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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선동꾼 아니면 사기꾼(문재승)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20. 3. 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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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꾼 아니면 사기꾼

문재승 (가족신문 월간 제주살이 편집장)

사랑하는 아들들아,

최영 장군이라고 들어봤니. 아마 니들 나중에 국사시간에서 배울 거 같은데, 아빠가 배운 바로는 고려말 전쟁영웅이자 이성계에게 뒤통수를 맞아 죽음을 맞이한, 무덤에 풀이 나지 않는 위인이야. 그런데 이 장군님께서 글쎄 우리 집 근처 포구에 아주 자주 등장하는 분이더구나.

바로 그 최영 장군이 수백 년전에 군인들 2만 5천명을 300 척의 전함에 태워서 제주도로 건너온 적이 있대. 물론 왕으로부터 명을 받아 누군가와 싸움을 벌이기 위해서였겠지. 당시 제주에는 ‘목호’라 불리우는 몽골 사람들이 목장에서 말을 키우고 있었는데 이들이 고려왕 말을 안듣고 속을 썩여 최영 장군이 친히 참교육하러 왔다더구나. 

2만 명 넘게 군사를 데리고 온 걸 보면 당시 제주도에서 목호의 세력이 상당했던 모양이야. 그만큼 승리가 간절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제주에서 일반 사람들과 섞여 정착한지 100년이 다된 시점이라 단순히 제주도에서 오랑캐를 몰아낸다는 싸움의 명분 말고 다른 꿍꿍이가 있었을 거야. 그때부터 제주 사람들은 육지에서 그럴싸한 명분으로 칼을 휘두르며 건너오는 사람들을 경계했을지도 모르겠다.

추자도를 거쳐 한림 근처에 상륙한 최영 군사 일행은 목호세력과의 치열한 싸움을 거쳐 밀고 내려왔고, (역사책에 의하면) 고려군에게 개털린 목호 잔존 세력들이 바로 우리 집 앞 법환포구까지 버티다가 바다를 건너 범섬으로 도망치고 말았어. 독한 최영 장군은 오랑캐를 한놈도 남김없이 잡으려고 포구에서 섬까지 배를 이어붙여 다리를 만든 후 바다를 건너가 이들을 일망타진했다는 ‘자랑스런’ 이야기가 포구 곳곳에 비석으로 남아있구나. 

그런데 말이야, 니들이 생각할 때는 최영 장군과 목호 세력 둘 중에 누가 좋은 놈이고 나쁜 놈 같니? 지금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기념비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조상이라고 믿는 고려인 최영 일행이 좋은 놈들이고, 머리를 이상하게 변발해 제주도에서 백년동안 살았던 몽골족 목호들이 나쁜 놈들인 걸까? 

사실 당시 제주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누가 나쁜놈들인지 분별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야. 오랜 세월 독립국이었던 탐라국의 백성으로 살던 사람들이 고려에 병합되어 고려인으로 살아간지 불과 200년이 지났을 시점이었거든. 최영 장군과 그 군사들은 둘째치고, 당시 제주에 살던 사람들에게 나쁜 놈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아들들아, 세상이 니들이 보는 만화처럼 선과 악으로 무 자르듯이 구분되기 쉬운 곳이라면 좋겠다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 좋은놈과 나쁜놈으로 딱 잘라 구분지어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

앞으로 니들의 관심은 만화에서 현실로 서서히 옮아갈 텐데, 책을 읽을 때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단호함을 기반으로 선악을 구분짓는 것들에 대해 니들이 한번 쯤 가볍게 의심해 봤으면 좋겠다. 만약 그런 단호함을 시전하는 사람들이라면 선동꾼 아니면 사기꾼일 가능성, 낮지 않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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