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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숙명여대와 '토착왜구'(황용연)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9. 4. 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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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와 '토착왜구'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terdiscipilinary Studies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후보생

1. 

얼마 전 숙명여대가 장안의 화제에 올랐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두고 망언을 했던 숙명여대 출신 김순례 의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냈다가 학생들의 반발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판 성명을 철회하는 사태가 터졌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반발 의견 대다수는 총학생회가 자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말은 숙명여대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정치적'인 성명이 나오는 것이 부담이 되거나, 혹은 아예 그 성명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대학생들이 앞장서서 총여학생회를 없애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는 시절이니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놀랍지만은 않기도 하겠다. 

그 외 반대 의견 중에서 꽤 관심을 끌었던 것이, 비판 성명에 대한 반대 의견에 여성혐오 등의 페미니즘적 언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평소 여성혐오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던 숙명여대의 한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곤혹을 치렀다. 한국 페미니즘 안에 '워마드' 등의 잘못된 경향이 자리잡은 것을 눈감아 주다가 페미니즘적 언어로 5.18 망언을 옹호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 아니냐며 이제 그동안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물론 5.18 망언 비판 성명을 반대하는 데에 페미니즘적 언어가 동원되는 현상은 이상한 것이 맞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어리둥절했던 것은, 우선 그 반대 의견 중에 '페미니즘적 반대'가 실제의 비중에 비해서 과하게 부각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렇게 과하게 부각시키고 싶은 사람들 중의 일부가 위에서 말한 어느 교수의 페이스북으로 밀어닥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밀어닥쳐서 그 교수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몰아붙였던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5.18 망언 비판 성명을 반대하는데 페미니즘적 언어가 동원된다는 걸 한국 페미니즘의 실패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면 그 '실패'가 왜 나타나는가를 따져 본다면, 과연 이들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실패를 인정하라고 몰아붙이기만 할 수 있을까. 굳이 여기서 여담을 해 본다면, 첫 문단에서 언급했던, "총학생회가 자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반대 이유는, 저렇게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아마도 스스로 신봉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민주주의"의 실패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할 터인데.

2. 

"민주주의"의 실패라는 말을 꺼내고 보니 새삼스레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 민주주의의 실현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상성의 실현과 동일시하고, 그 정상성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아예 "비국민" 취급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사람들 상당수가 처음부터 "비국민"으로 보이는 이주노동자와 난민에 대해서 마뜩찮아 하고, "국민의 의무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싸늘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정치인들은 "친일"이라는 말을 듣게 되며, 종종 일본어처럼 들리는 별명을 선사받는다. 그네꼬라든지, 아키히로라든지, 나베라든지 등등. 아예 한국인이라고 쳐 주지도 않겠다는 뜻이리라. 이런 행위를 두고 혐오라고 부른다고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혐오의 원조는 그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지겹도록 떠들어 온, 어쩌면 지금도 떠들고 있는 "빨갱이"와 "종북"이라는 말일 것이다. 굳이 그 정도와 폐해를 따진다면 "빨갱이"와 "종북" 쪽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그러나 확실한 것은, "친일"과 "종북"이라는 혐오의 언어를 교환하며 양쪽 모두가 스스로를 "부당한 혐오를 받고 있는 정당한 사람들"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동안, 양쪽 모두가 가령 "노동귀족"과 같은 다른 종류의 혐오의 언어를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혐오의 언어를 통해 스스로의 정당성을 더 굳게 확신하게 되니 "노동귀족" 같은 혐오의 언어를 더 자신만만하게 사용할 수 있게도 될 것이고.

이런 세상에서 페미니즘에 관여하는 사람들만 혐오의 언어를 피해 간다는 것이 가능은 한 것일까. 그들만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한국 사람"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혐오의 언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의 과제일 것이고 이미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페미니즘만 특정해서 "왜 혐오의 언어를 쓰느냐"라고 몰아붙인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혐오의 언어를 피하지 못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실패라고 한다면, 사실 그 실패는 페미니즘의 실패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 시민들이 공유하는 실패일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명여대 건을 두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어느 교수가 곤혹을 치르는 사태 같은 걸 보고 있은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어쭈, 페미니즘 잘못 간다는 너희들 말이 맞았다는 걸 인정하라 이 소리지? 웃기고 있네. 그거 다 너희들한테 '배운 거'거든?' 아마도 그 교수 페이스북에 몰려갔던 사람들 상당수는, "메갈"이라는 말을 거의 한국의 극우들이 "종북"이라는 말을 쓰는 용법과 거의 흡사하게 사용하고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면, 별로 틀리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3.

방금 언급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최근에 "토착왜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할 법하다. 얼핏 봐도 이 말은 앞에서 지적했던 "친일"이라는 말의 업그레이드판이니 혐오의 언어이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토착왜구"라고 말을 듣는 사람들의 문제가 그들이 "토착"이든 아니든 "왜구"라서일까. 그들의 근원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야 할 정당한 사람들은 자신들만이라고 믿고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이라면,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왜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토착왜구"라는 말에 대해서 혐오의 의미 외에 다른 어떤 것이 있는지를 본다면, 아무래도 아니라고 보인다고 할 수밖에.

그러니, 이런 말을 하면서 글을 끝맺을 수밖에 없겠다.

만약 숙명여대 건을 두고 정 "페미니즘의 실패" 운운하고 싶다면, 먼저 "토착왜구"라는 말부터 집어 치우라고 말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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