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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박여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11. 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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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박여라*

지난번 스페인 헤레스(셰리) 와인 지역 바람 이야기를 이어간다.

떼루아는 포도가 자라고 와인이 숙성되는 환경까지 아우르는 용어다. 자연환경으로는 기후. 토양. 지형이 영향을 미치고, 이 자연환경에 적응으로서 와인 만드는 전통 역시 광범위한 의미에서 떼루아다. 사실 오늘날은 인간이 자연환경에 적응한다기보다는 와인을 어떻게 만들지를 선택한다. 이 모든 요소가 와인의 성격을 만든다. 

포도밭에 영향을 주는 기후 요소 가운데 바람은 평균 기온이나 일조량, 강수량보다는 아주 작은 역할이지만 사소하지는 않은 일을 한다. 기분 좋은 정도의 바람은 잎사귀를 흔들어 일조량을 미세하게, 효율적으로 분산시킨다. 인위적으로 바람을 만들어 예기치 못한 기온변화에 따른 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 이른 서리가 내릴라치면 일부러 따뜻한 바람을 만들어 땅바닥의 차가운 기운과 뒤섞어준다. 아직 추수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기온이 떨어질 때도 마찬가지다.(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1995년 영화 ‘구름 속의 산책' 그 장면을 기억하는가.) 

태풍이나 폭풍우가 아니더라도 바람이 심한 지역은 포도 농작을 어렵게 한다. 새순을 부러뜨리거나 광합성을 해야 할 잎사귀들을 날려버릴 수 있다. 거센 바람은 성장에 방해가 되고 포도나무가 어릴수록 피해가 더 크다. 이런 지역은 잘 자라는 방풍수를 둘러 심거나 포도나무의 키가 되도록 낮게 하여 바람 피해를 막는다.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서는 바람 많은 제주도처럼 돌로 벽을 둘러 세우거나 약간 움푹한 땅에 포도나무가 마치 똬리를 튼 것 같은 모양으로 재배한다. 

헤레스는 이베리아반도 남쪽 끝자락에 있고 서쪽으로 바다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모로코 탄지에르까지 직선거리로 겨우 100km다. 건조하고 꽤 더운 지역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인 포니엔테(poniente, ‘서쪽’)는 차고 습기를 품고 있다. 낮 동안 달궈진 포도밭 기온을 떨어뜨린다. 그런가 하면 건조한 내륙 동남쪽 평원(더 멀게는 아프라카 대륙)에서부터 고온건조한 바람 레반테(levante, ‘동쪽')가 불어온다. 이 두 가지 아주 다른 바람이 다른 방향에서 분다는 것이 헤레스 떼루아의 특징 중 하나다.   

욥기에 나오는 동풍에 주목했다. 사탄의 시험을 받는 신실한 욥에게 세 친구가 위로-하러 와서는 사실상 아픈 상처에 소금 뿌리는데-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몹시 괴롭게 하시나 자신은 결백함을 주장한다. 욥이 세 친구들에게 악한 사람에게 주시는 벌을 나열하는 장면이다. “두려움이 홍수처럼 그들에게 들이닥치며, 폭풍이 밤중에 그들을 쓸어 갈 것이다. 동풍이 불어와서 그들을 그 살던 집에서 쓸어 갈 것이다. 도망 치려고 안간힘을 써도, 동쪽에서 오는 폭풍이 사정없이 불어 닥쳐서, 그들을 날려 버릴 것이다. 도망 가는 동안에 폭풍이 불어 닥쳐서, 무서운 파괴력으로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할 것이다.”(욥기 27장 20~23절)

이 동풍은 에스겔서에서는 아예 포도나무 비유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심어 놓았지만 무성해질 수가 있겠느냐? 동쪽 열풍이 불어 오면 곧 마르지 않겠느냐? 자라던 그 밭에서 말라 버리지 않겠느냐?”(에스겔서 17장 10절) 

동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호세아서에도 나온다. “이스라엘이 비록 형제들 가운데서 번성하여도, 사막에서 동풍이 불어오게 할 터이니, 주의 바람이 불면 샘과 우물이 모두 말라 버리고, 귀중한 보물상자들도 모두 빼앗길 것이다.”(호세아서 13장 15절)

세 본문에 공통으로 쓰인 히브리어 ‘카딤’은 동쪽 또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동풍)을 뜻한다. 동풍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그리고 파멸과 재앙을 가리킨다. 실제로 동쪽 사막에서 바다를 접하고 있는 이스라엘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빗댄 표현이다. 아랍어로 ‘시로코'라고 하는 동풍이다. 헤레스의 동풍은 스페인어로 레반테, 아랍어로는 시로코 또는 샬루카란다. (앞 글에서 언급한 산루카르 데 바라메다의 ‘산루카르'가 이베리아반도가 이슬람 땅이었던 시절 샬루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탈리아 남부 시실리아 와인 지역에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바람도 시로코라 부른다. 사하라에서 불어오는 이 뜨거운 바람이 토양을 건조하게 유지해 포도밭에 유익한 역할도 하지만, 지중해를 지나며 습기를 품고 봄가을에 폭풍을 몰고 오기에 반갑지 않기도 하다. 

포도나무의 한 해는 겨울 지난 맨 가지에서부터 새순이 나오는 것으로 시작해 잎이 커지고 꽃피고 열매 맺고 추수하고 다시 다시 맨 가지로 돌아올 때까지 바람 잘 날 없이 드라마틱하다. 사실 자연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 없는 인간의 사시사철이 그러하지만. 지금쯤 늦가을 단풍이 한창이리라.

 

*필자소개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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