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밥’을 먹다
신앙의 원리는 신앙을 잠식한다
다니엘은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환관장에게 자기를 더럽히지 않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다니엘서」 1장 8절
인용된 「다니엘서」 텍스트의 배후에 놓인 시간은 바로 이러한 신앙 전통이 형성되던 때였다. 이 문서의 줄거리를 보면, 유대를 패망시킨 바빌로니아 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의 환관으로 선별된 네 명의 유대인 청년들은 훈련기간에 황제가 하사한 음식을 먹지 않고, 부정 타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장들이 「토비트서」, 「유딧서」 「희년서」, 「마카베오서」 등, 「다니엘서」와 비슷한 시기(헬레니즘 시대인 기원전 3~2세기)에 저작된 책들에서 집중적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이 책들이 헬레니즘 시대의 문서들에서 이방인들의 음식과 유대인의 음식을 나누고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덕목으로 얘기하는 전통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특성을 이러한 신앙 행위와 연계시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도대체 헬레니즘 시대는 어떤 특징을 갖는 시기일까? 간력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이 시기는 지중해 사회에서 문자 혁명이 일어난 시기다. 알다시피 우리가 알려져 있는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이 수도 알렉산드리아에 건립한 거대한 도서관은 장서가 무려 70만권에 달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 비교적 큰 규모의 개인 도서관들이 세워졌고, 책의 수집에 관한 문화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건립한 거대한 도서관이 세워진 것이다. 이 사건은 책을 둘러싼 산업의 활성화를 낳았는데, 무엇보다도 책의 번역과 필사를 담당하는 문자집단, 곧 서기관 집단이 광범위하게 등장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은 비단 알렉산드리아만이 아니라 지중해 연안 도시들 전역에서 활발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서기관이라는 직업집단이 광범위하게 대두하였다는 사실 이상을 의미한다. 그들은 하나의 계층적 세력으로 주체화된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귀족도 아니고 양민도 아닌, 새롭게 부상하던 소자산가 계층 출신으로, 그들이 주도한 대중운동이 많은 지역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또 자신들의 세계관, 인간관, 종교관 등이 활발하게 해석된다. 팔레스티나에서도 지혜문학이나 묵시문학은 바로 이런 계층 출신 서기관들의 활약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또 하시딤, 에세네, 바리사이 등의 종파적 사회운동 집단도 이들과 깊이 관련된다.
한편 이 시기는 지중해 사회에 빈부격차가 크게 심화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전제군주국가들이 한층 강력하고 안정된 체제를 구축하였고, 이 국가들 혹은 제국들의 왕족과 귀족들의 권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하여 그들은 국가 곳곳에서 타인의 땅을 병합하여 자신의 사유지를 넓혀갔다. 또한 도시화가 한층 발전하면서 많은 지주들은 속속 자신의 땅이 아니라 도시로 이주하였다. 하여 시골에는 지주가 부재하는 많은 땅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땅들은 대지주가 위임한 관리인(청지기)들이 대리운영하곤 했다. 이것은 소농들의 광범위한 몰락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촌락에는 토호들이 사라졌고, 그들이 차지하던 마을 사람들의 존경의 질서를 공백에 놓이게 된다. 한데 바로 그 자리를 이들 서기관 계층이 대체한다. 바로 이 시기에 말이다. 요컨대 이들 소자산가 계층은 헬레니즘 시대 대중적 사회 통합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합의 중요한 매체 역할을 한 것이 종교였음을 의심의 여지없다.
바로 이들이 중심이 되는 종교운동을 반영하는 책들이 앞서 언급했던 「다니엘서」, 「토비트서」, 「희년서」. 「유딧서」, 「마카베오서」 등이다. 그리고 그 책들에 등장하는 공통된 요소의 하나가 음식 금기였다. 이방인의 것을 거부하는 전통을 더 급진화하여 먹거리 같이 일상적인 것까지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다.
적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적의 것을 먹지는 않겠다는 비타협적 태도다. 이러한 비타협적 태도를 먹거리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바로 이 시기에 지중해 지역 일대와 유대사회에는 일상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내면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주목되기 시작한다. 주로 지혜문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인식이다. 그것은 악이 내면으로 침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은, 마치 적이 우리의 강토 안으로 쳐들어와 지배하듯이, 의인화된 존재로 우리 몸 안으로 쳐들어와 지배한다는 상상이다. 바로 ‘악마’가 등장하는 것이다. 악마가 몸 안으로 들어와 존재의 내면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는 바로 음식이다. 몸 안으로 들어와 몸을 부정타게 하는 것, 바로 악마의 몸으로 변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음식 금기를 일상화하는 신앙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제국의 통치자와 대중 사이의 갈등은 단지 토지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몸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몸 자체가 전쟁터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적의 음식’에 대한 금기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적이 준 음식’을 거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다. 모두 밖에서 들어온 것이 내면을 장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문자의 혁명은 문자 계층을 중심으로 하여 이렇게 내면의 문제를 중요한 종교적 요소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적의 밥에 대한 공포와 저항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신앙의 견고한 틀로 정착하게 된다. 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났던 음식 금기 논쟁은 비유대지역에서도 강력한 유대주의적 신앙의 내용으로 여전히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되었던 것을 보여준다. 그 지역의 사정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원리를 지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되는 셈이다.
한데 원리에 대한 충실함은 종종 현장을 고려하는 눈을 흐리게 한다. 바울이 베드로를 비난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방인들, 곧 유대 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그러한 인식의 틀을 마치 법처럼 내면화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현장에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신격화된 통치자를 기리는 제의 때 배급되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만성화된 영향실조 상황을 조금이라도 면할 수 있다. 실제로 가난한 이들은 많이들 그렇게 했다. 이때 법은 그이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굴레로 작동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음식 금기 신앙은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신학이기도 했다. 야고보 파가 주도하는 운동에 오클로스 파나 여성 제자들이 이탈한 것은 어쩌면 이러한 탈현장적 원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장의 사정(밖의 것)을 고려하지 않는 신앙, 원리(안의 것)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신앙은 타인을 옥죄고 괴롭힌다는 점에서 잘못된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가 보여준 새로운 문제의식은, 신앙의 원리라는 내면의 주장을 독선적으로 반복하는 것, 그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