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협주곡 <기억>(2015) - 멈춰짐의 공간, 나아감의 시간 I
이재구*
제법 오래전부터 박사학위 작품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구상해 왔었다. 협주곡의 하위장르로서 피아노 협주곡은 내게 늘 흥미로운 탐구의 대상이었다. 기본적으로 피아노는 여타 협주곡 장르의 독주악기들(예컨대, 바이올린, 첼로 등의 현악독주악기와 클라리넷, 트럼펫 등의 관악독주악기)과는 달리 자신의 대화 상대자인 오케스트라와 음색의 측면에서 이질적이다. 이러한 음색적 이질성은 피아노의 독특한 발음(發音)원리인 ‘타현’(打絃)에 기인하는데, 이때 타현이라 함은 건반을 누름과 동시에 건반과 일대일로 연결된 해머펠트가 피아노 내부의 현을 때려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현악기들이 현을 켜거나(=찰현) 현을 뜯는(=발현) 방식을 통해 소리를 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인 것이다. 또한 피아노는 건반 터치의 정도에 따라 섬세한 강약조절이 가능하며, 7옥타브가 넘는 넓은 음역안에서 고음, 중음, 저음의 모든 음역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기에 다른 무리의 악기들과 함께 연주될 때 그 음색의 독특함은 더더욱 도드라진다. 이러한 음색적 도드라짐으로 인해 피아노는 아쉽게도 18세기 중엽 이래 형성된 근대적 의미의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피아노의 풍부한 음량과 섬세한 표현력은 ‘대비’와 ‘조화’라는 이상 아래 탄생한 협주곡 분야에서 오히려 그 자신을 빼어난 독주악기로서 자리매김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음향덩어리가 연주회장을 휘몰아 칠 때 굵고 묵직한 화성으로 그것을 능히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피아노였던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오케스트라가 잠시 휴식을 위해 넓고 풍성한 음향의 돗자리를 펼치는 순간, 능청스럽게도(?) 그 위에 올라타서 우아하고 감미로운 선율을 노래하며 주인공 역할을 자처하는 것 역시 다름 아닌 피아노였다.
작곡을 제도권의 틀 안에서 배우기 시작한 2001년 이래로 줄곧 현대음악 공부에 전념해 왔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발현 이후 대부분의 주류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이념처럼 따르고 있는 ‘새로움’과 ‘혁신’의 가치와 ‘소리’에 대한 탐구는 늘 나를 매료시켜 왔다. ‘새로운’ 음향을 고안하고 생성하는 것, ‘혁신적인’ 작곡 기법과 ‘급진적인’ 형식을 실험하는 것은 현대음악 작곡학도로서의 나의 최우선의 과제였다. 비록 정성껏 준비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은 어김없이 고되고 지난했지만, 연주가 시작되고 음악이 펼쳐지는 순간 찾아오는 희열은 항상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았다. 물론 나의 이러한 실험지향적 작품이 풍기는 낯설음으로 인해 곤란해 하는 청중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오해(?)를 풀고자 작품의 배경 및 작업의 과정, 그리고 실험의 내용을 가능한 한 자세히 청중들에게 설명하려 애쓰던 기억들이 새삼스레 스쳐간다.
십여 년이 넘는 기간에 걸친 현대음악 이론과 작곡법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피아노 협주곡을 학위작품으로 제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학교에 알린 것은 2013년 12월 말 경이었다. 학교측에서는 내게 2015년 4월 1일을 초연 날짜로 정하여 통보해주었고, 나는 일 년이 조금 넘는 작업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초연 날짜가 정해진 후, 그 동안 연구하며 수집했던 자료들과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현대음악 작품들의 악보를 책상 위에 쌓아놓고 여러 각도에서 피아노 협주곡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나의 목표는 그 동안 훈련했던 현대음악 기법들을 집대성하여, 독창적인 음재료(=화음, 음계 등)를 체계적으로 구성한 후, 혁신적인 ‘형식’구조의 틀 안에 촘촘하고 치밀하게 배치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것은 다분히 그 동안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시행해 왔던 ‘소리’연구와 ‘형식’실험을 총결산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피아노 협주곡의 준비 과정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항상 그러했듯 신작 발표에 대한 기대감은 창작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학위 과정의 마지막 작품을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나의 마음가짐은 남달랐고 작품은 점점 더 세밀하고 꼼꼼하게 구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학위작품 준비로 바쁘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덧 수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어제와도 내일과도 그리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일 것 같았던 2014년 4월 16일을 맞았다.
시카고에서는 슬픈 4월 16일을 15일 저녁 시간에 마주해야만 했다. 모두를 잠시 안도하게 했던 ‘전원구조!’라는 자막과 함께 송출된 뉴스는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더니, 반나절이 못 되어 결국 거짓임이 드러났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못 구하고 있는 것이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주지 않았고, 우리 모두는 다급한 마음에 소리만 치고 있을 뿐이었다. ‘왜 구하는 않는 거야, 왜…!?’
우리의 질문이 ‘왜 구하지 않았던 것이지…!?’로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이미 ‘골든 타임’이 훨씬 지난 뒤였다. 처음에는 상황의 긴박함과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그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한 혼란 속에서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깨달아 가고 있는 분명한 사실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나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들은 내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일 뿐만 아니라 나의 작고 투박한 감정의 그릇으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슬픔과 고통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나의 상식과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는 부조리와 비합리성으로 가득차 있는 혼돈 그 자체라는 것.
’왜 구하지 않았던가…? 왜…’
하지만 ‘왜 구하지 않았던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기도 전에, 차갑고 싸늘하게 굳어버린 아이들의 몸이 오열하는 엄마, 아빠의 품에 안기기 시작한 후로, 모두가 그러했듯 나는 나 스스로를 깊고 어두운 영혼의 골방 속에 완전히 가두어 버렸다. 골방 밖으로 나오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다. 골방 밖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와 비합리성이 가득한 온통 괴로움 뿐인 세상이었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학위작품에 대한 구상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멈춰져 있었다. 다시 작곡에 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작업을 못하고 있는 것이 그리 속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영혼의 골방 속에 가두어 둔 나의 무기력한 감정의 상태와 내가 열렬히 열망하며 기획하고 있었던 학위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깊고 큰 간극, 그 간극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싶을 뿐이었다.
* 필자소개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작곡전공으로 Ph. D학위를 받고 현재 경원대, 국민대에서 작곡이론과 음악일반에 대해 강의 중.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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