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그 상을 수여할 자격이 없다

“소녀 말랄라”와 노벨평화상


조민아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교수)

 


열 여섯살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 

파키스탄의 스와트 계곡에서 살던  말랄라는 2009년 열 한살의 나이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의 여성 탄압과 교육권 박탈을 비판하는 글을 BBC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파키스탄 정부군과 탈레반의 전투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잃지 않았다. 2012년에는 무장괴한의 습격을 받아 머리와 목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전세계인들을 향한 말랄라의 메시지는 오히려 더 힘차고 단호해졌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 한다. 교육은 그들을 겁먹게 한다.” 말랄라의 말이다. 이 멋진 여성이 201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나는 말랄라의 수상 소식이 불편했다. 그녀의 용기와 업적이 찬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다. 여성교육권을 위한 그녀의 신념은 더 널리 알려져야 하고, 더 많은 이들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그녀에게 상을 수여하는 손길들이다. “그들”은 과연 말랄라에게 “평화상”을 내릴 자격이 있는가? 


노벨평화상이 “평화상”으로서의 공신력을 의심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다각적인 후보 추천과 심사과정을 거치지만, 평화상 수상자를 최종 결정하는 이들은 노르웨이 국회가 임명하는 5명의 위원들이다. 중립을 최대한 유지한다고는 해도 국제정치의 알력과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노르웨이는 미국과 정치적, 경제적 협력관계를 돈독하게 맺고 있는 대표적인 우방 국가이다.  국방 장비와 방위력에 있어서 미국에 적지 않은 의존을 하고 있는 노르웨이로서는 선정 과정과 심사에 끼치는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다. 


역대 가장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던 수상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외교관 헨리 키신저이다(1973년 수상).  그는 베트남전 당시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베트콩 사이 협상을 주도하여 평화조약을 맺게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정작 협상을 주도한 미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공산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전대미문의 학살전을 벌여 수백만명의 생명을 살상한 전쟁의 주범이다. 맹폭과 민간인 학살, 고엽제 살포 등 미국이 벌인 전쟁범죄는 키신저가 평화상을 수상했던 그 당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은 전쟁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해 키신저와 공동 수상자로 지명된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레득토(黎德壽, 여덕수)는 수상을 거부했다.  


노벨 평화상 논란이 정점을 찍은 것은 버락 오바마에게 상이 수여된 2009년이었다. 오바마는 “국제외교와 다자간 대화,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지, 또 핵무기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치적 태도(공로나 업적도 아니고)”를 인정 받아 대통령직에 오른지 불과 1년이 되기도 전에 평화상을 수상했다. 수많은 평자들이 수상 선정 이면에 작용했던 미국의 영향력을 짚어 내며 노벨 위원회가 자충수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화를 향한 의지가 돋보였다던 오바마는 이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소말리아, 리비아,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에까지 무차별 공습을 퍼부으며 무려 7번이나 전쟁을 감행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던 이전의 형태에서 벗어나  “이슬람주의 세력”의 주요 활동지역을 타겟 삼아 미국을 위시로 다국적 국가들이 참여하여 전격 소탕작전을 벌이는 형태의 전쟁을 제안하여 중동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기도 했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노벨 평화상을, 말랄라가 수상했다. 말랄라의 고향 파키스탄에서의 반응은 엇갈린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를 비롯한 정부 각료들은 말랄라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축사를 보냈지만, 파키스탄 언론들은 수상 소식을 전달하는데 미온적이었다. 가장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이들은 물론 탈레반 강경세력들이지만, 탈레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파키스탄인들 또한 말랄라의 수상 소식이 마냥 자랑스럽지는 않은 듯이 보인다. 대표적인 이유는 파키스탄에 넓게 퍼져 있는 서구에 대한, 특히 미국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1950년대 이후부터 미국과 우방 관계를 맺고 경제적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두 국가의 관계는 조지 부시 전 미대통령이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엇갈리기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의 성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두 국가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갖게 된 것이다. 파키스탄 집권세력이 지속적으로 친미 성향을 유지한데 반해, 민중들은 미국 정부와 파키스탄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싸움터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실제로 지난 10여년 간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으로 야기된 일련의 폭력 사태들로 희생된 파키스탄인은 3만명에 이른다. 그중 거의 삼분의 일이 자국 군인의 손에 죽었다. 파키스탄인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내전을 겪으며 삶을 파괴당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오점을 남겼다. 파키스탄의 주권을 무시하고 이 나라 북서부에 지상군과 무인기(드론 Drone)를 투입하여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한 것이다 (“Will I be next?’ US drone strikes in Pakistan,” Amnesty International USA Report, 2013년 10월). “해당지역의 급격한 탈레반화”를 막고 “탈레반 무장세력 소탕”을 목적으로 한다는 미국의 드론 공습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정세를 감안한다면, 이번 수상 결정에 미국의 입김, 특히 “이슬람 세력의 이미지를 악화하여 중동지역에 대한 서구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말한 일부 파키스탄 언론 (“The antagonism towards Malala in Pakistan,” BBC News, 2014년 10월 10일)의 지적을 그저 과장된 음모론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다.  파키스탄인들이 갖고 있는 불편한 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말랄라에 대한 서구의 태도이다. 알다시피, 미국과 유럽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탈레반의 폭력을 거부해 온 이 젊은 여성에게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서구 언론은 “말랄라와 같은 착한 파키스탄인”들과 “이슬람주의에 경도된 나쁜 파키스탄인”들을 분리하는 수사들을 끊임없이 사용해 왔다. 그들은 말랄라가 어떻게 “악의 세력”에 맞서 싸워 왔는지를 영웅담으로 만들어 퍼뜨려왔고, “사악한 이슬람주의자들”의 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말랄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우월한 의학기술을 총동원했고, “무장괴한으로부터 언제 또 습격을 당할지 모를”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든든한 경호원 역할을 자처해 왔으며, “위험하고 가난한 고향”에서 이루지 못한 그녀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마치 이런 “인재를 썩히고 방치하고 있었냐”고 핀잔이라도 주듯 각종 국제 회의의 연사로 초청해 그녀의 얼굴에 스포트라이트를 터뜨리고 있다. 


이 이야기 구도,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무지와 폭력의 미개한 세상에서 고통 받는 원주민 소녀를 구해내는 백인들”의 이야기. 여러가지 모양새로 각색되어 디즈니 만화에도 자주 등장해 온 진부한 멜로 드라마.  탈식민 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은 그 낡은 서사. 찬드라 모한티(Chandra T. Mohanty)의 논문 “Under Western Eyes: Feminist Scholarship and Colonial Discourse”는 이러한 이야기 구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심층 분석한다. 


모한티는 “제 3세계”—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여성들을 “가부장제의 희생자들”로 일반화하여 묘사하고, 반대로 이 지역의 남성들을 “가부장적 폭력 구조를 지속,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묘사하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구를  “이미 해방된 주체들, 선진화한 조력자들”로 묘사하는 서구의 접근방식에 문제점이 많다고 비판한다. 모한티에 의하면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해방의 주체가 되어야 할 여성들이 속해 있는 지역의 역사적 상황과 정치사회적 갈등을 단순화할 뿐 아니라, “우리(서구)”와 “저들(제3세계 여성)”을 구분하여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저들”을 “우리”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로 전형화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도는 “제 3세계” 여성이 “희생자”의 위치를 벗어나는 순간 자동적으로 “억압자들과 한편”이 되거나 혹은 “서구인들과 한편”이 되는 것처럼 조장하여, 지역공동체들 내의 반목을 양산하고 연대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모한티의 주장은 말랄라가 파키스탄인들에게  “서구의 꼭둑각시”로 이해되어 비난 받고 있는 까닭을 잘 설명한다. 여성교육을 향한 말랄라의 신념이 그녀의 고향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되기도 전에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이분법의 도식에 갇혀 버리고 만것이다. 


말랄라의 메세지가 “억압받는 제 3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닿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서구의 언론들은 정작 말랄라가 부딪히고 있는 갈등과 오해를 해소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어느 블로거가 토로한 것 처럼, 서구 언론들은 말랄라를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에만 전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말랄라의 확고한 신념과 용기가 사실 그녀의 깊은 이슬람 신앙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의 아젠다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2006년, 말랄라의 고향에서 또래의 소녀가 다섯 명의 미군들에게 강간 살해 당했다는 사실은 가능한 빨리 잊고 싶어한다(Why I can’t celebrate Malala’s Nobel Prize: http://middleeastrevised.com/2014/10/11/why-i-cant-celebrate-malalas-nobel-peace-prize/). 영국의 평론가 조지 갤러웨이(George Galloway)는 서구 언론들의 양면성을 비꼬며 “만약 말랄라가 드론 공습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영국언론들은 그녀의 이름조차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트위터를 날렸다. 냉소적이긴 해도, 갤러웨이의 지적은 옳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열여섯살 당차고 현명하고 꿈많은 여성 말랄라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녀가 가진 강고한 용기과 여성교육에 대한 열정을 우리는 오래 오래 찬사하고, 그녀의 말들을 가슴에 간직해야 한다. 그러나 말랄라의 신념과 열정을 기억하기 위해 그녀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사실까지 덧붙여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없다. 거부하지 않고 받았으니, 그녀의 선택이었겠거니 존중하면 된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말랄라는 노벨평화상이라는 별로 돋보이지 않는 경력을 갖고 있는 말랄라가 아니다. 열한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과 고향땅 친구들의 꿈을 위해 목숨을 걸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말랄라, 탈레반 뿐 아니라 서구의 위압적인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밝힐 줄 아는 말랄라, 수상 이후 버락 오바마를 만나 “드론 공격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파키스탄 민중을 분노하게 한다”고 말한 말랄라,  “드론 대신 책을 보내달라”고 미국인들에게 호소한 말랄라 (MSNBC Interview, http://www.msnbc.com/ronan-farrow/watch/exclusive-ronan-speaks-with-malala-yousafzai-346760259967),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교 재건을 위해 5만달러를 기부한 말랄라. 이 벅차게 아름다운 여성 말랄라를,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지도자인 그녀가 어떻게 더 깊어가는지, 어떻게 더 성숙해가는지, 고통 속에도 꿈을 잃지 않는 세상 곳곳의 말랄라들과 어떻게 연대하는지, 나는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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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기보다 우려되는 그들의 “도덕과 상식”


조민아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교수)

 

극우단체들의 오프라인 활동이 갈수록 가관이다. 지난 달부터 시작된 일간베스트회원들의 폭식투쟁에 이어, 9월 28일에는 서북청년단 재건을 표방한 20여명이 서울광장에 나타나 노란 리본을 훼손하려다 경찰에 저지당했다.

조국 교수는 29일 자신의 SNS를 통해, “다른 극우단체와 달리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 결성은 형법 제114조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 4조 ‘범죄단체조직죄’에 해당한다”며 검경의 수사를 촉구했다. 서북청년단이 어떤 조직인가. 대구 노동자 파업, 보도연맹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제주 4.3항쟁에 개입하여 20~40만명의 양민을 학살한 극우 민병대다. 특히 4.3발발 전후 이들이 제주 민중들에게 가한 물리적, 정신적 폭력의 잔혹성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다(김관후, “역사로 보는 서북청년단, 대체 어땠길래?” <프레시안> 9월 29일). 테러조직의 재건을 지켜보면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운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범죄에 가담하는 행위이다. 수사를 진행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베, 엄마부대, 서북청년단재건위원회와 같은 극우 전위부대가 저지르고 있는 엽기, 아니 광기에 가까운 행각들을 단지 수사와 처벌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들이 갖고 있는 파급력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토록 후안무치의 행동을 일삼고 있는데도 이들의 활동이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자신의 정치성향을 밝히기 꺼려하는 익명의 대중들에게 무언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신호다. 누구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 이면, 이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념에는 대중의 공감대를 건드리는 어떤 것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패륜적 “광기”와 이들이 기반하고 있는 “이념”은 따로 따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9월 29일자 <시사IN>에서 천관율 기자는 일베연구자 김학준씨와 함께 쓴 기사를 통해 일베 사고체계의 핵심적 키워드를 “무임승차 혐오” 코드로 지목했다. 일베를 비롯한 극우 보수자들이 주요 타켓으로 설정하고 있는,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무임승차”를 시도하고 있는 집단들은 여성, 진보, 호남이며, 최근에는 세월호 가족까지 포함되었다. 일베의 사고체계에서 이들은 “하는 일은 없으면서 떼를 써서 과도한 보상과 특혜를 받으려 하는 암적 존재”이다. 즉,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성실하게 국가의 요구를 수행하는 “애국 시민” 들과는 달리, 이들 소수자들은 자신의 의무는 방기한 채 특혜만을 주장한다. 따라서 일베가 말하는 “정의 구현”은 “소수자가 국가로부터 받는 보호”를 집요하게 추적하여 이들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애국시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되 찾는”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다(천관율,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2014년 9월 29일 <시사 IN>”).  적어도 본인들은, 이러한 “상식”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구국의 희생을 감행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에게 그냥 좀 “살살해”라고 말하고 싶을 뿐, 굳이 말리고 싶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일베의 이 “무임승차” 코드는 기사에서 지적한대로 그들의 엽기행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차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기여한 만큼, 투자한 만큼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윤리의 잣대로 작용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임승차”는 “인간 본연의 도덕 감정과 정의감에 기반한 분노”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잣대에 따라 살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일베의 행각 자체는 비상식적일지 모르지만 일베의 이념은 지극히 “상식적”이고,나름 “정의”롭고, “공평”하다.
 
광기와 “상식”은 사실 낯설지 않은 조합이다. 반면교사라고, 남의 나라 역사를 통해 이 불안한 만남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살펴보자. 지금까지도 가끔씩 되살아나는 미국의 악몽, 쿠 클럭스 클랜(The Ku Klux Klan), 그중에서도 연방법에 의해 몰락한 후 사그러 들었다가 20세기 초에 화려하게 부활하여 미국 전역에 걸쳐 400만명 이상의 회원을 거느렸던 제2기 KKK단이다. 제2기 KKK단은 1915년, 의사이자 목사였던 윌리엄 J. 시몬스(William J. Simmons)에 의해 조지아 주 애틀란타 근교에서 조직되었다. 제2기 KKK단이 정서적 공감대를 얻게된 배경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와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침범해 오는 이방인들에 대한 증오였다. 19세기 후반부터 증가된 이민인구는 1924년 악명높은 반이민법을 통해 제한되기 직전 그 절정에 이른다. 대규모로 유입되어 오는 외국인들에 의해 미국사회의 인종적 성격이 바뀔까 위협을 느끼고 있던 미국의 주류, 백인 프로테스탄트들은 자신들이 목숨걸고 수호해야 할 미국의 가치, 즉 “헌법, 성서, 인종분리”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집단들에게 린치를 가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흑인을 비롯, 가톨릭신자들, 유태인들, 아시아인들, 독립적인 여성, 동성애자, 조합을 결성하는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포함된다.

제2기 KKK단의 활동과 번성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세가지 있다. 첫째, 이들은 미국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았던 이민자들과 소수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는데도 삶의 환경이 나아지지 않는 까닭을 이민자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그러기에 KKK 단이 자신들을 억울함을 대변하는 희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둘째, 회원 중 목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음은 물론이며, 이들의 폭력과 테러를 모른척 하거나 심지어 공공연히 지지 의사를 표하는 정치인들과 유력인사들 또한 수없이 많았다. 정치인들은 KKK의 모토를 자신의 정책에 반영하고 이들의 지지를 등에 업어 의회를 장악했다. 1924년 반이민법이 통과된 배경에는 이들이 있다. 셋째, 이들을 묶어 낸 것은 강력한 형제애였다. 극심한 가치관 혼란 속에서 같은 생각과 같은 의견을 가진 이들이 모여 함께 행동할 때 얻어지는 자긍심은 폭발적이었다. 여기에 “애국심”이라는 미국사회 불가침의 정서와 옛 남부에 대한 낭만적 향수가 보태져 “멋”과 “스타일”을 만들었다. 

굳이 병렬하여 비교하지 않더라도 KKK단과 일베를 위시로 한 극우보수집단들의 공통점은 가늠하기 쉽다. KKK단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극우집단 또한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라 늘어나는 타자들을 수용하기 힘들어 하는 집단들이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비로소 시작 된 가치관의 다양화가 싫고 불편하다. 근면하고 성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아버지 시대의 신화가 그립다. 비슷한 것은 정서 뿐이 아니다. KKK단과 종교인들의 야합은 극우집단과 보수 종교인들의 어딘가 모르게 닮은 행각을 줄창 보아온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KKK단을 등에 업고 출세한 정치인들 처럼, 공식, 비공식적으로 극우보수집단을 지지하는 보수 정치인들이 늘어나는 것 또한 비슷하다. 옛것에 묻혀 살고 싶어하는 취향까지 닮았으니, 유신시대와 심지어 서북청년단까지 불러 들이고 싶은 망령된 생각이 외롭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 모든 유사성 중심에 도저하게 흐르는 것, 이 두 집단이 갖는 가장 유사한 점이며 동시에 이들의 출현과 확장을 가능케 하는 부분은 이들이 기반하고 있는 “도덕성”과 “상식”이다. 즉, 내가 기여한 만큼 되돌려 받아야 하며, 그것이 가장 올바르고 정당하다는 이념이다.

미국 사회에서 KKK단은 이제 그 흔적이 미미하지만 이들이 기반하고 있었던 이 이념은 면면히 살아남아 미국 정치의 강력한 축을 이루고 있다, 사회복지 정책을 감소하고, 탈규제, 민영화, 감세 정책을 통한 민간기업 경제력 회복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세력들의 모토에는 어김없이 이 “도덕과 상식”이 자리잡고 있다. 일베를 위시로한 극우집단들의 행동은 비판을 받을지라도, 그들의 “무임승차혐오코드”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그들이 지향하고 지지하는 가치와 정책이 암묵적 지지를 받고 있는 맥락을 본다면 우리사회에도 이 가치관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에게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기는 구조적 억압 따위는 소설에 불과하다. 소수자들과 약자들이 사회로 진출할 수 없는 이유는 단지 노력을 안하기 때문이다. 복지와 특혜가 오히려 그들의 의지를 마비시키고 있다. 억울하면 군대에 가면 될 것이고, 안되면 더 노력하면 될것이다. 그들의 생각에, 강해지면 누구나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사회는 지극히 “평등하다.”

KKK단과 일베, 이들이 기반하고 있는 “도덕, 상식”과 이들의 광기어린 “패륜” 사이의 간격은 사실 그다지 넓지 않다. 힘에 대한 욕망과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 약자에 대한 공포와 멸시, 성공하고 인정 받고 싶은 욕구, 소속감과 친밀감에 대한 강한 갈구가 덧붙여 진다면 이들의 “도덕과 상식”은 언제든 광기로 돌변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전체주의의 광기는 지극히 상식적인 대중의 정서를 기반으로 발생했고 성장했다.  이들이 단지 폭력의 파편에 머물지 않고 전체주의라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대중의 열망을 잘 이해하고 조직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극우집단들의 확산과 오프라인 활동을 보며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광기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도덕과 상식”이 확산되고, “무임승차혐오코드”가 먹혀들고 있는 광기의 저변이다. 그 저변이 단단하게 구축된다면, 설사 일베와 엄마부대와 서북청년단이 처벌을 받고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사회 소수자와 타자들을 폭력적으로 응징할 집단들이 다른 얼굴과 이름을 갖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KKK의 활동이 시시해진 미국사회에 네오나치, 반이슬람조직, 반동성애조직, 또 각종 종교집단의 형태를 띠고 극우 보수 집단의 출몰이 끊이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광기는 돌출되니 찾아내기 쉽다. 그러나 그 저변은 수사와 처벌로 찾아낼 수 없다. 면밀한 관찰과 일상에서의 인내심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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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 특별법 제정, 생존권투쟁과 인정투쟁 사이에서


조민아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교수)

 

긴 싸움을 헤쳐 나가야 하리라던 불길한 예측은 이미 사실이 되었다.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만큼 참사를 지켜보던 고통이 처참했지만, 싸움이 길어지며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인간성들을 목도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끔찍하게 괴롭다. 딸이 죽은 이유를 밝혀 달라며 46일 단식을 한 아빠의 신상을 털고 차라리 죽으라고 막말을 한다. 단식장에 몰려와 닭다리를 뜯고 짜장면을 먹고 폭식 캠페인을 벌이며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과, 함께 울줄 아는 이들의 진정성을 조롱한다. 단식을 하고 있는 사제들과 수도자들 앞에 짝퉁 천주교신자까지 등장해 “특별법 제정 반대”를 위해 묵주기도를 한다(하는 척 한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나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그 확신 대로 행동하고 있다. 게다가 점점 자신감을 얻어 대담해지고 있다. 돌발 행동이라고 넘겨 버리기엔 그 숫자가 많고 질기다. 그렇다고 이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그저 한숨만 쉬고 있을 수도 없다. 상식도 없고 일관성도 없어 보이는 이 엽기적인 행동들이 “세월호 정국”의 국면이 재조정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4월 16일 이전으로 세상을 되돌리려는 자들의 계산된 구호—“일상으로 돌아가자”, “민생을 돌보자”—와 맞물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운동을 ‘생존권투쟁’이 아니라 ‘인정투쟁’으로 몰아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은 생존권투쟁이다

우선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수사권, 기소권이 보장되는 4.16 특별법 제정을 위한 투쟁은 인정투쟁이 아니라 생존권투쟁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 권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전제하더라도 인정투쟁과 생존권투쟁은 다르다. 악셀 호네트(Axel Honneth)가 그의 책 <인정투쟁>에서 말하고 있는 “인정”은 인간이 긍정적인 자기 의식을 얻게 되는 심리적 조건이자,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다. 인간은 타인이 인정해 줄 때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형성하고 자기 실현을 이루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정 투쟁의 목표는 사회적 투쟁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한 인정투쟁의 쟁점은 개인이나 집단을 무시하는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며, 무시를 고착화하는 상태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즉, 인정투쟁은 자긍심이 훼손되었을 때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생존권투쟁은 살 권리를 위한 투쟁이다. 절벽 끝에서 벌이는 사투이다. 목숨을 위협 받았을 때 바로 그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자식이 백주 대낮에 수장당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광화문에서, 청운동에서 곡기를 끊고 노숙을 청하는 부모들의 투쟁은 생존권투쟁이다. 그리도 허망하게 피붙이 살붙이를 떠나 보내고 남은 평생을 살아야 하는 부모들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싸움이다. 이 싸움은, “내 자식들이 왜 그렇게 무참하게 죽어가야 했는가?”라는 지극히 당연한 질문을 외면하는 집권 세력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명예 회복을 요구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권력을 획득하겠다는 옥쇄투쟁은 더더욱 아니다. 명백하게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저항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살기 위한 고투이다. 

이 부모들을 살려야 한다. 반드시 수사권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이유다. 광화문과 청운동 현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그 현장은 제정이 실현될 때까지 생존권투쟁의 장으로 공고하게 남아야 한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의 본질이 생존권투쟁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려내는 것과 따로 또 같이 우리에게는 원하지 않았던 싸움의 장이 열렸다. 인정투쟁의 장이다. 피할 수 없기에 좀더 섬세한 관찰이 필요할 듯하다. 


인정투쟁의 장, 일상

유가족들의 요구를 인정투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세월호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잃어 버린 목숨에 대한 “보상”과 “명예 수호”에 있다고 이해한다. 가족들이 원하지도 않는 각종 특혜 (보상)와 의사자 지정 (명예수호)이 줄기차게 언급되고, 또 그것들을 둘러싼 흑색선전이 대중에게 쉽게 파고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들의 시각은 의식적 혹은 잠재의식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가능한 완화하고 개인의 권리를 극대화하는 사회가 정의롭고 합리적인 사회라 생각하기에, 보상과 복권이 제시되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 이외의 것은 불필요하다. 따라서, 304명의 목숨이 바다에 묻혔다는 사실 자체는 그들에게 거대한 위협이었을지 모르나,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유가족들이—그들이 판단하기에—일종의 “세력”으로 형성되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은 거북하다. 

이들은 세월호 문제를 생존의 문제로 바라보는 이들과 시각 자체를 달리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백일을 채 넘기기도 전에 드러나기 시작한, “피로감”이라고 표현되는 대중의 침묵과 짜증에는 모종의 불편함과 불안함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도 사건 초기에는 연민과 공감이 혼재된 감정상태를 겪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후 국면에서, 생존의 프레임으로 세월호 문제를 보는 이들의 행동이 유가족들과의 “연대”로 나아갔다면, 인정의 프레임으로 보는 이들의 입장은 유가족들을 위한 “배려”로 신속하게 정리되었다. 그들은 “참아주었던”것이지, 실제 가족들의 입장이 되어 공감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유가족들이 “집단”이 되어 자신의 일상을 위협하며 민생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자, 배려는 불필요한 덕목이 되어버렸다. 대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정부여당이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행사할 공권력을 갖고 있지 않은 이 흩어진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옳아야 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적극적 인정투쟁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인정투쟁에 나서는 이들은 유가족들이 단지 “함께” 움직인다는 이유, 사회질서 유지의 근간이 되어야 할 법체계에 대해 현행과 “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는 이유, 집권세력이 “만나주고” 있다는 이유로 유가족들을 “강자”혹은 “권력집단”으로 설정한다. 유가족들과는 달리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관심”도 별로 받지 못하고, 동조해 줄 “배후세력”도 없으며, 크고 작은 피해를 받은 기억은 있지만 “대항”하지 못했던 자신들은 “약자”요, “소수자”다. 단지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듯 하다. 유가족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권력구조의 역학이나 언론의 영향력 따위는 이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들의 이러한 착각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가치 체계의 혼란과 폭력적이고 위해한 언어, 개념들의 양산이다. 

광화문에 나와 기이한 행각을 벌이는 형태의 인정투쟁은 극단적으로 표출된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최전방 부대는 유가족들이 벌이고 있는 생존투쟁의 절박함과 숭고함을 비틀고 조롱하는 동시에 자신들 또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나름의 역할을 장렬하게 수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의 행각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실 겉보기에 소극적인 태도로, “중립적” 가치를 내세우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온건한” 형태의 후방 인정투쟁이다. 이들은 말초신경이나 자극하고 의도적으로 분노를 일으켜 주목을 끄는 일차원적 방법을 지양하며 매우 세련되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설득해 나가고 있다. 

최근 스스로를 “겁쟁이”라 명명하며 “작은 용기 캠페인”을 시작한 연세대학교 김정호 교수의 인정투쟁이 이 후방 부대의 성장과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장기화하고 있는 세월호 정국의 책임을 전적으로 유가족들에게 돌리며, 현상황을 “싸움꾼들의 독재가 판치는 세상”이라 명명한다. 반대로 자신과 같이 “힘없고” 단식을 하기도 주저스러운 이들은 “겁쟁이”이지만 “대한민국이 정상화될 날을” 원하는 “정상인”들이다. 이런 다수의 “겁쟁이”들이 연대하여 “싸움꾼” 유가족들에게 맞서자는 주장이다 (“저는 겁쟁이입니다,” 조선닷컴 토론 마당 2014년 8월 31일 참조).

김정호 교수의 예에서 보여지듯, 이들 후방 부대는 “민주주의,” “정의,” “발언의 자유,” “소수자 권익,” “작고 연약한 이들의 연대,” “일상의 가치” 등, 과거 피억압 민중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사용되던 개념과 표현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염수정 추기경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가세한다. 이 분들은 “중립”을 선호하신다지만 실은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즐기신다. 주로 하시는 일은 종교적인 가르침을 탈색시켜 보수 언론과 정부 여당이 사용하기 좋은 요릿감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유가족들과 “공감한다”하고 “같이 아프다” 하는데 뭘 공감하고 뭘 같이 아파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후방의 인정투쟁은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왔던 단어들이 간직하고 있던 역사성과 본의를 사상 시키며 세월호 정국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생존권투쟁과 인정 투쟁, 양쪽 모두 포기할 수 없다

생존권투쟁과 인정투쟁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파급력과 무게는 우리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인정투쟁의 양상이 이전과 많이 다르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한다. 아니, 그보다는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다양한 가치 체계의 전도가 세월호 참사를 기해 전면에 드러나 서로 서로 정당성을 주장하고 인정을 요구하며 압박해 올 것이라 하는 것이 옳겠다.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의, 민주의 개념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인정투쟁은 스스로 공부하고 이웃을 설득해야 하는 긴 호흡이 필요한 싸움이다. 단지 투쟁해야 할 뿐 아니라 투쟁해야 하는 이유와 도덕적 근거를 스스로 이해하고 이웃에게 설명해야 한다. 권력의 부당함이나 경제적 불평등을 갈등의 원인이라 간주하고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뿐 아니라, 당장 내 옆에 있는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이 마음을 열고 그 갈등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분노를 자신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사용하되, 그 표출은 자제해야 한다. 분노는 투쟁을 촉발하는 원인이지, 투쟁의 도덕적 기초를 제공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인정투쟁의 장에서조차 우리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고지에 서 있다. 혼자 잘 사는 것을 부추기는 전방위적인 가치체계에 맞서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 남는 가치체계의 매력을 설득해 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돈과 권력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세상보다 사람이 돈과 권력을 제재하는 세상이 이롭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막연한 싸움이다. 

인정투쟁의 장은 일상의 전 영역이다. 이 싸움은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 혹은 조직에게 맡길 수 없는 각자의 싸움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또 본당에서, 내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있는가가 내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희망, 변화의 가능성은 한 두 사람의 정치적 지도자나 영웅이 제시하고 그 나머지인 우리들은 그저 수혜자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지분이 모여야만 조금씩, 그것도 아주 더디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일상적으로 소통하느냐, 어떻게 인간 회복을 실현하는 작은 공간들을 많이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로부터 우리가 잃어 버린 무엇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나누고 고민한 것들을 우리 자신의 삶으로 체화해야 한다. 이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결국 우리들 개개인이 우리가 가진 얼마만큼을 자신의 삶으로, 또 이웃의 삶으로 되돌릴 수 있느냐일 것이다.

저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부분적으로 옳다. 일상 또한 이미 싸움의 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싸움 또한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일상은 생존권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광화문과 청운동의 현장과 분리 될 수 없다. 현장과 일상을 부단히 오가는 긴 싸움을 우리는 당분간 계속해야 한다. 아니, 그 싸움을 살아내야 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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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로 가자

: 무감 무통의 인간들과 아이리스 머덕(Iris Murdoch)의 도덕적 자아

조민아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교수)

 

왜 아파할 줄 모르는가

경악스러웠던 것은 사실 평범해 보이는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4월 16일 그 날 이후 정지된 시간 속에 그저 나날이 반복 되고 있는 이 참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주범들이야, 서로 서로 추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지들도 살려고 저렇게 금수만도 못한 짓들을 하고 있다고 치자. 그러나 저 아무럴 것 없어 보이는, 집 앞에서 마주쳤으면 인사라도 나눴을 이웃들의 입에서 (혹은 손가락에서) 304명의 자식들을 잃은 가련한 부모들을 향해 상상하기도 힘든 폭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뿐이랴, 그들의 얼굴은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 움막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던 할매들의 주름진 몸을 난폭하게 끌어 낸 후 승리의 브이를 올리며 단체 사진을 찍었던 경찰들과도 겹친다. 멀리는 수천의 무고한 생명들에게 내리치는 폭격을 스포츠 관람하듯 도시락을 싸들고 구경 하고 있는 가자지구 이스라엘인들의 얼굴과도 닮았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할까. 왜 그들은, 자신의 손가락에 박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에 아픔을 느낄 줄은 알면서 자신들의 생명과 똑같은 가치를 가진 생명들의 몸에 미사일 파편이 박혀 죽어 나가는데는 아무 느낌이 없는가.

그들의 냉정함과 무례함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모두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일까? 아니다. 그들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애틋하고 정성이 지극한 부모이며 자식이고 친구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기에 궁금하다. 왜 그들은 자신들 삶의 테두리를 벗어난 이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저리도 무감한가? 왜 누군가에게는 타인의 고통이 조롱거리이거나 경멸의 대상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는—그냥 지나칠 수 없는 통증이며 상처인가? 왜 누군가는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흔들림 없이 뻔뻔하고, 누군가는 뻔뻔한 그의 수치심까지도 떠맡아 괴로워하며 인간의 양면성에 치를 떠는가? 


아이리스 머덕(Iris Murdoch, 1919-1999)의 도덕적 자아

아일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아이리스 머덕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그들과 우리는 단순히 다른 정보와 견해를 선택하여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과 우리는 세상 자체를 달리 보기 때문에 다른 것이다” (Murdoch, “Vision and Choice in Morality,” 82).  즉,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또는 선함(the Good)의 기준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머덕의 주장을 좀더 풀어 보자. 타인의 고통에 대해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즈음의 현실이 잘 보여주듯,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서, 또 선하고 바른 것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보편적인” 기준에 동의한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도덕은 개개인이 갖고 있는 복잡하고도 모호한 상황의 차이를 반영할 수 없기에, 삶과 분리되어 존재한다면 공허한 껍데기로 남을 뿐이다. 그러므로 근대 철학에서 흔히 강조하는 “도덕적 원칙에 대한 선험적인 체득”과, 그 “원칙을 선택하는 도덕적 주체의 의지” 프레임으로 인간의 다양한 도덕적 인식과 행위를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머덕에 의하면,  도덕적 원칙과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도덕적 비전 (moral vision)이다. 선한 목적이 선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 봐야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행위는 “공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선하게 하는 원칙과 규범들을 천명하고 기술하는 데서 벗어나,  또 나와 이해 관계를 주고 받는 삶의 반경을 넘어, 다른 이들의 삶을 보고 느낄 때 비로소 내가 알고 있는 “선함”에 관한 원칙과 규범들은 얼굴을 갖는다. 그리고 우리는 경험으로 알게 된 그 구체적인 얼굴들에 기반하여 각자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나름의 지식을 쌓아간다. 이 지식은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들을 도덕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본적인 자료가 된다. 물론 자료는 확장하고 변화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인간을 선하게 하는 본질적 요소라면, 공감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혼자 만의 세상에 사로 잡혀있는 자아이다. 고립된 자아는 끝없이 불안하다.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것들을 지키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꾸만 자꾸만 안으로 숨어 들어 견고한 성을 쌓는다. 이러한 이기적인 자아를 가진 인간에겐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그 자아가 타인들로 향하는 시선을 가로막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왜곡하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 (Hannah Ardent)가 저 유명한  나치 전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보며 남겼던 글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아렌트는 평범한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이유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아이히만을 에워 싼 불통의 벽은 그를 다른 이들의 말과 생각과 현존으로 부터 분리시켰다. 결국 그는 수많은 학살을 자행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머덕 또한,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을 거부하고 자아에 갇혀 있을 때 인간은 세상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끝내는 사랑할 능력을 잃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타인과 함께 할 때, 타인의 삶을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만 비로소 선한 지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머덕의 말을 빌자면,  “인간은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한 첫번 째 조건은 자기 삶의 반경 너머를 보기, 그리고 아집에 사로잡힌 자아를 탈출하기이다. 머덕은 이를  “자아 벗기 (unselfing)” 라는 말로 표현했다. 자아를 벗는 것은 부단한 훈련을 요구한다. 반복적인 행위와 습관으로 자신을 잊는 연습을 해야 한다. 머덕은 주시(attention)를 훈련의 필수 항목으로 제시한다. 인내심을 갖고 겸손하게 사물과 사람을 응시할 때, 혹은 예술 작품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길 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다른 숨결들을 비로소 발견하고 잔뜩 부풀어 있는 자아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나 외에 다른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생명이 살아 있는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를 찾기 시작한다 (Murdoch, “The Sovereignty of Good Over Other Concepts,” 375).  그러므로, 머덕에게 있어서 도덕적 인식과 미학적 지각 (aesthetic perception)은 서로 통한다. 영화 <타인의삶 (Das Leben der Anderen)>에서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선한사람들을 위한 소나타”를 들으며 전율하던 비즐러를 기억하는가. 냉혈한이었던 그, 자기 세상의 원칙과 규범에 갇혀 살던 비즐러의 단단한 자아를 벗기고 세상으로 끌어 당긴 그 위대한 예술의 힘 말이다. 아름다움에 반응할 줄 아는 인간과 선한 인간은 흔들릴 줄 아는 인간들이다. 흔들리다 흔들리다 결국 자기를 내려 놓을 줄 아는 인간들이다.  

타인의 삶에 공명함, 그리고 그를 향해 나의 자아를 던짐. 머덕에게는 이것이 덕(virtue)이다. 따라서 그들과 함께 나를 나누고 그들로 인해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이 곧 도덕적인 비전을 갖게 되는 길이며 선해지는 길이다.  그러나 도덕적 자아는 금욕적인 자아가 아니다. 거북함과 불쾌함을 무릅쓰고 타인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성정 자체가 부드럽고 여리게, 남들과 공명하는 성정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물론 하루 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한 눈과 의식으로 세상과 타인을 주시하고자 반복적으로 노력할 때, 자기 중심성을 작동하게 하는 메카니즘은 깨지고 자신을 향하던 에너지는 방향을 바꾼다. 마침내 시선은 밖으로 향하고, 사랑도 밖으로 흐른다. 그러기에 타인이 고통으로 몸부림 칠 때 내 살이 베어져 나가듯 아픈 것이다. 그러기에 타인이 기쁘고 행복할 때 내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지는 것이다.


사람에게로 가자

세월호 가족들 앞의 무례한 그들. 밀양과 가자지구의 후안무치들. 그들이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 다르다.  어쩌면  그들은 피를 나눈 가족과 이해를 나누는  주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자신의 작은 세상을  벗어나 본적이 없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타인들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고, 절절한 가슴을 맞대어 본 경험이 없었을지 모른다. 단 한번 다른 이들의 부름에 흔들려 본적 없을, 단 한번 더불어 사는 삶의 뜨거움에 설레어 본적이 없을 그들은 어쩌면 미워해야 할 존재라기 보다 연민을 느껴야 할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욱한 나는 아직 훈련이 덜 되어 그들에게까지 나누어 줄 연민이 없다.  언젠간 그들에게도 비즐러가 경험한 것과 같은 은총의 순간이 다가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자식이 죽어봐야 알지,” 라는 말을 돌리고 싶지는 않다. 내자식이 죽어야만 남의 자식이 죽은 심정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죽은 아이들이 내 아이처럼 느껴지는 세상, 자식 잃은 부모들이 내 식구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희망을 건다.  

그리고 그 희망을 지켜 나가기 위해 나와 내 공동체를 점검한다. 비통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국회 앞에서, 광화문에서, 용산에서, 밀양에서, 청도에서, 강정에서, 4대강에서. 우리는 많이 울었고, 지금도 울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 울었는가? 지금 이 순간도 홀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가슴을 친다.  초단위로 정보가 업데이트 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마치 고통의 소우주같다. 수천의 사람들이 거기서 분노하고 옷을 찢고 후회하지만 정작 오프라인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적다.  SNS를 통해 소리만 요란하게 퍼다 날라지는 정보들은 감정을 극대화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인 행동이 될 가능성은 적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사람에게로 가자. 나 하나 무슨 도움이 되랴 컴퓨터 앞에 주저 앉아 혼자 울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행동을 하자. 일인 시위 피켓을 들던, 광화문에서 가족들을 지키던, 기다림의 버스를 타던, 봉사를 하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말이다. 점점 추상적이 되어 가고 있는 이 고통에 사람의 얼굴과 사람의 체온을 더하자. 사람이 없다면, 고통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사람을 통해 확인하지 않는다면 공감 또한 값싼 로맨스에 불과하다. 사람을 잃어 버린다면, 우리도 냉정하고 무례한 저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저들과 다른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 문헌: Iris Murdock, “Vision and Choice in Morality” and “The Sovereignty of Good Over Other Concepts” in Existentialists and Mystics: Writings on Philosophy and Literature, edited by Peter Conradi (NY: Penguin Books, 1998).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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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tium
    2014.08.09 10:0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통찰이 담긴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통을 겪어본 자가 반드시 타인의 고통에 더 민감해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최근 댓글 중에 "내 자식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아무도 내게 와 위로해주지 않았다. 근데 유가족들은 왜 이리 난리냐"라며 독한 언설을 쏟아내는 글을 보았습니다. 때로 고통이 일상에 균열을 내고 자기중심성을 깨뜨리는 자기 초월의 계기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 계기를 선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없다면 고통도 우상이 된다'는 말씀이 깊게 다가오네요.

 

포럼 취지_

이 글에서 질문할 사회적 영성의 위치는 세월호의 상흔과 그것을 잊기를 종용하는 욕망 사이의 어느 지점이다. 자극하지 않는다면 쉽게 망각으로 끌려가 버릴 그 불균형한 힘에 개입한다.  상흔과 망각. 그 두 힘의 대립을 나는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무덤 앞에서도 발견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스승을 배반하고, 죽어 가던 그를 유기하고, 제각기 살길을 찾아 떠났다. 그 날의 수치를 견디지 못해 서둘러 망각으로 도망치던 제자들을 제어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약했던 그들이 어떻게 망각을 멈추고 기억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스승이 이미 떠난 자리에서 진리는 어떻게 잊혀 지지 않고 살아 남았으며. 어떻게 그 모래알과 같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져 나갈 수 있었을까?  이 질문들을 사회적 영성이란 화두와 연결하며, 우리 시대의 빈무덤, 세월호의 기억을 지속하고 확장시킬 신학적 언어들을 재고해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빈무덤 앞의 제자들처럼 혼란스럽고 수치스러운 우리들 또한, 그들이 예수에 관한 기억을 놓지 않았듯, 그날의 기억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재구성하고 공감의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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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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