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와 개신교 극우주의 맺음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 지는 서북주의적 혐오동맹, 뜨는 반혐오주의적 상생동맹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이번 글은 이 연재의 두 번째 글이지만 전체 구성상 맺음글에 속함을 밝힙니다.


극우주의 정권 


    2012년 박근혜 씨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극우적 신권위주의 정권이 재탄생하였다. 1인의 절대적(카리스마적[각주:1]) 지도자와 그이에게 충성경쟁을 하는 광범위한 범주의 테크노크라트의 존재, 그리고 대중의 광적인 지지 현상 등이 결합되어, 민주적 절차와 형식을 무시한 절대적 1인을 중심으로 하는 강권적 통치의 사회가 된 것이다.

    이 절대적 1인은 국민을 ‘우리 대 적’으로 양분하고, 다수의 국민을 ‘우리’의 일원으로 묶어내기 위해 ‘공포’의 감정을 적극 활용한다. 즉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적’이 가공할 세력으로 우리 앞에 사납게 도사리고 있고, 심지어는 ‘우리’ 사이에 슬며시 잠입해 들어온 ‘(위장된) 내부의 적’이 준동하고 있으므로 경각심을 한시도 이완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글[각주:2]에서 내가 ‘공포마케팅’이라고 불렀던 이러한 정치를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거의 시종일관 지속해 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엄밀한 의미에서 (신)권위주의적 지도자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유신통치 시대와는 달리 사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고, 테크노크라트 집단도 복잡하고 다층적인 계산의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 가령 검찰조직을 구심점으로 하는 법조계의 계급적 충성심이 로펌회사들의 이익 카르텔을 구심점으로 하는 ‘전략적 충성심’으로 흡수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권력 집단들 간의 충성경쟁이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정부가 1인의 명확한 중심을 기반으로 하는 (신)권위주의적 체제라기보다는 차라리 탈중심적 권력집단 간에 이루어진 전략적 합의가 낳은 ‘유사’(신)권위주의 체제라고 보는 게 적합하다.

    나는 이 ‘유사’(신)권위주의 체제가 ‘탈중심적 권력집단의 (전략적) 중심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일단 ‘포스트(신)권위주의 체제’라고 명명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독특한 체제가 도래하게 될 가능성의 근저에는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비상한 대중적 지지 현상’이 있었다고 보았다. 나는 다른 저작[각주:3]에서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의 활성화라고 보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실세들은 이 정권이 박정희 시대와 같은 (신)권위주의 체제의 ‘재구축’이라고 오인함으로써, 박근혜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체제적 실험은 성공할 수 없고 구조적으로 내파하고 말 운명에 놓여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각주:4] 실제로 2016년 4.13 총선은 그러한 내파의 순간이 극적으로 다가왔음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여 ‘민주화 이후’ 사회에 대한 실험 중 권위적 극우주의 체제를 향한 실험은 이제 거의 종착지에 다다른 것 같다. 그것은 한마디로 실패였다. 민주주의는 현저히 후퇴했고, 부패와 비리, 그리고 도덕적 해이는 현저히 증가했다. 또 경제는 급격히 추락했으며, 양극화는 급격히 심화되었다. 그리고 남북한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었고, 국제정치에서 한국은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콘크리트 지지율 


    말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권의 가장 중요한 권력 기반은 비상한 콘크리트 지지율이다. 그것을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이 정권의 지지자들은 크게 네 층위로 나뉜다. (1)서울의 강남 지역들과 그 인근 신도시들의 중상위계층, (2)TK(대구-경북) + PK(부산 경남) 지역주의로 포섭되는 이들, (3)극우주의자들(개신교계 + 비개신교계), (4)(빈곤)노년층.

    박정희 시대 이후 과잉 성장한 강남권과 인근 신도시들은 주로 토지로 인한 막대한 초과이윤으로 빠르게 중상위계층으로 부상한 이들의 집단 거주지로 발전하였다. 이후 이 지역은 성장지상주의 계보를 잇는 정권의 확고한 지지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범주의 지지 세력이다. 한편 ‘TK + PK’ 지지 현상은 박정희 정권이 김대중을 견제하기 위해 활용한 선거 아젠다가 차등적 지역분할 정책으로 체계화되면서 나타난 지역주의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층위는 박근혜 정부만의 특별한 지지세력이 아니다. 즉 이 두 범주는 박근혜 현상의 ‘비상함’을 읽어내는 변수로 볼 수 없다.

    세 번째 층위인 극우주의 세력들은 거의 언제나 보수주의 정권들을 열렬히 지지해온 세력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범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1987년 체제’[각주:5] 이후 극우주의 세력은 항상 보수적 권력연합의 일원이었지만 언제나 중심적 위상에 있지 못하였다.

    한데 기업가적 실용성을 기치로 내걸며 탄생한 정부였던 ‘MB 정권’이 천안함 사건(2010년) 이후 이념프레임에 포박되어 집권기간 내내 강경 이념 성향의 정치에 몰두하게 되는 과정에서 군부와 국가정보원이 재정치화[각주:6]되었고, 종합편성 채널들이 생존경쟁을 위해 값싼 ‘종북 마케팅’에 열을 올리면서 극우주의적 세력들이 급부상하였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서 1989년 결성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필두로 하여 극우반공주의적 시민사회가 매우 활성화되었다. 특히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선거 전략으로 종북 프레임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극우주의적 엘리트들이 권력연합을 추동하는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집권 내내 초강성의 종북 마케팅에 치중했고, 이것은 극우주의자들의 주도권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하여 극우주의자들은 박근혜 정부를 더욱 열렬히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빈곤)노년층의 지지는 거의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박정희에 대한 메시아적 기대’가 기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노년층만큼은 아니더라도 저학력 저소득층에 대해서도 대체로 유사한 설명이 가능하다. 사회의 다른 어느 범주보다 더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떨어져 버린 이들에게 반전의 가능성은 거의 막혀버렸고, 그것은 상상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갈망하게 되는데, 이때 빈곤노년층이 그 세대 특유의 집단적 체험을 회상하게 되면서 박정희 메시아니즘이 불타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997년 김정렴, 조갑제, 이인화 등 극우주의적 예언자들에 의해 발명된 박정희 메시아니즘의 서사화다. 이후 이것은 박정희 메시아 담론으로 부상했고 박정희 시대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에까지 박정희 메시아니즘이 뿌리 깊게 각인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다 MB 정부를 거치면서 절망의 정도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가장 극한의 절망 속에 허덕이는 빈곤노년층과 저학력 저소득층 사이에서 메시아적 갈망의 대상으로, 너무나 아비를 닮은, 박정희의 딸이 메시아적 주인공으로 부각된 것이다.[각주:7]

    이렇게 세 번째와 네 번째 범주는 박근혜에 대한 비상한 대중적 지지 현상의 주된 분석 대상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세 번째 범주는 이 정권의 극우주의적 정치와 관련이 있고, 네 번째 범주는 대중의 메시아적 갈망과 관련이 있다. 카리스마적 절대 1인에 의한 극우적이고 반민주적인 일방주의 정치는 바로 이러한 대중적 지지와 상호 관련되어 있고, 이것이 콘크리트 지지 현상을 추동하는 요소이며, 바로 이것이 권력연합을 구성하는 집단들이 본질적으로 탈중심적임에도 절대1인에 대한 충성경쟁처럼 보이는 ‘가짜’ (신)권위주의적 동맹이 작동되었던 이유다.


내파 


    2016년 4.13 총선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냈다. 박근혜 정권이 마치 (신)권위주의 체제처럼 다양한 권력집단의 구심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요소인 높은 ‘콘크리트 지지율’이 신기루처럼 무너진 것이다. 총선 결과는 그것의 회복을 시도할 틈도 없이 각 세력들이 우와좌왕하며 독자적 생존게임에 돌입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는 앞에서 언급한 지지 범주들 중 특별히 개신교와 관련이 깊은 두 범주의 내파 양상과 맥락들을 살펴보겠다.


극우주의적 내파 - 기독자유당 


    2016년 4.13 총선에 참여한 25개 정당 가운데 개신교계 정당은 두 개인데, 두 당 모두 반공, 반동성애, 반이슬람 기조를 강하게 드러내었다. 특히 상대적 다수파인 기독자유당은 극우주의적 정당으로 반동성애 이슈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주요 관계자들 모두가 반동성애 관련 발언을 강도 높게 주장했고, 10명의 비례대표 명단에서 당의 강령들을 대변할 실무 전문가는 오직 반동성애적 의료단체의 전문위원으로 있는 3번 후보 한 명뿐이다.

    총선 결과에 따르면 기독자유당은 2.63%를 득표하였는데, 이는 역대 기독정당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또 이번 선거에 참여한 25개 정당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여기에 0.54%를 득표한 기독민주당의 표를 산술적으로 합산하면 3.17%인데, 이 대로라면 비례대표 한 석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다지 우려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독자유당 관계자들은 애초에 이번 선거만큼은 이제까지 어느 기독정당들보다 큰 성공을 이룩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개신교계의 유력한 지도자들이 대거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가 적극 참여하기로 했고, 그가 총회장으로 있는 교단은 전국 소속교회들의 신도 160만 명의 지지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윤석전 목사 같은 교인들에 대한 장악력이 높은 대형교회 목사들, 장경동 목사 같은 전국적으로 영향력 있는 교회 지도자들도 적극적 참여 의사를 표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의 현역국회의원이고 새천년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한 이윤석 씨가 소속 정당을 탈당하여 기독자유당에 입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지역의원은 고사하고 비례대표 한 석도 얻지 못했고, 반동성애 이유가 가장 잘 통할 것 같았던 수도권의 득표율은 매우 저조했다. 가장 높은 득표를 한 곳은 경상북도인데, 필경 이것은 새누리당 이탈자 중 개신교 신자들 일부가 이 당을 선택한 결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것은 전국적인 현상일 것이다. 요컨대 이 당이 사활을 걸었던 이슈는 거의 먹혀들지 않았고, 새누리당 이탈표가 가장 중요한 득표 요인으로 보인다. 즉 기독자유당은 이전까지의 어떤 기독정당들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어냈지만, 그것은 집권여당의 응집력이 극도로 이완된 특수한 정세에 따른 것으로, 확장 가능성이 없는 지지였다는 것이다.


동성애 혐오동맹 


    기독자유당은 극우정당이다. 박근혜 정부도 극우주의적 권력연합이다. 그렇다면 왜 기독자유당은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고자 했을까? 이 정당은 2004년 조용기・김준곤 등이 주도한 한국기독당을 계승하고 있고, 2008년 기독사랑실천당, 2012년 기독자유민주당을 이끌었던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당이다. 즉 2004년 이래 기독정당을 추진하는 일단의 세력들은 독자정당을 향한 나름의 준비를 십여 년간 다듬어온 정치지향성이 강한 이들이었다. 필경 그들은 개신교적 이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자기들이 주도하는 당을 원했을 것이다.

   이전의 정당들이 공히 주장하는 핵심 논지는 강경 반북노선에 있었다. 이 점에서 기독자유당도 다르지 않다. 다만 기독자유당은 이전의 정당들이 전혀 혹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반동성애 아젠다를 핵심 의제로 부각시켰다. 요컨대 2012년 이전과는 달리 2016년의 기독자유당이 기대한 것은 ‘동성애 혐오동맹’의 형성이었다. 이 동맹의 구성 범주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i)기독자유당 + (ii)개신교 교회들 + (iii)개신교계 반동성애 활동조직 + (iv)비개신교적 반동성애 성향의 시민사회. 그리고 반동성애 혐오동맹이 잘 형성된다면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 다섯 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개신교계 반동성애 세력들은 차별금지법, 학생인권보호조례, 동성애 관련 문화적 컨텐츠, 군대내 동성애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보수적 정부나 지방자치체보다 훨씬 보수주의적 관점을 일관되게 표명해왔다. 심지어는 동성애자를 강제 구금하고 치료하며, 실형에 처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반동성애 문제에 관해서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구별되는, 나아가 극우주의적 정권과도 차별화되는 분리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개신교적 반동성애 혐오동맹의 논리야말로 가장 선명한 개신교 독자정당의 명분이 될 수 있다. 개신교의 독자정당 추진세력들을 늘 괴롭혀온 논리는, 양당체제로 분할된 현재의 정치 구도 아래서는 보수주의적 권력연합에 참여하는 것이 대의라는 것이었다. 장로대통령이 통치하는 정부나 극우주의 성향의 정부에서 그러한 대의는 더욱 강력한 흡인력을 지녔다. 그런 점에서 반이슬람과 반동성애는 어떤 보수주의적 정권의 흡인력에도 포괄될 수 없는 기독정당 만의 독자적인 상품일 수 있는데, 위의 혐오동맹의 구성범주들 중 ‘(ii) + (iii) + (iv)’의 차원에서 반이슬람 이슈는 어느 범주에서도 약한 대중적 기반을 지니는 데 반해 반동성애는 강력한 기반이 있다는 것, 그것이 기독정당들로 하여금 반동성애를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부각시킨 결정적 이유라고 판단된다.

    나는 위에서 기독자유당의 반동성애적 아젠다는 독자정당을 위한 전략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물론 정당 추진 주체들은 전략적인 선택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본질주의적 신념의 소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진화발생학(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적 개념인 ‘자기기만’(self-deception) 행위에 해당한다. 즉 그이들의 신앙이나 신념에서 동성애 문제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떤 때에 갑자기 특정한 필요에 의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한데 그들은 마치 그것을 처음부터 심각하게 직시했었고 그럴 만큼 그것은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기기만 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이 추진하고 있는 독자정당의 신념이 정당하고 필연적이라는 확신에 차게 되는 것이다.


왜 하필 


    그렇다면 왜 하필 많은 것들 중에서 ‘동성애 혐오’가 자기기만의 도구로 선택된 것일까? 위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동성애 이슈야말로 이명박 정부-한나라당이나 박근혜 정부-새누리당과 자신들을 차별화하기에 유용하고, 대중을 자신들의 특화된 논점의 장으로 유인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왜냐면 그러한 선택지가 이미 주어져 있고, 그것에 대한 논리적 서사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즉 맨 땅에 머리받기 같은 밑도 끝도 없는 ‘너무나 창의적인 발명’이라면 자기기만은 거의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기만은 대개 그런 상상력이 가능한 환경과 문화의 기반 위에서 나타난다. 즉 기독자유당 추진 주체세력들의 상상력은 이미 활발한 반동성애 운동을 벌여온 기독교계 활동조직들과 교회의 대중들이 구축한 반동성애적 담론 환경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 개신교 극우주의자들에게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은 이런 담론 환경에 강한 공신력을 부여했다. 이것은 기독정당 추진을 주도한 개신교 일부 지도자들이 미국의 개신교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지나친 신뢰 혹은 예속의식과 관련이 있다.


극우주의적 내파의 한계 


    말했듯이 개신교 극우주의자들의 독자정당 세력이 거둔 성과는 주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구심력이 약화된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극우주의적 내파가 기독자유당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러한 극우주의적 내파의 한 경로가 기독자유당이라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기독자유당은 박근혜 정부-새누리당의 극우주의적 내파를 동성애 혐오동맹의 시각에서 경로화했다. 그러니까 가령 기독자유당식 동성애 혐오주의에 동조하기를 꺼려하는 이는, 비록 극우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동성애에 우호적이지 않는 개신교도라고 하더라도, 기독자유당이 주도하는 동성애 혐오동맹에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때 대안적 기독정당이나 극우주의 정당이 없다면 그들은 다른 동맹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기독자유당 지지율의 확장성의 한계에 관한 주장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 절에서 이야기할 내파의 다른 범주에 대한 논의와 연관이 있다.


중간범주로의 내파 


    2016년 4.13 총선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결과의 하나는 ‘중간범주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제도는 양당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축되었는데, 국민들의 투표는 그것에 저항했다. 그리고 제도는 크게 흔들렸다. 이때 주목할 것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구조가 흔들린 결과가 그 왼편과 오른편 정치세력의 강화가 아닌 중간범주의 뚜렷한 대두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하여 극우주의로의 실험은 거의 좌초한 셈이다.

    지난 2008년 MB 정부가 출범했을 때 정권을 구성한 주요 요소 중 하나는 이른바 ‘선진화’라는 중간범주의 담론적 실체였다. 그리고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당시 강력하게 작용했던 요소의 하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걸은 ‘중간범주’적 문제틀이었다. 이것이 중간범주적 문제틀인 것은 박근혜 정부-새누리당 내에서 벌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중간적 요소는 이 두 정권 내내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한데 2016년 새누리당의 내파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수도권 중심의 중간범주였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 두 요소는 1987년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적 제도를 양분하는 이데올로기적 축이었다. 이후 어느 정치세력도 두 축을 전제하지 않고는 존립할 수 없었다. 또한 어느 정치세력도 이 두 축 밖에서 대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초강성의 반공주의를 내세우면서 1987년 이후의 이데올로기적 양축을 해체하고 그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이 극우주의 정권은 합법적 체제라기보다는 ‘법 위의’ 카리스마적 체제, 그러니까 유신체제나 신군부체제 같은, 그런 체제에 가까웠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새누리당의 내파를 뚜렷이 보여준 2016년의 현상은 양당제 복권으로의 기조도 있었지만, 양당제의 해체를 향한 기조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때 중간범주를 반영하는 정치적 슬로건은 ‘정치의 도덕화’다.


정치의 도덕화와 '강남좌파' 


    서울 강남권과 인근 신도시들에서 중상위계층이 대두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대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후 한국에서 1961년을 정점으로 하는 1955년부터 1963년까지, 그리고 1972년을 정점으로 하는 1968년부터 1974년까지 두 번의 베이비붐이 있었고, 이 두 베이비붐 세대가 40대를 넘어서고 60대 초입에 들어선 현재, 인구 구성이나 보유 자본(경제적 자본과 사회적・상징적 자본)에서 이 세대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연령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1차 베이비붐 세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본은 부동산과 관련이 있다. 이들 중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가장 우월한 자본 능력을 지닌 이들이 서울 강남권과 인근 신도시들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세대는 공교육 체계가 체계적으로 작동하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고, 어린 시절부터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을 체험하였으며,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기조가 가장 강력하던 시절에 청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이들이 기성세대에 진입할 무렵 민주적인 정권교체의 체험을 하였다. 한편 이들은 청년기에 소비자본주의를 체험한 세대였고 지구화의 주역으로 소비자본주의적 문화와 제도를 현장에서 체계적으로 구축한 주역이다. 무엇보다도 초고속의 성장과 민주화의 체험은 이 세대 전체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세대적인 집단 기억의 코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청소년과 청년기에 형성된 세대적인 집단 기억의 코드가 구체적인 삶의 스타일이나 문화적 양식, 정치적 태도에 대한 집단적 행위 양식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데는 여러 변수들이 작용한다. 그 변수들 중 내가 주목하는 것은 ‘강남’이라는 사회문화적 삶들이 교차하고 실행되는 현장이다. 이 현장을 거치면서 세대적인 집단 기억의 코드가 사회적인 집단적 실천으로 나타나게 되는 하나의 경로가 노정된다. 가령, 강남에서의 막대한 토지 초과이윤에 주로 기반을 두고 등장한 중상위계층은 이후 한국사회에서 경제력뿐 아니라 각종의 사회적 자본과 상징자본을 독과점했다. 이때 ‘강남’은 ‘그들끼리’의 사회적 교류의 장이었다. 이 지역을 매개로 베이비붐 세대, 특히 첫 번째 베이비붐 세대는 양질의 교육, 결혼, 직업의 기회를 누리며 이른바 ‘품격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었다.[각주:8] 또한 ‘강남’을 소비사회의 모던적 문화공간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때, ‘모던 공간 강남’은 한편에서는 게걸스럽게 소비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장소로서 소비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성찰적 소비문화의 장소이기도 했다.[각주:9] 이때 부상한 삶의 스타일적 용어가 ‘웰빙’이다.

    이러한 웰빙적 문화는 그 영역을 점점 확대했고, 정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흔적들이 선진화니 경제민주화니 강남좌파니 하는 담론 현상으로 나타났고, 그것이 최근 제도정치화되는 과정에서 중간범주 정치의 이슈로 부상한 것이 ‘정치의 도덕화’다.


대형교회와 웰빙신앙 


    그런데 이러한 사회문화적 현장을 좀더 디테일하게 볼 때 ‘서울 강남권의 대형교회’가 주목된다. 한국사회에서 대형교회는 1980,90년대 서울 강남권과 인근 신도시들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중소형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데 있어 교회당의 대대적인 (재)건축이 유효했다. 교회당을 초대형으로 (재)건축하려면 막대한 건축비가 소요되는데, 일반적으로 같은 규모의 건물보다 교회당은 훨씬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1980,90년대 강남권과 신도시의 토지로 인한 막대한 초과이윤이 이 지역들에서 더 많은 대형교회를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강남권의 대형교회는 특정 지역의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아니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주 1회 이상의 공식 비공식의 회합과 교류가 무수히 일어나는 장소다. 한국사회에서 이와 비견할 만한 다른 장소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대형교회를 더 주목하는 것은 중소형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주 그리고 깊게 문화적 사회적 자원의 교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사회문화적 자원의 교류가 일어나는 대형교회적 장의 담론들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매개로 소통된다. 전후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사회, 거기서 무에서 유를 창출했던 세대에게서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조용기식 삼박자 구원론처럼, 건강과 풍요와 구원이 하나로 만났다. 전시 그리고 전후에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어대는 갈등 가운데 몸과 정신이 무너질 대로 무너져버렸고 최소한의 끼니도 못 잇던 상황에서 건강이 회복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이다. 교회는 이런 두 가지 축복의 언술과 영혼의 구원에 관한 언술이 합류한다는 삼박자 구원론을 회자시켰다.

    하지만 대형교회가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속속 등장하던 1980,90년대 교회에는 생존 목표 이상의 것을 생각할 여유를 누리며 성장한 세대가 대거 모여 있었다. 바로 그들 사이에서 성장지상주의와는 다르게 삶의 여유를 성찰하는 신앙이 대두한다. 나는 이러한 풍요를 기반으로 하는 성찰적 신앙 양식을 ‘웰빙신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계몽적 보수주의와 동성애 


    교회 밖에서 ‘웰빙’이라는 삶의 양식은 보수에서 진보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었지만 기본적으로 교회의 웰빙신앙은 ‘보수주의적’이었다. 강남권에서 ‘386’이라는 세대효과가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실천으로 발현되는 과정에서 대형교회가 경로화하는 양식은 보수주의였다는 얘기다. 그것은 그 장소가 한국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 연재의 다른 부분들에서 길게 얘기하겠지만, 한국교회의 절대다수는 서북주의를 통해 신앙의 주체화가 노정되었다.[각주:10] 서북주의는 신앙적으로 근본주의적이며 정치적으로 극우주의와 친화적이다. 이것은 목회자 양성과정에서 가장 잘 나타나며, 특히 대형교회의 목회자에게서 더 잘 드러난다.

    좀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 말하면 서북주의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사회문화적 삶의 양식’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문제는 강남권 대형교회 신자들의 사회문화적 삶의 양식인 ‘웰빙신앙’과 목회자들의 ‘서북주의적 신앙’이 기본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타협과 협상의 전문가들인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중상위계층의 엘리트교인들은 교회에서 서로 충돌하고 이념투쟁을 벌기보다는 공존을 택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잘 형성된 중상위계층의 사회문화적 교류의 장이자 목회자에게 있어 가장 양질의 사역지인 대형교회를 어느 누구도 투쟁의 장소로 만신창이가 되게 하고 싶지 않았겠다. 해서 그들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마치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진보적 교회 사역자들이 정작 교회 안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태도를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것처럼 대형교회 목회자들도 자신들의 공격적 극우주의 신앙을 교회 안에서는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엘리트교인들도 1980년대 말부터 부쩍 잦아진 목사들의 과잉 이념적 활동에 별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교회 안은 대개 무정치적 공간이었고 사회문화적 자원의 교류가 수행되는 상생공간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2천 년대는 대형교회의 목회자들과 엘리트교인들이, 웰빙신앙이든 서북주의 신앙이든, 각자 교회 밖에서 자신의 이념을 정치화하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 뉴스앤조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2016년 4.13총선은 웰빙신앙의 정치화가 양적 질적으로 뚜렷한 성과를 이룩한 중요한 계기로 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웰빙신앙의 제도정치화의 아젠다를 ‘정치의 도덕화’라고 불렀고 이때 웰빙보수주의적 신앙의 주역은 ‘계몽적 보수주의’로 사회화되었다고 본 것이다. ‘웰빙신앙’이라는 말이 자기만족적인 개체주의적 뉘앙스가 강한 표현인데 반해, 그것이 정치화됨으로써 그러한 신앙 양식을 사회의 계몽적 규범으로 제도화하려는 것은 웰빙신앙이 ‘계몽적 보수주의’화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한국정치의 중간범주적 주체인 계몽적 보수주의자들의 가장 중요한 매트릭스(모태)를 강남권 대형교회라고 보았다. 동시에 대형교회는 목회자들의 서북주의적 신앙의 매트릭스이기도 하다. 또 이 양자 간의 신사협정으로 교회 내부는 새누리당처럼 내파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데 최근 개신교회들의 위기는 점점 목사들, 그리고 비슷한 극우주의 성향의 장로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시민사회는 점점 부정적 시각으로 개신교회들을 바라보고, 교회 당국과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의 충성심은 크게 이완되었다. 이러한 신자공동체의 결속력의 위기와 사회적 공신력의 위기에 직면해서 그 초조함의 반영이 크게 세 가지 실천으로 나타났다. 내부의 위기를 외적 성장으로 전환시켜 위기를 돌파하려는 해외선교 열풍이 그 하나이고, 미국발 성장주의 신학인 번영신학적 가치를 수입하여 미국적인 중상위계층적 교회주의를 한국화하려는 시도들이 다른 하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주목할 것이 신앙의 정치세력화다.

    이중 마지막 정치세력화 시도는 미국의 (신)복음주의 우파 세력의 모델을 차용하면서 나타났다. 1980,90년대 미국에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2천 년대 다시 (아들)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던 미국의 (신)복음주의 우파는 반낙태와 반동성애, 반이슬람이라는 혐오주의를 도덕주의로 둔갑시켜 정치적 이슈로 만들어냈다. 이것이 미국의 (신)복음주의 우파 류의 ‘정치의 도덕화’ 전략이었다. 바로 이런 극우주의적 ‘정치의 도덕화’를 한국의 개신교 서북주의 세력이 수입하였는데, 이들 종교수입상들은 이런 신상품을 마치 빈티지 컨셉으로 변모시켜 판매하고자 했다. 아니 실은 그들 자신이 자기기만에 빠져 자신들의 종교상품이 동시대적 극우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태고 적부터,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었다는 착각에 빠졌다. 단, 반낙태나 반이슬람은 한국적 현실에서 이슈로 부각시키기에 적절치 않았기에 반동성애가 핵심 빈티지 상품 품목으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많은 목사들이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신자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자 했다. MB 정권이 탄생하는 과정이나 박근혜 정부가 반공주의적 공포정치를 드라이브 하는 과정에서 많은 목사들이 신자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려는 활동은 신자들의 공공연한 이반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는데, 2016년 4.13 총선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많은 목사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발언을 했고 다른 목사들은 독자정당을 지지하도록 공공연히 요청했으며, 그 맥락에서 반동성애 이슈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는데, 이번에는 그것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새누리당도 독자정당도 아닌 다른 제3의 지대로, 특히 중간범주를 향하여 대대적인 이동을 하였다.

    자신이 속한 대형교회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한 중년의 교인들 몇 사람은 한결같이 목사들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갑자기 목사들이 교회에서 소리 높여 반동성애 발언을 하는데, 고학력의 합리주의자들인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너무 빈약한 무대포적 논리여서 수긍하기 어려웠고, 그런 탓에 동성애에 대한 뉴스나 그밖의 정보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차분히 살펴보면서 그들이 도달한 것은, 예외 없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그들을 더욱 동요하게 한 것이 미국과 유럽에서의 도덕의 변화였다. 그들이 흠모하고 동경했던 그리스도교적 문화의 선진국들에서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해 포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내면적 도덕의식의 갈등을 가져왔다. 또한 영화, 드라마, 소설, 광고, 기타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들에서 미학적으로 다루어진 성소수자의 이미지는 부정적 관념을 더욱 흔들어 놓은 것이다. 하여 내가 추정하는 것은 그들이 인지부조화 상황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내면은 여전히 보수적이지만, 외면적 세계의 변화에 흔들리는 그들은 외적으로는 좀더 관용적인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4.13 총선을 기점으로 하여 그들은 이러한 태도를 정치적인 것으로 번안하는 데 훨씬 적극적이 되었다. 하여 이들 강남의 웰빙 보수주의자들은 동성애를 포함한 도덕적 가치에서 계몽적 보수주의자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북주의적 혐오동맹을 넘어서는 상생동맹을 향하여 


   이렇게 극우주의적 가치의 구심력은 빠르게 와해되고 있다. 동시에 서북주의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상실했다. 하지만 서북주의라는 목회자들의 신앙의 매트릭스는 그렇게 쉽게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목회자 양성 시스템의 서북주의적 관성은 여전히 강력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대형교회들에서 웰빙신앙적 엘리트교인들과 서북주의적 목회자들 사이의 신사협정은, 전보다는 약해지겠지만, 여전히 견고하여 그렇게 큰 균열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여 서북주의적 목회자들과 일부 극우적 장로들과 교인들은 여전히 많은 물질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고, 이것에 기초하여 교회 외부에서 벌이는 서북주의적 공격성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예상되는 향후 얼마간은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정치권력을 갖게 되지는 못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힘을 가진 많은 정치적 사회적 동료들을 갖고 있으며 그들과 더불어 우리사회의 극우주의적 운동의 축으로 한동안 더 활동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심각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오늘, 수많은 몰락의 위협을 받고 있는 위기의 존재들,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마초적 극우주의에 대한 독성 강한 향수가 짙게 번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서북주의적 개신교 지도자들은 ‘어버이연합’처럼 싼 값에 알바공격꾼들을 고용하여 테러리즘을 부추길 우려가 농후하다. ‘진리’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알바 고용과 무관하게 혐오범죄들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 요즘 문제시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더 많은 여성들과 성소수자들, 이민자들 등이 그런 혐오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서북주의와 신사협정을 깨지 못하는 중간범주의 웰빙 신자들은 저 테러리즘과 혐오범죄의 공모자인 셈이다. 점점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있다. 아니 그렇게 선택하야 할 때가 임박했다.

    서북주의는 가능한 한 빨리 우리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이념적 신앙 현상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신학운동과 신앙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 사회의 평화와 공존, 편견과 혐오 없는 상생의 사회를 향한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바로 하느님나라를 향한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사회를 향한 반혐오주의적인 상생동맹이 바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과제다.


ⓒ 웹진 <제3시대>




  1. ‘카리스마적’이라고 한 것은 막스 베버의 어법을 따라 ‘합법적’인 것의 대응어로 사용하였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전자가 법을 대하는 태도가 법의 제정자와 같다는 데 있다. 즉 그이는 법을 지키기보다는 자신을 ‘법의 제정자’로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2. 김진호,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와 '증오의 정치학'〉, 이택광 외,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자음과 모음, 2014). [본문으로]
  3. 김진호, 《산당들을 폐하라―극우적 대중정치 장소들에 대한 정치비평적 성서읽기》 (동연, 2016). [본문으로]
  4. 주2)의 논문과 〈증오의 메시아 정치, 그 불온함―2012년 이후 한국사회의 종교심 비판〉, 《오늘의 문예비평》 93(2014 여름). [본문으로]
  5. ‘1987년 체제’라는 용어는 사회학자 박형준이 처음 명명하였고 《당대비평》 24(2003 겨울)호가 특집주제로 다루면서 널리 확산된 것으로, 민주주의 동맹이 주도한 시기 한국사회의 성격에 관한 가설적 개념어다. [본문으로]
  6.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정치화된 군부의 핵심세력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군 개혁을 시도함으로써 군부는 결정적으로 탈정치화되었다. [본문으로]
  7. 나의 글 〈메시아주의, 한국 정치의 어떤 열망〉, 《당신들의 대통령―선출된 왕과 민주주의, 그 이후》 (문주, 2012). [본문으로]
  8. 베이비붐 세대에게서, 특히 제1차 베이비붐 세대에게서 ‘강남’은 그 앞뒤의 세대들에 비해 이런 현상이 더 현저했다. [본문으로]
  9. 반면 과잉소비공간으로 부상한 일부 강북이나 지방의 특정 장소들은 강남보다 훨씬 더 강력한 소비주의적 욕망을 구현하곤 하였다. [본문으로]
  10. 이 연재의 처음 글인 〈한국사회와 개신교 극우주의. 서론〉을 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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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또 다른 책”에 관한 상상, 그리고 연대와 비판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제목이 좀 괴기하다. 그 이유는 도킨스의 독자가 만일 종교적 근본주의자였다면 전투적인 무신론자의 책으로 잘 알려진 『만들어진 신』을 이런 식으로 평가할 순 없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와 관련해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라는 로버트 퍼시그의 견해를 도킨스가 수용하고 있기에 기독교인이라면 일단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종교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사실 새롭지 않다. 프로이트 역시 종교를 하나의 강박증상으로 이해했고 그에 따라 설명을 시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도킨스와 달리 망상보다는 환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종교에 대한 도킨스의 이해를 진화론적 모형에 따라 종교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19세기의 종교기원론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해도 상관없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롭게도 그 역시 이러한 지적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으로 말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어떤 논증을 19세기의 것이라고 칭한다고해서 그것이 어딘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19세기의 개념들은 대단히 훌륭했으며 다윈의 위험한 생각이 특히 그렇다.” 따라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판단하든 간에, 이 전투적인 무신론자의 주장이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 책에서 도킨스가 제기한 주장들, 특히 기독교와 관련한 여러 주장들에 대해서는 "이용하기에 좋고 사실처럼 여겨지는 것들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한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사실처럼 여겨지는 것들은 최대한의 영향력을 얻기 위해 적절히 과장되고 논증을 이루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기 위해 느슨하게 배열되어 있다. 증거를 이렇게 매우 선별적으로 사용한 글을 논박하는 것은 너무나 따분해서 결국 그저 까탈스럽고 반동적이기만 한 한심한 책이 될 수도 있다"[각주:1]는 맥그라스의 비판을 피해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근본주의 기독교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그가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물음을 고쳐 다시 물어보도록 하자. 과연 그가 기독교의 모든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가? 특히, 기독교의 역사에서 성장하고 발전해 온 신학적 전통들 모두를 무시하고 있는가? 라고 말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강심장이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문고판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2] 


      왜 늘 종교에서 최악의 사례를 공격하고 최선의 사례는 무시하는가. 당신은 틸리히나 본회퍼 같은 뛰어난 신학자들이 아니라 테드 해거드, 제리 팔웰, 팻 로버트슨 같은 조잡하고 어중이떠중이나 몰고 다니는 위험 분자들을 다룬다. 그런 세심하고 미묘한 종교가 주류라면 세계는 확실히 더 나은 곳이 되었을 것이고 나는 다른 책을 썼을 것이다. 우울한 사실은 이런 유형의 절제되고 온건하고 개혁적인 종교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소수파라는 것이다. 전 세계 신자들의 대다수는 로버트슨, 팔웰, 해거드, 오사마 빈 라덴, 아야톨라 호메이니 같은 지도자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것과 너무나도 유사한 종교를 믿는다. 그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라 모두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현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대면해야 한다. 


     따라서 도킨스를 열렬하게 비판하는 사람들과 달리 "다른 책"을 썼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내게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때문에 정작 나와야 할 책은 이항대립적인 정신성을 가진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그 자신과 동일한 정신성을 가진 종교적 근본주의자를 꾸짖는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언급한 "다른 책"은 나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다른 그 어떤 누구보다 아직도 이들이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에 대한 비판이 가장 시급했고 이러한 상황은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고 있다고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 도킨스와 같은 부류인 히친스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또한 참조한다면, 열렬한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리 해로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각주:3]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현재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미국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적은 예산으로 앞서 완성한 인물이며, 현재 국립보건원의 수장을 맡고 있다 …… 이 위대한 인본주의자는 또한 C. S. 루이스의 헌신적인 추종자이며 자신의 저서 <신의 언어>에서 과학과 믿음이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나는 도한 종교에 관한 다양한 공개토론과 사적인 토론을 통해서도 프랜시스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와 내게 적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최근에야 겨우 상상할 수 있게 된 온갖 새로운 치료법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와의 대화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그는 내게 기도를 제안하지 않았고, 나는 그 보답으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갖고 그를 놀리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고통 속에서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사실상 가장 이타적인 기독교인 의사의 노력이 물거품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콜린스 박사가 뭐라고 신의 계획에 감히 끼어들겠는가?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지옥불에 타기를 바라는 사람들 또한 나를 구제불능의 악마로 보지 않는 상냥한 신앙인들을 조롱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도킨스를 비롯한 오늘날의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신학의 모든 형태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본 것처럼 때론 그 상대가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네 가지 유형, 즉 갈등, 분리, 대화, 통합의 유형에서 이들이 근본주의자들에게는 갈등의 방식을 취하지만 소위 자유주의적인 신학 노선을 걷는 사람들에겐 분리 내지는 대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도킨스는 근본주의 신학적 노선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각주:4] 


      성경을 곧이곧대로 자기 도덕의 근간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존 셸비 스퐁 주교가 성서의 죄악들에서 제대로 간파했듯이 그 책을 읽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스퐁 주교는 기독교인이라고 자칭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거의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발전된 믿음을 지닌 개방적인 인물이다. 영국에서 그에 상응하는 인물은 최근에 에든버러 주교직에서 퇴임한 리처드 할러웨이다. 할러웨이 주교는 심지어 자신을 개심한 기독교인이라고까지 말한다. 나는 에든버러에서 그와 공개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는 내가 만난 인물 중 가장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람에 속했다. 


     그래서일까.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와의 대화에서 도킨스는 자신을 전투적인 무신론자에서 불가지론자로 지칭하는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그가 기독교에 대해 전적으로 호의적이라거나 찬성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를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고 심지어 궤멸시키기로 작정한 인간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이 끼친 긍정적인 영향 못지않게 도킨스는 19세기의 독일의 역사비평학을 훌륭하게 평가하고 있기에 말이다. “신학자들, 특히 독일의 신학자들이 증거에 토대를 둔 역사적 방법을 사용하여 이른바 역사적 사실성에 큰 의문을 제기한 것이 바로 19세기였다.” 또한, 카메룬의 팡족 이야기를 헛된 이야기라고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이 믿고 있는 성서의 이야기도 팡족의 이야기만큼이나 황당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케임브리지의 신학자들을 향한 도킨스의 비판은 나름 공평하다. 한번 읽어보도록 하자. 다소 언짢더라도 말이다. 


      조상들의 시대에 한 남자가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처녀인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나사로라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고 죽은 지 오래되어 악취를 풍기던 나사로는 부활했다. 그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도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 40일 뒤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언덕 위로 올라가서 육신을 지닌 채 하늘로 사라졌다. 당신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와 그의 아버지가 그 생각을 알아차릴 것이고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 그는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당신이 나쁜 짓이나 좋은 짓을 하면 설령 아무도 모를지라도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볼 것이다. 당신은 죽은 뒤에라도 그런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처녀인 어머니는 죽지 않고 육신을 지닌 채 승천했다. 빵과 포도주는 사제의 축복을 받으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피와 살이 된다. 어느 객관적인 인류학자가 이런 믿음에 새롭게 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아직은 “다른 책”을 쓴 것처럼 보이지 않기에 종교, 특히 기독교와 관련해 어떤 입장인지 불투명하다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만일 그가 “다른 책”을 썼다면, 그 책은 적어도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각주:5] 


      전선은 무신론자 대 유신론자가 아니라 극단주의자 대 온건주의자로 그어야 한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미래 세계에 대한 꿈을 갖고 있고, 합리적인 이성과 판단력을 지닌 온건주의자들은 어떤 분야에 속해 있든지 연대해야 한다.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성차별적 편견에 기반한 극단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의 반인도주의적 행태에 함께 대항하여 보다 선한 사회와 제도를 만들기 위한 온건주의 연대를 꾸려야 한다. …… 이러한 선한 싸움은 결코 종교 대 과학의 싸움이 아니라 진보적 가치와 상생을 추구하는 정치인, 학자, 시민운동가, 과학자, 예술가, 종교인, 기업인, 사업가, 상인, 샐러리맨, 주부, 학생들이 연대하여 벌이는 싸움이다 …… 만사가 그렇듯이 종교도 긍정적인 역할이 있고 부정적인 역할이 있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이기의 도구일 수도 있고 파괴의 도구일 수도 있다. 그 판단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것이 인간의 자유와 해방, 진리와 도덕, 그리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꽃 피우도록 기여했는지, 아닌지로 판단할 일이다. 거듭 말하자면 모든 종교는 사악하지 않다. 모든 철학과 과학과 사상이 그러하듯이, 좋은 놈이 있는가 하면 나쁜 놈이 있다. 


      물론, 이런 추측에 대해 누군가는 도킨스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과학제국주의적이고, 그렇기에 고대 세계를 혹은 현재의 서구 이외의 여러 문화들을 서구적인 과학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평가하려는 경향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도킨스가 말한 바와 같이 구약의 신은 “불쾌한 주인공이자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자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어린 자식들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각주:6]일 수 있다. 그렇기에 굳이 부인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이러한 지적은 도킨스 그 자신이 살고 있는 문화와 고대의 텍스트인 성서가 갖고 있는 문화 간의 시대적 간격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면할 순 없다. 또한, 구약만 그럴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의 차이로 인한 문화적 격차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한국의 고대설화가 기록된 삼국유사를 보면 구약성서보다 훨씬 괴기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삼국유사는 출애굽이 텍스트로 기록된 시기와 현재의 중간보다도 훨씬 더 현재에 가까운 시기에 기록된 책이다.”[각주:7]라고 지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도킨스가 보는 것처럼 구약의 신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동일한 그런 존재로만 이해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흔히 주장되고 있는 것처럼, 구약에서 신의 형상이 폭군인 동시에 해방자로 드러나고 있다면 좀 더 다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도킨스는 단 하나의 관점, 즉 근대 이후의 계몽주의적 관점으로, 그것도 계몽주의 이신론자들이 가졌던 종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마저도 폐기처분해버리는 일종의 과학제국주의적 방식으로 읽어내고 있다. 때문에 텍스트를 읽는 방식이 단선적이고 과격하다는 인상을 면하기란 어렵다.

     때문에 도킨스를 비롯한 현재의 전투적 무신론자들을 향한 암스트롱의 지적은 꽤 의미 있게 다가온다. 종교가 일종의 퇴화된 상태로 계속 남아 있을 뿐이라는 소위 종교에 대한 19세기 진화론적 설명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도킨스에게 종교가 퇴화만이 아니고 과학 못지않게 진화하고 발전해 왔음을 역설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각주:8] 


      한편 무신론자들은 인간에게 굴종만을 요구하는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며 기존의 전통적 신 개념을 부정했다. 그들은 인격적 신 이해의 폐해를 잘 인식했다. 인격적 신 이해는 성서에 나타난 모든 신에 대한 묘사를 문자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율법준수만을 강요하는 폭군적 이미지의 신을 낳았다. 이처럼 인간에게 굴종만을 강요하며 협박하는 신은 1989년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처럼 오늘날 급속히 몰락하고 있다. 율법 수여자이자 통치자로서의 인격적 신은 이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신 이해의 부당성을 지적한 무신론자들의 종교 비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은 모두 기본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절대자 신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비록 그들의 신 개념이 여러 결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다. 더구나 그들의 종교적 신앙은 강요된 것이 아니었고 인간 모두에게 잠재된 본원적 종교성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바로 이 점을 무신론자들은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다. 


     위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도킨스의 공헌은 무시될 수 없다. 전통적인 신 개념이 더 이상 우리 세계와 맞지 않고 심지어 때론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잘 역설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도킨스는 종교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치는 못하고 있다. 바로 종교란 인간들처럼 일종의 야누스적 얼굴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신도 악이기에 없어져도 괜찮은 것이라면 인간 역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종교를 구성하는 근본적 주체들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급진적인 견해에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긍정적 세계관을 취하고 있는 도킨스가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리라곤 상상할 순 없다. 그렇다면 도킨스의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종교의 죽음을 혹은 신의 폐기를 말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신의 폐기를 과감하게 주문한다. 구시대의 인격신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도킨스의 지적처럼 인격신의 폐해가 적지 않기에 죽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즉, 인격신은 그 폐해가 크기에 무조건 폐기되어야 하는 그런 것일까 하는 점 말이다. 다른 점에서 보면, 역사를 통해 인격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처한 곤궁한 상황을 뚫고 나가도록 하는 기제가 되었던 건 아닐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맑스의 말 속에서 종교가 담긴 긍정적 의미를 애써 끌어내고자 한다면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암스트롱이 도킨스를 향해 던진 날선 비판은 꽤 흥미롭다.[각주:9] 


      그러나 이 모든 갈등이 전적으로 종교적인 탓만은 아니다. 신 무신론자들은 현대 사회의 경험의 복잡성과 모호성에 관해 놀라우리만치 이해 또는 관심이 부족하다. 그들은 비록 명백한 결점들을 지니기는 했지만 세 유일신교 모두 정의와 공감을 지니고 있음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적을 악의 전형인 것처럼 과장하는 이러한 경향은 신 무신론자들을 너무 쉬운 비판에 머물게 한다. 그들은 종교에 관해 자신들과 견해를 달리하며 어떤 근본주의자들보다 주류 전토에 가까웠던 불트만이나 틸리히 같은 신학자들은 절대 거론하지 않는다. 신 무신론자들은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프로이트와는 달리 신학적인 이해를 갖추지 못했다. 또한 이들은 윤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보수적이다.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잉거솔, 밀과 달리 신 무신론자들은 자신들이 개탄하는 잔혹행위들을 낳은 빈곤, 부당함, 치욕감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소 복잡한 사안을 때론 매우 단순하고 과도하게 환원시켜 버리는 그의 어법은 오늘날 과학과 종교 간에 생겨나고 있는 문제들과 관련해 어떤 진전을 낳기보다는 단절을 몰고 올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과학적 논법은 무조건 옳고 종교적 논법은 무조건 일단 깨부수고 보자는 논법은 너무 단순하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에 기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과학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문화의 영역에까지 과학을 과도하게 적용시키려는 그의 열정으로 인해 자칫하면 그의 이해는 서구과학에 근거한 문화제국주의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을 여지가 다분하다. 흥미롭게도, 구약에 대한 그의 혐오는 교회사적으로 보면 마르시온과 다소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마르시온과 달리 그는 신약에도 구약에 대한 비판을 확대해 적용하고 있다. 사실 반윤리적이고 폭력적인 측면이 신약성서에도 존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측면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시간의 격차라는 혹은 문화적 격차라는 점을 고려해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서구 과학주의적인 관점으로 고대의 텍스트를 재단해버리는 선입견은 텍스트에 대한 진정한 비판을 가로막는 행위로 전락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의 문제도 과학에 힘입는 현대의 문화가 고대의 문화를 바라보는 문제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킨스는 문화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쉽게도, 서구 백인 남성중심주의 문화가 일으킨 문제를 진지하게 묻는 포스트 모던에 대해서는 강력한 알러지 반응을 보이고 있기에 이런 물음을 물을 가능성이 그에게는 거의 남아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 역시 과학에 근거한 백인남성중심주의 문화를 나머지 세계에 혹은 고대 세계에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의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게다가, 도킨스의 지적처럼 종교란 늘 퇴화적이고 퇴행적인 일종의 지적인 불성실성만을 보여주는 그런 영역인지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인격신이 지적인 퇴행과 테러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관념인지를 말이다.  

      아무튼, 이제 정리하도록 하자. 일단 인격신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도킨스의 비판은 유효하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신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을 과감하게 폭로한 도킨스는 일종의 파르마콘적 처방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약을 처방하되 아주 센, 극약 처방을 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해서라도 세상을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게 만들려 했다는 점에선 분명 옳다. 하지만 "인간이 위로를 필요로 한다는 주장으로 돌아가서, 물론 그 말은 옳다. 하지만 우주가 당연히 우리를 위로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믿음은 다소 유치하지 않은가"[각주:10]라고 그의 답변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러한 단순한 답변은 "종교가 다시 돌아왔다. 종교는 이제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종교의 소멸이 그런 확신을 가지고 예고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오늘날의 세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맥그라스의 지적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치하고 마치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종교라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분명 도킨스는 적절한 대답을 제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껏해야 "인간이 종교를 필요로 한다는 같잖은 신화"[각주:11]라는 말 이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점에서, 도킨스의 인격신 비판은 한편으론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지만, 다른 한편으론 교육받은 백인중상층의 가치관, 그것도 다소 지나치게 과학주의적으로 경도되어 있어서 그 진단이 너무나 소박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종교관은 19세기의 진화론적 종교 이해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도킨스가 한 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 그 점에서 이 책은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할 법하다."[각주:12]는 『만들어진 신』의 번역자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행여나 그가 "다른 책"을 출판한다면, 앞서 본 것처럼 신학적 전통 모두를 그가 부정하고 있진 않기에, 또한 암스트롱과 김기석이 지적한 바와 같은 문제를 정직하게 다룬다면, 종교를 대하는 그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이런 그를 기대하는 일이 현재로선 다소 어렵다하더라도 말이다.  


ⓒ 웹진 <제3시대>



  1. 알리스터 맥그라스,『도킨스의 망상』, 전성민 옮김, 살림, 2007, p.22 [본문으로]
  2.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 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 pp.579~580 [본문으로]
  3. 크리스토퍼 히친스,『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승욱 옮김, 알마, 2012, pp.41~42 [본문으로]
  4.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p.357 [본문으로]
  5. 김기석,『종의 기원 신의 기원』, 동연, 2009, pp.99~102 [본문으로]
  6.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p.50 [본문으로]
  7. 김기석, 앞의 책, p.82 [본문으로]
  8.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Ⅱ』, 배국원․ 유지황 옮김, 동연, 1999, p.673 [본문으로]
  9.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정준형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0, pp.466~467 [본문으로]
  10.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p.586 [본문으로]
  11.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p.588 [본문으로]
  12. 리처드 도킨스, 같은 책, p.59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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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3]


라캉 : 주체의 파괴자인가, 해방자인가?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라캉을 읽는 두가지 시각 


      프로이트를 통해 시작된 정신분석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을 뿐더러, 여전히 누군가에는 생소할 수도 있는 분야이다. 그래도 프로이트만큼이나 라캉이라는 이름 역시 알만한 사람은 다 알만큼 잘 알려진 대중적인 인물이다.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었고, 대중적인 연설가와도 거리가 먼 “고집스런”[각주:1] 정신분석학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이름이 유명세를 탄 데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라캉이 20세기의 주목받는 사상가로 떠오르는 데에는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에서 급진적인 정치담론을 꾀하였던 조력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바디우나 지젝과 같은 학자들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라캉이 말하는 ‘욕망하는 주체’를 반자본주의를 향한 이론적 무기로 활용하는데 앞장 서왔다. 그리고 최대한 라캉을 좌파스럽게 채색하는 작업이 완성에 다다를 즈음에 라캉은 체제 순응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저항의 주체를 키워내는 배후 정도로 대중들에게 각인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캉이 치료중심의 과학이라는 정신분석학의 통념을 깨고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들고 정신분석학계에 새 전환기를 연 혁신적 인물일진 몰라도, 반자본주의 기치를 들고 정치적인 진보성을 뒷받침하는 이론가로 우대되는 상황은 석연찮아 보인다. 여느 흔한 프랑스 철학자들의 이력처럼, 68학생운동에 가담한 전력도 없고 마오주의에 한눈 판 적도 없는, 그저 개인적인 정신분석학자로서의 소명에 충실했던 그의 ‘비정치적인’ 행보안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담론을 뽑아낸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충분하다. 바디우나 지젝도 그러한 라캉의 비정치적 노선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놓으라는 맑스주의자들이 라캉으로부터 반자본주의적인 정치적 변혁을 꿈꾸며 그로부터 사상적인 자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라캉의 주체이론은 그러한 정치변혁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는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안고 라캉의 주체이론에 접근할 때에, 우리가 참고할 텍스트는 매우 제한적이다. 주체는 기표에 의해 형성되는 것임을 의식했던 탓일까, 그는 글쓰기에 대해 매우 인색한 편이었다. 그의 유명세를 고려한다면 그가 평생에 남기 책 ‘에크리(Ecrits)’[각주:2] 한권은 매우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 책안에 그의 지적유산을 아낌없이 남겨주었고, 그의 사상적 구조를 거의 완결된 짜임새로 소개해 주고 있다. 목차를 언듯 보면 다양한 주제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목차 안에는 나름의 질서가 잡혀있는데, 그 목차들의 배열이 함의하는 바를 친절하게도 색인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각주:3] 크게 분류해 본다면, ‘상징질서’, ‘에고와 주체’, ‘욕망의 해석’, ‘임상실험’, ‘인식론과 이데올로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주체를 이해하는 그의 이론전개방식에 따라 핵심개념들을 논증적인 순서대로 배열해 놓은 것이다. 에크리 안에서 소개되고 있는 주요 개념들은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이다. 가령, 주체의 삼단계 형성이론인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와 욕망, 향락, 환상과 같은 주요 개념들은 라캉식의 주체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용어들이며, 다양한 활자경로를 통해서 보급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을 통해 라캉은 주체를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근대적인 주체의 해체를 위해 어떤 방법론을 구사하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주체이론으로부터 어떠한 실천적인 담론이 도출될 수있는지를 평가해 보기로 한다.


데카르트의 <에고>에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으로

  

    라캉이 정신분석학을 통해 세우고자 했던 주체이론의 핵심은 근대계몽주의에 기초한 절대주체 개념을 허물고 주체를 새롭게 규명하고자 한 것에 있다. 이를 위해서, 라캉은, 의심없이 수용되어왔던 절대 주체의 이면에 무의식이라는 공간이 있었음을 발견해낸 프로이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점을 근대 서양철학의 중심을 이루는 의식 주체의 절대성의 위상을 흔드는 동력으로 사용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데카르트는 개인의 의식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자기동일성의 철학의 시대를 열었고, 사유의 주체(Cogito)가 절대 주체로서의 권위를 행사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결국 데카르트가 개인의 절대주체성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진리에 대한 판단을 보증함으로서 인식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판단주체의 확실성을 판명하기 위해 요구되어진 조건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철학이 인간 스스로가 자신이 존재한다는 의식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을 판단의 주체로 세우는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근거가 되었다.  

    라캉이 공략하려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사유주체의 절대성에 근거하는 철학의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데카르트적 개념으로 사용되는 ‘에고(Ego)’ 가 형성되는 과정을 ‘거울단계(Mirror Phase, 1936)’에서 설명한다. 거울단계란, 신체를 파편화된 상태로 인식하던 신생아가 거울에 투영된 자신을 경험함으로서 자신을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인식하게 된다는 데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거울은 유아에게 형태를 부여하고, 발달을 인도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허구적인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서 이뤄진다. 유아가 자신을 최초로 통일된 형태로 경험하는 순간은 사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인식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외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로서 인간의 주체가 형성되는 첫 시도는 허구와 소외의 길로 들어서게 된 셈이다. 거울의 투영을 통해 인식된 허구적인 자신의 정체를 라캉은 자아(Ego)라고 부르는데, 이는 진정한 주체로 발전하기 이전의 원초적인 형태의 주체라고 볼 수 있다. 라캉은 거울단계를 통해서, 에고는 애초에 허구적인 이미지에 의해 잘못 인식된 자기동일화의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허구적 이미지에 대한 오인,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는 에고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서, 데카르트의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 인식의 동일성으로서의 주체가 실제로는 취약한 근거위에 세워져 있었음을 밝혀내려 한다. 자아에 대한 의식은 거울 속에 비친 이미지에 자신을 스스로 투영하고 동일시함으로서 구성된 거짓된 주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의심할 수 없는 진리라고 믿어왔던 인식의 주체와 판단의 주체 사이의 동일성이 라캉의 입장에서는 고작 유아적인 판단착오, 착시현상일 뿐이다. 데카르트는 의심없는 주체로서 에고를 발견하고 환희에 찼을지 모르지만, 라캉은 사실 그 에고란 걸음마도 떼지 못했으며 여전히 발달과정중에 있는 미성숙한 주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일축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울단계는 허구적인 주체만을 생성하는 부정적인 측면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주체의 원초적인 형태가 결정되는 단계이므로 거울단계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결코 아무 것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다시말해서, 거울단계를 거칠 때에만 사유의 주체와 사물은 어떠한 식으로든 관계 맺어질 수 있다. 비록 오인과 왜곡에 근거하지만, 현실세계를 인식하는 불가피한 방식을 습득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라캉의 주체는 데카르트의 주체와는 정반대의 명제에 다다른다.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내가 없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각주:4] 이로써 라캉은 거울단계 이론을 통해 데카르트적인 ‘에고’로서의 절대주체의 권위를 박탈시킨다. 그 대신 라캉은 자아의식이 내준 ‘생각하지 않는’ 공백의 정체는 프로이드적인 ‘무의식의 주체’였음을 보여주려한다.

    거울단계를 통해 라캉은 데카르트 철학 위에 세워진 절대주체의 개념을 비판함과 동시에, 두가지 중요한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외부(타자)에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외부(타자)를 통해 투영(욕망)된 자신에 대한 인식은 언제나 실재와 다른 허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주체의 원초적인 형성이 이러한 조건위에서 시작되었다면, 인간의 주체성이라는 것은 다음 단계에서도 결국 이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즉, 거울단계의 다음 단계로서 기표가 지배하는 상징계의 질서에 주체가 들어가면, 끊임없이 기표 위를 배회하는 욕망은 충족되지 못한 채 결핍의 형태로 무의식이라는 공간에서 남아 욕망하는 주체를 구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임을 말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라캉은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완전히 뒤짚어 엎으려는 것 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를 고스란이 수용하고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는 것으로 의심을 절대적인 진리를 찾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방법론적 회의라고 볼 때에, 라캉은 반 데카르트적이지 않고 오히려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더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없는 근거가 되는 ‘생각하는 주체’가 진실이라는 확신에서 멈춰섰지만, 라캉은 그것이 정말로 의심없는 사실인지 프로이트를 무의식을 끌어와 한번 더 집요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울단계이론은 근대적 주체가 생산되는 진원지에 대한 라캉의 일차적인 반격의 장이 되었고,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이에 대한 유용한 공격의 수단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주체 형성에 결정적인 무대가 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가 무의식의 본질을 적절히 파헤지지 못한 한계를 동시에 지적한다. 이에, 라캉은 기표가 사물들을 언어의 법칙에 종속시켜 기의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에 추가하여, 언어처럼 구조화 되어 있는 무의식이 지배하는 상징계의 질서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적 주체>에서 헤겔의 <욕망하는 주체>로


    라캉이 주체 개념의 정립을 통해 도달하려는 일차적인 목적지는 데카르트적 주체의 전복이다. 이 전복은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을 통하여 시도되었다. 그러나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그대로 차용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으로 전유하기를 선택한다. 라캉은 언어의 구조를 도입하여 주체가 어떻게 무의식이라는 공간안에서 언어, 즉 기표(significant) 에 의해 지배되는지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프로이트에 대한 라캉의 재해석의 핵심이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언표 안에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기표라는 상징계의 질서에 편입되는 순간 무의식은 자신의 결핍을 무수한 기표로 끊임없이 대체하는 순환구조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 함축돼 있는 것이다.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 기표의 자리바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실재(Real)이지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 주체는 실재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 실재는 환상이라는 형태로만 주어질 뿐이다.  

    라캉이 주체를 프로이트의 무의식적 주체에 머물지 않고, 욕망하는 주체로 보는 데에는 헤겔이 인간을 ‘욕망하는 주체’로 이해하는 헤겔의 욕망론에서 발견된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을 ‘욕망하는 주체’로 이해하는데, 주체의 욕망은 언제나 타자의 인정을 받아 자신을 확인하려는 욕망이며, 이는 모든 주체들의 욕망이므로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이 논법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보여준 방식과 그대로 일치한다. 타자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얻으려는 투쟁에서 승리자는 주인이되고 패배자는 종이 된다.투쟁의 결과에 따라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갈려지지만, 자리가 결정된 이 후에 더 이상 노예는 주인으로부터 타자로 인정되지 않기에 주인은 인정받을 수 있는 욕망을 노예로부터 얻지 못하게 되고 마침내 위치의 역전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인간은 욕망의 대상이 사라지게 됨으로 욕망하는 주체이기를 부정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헤겔의 욕망론이 ‘자기 동일성의 확보’라는 변증법의 최종 목적만을 제외한다면, 욕망의 주체로서 인간을 설명해 내는 적절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라캉의 근대적인 절대주체를 흔들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 드러난다. 헤겔은 변증법의 마지막 단계인 긍정적인 ‘합(Synthesis)’을 자기 동일적인 주체성을 증명하기 위한 논증 단계로 사용하지만, 역으로 라캉은 변증법적으로 놓인 타자 사이의 욕망 관계가 결국은 충족될 수 없는 부정적인 ‘합’으로 결론지어 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라캉은 헤겔 자신의 변증법을 오히려 인간의 절대주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용한 것이다. 헤겔의 자신의 칼로 헤겔 자신의 목을 겨누도록 만든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라캉은 데카르트의 절대주체 개념을 허물기 위해서, 데카르트가 판단 의식의 주체에 대한 회의와 의심을 끝까지 밀고나간 것을 그대로 자신의 거울단계이론에 적용하여 마침내 인식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오히려 외부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이렇게 볼 때, 헤겔의 절대주체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데카르트의 주체를 공략하는 데에서도 같은 방식이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도적이고 주도면밀한 전략적인 방법론의 선택이라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주체의 포기인가, 해방인가?


    라캉은 거울단계(상상계)와 상징계를 통해 자아 의식의 절대주체의 탄생을 직접 주도하였고 이를 되돌릴 없게 못박아 두었던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와 헤겔의 변증법을 그들의 무기로 하나씩 제압해 나가는 독창적인 싸움의 기술을 선보였다. 마치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제갈량의 빈 배로 쏜 엄청난 수의 화살을 그대로 회수하여 이를 반격의 기회로 삼은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보면, 라캉은 근대적인 주체의 개념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 오히려 데카르트와 헤겔을 경유하여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포스트모던적인 주체를 새롭게 구성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있다. 다시 말해, 라캉은 반 근대적인 급진적 해체주의라기 보다 근대를 적절히 후기근대의 발판으로 사용할 줄아는 안목을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비록 라캉은 근대적 주체로 구성된 세계관을 탈중심화하는 데 기여하였지만, 그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라캉이 주체를 기표의 결과물내지 대타자의 효과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극단적인 해체론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편견중의 하나이다. 주체를 공중분해시키고 상징질서의 파생물로 전락시킨다면 주체를 역동적인 해방역량으로 수용될 수있는 가능성은 애초에 차단되고 말것이다. 또한, 라캉이 말하는 오이디푸스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욕망하는 주체를 기정사실화 하게 될 때에는 국가나 지배권력과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주체를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회의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들뢰즈가 라캉을 비판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들뢰즈의 비판의 잣대로 보자면, 라캉은 인간의 저항적인 주체성을 말살시키고 주어진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노예로 길들이는 반동분자에 다름없을 것이다.  

    라캉의 주체이론의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그를 섣불리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또한 욕망이 가지는 이중적인 성격때문이다. 라캉의 주체이론에서, 기표에 의해 연기되는 무의식이라는 구조에 갇혀있는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핵심으로 파악한다면 라캉은 반동이되지만, 도달할 수 없는 욕망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달려듦으로서 상징화되는 주체에 대해 물러서지 않고 저항하는 인간을 라캉의 매력으로 볼 수있다면 라캉은 반대로 급진주의적인 혁명이론가로 재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라캉을 볼지는 결국 해석자에게 달려있는 문제이다.  



ⓒ 웹진 <제3시대>

  1. 라캉은 죽기전에, “고집스러웠던 저는 이제 갑니다”라는 유명한 말로 생애를 마친다. 68혁명의 고조된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초연한 채 주체의 결핍을 응시하는 태도만이 변혁의 진정한 출발점임을 ‘고집스러운’ 태도로 일관해온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문으로]
  2. Jacques Lacan, Ecrits: The First Complete Edition in English, tans. Bruce Fink (W.W. Norton: New York &London, 2006) 라캉의 저작에는 ‘에크리’ 이외에 ‘세미나(The Seminar)’ 시리즈도 있지만 녹취된 강의를 재구성하였다는 점에서 ‘에크리’만큼의 정교함은 덜하다고 평가한다. [본문으로]
  3. J. Lacan, Ecrits, 851 특이한 점은 색인이 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어 있지 않고 주제를 기준으로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라캉이 에크리를 그의 사상을 한 장의 도면에 완전히 그려내려는 의도에서 공들여 집필구성되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본문으로]
  4. Ecrits, 430. 라캉은 이를 다른 방식으로 다시 표현한다. “나는 나의 생각이라는 장난감( plaything, 데카르트의 ‘사유’를 격하시켜 표현: 필자 주)이 있는 곳에 없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곳에 내가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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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과학' 그리고 '종교'


이상현

(GTU 조직신학 박사과정)


 

   14세기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창궐했고, 수 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각 도시를 관할하던 통제기구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거리에는 전염병으로 죽어간 시신들이 나뒹굴었지만, 많은 가족들이 해체되었기 때문에, 죽은 자들을 위한 장례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사회 안전망은 붕괴되었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 나머지 비이성적인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1923년, 일본 간토(関東)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진은 수 십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간토지방은 생필품의 공급마저 끊어져 하루하루의 생존조차 불분명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분노를 표출합니다.

   재앙이 사회 전체를 강타할 때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감정 중 하나는 분노입니다. 이 분노는 처음엔 자신들의 평온한 일상을 앗아간 외부 재앙을 향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이 구체적인 누군가로 바뀌게 됩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여전히 진행중인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곧 분노를 표출할 누군가를 찾아내려 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항상 그 사회 안에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번졌을 때 사람들이 발견한 분노의 대상은 소수인종이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 볼 때, 전염병과 유대인은 그 연결고리가 희박합니다. 하지만 분노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유럽인들은 손쉽게 이 연결고리를 만들어 냅니다. 바로 ‘유대인들이 식수에 독을 풀었다’는 루머였습니다. 이 잘못된 루머로 인해 200여 개의 마을에서 수천 명의 죄없는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간토 대지진에서도 아주 유사한 결과가 이어졌습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를 일삼는다’는 루머가 퍼졌고, 역시 수천 명의 재일교포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와 같이 사회가 통제기능을 상실하고 혼란에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정상적이지 않은 그 상황에 대해 분노합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방향은 그 상황을 야기한 재앙 자체나 그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시스템을 향하기보다는, 그들이 함부로 분노해도 괜찮은 사회적 약자를 향하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왜 사회적 약자가 분노의 대상이 되는지는 이 글의 말미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가 혼란해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에, 사회적 약자는 가장 먼저 분노받는 대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예는 유럽의 흑사병이나 간토 대지진 외에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서기 64년 로마에 대화재가 났을 때, 네로황제와 로마인들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함으로써 재난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였습니다. 9.11 테러를 당했을 때 미국인들은 이슬람인들을 향해 그들의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이 분노에 대해 이슬람인들은 다시 유대인들과 미국을 향해 더 큰 분노로 되갚아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연재해나 테러를 통한 재난상황이 아니어도 사회가 불안정해지면,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적개심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이때의 감정은 분노보다는 ‘혐오’라 불립니다. 가령, 1차 대전 이후, 독일이 경제공황에 빠졌을 때 그 분노는 유대인들을 향했고, 그들에 대한 혐오와 탄압은 히틀러를 통해 극대화됩니다. 그리스 경제위기로 유럽의 경제가 동반하락하자 그들의 분노는 이슬람 이민자들을 향합니다. 또한 16-17세기에 벌어졌던 마녀사냥은 지역사회의 갈등과 빈곤의 문제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문제는 당시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던 미망인들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최근 한국사회도 비슷한 일이 발생합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실업이 증가하고 빈부격차가 커지자, 한국인들의 분노와 혐오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일자리와 관련지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그 분노가 표출되었고, 곧 이 분노는 특정지역이나, 특정외모, 노인, 장애인,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집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 혐오에 관한 문제는 커다란 사회갈등으로 진행 중입니다. 사회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은 보호를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혐오의 감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 혐오는 가시적인 분노로 표출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제적인 위기가 닥치면, 이 혐오감정은 구체화되어 테러와 폭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혐오와 분노는 불안정한 사회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 사회에 속한 구성원들은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비정상적인 사회 안에서 어떻게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또 다른 키워드가 바로 ‘과학’입니다. 과학은 경험성과 동일성, 합리성을 바탕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사회적 구성원들 다수의 신념과 배치되더라도 그 이성적 논리를 근거로 올바른 판단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실제로 과학의 역사는 이러한 과학적 판단의 우월성을 여러 번 증명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을 때,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와 같은 과학자들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고, 후에 그들의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되었습니다. 기상학자였던 베게너(Alfred Lothar Wegener)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동쪽 해안선과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선이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현재의 대륙들은 오래 전에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Pangaea)에서 갈라진 것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시엔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베게너의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유전학의 멘델, 면역학의 제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등, 과학적 판단이 당시 다수의 편견을 깬 예는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과학은 비정상적인 사회 안에서도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도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을 통해 우리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요? 아무리 대중들이 과학의 합리성을 인정한다하더라도, 과학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푸는 만능열쇠로 인정되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플라톤의 ‘철인(哲人)정치’나,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는 차치하더라도, 과학적 사고가 다수의 대중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입니다. 하지만 20세기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비이성적인 사회 안에서 혐오와 분노가 사회적 약자를 향하고 있는 현상을 여전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 사회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주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과학적 사고 대신에 혐오와 분노의 감정을 약자에게 표출하는 비합리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오늘날의 과학은 과거의 잘못된 지식이나 비합리적인 행동들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과거 유럽에 흑사병이 퍼졌을 때, 유럽인들의 대처는 오늘날의 눈으로는 비합리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흑사병이 오염된 공기로 인해 일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허브잎을 태워 향기로 공기를 정화시키려고 했습니다. 또한 잘못된 의학적 지식 아래, 에머랄드 가루를 갈아서 먹기도 했으며, 감염되지 않은 사람의 소변이나 대변을 몸에 바르고 먹기도 하는 치료법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의학지식은 이러한 기행(奇行)적인 대처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식수에 독을 넣었다’는 루머조차도 오늘날에는 과학적 조사로 밝혀낼 문제이지, 아무런 증거없이 그 누군가를 학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이 우리사회에 기여한 최고의 공헌은 ‘미신(迷信)’에 대한 타파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미신을 없애듯’ 제거할 수는 없는 걸까요? 사회가 불안정할 때 나타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사실 설명하기 어려운 심리학적인 감정입니다. 저는 이 약자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생존을 위한 잘못된 미신’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오자서(伍子胥)는 원수인 초(楚)나라 평왕(平王)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고, 마침내 초나라를 정복하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채찍으로 300번 내리치며 복수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복수를 마친 후에 밀려오는 그 허무함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는 오나라의 적국이었던 월(越)나라를 미워하는 것으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오자서에게 적개심 자체는 자신의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었던 겁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감정과, 오자서가 삶의 의미를 갖기 위해 품었던 적개심이 다른 감정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약자에 대한 혐오 감정은, 불안정한 사회 안에서 스스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미신’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확인하고 그들의 고통을 관전함으로써, 불안정한 자신을 애써 안정된 것처럼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학적 방어기제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종교’라는 마지막 키워드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종교는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신앙공동체’를 뜻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종교는,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기존의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의 신념을 공유하는 ‘미신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이 미신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약자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심지어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며 약자의 고통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혐오가 정당하다는 포교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과학의 대화는 단순히 양쪽의 세계관을 조율하고 공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혐오라는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과학은 19세기 이후 ‘과학만능주의’라는 오만함을 드러내며,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낙관했지만, 실제로 20세기 이후 약자에 대한 비이성적인 혐오와 분노가 사회전반을 지배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혐오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기득권은 이러한 혐오 감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조차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우리사회의 혐오의 미신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여전히 많은 교회들은 동성애자나 장애인, 여성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미신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몇몇 대형교회들은 우리사회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종북’이나 ‘좌파’와 같은 낙인을 찍으며 혐오감정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와 과학의 대화는 약자에 대한 혐오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혐오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와 과학의 대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 문제에도 폭넓게 관여할 방법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결국 혐오를 숭배하는 미신종교를 극복하는 것은, 과학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안에서 혐오를 극복하는 사랑의 메시지가 교회를 통해 선포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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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접기


'왜 항상 벽면에만 걸리는 걸까?' 


 캔버스를 접게된 계기는 클래식한 회화가 걸리는 위치에 의문을 가지면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다시 주목하게 된 곳은 전시공간의 '모서리'이다. 


 이전 작업에서 종이의 접은선 부분과 건물의 내부 공간 모서리에 오리가미의 선을 넣어 그 접히는 지점을 강조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렇게 강조하던 행위는 그 부분이 평면 공간에서 입체 공간, 건축 공간에서 종이조각 공간, 현실 공간에서 상상 공간으로 변하는 연결지점으로서 의미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Folding 프로젝트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림이 걸리는 벽면이 아닌 가장자리나 구석, 기둥에 마치 종이를 접듯 캔버스를 접어 끼워 넣거나(자르거나) 혹은 모서리에서 약간 틀어져 나오도록 설치를 했다. 

종이의 물성을 실험하던 초기 작업에서부터 사용하던 방식인 ‘접기’를 통해 회화의 공간인 평면 캔버스는 삼차원의 입체 공간으로 변형된다. 


건축가에 의해 ‘접혀진’ 전시장 내부공간에 접혀진 캔버스를 설치하여, 반듯한 벽면만 바라보며 그림을 감상 하도록 강요 당해 온 관람객에게 한번쯤 시선의 방향을 살짝 비틀어주는 일탈의 경험을 유도하고 싶다. 



Folding Canvas_10호 S 변형 캔버스에 아크릴(2013)



Folding on the folded(접혀진 공간, 접혀진 캔버스)_200호 변형캔버스에 아크릴,테이프 (2014) 



folding&cutting canvas(접혀진공간, 접고 오려진 캔버스)_100호 변형캔버스에 아크릴,테이프 (2014) 




 


 

  

정승원 作 (설치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부르주 국립 고등 미술학교 졸업, 경기창작센타 입주작가 

개인전 | 2014 해석의 재해석, 경기창작센터 

           2011 PLI, Eapace PRIVAT, 디종, 프랑스 

그룹전 | 2015 알 수 없는 그 무엇? 하하하, 전라남도 도립 옥과미술관 

           2014 루와얄 섬 레지던시 보고전2 금천예술공장 

프로젝트 | 2015 프롬나드(황금산프로젝트), 아르코,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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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이희승*



  학회 참석 차, 런던을 다녀 온 지 일주일만에 영국에서 들려 온 끔찍한 소식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바로, 노동당의 젊은 여성 국회의원인 조 콕스가 백주 대로에서 한 극우주의자, 혹은 극우 성향을 가진 정신병자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일명 브렉시트라고 일컬어지는 영국의 EU 탈퇴의 찬반을 놓고 벌인 뜨거운 논쟁과 과열된 정치적 대립이 이렇듯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민낯을 드러내고, 사회운동에서 의회로 선한 영향력을 막 넓혀 가던 젊은 여성 정치인의 생을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잔혹하게 끝장내었습니다. 유월 초였지만 아직 매서운 기운이 남아 있던 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를 활기차게 지나던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거대하고 불균질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런던 거리의 잔상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접한 조 콕스의 피살 뉴스는 휴머니티, 공동체 그리고 이 모두를 집어 삼키는 신자유주의의 경제 논리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영화를 읽고 정신을 분석하는 일을 직업삼은 이가 복잡한 경제 논리와 정치 공학으로 파악해야 하는 브렉시트 논쟁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불거져 나온 대립항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오래된 영화 한편을 다시 꺼내 보기로 했습니다.


  여든의 나이로 올해 두번째 칸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영원한 좌파 켄 로치 감독의 1995년도 작품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이 바로 오늘의 영화입니다. 칸 영화제 대상을 두번 수상한 감독은 열손가락으로 꼽는다니 켄 로치 감독의 기나긴 여정에 대한 칸의 존경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수상이었습니다. 물론,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별로 새롭지 않은 미니멀한 텔레비젼 영화 형식에다가 지난 40년간 지치지도 않고 표현해온 좌파적 세계관을 담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의 대상 수상을 놓고, 유럽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에게만 유독 편파적인 칸의 심사 기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 영화가, 그리고 켄 로치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휴머니즘을 핵심으로 한 좌파적 세계관이 유럽의 문제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 – 그것이 어떤 종류의 노동이던간에 – 으로 생존을 감당해야 하는 모두를 향한 노감독의 변치 않는 애정은 단순히 정치색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힘과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세상 힘든 줄 모르고 천방지축이던 이십대 초반의 저에게 이런 확신을 준 영화가 바로 이름조차도 너무 정직한 <랜드 앤 프리덤>이었습니다. 영국 노동자 데이빗의 눈으로 목격한 스페인 내전의 기록인 <랜드 앤 프리덤>은 ‘나, 내 가족, 내 나라가 우선’이라는 이기적이고도 폭력적인 명제를 훌쩍 뛰어 넘는 타인들 사이의 이해와 연대를 처절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데이빗의 고독하고 늙은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사람이 두셋만 들어서도 비좁게 느껴지는 궁색한 아파트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데이빗은 병원으로 향하던 응급차 안에서 말없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남겨진 유품을 정리하던 이십대의 손녀는 거실 한 켠에 놓인 낡은 가방안에서 오래된 신문기사, 편지 뭉치, 사진들 그리고 빨간 머플러에 담긴 정체 모를 흙 한줌을 발견하지요. 그로부터 손녀는 관객을 이끌고 할아버지의 젊은 날을 향해 시간여행을 시작합니다.    


    1936년 프랑코 장군의 깃발 아래 모여든 파시스트와 왕정주의자들은, 국민 선거로 정당하게 선출된 국민의 대표인 공화주의자들을 무력으로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세계 각지의 공산당, 노동조합, 무정부주의 단체에서는 스페인 땅에서 흔들리고 있는 인간 존엄과 자유를 함께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태기로 하고, 영국 공산당 당원이자 실직한 노동자였던 데이빗도 리버풀에서 이 소식을 듣자마자 무작정 스페인으로 향합니다. 영화의 초반은 이 순진한 혁명주의자들이 인종, 국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치기와 우정으로 서로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아기자기하게 그립니다. 혁명은 장밋빛이고 연대는 순조롭고 파시스트와의 전쟁은 귓가를 간지르는 총성으로만 느껴질 뿐이지요.  


  영화가 삼분의 일 지점을 지나는 순간, 세계 각지에서 몰려 든 젊은이들은 타인의 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자신들의 희생이 결코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알 수 없는 지옥같은 혼돈과 난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조금전까지 담배를 나눠 피우던 친구가 죽음을 준비할 새도 없이 쓰러지는 첫 전투는 모두를 두려움과 비통함 그리고 혼란으로 몰아 넣습니다. 산도 물도 사람도 낯선 스페인의 어느 시골 마을을 파시스트의 손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젊은 혁명주의자들의 첫 승리는 이제 마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입장 속에서 지루한 논쟁으로 치환되고, 땅주인으로부터 토지를 부여받아 농사를 지어온 소작인들, 토지를 받지 못하고 부역만으로 살아 가던 농부들, 주인집에서 평생을 봉사하던 하인계급들은 모두 제각각 마을 지주의 재산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를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입니다. 혁명군들 스스로도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을 놓고 편이 갈라지기 시작하지요. 혁명의 정신을 다림줄 삼아 이 작은 소동은 잠시 소강 상태를 맞이하지만, 이 난장토론은 혁명군들의 마음에, 어쩌면 프랑코 군대와 벌이는 전투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역사적 사실과 맥락을 함께 합니다. 스탈린의 개입으로 혁명군은 반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을 겨누죠. 스탈린의 무기 원조와 병력 지원을 받아서 조직적으로 전쟁을 해야 한다는 스탈린주의자들과 혁명은 조직화되고 권력화되는 순간 내부에서부터 와해된다는 순수 혁명주의자들은 끝내 서로를 밀어내고 적이 되어버립니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확신과 믿음을 바탕으로 이뤄낸 인간주체적인 연대는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실질적인 욕망 앞에서 흔들리게 됩니다. 공산당원이자 혁명주의자였던 데이빗은 이 두 편을 모두 오가며 자신이 서야 할 곳이 어딘지를 찾습니다. 결국 목표를 위해 정신을 희생하는 스탈린주의자들의 잘 정렬된 진지를 빠져 나와, 경제논리보다는 사람의 노동과 애씀을, 정치권력보다는 사람사이의 연대를 중심에 둔 혁명주의자들의 초라하지만 따뜻한 병영으로 돌아 옵니다. 비극적인 이 영화의 말미, 두 진영의 반목으로 내 몸처럼 애틋한 동지들이 죽어 나가고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데이빗에게 스페인은 남의 땅, 그리고 스페인의 자유는 남의 자유가 되어 버린 듯합니다. 쓸쓸히 영국으로 돌아왔을 데이빗의 모습,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로써 ‘번영과 발전’의 시대를 살아낸 데이빗의 삶을 영화는 과감히 생략합니다. 데이빗이 대지로 돌아 가는 마지막 장례식 장면에서 긴 세월동안 침묵해야 했던 할아버지 삶의 구심점을 이해한 손녀딸은, 젊은 날 데이빗이 연인 블랑카를 스페인 땅에 묻고 돌아서면서 그녀의 무덤에서 가져온 한 줌의 흙을 데이빗의 관 위에 뿌립니다. 그녀의 땅과 그의 땅, 그리고 그녀의 자유와 그의 자유는 한치도 다를게 없는 한몸, 한뿌리라는 켄 로치의 선언이겠지요. 늙은 동지의 무덤가에 선, 백발이 성성한 몇몇 노인들은 데이빗이 젊은 손녀의 손에 남겨 놓은 붉은 머플러를 보면서 주먹 쥔 손을 짧고 힘차게 들어 올립니다. 다시 볼때마다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는 이 마지막 장면은, 1939년 끝나버린 스페인 내전에서 남겨진 ‘나와 타인’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 데이빗의 삶을 통과해 1995년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의 피날레에서, 브렉시트로 분열된 2016년의 영국땅에서, 그리고 자유시장의 방패 뒤에 숨어 타인의 땅과 자유를 나의 소유로 귀속하려는 탐욕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다시한번 진지하게 성찰되어지기는 바라는 켄 로치의 유산이 아닐까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진리를 구현할 수 있는 네가지 영역으로 사랑, 예술, 정치, 과학을 꼽습니다. 영화 읽는 사람으로써 이런 영화를 볼때마다, 마음을 다해 나의 문제와 타인의 문제에 관한 최선의 답을 구하다 보면, 이 네가지 영역 모두를 아우르는 – 즉, 뚜렷한 정치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과학의 객관성과 집요함을 잃지 않으며 소박한 예술적 감흥을 통해 인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애정을 소통하는 – 진리에 가까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영화적 형식이나 주제로 볼때 그다지 화려하거나 새롭지 않고, 주제를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미학적인 의도나 계산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 영화지만 꼭 한번 다시 보시기를 마음을 다해 감히 권합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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