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힘: 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2]으스름달밤에 나는 너와 걸었다.(김정원)
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둘. 김정원* 희끄무레한 으스름달밤이다. 약간 찬바람이 코를 훔치고, 두어시간 전에 비는 그쳤지만 땅은 충분히 젖었다. 그야말로 런던의 밤 같은 그런 밤에 사람도 없는 길을 걷고 있다. ‘함께 걷는 이’는 말이 없다. ‘함께 걷는 이’가 말이 없으니 ‘걷는 이’도 말이 없다. 둘 다 말이 없으니 손에 든 봉다리가 바지를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비니루봉다리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봉다리 속 아이템들끼리 부대끼는 소리마저도 또렷해진다. 또각또각하는 구두가 젖은 땅을 때리는 소리는 그 소리들의 중심이 된다. 여러 소리들이 쟁쟁한 가운데, 걷는 이 둘은 말이 없다. 오 분이 지나고, 십 분이 지나도 둘은 말이 없다. ‘걷는 이’는 말수가 적은 여자가 아니지만 지금..
시선의 힘
2016. 2. 22. 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