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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머리 기르는 아이(김난영)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9. 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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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기르는 아이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1. 머리 기르는 아이

“엄마, 나도 OO처럼 머리하고 싶어” 

어느 날 다섯 살 둘째 녀석이 어린이집 친구처럼 단발머리를 하고 싶단다. 예쁘게 길러보자 했다. 

갓 자른 잔디처럼 짧은 머리를 단발로 기르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무더운 이번 여름, 전에 없던 머리칼 덕분에 뒷목에 빨간 땀띠가 올라와 살짝 다듬어 주니 뒷목을 덮을랑말랑 제법 찰랑이는 단발이 되었다. 일 년 여를 꼬박 길렀다. 물놀이에 피부가 새까맣게 타버려 영락없는 정글북의 모글리지만 우리 부부 눈에는 예쁘고 귀여울 뿐이었다.


2. “넌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거 같아.”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거 같다. 갑작스레 학교 앞으로 찾아온 고등학교 동창이 나에게 물었다. “넌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거 같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워낙 매사에 긍정적인 태도를 타고나기도 했지만, 정말 아무 걱정 없던 스물 한 살의 나는 이 친구가 내 성격을 비아냥거리나 싶었다.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친구에게서 뭔가 낯설고 불편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울함이었다.

졸업이 다가오며 다들 진로 준비에 바빴다. 이 친구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던 터라 다들 공부하느라 잠수 탄 줄 알았다. 그런데 졸업이 한참 지나도 이 친구 소식을 아는 녀석이 없었다. 모두들 자존심 센 친구라 시험에 실패하고 멀리 유학갔겠거니 했다.


3. 또 다른 질문

“어머, 솔이는 머리 기르나봐요?” 

“얘 남자애 맞죠?” 

“솔아, 너는 왜 머리 길러?” 

머리칼을 휘날리는 아이와 내게 쏟아지는 질문이다. 아이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핑크바지라도 입고 나서는 날은 그나마 질문도 없이 여자아이 대우를 받는다. 

“솔아, 유치원에서 너무 더운데 묶으면 좋을 거 같아.” 

“싫어. 그러면 여자아이라고 놀린단말야.” 

엄마와 선생님의 권유에도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숱이 많아진 머리 둘레로 땀이 주르르 흐르는 모습이 안타까워 아이를 겨우 설득해 집에서는 종종 묶고 지낸다. 친구들이 놀린다고 하면서도 자르겠단 소리는 안 한다. 외출할 때는 머리 묶은 고무줄을 꼭 풀고 나서는 아이는 긴 머리의 찰랑거림이 좋은가보다. 맞아, 나도 그 기분 알지. 

그런 네 모습이 너무 예쁘다. 아직 어리지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핑크와 빨강 색연필을 즐겨 쓰고, 반짝이는 반지와 목걸이를 간직하고 싶은 너의 취향을 존중해. 산에 다니고 뛰어다니면 불편할 수 있다고 설득해 내려놓게 했던 네가 좋아하는 반짝반짝 또각구두도 언젠가 꼭 사줄게.


4. 질문의 속뜻

“야, ○○ 찾았어. 우연히 TV보는데 나오더라. 너만 알고 있어.” 

최근에 동창에게 연락이 와서 SNS를 뒤졌다. 소식이 끊겼던 친구는 잘 지내고 있었다. 건강하고 솔직한 모습 그대로였다. 반가운 마음에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싶었지만, 나 역시 망설여졌다. 분위기 메이커로 동창 모임을 주도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친구들과 연락을 끊은 이유를 알 듯했다. 친구가 나에게 던졌던 말 못할 질문의 속뜻도 알거 같았다. 

너처럼 똑똑한 아이가 충분히 합격할 시험을 앞에 두고 사라질 만큼 너를 힘들게 했던 고민, 그 이야기였구나.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답을 찾은 걸 정말 축하해. 

정말 보고 싶다. 곧 만나.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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