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묻는다, 


5월 9일에 그리스도인은 어떤 선택을 할지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그리스도인이 선거에 임하는 자세?


    5월 9일이 다가오고 있다. 헌법 최초 탄핵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촛불을 들었건 들지 않았건 모두가 ‘내가 바라는 다음 세상’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선거를 해야 하는가? 나의 소중한 목소리를 내는 소중한 선거란 어떤 것일까? 분명 예년의 투표보다 그 무게가 남다름을 인지하면서도 짧은 선거 기간만큼이나 응축된 생각들을 이어나가고 있는 하루하루다. 필자는 한 명의 신앙인으로서, 삶의 신념과 정체성이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라 고백하는 1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선거를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필자보다 더 오래되고 노련한 정치 의식-행동과 삶의 경륜에 의해 다져진 선택 방법에 대해 존중을 표하고, 아직 한참 모자라고 설익은 한 마디를 내놓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면서 말이다.

   먼저는 이 질문의 가능성에 대해 먼저 물어야 할 것 같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갖는 특정한 선거의 방법 또는 선거를 대하는 태도와 같은 것들이 있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이 과연 누구이기에 선거를 하는 태도가 따로 있다는 것일까? 우리라는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럼 예수를 우리의 삶과 이 세계의 주인, 통치자로 고백하는 우리는 예수처럼 선거를 하면 된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예수를 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선거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가만, 생각해보자. 예수 당시에는 선거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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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예수의 선택?


   그렇다. 예수 당시에는 선거가 없었다. 대의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없었다. 통치에 관한 한 황제 1인이 다스리는 군주제도였고 지금 우리가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다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제도가 있었다. 너무 난감하다. 예수의 투표 성향을 분석해서 우리도 그와 같이 투표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는데, 예수와 우리 사이에 있는 2천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과 한반도라는 공간 이 두 가지의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기라도 한 걸까? 게다가 한 가지 렌즈가 추가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티나의 역사적 체험을 전제로 하지만, 유럽의 역사 과정 속에서 탄생한 종교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교의 신앙 제도와 해석 체계는 유럽의 경험에 기반을 둔 예수 신앙의 산물이다. 즉,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유럽의 문화로 재해석되고, 그것이 다시 우리의 삶의 기반으로 재구성되어온 역사를 인지하고 그것을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이 다중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소위 ‘역사적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접어두도록 하자. 이미 수많은 텍스트론들이 말하고 있다시피 예수에 대한 재구성은 ‘읽는 이’의 바람과 삶의 경험들에 의해 심하게 교란된다는 것이고, 심지어 실존 인물인 것 자체가 물음표로 던진 이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팔레스티나에 살고 죽었던 하나의 예수’의 구성은 불가능함이 천명되었기 때문에 ‘예수가 5월 9일에 투표한다면 0번에 찍을 것이다.’라고 점찍어 말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직 말하고 싶은 것은 곧 그리스도인의 선거와 투표, 예수님이 지금 이 시점에 오셔서 투표하신다면? 이런 생각을 하려면 거쳐야 할 관문이 많다는 것이다. 곁가지로 생각해 보자. 우리 논의의 전제가 되는 것, 예수가 우리의 메시아라는 것의 함의, 곧 예수가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시고 구원해 주신 분, 따라서 우리의 주인이라는 이 틀거리. 이 언어가 민주주의 사회 즉 백성(民) 또는 시민이 주인이라 하는 2017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그리고 신과 결별하고 ‘생각하는 인간(데카르트)’이 이 세계의 주인인 것, 국가나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운명에 주체라고 이미 천명된 근대 이후의 이 세계 안에서 당신은 정말 뼛속 깊이 이해가 되는가 말이다.

    어찌보면 우리는 역사적 예수로의 접근이 불가능하였듯이 예수와 선거를 연결짓는 일은 너무 깊은 작업이라 포기해야만 할 것도 같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가 불가능하기에 더욱 흥미진진해 보이는 건 나 뿐인가. 비단 정치에 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이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아니었던가 말이다.


예수의 정치, 예수의 정치성


    자, 이제 길었던 서문은 제쳐 두고 예수 당시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예수가 보여주었던 삶의 행적이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를 살펴야겠다.

    예수의 모든 정치적 상황을 언급하는 것은 이 글에서 모두 다룰 수 없지만, 그의 행위가 최종적으로 다다른 지점 바로 십자가라는 사건, 그리고 부활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그의 삶이 보여주는 정치적 함의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작년(2016)에 진행된 본 연구소 신학아카데미 탈/향 강좌에서 김진호(본 연구소 연구실장)의 ‘예루살렘에서의 7일’이야기 중 일부를 발췌해 보도록 하자.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이것은 고대의 전형적인 ‘잔혹극’의 한 실례다. 잔혹극이란 ‘희생양’의 배제를 극도의 공포감을 자아내는 형식으로 공개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그 사회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권력의 지엄함을 승인하게 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체제는 피압박 대중의 욕망분출 방식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유도한다. 

하나는 욕망 분출의 기회를 봉쇄하는 극단의 배제집단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런 극단의 배제집단을 천민 계층(마지널 휴먼)이라 하는데, 대중은 이들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무의식적인 카타르시스를 일상 속에서 경험한다. 이때 극단의 배제집단은 자신의 욕망분출의 계기를 잡지 못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들을 ‘광기’의 사람들, 즉 악령 들린 사람들로 만드는, 그리하여 그들에 대한 배제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사회적 지배의 기재로 활용된다. 다른 한 유형은 잔혹극을 통한 욕망의 카타르시스다. 대중은 출구를 찾아 정처 모르게 내면을 휘젓고 다니는 무의식적 욕망을 분출할 안전한 대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바로 잔혹극의 희생양이다. 대중은 억압된 욕망에 분풀이라도 하듯 분노를 한껏 그에게 폭발시킨다. 그리하여 권력은 그 대상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잔혹하게 처벌한다. 권력이 마치 정의의 심판자이기라도 한 듯이. 요컨대 잔혹극은 대중의 축제이기도 했다. 그 축제를 축제로서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자신이 역모자의 적극적 추종자임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 그리하여 십자가형은 처형자를 위해 슬퍼하는 기색을 보인 사람을 재판 없이 함께 처형하는 관례를 동반했던 것이다. 

메시아가 일으킨 변혁을 향한 불, 아니 메시아라는 변혁의 불. 그것을 지르는데 공범이었던 자들이 어느 순간 날카로운 경고음을 발하는 화재경보기에 놀라 무대에서 흩어져버린다. 이제 그들 중 누구도 성전의 억압의 장치들을 불 질러 태워버려야 한다는 ‘불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화재경보기가 울린 뒤, 불을 냉동시켜버릴 듯 거세게 내뿜을 소방차의 잔인한 물줄기가 온 세상을 뒤덮을지도 모른다는 예언이 세상을 향해 찢어질 듯 경고음을 발한 뒤, 그 곳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오직 ‘불의 호소’만이 허공 속에서 춤판을 벌이며 남은 공연을 실연할 뿐. 

사람들이 욕설을 퍼붓고, 추종자들은 모두 도망치거나 멀찍이서 침묵 속에 관망하는 가운데, 처절하게 찢겨지는 자신을 확인하면서 예수는 죽어간다. 여기서 ‘신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잔혹극의 가학성, 권력과 대중의 공모 속에 벌어지는 역사의 사디즘(sadism) 속에 신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신은 죽었다. 아니 가학성을 가학성으로 보복하는 신은 죽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변혁 행위를 꿈꿨으나 하느님은 변혁행위를 통해 예수와 만나지 않았다. 예수사건은 바로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 예수는 모든 이의 침묵 속에 도살당한다. 바로 그 현장, 신마저 침묵하고 있다는 바로 그 현장에서 변혁 행위의 주체인 신도 도살당한다.[각주:1]


    메시아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로 물러나 사람들의 마음 따위를 치유하고 위로하며 피안의 세계를 전파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 메시아가 도래하여 통치를 벌이는 하나님의 나라 는 죽음 이후인 내세의 삶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 내면의 안정, 안심을 얻는 ’힐링캠프’는 더더욱 아니다. 메시아란 철저히 현실 내의 정치적인 존재였다. 예수는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이며, 현실적이라 함은 곧 생활 즉 삶을 이야기하는 예수를 통해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를 일컫는다. 인간들은 예수를 봄으로써 현실(the Real)을 읽고, 예수를 읽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하나님과 세상은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하나님과 인간 및 세상이 화해한 ‘하나의 장소(One Place)’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까지 말했다. 즉, 우리의 현실은 어디인가? 그리스도라는 공간이다. 그리스도라는 공간 안에 채워진 그리스도의 삶이다.

    메시아이신 예수는 현실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던지며 살았다/죽었다. 예수는 불을 지르는 사람인 동시에 아버지인 신을 도살하는 주체였다. 매일이 반복되는 이 지루한 일상의 세계가 변할 수 있음을 알렸고, 이전부터 약속된 바로 그 ‘야훼의 날’이 오늘 여기에 다가왔다고 선언하며 모든 죄와 아픔을 치료하는 실천적 존재였으며 ‘아버지’로 표상되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상(像)을 파탄내는 무뢰배였다. 방금 살펴본 ‘예루살렘에서 7일’간의 행적은 모든 메시아로서의 삶을 축약하고 종합하고 결론짓는 일이었다. 즉, 십자가를 포함한 예수의 삶 전체는 아픈 사람들의 병을 ‘지금 그 자리에서’ 고치고 사회 속에서 ‘죄’라고 여겨졌던 고정된 편견과 맞서서 싸워 논쟁을 일으키고 불화를 일으키는 삶이었다. 예수는 누가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49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50 그러나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는지 모른다. 51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 한 집안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서, 셋이 둘에게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서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고, 어머니가 딸에게 맞서고, 딸이 어머니에게 맞서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맞서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서, 서로 갈라질 것이다.” (누가복음 12:49~53)


    제도정치를 주관하여 이 지루하고 억압된 일상을 마비시킴으로 유지시키고 유지시킴으로 마비시키는 제도의 권력들과 싸웠다. 제도의 권력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라고 주장했지만, 예수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였고,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생각이 마비된 사람들이라면 질문으로 일깨우고, 사회적 시선으로 일상이 불가능한 이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탄생부터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리고 죽는 순간과 다시 부활하는 그 순간까지 모두 그 한 걸음 걸음이 사람들에게 불을 던지고 일깨우는 정치적 존재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연극의 희생양으로 죽임 당했지만, 메시아 예수를 죽인 그 손들은 예수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살아나 예수의 손과 발이 되어 이 세상의 곳곳을 치료하며 불의한 세상에 균열을 내고 불을 던지는 사람들로 변화해 갔다.

    결론적으로, 예수의 정치, 예수의 정치성이란 무엇인가? 예수는 특정한 신의 특정한 뜻, 특정 계파의 이익을 대변하러 온 사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랐고, 그 하나님의 통치란 다름 아닌 사람이 어느 하나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 조건과 환경을 가지고 태어났든지 간에 하나님에게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피는 꽃까지 모두 일일이 살리고 돌보시는 그 원리에 의해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한다고 믿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 그가 민의(民意)의 화육(化肉), 더 나아가서는 인간과 피조물을 모두 포함하는 모든 ‘있음/없음들의 몸’ 그 자체임을 의미한다. 이는 비단 정치인들이 떠받드는 - 동시에 떠받들지 않는 - 민심의 지엄함 뿐만 아니라 동시에 민심의 부끄러운 민낯 또한 만천하에 드러내신 분이기도 하다. 훈련되지 않고 오로지 짐승 같은 대중의 에너지가 어떻게 권력자들에게 악용될 수 있는지 또한 자신의 몸으로 똑똑히 대면시켜 주신 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불을 던져 놓고 그 불이 자기에게로 향하게 되었을 때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자신에게 들이대는 불길이 두렵기도 했겠지만, 후일에 자신의 죽음 이후에 벌어질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들도 상상하면서 말이다.


민주주의와 선거와 예수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예수와 민주주의는 사실 애당초에 불가능한 만남을 전제하고 있다. 우리는 그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우리가 어떤 투표를 해야하는지 어렴풋하게 실마리를 잡아보도록 하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 2항>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 1조 1항의 말은 언설(言說)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영토 대한민국은 백성이 주인인 국가이다. 민주 공화국이란 뜻은 사전 뜻풀이를 가져 오자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이 선출한 국가 원수 및 대표에 의해서 국정이 운영되는 나라”를 의미한다.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여 ‘민’이 주인이라는 것은 개별 개체로서 ‘내’가 주인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집합체로서의 민의’이다. 즉, 공동의 의사 결정이 반영되는 정치를 말한다.

    그럼 위에서 말한 예수가 꿈꾸었던 세상과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민주주의 체제는 예수가 꿈꾸었던 정치, 즉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와 일치하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현실적인 정치체제와 모습을 갖추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자기가 어떻게 통치하는지 그 체제의 정답을 어디에도 계시한 적이 없다. 왕정 시대로 접어들면서 성서 기자는 하나님이 못마땅해 하셨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사 시대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시대였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 하나님과 소위 ‘독대’하여 하나님과의 채널이 단일했던 모세-여호수아로 이어지는 광야와 초기 가나안 시절의 ‘임시정부’형 체제가 하나님의 통치에 더 가까웠을까?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족장 시대? 에덴동산…? 대체 우리는 그럼 얼마의 시간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일까? 이런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아니면 소위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듯 교회가 많아져서 ‘복음화율’이 높아진다면, 즉 교회에 등록한 기독교 신자들이 늘어나 그 수치가 100에 가까워지면 그 때서야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이야기는 매우 위험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란 것을 가장 ‘직접’ 반영하는 정치체제야말로 환상에 가까우며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의 엄명을 어기는 일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체제는 현재 잠정적으로 가장 우리에게 적합한 체제라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민주주의가 최종적인 하나님의 통치와 일치하는 체제가 아니라는, 이것보다 더 나은 정치체제를 고민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미국의 라인홀드 니버는 ‘인간에겐 정의를 추구하는 능력이 있기에 민주주의가 가능하며, 다른 한편 불의를 행하려는 경향성도 지니고 있기에 민주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모든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정의 실현에 있다.[각주:2] 오늘날 구약 시대의 신정 정치 즉 하나님께서 특정 매개자를 통해 통치하시는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여러 세속 정치 형태 중에서 민주주의가 희년 정신 즉 모든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가장 잘 보장해 주는 정치 체제라고 판단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것은 곧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 도래의 선포, 곧 누가복음 4장 16, 17절의 말씀의 내용과 가장 가까운 정신을 구현한 체제일 것이라 고백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170509 대선의 의미


    여기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비단 정치체제의 조형(造形)만이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 선거를 치르게 된 근본적인 이유 즉, 금번 국정농단 사태, 소위 박근혜-최순실의 비(반)민주적 통치의 상태가 드러낸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은 우리 사회의 곳곳이 어디 하나 빠짐없이 병들어 썩어 문드러진 사회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각주:3] 특히 박근혜-최순실은 삼성의 이재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이 드러났다.[각주:4]



    즉, 민주주의 체제를 세우기 위해서, 특히 이번 선거와 이어지는 정치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사회는 무엇인가?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 정치(제도)의 개혁, 경제의 민주화, 동북아시대를 맞이하면서 통일과 외교에서의 주도권 장악, 점증하는 생태위기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시급하고도 안전한 대책 등이 이번 선거를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 우리는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는 결코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체제”의 심판과 그 사태의 종결로서 인지 되어선 안 된다. 이제 대한민국, 아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디자인되어야 그 기초를 쌓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예레미야 31:31)”


그렇다면 나의 목소리를 내는 투표란?


    예수, 나, 민주주의, 그리고 2017 대통령선거라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이번 대선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일단은 선거를 해야 한다. 아무나 되겠지 하면 정말 ‘아무나’ 된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최악의 지도자로부터 통치를 받을 것이다. 그 때부터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 옛날 마키아벨리의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하자. 마키아벨리를 통치기밀의 폭로를 통한 반-폭정주의 및 공화주의의 실천자로 인식했던 바로크시대 보깔리니는 법정에 선 마키아벨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검사는 마키아벨리가 한밤중 양떼 속에 숨어들어가 ‘개의 이빨로 만든 의치’를 끼우려다 발각되었으며, 그런 행위는 양의 젖을 짜고 털을 깎는 ‘목자들’을 위험에 빠지게 만들며, 이후 양떼는 목자들의 ‘휘파람과 지팡이’를 따르지 않게 될 것이고, ‘밧줄로 둘러친 울타리’로는 더 이상 양떼를 관리할 수 없게 될 것인바, 바로 그때 ‘양털과 치즈의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고 말한다. 개의 이빨로 만들어진 의치는 양을 개처럼 물어뜯을 수 있게 하는 힘, 목자들의 호명과 지시를 거절하는 힘, 목자들이 매번 재설정하는 목양의 울타리와 영양배분의 경계를, 목자들이 정립한 법의 경계를 무화하는 힘이다. 개의 그 이빨, 그 힘은 검사에 의해 ‘극히 위해한 성격의 안경’으로 기소되는데, 그 안경은 그들 목자들의 법 연관이 양털과 치즈 가격의 관리를 통한 축적의 보호상태임을 문제시하는 시력을, 그런 축적의 보호가 ‘신성의 가장’과 ‘국가이성이라는 폭정의 비밀’에 의해 관철되고 있음을 폭로하는 시력/시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각주:5]



    투표는 가장 작지만 확실하게 당신의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가장 쉽고 가장 빠르고 가장 적확하다. 15명의 정치인이 대선에 출마했다. 누구를 찍든 찍는 게 당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작이다. 다시 말하건대, 이번 선거는’시작’에 불과하다. 근본부터 시작하는 선거다. 세월호 참사가 던진 질문, ‘과연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삶,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이 곳이, 내가 운명처럼 태어나게 된 이 곳이,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뜻’이 있다고 믿는 이 곳에서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 ‘현실’에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다면 이제는 응답해야 한다. 모든 것을 이 단번의 투표에 이룰 수 없다. 투표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당신은 당신이 찍은 사람을 움직여야 한다. 그 사람과 그 주변의 세계가 당신이 점찍어둔 사람을 찍을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 그 후 어떤 후보가 당선이 된다면 — 비록 당신이 찍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 그 때부터 그를 사정없이 움직여야 한다. 정당 가입과 활동으로, 시위와 집회에 참가함으로, 전화로, SNS로 말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당신’의 시작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2016 신학 탈/향 강좌 <예수, 트랜스-크리스천 히스토리를 위하여>(강사 : 김진호)의 1강 ‘역사의 출발, 십자가에 달린 그 이’ 중 한 단락을 발췌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2. 2017 정의평화기독교대선행동 지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나라’ (2017, 동연) 11쪽 인용 [본문으로]
  3.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두 인물이 있지만, 사실 그들과 그들이 가지고 논 권력을 둘러싸고 있는 층위는 매우 복잡하고 세밀하다. 일차적으로 그들을 비호하고 키운 정치 기관들 - 청와대 비서실, 국정원, 검찰, 헌법재판소 등 - 과 그들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그리고 군대가 있고, 또한 그들의 충성스러운 ‘입(Speaker)’ 역할을 한 그들의 입장을 매일 매순간 퍼나르고 재생산해낸 언론권력(조중동 등의 일간지, 공영방송과 종편방송 및 포털사이트)이 있을 것이다. 비단 그것 뿐인가. 그들의 권위를 뒷받침하면서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는 소위 각계각층의 지식팔이 ‘전문가 집단’과 대중의 영적인 상태를 주관하는 종교권력들까지. 어느 하나 빠짐없이 자신의 역할들을 충실히 집행함으로써 직접 책임지지는 않지만 모두가 조금씩의 힘을 보태어 만든 사태가 결국 여기-지금 오늘의 생명-삶을 갉아 먹는 체제로 현신(現身)한 것이다. 사회학자 윤인로는 박근혜 정부와 그 주변을 둘러싼 권력들을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가 이야기한 ‘간접권력’이란 개념을 인용하며 설명한다. : 보호능력 없는 채로 복종을 요구하고, 정치의 위험을 몸소 받지 않고서 명령권을 가지며, 책임을 다른 기관에 강요하면서 그 기관을 통하여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간접권력’ (칼 슈미트, 홉스 국가론에서의 리바이어던, 교육과학사). 여기의 간접권력이란 무엇인가. 체계적인 무책임의 통치상태, 곧 기술적(객관적, 기계적, 외적)으로 된 통치체의 중성화(다원화, 분권화, 합리화) 상태, 공모한 사적 당파성들의 ‘영원한 수다’ 상태. (윤인로, ‘신정-정치’(갈무리, 2017), 90쪽) [본문으로]
  4. 가장 왼쪽은 실제 타임지(아시아판, 2012. 12. 17) 표지, 그리고 이후 2장의 사진은 패러디물이다. 각각 왼쪽부터 ‘독재자의 딸(박근혜)’, ‘독재자의 딸의 무당(최순실)’, ‘독재자의 딸의 무당의 후원자(이재용)’로 표현할 수 있다. [본문으로]
  5. 윤인로, ‘신정-정치’(갈무리, 2017), 139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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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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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굿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의인이 망해도 그것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경건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도 그 뜻을 깨닫는 자가 없다. 의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실상은 재앙을 피하여 가는 것이다.
― 「이사야서」 57,1

 

제국의 경제가, 그 시스템이 온 이스라엘을 요동치게 했습니다. 황제가 재가한 국제적 거상(巨商)들이 이 지역에도 들어왔고, 대지주들은 그와 거래하기 위해 생산물의 가격 낮추기 경쟁에 매진했습니다. 일단 그와 거래관계가 트이게 되면 국제무역의 지역 독점권을 얻게 되었지요. 또한 세금대납업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경제적 지위와 정치적 지위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요.

그러다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지주들이 몰락하는 경우도 빈번했고, 무엇보다도 소농들의 몰락이 속출했습니다. 몰락한 소농들은 대지주의 소작으로 전락하거나 도시로 몰려들어 생존을 위해 뭐든 해야 하는 하급노동자나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또 일부는, 그 땅에서 어떤 기회도 얻을 수 없었기에, 막막한 심정으로 해외 이민의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하여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 것입니다.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치하에서 말입니다.

한편 이 시기, 국제경제의 활성화로 인한 다른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래장부, 거래계약서, 물품관리장부 등, 기록문명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또 상거래가 활발해지는 만큼 분쟁도 많아져 소송의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것 역시 기록의 중요성을 강화시키는 이유가 되었지요. 이에 이집트산 파피루스가 대량 수입되어, 기록을 위한 비용은 크게 감소하게 됩니다. 또 당국은 세수(稅收)가 늘면서, 통치를 위한 기록의 필요도 높아졌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당국이 주도하는 종교의문서화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 이른바 ‘성서’ 문서들이 편찬되거나 저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저작된 성서 문서들 가운데는 흥미로운 책들이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오늘 읽은 성서본문이 포함된 한 문서입니다. 현대의 학자들이 ‘제3이사야서’라고 부르는 문서입니다. 「이사야서」의 세 번째 파트(56~66장)에 수록되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시기의 문서 작업이 전례 없이 활기를 띠게 되었지만, 그래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글을 쓸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한데 놀랍게도 ‘제3이사야서’라는 저자미상의 이 문서는 하층민의 관점을 담고 있는 책인데다, 그 기조 또한 민중적이기에 우리는 이 책에 대해 주목하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오늘 읽은 본문이 포함된 텍스트인 57장 1~13절은 당시의 민중 현실과 저항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합니다.

‘의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데 그 죽음을 사람들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1절). 도대체 ‘의인들’이란 누구일까요? 또 왜 그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그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5~9절에서 우리는 의인의 죽음을 모른 체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람을 피우는 자이고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자입니다. 여기서 바람을 피우는 것은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인신제사를 말합니다. 원래 아하스 왕이 시리아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이끄는 연합군이 침공하여 국가가 존폐 위기에 놓였을 때, 자기 아들을 야훼께 바치는 제사를 말하는데(「열왕기하」 16,3. 기원전 734~732년), 한 세기 쯤 후인 요시아 왕이 개혁 드라이브를 본격화하던 때(기원전 622년경)에 이 인신제사는 요단강 건너 지역 암몬족의 신인 몰렉에 대한 제사로 해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하스로 표상되는 불의한 통치자가 바로 의인의 죽음을 모른 체 한 자로 지목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데 기원전 3세기, 제3이사야서의 시기에는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한데 그 시절 이스라엘 사회를 다스리던 유력한 가문이 있었는데 토비야 집안입니다. 한데 이 사람은 암몬족 토호였고, 제국 왕제로부터 이 지역의 총독으로 위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필경 토비야 집안이 죽음의 방관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죽어가는 의인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9~12절에서 우리는 바로 그 정보를 추론해낼 수 있습니다. 그 죽음의 방조자들은 “섬길 신들을 찾아 먼 나라에 사신을 보”냈다(9절)고 합니다. 아하스 왕은 르신-베가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해 멀리 아시리아 황제에게 원병을 요청했었지요. 한데 이 애기를 전하고 있는 제3이사야서의 시대에 아시리아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이 시기에 아시리아 황제에 대응하는 이는 물론 프톨레마이오스 제국의 황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하스의 나라를 구출하기 위해 오는 아시라아 황제의 군대는 프톨레마이오스 황제의 대리인, 곧 황제가 재가한 거상의 거대한 행렬과 비견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거상은 이스라엘의 통치자들, 대지주들의 후견인, 곧 그들의 구원자입니다. 한데 바로 이런 네트워크가 대변하는 제국의 경제 시스템은 소농의 몰락을 초래했고, 소작농의 심화된 혹독한 노동 현상을 야기했습니다. 요컨대 제국의 거상이 대변하는 질서는 이스라엘의 통치자에게는 구원을 의미했지만, 민중에게는 고통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1절의 본문을 주목해 봅시다. “의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실상은 재앙을 피하여 가는 것이다.” 민중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지, 그들이 죽는 것은 도리어 재앙 피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요컨대 이 텍스트에는 제국의 경제 질서가 민중의 죽음을 부르고 있다는 예언자의 고발이 담겨 있습니다. 한데 그 제국적 체제를 불러들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토비아 가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입니다. 그들이 제국의 경제 질서를 불러들임으로써 자기들의 권력과 돈을 쌓아가고 있을 때 민중은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만큼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선 정국이 이제 막바지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맘 땐 네거티브 전략이 불꽃을 일으킵니다. 그러는 중에 박근혜 씨가 연루된 스캔들이 여러 개 폭로되었는데, ‘억대 굿판’ 스캔들도 그 하나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11월 14일, 사단법인 박정희 생가보존회가 구미의 박정희 생가에서 탄신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물론 이 행사에는 경북도지사, 구미시장, 지역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들 주요 인사들이 한마디씩 소원과 축하의 발언을 했습니다. 굿판이니 그 말들 속에 박정희 신격화 발언이 포함되었음은 충분히 예측할 만 합니다. 또 대선이 임박했으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하는 말이 들어있으리라는 것 역시 당연한 것이겠지요. 물론 모두 의전용 발언입니다.

한데 굿을 했다느니 신격화 발언이 있었다느니 하는 건, 근본주의 성향의 유통성 없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민감한 사안일 것입니다. 해서 새누리당은 극도의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최초 유포자를 고발하고, 네거티브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때 박근혜의 표정이 얼마나 살기등등한지 그이가 대통령이 되면 무슨 사단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지요.

이 스캔들을 둘러싼 공방이야 두 정당과 열혈 지지자들이 할 일일 테고, 나는 이에 대해 좀 다른 점에서 유감을 표하고자 합니다. 나의 관심은 이 굿에 참여한 대중의 마음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매년 박정희를 기리면서 제단 앞에 세워진 사진을 향해 절을 하고 소원을 빕니다. 그들은 필경 세상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면서 얼굴에 몸에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상받을 만한 역량이 그들에겐 없습니다. 해서 종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나 성당, 사찰 등에서도 그들의 상처는 좀처럼 보듬어지지 못했습니다. 이 종교들이 지배층의 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그들은 굿이 필요합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이들을 받아주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상처는 상하로 권력이 나뉜 사회의 아랫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일반적인 상처이겠지요. 특히 한국 근대의 폭력성이 주된 원인이 된 상처일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혹독한 현실이 가장 깊은 상처의 흔적을 새겨놓았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 굿판을 찾아왔습니다. 한데 그 굿에서 신격화된 이의 딸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국제조약인 한․미 FTA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굿은 자신들에게는 구원을 선사하는 굿일 테지만, 민중에게는 죽음의 굿, 그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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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그 때에는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들의 조상이 살던 땅에서 그들이 살게 될 것이다. 그 땅에서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에서 살 것이며,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영원한 왕이 될 것이다.
―「에스겔서」 37,25

 

실패한 체제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 바벨로니아에 의해 강제 유배된 이주민 집단들 내부에서 복잡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제국의 끝이 임박했다는 믿음이 널리 확산되자 이런 논쟁은 폭발적으로 활기를 띱니다. 그리고 많은 대중은 다분히 메시아주의에 들떠 있었습니다. 하여 당대의 지식인들은 메시아적 열망을 부추기며 자기들의 미래 기획 속에 저들 대중을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과거의 인물 에스겔의 상징성을 추종하는 사제집단들도 당대의 주요 정파였는데, 이들이 추구하는 미래 기획의 핵심은 군주 중심의 체제를 사제 중심의 체제로 대체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사제들의 공간(안뜰)과 평신도의 공간(바깥뜰)을 이분화하고 전자는 사제들이, 그리고 후자는 사제들의 지휘를 받는 레위인들이 주축이 되어 사제 중심적 질서를 이룩하면 야훼의 영광(카보드)이 성전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주장이지요.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사회는 진정 회생하게 된다고 그들을 믿었습니다.
이 야훼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로 귀환하는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그리는 묵시적 상상이 「에스겔서」 37장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난 고난의 역사 속에서 죽어갔던 동족들, 아무렇게나 흩어져버린 그네들의 뼈들이 되살아나고 그 속에 생기가 들어가 생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유다국과 이스라엘국 백성이 하나가 되고 한 위대한 통치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 온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위대한 족속이 될 것이라는 얘깁니다. 한데 그 통치자는 다름 아닌 유다국의 군주 다윗입니다. 다윗의 통치 아래서 야훼의 백성이 다시는 쫓겨나지 않고 영원히 이 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요.
한데 여기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사제 중심의 성전체제가 미래 기획의 핵심인데, 그렇게 되면 군주인 다윗이 다스리는 영원한 나라가 이룩될 거라고 합니다. 에스겔 정파가 그리는 사제 중심의 미래 기획은 군주체제의 실패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 얘기인 듯하지만, 실은 미래의 시나리오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미래에 귀향해서 구축할 사회가 다시 군주 중심의 체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의하면 유다국의 몰락은 군주체제의 실패이고, 하여 군주체제는 청산의 대상입니다. 하여 그들은 새 체제로의 정치개혁을 주장했고, 그 중심에는 군주가 아니라 사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순적인 얘기가 하나로 엮이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텍스트가 두 부류에 대한 포용전술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왕당파에 대한 포용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대중입니다. 왜냐면 영원히 다스릴 군주가 다름 아닌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중이 다윗이 미래에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메시아니즘’이 바벨로니아 제국 말기에 유대계 유배민 대중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자 대중을 정치화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해졌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제 중심의 미래 기획이 실현될 때, 왕당파는 과연 이익이 있을까요? 그리고 대중에게도 이익이 있을까요? 상상하자면 왕당파는 사제 중심의 세력 재편과정에서 이익 분점 세력이 될 것입니다. 그 분할 점이 어디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그것은 왕당파가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협상할 수 있는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중의 경우는 영락없이 토사구팽(兎死狗烹)될 운명입니다. 곧 권력재편이 이뤄지면 단순한 피통치자로 전락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대중은 협상할 자신들의 이해를 제도적 언술로 명료히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개 대중들이 품고 있는 언어는 열망의 언어이지 제도의 언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빼앗기지도 쫓겨나지도 않으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자자손손 지키며 사는 권리 같은 식입니다. 
제도의 언어가 아닌 언어들은 체제의 구축 과정에서 제도의 언어로 번안되어야 합니다. 가끔은 대중을 포섭하는 단계에서 번안 작업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최근 대선정국에서 각 대선후보 캠프에서 이구동성으로 제시하는 경제민주화론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한데 에스겔을 추종하는 사제세력들은 아직 번안하지 않고 단지 ‘조상이 살던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모호한 말만 하고 있습니다. 가령 ‘희년제도’를 도입하겠다든지, 과거 요시아 정부처럼 지주들에 의한 착취와 착복을 억제하는 각종 제도를 시행한다든지 하는 제도의 언어가 원론적인 열망의 언어로만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호한 언어들은 제도로 실행되지 않고 ‘약속’으로만 남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유신체제가 모호하게 약속했던 많은 것들이 끝내 바람으로만 남겨졌던 것처럼 제도의 형태로 정착시켜야 하는 부담이 덜한 약속들을 짊어질 만큼 여유 있는 체제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열망의 언어가 메시아주의적 성격을 띨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메시아주의적 언어는 최대주의적 열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고강도의 열망을 외치면서 도래할 가상의 성취감에 몰입되어 있는 이들은 이 성취감만으로도 행복감에 충만히 젖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러한 미래를 위해서 현재 감당해야 할 과제가 주어지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것에 열정적으로 몰입합니다. 이 몰입 과정은 그이들을 정체 모를 희열에 젖게 합니다. 게다가 그 과제가 누군가를 증오하는 일인 경우 그 쾌감어린 열기는 불꽃을 일으키곤 합니다.
이쯤 되면 메시아주의적 열망에 젖은 대중은 길을 잃습니다. 자기들의 열망이 어느 것인지 되돌아볼 여유 없이 메시아주의를 충동질하는 이들이 제시한 과제에 맹렬하게 몰입합니다. 그리고 그 충동질한 이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을 때, 곧 메시아주의적 열망이 성공한 권력에 흡수되었을 때, 대중의 그 열망은 흐지부지되어 지리멸렬해지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리고 메시아주의는 실종되어 버립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대중은 이익 분점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단지 피지배자가 될 뿐입니다.
에스겔을 추종하는 사제집단이 대중을 그렇게 배신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본문은 그렇게 메시아주의에 열광하는 대중을 선동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염원했던 것과 같은 사제 중심적 체제가 몇 세기 후에 실제로 구축되었습니다. 하지만 실현된 사제 중심적 체제가 에스겔을 추종하는 사제집단의 직접적 후예들은 아닙니다. 다만 그이들의 신학을 후대의 체제는 적극 활용했습니다. 한데 이 체제에서 대중은 아무런 이익 분점의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세 명의 유력후보들은 예외 없이 경제민주화를 주요 슬로건으로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알다시피, 지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가 무수히 많은 대중을 몰락하게 했고, 대부분의 대중으로 하여금 잠재적 몰락자가 되게 했던 것 때문입니다.
대중은 심각한 고통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올 대안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안 부재의 상황에서 대중사회에는 메시아주의가 폭넓게 확산되어 있습니다. 특히 세 명의 유력 후보 중 둘은 그러한 대중적 메시아주의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박정희 메시아주의와 노무현 메시아주의 말입니다. 또 안철수도 유사메시아주의 혹은 원초적 메시아주의라고 할 수 있는 ‘팬덤’ 현상의 주역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대중은 절망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이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세 명의 대선후보들은 이런 메시아주의적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경제민주화에 관한 한, 안 캠프와 문 캠프는 ‘잘 준비되었는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제도의 언어로 번안하려는 데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그것은 집권 이후 어떻게 해서든 실행에 옮겨야 하는 부담을 짊어져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때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데 박 캠프는 모호한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합니다. 더욱이 그런 대중을 향해 박 캠프는 NLL논란 같은 논거 없는 북풍에 대중을 동원합니다. 어쩌면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메시아주의적 대중은 벌써 그이들이 고통 속에서 품어온 메시아주의적 열망을 실종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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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취지_
대선 정국을 해석하는 담론들이 난무한다. 이 글 또한 그러한 해석의 하나다. 특히 이 글은 대선을 둘러싼 최근의 열정을 감정의 차원에서 묻는다. 그 중에서도 종교적 감성을 다룬다. 즉 대선을 ‘의도의 정치’의 차원에서 살피는 게 아니라, ‘종교적 감성의 정치’의 차원에서 묻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이 글은 박정희 담론과 노무현 담론에서 메시아 정치적 차원을 읽어내고, 그 각각의 특징들을 해석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왜 오늘의 대중은 메시아 정치를 열망하는가의 문제다. 그 속에서 한국의 근대를 대중이 어떻게 체감하고 있고, 그것이 왜 종교적 열정으로 표현되고 있는가를 묻는다. 또한 그 열정이 각기 다른 두 개의 메시아주의적 욕망으로 정치화되고 있는 메커니즘을 살피고, 그것의 문제점을 해석하고자 한다.

발표자_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일시_ 2012.10.29.(월) 7:00~9:30

장소_ 안병무홀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1번과 2번 출구. 두 출구 사이 골목 50미터, 좌측 건물의 1층)
문의_ 02-363-9190, 010-4944-2019(정용택 연구원), 010-3043-5058(유승태 연구원), 3era@daum.net
참가비_ 3천원(자료집)


※ 참석자들은 이 글이 수록된 책 『당신들의 대통령. 선출된 왕과 민주주의 그 이후』(지은이: 김상봉, 이택광 외/ 펴낸이: 문주/ 발행일 2012.10.11)을 현장에서 할인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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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법을 바라보는 데리다의 시선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지난 웹진46호에서 필자는 데리다의 ‘해체’에 대한 범박한 정리를 시도하였고, 이어서 데리다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진보. 보수 각 진영이 보이는 (데리다에 대한)입장의 차이와 의심의 근거를 잠시 설명한바 있다. 이번 웹진에서는 올해 미국 대선의 최대 이슈로 등장한 이민법에 대한 데리다의 입장을 따라가면서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좀 더 친근하게 놀아보기로 하자.

 

프롤로그:  2012년 미국 대선의 관전포인트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올해 대선을 치룬다.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의 오바마와 공화당의 룸니의 대결로 좁혀진 미 대선은 몇 가지 측면에서 보수와 진보진영 사이의 첨예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동성애, 이민법, 그리고 의료보험 논쟁이 그것이다. 우선 지난 5월 오바마가 동성애 결혼 지지선언을 미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하여 공화당에 먼저 싸움을 걸었다. 전통적으로 대선때마다 공화당은 낙태와 동성애 이슈를 물고 들어와 보수기독교세력의 표를 결집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의견을 피력하던 민주당 후보의 발목을 잡아왔었다. 특별히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케리가 맞붙었을 때,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명백한 사기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소위 ‘도덕적 승리(moral victory)’를 모토로 미국 기독교 우파의 결집을 이끌어내는데 공화당이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물론 낙태금지와 동성애 반대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먼저 오바마가 공화당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동성애 문제에 시비를 걸었다. ‘변화와 희망’으로 상징되었던 오바마의 개혁적 이미지를 다시 곧추세우고, 다소 느슨해져버린 진보진영 표심을 회복하려는 속셈이 깔려있다는 정치평론이 등장했고,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동성애 결혼을 찬성하는(47%) 비율이 반대하는(43%) 의견보다 높게 나타나 공화당을 경악시켰다. 앞으로 남은 대선 레이스에서 공화. 민주 양당에 동성애 이슈가 어떻게 작동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동성애 이슈 못지않게 이번 미국 대선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은 이민법에 대한 양당의 입장이다. 지난 2012년 6월 25일 미 연방대법원은 애리조나 이민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서 수시로 국경을 넘는 멕시코 불법이민자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애리조나 주정부는 지난 2010년 재정한 이민법에서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반인권적 조항을 삽입하였고, 이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애리조나 이민단속법이 연방정부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는 제소를 대법원에 제출한바 있다. 대법원 판결은 애리조나 이민법 가운데 문제가 되었던 4개 조항 중 3개가 위헌이라고 밝혔다. 위헌으로 판결된 3개의 조항은 다음과 같다: (1)이민자가 합법 체류신분 증명 서류를 소지하지 않을 경우 이를 범죄로 간주하는 것, (2)공공장소에서 불법체류자들의 구직행위를 불법화한 것, (3)추방 가능한 범죄가 의심되는 이민자를 경찰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교통법규 등 다른 위반으로 경찰의 검문을 받을 때 체류신분이 의심될 경우 합법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 제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위헌 소지가 분명치 않다는 판결을 내려 많은 이민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 직후 잰 브루어 애리조나 주지사는 “경찰 검문권 조항을 즉시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불법체류자 단속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애리조나 이민법 판결로부터 촉발된 이민법논의는 올 미국 대선을 좌우할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것이다. 

 

데리다의 유로 2012 관전기

 

데리다 본인은 부인할 수도 있겠으나, 현대철학의 흐름속에서 데리다는 시종일관 해체를 자기 사유의 주제로 삼았던 인물로 기록된다. 하지만, 데리다를 읽는 필자는 늘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가 뭐지?’를 놓고 계속 고민해왔다. 데리다의 저서들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뭔가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데리다 특유의 사유와 레토릭을 경험하면서, 필자는 데리다의 해체는 해체의 대상, 그리고 해체 후에 도래할 또 다른 내용에 포커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데리다가 취하는 태도와 방법이 오히려 해체를 이해하는 중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개념에 대한 신뢰와 개념은 미끈하게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필자에게 데리다는 매혹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위험한 인물이다.  
이렇듯 데리다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 마치 미친x 널뛰듯 오락가락하던 내게 얼마 전 끝난 유로 2012에서 스페인 축구팀이 선보인 ‘제로톱’ 전술은 데리다의 해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통로가 될 법도 하다. 펠레나 마라도나, 호나우도가 차지했던 센터포드 자리를 텅 비게하는 스페인의 제로톱은 기존 축구 전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낯선 사건이었다. 센터포드 자리는 비어있는 기표이고 그 자리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기존의4-3-3이니 4-4-2니 3-5-2니 하는 축구의 전술은 수비-허리-공격을 분할한 후 나름의 입장과 역할을 전제로 한 전술이었다. 사람들은1974년 독일 월드컵때부터 등장한 요한 크루이프로 상징되는 네델란드의 토털사커가 기존의 축구전술을 뒤엎는 세계 축구계의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는 엄격히 말해 공격과 수비수간의 간격을 30-40m 내외로 유지하는 현대 압박축구의 기원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공격수와 수비수간의 경계를 허물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유로 2012에서 선보인 스페인 축구는 <공격-허리-수비>라는 기존의 체제를 완전히 해체시켰다. 백넘버 상으로 공격수와 수비수를 구별할 수 있겠으나 수비수도 기존의 수비수 개념이 아니다. 양쪽 윙은 끊임없이 오버래핑에 가담하고, 중앙수비수들은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거나 제공권 확보를 위해 센터포드 위치로 이동한다. 적절한 비유가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스페인 축구팀은 마치 영화 테미네이터 II에 나오는 은색 액체 괴물로봇 T-1000 같다. 그 놈은 팔이 녹아내리면 다시 합성이 될 때 팔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리가 되기도 하고, 머리는 계속 머리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녹았다가 다시 재생될 때 손이 되거나 배 부위가 되기도 한다. 정말 괴물이다. 스페인 축구가 그렇다. 역할해체, 영역해체를 통해 스페인 축구는 세계 축구계의 괴물로 진화하고 있다. 스페인 축구가 이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패스에 있다. 다른 세계적 수준의 팀에 비해서도 스페인 축구팀의 패스회수가 3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기존의 시스템에 입각한 축구는 수비에서는 쓰리백, 포백, 공격에서는 원톱, 투톱, 허리에는 중원을 지휘하는 지단 같은 플레이 메이커 등 선수 개개인의 역할과 전술이 주어져 있었고 그것이 얼마만큼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미리 약속된 패턴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다르다. 수없이 이어지는 패스와 그 패스를 통해 창출되는 순간적이고 무계획적이며 불특정한 공간에 불특정한 다수가 마치 벌집에 벌들이 드나들 듯 골대 주변에서 난장을 부리다 칼침을 놓는다.
지난 웹진(56호)에서 필자는 데리다의 사유의 궤적을 언급하면서 데리다 초기를 나타내는 키워드로 산종, 대체보충, 차이 등을 지목하였고, 후기 데리다는 유령, 정의, 법, 메시아성, 환대 등의 용어가 중심을 이룬다고 했었다. 이 모두가 ‘해체’라는 강력한 원톱을 중심으로 움직일만도 한데, 정작 데리다는 본인이 해체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조차 거북하게 생각했었다. 데리다는 ‘해체가 무엇이냐?’ 는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장의논리에 입각하여 ‘산종’을 이야기 할 때도 있었고, ‘유령’을 언급할 때도 있었다. ‘차이’를 강조했다고는 하나, 어느 날에는 느닷없이 ‘법과 정의’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해체’라는 말을 가급적 자제하며, 스페인 축구로 비유하자면 ‘제로톱’ 전술을 구사하면서, 데리다는 그 비어있는 해체의 중핵을 메우려하지 않았다. 스페인 축구팀이 굳이 센터포드를 두지 않고 제로톱 전술을 구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해체의 철학자 데리다! 하지만, 해체는 제로톱이고 공갈이다. 그 공갈은 차이, 유령, 환대, 대체보충, 산종, 정의, 메시아성 등의 이름으로 옮겨다니면서 기존 지성계의 판을 어지럽힌다. 그렇다면, 데리다가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노렸던 것은 무엇일까? 물론, 골을 넣는 것이겠지. 그 Goal은?

 

다시, 데리다를 생각하다.

 

데리다가 시종일관 그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면서 집착했던 문제는 결국 ‘경계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경계의 문제’는 서구 철학의 전통에서 볼 때 안과 밖의 문제, 즉 경계의 이편과 저편, 내부와 외부, 주체와 객체를 분할하여 이편과 내부와 주체에게 권리와 자격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종국에는 정치적/윤리적 문제로 귀착된다. 데리다는 이 경계의 조건들이 무슨 장엄하고 숭고한 원칙과 대의가 아니라, 실상은 임의적인 땜질과 봉합, 그 권위의 원천이 다분히 자의적이고 우연스러운, 그래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게다. 그러니 제발, 앵글로 색슨이나 게르만이나 유대인이라고 목에 힘주지도 말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에 산다고 거드름 피지 말라는 말이다.
다시 서두에서 언급했던 미국 애리조나 이민법 문제로 돌아가 데리다식 국가관에 대해 생각해보자. 종교개혁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중세 봉건주의는 서서히 파국을 향해 치달았고, 새롭게 등장한 시민계급은 전시대의 강제와 규율이 아닌, 자신들의 이드와 이익을 존중하고 보장해줄 새로운 형태의 통치시스템을 요청하게 된다. 근대 국가 형성에 영향을 끼친 루소의 ‘사회계약설’에 의하면, 국가는 구성원 전체가 가진 공동의 힘으로 개인의 신체와 재산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개인은 국가란 이름으로 결합되나, 국가의, 국가에 대한 결속과 연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관과는 비교가 안되는 느슨한 것이었다. 어쩌면 국가는 새롭게 분출되는 시민계급의 well-being(잘 먹고 살 사는 것)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시민계급에 의한 (중세 봉건시대와는 다른) 권력의 사회적 재전유, 그것이 바로 근대국가의 탄생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일까?
내셔널리즘이라는 담론은 근대라는 시간과 공간, 즉 담론을 규정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그 권위가 확립되는 것이지, 국가 자체에 무엇인가 숭고하고 고유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단군의 자손, 아리안의 후예 등 온갖 종류의 국가담론과 민족신화는 안과 밖을 대조시켜 안에 있는 나의 특권과 권리를 정당화하려고 설정된 기획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외국인 이민을 반대하거나, 불법외국인 노동자를 색출하려는 국가의 논리는 숭고한 국가질서와 전통을 전제하지만, 기실 그것은 자기의 이익에 방해가 되거나 위협을 가하는 이물질에 대한 응징 내지 박멸 그 이상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데리다는 우리 삶 도처에 세워진 기존의 경계들에 질문을 던지고 되묻는 작업을 감행한다. 우리의 습관과 관행, 우리의 익숙함과 안온함을 위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모든 코드들, 경계지어진 것들의 기원을 집요하게 캐물으며 데리다는 기존의 경계, 코드, 규칙, 법들을 해체하면서 확장한다. 그것이 바로 데리다식 정치이고 윤리이다. <다음 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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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는 박근혜의 미래다!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2008년 미 대선에 대한 기억: 오바마에 대한 깔대기

 

지난 달에 이어 ‘철 지난 미국 대선을 통해 본 2012년 한국대선 읽기’ 두 번째 글이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캐리와 공화당의 부시가 맞붙었을 때, 본 게임 전에 결선에 나갈 민주당 후보를 뽑는 최종 전당대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모임에서 캐리에 대한 지지 연설을 했던 몇몇의 연사가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유독 눈에 띠었다. 당시 필자는 미국 온지 2~3달 밖에 안되었던 터라 어리버리하던 시기였고, 귀도 뚫리지 않았던 때라 무척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그런데 유독 그 사람의 영어는 귀에 쏙쏙 들어왔고 비록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의 에너지와 열정만은 너무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정치가이고, 차기는 모르겠지만, 차차기 민주당 대권후보군으로 부상할 인물 중 하나라고 시카고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한 친구가 말했줬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가 바로 현 미국 대통령 바락 오바마이다. 오바마는 차차기 민주당 대권 후보군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차기 2008년 선거에서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뒤늦게 나는 그가 내가 살고 있는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의 주지사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가 다니는 교회가 현재 필자가 재학하고 있는 시카고 신학교가 속해 있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인 UCC(United Church of Christ)라는 점, 그의 멘토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선거초반 ‘갓 뎀 아메리카’논쟁으로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시카고 트리니티 UCC교회의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라는 점, 그리고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마가 당선된 그날 밤 시카고 밀레니엄 Park였는지, 아니면 오바마 취임식 날이었는지 가물가물한데, 유독 CNN에서 그 실황을 중계하면서 클로즈업 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이자, 몇 십 년 전에(지미카터가 대통령으로 당선될때)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는 제시 잭슨 목사이다. 그는 미국 흑인인권 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 멤피스에 있는 한 모텔 2층 베란다에서 저격당 할 당시 바로 그 옆에서 선생을 부축하고 후송하고 죽음까지 목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잭슨목사는 후에 오바마의 정치적 후견인이 되었다. 그날,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제시 잭슨 목사가 아무 말도 없이 아무 표정도 없이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계속 방송을 타고 전파되었는데, 많은 미국민들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감격만큼이나 제시 잭슨 목사의 눈물이 지닌 의미에 더 울컥해 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눈물을 흘리는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발터 벤야민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었고,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역사철학 테제>에 대한 발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업에 참여한 교수, 학생들의 관심사는 온통 최대의 선거인단을 보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선거결과에 집중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만 접수하면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수업의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가 시작될 무렵 캘리포니아가 민주당으로 넘어왔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그것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자 모두 수업을 접고 신학자 폴 틸리히가 시카고에서 강의할 때 자주 갔다던 맥주집으로 향해 축배를 들었다.
특별히 우리학교 식구들이 느끼는 오바마 당선에 대한 기쁨과 흥분은 유별났다. 앞서 말한 오바마의 정치적 후견인인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의 맨토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가 모두 시카고 신학교 출신이라는 점 (둘 다 공교롭게도 시카고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학교 졸업식이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 어김없이 참석하여 걸출한 입담으로 사람들을 한 바탕 웃기고 간다), 오바마의 집이 차로 우리학교와 2분 거리이고, 오바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우리학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이며, 오바마가 쓴 책의 Book 사인회가 우리학교 지하 Co-op Book Store에서 열렸고, 대선 때 마다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는 낙태, 동성애 등의 윤리적 이슈들에 대한 신학적 자문에 (물론,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편에서) 우리학교 교수들이 오바마 캠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소문 등등…..여러가지 시카고 신학교와 오바마 간의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우리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두 세달 무척 행복했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런 종류의 신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가 노무현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물론, 오바마는 국내정치에 있어서 부시보다 상대적으로 탁월한 진보적인 색깔을 드러내 보였다. 미 진보진영의 숙영 사업인 의료보험 개혁안을 추진하고, 동성애자 군복무 제한에 대한 철폐, 이민정책과 불법체류자 문제에 있어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정책을 펼친다는 점, 무엇보다도 수 백년 동안 백인들의 폭력에 신음하고 위축되었던 흑인들의 자존감에 긍지를 주었다는 점이 가장 큰 오바마의 치적(?)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역시 미 합중국의 대통령이었다. 외교적 문제나 국제 분쟁을 바라보는 관전포인트나 FTA에 임하는 자세 등은 어느 미국 대통령 못지 않게 국익에 종속된 모습을 보이며 그것에 충실하다. 특별히 한국과의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FTA 사상 유례없는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함으로 미국의 국익을 챙겨 불안했던 재선 가도에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를 현재 받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는 MB를 좋아한단다.

힐러리에서 박근혜를 보다!

바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2008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막강했던 두 명의 대선 주자 오바마와 힐러리간의 민주당내 경선이 오히려 본게임보다 더 많은 흥행과 토론의 이슈, 그리고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냈던 경우다. 11월이 대선이었는데 민주당은 치열했던 양 진영간의 난타전으로 인해 여름에서야 비로소 대선 후보가 정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여성대통령이 먼저 나와야 하느냐?’ 아니면, ‘흑인 대통령이 먼저 나와야 하느냐?’ 이 문제는 ‘여성의 해방이 먼저일까?’ 아니면, ‘흑인 해방이 먼저일까?’ 라는 전통적 주제와 결부 되면서 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냈다. 둘 다 워낙 묵직한 존재론적인 차원의 문제인데다, 그 존재론적인 차이로 인한 억압과 폭력의 기억을 둘이 공히 경험하고 있는 까닭에 사람들은 좀처럼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힐러리는 1800만 표를 득표하고도 패배했다. 그리고 패배 시인 연설에서 힐러리는 “비록 나는 가장 높고 견고한 유리 천장을 깨지는 못했지만 1,800만개의 금을 가게 한 균열을 냈다”고 말했다. 참고로 미국은 건국 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여성 대통령도 배출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도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동안의 눈물겨운 투쟁의 시간을 거쳐 현재 미국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놀랄 만큼 높아졌다고는 하나, 미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으로 통합을 꾀하려는 사회이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의 대부분이 보수적 신앙노선 위에서 여성의 역할을 성경에 나와있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유럽과 비교할 때 미국 여성의 역할과 한계가 기본적으로 제한적이고 뚜렷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힐러리가 말한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 사회내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벽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힐러리의 마지막 연설은 나름 멋있고 감동적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비록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오바마에게 고배를 마셨지만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하게 색깔을 바꾸어 가며 권력에 대한 야심찬 면모를 선거운동 기간 내내 보여줬다. 오히려 오바마보다 의제설정에 있어서 한 발 앞섰던 것 같고, 오바마보다 모든 공약에서 반보 진보적인 내용을 선보였다. 오바마는 본인이 흑인이라는 상징성이 득이 될 수도 있지만, 득표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너무나도 잘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온화하고 무난한 모습으로 백인들이 지닌 본인에 대한 거부감을 다독이는데 상당한 노력을 경주했었다. 하지만, 힐러리는 달랐다. 오바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비치는 본인의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아주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자세로 자신이 오바마보다 더 진보적임을 천명하였다.
특별히, 힐러리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남편이 대통령이었다는 프리미엄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이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힐러리는 남편을 대동하지도 않았고, 본인에게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광이 미치는 것에 대해 의식적 거리두기로 일관했다. 가부장제 시스템 속에서 여성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혹은 남편의 이름으로 포장된 채 소개되거나 전달되기를 바라는데, 힐러리는 단호히 남편이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백악관을 재탈환하려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비록, 퍼스트레이디 라는 껍질을 벗어 던지고 민주당 대선 후보자로 변신하였던 그녀의 과감한 도전은 좌절되었지만, 힐러리의 자세와 시도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문득, 이 대목에서 박근혜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왜일까?

필패, 박근혜 ?

둘 다 퍼스트레이디였다는 점, 둘 다 아버지의 이름 혹은, 남편의 이름이라는 가부장제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점, 둘 다 대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등 여러가지 물리적, 외형적 공통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는 같지만 다르다. 힐러리는 그동안 자신을 감싸고 왔던 외피가 그녀의 대선가도에서 마이너스가 될 요소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뼈를 깎는 고통으로 환골탈퇴하여 자신을 대선경쟁 레이스에 나온 주자들 중 가장 왼쪽에 위치시켰다. 하지만, 박근혜는 여전한 박정희의 후광과 여전한 지역정서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보수-수구적 마인드에 휩싸여 있다. 물론 박근혜의 대세론은 실재로 존재하며 실제로 그것은 지난 4.11 총선에서 분명히 입증되었다. 그녀는 아무때나 선거를 치러도 minimum 35%이상의 확고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박근혜 필패론의 근거라면? 뭔가 알 수 없는 유령이 지금 자기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다음 호에 계속>

P.S: 다음 호에서는 데리다의 후기 철학을 대변하는 유령론(hauntology)에 기대어 박근혜 필패론의 근거를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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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2.05.22 11: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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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2> 제가 이 글을 쓸때 약간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박근혜가 승리한 4.11 총선 결과때문에 열받아 있었고, 총선 후 얼마후에 있었던 Ph.D Qual Exam 과목중 하나가 Derrida였는데, 시험 예상 문제중 Derrida의 유령론를 둘러싼 문제들이 많았죠. 시험공부를 하면서 잘 하면 박근혜 현상과 데리다의 유령론을 하나로 엮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시험도 끝나고, 총선결과에 대한 흥분도 사라진 지금, 더구나 통진당이 개판을 치고 있는 요즘의 형국을 보면서... 내가 괜한 말 했다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한달간 무척 괴로울 것 같네요. 일단 써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겠습니다.
  2. 김형태
    2012.06.14 00: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국민을 궁민으로 만드는 지도자라고 국민이 선택에 뽑았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지요...

    권력앞이 비열하고 더러운 것은 진보. 수구세력 다 똑같으니..

철 지난 미국 대선을 통해 본 2012년 한국 대선 읽기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미국에 와서 필자는 두 번의 대선을 경험하였다. 미국에 오자마자(2004년 가을) 재선을 목표로 하던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캐리간의 대결과, 2008년 민주당의 오바마와 공화당의 매캐인 간의 대결이 그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국민과는 다르게 서로 다른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목에 핏대 올리며 고함치지 않는다. 영리한 것인지 예의바른 것인지, 아니면 누가 되든 그 놈이 그 놈이라는 경험적 진실에 익숙해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와는 안 맞는 선거문화다. 한가지 비슷한 것을 굳이 고르라면 전통적 민주당 텃밭은 뉴욕, 시카고, 샌프란 등 주로 도시주변이고, 공화당은 남부 바이블벨트로 상징되는 시골들이라는 점이 한국과 그나마 비슷하다고 할까.

이번 달 웹진과 다음 달 웹진에 철 지난 미국 대선을 통해 본 2012년 한국 대선 읽기라는 제목으로 2회에 걸쳐 2012년 대선에 대한 단상을 게재한다. 물론, 본토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인식과는 다를 수도 있고, 그래서 온도차가 있으리라는 예상도 하지만, 외부자(물리적으로)의 시선에서 대상을 향한 다른 안목을 제공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지난 연말에 하늘나라로 돌아간 김근태 전 의원의 마지막 메시지,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언에 힘입은 바 크다. 십 년도 훨씬 전에 그의 정치적 비젼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모임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하지?’ 라는 생각에서부터 저런 정치가가 대한민국에 10명만 있어도 대한민국은 바뀌겠다!’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고인이었지만, 내가 그 모임에서 김근태 의원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의원님, 정치하지 마세요!”였다. 대한민국 국회와 인간 김근태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듣고 허허웃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참 선하고 강직하고 논리적이었던 정치가 김근태가 그의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한 마리 학 같았던 그가 숨을 거두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2004년 미국 대선, 그 집단적 타락의 공유

 

필자가 겪었던 미국에서의 두 번의 대선은 선거 기간뿐 아니라, 선거가 끝난 후에도 많은 이슈들을 생산해냈었다. 2004년 민주당 캐리의 패배는 단순히 민주당과 전통적 민주당 지지세력의 패배라고 하기에는 할 말이 많았다. (표면상으로)지도자의 대의명분, 도덕성, 청렴성, 순혈주의(?)를 미덕으로 삼았던 미국 정치문화가 시장 개싸움으로 전락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거라는 명분을 걸고 시작된 부시의 대이라크 전쟁은 결국 미국의 경제적 손익계산에 따른 선택이었고, 그 거짓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있었던 2004년 대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은 (국가적)정의와 (국가적)이익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하였다. 모두가 그 전쟁의 공범으로 연루된 것이다. 백안관 대변인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세계평화와 민주주의 수호, 인권증진을 위해 미국은 언제나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 숭고한 피를 흘리고 있다…….…(블라블라)……...” 다 뻥이었다 !

 

물론 많은 사람들이 백악관 대변인이 말했던, 오로지 미국은 세계평화만을 생각하고 수호한다는 지구방위대식 홍보물과 같은 발언에 전적으로 신뢰는 안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상징계의 기표로써 미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니, ‘미국=세계평화라는 상징계의 기표는 미국 보다는 오히려 한국 같은 나라들에서 더 심하고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지구상에서 미국에게 영혼까지 팔아먹은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남한이라 말해야 되지 않을까? 이번에 타결된 굴욕적인 한미FTA체결은 말할것도 없고, 재향군인회 혹은 한기총에서 주관하는 무슨 집회나 구국기도회에서 어김없이 휘날리는 성조기를 볼 때마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정점에서 성령, 혹은 미국의 이름으로 불태워지는 김일성, 김정일의 인형을 볼 때마다 무슨 원시부족에서 벌이는 토템향연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런데 명심하시라. 상징계속 미국과 실재의 미국은 다른 미국이고,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한 위대한 예술가가 조각한 성모 마리아의 순결한 동상이 바티칸에서 공수되어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를 여는 첫날,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조각의 감상을 위해 몰려 들었다. 작품은 지금 커튼 뒤에 가려져 있고, 유명한 텔렌트 출신의 문화부장관, 부자동네 그 지역 국회의원, 무슨 미술관장, 구청장 등등의 VIP들이 속속 근엄하지만 세련되게 등장하여 손에 쥐고 있던 가위로 동상을 가리고 있던 커튼과 연결된 줄을 자르는 순간, 우리 앞에 드러난 그 마리아는 우리가 예상했던 순결하고 수줍어하는 마리아가 아니었다. 옆 집 정부를 유혹해 격렬한 정사를 벌이고 있는 마리아였던 것이다. 바로 그 마리아가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순결한 마리아의 진짜 모습이라면? 감추고 싶고 숨기고 싶고, 설마 설마 했던 그 실재(The Real)가 확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2004년 대선이 그런 성격을 띠었다. 자신들의 치부와 위선과 진심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그것을 모두 봐 버렸으며, 최종적으로 그들은 그것을 승인하였다. 아마도 2004년 대선은 미국사회에서 있었던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전체적, 집단적 타락체험이 아닐까 싶다. ‘, 무엇 때문에 미국민들은 그것을 용인했을까?’ 에 대한 분석이 선거 후에 난무했는데, 지금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경제논리와 국가권력에 대한 권위를 보호해야 한다는 애국심(?) 뭐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선거 후 전통적 민주당 텃밭인 이곳 시카고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가운데 빠져 들어 한참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MB, 부디 변치 마시라!

 

이 글을 읽는 한국에 있는 독자들은 MB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에 대해 뭐라 하고 싶은 말도 없고, 아무런 궁금증도 없으며,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것 같다. 팃낙한 스님이 그랬던가? ‘어떤 대상에 에너지를 주지 않고 바라만보고 있으면 그것은 점점 스스로 죽어서 사라진다고 말이다. 그래도 팃낙한 스님은 중생에 대한 자비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선을 주는 것 까지는 포기하지 않으셨나 보다. 하지만 나는 MB를 향한 시선조차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 눈길조차 아깝다. 이것이 성숙한 스님과 아직 설익은 목사와의 차이라고 비난한다면 할말 없지만

 

2007년 겨울,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 이 정권의 말로가 지금처럼 될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예상대로 이명박은 4년 내내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지 않았고, 자신의 철학을 거역하지 않았다. 이점은 전직 노무현 대통령보다 낫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이 걸어갔던 정치, 문화적 행보와 경제, 외교분야의 행보는 사실 엇박자였다. 이러한 자기 분열이 그를 항상 괴롭혔고, 인간 노무현은 그것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보통의 정치인들은 그러한 자기분열(혹은 배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정치인으로서 마땅한 통과해야 할 의례로 여기는데 반해, 인간 노무현은 다른 정치꾼들처럼 그다지 뻔뻔하지도 파렴치하지도 못했다. 그런 점에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표현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다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미일관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놓친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보다 낫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소통을 하라고 타일렀지만 MB DNA 속에는 소통이란 굴복이고 굴욕이어서 더 강한 어조로 자신의 진정성을 설파했야 했으며, 더 강력하게 모든 사안을 밀어부쳐야만 했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 같은 신화시대에 등장했던 봉건영주들만큼 근성있는 지도자의 면모를 드러내 보였다고 볼 수 있다. 재임기간 계속되는 악재와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된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냉소적인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심지를 굽히지 않고 꿋꿋하고 씩씩하게  강행했다는 점에서 그의 고집 하나만은 인정할 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의 권력의지와 통치철학은 정치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부정적 의미에서 타산지석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리라.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점이다. 혹시, 이명박 장로에게 성령이 임해서 마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전향했던 것처럼 눈에 붙어있었던 무엇인가가 떨어져 개과천선하면 어떡하나? 이 대목에서 그가 회심을 하면 정말 코메디인데… MB의 시대정신은 이대로 쭉 가서 자신의 진정성을 부여잡고 장렬히 전사해야 한다. 그래야 이 대하드라마는 멋있고 숭고하게 끝난다. 그러니 MB, 부디 계속 버티며 변치 마시라!

하지만, 이 글의 관심사는 MB에 대한 성토도, MB 정권의 말로에 대한 레퀴엠도 아니다. 4년 전 우리는 무엇에 홀려 이명박을 뽑았고, 이제 우리는 다시 누구를 찍어야 할 것인가? 누구를 선택할 지를 논하는 것은 대선 출마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좀 오바인가? 하지만, 4년 전으로 돌아가서 이명박에게 몰표를 선사한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대해서는 한번쯤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 한국사회의 자화상

 

1980년 이후 한국 현대사를 나누는 굵직했던 사건을 꼽자면 80년 광주, 87 6월 항쟁, 그리고 97 IMF가 아닐까 싶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집권한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시켰고, 대중들로 하여금 20세기 한국땅에서 벌어졌던 (군사독재로 인한) 야만과 자기혐오의 원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끔 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제 잔치는 끝났고, 우리를 짓눌렀던 액운은 10년 동안 계속된 푸닥거리로 어느 정도 풀렸다. 이 말은 앞으로는 옛날 80년대식 운동 경력 내지 무협지 같은 무용담을 이야기 하면서 대중들을 혹하게 했던 약발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고, 투쟁의 경력은 더 이상의 자랑거리도, 더 이상의 감동의 요소도 아니라는 말이다. 한번은 통했는지 모르지만 두 번은 다시 안 통한다. 2007년 대선 당시 분명 대중은 가열찬 의지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는 자칭 투사들의 몰이배식 말투와 억양에 피곤해 있었다. 이것은 그 무렵 휘몰아친 다양한 위기 담론의 발생과도 무관치 않다.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그리고 신학의 위기……. 모든 위기담론의 근저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상실된 시대의 고민과 혁명에 성공하지도 못하고 더 이상 무엇을 잉태하지도 못하는 불임의 시대에 대한 아픔이 깊게 베어있다. 이 모든 현상의 원인과 전제가 되었던 사건이 바로 IMF이다. 왜냐하면, IMF이후 우리 삶의 지평이 그동안 우리를 지탱했던 윤리의 문제에서 앞으로 우리를 위협할 생존의 문제로 그 관심사가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윤리, 민주주의, 자유, 정의 이런 것들은 우리 삶의 우선 순위가 아니다. 심지어는 누군가가 대화석상에서 이런 주제를 꺼내면 우리들은 지루해 하거나, 혹은 무슨 중세적, 시대착오적 발상이냐며 마음속으로 무시하며 그 질문들을 폐기한다.

 

실제로IMF 이후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재편되었다. 비교적 진보적이고 도덕적이라고 믿었던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민주정부는 공교롭게도 IMF가 터진 97년 겨울에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대권을 쟁취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들의 예상보다 훨씬 충실하고, 착실하게, 그리고 단호히 신자유주의 원리를 이 땅에 이식하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한나라당이나 조..동에서 말하듯 좌파정권도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도 아니다. 이 표현은 너무나 과장되고 부풀려져 있는 말이다. 물론 이전 정권들과는 다르게 확실히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진전이 있었고, 문화와 사회전반을 향한 열린자세와 남북관계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취했다는 점에서는 그 공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신자유주의를 대하는 자세와 정책에 있어서는 김대중-노무현의 10년은 이명박 정권의 그것과 강도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틀 자체는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시스템을 대하는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의 무력감과 한계는 인민들로 하여금 더 이상 윤리가, 이념이, 그리고 정의가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도 있구나!”를 각인시켜주었던 10년이었고,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그러한 의심과 회의를 최종적으로 확정지어준 사건이었다.

이 말은 이명박 정권은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진 정권이 아니라는 말이다. MB는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졌던 민주정부, 그러나 너무나도 신자유주의에 무력했던 10년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난 숙주와 같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MB는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난 미숙아 이기에 앞시대의 지도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한국 현대 정치사라는 지형에서 볼 때 일종의 변종 바이러스 같은 성격을 지닌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적어도 그 전까지의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김영삼 조차, 그들은 적어도 일정기간 상징적인 자기희생을 통과한 지도자들이었다. 70,80년대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대중 정치인 김대중과 김영삼,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노무현! 이렇듯 그 전까지 대중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을 통과의례처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명박은 어떤가? 정치적 자산과 자기 희생의 전력이 전무한 MB, 그것도 선거 직전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사실이 어느 정도 다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표차로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IMF이후 우리를 압박했던 생존의 문제 10년이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닥치고 탐욕이란 물화(物化)된 시대정신으로 화려하게 만개하는 순간이었다.

 

글의 전반부에서 2004년 미국 대선이 미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비양심과 몰염치를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설명한바 있는데, 2007년 한국 대선도 그러한 역할을 하였다. 우리는 이제 대통령이 누가 되든 상관없다. “강바닥을 파헤쳐 온 국토가 망가져도, 뉴타운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옥상에서 불타 떨어져도, 내 집값과 내 땅값만 올라가기만 한다면 그가 누가 되든 상관없다. 난 그를 위해 표를 던진다!” 그것이 우리들의 2007년 표심이었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죄의식을 다같이 내려놔 버렸고, 때문에 우리는 이제 그 누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 이런 야만스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이제 총선을, 그리고 대선을 앞두고 있다. , 이제 누구를 찍어야 할까? (다음 호에 계속)  

 

에필로그: 매번 선거때만 되면 우리는 누구를 찍어야 될지?’를 놓고 고민한다. 87 6월 항쟁 후에 있었던 대선 때부터 (양 김이 분열되고 노태우가 당선되었던) 등장한 비판적 지지어쩌구하는 고뇌에(?) 찬 구호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7년 대선까지 소위 양심적 시민들의 표심을 대변하는 슬로건이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어차피 최선이 아니라면 최악을 피하는 선택이 합리적이고 역사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현명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데리다의 표현처럼(그는 맑스의 유령에서 햄릿의 대사를 인용하며 “The time is out of joint”라 말했다), 아니 성경에 적혀있는 구절처럼 그 날과 그때는 점진적 발전과정이 아니라 도적처럼 임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매번 대선 때 마다 살짝 권영길를 찍을까 김대중을 찍을까? 노무현을 찍을까 권영길을 찍을까?를 놓고 고민했지만, 항상 나의 선택은 민노당 후보였다 (정동영이 나왔던 지난 대선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대선 때는 미국에 있었다). 하지만, ‘최선에 대한 믿음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최악은 피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강박이 얼마 전부터 내게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에 너무 오래 있었나? 나이가 들었나? 아니면 이명박에게 너무 질렸거나 or 난 원래 최선에 대한 믿음이 없었거나 혹은 내가 변했거나어쨌든 선거는 사람의 마음을 참 묘하고 드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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