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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아듀, 문동환 목사님!(이상철)

시평

by 제3시대 2019. 3. 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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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문동환 목사님![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문동환 목사님이 돌아가셨다. 10년쯤 전 시카고 유학시절 뉴욕에 계시는 문목사님이 시국강연차 시카고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시절이었고, 시카고 보수인사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들고 강연장을 둘러싸서 분위기가 험악했다. 나의 임무는 문목사님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부축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목사님을 모시는 것, 목사님 얼굴을 살피면서 뭘 원하시는지를 파악하고 적절히 상황에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 나는 유능한 보디가드는 아니었던 같다.

강연이 끝나고 바바리를 입고 이상한 모자를 쓴 (심지어 썬글라스까지 낀) 일군의 보수노인들이 문목사님을 애워쌌고 6.15 선언 백지화 및 용공세력 어쩌구 하면서 문목사님과의 맞짱 대화를 요구하였다. 보디가드였던 나는 완악한 마음으로 그들의 말 같지 않았던 말을 무시하고 문목사님을 모시려고 하는데, 문목사님이 “그럽시다 우리 대화합시다” 그 후 한 시간 가까이를 토론하셨다. 나중에는 바바리맨들이 목사님 서서 말씀하시기 힘드니까 앉아서 하시라고 의자까지 대령하고 물도 떠다주고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거인의 풍모와 존엄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때 나는 문 목사님이 하셨던 당신과 다른 상대를 향한 진정어린 설득과 애정에 홀렸던 것 같다.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미동도 하지 않고 목사님을 주시하던 바바리맨들의 정지된 모자와 간혹 삐걱대던 문목사님이 앉았던 금속의자의 파열음, 그리고 문목사님 말씀 사이 사이 멈춰섰던 적막, 그때 들렸던 누군가의 마른 기침소리, 그리고 침묵... 이런 것들이 문목사님의 부음 소식들 듣고 내 안에서 잠자고 있다가 좀비처럼 살아 올라왔다.


시카고에서 학위 마치고 사람들과 함께 문목사님을 뵈러 간적이 있었다. 사모님이 연신 우리들에게 문목사님을 보며 “너무 잘 생기지 않았어요. 저 사람 너무 잘 생겼어요. 결혼은 했나 모르겠네..” 라고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문목사님이 “와이프가 요즘 좀 정신이 오락가락 해...허허 내가 잘 생겼대 ㅋㅋ ” 사모님이 아직도 자기 남편이 잘 생겼고 저 남자를 보면 떨린다, 라고 했던 것은 진심이고 진실이었음을 나는 안다. 문목사님은 그 나이에도 사람들을 떨리게 하고 수줍게 만드는 그런 분이셨다.


지난 20세기 말, 신촌이나 종로통을 거닐다 보면 전경과 백골단들이 젊은이들의 가방을 불시에 그냥 뒤지던 시절이 있었다. 안병무, 문익환, 문동환, 서남동, 김재준......이제는 신화 속 인물이 되어버린 그 분들의 무용담과 발언들, 그리고 글들은 우리로 하여금 늑대들의 시간을 견디게 했던 유일한 해방구였다. 정권의 야만에 맞서 많은 기독청년들이 거리에서 싸웠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외로움과 무력감이 우리들에게는 있었다. 뿌리도 깊지 않았고 줄기도 가늘었던 우리는 위대한 스승들의 소문과 소식과 어록을 통해 잠시나마 바깥에서 받았던 상처를 잊고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을 그나마 마련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적들을 향한 비판과 저항의 칼날을 우리 자신에게도 돌릴 줄 아는 성찰과 기도의 시간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신학과 삶, 교회와 세계, 하늘과 땅이 서로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나를 향한 엄정한 신앙(학)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를 유혹하는 사이비 우상들로부터 빠져나와 성서가 지닌 진리와 정의를 비로소 믿게 되었던 것도 모두 그 무렵부터이다. 우리세대는 어쩌면 문동환 목사님 세대의 선생님들이 만들어 놓은 틈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빛과 소리에 취한 자들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그 빛이 한신과 기장을, 그 소리가 우리를, 나를 이곳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밝게 빛나던 별이 이제 우리에게서 사라졌다.

문동환 목사


“I mourn therefore I am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 데리다의 말이다.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주체’로 인해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데리다는 ‘애도하는 주체’를 말하면서 의식의 주체보다 더 높은 차원인 애도의 주체를 우리에게 주문한다. 국어사전에서 ‘애도’를 찾으면 이렇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그러므로 애도를 성공했다 함은 그 슬픔이 극복되었음을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성공한 애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한 애도가 되는 것 아닌가. 본래 애도란 망자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고, 망자의 상실로 인한 아픔을 지속시키는 행위여야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애도란 애도의 사전적 의미, 즉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를 현재진행의 사건으로 계속 작동시키는 행위다. 이것이 데리다가 말하는 애도의 정치학이다.


우리는 문목사님을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 것일까. 언론에서는 이 시대 마지막 거인이 사라졌다고 난리다. 기장도 한신도 무너져내린 이 판국에, 우리시대 마지막 어른이 사라져 슬퍼하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우리에게 문목사님은 뭐라 답하실까. “나에 대한 애도를 멈추지 마라. 이렇게 한번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애도를 다 했다 생각하지 마라. 그 마음을 계속 멈추지 말고 추락한 현실을 직시하고 다짐하고 변화하고 혁명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나에 대한 애도의 완성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시대 마지막 선생을 보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보고파 했던 형님이신 문익환 목사님도 만나고, 존경하는 스승 김재준 목사님, 그리운 벗 안병무, 서남동, 박형규 목사님도 뵙겠네요. 

목사님이 우리를 대신해 모든 분들께 안부 전해주세요. 

그리고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2019년 사순절 첫 주일에.




ⓒ 웹진 <제3시대>



  1. 한겨레 신문 출처: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885768.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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