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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내 삶을 존중받으며 무리에 섞인다는 것(최시내)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21. 4. 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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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존중받으며 무리에 섞인다는 것

 

최시내(사과나무 디자인 노동자)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내 성격을 보자면, INFP다.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앞에 I, 즉 내향적인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뀐 적이 없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아주 잠깐 외향형에 가까웠던 시절이 있다면,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무렵일 것 같다. 극도로 내성적이었던 1, 2학년을 지나 급격하게 활달한 성격으로 변했었다. 그 무렵엔 키가 쭉쭉 자라 여자아이들 중엔 큰 편이었고, 남자아이들하고도 별로 차이가 없어졌다. 그리고 공부를 했을 리 없지만, 엄마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 내가 무난히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 간에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부쩍 자신감이 붙었던 건지 어쨌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 나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감을 갖고 싶었다. 모두의 앞에 나서고 싶어 했고, 반장은 도맡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땐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짧은 커트머리를 했다. 그러곤 전교회장 선거에도 나갔다. 전교회장이 되고 나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전교회장까지도 했다.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몸부림치던 나는 사춘기를 맞는다.

 

오렌지색으로 염색을 한 후로는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이 처음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이전에 신경 쓰지 않던 시선과 소리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옷가게에 가서 보고 싶은 옷을 마음껏 구경하고 있으면, '거기는 남성복이에요.' 하고 제재를 받았다. 나는 한껏 소심해져서 맘에 들지 않는 라인이 들어간 옷들을 다시 뒤적여야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한테만 '왜 남성복하고 여성복이 따로 있어?'라고 툴툴댔던 것 같다. 혼자 돌아다니면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껏 예민해진 나에겐 그 소리도 콕콕 들어와 박혔다. '여잘까? 남잘까?' 처음엔 호기심의 존재가 된 것이 조금은 즐거웠지만, 그것이 계속 반복될수록 스트레스였다.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할까?' 그 집요한 시선들이 나를 어떤 이해하기 쉬운 범주 안에 가두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들의 기준에 이해하기 쉽지 않으면 의문스러운 존재로 여긴다.

 

중학교 입학을 앞뒀는데, 내 머리는 여전히 짧았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내 의지로는 치마라는 것을 입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교복치마가 영 어색했다. 엄마를 졸라서 교복바지를 입고 등교를 했다. 하지만 교복 바지를 입는 학생은 극히 드물었다. 가끔 체육부 애들이 입는 정도. 또 다시 원치 않는 시선을 받게 되자 나는 곧 교복치마로 바꿔 입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나는 내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무던히 애썼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만화책을 보는 게 더 좋은 편이었다. 친구들하고 어울려 놀 때보다 집에 가서 만화책을 보는 게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러면서도 주변 또래들이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는지, 어떤 가방을 매는지, 어떤 신발을 신는지, 내 관심과는 무관하게 늘 눈여겨봤다. 무리에 잘 섞여 있고 싶었기 때문에 별나고 이상하게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보편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12년 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스무 살이 되었는데 이때부터는 이상하게도 또 하나의 범주가 짙어진다. 지금까지 내가 자라오면서 나 스스로는 내 성별에 대해 크게 의식하고 살아오지 않았는데, 주변 모두가 내 성별을 유난스럽게 의식하기 시작한다. 주변에선 언제나 '여자'니까, '여자'라서, 라는 조언이 난무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여자다움'의 특성과 '나' 사이의 교집합은 정말 드물었다.

 

이때부터는 '연애 중'인 상태가 기본 상태인 양 구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는 연애 안 해?'가 인사였고, 애인이 없을 땐 왠지 괜히 울상을 지으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지.'라고 대답하는 게 정답 같았다. 내가 진정 연애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게 연애를 하는 사람들에게 예의 같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으면 유별난 애로 취급받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 인생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고 느껴진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그리고 결혼. 이상했다. 누군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했던 건 아니지만, 커오면서 나는 내가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커왔다. 그런데 마치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상이 '그거 다 거짓말이었어. 이제 취업부터 해야지.' 하고 숨겨왔던 얼굴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결혼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때 맞춰 결혼해야지, 뭐하고 있어?' 하고.

 

그렇게 왠지 모르게 불편한 20대를 통과하고 나니 '결혼'에 대한 질문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짝이 없고, 결혼을 안 하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일 거라 여겨진다. 결혼이 인생에 있어서 당연한 순리라고 여겨진다. 특히 한국에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임시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순리로 여겨지는 인생의 과정을 차례차례 제때에 맞춰 치러내는 사람들이 부럽다. 불필요한 관심을 받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자체로 온전하게 여겨질 테니까.

 

그런데 결혼은 때맞춰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여야 하지 않을까? 선택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나는 누군가에게 의문스러운 존재로 남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뚜렷이 선택하는 계기가 생길 수도 있고, 어떤 선택을 유보한 채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즐겁고 건강하게 홀로 사는 여성들이 많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그렇고, 직장에서 만났던 상사가 그렇다. 그리고 또 드물게는 건강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나 가족도 있다. 나한테는 참고할 예시가 각각 있다. 결혼도 비혼도 개인과 당사자가 선택할 방식이고, 내가 주변에 바라는 것은 지나친 관심이 아니라 내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인 것 같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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