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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피아노 협주곡 <기억>(2015) - 멈춰짐의 공간, 나아감의 시간 II(이재구)

특집

by 제3시대 2018. 4. 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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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기억>(2015) - 멈춰짐의 공간, 나아감의 시간 II



이재구*

 


 

기본적으로 현대음악은 ‘대중성’이라는 형식과 ’민중성’이라는 내용을 취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이것은 현대음악이 대중성과 민중성이라는 형식과 내용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음악은 존재론적으로 대중성과 민중성을 담아 내는 것에 있어 불능(不能)하기에 그 의무에서 면제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불능은 근대가 던저 둔 ‘예술의 자율성’과 ‘중단없는 혁신’이라는 달콤한 두 유혹 앞에 현대음악이 스스로를 내어 준 순간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자유’와 ‘혁신’이란 매혹적인 포도주가 ‘모더니즘’이라는 세련미 넘치는 유리병에 담겨 배달된 곳은 다름 아닌 20세기 초 빈(Wien)의 음악선생 쇤베르크(Arnold Schöberg)의 작은 작업실이었다. 쇤베르크는 그의 작업실에서 그 매혹의 포도주를 음미하는 가운데 지금껏 음악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가장 소외되고 배제되어 온 한 대상을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불협화’였다. 쇤베르크에겐 불협화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은 채 작품의 형식과 규모의 극적인 확대만을 마치 혁신의 전부인냥 외쳐 대던 동시대 주류 작곡가들의 행태는, 그저 위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선율, 화성, 형식 등 음악을 구성하는 중요한 얼개들이 한껏 자유를 구가하고 있던 희망 가득한 새 세기의 초에도, 여전히 억압받고 있던 가장 소외된 존재, 바로 불협화에 주목했던 것이다.


쇤베르크는 근대가 추동해 온 음악해방 운동의 완성은 ‘불협화의 해방’ 없이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결국 음악 해방의 완성에 투신한다. 그의 투신은 불협화가 온전히 주인이 되는 음악 세상, 즉 불협화를 위한 ‘유토피아’ 건설에 헌신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쇤베르크의 뜨거운 열정과 흔들림없는 추진력은 이내 불협화가 온전히 해방된 세상을 탄생시킨다. 사람들은 그렇게 창조된 새로운 불협화들의 음악공간을 ‘무조음악’(atonal music)이라 불렀다.


무조음악은 불협화가 그 어떠한 구속도 없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희열과 환희의 공간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희열과 환희의 공간엔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그곳은 낯선 음표들의 해방감만이 충만한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호기심에 무조음악이 낸 창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다가가보려 했지만, 그 때마다 불협화는 뜻 밖에도 차갑고 불친절한 표정과 말투로 사람들을 응대했다. 사람들은 불협화가 보인 불친절함과 무심함에 많이 속상해하며 무조음악이라는 새로운 공간 자체에 대해 크게 실망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것이 무조음악에 대한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다. ‘무조음악’이 사실 그대로 고백하였다. 자신은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존재가 아니라고… 자신은 단지 불협화가 소외되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일 뿐이라고… 그랬다. ‘무조음악’은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현대음악’은 존재론적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 있어 철저히 ‘불능’하다.


생기가 가득했던 4월 16일 오전에는 도통 배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아이들이 모든 기운을 소진하고서야 배 밖 뭍으로 하나둘씩 나와 엄마아빠의 슬픈 가슴에 안기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들의 가슴 속은 슬픔과 고통으로 새까맣게 다 타버렸는데도 엄마아빠들은 무슨 힘이 남아 있다고 아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또 불렀다. 엄마아빠들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절규할 때, 나는 차마 그 외침을 들을 수 없어 귀를 막은 채 영혼의 골방 속에 홀로 움크리고 앉아만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외마디의 소리만 되뇌일 뿐이었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엄마아빠들, … 죄송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엄마아빠들에게 죄송한 마음에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녔다. 고개를 들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사그라들까 두려웠다. 그래서 더 아래로, 더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리고 고개를 아래로 숙일 때마다 또 다시 되뇌었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엄마아빠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함과 죄송함의 빚을 진 많은 시민들이 아이들을 하늘로 떠나 보낸 엄마아빠들의 아픔에 여러 모양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을 여러 매체를 통해 이곳 시카고에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그 안도감은 한없이 움크리고만 있었던 나의 내면을 추스를 작은 여유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을 더듬어서라도 찾아갈 수 있는 여력도 조금은 생긴듯 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오선지와 악보들이 놓여 있는 책상을 가만히 다시 마주하였다. 마주한 책상 앞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꼭 확인해 보고 싶은 몇 가지 것들이 있었다.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무엇이지…?’ 

‘혹시 내가 써야만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가…?’


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나왔다. 내겐 내년 초까지 ‘써내야’만 하는 학위작품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 첫번째 질문도 이전 같으면 그리 고민할 성격의 질문이 아니었는데, 내가 쓰고 싶은 음악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늘 혁신적인 소리에 대한 탐구와 실험을 반영하는 ‘현대적’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내 마음 속을 맴돌고 있는 음악은 분명히 혁신과 실험에 관한 음악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음악도 아니었다. 내 마음 속을 울리고 있는 것은 소리가 아닌 오히려 이미지와도 같은 어떤 것이었다. 그 이미지 속에서 아이들은 모두가 별이 되어 우리들의 모진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아빠들은 긴 팔을 뻗어 그 별들을 한아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별이 된 아이들을 꼬옥 안고 한없이 행복해하는 엄마아빠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혼자 되뇌고 있었다.


‘아, 아이들이 살아있었구나…!’ 

‘아이들아, 엄마아빠를 꼭 끝까지 지켜주렴…!’ 

‘그리고 부족한 우리들도 지켜봐주렴…’ 


내가 쓰고 싶은 음악이 마음 속에서 울리고 있어 다행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라도 얻고 나니 내가 써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학위작품에 내가 쓰고 싶은 음악을 담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날 애써 직면하지 않은 것, 아니 어쩌면 내심 그날만은 직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한 가지 있긴 하였다. 그것은 바로 내 몸과 손 끝에 익숙한 현대음악이라는 재료의 문제였다. 현대음악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다. 현대음악 안에는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아니 사랑에는 관심없는 불협화들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내가 쓸 줄 아는 재료는 현대음악 뿐이다. 현대음악은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것에 철저히 ‘불능’한데 말이다. 


(최종회에서 이어집니다.)




* 필자소개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작곡전공으로 Ph. D학위를 받고 현재 가천대, 국민대에서 작곡이론과 음악일반에 대해 강의 중.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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