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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소소한 게임문화사: 디지털 게임, 피시방, 이스포츠 경험에 대해서(김의환)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5. 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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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게임문화사: 디지털 게임, 피시방, 이스포츠 경험에 대해서




김의환*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피시방을 다시 찾는다는 아들놈의 말에 엄마는 혀를 끌끌 차신다. 그럼에도 꿋꿋이 ‘게임하기 좋은 봄날’ 타령을 하는 나는, 대중문화를 연구하려는 대학원생이자 어려서부터 일상적이고 열성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해온 게이머다. ‘보는 게임’인 이스포츠(e-sports)도 즐겨서 트위치나 아프리카tv, 유튜브로 다른 게이머들의 플레이와 프로게이머들의 리그 경기를 틈틈이 챙겨 본다. 그런데 게임을 대하는 내 태도는 양가적이다. 게임을 즐기면서도 다 허송세월하는 짓이니 멀리해야 한다고 종종 자책하며(‘이럴 시간에 책 한 줄이라도 읽지...’, ‘아 피곤해. 차라리 낮잠이나 잘 걸...’), 대중문화와 취향에 있어 고급/저급으로 줄 세우지 않기로 하면서도 가끔은 플레이어의 상태를 미성숙함이나 유치함과 연관 짓는다. 괴로운 현실을 피해 게임으로 도피하기도, 게임 덕분에 숨통이 트이기도 하며, 게임 플레이를 통해 즐거움뿐만 아니라 짜증과 분노를 느낄 때도 있다.


지난 가을학기에 대학원에서 ‘게임문화연구’를 수강했다. 게임의 본질에 관한 오랜 논쟁부터 캐릭터와 공간, 규칙 등의 주요 요소, 게임의 역사, 중독 담론과 젠더 이슈, 비물질노동 등 게임과 연관되는 쟁점 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게임을 주요 문화현상으로 인식하고 학술장에서 연구할 필요성과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내가 만나고 경험했으며 알고자 하는 연구 대상은 ‘재미의 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게임’이자 그런 게임을 열심히 즐겨온 ‘나’이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나 오랜 기간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종류의 게임을 접해온, 그럼에도 스스로 ‘겜덕’이라 여기거나 게임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는 않는, 문화현상을 주목하고 분석하여 말과 글로 표현해야 하는 나란 사람의 위치와 맥락에서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토록 게임에 빠져 있는지, 게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다른 게이머들은 어떤 게임을 어떤 식으로 향유하는지, 결국 이러한 현상 혹은 실천이 지닌 사회문화적인 함의는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일단 나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적어보기로 한다.


88년생의 게임사


유치원생이던 1993년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집에 게임기를 한 대 사오셨다. 닌텐도의 8비트 게임기인 패미컴(Famicom)의 해적판으로, 정확한 제조사를 알 수 없는 그 게임기를 우리 가족은 ‘패밀리 오락기’혹은 ‘껨보이’라고 불렀다. 텔레비전이 놓여있는 거실에 모여앉아 슈퍼마리오와 펭귄 어드벤쳐, 쿵푸, 로드 파이터, 닌자거북이 등을 즐겼다. 아버지와 누나는 마리오가 점프할 때마다 몸을 덩달아 들썩였고 조이패드를 따라 들었다 놓았다 반복했다. 게임팩은 불법 해적판 카트리지로, 64가지 게임이 들어있는 종합팩이었다. 동네 문방구에서는 몇 천원을 내면 게임팩을 교환해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집에 386 컴퓨터가 생기면서 DOS 기반의 고인돌과 황금도끼, 범피, 팡팡 등도 자주 플레이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오락실에 출입했다. 그곳은 시끄럽고 정신없으며 어딘가 불량한 느낌을 풍기는 곳이었기에, 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 들락거릴 때면 죄책감과 긴장감, 쾌감이 뒤섞였다. 대전격투게임인 킹오브파이터즈와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을 주로 했는데 뒤에서 고수들의 플레이를 훔쳐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백원이 크던 시절이지만 용돈이 생길 때마다 꼬박꼬박 오락실에 갖다 바쳤다. 종종 고학년 형들에게 돈이나 물건을 뺐기고 얻어맞는 경우도 있었지만 게임과 그 공간이 주는 묘한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5학년이던 98년부터는 처음으로 피시방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포트리스, 마지막왕국, 스톤에이지, 퀴즈퀴즈 등의 온라인 게임에 빠져 지냈다. 어느 순간부터 가정용 8비트 게임기가 시시하게 느껴졌고, 몰래 부모님 눈치 보면서 게임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놀이 공간이 필요했기에 피시방과 오락실을 찾은 것 같다.


무엇보다 또래 집단이 주말과 방과 후에 모이는 장소라는 점에서 피시방과 오락실은 놀이문화의 공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왜 피시방은 대다수 기성세대에게 한심한 아이들이 가는 위험하고 불량한 곳으로 인식되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든다. 피시방의 오랜 인기는 가격 면에서나 접근성 면에서나, 이것을 대체할 만한 문화 컨텐츠나 놀이공간이 우리 사회에 부재하다는 뜻이 아닐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천 원에 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이제는 식사와 커피까지 취급하는 카페테리아가 되었다는 점에서 피시방만큼 서민과 친숙한 여가공간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피시방의 문화사’ 연구를 꼭 해보고 싶다.


나는 RPG 게임은 가급적 하지 않았으며 가급적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단판 게임을 선호했다. 그러나 RPG 게임이 아니라고 해서 중독성이 덜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장르의 게임은 각자 다른 종류의 보상을 안겨준다. 그것이 승리이든, 레벨업이든, 캐릭터 꾸미기이든, 랭킹 상승이든 간에 게이머는 그 보상에 대한 갈증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붙든다. 그런 면에서 게임은 인생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어 생애의 매 단계마다 크고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매진하며, 달성 후에 성취감과 허탈함을 느끼거나 달성하지 못해 좌절하고, 다시 목표를 수립한다. 특정한 보상의 획득보다는 이러한 과정의 반복 자체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내 인생의 게임을 하나 꼽자면 단연 스타크래프트로, 1998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20년째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피시방에 몰려가 4:4 플레이를 하는 것에서 시작했고, 실력을 늘리기 위해 임요환이나 이기석 같은 초기 프로게이머들이 쓴 게임책을 구매해서 읽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 자주 드나들며 열심히 전략전술을 익혔고, 내 손에 맞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구매하였다. 스타크래프트는 ‘하는 게임’뿐 아니라 ‘보는 게임’이자 이스포츠 그 자체이기도 하다. 2000년 itv에서 하는 프로게이머들의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시청하는 것으로 시작해, 온게임넷(현재 OGN)과 MBC Game에서 열리는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의 경기를 거의 다 챙겨보았다. 여기에는 프로게이머들의 기발한 플레이뿐 아니라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중계진들, 맵 제작자, 방송국 게임 연출자의 노고가 종합적으로 담겨 있었다. 경기를 볼 때마다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제작자들이 의도한 바를 뛰어넘은 창조적인 생산물로 여겨졌다. 여기에 좋아하는 프로게임 구단과 게이머가 생기면서 오프라인 경기장을 찾아가 직접 관람하고 응원하는 새로운 팬덤문화도 체험할 수 있었다. 나의 성장기와 이스포츠 판의 성장기가 일치하는데다, 이스포츠는 팬과 선수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까우므로 특히 애착이 깊었다.


빡겜에서 즐겜으로


앞서 늘어놓은 의문에 하나라도 답해볼까 한다. 오랜 시간 왜 그토록 게임에 몰두했을까?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성장’ 혹은 ‘승리’에 대한 갈망이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건 간에 할수록 게이머의 숙련도와 이해도가 쌓인다. 오락실 게임이 아닌 이상 이전의 플레이가 데이터로 축적되고 다음 플레이에 반영된다. 그러면서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때의 변화는 퇴보보다는 성장일 경우가 많다. 게임머니가 늘어난다거나, 캐릭터의 의상이 다양해지거나, 전에 쓰지 못하던 스킬을 쓰거나,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잡거나, 가지 못하던 곳에 가는 식이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미숙하다는 의식은 내가 게임세계에 더 몰두하게 되는 중요한 기재로 작동했다. 게임 내에서의 충족을 통해 현실에서의 공백을 채우고자 했다.


지난 3년간 몰두했던 피파온라인3의 경우, 오직 이기기 위해서 부단히 애썼다. 아낌없는 현질로 능력치가 더 뛰어난 선수를 영입하고 유행하는 전략전술을 익혀서 승률을 높여야 했다. 대부분의 국내 온라인 게임이 그러하듯, 피파온라인도 티어 시스템을 사용한다. 피라미드 형태의 계급체계에서 최상위 등급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 랭킹 400위권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기쁘지 않았다.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너무 화가 치밀었다. 게임에서까지 승패를 따져야만 한다는 점이 피곤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온갖 꼼수와 조롱이 오가는 경험을 했다. 이 경쟁의 체제에 들어오라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 내 발로 들어선 이상 ‘즐겜’은 없었다.


작년 초부터는 오버워치에 입문해 네 달 동안 하루 열 시간씩 꾸준히 플레이했다. 6대6 팀플레이 게임인 오버워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화려한 그래픽, 다양한 맵과 쉬운 조작법 등 게임성이 뛰어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결국에는 승리해서 상위 티어로 도약하는 것에서만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팀게임이라는 점은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불러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게임을 켰는데, 그곳에서 남 탓과 정치질, 온갖 욕설을 육성으로 들으며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팀보이스(음성채팅)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원활한 의사소통보다는 즉각적인 욕설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평소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나로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달래가며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피로감을 느꼈다. 사회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게임에서도 느끼게 된 것이다. 이기지 않으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계속 상위 티어로 올라가야만 한다는 강박에 빠진 나는 결국 한동안 게임을 멀리하였다.


요새는 그냥, 경쟁전 아닌 친선전에서 즐겜을 한다. 이기려 애쓰지도, 내 플레이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순간에 즐거우면 됐다고 생각한다. 가뜩이나 너무 심각하고 딱딱하며 어려운 일들로 가득한 세상인데, 게임에서 만큼은 힘을 빼고 싶다. 또한 게임과 이스포츠, 피시방 등을 향한 기존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탈피해 일상의 중요 테마로 다루는 연구나 관점이 확산되길 바란다. 재미있는 주제를 재밌게 다루기, 쓸데없이 각 잡거나 힘주지 않기, 작은 것에 주목하기, 과도한 의미부여를 지양하기. 게임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가 남아있는 한, 나는 게임을 놓지 않을 것만 같다.



*필자소개

청춘을 허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한량. 어두운 자취방의 혁명가. 문학과 영화, 음악과 라디오에 기대 하루하루 때우고 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21c3927@gmail.com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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