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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용수 선생의 발언과 정의연] 넘어서야 할 것과 거리를 두어야 할 것(조민아)

특집

by 제3시대 2020. 5. 2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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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선생의 발언과 정의연

넘어서야 할 것과 거리를 두어야 할 것

조민아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본 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스위스의 사회문화학자 울리히 슈미트 (Ulrich Schmid)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담론을 통해 형성된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 이념에는 “승리가 아닌 패배가, 자기 긍정이 충만한 영웅 서사가 아닌 비극적이고 모멸스러운 패배와 피해의 서사가 그 중심에 있다.” 영웅서사와 피해자서사는 공히 우리와 적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출발한다.  영웅은 적보다 강하고, 피해자는 적보다 약하다. 그러나 피해자서사에 등장하는 고통은 국가를, 아니 그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민족을 단일한 공동체로 묶는데 있어 영웅서사 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 영웅 서사는 승리의 주도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들로 이미 과잉되어 있기에 필연적으로 폭발하거나 분산되거나 스스로 소진하고 말지만, 피해자 서사는 지속적으로 채워져야 할 “이념적으로 텅 빈 공간”을 열기 때문이다. 그 공간의 기저에는 감성이 있고, 감성은 공감과 연대를 부르며, 따라서 관련된 내러티브들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승리는 짧고 무상하되, 고통은 길고 집요하게 세월을 장악한다.  

슈미트의 논문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홀로코스트 담론에서 피해자서사가 확보하는 독특한 지위에 관한 언급이다.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권력의 서열에서 낮은 위치에 서 있다는 것, 따라서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인정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사실이 국가적 피해와 연결되어 있을 때는 여론의 인정 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제도적인 인정 또한 받아내야 한다. 그 인정투쟁이 성공하면 피해자서사는 피해자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 주체가 되는 “피해자민족주의 서사”로 전화하고, 피해자는 그 진리의 살아 있는 담보자가 되어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 받는다. 홀로코스트 담론에서 볼 수 있듯, 피해자의 서사가 민족과 국가의 서사가 되면 이 서사는 도전을 받지도 질문의 여지를 둘 수도 없는 “성역”으로 자리매김하고, 피해자에게는 “판결자”의 지위가 주어진다. 고통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나 새로운 평가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피해자민족주의가 극대화할 경우 어떤 모습이 되는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슈미트의 논문은 피해자민족주의를 국가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지만, 내 관심을 끄는 것은 그보다도 피해자서사가 피해자민족주의 서사로 전화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개인에게 가해지는 인식론적 폭력이다. 모든 피해자/생존자 중심 운동은 피해자라는 정체성, “피해자다움”을 전제로 시작된다. 피해자는 피해자 일뿐 다양한 욕망을 가진 시민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복수일 경우 의견의 차이가 있어서도 안 된다. 더구나 홀로코스트 혹은 일본군 위안부제도와 같은 국가적 폭력의 피해자/생존자들은 가해자들의 잔혹함을 입증함으로써 진실을 확립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는 한 없이 불쌍해지고 비참해져야만 한다.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폭력의 희생자로 살아가는 것 외에는 일상의 행복을 영유할 수도,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그 와중에 피해자/생존자는 자신의 내러티브에 갇히고 만다. 선하고 정의로운 의도”가 실은 피해자/생존자들을 억압하는 인식의 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이 갖고 있는 독특한 지위는, 피해자/생존자의 서사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피해자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있다는 것, 즉 “판결자”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사회 피해자/생존자 중심 운동 중 유일한 예가 아닐까 싶다. 한국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담론은 회색지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민족과 반민족, 정의와 불의, 양심과 비 양심을 가르는 기준이다. 그 기준의 중심에는 고통의 상징인 생존자들이 있다. 이 필수적인 신념이 깨어진다면 담론 전체가, 진실 자체가 무너질 것처럼 인식 되어 왔다. 30년 동안의 인정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이기도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라는 정체성 외에 다른 모든 삶의 기회를 반납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연스레 이 피해자 서사는 정의연 운동의 정체성과 동일시되었다. 

5월 25일, 이용수 선생의 2차 기자회견이 있었다. 우선, 사건의 발단이 되었고 일부 언론이 여전히 부각시키고 있는 선생의 발언은 “정의연의 기금이 할머니들에게 돌아온 적은 없다”는 것이다. 오늘 추가된 내용 중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명칭에 관한 것, 그리고 선생 스스로 강조한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의 세 가지 원칙, 즉 “시민주도 방식,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와 여섯 가지 앞으로의 활동 방향이다. 증언집에 관한 것은 이미 증언집 발간이 운동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해 왔는가 잘 알려진 부분이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정의연의 기금 사용을 둘러싼 논란은 사실 낯설지 않다. 기부금 전액이 생존자들의 생활지원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논란은 정대협 초기부터 있었던 논란이다. 정대협/정의연은 모든 기금 모금 당시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기금은 생존자 복지 이외에도 전쟁과 여성 박물관 설립으로, 나비 기금으로, 성착취 구조와 전시 성폭력을 단절하는데 쓰일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고 생존자들도 동의했다. 생존자들과 대중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라기 보다는 생존자들을 덮어 쓰고 있는 피해자민족주의 서사가 너무 거대해 정의연 운동의 지향을 가리고 있었다. 30년 동안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이 여성인권과 인권운동으로서 이룩한 모든 결실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은 생존자들을 피해자”로, 정의연을 단순히 생존자들을 돕는 피해자 복지단체로 인식하는데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물론, 피해자민족주의를 운동의 구심으로 삼았던 정의연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정의연이 피해자민족주의를 부각시키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운동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정의연은 한국사회 여성단체 중 대국민적인 공감을 끌어내고 정치력을 획득한 유일한 여성단체다. 여성들이 활동의 중심이 되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한 유일한 여성단체라는 말이다. 어쩌면 정의연이 30년을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가 피해자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운동의 현실은 이렇게 척박하다. 

정대협에서 “(근로)정신대”라는 명칭을 “위안부” 대신 단체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도 숱한 논란을 거친 결과다. 정의연에서 해명한 것과 같이, 1990년대 정대협 설립 당시에는 위안부 피해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정신대”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사실 정대협은 설립 초기 비상대책위 형태의 임시 체제로 출발했다. 즉각적인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사죄 배상이 목적이었던 당시에는 이 운동이 30년이나 이어질 것이라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일본정부가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면서 운동은 하염없이 지속되었고, 이에 따라 연구조사와 국제 활동을 병행하며 위안부 문제해결운동은 성장했다. 국제적인 공식 명칭이 “성노예”로 정립 되면서 단체의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여러 번 있었으나, 이용수 선생 본인이 “성노예”라는 명칭을 불편해 하는 것처럼, 당시의 많은 생존자들은 “성노예”라는 명칭 뿐 아니라 “위안부”라는 명칭 또한 불편해했다.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대협이 정신대라는 명칭을 고수한 까닭은 이용수 선생의 발언처럼 생존자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은 돌아가신 많은 생존자들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선생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의 원칙과 방향일 것이다. 과정의 투명성 확보는 정의연이 검찰의 공격적인 대응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모든 정보를 공개하며 수사에 협조하고 있으니 밝혀질 것이고 개선될 것이다. 정의연은 지금껏 의혹에 대해 일일이 성실하게 해명하고 있고, 절차상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언론이 문제다. 여전히 이 문제를 정치 프레임에 엮어 피해자와 배신자의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그 외 선생이 강조한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의 원칙과 방향은 사실 선생 본인이 다른 생존자들과 정의연과 함께 30년 동안 지향해 왔으나 아직 다다르지 못한 운동의 목적, 내용, 지향과 대부분 동일하다. 

오해가 되었던 부분을 거두어 내고, 이용수 선생의 발언과 정의연의 해명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은 한 생존자의 “고발” 혹은 “입장 변화”로 비롯된 생존자와 생존자를 지원한 운동 단체 사이의 결렬로 인한 소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낡고 녹슨 구조물이 무너져가는 소리,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을 떠받치고 있었던 무겁고 거대한 피해자민족주의 담론에 균열이 생기면서 터져 나오는 굉음이다. 생존자들을 피해자라는 단일한 이미지에 가두었던, 의견 차이나 새로운 시각이 발을 들여 놓을 수 없게 만들었던, 정의연이 해 왔던 연구조사교육 사업, 국내외 연대사업, 전시성폭력재발방지 사업을 모두 별책부록으로 치부하게 만들었던 피해자민족주의 담론에 비로소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민족주의가 사라진다고 해서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의 역사와 성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운동은 생존자들과 활동가들이 30년을 함께하며 성장한 운동이며 이들이 일궈 온 국내외 연대, 특히 콩고, 우간다, 베트남 등의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과 아동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은 피해자민족주의를 넘어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자민족주의를 넘어 선 여성운동, 인권운동으로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며, 지평의 확장이다. 인식이 넓어지고 다양해진다고 해서 한일역사 관련 교육과 일본정부를 향한 사죄배상 촉구가 힘을 잃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생존자들을, 이용수 선생을, 소녀상에 갇힌 피해자가 아니라 한사람의 인권운동가로서 존중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 진정성과 헌신을 알기에 신뢰할 수 있고, 신뢰하기에 비판을 할 수도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운동가로 존중해 드리는 게 생존자들에 대한, 선생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아닐까 말이다. 운동가는 “판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실망하거나 비방하거나 분노할 때가 아니라 한발 물러서서 돌아봐야 할 때다. 이용수 선생과 정의연 양쪽의 소리를 경청하며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 양쪽의 이해가 어긋나는 지점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이 언론이다. 단지 조회 수가 목적인 언론은 이미 오래 전에 자정능력을 잃었다. 구조적인 문제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선정적인 기사, 왜곡과 편파 보도로 여론을 조장하는 언론에 대응하는 방법은 보이콧이다. 관심을 주지 말자.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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