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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바울다시보기 D-3, 떨린다(김진호)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20. 4. 2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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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다시보기 D-3, 떨린다

김진호(본 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심장, 나의 숨통, 나의 피부, 나의 머리카락, 나의 모세혈관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코로나 핑계로 3주나 미루었던 바울 강의가 시작되기 D-3이다. 다른 일들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바울에 집중할 시간을 만들려 했지만, 어느새 슬금슬금 끼어든 것들이 제법 많다. 생계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니 한 가지 것에 몰두할 수는 없었던 게다. 아무튼 신경은 잔뜩 예민해져 있는데, 내 손은 이것저것에 분주하다. 

2010년쯤 시작했던 바울 연구는 2013년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240쪽도 안 되는 적은 부피의 책인데도, 내 능력으론 심하게 버거웠는지, 원고 마친 직후 시내의 한 서점에서 잠시 정신을 잃었다. 지력은 몰라도 신체의 기력만은 자신 있다고 장담했는데, 몇 초간 일어난 이 사건에 충격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심하게 몸을 사렸다. 《리부팅 바울》을 마무리하고 출판사에 넘길 때 이미 아쉬웠던 것들, 어쩌면 340쪽 혹은 400쪽은 되어야 할 법한 못다한 이야기들이 숙제처럼 남았지만 ‘언젠가는 하겠지’라고 위안하며 제쳐두었다. 실은 절반은 포기한 마음으로. 그리고 2019년 연구소에서 현역 은퇴를 하고 나서, 소일거리쯤으로 편하게 생각했던 성서아카데미가 생각보다 커졌다. 작년에 했던 20회의 예수 강의는 이십여 년 전에 썼던 《예수역사학》의 후속판으로 출판하기로 했다. 그리고 《리부팅 바울》을 쓰기 시작한 지 거의 10년이 지난 올해, 20회의 강의에서 다룰 바울은 어쩌면 《리부팅 바울》의 후속판으로 태어날지도 모른다. 그 사이 건강이 좀더 나빠졌으니 과연 가능할까, 두려움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강의를 앞둔 자의 마음은 책이 될 만큼의 완성도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리부팅 바울》에서 나는 2천년 전 지중해의 메트로폴리탄들에서 예수운동에 매진했던 바울과 오늘의 ‘도시국가 서울’(나는 글로벌시대 한국을 그렇게 표현했다)에서 바울의 예수운동을 되새기려는 우리 사이의 ‘민중신학’이라는 다리를 가설하고자 했다. 곧 글로벌시대 도시국가 서울에서 민중신학이라는 망원경으로 바울을 본다. 고대지중해의 메트로폴리탄들에서 그 질서와 불화하며 살았던 바울이다. 거기서 그는 ‘권리 없는 자들을 위한 신학’을 구축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바울의 눈에 비추인 권리 없는 자들은 지중해 대도시들을 부유물처럼 떠도는 난민들과 노예들, 여성들이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생활을 나누며 하느님의 사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소를 만들었다. 그는 그곳을 에클레시아, 곧 교회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것들은 너무 큰 스케치였다. 텍스트 속에는 디테일들이 많다. 바울의 큰 스케치가 구현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동요하게도 하는 디테일들이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바울은, 눈보라 폭풍우 속에서도 우뚝 선 상록수가 아니라, 휘청이고 절름거리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한 바울이다. 그런 현장에서 30여 년을 달렸던 사람의 이야기, 한치의 허점도 없이 달리는 영웅적 마라토너가 아니라, 거친 숨을 내쉬고 절룩거리며 가끔씩 뒤를 돌아보기도 하는, 실수에 괴로워하고 무력함에 절망하는 사람, 그러면서 결국 삶의 종착지까지 완주한 사람, 십년 전 내가 못다한 바울의 이야기는 이렇다. 과연 생각처럼 그 디테일을 잘 재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의 뭉뚝한 지력과 필력이 닿을랑 말랑한 지점까지 가보려는 게 이번 강의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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