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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그대를 찾아서 6(강윤아)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20. 2. 2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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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찾아서 6

강윤아(청소년극 연구자)

이 연재는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중고등부의 91년 예술제인 뮤지컬 “그대 버려졌나”의 참가자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이다.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당시 공연 체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40대가 된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탐색하는 작업이다. [경동 예술제, “그대 버려졌나”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서는 본 연재의 초반에 소개한 바 있다.] 

D는 당시 고 2 였으며 대본을 집필했고 주인공의 역할을 맡았다. 현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동료 지원가로 근무하고 있다. 경동 교회에서 활발한 평신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터뷰는 2019년 10월 16일 오전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진행하였다. 지면상 대화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아래 대화에서 Y는 나다. 나도 당시 공연에 참가하였으며 그러한 인연으로 인해 D와의 대화가 막역하다.

 

D 에게 당시 기억에 대해서 물었다.

D: 나는 솔직히 많이 기억나지는 않고… 너무 재미있었다, 그 때 공연이 너무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공연 이후로 나의 학교 생활도 너무 활발해지고 밝아졌다 [...] 내가 사실은 내성적이고 수줍고 그런 편이었거든 서울에서도 약간 촌구석? 봉천동 출신이야. 유치원 때 미국에서 살 때는 되게 활달했는데 한국에 와서 좀 어두웠던 시기를… 왜냐하면 내가 학교에서 한국말도 잘 못해가지고 장난 치는 애들한테 짓궂게 구는 애들한테 좀 당하고… 그 때도 체벌이 있어가지고 선생님이 막 2학년짜리 여자애 치마를 들추고 엉덩이를 때리고 그랬었다. 그래서 환경도 그렇고 애들도 그렇고 이렇게 썩 신나지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책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 우리 아빠가 교육학자라 책을 재산처럼 여겨. 그래서 집이 도서관이거든. 그냥 활자를 읽었어. 친구도 별로 없고 하니까. 그래서 어린이 새벗 그런거 읽으면 어른 책도 읽고 […] 근데 이사, 분가를 하면서 이제 아빠가 젊었을 때 좋아하던 경동교회를 다니게 되었지. 근데 경동교회는 오니까 왠지 사람들이 세련되고 그런 것 같애. 있어보이고. 그래서 더 기가 죽은거야. 어린이 예배를 드려야 되는데 애들도 영악해보이고 그런거야. 영리하고 막 당차보이고… 그래서 나는 좀 주눅이 들었어. 어린이부 예배, 중고등부 예배 그런 것도 내 또래 애들이랑 드리지 못하고 어른 대예배 2층 구석에 앉아가지고 드리고 그랬었어. 그래서 신우회 [교회 청소년 자치 모임] 활동도 그 전까지는 제대로 못하고 그랬었어. 근데 학교에서는 공부는 잘 했지. 모범생이었어. […] 고1때 엄마 따라서 미국 가게 되었지 교환 교수로. H [동생]는 활달하니까 친구를 많이 사귀었어. 근데 나는 친구 사귀기가 거기서 더 힘들지. 영어도 안되지. 그래서 학교 가기가 너무 싫은거야.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하고 학생이 되게 자유로운 분위기, 눈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고 학생들을 되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그런거는 굉장히 인상깊었어. “오... 그런 세계가 있구나.” 막 한국에서는 뺨 때리고 막 난리가 나는데. 그런 새로운 세계에 눈이 떠졌어. 뭔가 좀 입시에 찌들어 있다가 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러다보니까 한국 와서 무언가 좀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 즐겁게 생활하게 되었고 그리고 또 교회 왔더니 K, J [D의 동기]가 너무 재미있는거야. 내가 그 동안 좀 외톨이여서 좀 모난 구석이… 그거를 얘네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잘 받아들여주고 그리고 유쾌하게 나를 잘 대해주는거야. 그래서 이제 즐겁게 생활하게 되었지.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음... 물론 여전히 학교는 좀 군대같기는 했지만 교회 생활이 즐거웠어. 특히 예술제를 준비하면서. 정확한 그 준비과정이 기억이 나지는 않아. K는 되게 자세하게 기억하더라고. 우리끼리 상의하다가 내가 하루 만에 썼구나. 하루 만에 쓴 줄도 몰랐어. 내가 썼다는 것만 기억을… 각색을 했다는 것만. 악보들이 있었거든. 스토리텔링 맨 악보들이 있어서 그걸 이제 요거를 요때 이렇게 짜깁기를 해가지고 지문 넣고 이렇게 이야기를 얼기 설기 엮으면 되겠다… 그 때가 내가 글쓰기를 평생 좋아하게 된 아마 시발점이 되었던거 같애. 아마 즐겁게 썼던거 같애 내 기억에. 좋아하니까 썼겠지. 싫어하는걸 어떻게 숙제도 아닌데 했겠니.

Y: 그 후로 글을 쓴거야?

D: (얼른) 그렇지. 그게 그런데 고대로 반영되지는 않았어. 나중에 박상영 선생님이 수정도 하시고 재미있게 바꾸고 좀 이렇게 하셨어. 뭐, 그랬지요. 그런게 기억나고 연기 연습을 처음으로… 예술제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거든. 그 전에는 내가 말했잖아. 수줍어서 주눅들어서 같은 또래들하고 신우회를 아예 못 갔으니까. 거의 못 갔으니까. 예술제는 참여도 당연히 안했고.

Y: 아, 진짜? 근데 처음 하면서 주인공을 했네…

D: 그러게 말이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 삼 때는 왜냐하면 못 하게 했잖아 입시생이니까. 내가 어쩌다가 주인공이 되었는지. 원래는 G가 하기로 했었는데 [G가 일본으로 가게 되면서] 땜빵으로 메우게 되는 격이 되었는데 박상영 선생님 [공연 연출]이 나를 좀 이렇게 자꾸 시켰어. 나는 좀 자신이 없었거든. 그럴 타입이 아니라고 했잖아. 내가 원래 성향이나 기질은 그럴 타입이 아니거든. 그렇게 나서고 주인공 하고 나대고. 그럴 타입이 아니거든. 그래서 연기 지도 받으면서 되게 쑥쓰러웠어. "어후… 이거 어떡하지" 근데 막상 무대에 서니까 짜릿하고 그런게 있었지.

Y: 박 선생님이 그런걸 또 알아보시네. 알아보고 시킨거지...

D: 그래서 나한테는 그게 굉장히 큰 새로운 경험이었지. 그 전까지는 주눅들고 그랬었는데 그걸로 인해서 사람들이 막 환호해주고 막 그 때 본당이 꽉 찼었잖아. 우리 엄마 직장 동료들이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고 물론 내 학교 친구들도 왔었고. 끝나고 나니까 막 처음보는 남자애들이 막 나한테 와서 인사하고 막 악수 청하고 그러는거야. 갑자기 스타가... 

Y: (웃음) 

D: 그런 기분 처음이었어. 그래서 그 후로 더 학교에서도 더 활발해졌을거야. 그런 경험이라는게 처음으로 해본거니까. 나도 이제 많이 바뀌었지. 예술제하면서 우리가 되게 중요시했던게 연습 계속 하면서 중 1에서부터 고 2까지 소외되는 사람 없게 하고 그리고 소통을 서로 잘 하고 그런걸 되게 중요시 여겼잖아. 그래서 그런 자산을 학교에서도 그대로 활용했어. 

Y: 아, 진짜? 

D: 소통하는 것들… 그걸 위해서 내가 우리반 우체부가 되었어. 우리 반 애들 쪽지나 편지 같은 것들을 다른 반 애들한테 전달해주는거야. 

Y: 그게 원래 있었어 아니면 

D: 없었어. 내가 만들었어. 너무 즐거웠어 그냥 그런게. 자연스럽게 그런걸 하게 되었어. 거기다가 나는 이과반이었거든? 근데 이과반 불어반이 하나밖에 없어가지고 고2, 고3이 똑같이 그 반 그대로 올라갔었어. 우리 그 때 애들끼리 진짜 친하고 잘 놀고 그랬었거든. 또 한 가지는 뒤 칠판에다가 커다란 색지, 색지를 붙인 다음에 이름을 써. 각각 애들의 이름을... 오며 가며 걔한테 해주고 싶은 말을 적게 하는거야.

Y: 롤링 페이퍼네?

D: 그래가지고 꽉 차면 걔한테 […] 당사자에게 전해줘. 그런 식으로. 그런걸 했었어. 

Y: 대단하다.

D: 그게 다 예술제의 자산이었지… 소통하고.. 소외되는 애 없게. 고 2 때 예술제 하고 고 3 때 트라우마 겪기 전까지의 그 짧았던 내 청소년기 시절은 한국에서의 그 군대 같았던 학교에서의 청소년기였지만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 였던 것 같애. 

Y: (놀람) 생애에서?

D: 어. 그 때 아침마다… 내가 기억나는게.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이렇게 기도했거든. "하나님 오늘도 새 날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했어. [...] 학교를 가는거야. 그러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상들, 친구들과의 삶, 학교와 교회의 그런 친구들과의 삶이 너무.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한거야. 그 중심에 예술제와 “그대 버려졌나”가 있었던거지. 

Y: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D: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하고. 그 다음에 소통.. 소통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 

Y: 맞아. 

D: 내가 전에 인터뷰한 것도.. 거기서도 회복은 결국은 소통입니다... 뭐 그런 이야기 주제로 했었던게 나오거든. 

Y: (의미 심장) 맞아. 소통. 그게 어떤 소통이었지? 우리가 그 때? 일단 너무 재미있었는데… 

[…]

D: 교제

Y: 교제. 그렇지. 

D: 그 때는 지금도 그렇지만 너무 경쟁 그런게 심하잖아. 남들한테 눈 돌릴 여유도 없고 옆 사람이 뭘 하든 신경도 안 쓰고. 우리끼리 교제하고 즐겁게 얘기 나누고 소통하고 그러는게 그게 좋고 즐겁고… 

Y: 그 시절의 체험이나 기억이 혹시 그 이후에 지금 까지 […] 끼친 영향이 있다면 

D: 내가 요새 와서 다시 아침마다 감사하다.. 그 때 기분 비슷하게 좀 느끼고 있어. 그 때 처럼 막 어린 소녀의 막 “새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환희는 아니지만. 그래도 잔잔하게 ”아, 감사합니다.” 그 때만큼 그렇게 선명하게 뚜렷하게 느끼는건 아니지만 요새도 그런걸 좀 느껴. 사실 그 때는 주일 학교에서 뭐 성경공부하고 말씀 듣고 뭐 이런 것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그게 와 닿았던 것 같지는 않아. 진짜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7년 전에 성경 통독하면서 와 닿았거든. 그 때 진짜 “와, 나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구나.” 그 부분을 읽으면서 막 눈물이 나더라고. 그 때 부터 죄를 고백하게 되고. 내가 그동안 너무 부정적이었던거 그것들을 특히 고백하게 되어서 근데 예술제… 무엇일까? 그 후로는 트라우마 때문에 너무 부정적이 되가지고 오랜 세월 동안 그게 어떤 영향을 주거나 그러지는 못했던 것 같애. 하지만. 내가 다시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때부터 청년회를 하게 될 때 그 때도 아직은 성경을 읽기 전이었지만 그 때 찬양 팀하고 되게 활발하게 활동했거든 […] 그 때도 약간 소통 그런 느낌이 났어. 그 때는 즐겁게 보냈지. […]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된건 아니지만. 왜냐하면 그 때는 성경을 읽기 전이었으니까. 내가 성경을 읽는다는게 문자적으로 읽는다는게 아니라 말씀이 곧 예수님이고 하나님 이잖아 [...]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내 죄를 고백하고 매일 말씀을 조금씩 조금씩 묵상하며 살게 되기 전의 삶이었지만 그래도 그 소통, 교제 그런 것들이 그 때 살아난 느낌이었지. 그래서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다시 또 여기서 그게 또 있었던거지. 그게 참 중요한 것 같애.

Y: 그러면 그 두 행복한 사건들은 어떻게 보면 신앙 안에서의 교제였던거잖애. 

D: 그렇지... 회복해주는 그 단계였던거 같애. 고등학교 예술제 그것도 회복의 단계. 청년부 예배 그것도 회복의 단계. 점점점 이렇게 올라가는 것 같애. 그 다음에 지금은 또 경동교회 젊은 애기 엄마들 에스더 소회라고 그러는데... 그 교제 모임. 그 교제 모임이 점점점점 단계적으로 이렇게 올라가는 것 같애. 

Y: 그 소통에 있어서… 뮤지컬이라고 하는 것의 어떤 역할이 있었을까?

D: 신나야지. 노래가 있어야지. 찬양이 얼마나 중요하니. 지금도 나.. 여신도 성가대 하는데.. 찬양, 노래, 춤추시는 하나님..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애. 헨리 나우엔이 쓴 책 춤추시는 하나님도 있잖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하나님이 기쁘시면 춤을 추시겠지. 노래, 춤. 이런 것들이 참 중요하고. 예술제 그대 버려졌나에 그게 있어서 참 좋았던거... 

Y: 그 때는 근데 우리가 그런거까지는 모르고 췄겠지? 춤추시는 하나님 이런거?

D: 모르고 췄겠지...

(둘 다 폭소)

Y: 근데 나는 자꾸 생각이 나는게… 그냥.. 이렇게 몸을 흔드는 춤하고... 좀 다르게 기억이 되는거야. 거기서의 춤이나..

D: 그렇지 [...] 

Y: 그게 어떻게 다르지? 우리가 비록 춤추시는 하나님 이런거는 몰랐지만 마치 춤추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뭐가 춤추게 만들었을까… 나는 계속 궁금하거든.  

D: 응, 그렇지.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춤추고 노래하고 하는거니까 더 신나고 그랬겠지 […] 그냥 자기 자신의 흥이 아니라 쾌락 그런게 아니라 함께 한다 그런 것들 

[…]

Y: 이게 몸으로 드리는 예배였는데 정말 예배였을까… 하나님은 당연히 계셨겠지 근데 우리가 알았을까? 

D: 수레바퀴 예화라는게 있어. [...] 말씀, 기도, 교제, 증거 [...] 교제를 먼저 했던거지. 말씀과 기도를 조금씩 듣기는 했지만 [...] 

Y: 그것이 예배였을까?

D: 어린 아이들의 예배였고 그 때 기도도 했었고 그때 말씀도 조금씩 섭취했었고 키와 지혜가 자란다고 하잖아. 처음부터 창세기 1장 1절부터 읽는건 아니잖아. 

[...] 

Y: 아까 이 사건이 없었더라면 언니 고등학교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얘기를 했는데 혹시 그 후에도 달라진 것이 있었을까?

D: 이게… 성격이라고 그러나?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그러나? 그런거의 어떤 기틀을 마련해준 것 같애 [...] 내가 거기서 청년부로 나오고 자원봉사도 했었거든. 선이클 [선한 이웃 클리닉: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의료 봉사]도 했었고 경동 탈북 대안 학교 […] 거의 초창기 멤버로 교사들 모여서 회의할 때 처음부터 있었어. 교회 분들이 자원 교사 신청을 받았거든. 그래서 나는 국어, 수학 교사가 되었는데 그 때 예술제 때 배려하고 소통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없게 해주고 그런 것들이 어떤 자산이 되고 내 어떤 밑바탕에 깔리기 시작해가지고 청년부를 하거나 대안학교를 하거나 그런거를 할 때도 그런 것들을 인제 그런 역량들을 발휘하게 된거지. [...] 삶의 큰 의미나 목적과의 관계가 제대로 성립… 이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인데. 그게 꼭 한 번에 완성되고. 그런게 아니잖아. 교제도 필요하고 말씀도 필요하고 그런거지. 

(끝.)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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