로와 그가 남긴 서신 등을 세계 각국의 기자들에게 배포함으로써, 박씨의 입북은 이 단체와 사전 협의한 것임이 드러났다. 이어 이 단체는 뉴욕과 도쿄,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북한대사관 앞에서 북한 인권개선을 위한 집회 계획을 발표하였다. 또한 올 1월 12일에는 임진각에서 인권문제를 해소하라는 성명서 4천 장과 과자를 매단, ‘로버트 박 풍선’이라고 명명한 풍선 2개를 북으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에서 로버트 박의 무사귀환과 인권유린의 중단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공고했다.

2월 25일로 공고된 집회는 무산되었다. 로버트 박이 2월 5일 석방되어 미국에 인도된 것이다. 43일만이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하루 전날, 북한 중앙통신에 의하면, 그가 자신의 과오와 무지를 사과하고 속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한다. 석방 이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방북시 목숨을 건 소명의식에 불타 있던 야무진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무표정한 얼굴만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목적의식을 상실한, 마치 혼란에 빠진 사람 같기도 했고,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심적 고통에 무기력해진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 같기도 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로버트 박의 입북으로 인해 벌어진 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었고, 아무런 변화의 조짐도 없다. 북한은 북한대로, 반북 인권단체들은 그들대로 ...... 그리고 불타는 열정이 한 순간 모두 소진되어버린 한 청년의 소식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2

지난 2월 11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켜 본회의에 상정했다. 그 골자는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외교통상부에서는 북한 인권대사를 두며, 북한인권재단을 통일부 산하에 두어 북한의 인권침해사례를 수집 조사하여 매 3년마다 북한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하게 한다는 것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된다면 한국은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세 번째 국가가 된다. 미국은 지난 2004년 고강도의 신냉전주의 정책을 추구했던 부시 정부하에서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였고, 일본은 2006년, 납치 문제가 한참 불어졌던 때 이 법을 제정하였다. 두 나라는 모두 대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대북압박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이 법안을 제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양국의 북한인권법은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한데 미국과 일본의 정부가 바뀌고, 이 두 나라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북한의 개방과 인권개선을 모색하는 것으로 대북외교의 기조가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남한의 정부와 여당은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여기서 전임정부의 대북유화정책이 현 정부에서 현저히 후퇴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가의 식량지원은 사실상 중지되었고, 민간 차원의 지원도 심한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북한의 식량상황은 더욱 심각한 사정에 있으며, 북한 붕괴론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요컨대 세 나라의 북한인권법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모두 북한의 인권개선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거나 그럴 것이 예상되고, 대북관계를 더욱 냉전적 관계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상의 압박수단으로 이 법안이 활용되었거나 그럴 것이 예상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데 남한의 경우, 북한인권법은 그 이상의 효과를 함축하고 있다. 이제까지 남한에서 대북지원을 수행한 NGO들은 대체로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한데 북한인권법이 실효되면 이들 단체들의 대북지원사업은 대단히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또한 북한인권을 주장하던 단체들, 특히 개신교계 교회나 단체들은 대체로 냉전주의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MB 정부에 대해 우호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들 단체들은 정부에 의해 적지 않은 지원을 받게 될 것이 예측된다. 하여 이들 단체들의 사회적 영향력과 발언권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용산사건에서 보듯 국내의 인권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추세에 있는데 북한인권법이 제정된다는 사실은 불온한 함의를 지닐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보다 열악한 북한인권의 문제를 정부가 주도함으로써 내부의 인권문제가 희석화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3

다시 로버트 박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한 폐쇄적 사회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인권문제를 가슴 아파하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항의를 표하는 선교사적 영성은, 적어도 그 뜻과 동기의 측면에서는, 숭고하다. 그런데 그가 북한 국경을 넘어서자마자 교회를 포함한 극우인권단체들과 각국 정부들은 인권문제를 왜곡된 체제의 문제와 연동시켰고, 북한정부는 순진한 청년의 눈과 귀를 봉쇄한 자본주의사회의 위선을 강조하였다. 주장은 다르지만 모두 인권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양측의 상호비난은 어느 정도 사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공방이 북한의 인권개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단지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 북한과 서방, 북한과 남한 간의 냉전적 대립만 강화시킬 우려만 낳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로버트 박의 선교사적 영성은 위험하다. 그의 순수함, 아니 천진함은 세계의 냉전적 관계를 고조시키고 양측의 냉전주의자들의 세력을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 북한 인민이 겪고 있을 참혹함은 이러한 냉전주의자들의 체제 아래에서는 거의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로버트 박의 열정적이고 순진한 선교사적 영성은 단순히 그가 그런 성격의 사람이라는 사실로 환원될 수 없다. 아니 미국 그리스도교는 그러한 열정으로 가득한 선교사를 양산하는 신앙제도를 가지고 있다. 인권에 관심을 두든 복음화에 관심을 두든, 그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 양자는 모두 자기가 소명받았다고 생각하는 선교지를 어둠의 세계로 보며, 선교를 밝음의 공간에서 어둠의 공간으로 들어가, 어둠을 밝음으로 개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분법은 세계를 단순한 것으로 오인한다. 하여 그의 행동은 천진하다. 그런데 그러한 천진성은 신앙제도에 의해 ‘순수함’으로 승화되어 해석되고, 권력은 이것을 이데올로기화적 도구로 활용한다.

나는 한국의 그리스도교도 그런 점에서 미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점을 문제제기하고자 한다. 아니 미국사회나 미국교회보다 좀더 심한 반지성주의적 열정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와 교회는 그런 우려를 더욱 진하게 담고 있다. 종교 권력과 국가, 그리고 시민사회의 권력(자본의 권력, 문화권력 등)은 열정에 불타는 천진한 예언자들의 모험주의를 언제든지 도구화하여 자신의 권력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저 천진한 예언자들의 이분법적 세계는 권력의 속성과 너무나 어울리는 사유틀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에서,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선교사 혹은 예언자적 영성이 대중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을 때 그것을 도구화하여 권력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성서 속의 한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얘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4

느헤미야 총독이 부임한 이래 예후다(유다) 속주는 인구가 급증했다. 그가 성벽을 건설함으로써 예루살렘 도성의 규모도 확장되었다. 더 이상 유다는 팔레스티나의 가난한 지역이 아니다. 이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어엿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와 전쟁[각주:1]을 벌이느라 제국의 서부 국경지역에 많은 요새와 도로들이 건설되었고, 그 와중에 지중해 무역이 활발해짐으로써 많은 도시들이 기회를 얻었다. 특히 서부 해안 지역은 일종의 전쟁특수를 누린 셈이다. 반면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그러한 기회에서 뒤져 있었는데, 느헤미야 시대에 와서야 뒤늦게 성공대열에 뛰어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 유능한 정치인이 주도하여 건설하는 데 성공한 예루살렘 성벽이 바로 페르시아의 대(對) 그리스 방어요새의 하나였던 덕일 것이다.[각주:2]

그런데 우리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정적을 제거하는 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황제의 명을 받고 부임한 사람이었기에 그의 집권은 예루살렘에 정착해 있던 구지배세력에 비해 불리한 점이 많았다. 한데 그는 느닷없이 성전 귀빈실에 기거하던 암몬의 토호 도비야를 축출한다. 또 사마리아의 통치자인 산발랏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던 대사제 엘리아십 집안을 축출한다. 요컨대 인근정치세력과 연대하면서 유지해왔던 구지배세력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권력이 안정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에게는 토착집단에 비해 지역기반이 부족했지만, 과거 제국의 수도에서 황제가 신뢰한 관료였던 그는 그것을 십분 활용하여 정적을 제거한 것이다. 그가 적대시하는 집단은 제국황실에게는 친 그리스파로 해석될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내부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외부의 대상을 적으로 규정짓고, 그 외부와 연계된 내부의 정적을 제거하는 데 활용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체제의 안정과 발전의 기수가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마리아’라는 적이 발명되었다. 바야흐로 유다-사마리아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느헤미야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 이후 얼마 안 되어 에스라가 파견되어 온다. 그 역시 제국황제가 파송한 인물이지만, 총독으로 부임한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직위와 직무가 무엇인지 알 길은 없지만, 「느헤미야기」 8장 1절부터 시작되는, 수문(Water Gate) 앞 광장에서 시작된 율법낭독과 회개의 집회는 우리의 주목을 끈다. 율법공동체를 선포하는 그의 긴 연설이 내포한 중대한 실천은 이웃족속과의 혼인관계 해체에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든 이방 사람과 관계를 끊었다. 그들은 제자리에 선 채로 자신들의 허물과 조상의 죄를 자백하였다.
―「느헤미야기」 9장 2절

제국황실에서 황제를 보좌하던 이력의 인물 에스라는 필경 천진한 예언자는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유다 백성은 그를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힌 순수한 열정의 사람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하여 대중은 그에게 열광했고, 그 앞에서 회개하고 충성을 다짐하며 순수한 열정의 행동을 감행하겠다고 결단한다. 

이웃족속과의 단절은 느헤미야가 시작한 것이지만, 그는 귀족 일부의 혼인관계를 문제시한 것에 그친다. 하지만 에스라라는 이를 유다공동체 전체의 강령으로 확대해석하고 있다. 공동체 내의 이미 결혼한 사람들과 그 자녀들 모두가 해체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대중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졌고, 대단히 폭력적으로 진행되었다.

느헤미야에게 이웃은 친 그리스파로 낙인찍히는 존재가 되었다면, 에스라에게 이웃은 죄와 벌을 가져다준 부정한 존재들이고, 그런 점에서 악마의 자녀들이었다. 하여 전자는 제국 황제의 심판대에 놓이게 되지만, 후자는 하느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두 인물은 공히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된다. 느헤미야가 씨를 뿌린 사마리아라는 적에 관한 논리는 이렇게 탄생했고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웃을 적으로 만들고 그 적과의 전쟁에 대중을 동원하는 전략은, 실제로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냉전적 공존의 상황을 초래한다. 그러한 냉전주의 아래서 적대감은 계속되며 그러한 적대감 속에서 대중의 삶과 실천을 증오로 점철된다. 천진한 예언자들적 영성은 이러한 증오의 정치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종종 그러한 증오 속에서 자라는 권력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곤 한다.

‘지옥’의 프랑스어를 제목으로 하는 영화 <랑페르>(L'enfer, 2006)는 특정 대상을 향한 편견과 증오가 자기 자신의 상처를 영구화하고 그것으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폭력과 파괴, 그리고 상처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공간을 지옥(랑페르)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선교사적 영성은 선악으로 나뉜 세상에서 악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수하면서 뜨거운 믿음이 아니라 그러한 이분법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질서, 그것의 편견과 증오, 그리고 상처를 보듬는 냉철하지만 따뜻한 믿음과 연관된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전쟁은 기원전 499년부터 450년까지 몇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대규모 침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본문으로]
  2. 그리스 군의 침공을 방어하려는 요새가 아니라, 페르시아-그리스 간의 전쟁을 기회삼아 독립을 꿈꾸었던 페르시아의 서부 국경지역 식민지들에서 반란이 일어나곤 했기에,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건설된 요새다. 이들 식민국들은 이 전쟁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대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일종의 비명시적인 그리스 동맹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페르시아 제국은 그렇게 보았다.&#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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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진호
    2010.03.09 16:2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논평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날카로운 지적이었습니다.
    다른 해석을 만난다는 것은 늘 흥미롭고 생각의 활력을 줍니다.

    아무튼 저는 이 글에서 분단의 뿌리를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맹아는 바로 이 시대에 제도화되기 시작했고, 그러한 분단의 신학이 탄생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권력은 대체로 경쟁적이고 정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권력간의 갈등은 또한 대체로 일방적으로 결정되기보다는 타협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페르시아 식민지 귀환시대 팔레스티나에서도 그랬지요.
    서로간에 힘의 불균형이 있기는 해도 모든 자원을 독점하는 것보다는 영향력을 비대칭적으로 분점하는 게 효율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위에 있는 세력도 자신의 영향력이 좀처럼 미치기 어려운 지역이나, 그렇게 하려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드는 지역에 대해서는 정복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그 지역의 권력을 하위에 두면서 공존하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하위의 권력도 자주권을 얻는 것을 염원하기 마련이지만 주위의 헤게모니 세력과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공존하면서 자기의 입지를 활용하려는 경우가 보다 일반적입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권력은 협상의 전문가들로 채워지곤 합니다.
    이 시기 팔레스티나도 그랬던 것으로 보이고, 해서 사마리아나 암몬 등의 지배세력이 예후다(유다) 지방의 엘리트들과 공존했던 것이지요. 느헤미야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것이 좋은지 나뿐지의 문제는 제 관심이 아닙니다. 그냥 권력 엽합이 어느 정도 적대적 관계 속에서 존속했다는 것이지요.
    그런 상황은 시간이 흐르면서 양국의 대중의 삶을 관계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을 겁니다. 서로가 혼인관계를 맺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을 시사하지요.
    대중은 그렇게 서로 얽히면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거대담론이긴 하지만, 신화를 공유하는 일종의 종족공동체의 성격을 갖고 있었으니 그런 삶의 연결망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지배세력이 그것을 방해하지 않는 한 말이지요.

    제 관심은 이것입니다. 대중 간의 삶의 공존, 경험의 공존, 기억의 공존은 더 발전할 수도 있었고, 그러한 공통감각 아래서 사로를 통합하는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자라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한데 예후다 지방의 새로운 통치권력이 그러한 가능성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의 관심입니다. 그것은 주변 권력에 비해 본성이 더 나쁜 권력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나쁜 정치'가 비극을 초래하는 악마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말씀 드렸듯이 어느 정치세력이나 경쟁적이고 정복적입니다. 해서 공존이란 늘상 어렵고, 그런 어려움의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공존의 이유 또한 얼마든지 있고, 그들의 뿌리가 어떻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한데 어떤 권력들은 서로 공존하고, 다른 권력들은 서로 증오합니다.
    문제는 후자인데, 권력간의 증오는 그 사회의 대중간의 증오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가족이 되고 운명공동체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었는데, 지배층들의 나쁜 정치가 그들을 원수가 되게 했다는 것이지요.
    해서 저는 한 권력이 다른 권력보다 더 좋으니 나쁘니 하는 가치판단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나쁜 정치가 문제임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쁜 정치는 그 사회의 대중간의 대화의 가능성을 말살시키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정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요.

    댓글을 다는 일이 제겐 여전히 익숙치 않네요. 그런 탓에 말이 횡설수설합니다. 양해해주시길...
    아무튼 덕분에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2010.03.09 17: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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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댓글로 마음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견해 차이는 존재하는 법이고, 옳고 그름보다는 열린대화가 중요한 법이겠지요.
    분단 극복과 통합에 대한 신학적 과제가 중요하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가지 저와 관심의 차이는
    얽히고 섥힌 대중의 관계적 삶의 좋고 나쁨은 관심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 얽히고 섥히면서 살도록 하는 것 속에 강력한 권력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식민지 상황에서 유대민족주의 발흥과 저항정신의 약화를 의도한 제국의 의도였고
    특히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앗수르는 타인종과 혼인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저는 민족정신과 종교를 말살하려는 강력한 식민주의 정책을 표던 나라는 무너지고
    각 국의 민족정신과 종교를 권장하는 새로운 식민주의 정책을 세운 나라가 일어나 해방군을 자처함으로 생긴문제로 이해했습니다.

    견해 차이를 발견하고...
    또.. 대중에 포커스를 맞추신 목사님의 견해의 의도또한 살펴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그 의도 자체에는 저역시 공감하는 입장입니다만,
    단지 이 구절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이었기에
    제 의견을 감히 나누었습니다.

    댓글을 다는 일이 저역시도 쉬운일은 아닙니다. ^^
    저역시 오랜만에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부족한 글에 대한 답변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2010.03.17 09:1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1805

    두 분글에 대한 다른 비평이 하나 실렸네요.


로버트가 성탄절에 두만강을 건너 북으로 갔다는 소식을 접하며


우리는 지금 충격과 깊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착하고 여린 마음을 가졌던 그가
홀로 이 추운 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로버트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경쟁을 싫어하는 평화롭고 총명한 아이였습니다.
그는 늘 밝은 미소를 띠고 있는 부드러운 아이였지요.
중학교 때 아리조나 투산으로 이사간 이후
그는 학교 공부보다는 어려운 친구를 돕는 활동에 열을 쏟았으며
장애인, 멕시칸 불법 이주민들을 돕는 일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식구만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힘들어하며
길 가다 어려운 이웃을 만나면
옷을 벗어주거나 돈을 털어주기도 하는 소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국에 와서 북한에서 온 청소년들과 지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로버트에게 북한 관련한 일은 매우 복잡하고 
특히 한국의 역사나 상황도 잘 모르고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니 
그런 일을 하기에는 무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울에 왔고
사랑이 많은 그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노인들과 지내기도 하고
북한에서 온 가족과도 함께 하면서 어느새 한국말을 익히고
북한주민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늘 가난한 자 아픈 자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그는 하루 한끼의 식사만 하였습니다.
가족을 보러 와서도 밥은 안 먹고 기도만 하자는 그에게
우리는 가족이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금식을 하려면 오지 말라”는 심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잦은 단식으로 야위어가는 가는 그를 보면서
우리는 밥 먹이는 데만 급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북한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고통받고 있는데도
그는 왜 남한 주민들이 북한 동포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우리는 남한 땅에서의 삶도 충분히 불안하고 고단하다고 답했습니다.

세계 방방 곡곡에 빈곤과 불행이 가득하니 단번에
세상 문제를 다 풀려고 하지 말라고도 일렀고
정치적으로 복잡해질 수 있는 북한 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당분간은 미국에서 인권운동을 하는게 어떻겠느냐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가지 않고] 이곳의 이웃과 함께 있겠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항상 별 볼일 없는 일로 쫓기면서 사는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평화의 기운을 전해주고는 다시 자신의 가난한 친구들에게로 갔습니다.

성탄절 가까워 질 즈음
자기가 좋아한 책들을 부모에게 보냈다는 이메일을 보내왔을 때,
자기는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이메일을 친척에게 보내왔을 때,
사실 우리는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성탄절에 두만강을 건너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복잡한 정치외교적 문제나 종교를 둘러싼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어려운 이웃집 아이를 돌보러 가듯
그는 두만강을 건너버렸습니다.
북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북에서 나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난감하고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우리의 조부모님은
늘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런 조부모님을 존경한 손자가 로버트였습니다.
로버트의 ‘무모한 행동’이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부모님의 뜻을 따라 늘 어려운 사람들의 벗이고자 했던
로버트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간 로버트 동훈을 사랑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정을 전합니다.

2009년 12월 31일 해를 애태우며 보내는 로버트의 친척들 씀


* 편집자의 말

이 편지는 로버트 박의 석방을 바라며 친척들이 작성한 편지의 원문이다. 이 편지는 한 언론사를 통해 일전에 공개된 바 있다.

로버트 박은 지난해 12월 25일 "자신의 죽음을 통해 전 세계가 북한의 현실을 주목"하게 하겠다며 북한에 들어가 억류돼 있다 43일만에 풀려났다. 그는 미국의 한 대북 인권단체에 소속돼 있었으며, 이전부터 빈민문제와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열정적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본명은 박동훈으로 민주화운동을 했던 박형규 목사의 손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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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 세번째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
- 기쁜 소식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지난 번 글에 이어 사복음서 연속 하늘뜻펴기의 두 번째 글을 드립니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벌이신 사건들을 잊지 못해 그리고 그 사건들을 재현하면서 쓰인 글들입니다. 참 사람 예수를 만난 이들의 신앙고백이지요. 개신교 전통이 만인사제설을 굳건한 뿌리로 가지고 있지만 예수는 누구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장벽도 없음을 설파하신 분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람인 이유만으로 하느님과 만날 수 있고, 사람은 사람인 이유만으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에 하나는 소수의 남성 즉 목회자나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 중심의 교회운영입니다. 목회자든 당회든 교회든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로 서면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런 공로나 중재 없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조직은 서로 사랑하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들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교인 모두가 주체적 신앙을 갖고 책임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평신도 교회의 정신으로 세워졌고 이미 목회자를 둔 지금에서도 그 정신을 이으려고 나름 노력합니다. 그 노력에 불을 질러 더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저는 마르코 공동체의 신앙고백들을 중심으로 두 번째 하늘뜻펴기(설교)를 했습니다. 많은 평신도들께서 그리고 목회자들께서도 누구나 하느님의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기억하면서 교회 내의 다양한 목소리가 어울려 하느님 나라의 멋진 하모니를 어떻게 일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향린의 창립정신과 복음서(2)
기쁜 소식
출애굽기 1, 15-21 ; 마르코 복음 7, 24-30

인터넷 포털싸이트에 들어가서 향린교회를 쳐 보면 여러 글과 이미지가 뜹니다만 그 중 하나인 위키백과사전에서는 ‘향린교회’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로 알려질 만큼 유명한 교회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이며 서울 중구 을지로2가에 있다. 초창기의 엄격한 모습에서는 점차 이탈했으나, 여전히 활발한 사회 참여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민주적인 교회 운영 방식으로 유명하다.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고, 국악예배 보급에도 앞장서 왔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사회와 한국교계에 향린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알려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평가는 한편으로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충고이기도 합니다. 초창기의 엄격한 모습에서 점차 이탈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향린교회가 더 이상 평신도 교회/독립교회/공동체생활을 하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그러하지만 공동체생활과 평신도교회 그리고 교권의 다툼과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교회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화두로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시간에 부르는 국악찬송가 217장 향린희년 신앙고백은 ‘하느님이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노래하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남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몸과 맘이고, 이 땅의 향기로운 이웃이며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는 생명의 숨결’입니다. 

‘향린희년 신앙고백’의 토대가 된 1993년의 “향린교회 신앙고백 선언”의 교회 항목을 보면 이렇습니다. “교회는 또한 예수의 복음에 의해 해방된 사람들의 해방공동체이고, 공동체 내의 모든 구성원이 자유하고 평등한 삶을 누리는 민주 공동체요 정의로운 평화 공동체이다. 부활한 예수의 몸인 교회 안에는 몸이 활동하도록 하기 위한 여러 지체들이 존재한다. 이 모든 지체들의 직무와 기능은 각기 다르지만, 각 지체들 간의 관계는 그 지위에 있어 우열이 있지도 않고, 어느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 예속되지도 않는다. 또한 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구성원들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평등하고 서로 함께 조화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며, 함께 하느님을 예배하고, 서로를 위하고 봉사하며,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이 고백문은 향린의 비전이며, 목표이고 지금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는 현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직(聖職)”이 주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자신의 생활터전인 직장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와 사회에서 예수의 삶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직분에 관계없이 모두 성직자일 것입니다. 또한 부활한 예수의 몸인 교회가 원활하게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면 목회자 또한 신학 쪽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평신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6년간의 조헌정 목사님의 목회활동의 핵심을 한마디로 하라고 한다면 부교역자인 저는 “평신도 목회를 위한 노력”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평신도 설교, 공동축도는 한국교회에서 보기 드문 것이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옆에 자기의 십자가 달기, 매월 첫 주 십자가를 상징하는 후드를 전교인이 목에 걸고 예배하기, 평신도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평화 나눔 작은 공동체와 각종 소모임들, 매주 목요일의 평화기도회 등은 모두 평신도 목회의 일환입니다. 각신도회와 부서대표, 그리고 당회와 목회실이 함께 모이는 목회운영위원회를 통해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 또한 평신도 목회를 통한 교회 민주화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평신도 교회를 향한 조 목사님의 목회철학은 그가 향린교회에 부임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3년 6월 15일 성령강림절 두 번째 예배이자 3대 담임목사 취임예배 설교 때 했던 조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3년은 향린교회가 희년을 맞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50년이기에 희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를 세우신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을 다시금 세우기에 희년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이 교회가 명동 입구에 명동성당 바로 앞에 위치한 상징적 의미가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은 신교와 더불어 동반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향하는 목회의 방향은 결국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교황으로부터 시작하는 수직적인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향린교회는 이에 반해 수평적인 체계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이 둘이 함께 만나 십자가를 이룹니다. 명동성당이 한국 기독교의 절반인 가톨릭을 대표하는 성당이라면, 우리 향린교회는 또 다른 절반인 프로테스탄트를 대표하는 교회라고 믿습니다. 혹자는 이 말을 독선 내지 교만, 그래 착각은 자유라고 비난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향린교회가 그러한 한국 교회의 사회사적인 위치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안병무 선생님이 평신도들이 설교에 참여함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초대교회 전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평신도가 주인이 되는 목회, 그리고 홍근수 목사님이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함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저 성전의 벽을 허물라는 예수님의 예언자적인 외침 속에서 교회 자체가 사회 안에서 평신도로 존재하고자 했던 또 다른 의미에서의 평신도 목회라면 저 또한 여기에 기초한 제3의 평신도 목회로 나아가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 제3의 평신도 목회가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는 여러분과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는 기존의 집회의 성격과는 많이 다르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특히 핵심이 되었던 것은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의 경험을 통해 대표권 없는 대의정치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성을 띠지 않고 일부 기득권자들의 이익집단이 된 것을 본 것입니다. 시민 모두가 주인이 되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꿈이 인터넷이나 통신의 발달로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 때에, 평신도의 주체성 강화를 통한 수평적 교회 구조를 만들고 누구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교회 공동체를 일구는 과제는 오늘의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수직적인 구조는 봉건적이고 위계질서적인 중세 사회의 재현이었고, 개신교의 장로들을 통한 회의제도는 근대의 대의정치의 구조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계획되었던 당회가 연기되어서 저는 희년청년회 모임에 잠시 들렀습니다. 3층 예배실에서는 평신도들의 모임인 정의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의 총회와 평신도아카데미 강의 모음집인 “평신도, 성전을 헐다”의 출판기념회가 이어지고 있었고, 희년청년회 모임 공간에서는 향린교회 예배에 대한 평신도들의 논의가 활발하게 오가고 있었습니다. 논의의 발단은 지금 곡조를 붙여서 부르고 있는 교독문에 관한 것이었지만 예배음악과 예배형식의 다양화로 확대되었습니다. 팽팽한 여러 의견들이 오고 가는 중에 한 새 교우가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이 논의 자체가 무척 새롭습니다. 평신도들이 예배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낯설어요. 예배에 대해 그렇게 세밀히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저 주어져 있는 대로 해 오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향린교회 정관에 의하면 예배형식에 관한 사항은 당회의 소관이지만, 우리교회는 예배부가 따로 있어 주일예배의 형식에 관해서 예배부와 의논하고, 특히 음악적인 부분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야 하기에 음악위원회와 함께 신중하게 논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주체는 교인 전부이므로 누구나 예배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또 필요하다면 목회운영위원회에 예배에 대한 좋은 안건을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향린교회는 평신도 교회의 정신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더 나은 모습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급진적으로 평신도 교회의 정신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평신도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정답은 목회자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조 목사님은 30명씩 분가해서 10개의 향린교회를 만들라고 설교한 적도 있었지요. 만약에 향린교회에 목회자가 없고, 을지로 2가에 위치한 이 건물도 사라진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임으로서의 교회 즉 건물도 없고 목회자도 없는 향린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 사역을 해 나갈까요?

서력 기원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의 거룩한 성소를 잃고 혼란에 빠집니다.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자 신앙의 중심지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성전이 사라졌으니 이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위기가 시작됩니다. 유대교 갱신 운동으로 시작되었던 예수 운동의 한 분파는 성전의 멸망에 당황하지 않고 전쟁을 피해 북쪽으로 자리를 옮겨 그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듭니다. 세례예식을 통해 기존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과 함께 각 가정에 모여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기억하며 빵과 포도주를 나눕니다. 그러나 새로 시작된 이 종교 또한 위기가 닥칩니다. 44년 교회의 세 기둥 중 하나이고 예수의 제자이자 사도 요한의 형제였던 야고보가 유대 서기관과 손잡고 있는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처형당합니다. 이때 베드로도 잡혔지만 하느님의 은혜로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이 일로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베드로의 권위는 떨어지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됩니다만 예수의 동생 야고보도 62년에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해 돌로 맞아 죽습니다. 60년대 후반에는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 가장 큰 지도력을 발휘했던 베드로마저 순교하고 그리스도교 교회는 지도자들을 모두 상실하는 상황이 되어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지게 됩니다. 

전쟁의 위기 상황이고, 지도자도 없이, 유리걸식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예수를 따라 제자가 되겠다는 마르코 공동체는 새로운 방식의 가족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교회를 만들어 갑니다. 이 새로운 가족공동체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데 이상하게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구절인 마르코 3장 35절은 이러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예수는 영생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누고 나서 나를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갑니다. 이 모습을 본 베드로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에서도 자세히 보면 아버지가 빠져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이것은 마르코 공동체가 처한 상황과 관계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태동한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제자단이었던 사도계 공동체들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마저도 그들에게 자신의 선교에 대해 허락을 맡아야 했으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이 사도계 공동체는 예수님의 평등한 관계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되었을 때, 야고보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고, 이들이 유대의 정결 예법을 지킬 것을 강요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절 이하에 보면 베드로와 바나바를 포함하는 유대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출신 기독교인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있는데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와서 이것을 비난했고, 베드로가 슬금슬금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피한 것에 대한 바울의 분노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수장이 되면서 유대교의 율법을 준수하는 기독교로 모든 교회를 통일하려고 했고, 야고보의 순교 이후에 예수의 삼촌 시므온이 수장이 되고 이후 도미티안 시대에는 예수의 동생 유다의 두 손자가 통치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가족들이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와야 한다는 근거를 가지고 계속 권력을 가지게 되자 초기 그리스도교 내부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저항과 불신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마르코 복음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12장 35-37절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을 문제 삼고 있고, 3장 20-35절에서는 예수의 가족과 예수의 불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1세기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는 바로 권력의 상징이고 예수 사후 예루살렘 교회가 가부장적 권력의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바울이 죽은 다음에 디모데전후서나 디도서의 기록자들인 바울 2세대들 또한 비슷하게 교회에 직제를 도입하면서 교회는 점차 제도화되어가고, 제도화에서 생기는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자세히 그리고 꼼꼼히 읽어보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열둘의 제자들, 특히 예수께서 수행원처럼 데리고 다녔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얼마나 무지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몰라주고, 하느님 나라 선교에 대해 몰지각한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하느님 나라 운동에 함께 하자고 초청한 이들이고 그 초청에 의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선 사람들임에는 분명하지만 갈수록 그들은 예수의 제자됨의 길에서 멀어집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한 것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받았으나,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들을 먹이는데 실패하고,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를 고치지 못하며, 세상을 향해 산 밑으로 내려가기는 커녕 산위에 좋은 집을 짓자고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나, 열둘 중에 그 길을 따른 남성제자들은 한명도 없습니다. 첫 번째 수난예고에서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가로막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는 호된 꾸지람을 듣고, 계속 되는 수난 예고 속에서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가 왕이 될 때 한자리 차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예수 곁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을 못 오게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막는가 하면, 누가 높은지 다투기 일쑤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열두 남자 중 하나가 예수를 배신합니다. 땀이 피가 되도록 고민하며 괴로워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드리는 예수의 마지막 기도에 함께 해달라는 요청에도 쿨쿨 잠이나 자다가 예수가 잡히자 모두 도망가 버립니다. 끝까지 예수를 따르겠다고 했던 베드로조차도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면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이런 모습이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권력을 추종하고 권력의 시녀가 된 집단의 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행태였던 것입니다. 그럼 권력을 상징하는 아버지를 없애버린 공동체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제가 태동고전연구소에서 사서삼경을 배울 때 한양대 철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선배와 마르코 복음을 함께 읽고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다 공부하고 나서 그 선배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그 선배가 하는 말이 이렀습니다. “여자들이 엄청 나오네. 논어에는 여자가 등장하지 않잖아” 그렇습니다. 논어에는 딱 한번 여인에 관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이렇습니다. “공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와 소인은 가르치기가 어렵다. 친밀하게 대해주면 불손하고, 좀 엄격하게 하면 원망한다”(子曰: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陽貨-25-01)

작년 가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화려한 색체에 언제나 여성이 등장하는 신윤복의 그림을 근거로 신윤복이 여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저는 혹시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는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나친 상상일까요? 마르코 복음서를 만들어낸 공동체는 여성들이 많은 활약을 보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의 사도들은 죽고 그들이 이끌던 공동체들은 유대교의 가부장적 제도와 권력으로 변질되는 상황에서 마르코 공동체에는 평등한 하느님 나라의 밥상공동체를 예수와 함께 준비했던 것을 기억하며 다시금 갈릴리의 예수 운동을 일으키려 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여인은 베드로의 장모입니다. 그는 열병을 앓고 있었고, 예수께서 열병을 고쳐주자 일어나 곧바로 그들을 섬깁니다. 처음 여성은 제일 낮은 자리에서 시중드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주목해 볼 여성은 12년 동안이나 하혈증을 앓았던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당시의 여성이 피 흘릴 때는 부정하다는 고정관념을 무시하고 예수께로 나아가 구원을 얻은 여성입니다. 남들에게 부정을 전염시키는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정하다/부정하다”라고 가르고 판단하는 인간들의 나쁜 습성을 깨뜨리는 행위였고, 예수는 그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세기는 엘리트와 대중으로 철저하게 계급을 나누고 계급에 따른 규정이 정해져 있는 것만큼 성별의 차이에 의해서도 역할 배분과 능력할당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자는 강하고, 용감하고, 관대하며 신중하고 이성적이며 절제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여성은 약하고 겁이 많고 소심하고 수다스러우며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며 절제되어 있지 않다고 여겼지요. 그래서 약하고 겁이 많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여성은 남성의 보호아래 가정의 영역에 갇혀 지내야 했고, 공적인 영역으로 나오는 것은 자신에게 수치이자 자신의 남편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물론 여기서 사람은 남자들이겠지만) 이런 시대적 인습을 깨고 나온 여성이 바로 하혈증 걸린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어떻습니까? 이 여성은 배울 만큼 배우고 상류층의 문화를 향유하던 헬라 여성이었고,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대 제국을 세웠던 페니키아 왕국의 후예였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의 딸, 즉 병들어 있는 다음 세대를 살리기 위해 모욕적인 언사를 참아가며 얼마나 지혜롭게 예수와 논쟁하는지 보십시오. 히브리 산파들이 이집트 대 제국의 황제의 명령을 그들의 기지와 재치있는 말로 거부하고 출애굽의 첫 관문을 여는 것처럼 오늘 이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인내와 지혜로 이방 땅에 복음이 전해지는 교두보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이 여성만이 유일하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음 등장하는 여인은 과부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으나 보상을 바랬던 열둘과 달리 그녀는 구차한 중에도 모든 것을 바칩니다.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십자가의 도상에서 열둘은 모른 채 하거나 피하거나 전혀 딴소리를 해댔으나 무명의 한 여인은 노동자의 1년 품삯이나 되는 향유를 마련해 예수의 메시아 등극을 준비합니다.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왕의 임명식에서 하는 행위였습니다. 여인은 예수에게 기름부음으로 진정한 메시아가 지는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냅니다. 열둘은 도망가고 아무도 남지 않은 십자가 아래, 시체를 뜯어 먹으려고 들개들과 까마귀만이 우글거리는 곳에 갈릴리부터 예수를 섬기며 따랐던 여성 3명이 남아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이들은 이제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대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만이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이들만이 갈릴래아에서 다시 예수 운동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전 향린교회 교인들 정도이면 목회자들이 없어도 마르코복음의 여성들처럼 얼마든지 하느님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사실 목회자 평신도 구분 없이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교회의 선교에 동참하는 분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금만 더 노력해 봅시다. 하혈증 걸린 여인처럼 시대의 인습을 깨는 일은 무척 두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믿음으로 12년이나 닫혀 있었던 생명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려면 시로페니키아 여인처럼 인내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의 모욕에 같이 화를 내고 싸웠다면 병든 후세들을 치료할 길이 없어집니다. 요즘 청년들이, 요즘 대학생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민족과 사회의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윽박만 지르고 한숨만 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론 과부처럼 모든 것을 아무 보상 없이 내어놓은 순진함과 신앙의 결단도 필요합니다. 2004년 6월 29일 열린 목회자와 평신도 토론에서 김경호 목사님은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이 합리성은 있으나 말씀을 지키려는 순진성이 부족하고 아는 것은 너무나 많은데 실천이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혹시 우리가 그렇지는 않은지요?

여인들만이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예수를 끝까지 따르며 섬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섬김부터 십자가 죽음의 현장의 섬김까지 새로운 공동체의 평신도들의 핵심 키워드는 섬김이었습니다. 예수를 섬기며 따르는 일에서 영광을 바라던 열둘은 실패하고 사랑으로 남을 돌보는 데 익숙했던 여성들은 참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없이 섬김의 길을 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길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렇게 조용히 남을 시중드는 일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고, 또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중드는 일을 하는 이들은 지치기 쉽고, 상처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왼손이 모르게 하는 오른손들이 많을 때 그 공동체는 온갖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됩니다. 드러내지 않고 하는 말없는 봉사가 많을 때 그 공동체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는 30배, 60배, 100배가 됩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처음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복음”은 한자 그대로 풀면 “복 있는 소리”이겠고, 오늘 설교제목처럼 “기쁜 소식”입니다. 원어로는 “유앙겔리온”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주로 로마 황제와 관련해서 쓰였습니다. 황제 임명식을 할 때 그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유앙겔리온”이라고 선포합니다. 제국의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가 궁전으로 입성할 때면 나팔을 크게 불며, 옆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유앙겔리온”하고 외쳤지요. 또 황제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손에 들고 “유앙겔리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황제의 “유앙겔리온”은 바로 폭력과 억압과 권력의 승리를 뜻하는 “유앙겔리온”이었습니다. 기원전 1년 6월 18일 힐라리온이라는 이집트의 한 노동자가 자기 아내 알리스에게 쓴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힐라리온이 알리스에게 진심으로 안부를 전하오. 또 나의 존경하는 장모님 베로우스와 나의 아들 아폴로나리온도 잘 있는지요. 우리는 아직 알렉산드리아에 있다오. 나만 빼고 다른 사람은 다 돌아갔는데, 나만 알렉산드리아에 남은 것을 걱정하지는 마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간절히 부탁하는데 내 아이를 잘 돌보아 주오. 이제 곧 내가 받은 품삯을 당신에게 보내리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아들이면 그대로 두고 여자 아이라면 내어버리시오. 이하 생략”

평범한 노동자의 편지에서도 나오듯이 당시의 기쁜 소식은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소식이 될 수 있던 것입니다. “사내 아이면 그대로 두고, 여자 아이거든 <죽도록> 내어버리시오” 황제의 경우 여자아이면 그 아이를 낳은 대리모와 함께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요? 뭐가 “유앙겔리온”입니까? 마르코는 말합니다. “사랑으로 섬김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지배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은 회개하여라.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다. 이제 서로 섬기는 평등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르코는 본론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가셨다는 말로 갈릴래아에서 본론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암시만 합니다. 그럼 본론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해답은 여러분 손과 발에 있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위가 어둡다고 불평하기 전에 한 자루의 촛불을 켜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세상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백 척 벼랑 끝에 섰을 때 오히려 한걸음 내딛으시오.
그러면 온 우주가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사랑으로 세상을 변혁하십시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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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II (2)
: Episode 2. 니체 曰: “니들이 근대를 알아?”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지난 <웹진 19호>[각주:1] 에서 필자는 영화 ‘박쥐’로부터 기인하는 근대와 탈근대를 둘러싼 논의의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였고, 그 논의의 진앙지를 니체로 설정한다고 명시하였다. 왜 니체인가? 라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근대를 향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근대를 떠받치고 있는 서구정신 근간에 대한 시비와 싸움질을 최초로 시도한 사람이 니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니체는 “근대를 믿느니 차라리 허무와 악마를 믿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다”[각주:2] 라는 독설을 퍼부으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왜, 무엇 때문에 근대는 문제적인가? 니체의 처녀작이라 할 수 있는 <비극의 탄생>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리스 비극의 탄생과 해체 과정을 진술하면서 풀어나간다.  

비극(悲劇)의 탄생

니체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니체는 철저한 복고주의자이다. 적어도 그리스문화를 바라보는 니체의 분석틀만을 따로 떼어본다면 말이다. 니체에게는 역사를 평가하는 분명한 기준점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가 바로 그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후기 아테네 철학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 즉 B.C 6세기 초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같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활동하던 시대 말이다.[각주:3] 
이 시대의 특징을 유명한 맑시스트 철학자인 게오르그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각주:4] 서두에서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 다시 말해서, 세계와 자아, 천공의 불빛과 내면의 불꽃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서로에 대해 결코 낯설어지는 법이 없다. …… 이러한 이원성 속에서도 원환적 성격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영혼의 모든 행위는 하나같이 의미 속에서, 또 의미를 위해서 완결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루카치가 말하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고대 그리스는 자아와 세계, 대상과 인식, 주관과 객관이 하나였던 시대였다. 니체는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그리스 비극의 운명에 관한 고찰을 통해 근대문명 일반에 대한 비판을 도모한다. 그리스 비극에 관해 니체가 내세우는 첫 번째 길항관계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이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논리의 상징이면서도 그리스 비극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두 축이었다. 아폴론적 원리는 무미건조, 절제, 이성, 질서, 형식을 상징하는 것에 반해, 디오니소스가 상징하는 것은 열광과 무절제, 과도함, 방종 및 불안정성과 관련된다.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극은 다분히 아폴론적이었고, 무대 위 45도 각도(신의 각도, 신의 시선)에 배치된 코러스는 디오니소스의 몫이었다.  

특별히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코러스의 합창을 통해 고립된 아폴론적 개인은 기쁨에 넘치는 디오니소스적인 공동체의 성원으로 비로소 편입될 수 있었다. 이렇듯 그리스 비극은 개념적인 이성과 음악적인 리듬이 합쳐진, 아폴론적인 명석성과 명료함, 디오니소스적인 의지와 충동이 결합된 역동적 삶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어 내면서 그리스 문명은 찬란하게 역사의 수면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이성(理性)의 탄생

그리스 비극의 시대는 소크라테스에 이르러 ‘철학의 시대’로 전환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 합하여져 구성되었던 세계의 심연은 소크라데스-플라톤-아리스토델레스를 거치면서 논리적 지식의 집합체 혹은 합리적 사유의 거점 확보를 위한 폐쇄적 공간으로 치환되어 진다.

루카치는 그리스 비극의 시대에 대한 고별사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철학이라는 창조적 행위를 통하여 비극의 운명까지도 경험적 사실의 조야하고 무의미한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고, 주인공의 정열도 지상의 가치와 결부된 것이며, 또 주인공의 자기 완성도 주체에게 우연히 주어진 한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삶과 본질이라는 문제에 대한 비극의 대답은 더 이상 자연스럽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하나의 기적으로서 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위에 놓여 있는 연약하면서도 확고한 무지개 다리처럼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적 정신은 영원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또 그 해답도 가져다 주었지만, 그리스의 ‘정신적 공간’내에 있던 가장 본래적인 그리스적 요소는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각주:5]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 어우러진 비극 속에서 이제는 아폴론적인 질서만을 갈구하는 소크라테스주의에 의해, 디오니소스적인 심연은 사라지고 만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역동하는 삶의 세계가 소크라테스로 대변되는 이성주의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이성에 대한 신뢰와 이성에 기반한 낙관주의는 이후 서양정신사의 주류전통을 형성하게 된다.

니체에 의하면 서양의 근대란 소크라테스의 정신적 후예들에 의해 만들어진 야만적인 것에 불과하다. 소크라테스로 표상되는 이론적 인간, 또 그들에 의해 개진된 ‘과학적 세계관’은 궁극적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차단했으며, 그러한 점에서 “진리에 대한 일종의 교묘한 정당방위이며 비겁이자 허위, 교활”[각주:6] 이다. 이러한 니체의 견해는 근대 문명에 대한 환상을 제거하는 데 일조한다. 그는 “언젠가 저 멀리 우주의 한 귀퉁이에, 수 많은 태양계들 속에 속한 별들중에서 지식을 발명한 영리한 동물들이 살던 별이 하나 있었다.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오만하고 허위에 가득 찬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단지 찰나였을 뿐…”[각주:7] 이라고 서술하면서 근대적 사유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선언한다.

결국, 니체는 무엇을 원했나?

요약하면, 니체가 말하는 탈이성, 탈근대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전통적인 합리주의에 반기를 들면서, 그 사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동심원적 구조를 해체하여, 의미로 환원되기 이전의 유동하는 욕망의 기호로서의 디오니소스적인 무의식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그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최고 목표로서 예지가 과학을 대신하고, 이런 예지가 과학의 유혹적인 견제에 의혹됨이 없이 세계의 전모를 확고한 자세로 응시하고, 거기에 나타나는 영원의 고뇌를 자신의 고뇌로서 동적인 사랑을 갖고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각주:8] 

이러한 니체의 전략은 기존의 이성 개념을 실마리로 하여 형성된 움직일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관, 하나의 참된 목적을 지향하는 근대적 역사관이 허위이고 환상임을 고발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니체를 탈근대를 열었던 실험적인 사상가였다고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9]  니체는 그의 후기 작품들로 갈수록 더 노골적이고 거칠게 서구문명, 특별히 서구문명의 근간을 형성하는 기독교 문명과 기독교 윤리에 대한 가차없는 칼부림을 단행하는데……<계속>  

ⓒ 웹진 <제3시대>


  1.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II (1): Episode 1. 영화‘박쥐’에 기인한 아폴론적, 혹은 디오니소스적 상상 -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150 [본문으로]
  2. 니체, 『비극의 탄생』, 곽복록 역 (서울: 범우사, 1989), 28. [본문으로]
  3. 미국에서 신학수업을 받으며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서양고전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이론신학 혹은 철학관련 수업의 1/3(혹은 1/4) 지점까지는 거의 예외 없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어거스틴, 안셀름, 아퀴나스, 칸트, 헤겔 등 서양정신사를 수놓았던 굵직한 인물들의 작업을 점검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현대 기독교의 삼위일체 논쟁’을 한 학기 동안 공부한다고 할 때,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지녔던 질료와 형상, 운동에 대한 문제, 이에 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반응,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해설, 중세 안셀름, 토마스아퀴나스, 근대 데카르트, 칸트,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까지 빠르게 학습한 후에 나머지 수업의 2/3를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 현대 신학자들의 다양한 삼위일체론을 다루는 형식이다. 특별히 모든 수업에 있어 그리스철학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고 말했던 것처럼, 서양의 인문학과 신학은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많은 자양분을 공급받고, 그런 다음 비로소 그 영향에서 벗어날 용기를 얻는 듯 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한 많은 안내서들이 나와 있는데, 모든 교수들은 바로 원전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그래도 비굴하게 그리스 철학에 대한 개론서를 한 권 추천해 달라고 졸랐더니, (좀 오래되긴 했지만) Guthrie가 쓴 The Greek Philosophers-From Thales to Aristotle (Harper & Row, 1960)를 권한다. 얇고 쉽고 깔끔하다는 이유다 (그러면서 개론서는 두껍고 어렵고 복잡하면 안 된다는 말을 덧붙힌다. 내게는 그 책 역시 두껍고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왔지만) 혹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그리스 철학에 대한 개론적 이해를 영어로 접하고 싶다면 Guthrie의 책을 추천한다. [본문으로]
  4. 루카치, 『소설의 이론』, 반성완 역 (서울: 심설당, 1998). [본문으로]
  5. 루카치, 『소설의 이론』, 반성완 역 (서울: 심설당, 1998). 34. [본문으로]
  6. 니체, 『비극의 탄생』, 곽복록 역 (서울: 범우사, 1989), 17. [본문으로]
  7. Friedrich. Nietzsche,「On Truth and Lie in an Extra-Moral Sense」in the Portable Nietzsche, Edited by Walter Kaufmann. (New York: The Viking Press, 1968), 42. [본문으로]
  8. 니체, 『비극의 탄생』, 곽복록 역 (서울: 범우사, 1989), 133. [본문으로]
  9. “니체는 현대철학이 다시 사유를 시작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을 표시한다. 그리고 그가 현대철학의 향방을 오랫동안 계속 주도할 것임은 분명하다.”- Michel. Foucault, The Order of Thing; An Archaeololgy of the Human Sciences, Translated by Les Mots et les choses. (New York: Pantheon Books, 1970), 353-35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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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김진호/동연/2009>

 

말씀이 된 살덩이, 그리고 어떤 공동체

 
 
김무영
(성공회대학교 M.Div. 과정 중,
마음이 따뜻한 사제가 되는 것이 꿈)

1. 들어가며.

권력의 힘은 시간을 되돌리기까지 하나보다. 그나마 조금 숨통이 트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권력자의 심기만 건드려도 ‘밥줄’마저 끊어버리는 폭력이 판을 치고, 가진 자들이 더 갖기 위해 없는 자들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사정없이 몰아세운다. 자유주의라는 말 자체가 ‘급진적’. ‘저항적’ 전제를 담고 있는데 거기다 굳이 또 ‘급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책이 나왔다. 시대가 험악할수록 저항도 거세지는 법이기 때문일까?

메가 처치, 대형교회 논란이 한창인 한국 교회는 이미 일개 사회조직을 넘어,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으로 권력화된 지 오래다. 이 조직의 근원이 일개 근동변방의 민족종교, 그 안에서도 또 비주류였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이러한 거대화된 모습은 (아무리 2000년의 시간차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뭔가 좀 어색해 보인다. 마치 민중을 위한 정당을 만든다고 거리에서 외치던 혁명가가 어느새 최고 권력자에게 빌붙어 최고급 양복을 입고 기름진 얼굴을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사극을 보면 반드시 지금 시대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처럼,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지금 이 시대의 모습과 교회를 생각하게 만든다.
 
2. 혁명 이후의 두 갈래 길.

요한복음은 4복음서라는 범주에서도 나머지 3복음서가 오랫동안 ‘공관복음서’라고 불린데 반해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 독특한 복음서가 ‘정경’의 반열에 들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요한복음>을 생산한 공동체는 이후 좌파와 우파로 분열되었는데, 좌파는 영지주의적 그리스도교 묵시운동과 연계되었고, 우파는 사도계 그리스도교와 연계되었다는 것이다.’ (책 29p) 그리고 그 분열의 시작점은 바로 요한복음 1장 14절이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이 구절의 핵심은 육신을 소마(몸)로 볼 것인가, 싸륵스(살덩이)로 볼 것인가에 있다. 즉, 주류였던 사도계 그리스도교는 육신을 소마로 해석하여 말씀이 승화된 몸, 곧 권위를 가진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고 본 반면, 요한계 공동체는 싸륵스, 즉 철저히 세속적인 몸, 살덩이로 해석하여 말씀이 된 살덩이, 즉 제도화되지 않고 자유로운 힘을 가진 영의 존재를 중시했다.

어느 혁명이든 혁명이 진행된 이후에는 분열이 일어난다. 혁명은 폭발적이지만 비지속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뒤집는 전환의 순간은 말 그대로 찰나적이다. 한번 혁명이 일어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기반 위에서 제도화되고 조직화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 운동이 일어나고 난 후 그 공동체 또한 그렇게 분열되었다. 바로 ‘사랑받는 제자 대 베드로’로. ‘영의 정치 대 몸의 정치’로. 그리고 제도화된 주류 그리스도교는 빠르게 확산, 안정되어갔고, 비주류였던 요한계 공동체는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라진 공동체의 후일담이 아니라 사라진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내용이었다.

3. 잊혀진 기억을 찾아.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한 비주류 공동체가 간직했던 것. 놀랍게도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그저 공관복음서에 대해 풍부한 영적 수사로 보완해주는 존재인 줄 알았던 요한복음서가 실은 잊혀진 기억을 담고 있는 ‘블랙 박스’였던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준다’는 예수의 평화는, 추상적인 개념의 평온함이 아닌, 폭력의 상황 속에서 간직하는 존재의 평온함(책 74p)이었다는 것.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승리의 선포가 세속적 성공에 만취하게 하는 승리주의적 진술이 아니라는 것(책 75p), 바로 요한복음서는 바람 같이 스며든 파라클레토스(보혜사)가 증언할 예수의 실천적 존재에 대한 목마름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즉, 비주류로서 소외되고 추방당한 공동체의 상황을 떠올릴 때라야 우리가 수도 없이 마주했던 요한복음서의 구절들이 그 진상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게 읽은 이 ‘블랙 박스’의 내용들은 ‘오병이어 이야기’, ‘소경 이야기’,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 ‘죽음을 앞둔 시점의 예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파헤치며 들어간다. 수도 없이 듣고 들었던 내용이건만, ‘읽는 시각’에 따라 그 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내용들이다. 요한복음서 말고 또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이렇게 사라져 버렸을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문득 성서의 ‘잊혀진 기억’들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4. 나가며: 다시 오늘 이 자리에.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것은 민중이지만 권력은 부르주아에게로 돌아갔고, 미국 혁명을 일으켜 싸운 것은 민중의 아들들이나 그 권력은 농장주와 무역상들이 차지했던 것처럼, 오늘도 여기저기서 혁명의 선동이 일어나지만 민중은 여전히 이용만 당할 뿐이다. 요한계 공동체처럼 자유를 갈망하고 ‘권력’에 저항하는 공동체는 언제나 다만 소멸될 따름 인 듯 하다. 그러나 권력이 다수를 짓누를 때 늘 그들은 다시 나타난다. 잊혀진 줄 알았던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의 기억을 되살려서.

ⓒ 웹진 <제3시대>


본 연구소가 기획한 <복음서와의 낯선 여행> 시리즈 첫 번째 책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 요한복음』이 출간됐습니다.

- 연구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동연이 펴내는 <복음서와의 낯선 여행>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됐습니다. 복음서에 대한 상투적 생각과 대면하고 이에 대한 '거리두기'에 안내하고자 기획한 이 시리즈는 요한복음을 새롭게 읽는 첫 번째 책에 이어 앞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권 『마태복음』(저자 : 김학철)
            3권 『마가복음』(저자 : 김창락)
            4권 『루가복음』(저자 : 민경식)




 

복음서와의 낯선 여행 1 - 요한복음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지은이_ 김진호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12월 15일
쪽수_ 244쪽(본문 2도)
크기_ A5(148*210)
분야_ 인문/종교
값_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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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얼치기 무신론자'의 신앙고백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한백교회에서 예배드리기 시작한지 벌써 달수로 8개월 정도 됩니다.
작년 여름 한백교회서 드린 첫 예배는 설교도 없이
환경에 관한 퀴즈를 내던 예배였습니다.
종교적인 감수성만 부풀리던 보수교회를 기십년 다녔고 그 후에는
소위 예전과 정통신학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교회를 다녔던지라
그 동안의 예배 형태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한백에서의 예배가
내게는 한마디로 싱거웠습니다.
‘차’도 ‘포’도 빠지고, ‘예수’도 ‘성령’도 빠지고
‘인간’만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이 그리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즈음, ‘삼위일체’니 ‘구원’이니 언제나 화려한 말잔치 뿐이던 교회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도 한 이유지만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강의를 먼저 듣기 시작한 것이
한백에서의 예배를 놓지 않게한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세상과 인간’을 배제하지 않는 예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부부의 신앙생활은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간이었습니다.
늘 신앙심 깊고 뭐든 교회중심이던 안수집사 남편과 교회조직 생활은
힘들어 했지만, 나름 새벽기도에, 매일 딸과 등교전 예배를 드리던 내가,
그리고 주일이면 아침부터 각각 고등부교사로 유치부교사로 성가대로
각종모임으로 용을 쓰다가 저녁때나 되어야 집에서 겨우 얼굴보는
신앙생활을 하던 우리 부부가 어찌어찌해서
지금 한백교회의 싱거운 예배를 드리고 맛있는 밥을 먹게 되었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가끔, 서대문까지 예배드리러 오면서 ‘이런게 은혜인가’라며
남편과 키득거리곤 합니다.
올해 고1이되는 딸 아이가 얼마전 친구와 있었던 일을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일인데
반 친구에게 자기가 읽은 <천사와 악마>라는 소설이 재미있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더랍니다. 작가가 누구냐는 친구의 물음에
<다빈치 코드>를 쓴 사람이라고 말하자 교회를 다니는 그 친구는
‘그런 책은 읽으면 안된다’고 정색을 하더랍니다.
친구 이야기를 하던 딸아이가 내게 다시 이렇게 말 하더군요.
“엄마, 우리도 옛날 같으면 그 아이 처럼 생각 했었겠지?...”
그랬을 겁니다. 대단한 경건주의자는 아니었어도
종교가 심어준 생각의 금기는 늘 우리를 옭아 메었으니까요.
금기가 깨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제법 불경스런 말도 시원스레 내뱉기도 합니다.
“나, 요즘 무신론자야!”

주님~
얼치기 무신론자가 당신께 기도합니다.
당신은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언어사건 만으로 규정되는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내가 쓰는 사전에서 당신을 지우는 것이 오히려 좋을 듯합니다.
신앙 또한, 어떤 대상화된 존재를 믿는다거나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내 맘과 행위에서 신앙이란 것을 지우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당신을 지우고 신앙을 지우니 말수가 더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당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뭐,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신이 없고 신앙이 없는 것은 내게 ‘기이한 부재’입니다.
‘도화지가 갖는 한계를 벗어나니 예술의 확장이 쉬웠다’라는
데미안 허스트의 말처럼
당신을 규정하는 단어서 벗어나니 오히려 당신이 확장되는
기이한 부재를 느낍니다.
당신을 잘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 죄스럽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게 더 이상,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와 단번에 모든 갈등을 해결해주는
비극무대의 신이 아닙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궂이 당신 이름을 불러 감사하기보다
내 앞의 인연과 생명을 예뻐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단지, 좀 더 예뻐하길 ....  좀 더 기뻐하길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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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아버지, 혹은 자신의 언어를 잃어가는 이들에 대한 단상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건넛방 이불 속에 커다란 벌레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그 벌레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아버지가 했어야 할 일들을 그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통해 그 벌레는 나의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그 벌레는 누운 자리에서 한참 텔레비전을 보다 비척이며 일어나 가느다란 관절들을 움직여 식탁의자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촉수를 불안하게 움직여 25단위로 인슐린 주사를 맞고는,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여기저기 흘리며 먹습니다. 이런 행동들을 보니 그는 영락없이 '아버지 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벌레가 아무리 아버지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를 벌레라고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걷는다기보다 불안하게 움직이는 가느다란 촉수 위에 몸이 얹혀 있다고 묘사하는 것이 옳을 듯한 모습은 심한 말초신경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입으로 내는 소리가 언어라기보다는 그냥 '소리'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는 점 역시 점점 '사람의 말'을 잃어가는 아버지와 매한가지였습니다. 떼인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갔을 때 돈 빌려 간 사람들이 아버지를 대하던 태도도, 이미 퇴직한 직장에 찾아가 새파랗게 젊은 후임들과 술 한 잔 하자고 했을 때 그들이 바라보던 시선도 벌레를 대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는 듯합니다. 아버지라 부르든 벌레라 부르든 그 대상은 호감이 가지 않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이가 '아버지'든 '벌레'든 그 이름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제가 아버지라 불러도 속으로는 '벌레'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 나에게 아버지는 벌레나 마찬가지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을 것입니다. 대화가 어려운 것은 단순히 상대의 말소리를 알아듣기 어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분위기와 표정, 억양, 말의 속도 등 구문의 형식이 담아내지 못하는 주변적인 것들이 대화에서 더 중요합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오히려 말 너머의 주변적인 것들의 배치가 문화적 의미를 담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이 많은 주변적인 것들이 아버지와 저의 의사소통을 어렵게 합니다. 나는 아버지를 보면 의사소통을 단절하게 만드는 많은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나는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내 앞에서는 제발 입을 다물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그가 서울로 이사 온 후부터는 정말 말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에 뭔가 걸린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며 발성을 못합니다. 몇 주 전 잠꼬대를 하며 비명을 질렀던 것을 생각하면 성대가 물리적으로 손상된 것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생애의 발견』이라는 책을 읽다 보니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아버지만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식구들도 아버지 앞에서 침묵한다. 그리고 바깥에서 아버지에 대해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비좁다." 아버지의 침묵이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참담한 심경의 표현이라면, 아버지에게 가족들이 침묵하는 것은 '당신의 자리가 없는 것이 우리에겐 더 낫다'는 마음의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몇 번을 되물어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제발 알아듣게 좀 이야기하라"고 애원하지만, 사실 바라는 것은 그의 침묵입니다. 아버지가 조용히 있을 때 우리는 그가 건강하지 않으며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집에는 고요와 평안이 감도는 느낌을 받습니다. 때문에 그에게 침묵을 바라는 것은 집안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은폐하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은퇴 후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렸고 돈을 통해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얻을 수 있었던 술집을 전전하며 돈과 건강을 축냈습니다. 아버지가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것은 한나라당이 특별히 좋아서라기보다 공무원 정년을 축소한, 그래서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만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도 말리는 가족들을 뿌리치고 다단계 회사와 그곳 동료들에게 그동안 번 돈을 ‘올인’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를 칭찬하며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듯한 거짓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들을 열심히 듣고 해석해보면 간혹 “이제 나도 얼마 안 남았어”, “나는 얼마나 답답한지 아니, 이것들아”라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F. 카프카의 『변신』처럼 벌레로 변신한 아들이 죽자 그의 가족들이 생의 의욕을 되찾는 이야기로 끝맺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제가 다단계 회사 직원들보다 더 혹할 만한 말로 아버지에게 생의 의욕을 되찾게 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자신의 말과 목소리를 잃어가는 것은 그의 존재감을 위태롭게 하는 우리 사회, 그리고 그의 침묵 혹은 실어증을 더 편안하게 여기는 가족의 암묵적인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반성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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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09 20:5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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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아픕니다. 더 나은 세상이 오길 위해 저도 노력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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