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스러운 전쟁: 요한 계시록을 통해 본 폭력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지난 6월 한국은 퀴어 퍼레이드에 반대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와 단체 행동으로 시끄러웠다. 얼마 후 미국은 동성결혼이 헌법에 명시된 미국 시민의 기본 권리임을 대법원이 인정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대법원 판결이후, ‘동성결혼 반대’를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로 인해 약간의 소동이 있긴 했지만, 미국은 대체적으로 조용했다. 미디어들도 이들의 주장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 듯 했고, 오히려 동성결혼 합헌 판정에 기뻐하는 성소수자들의 동향을 전했다. 대법원이 합헌 판정을 내리는 기간에 내가 속해 있는 미국 성공회의 전국회의 (General Convention)가 유타주의 솔레이크 시티에서 열리고 있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회의에서, 주교단과 대의원들은 교회법에 명시된 결혼의 정의를 ‘남성과 여성의 결합’에서 ‘성숙한 두 사람’의 결합으로 바꾸는 것을 결정했고, 미국 성공회 역사상 최초로 흑인 의장 주교를 선출하였다. 지난 몇 년 동안 동성애 문제로 지역 성공회 교회들이 갈라지고, 동성애에 반대하는 신부들과 주교들이 교회를 떠나는 등,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으니, 앞으로 교회가 계속 시끄러울 것 같다.
          동성애와 관련된 일련의 사회적 사건들을 보면서, 왜 많은 기독교인들이 전쟁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어떤 전쟁에 대해서는 지지의 목소리를 보내면서, 성소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중오하고, 동성애에 대해서는 유독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전쟁의 문제보다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류의 억압—전쟁, 가난, 가부장제, 동성애 혐오주의, 외국인 혐오주의 등등—은 그 근본을 들여다 보면, 모두 서로 얽혀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양분을 공급해주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 동성애 혐오주의와 군사주의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친밀 관계의 예를 잘 보여주는 성경이 요한 계시록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부터 ‘퀴어 성서 주석 (Queer Bible Commentary)’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요한 계시록 주석을 번역을 위해 천천히 집중해서 읽다 보니,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 왔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요한 계시록을 연구하는 권위자로 알려진 티나 피핀(Tina Pippin)과 게이 신학자인 마이클 클락 (Michael Clark)이 함께 쓴 요한 계시록에 대한 퀴어적 해석은, 이 저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 나로 하여금 전쟁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했다.
          요한 계시록은 단순히 기독교 종말론에 대한 책이 아니라, 전쟁에 관한 책이며, 전쟁과 섹슈얼리티 (sexuality)가 함께 하는 책이다. 신약학자들의 대부분은 요한 계시록을 사도 요한이 살았던 폭력과 전쟁, 귀족들의 무분별한 쾌락 추구와 억압으로 점철된 1세기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와 관련지어 읽는다. 제 3세계 신학자들은 제국주의 억압에 대항하는 해방의 메세지로 요한 계시록을 바라 보기도 한다. 제3세계 신학자들의 관점을 존중하면서도, 피핀과 클락은 요한 계시록에서 해방의 메세지, 특히 성소수자들을 위한 해방의 메세지를 찾기는 힘들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계시록의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 아니라, 전쟁과 파괴의 신이며,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을 오히려 외면하는 침묵의 심판자이며, 그가 건설하려는 왕국은 하늘과 땅이 철저히 파괴된 후에야 등장해서 오직 선택 받은 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동체이다. 피핀과 클락은, “왜 이런 하느님을 우리가 믿어야 하지? 이런 이미지에서 하느님을 해방시켜야 하지 않나?”라고 질문한다.
         실제로 요한 계시록은 하느님이 코디네이터로써 소리 없이 전쟁을 주관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하느님의 허락을 받은 네 천사가 지구의 네 귀퉁이에서 차례로 나팔을 불면, 전쟁과 기근 전염병 등의 재앙이 선택받지 못한 이들을 죽음과 질병으로 몰아 넣는다. 전쟁, 기근, 전염병은 따로 떨어진 사건들이 아니라 함께 일어나는 현상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농업 공동체와 지구의 파괴로 인해 기근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기근은 때로 전쟁과 무력 충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전쟁과 기근으로 버려진 사람과 가축 시체로 인하여 전염병이 도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문제는 전쟁을 일으키고 조정하는 자들은 전쟁터에서 보이질 않는데, 전쟁의 원인과는 상관없이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죽음의 천사들도 당연히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며, 이 천사들에게 지구를 치라고 명령하는 신의 모습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알지만, 왜 일어났는지, 누가 일으켰는지, 그리고 왜 자신들이 피해자가 되어서 죽어야 하는지 알지 못 한채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어느 전쟁이나 희생양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희생양들은 여성들, 소수 인종들, 외국인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인 경우가 많다. 피핀과 클락은 제리 파웰 (Jerry Falwell)과 같은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동성애자들을 종말론의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요한 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종말의 신호로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이들은 유럽 연합의 탄생을 적그리스도 왕국의 탄생으로, 심지어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몰아가기도 한다. 1차 걸프 전쟁 때도 20세기말 종말론자들은 아마겟돈의 시작이란 억지 주장을 했고, 21세기 들어선 9/11 테러 사건, 이란의 핵무기 개발, 2차 걸프 전쟁 등이 곧 다가올 아마겟돈의 징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에이즈는 말세의 질병으로. 그리고 에이즈 확산의 책임은 동성애자들, 특히 게이들에게 떠넘겨졌다. 결국 계시록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동성애자들이 말세의 기승전결을 알려주는 황당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계시록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등장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잡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자색옷을 입은 바벨론의 창녀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모든 타락한 것들의 어미로 그려지고, 해와 달을 입은 여인은 광야에서 해산을 하고 용에게 쫓기다가,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피난처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피핀은 다른 책에서 요한 계시록이 여성 혐오주의로 가득 차 있다고 썼다. 그녀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선과 악의 대결로 점철된 요한 계시록에서 여성의 위치 또한 악녀와 선녀로 나눠진다. 바벨론의 창녀는 죽음 또한 참혹해서 그녀의 시체는 갈갈이 찢겨져 영원히 불타게 되고, 만국 백성들은 그 시체 위에서 기쁨에 넘쳐 축제를 벌인다. 반면에 선한 이미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해와 달을 입은 여인은, 실제로는 모호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그녀는 앞으로 위대한 지도자가 될 남자 아이를 출산하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가 있고 신의 보호를 받는다. 아이가 태어난 후, 광야로 사라진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녀가 예수가 지상에 건설한 천년왕국에 들어 갔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계시록에서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1440명은 이스라엘 열두지파에서 각각 차출된 남자들이니까. 해와 달을 입은 여인 뿐만 아니라, 예수의 천년왕국에, 그 후에 새로이 건설되는 새 예루살렘에 여자들도 있는지 조차 알 방법이 없다.
         바벨론의 창녀, 해와 달을 입은 여인, 하느님의 인치심을 받은 선택받은 남성들. 이들의 이야기들이 이상하리만치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가?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는 마치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인냥 바벨론의 창녀처럼 비난받는 여성들이 항상 존재하고, 아들들과 연인들은 전쟁터에 보내고 꿋꿋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자랑스러운 여인들이 있는가 하면, 감동의 전쟁 스토리를 보내오는 남성 군인들, 전쟁 영웅들이 있다. 여성학자 신시아 인로 (Cynthia Enloe)에 의하면, 전쟁을 결정하는 국제 정치의 무대와 함께 실제 전시상황이 되면, 사회 곳곳에 잠재해 있던 남성중심주의가 더 강화되는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전쟁과 같은 급박하고, 때론 위험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국제 정치의 장에서 이성적이며, 강인한 남성만큼 제격인 사람은 없다. 마치 요한 계시록의 하느님처럼 새로운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잔인한 전쟁도 불사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언제 질병의 나팔을 불지 (현대전에서 사용되는 생화학 무기 같은 것), 언제 융단 폭격을 가하고 원자 폭탄을 떨어뜨려 한 방에 전쟁을 끝낼지를 냉철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데, 남성 지도자만큼 제격인 사람을 찾긴 힘들 것이다. 이 전쟁 지도자에게는 목숨을 걸고 충성을 받칠 선택받은 1440명과 같은 남성군인들이 있어야 하고, 이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국가가 얼마나 정성을 다해 이들을 선택했느가를 끊임없이 각인시켜 주어야 한다.
         이 모든 전쟁 시나리오에서 여성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여성들은 그들이 어떤 남성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어 진다. 바벨론의 창녀는 역사적으로 소위말하는 적군의 여성들 (enemy women)이 어떻게 다루어 졌는지와 일맥상통한다. 현대전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여성을 철저히 성적 대상화하면서 가능해 진다. UN의 전시 성폭력에 대한 최근의 보고서 (UN Report on Sexual Violence in Conflict)에 의하면, 성폭력이 전술의 하나로 사용된지 너무 오래 되었다. 적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어 무기력하게 만들고자, 또는 남성 군인들을 하나로 묶고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전술적으로 사용된다. 오랜 동안 여성은, 출산과 양육이란 독특한 특성으로 인하여, 한 민족이나 나라의 땅과 문화와 동일시 되었고, 이러한 여성의 몸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것은 적군을 파괴하는 행위와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문제는 보코 하람이나 이슬람 국가 (IS)와 같은 종교 신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과격한 테러 단체가 전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이미 전쟁으로 사회 안전망이 파괴되어 버린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제주 4.3 학살 사건과 같은 국가의 조직적인 폭력이 일어났을 때,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공산당원의 가족이란 이유로, 공산당원으로 의심받는 가족의 구성원이란 이유로 많은 제주 여성들이 서북 청년 당원들, 육지 경찰, 군인들에게 강간당하거나, 그들과 강제 결혼을 당했다. 전쟁 중에 ‘우리편’에 속하지 않은 여성들은 (바벨론의 창녀와 같은) 위험한 여성들로, 전사들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여성들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여성들에게 합당한 벌은 강간하고 죽이는 것.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기뻐하는 것. 그들을 전쟁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이런 비이성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이 전쟁이란 상황에서 (종말이란 상황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제 성폭력은 여성과 소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들, 남성들을 가리지 않는다. 이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레즈비언 여성들을 대상으로 ‘치료를 위한 강간 (corrective rape)’ 범죄가 보고 되고 있고, 시리아와 이라크 분쟁지역과 난민촌에서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한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사회 부조리와 전쟁의 원인 제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들의 잘못으로 모든 일이 일어난 것처럼 이들을 성적으로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중이라도 살인에 대해 극도의 도덕적 저항감을 느끼는 인간 본연의 심리를 분석한 데이비드 그로스만 (Ltd. David Grossman)은 그의 책 ‘살생에 관하여 (On Killing)’에서 우리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 하면서도,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피하는 분야가 전쟁(살생)과 성(sex)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그의 책이 이 둘의 상관관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이 두 분야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전쟁과 성은 우리 인간 사회에 만연해 있지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며,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윤리적 행동을 생각해 보는 것을 어렵게 하는 분야이다. 그렇기에 폭력과 성은 마치 공포영화처럼 인간들을 짜릿하게 흥분시키면서도, 동시에 두렵게 만들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 하지만, 계속해서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밧모스 섬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환상을 보았던지 간에, 그 환상은 사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되고 기록되었을 것이다. 전쟁과 폭력, 자유 남성 계층의 무분별한 성적 유희, 여성-노예-소년들이 자유 성인 남성에게 성적으로 종속된 로마제국의 시대상과 사도 요한이 가지고 있던 가부장적 유대민족 독립운동사상이 맞물려 탄생한 책이 전쟁과 성폭력으로 얼룩진 요한 계시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시 성폭력이란 관점에서 요한 계시록을 바라보며, 나는 더이상 미래에 다가올 종말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지나온 역사가, 그리고 지금의 현실이 더 공포스럽다고 느껴졌다. 강제로 군위안부로 끌려가 이국 땅에서 일본군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하다가 죽어간 한국 소녀들, 미국 주둔군을 위한 성적 유희 제공자로 살다가 늙고, 병들고, 죽어간 기지촌 여성들, 전국민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린 304명의 단원고 학생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죽은 두살배기 팔레스타인 아기, 레즈비언이란 이유로 집단 강간당하고 머리에 총을 맞아 죽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살로네 등등. 이들의 이야기가 종말의 이야기이고, 가부장적 폭력으로 가득 찬 군사주의, 여성혐오주의, 동성애 혐오주의가 지구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묵시록적 증언이다.



<참고 문헌>
    Pippin, Tina and J. Michael Clark. “Revelation/Apocalypse.” In The Queer Bible Commentary. Edited by Deryn Guest, Robert E. Goss, Mona West, Thomas Bohache. London: SCM Press, 2006. Kindle Edition.
    Enloe, Cynthia. Bananas, Beaches, and Bases: Making Feminist Sense of International Politics, 2nd Edition.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4. Grossman, David. On Killing: The Psychological Cost of Learning Killing in War and Society, Revised Edition. Open Road Media, 2014. Kindle Edition.
    United Nations Office of the Special Representative of the Secretary-General for Sexual Violence in Conflict, “Key United Nations Initiatives to Address Conflict-Related Sexual Violence.” http://www.un.org/sexualviolenceinconflict/our-work/key-initiatives/
    오금숙. “4.3을 통해 바라본 여성인권 피해사례.” 제주 4.3 연구소 엮음.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제주 4.3 제 50주년 기념 제2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대회 보고서. 역사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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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일요일’, 우리 예배는 가능한가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책의 숭배자


나는 한 때 책에 대한 열렬한 숭배자였다. 책 읽기는 즐겁기도 했거니와 세상에 관한 온갖 비밀을 담고 있는 ‘지혜의 창’이기도 했다. 일상의 스케줄 잡기에서 항상 제일 첫 번째 관심은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 있었다. 틈만 나면 도서관과 서점을 뒤졌고, 국내외 전문지들을 훑으며 출판동향을 파악하려 애썼다.

둘째는 책 읽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이런 저런 일에 많이 분주했던 시절이라 독서 시간은 늘 부족했다. 해서 밥 먹을 때도 책을 보았고, 화장실에서도 책을 놓지 못했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일하던 시절, 시골 산속에서 건물도 없이 가건물에서 업무를 보던 때다. 화장실도 없어서 바깥에 재래식 변소를 만들어 임시로 사용하던 때 나는 매일 변소에서 한 시간 이상을 죽치고 앉아 책을 읽었다. 훗날 연구소 건물이 지어진 뒤 동료들은 그 사라진 화장실을 ‘김진호기념관 터’라고 농했다. 그 몇 년 전 신학대학원 다닐 때 나는 늘 지하철을 이용했다. 환승시스템이 없던 시절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려면 왕복 16정류장을 걸어 다녀야 했지만, 아무 때고 밝게 조명이 맞추어져 있고 흔들림도 덜한 1시간의 여정은 독서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책읽기 강박증은 목욕이나 샤워할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다. 내 서가에는 물속에 빠진 탓에 쭈글쭈글한 몰골을 한 책들이 있다. 목욕하다 물속에 빠뜨린 것이다. 흠뻑 젖은 책을 선풍기에 말리고 다림질까지 했지만 그 흔적을 다 지울 수는 없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 결과 ‘올빼미’의 삶이 시작되었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3년 반 동안, 동네 산책을 한 것이 단 두 번에 지나지 않았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로딩되는 동안 손발을 씻고 밥을 차리고, 밥 먹으면서 모디터를 바라보며 일했고, 심지어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그 3년 반 동안 누워 잠 잔 날이 거의 없다. 그렇게 잠 안 자고 한 것이 주로 독서였다.

독서광은 늘 자기 한계보다 넘치는 책을 갖고 싶어 한다. 책의 숭배자는 책의 수집광이기도 하다. 나의 책꽂이에는 먼지만 수북이 뒤집어 쓴 책들이 수없이 많다. 이미 있는지 모르고 또 다시 구입한 것도 여러 권이다. 

이런 내게 책은 세상이다. 혹여 그 책이 내가 사는 세상을 다룬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는 책 속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의 비밀을 읽어내려 했고 그렇게 얻은 지식이 곧 세상이라고 믿었다. 즉 책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 그 자체이고, 또 그 이상이다. 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가 담겨 있을 뿐 아니라, 그 세상의 부조리함이 교정된 유토피아적 세계를 향한 예언이 들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데 책의 숭배자가 되기 이전에도 나는 ‘책’의 숭배자였다. 여기서 작은 따음표를 붙여 말한 ‘책’은 성서다. 그때는 ‘성경’이라고 불렀다. 즉 ‘정전’(正典, 정통경전)으로서의 유일무이의 책이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정전이라는 말에는 ‘유일한 책’이라는 의미도 있고 ‘완전한 책’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근본주의적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 ‘책’의 유일성과 완전성을 ‘축자영감론’과 ‘성서무오론’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의 이면에는 ‘해석불가’라는 억견(dogma)이 뗄 수 없이 들러붙어 있다. 억견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독싸’(δοχα)는 근거를 전제하지 않고 강하게 제기하는 의견 같은 것을 뜻한다. 즉 성경은 이미 의미가 완벽하게 구축된 책이므로 누구도 임의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알다시피, 현실에서 이 말은 성서 해석권을 독점하는 존재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아무튼 성경의 숭배자였던 나에게서 이 책은 세상의 비밀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세상의 부조리함이 청산되는 새로운 세상에 관한 예언이 담긴 유일무이의 완전한 책이었다. 하여 고유명사로서의 ‘책’이든 집합명사로서의 ‘책들’이든, 그것들의 숭배자였던 때의 나에게는 동일한 인식이 두 시기를 꿰뚫고 있다. 책의 세계가 진정한 세계이며, 책 밖의 세계는 불완전하고 심지어 불온한 것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해서 세상을 알기 위해 반드시 책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1950년대, 두 명의 책의 숭배자 


그런데 나보다 더 열렬한 책의 숭배자였던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1950년대 한국 개신교의 절대적 존재로 부상했던 한경직 목사이고 다른 사람은 1956년 30세로 요절하기까지 슬픔과 참혹함과 아름다움이 뒤얽힌 한국적 아방가르드 문학을 이끈 시인 박인환이다. 요즘 내가 한참 1950년대 한국사회를 공부하고 있는 중에 만난 두 사람이었다. 

한경직 목사는 1945년 10월 남하한 직후부터 월남자 개신교 집단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1950년대에 그는 남한의 개신교 사회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1953년, 한국교회사에서 뼈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한경직의 프린스톤 신학대학 동창이자 그와 함께 한국 개신교의 중요한 지도자였고, 신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높은 존경을 받고 있던 김재준을 한국장로교회가 파문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 사건은 김재준 개인의 축출 사건을 넘어 그를 둘러싼 찬반 양 세력이 분열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대한예수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탄생의 슬픈 내력은 이랬다. 이때 김재준을 축출한 집단의 최고 지도자가 바로 한경직이었다. 

이 분열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월남자 기독교 세력을 축으로 하는 장로교의 주류집단이 신학생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던 김재준의 신학을 용납할 수 없었던 데 있었다. 특히 그의 성서관이 문제시되었다. 그것은, 간략히 말하면, 성서를 해석의 책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한경직 목사는 김재준 목사 파문 사건이 발생한 지 20여일만인 1953년 5월 17일 영락교회 청년회의 헌신예배 때 성서무오론과 축자영감설을 지지하는 듯한 설교를 하였다. 요컨대 그는 현대신학의 흐름과는 달리 성경이라는 단 한 권의 ‘책’의 숭배자임을 명백히 하였다. 결국 그것은 해석될 수 없는 완전한 것이라고...... 

당시 그의 설교들을 보면 그가 보는 세계는 매우 단순, 명료하다. 세계는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구획되어 있었고, 선한 편의 사람들이 악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 사역자로서 그의 설교의 주요 목적이었다. 이때 저 명백한 악의 편에는 공산주의자들, 이단종파들, 나아가 자유주의 신학 진영, 그리고 미국과 서양의 소비문화 등이 있었다.

1955년 5월 22일 영락교회 주일예배의 설교 제목은 ‘너희도 온전하라’였고, 성서 본문은 〈마태복음〉 5,48이었다. 이 구절은 이렇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여기서 그는 교인들에게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높은 도덕성과 경건함을 요청하고 있다. 하느님이 하느님답게 완전한 것처럼, 사람은 사람답게 완전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신자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시인 박인환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아방가르드적 모더니즘 작가였다. 그를 포함한 일단의 모더니즘 작가들은 대동아전쟁, 해방, 내전, 한국전쟁, 그리고 그 ‘전후’에 이르는, 하나하나의 무게도 감당할 수 없지만 그것이 짧은 시간 동안 첩첩이 쌓인 격동의 시간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청년이 된 이들이었다. 그들은 시대의 이야기꾼들이었다. 일단의 선배들이 그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과거 시간의 아름다움에 탐닉한 것과는 달리, 그이들은 자신들의 그 혹독한 시간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그것을, 그 체험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런데 글쟁이로서 그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자신이 겪고 있는 그 절박한 현실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언어인 일본어는 해방 이후 퇴출당한 언어였고, 한글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철저하게 붕괴되었다. 한글로 세계를 읽어낸 책도 없거니와, 그런 전대미문의 고통을 담아내고 개념화할만한 어휘도 없었다. 바로 이때 그들에게 시대의 이야기꾼이 될 수 있도록 어휘와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특히 영어로 된 책들이었으며, 그것을 번역한 일본어 책들이었다.  

그때는 한국전쟁 직후, 그러니까 서양의 구호품들과 함께 그이들의 문화와 학문이 함께 휘몰아치듯 유입되던 시기였다. 박인환을 포함한 작가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과 그 너머의 질서를 묘사할 글과 그 사상의 결핍에 직면해서 서양의 책들에 빠져든다. 그들에게는 그 속에 세계가, 세계의 표면 뒤의 비밀들이 들어 있었고 그 비밀이 내포한 세계의 위기를 넘어서는 비전들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보았다.


강원도 인제의 박인환문학관에 재현된 마리서사. 그 앞에 박인환이 그려진 입간판이 서 있다.


박인환은 그런 비판적 모더니즘 작가들 가운데 책에 대한 가장 열렬한 숭배자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45년 조선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그 해말 19세가 된 박인환이 성인으로서 했던 첫 번째 공적인 활동이 종로 낙원동에 ‘마리서사’(茉莉書舍)라는 20평 남짓한 서점을 구입한 것이다. 

이 서점에는 일본어와 영어로 된 세계문학전집이나 세계적 문인들의 시집과 소설, 화집 등이 꽂혀 있었다. 하여 이곳은 그가 세계를 읽는 지식의 창고가 되었고, 나아가 당대의 문인들을 비롯한 다양한 지식인들을 만나 한국사회의 현실과 비전을 이야기하는 담론의 장이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들이 공히 갖고 있던 어려움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담아낼 언어의 결핍이었는데, 이 서점에 비치된 서양 사상들을 담은 책들은 그이들에게 그런 결핍을 채워주는 생수가 되었다. 

그러나 3년 만에 마리서사는 경영난으로 폐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정보 습득의 기회가 되었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어에도 능통했던 그는 새로운 일터에서 당대의 최신 사상에 관한 정보들을 접하였고, 이런 외래사상들에 의존하면서, 책 밖의 세계를 책을 통해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책의 전령관이 되어갔다. 

하여 그의 시는 외래어들과 외국어들, 서양 사상의 관념적인 어휘들이 때로는 그것을 음역한 말로, 또 때로는 일본식 번역어들로 남발되어 있었다. 동시대의 또 다른 책벌레였지만 외래사상과 한국 현실 간의 긴장의 간극을 놓지 않으려 했던 동료 김수행은 이러한 박인환과 박인환 류의 시를 향해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일종의 ‘코스츔’에 지나지 않으며, 현실을 읽는 자기 사상의 성숙함을 담고 있지 못한 관념적인 유희에 지나지 않다고 혹평한다.


1955년의 일요일, 두 사람의 다른 시선


한데 한경직 목사가 ‘너희도 온전하라’라는 제목의 주일예배 설교를 했던 1955년, 그 해에 박인환이 발표한 시 〈영원한 일요일〉은 낯선 서구의 관념적 어휘들 대신 그의 시들에서 별로 볼 수 없었던 현장의 풍경이 언어로 고스란히 묘사되어 있는 것 같다. 현장을 묘사하기 위해 낯선 관념적 서양언어들을 화선지와 물감으로 삼아 그려내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그 현장에 관한 직설적 묘사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아마도 책의 관념적 어휘들 속에 함축된 서양의 일요일에 대한 풍경을 회상하기보다는 현장의 날선 관찰에 압도된, 그것을 직설하는 예언자의 시 같기도 하다. 

아래는 그의 〈영원한 일요일〉 전문이다. 


날개 없는 여신이 죽어버린 아침 / 나는 폭풍에 싸여 / 주검의 일요일을 올라간다. //

파란 의상을 감은 목사와 / 죽어가는 놈의 / 숨 가쁜 울음을 따라 / 비탈에서 절름거리며 오는 / 나의 형제들. //

절망과 자유로운 / 모든 것을 ......... //

싸늘한 교외의 사구(砂丘)[각주:1]에서 / 모진 소낙비에 으끄러지며 / 자라지 못하는 유용식물(有用植物). //

낡은 회귀의 공포와 함께 / 예절처럼 떠나 버리는 태양. //

수인(囚人)이여 / 지금은 희미한 철형(凸形)의 시간[각주:2] / 오늘은 일요일 / 너희들은 다행하게도 / 다음 날에의 / 비밀을 갖지 못했다. //

절름거리면 교회에 모인 사람과 / 수족이 완전함에도 불구하고 / 복음도 기도도 없이 / 떠나가는 사람과 //

상풍(傷風)[각주:3]된 사람들이여 / 영원한 일요일이여


이 시는 전쟁이 끝난 이후의 어느 일요일(어느 특정 일요일이라기보다는 전후, 그 무렵의 일요일들)의 삭막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시는 “날개 없는 여신이 죽어버린 아침”으로 시작한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날개 없는 여신’은 구원할 능력을 상실한 역사, 진보, 계몽, 이상, 복음 등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전후 어느 일요일의 아침은 그런 아침이었고, 그 일요일 아침에 그는 폭풍에 싸여 “일요일을 올라간다.” 여기에는 아마도 일요일 교회의 예배당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화자의 풍경이 연상된다. 한국문학 비평가인 고미숙이 한국 근대화의 형성기에 근대화의 세 성소가 목욕탕, 병원, 그리고 교회였다는 말처럼, 박인환에게도 교회는 구원의 성소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 계단을 오르는 그에게 일요일의 교회는 구원의 장소가 아니라 ‘주검의 일요일’이다. 산자들의 일요일, 살림의 일요일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일요일, 살림에 실패한 일요일이다.  

전쟁으로 몸과 정신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무수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고 있지만, 한경직 목사가 ‘목자 없는 양’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열거한 바 “38선으로 찢기고 6.25사변으로 쓰러진 한국의 대중들, 듣는 대로 10만 명의 고아, 30만의 찢긴 과부, 수없이 많은 눈 팔 다리가 없어진 상이군인들과 동포들, 가족은 분산되고 형제, 처자는 이산되고 올바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이 무리들”이, 전쟁의 태풍에 의해 ‘상풍 걸린’ 사람들이 구원의 장소 교회로 몰려오지만, 시인의 눈에 그들의 일요일은 주검의 일요일이다. 몸과 정신이 기억과 고통의 질병에 갇혀 버린 수인들은 일요일 교회에서 “다음 날에의 비밀을 갖지 못했다.” 여신이 죽어버린 아침에, 교회는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못하는 주검의 일요일이다. 하여 아픈 이들뿐 아니라 아프지 않은 이들도 그 일요일에 “복음도 기도도 없이” 교회를 나와야 했다. ‘영원한 일요일’이라고, 한경직 같은 이가 소리 높여 주장하는 그 날에 말이다.

같은 해 독서광인 두 사람, 한경직 목사와 박인환 시인의 눈에 비추인 교회는 이렇게 달랐다. 한 사람은 교회가 구원의 장소라는 확신에 차서 교회 밖의 사람들, 목자 잃은 양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차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전쟁의 외상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교회를 직시하고 있다.

한데 성경의 숭배자인 사람은, 앞에서 본 것처럼, 책(성경)이 말하는 진리, 유일하고 완벽한 그것에 대한 자의식에 넘쳐 있다. 하여 그 진리에 배치된다고 그가 판단한 다른 성서 해석들을 배제한다. 그에게 배제된 성서 해석의 하나는 이른바 자유주의적 성서해석이다. 이것은 서양 근대주의의 시각에서 보는 성서다. 이 해석을 대표하는 김재준은 성서에서 유일하고 완전한 책의 과신에 저항했다. 

한편 그가 배제한 또 다른 성서 해석은 이른바 이단들이다. 이때 그가 염두에 둔 것은 당시 불일 듯 일고 있는 은사집회 현상이었다. 차분히 성서를 낭송하는 사경회가 아니라 “손뼉을 친다든지 책상을 친다든지 발을 구른다든지” 하는 감정이 분출하는 집회들이다.(1955. 06. 19 설교. 제목 ‘신앙의 正路) 그런데 이런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질병치유다. 이에 대해 같은 설교에서 그는 말한다. “믿음으로 병 고치기 위해서 건강의 법칙과 모든 의약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건강의 법칙도 하나님이 내신 것이고 의약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일부러 기도로만 병을 고치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억지입니다.” 하여 그는 말한다. “안수하고 안수받는 이도 성경대로” 해야 올바르다고. 


1955년의 한강백사장에서 열린 천부교 박태선의 집회. 이런 은사주의 집회는 당시 전국곳곳에서 열렸다.


무엇이 그가 말한 성경대로일까. 한경직에 따르면 성경을 해석하는 근본 원칙은 성경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필경, 천부교의 박태선 같은, 자신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던 것을 염두에 둔 말 같지만, 그렇다고 은사집회 전체가 이 말로 부적절함이 입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감정이 분출하는 집회를 통해 질병의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물론 그는 병원을 짓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많은 외국의 지원을 받아낸 것이 사실이다. 해서 병원이 지어지고 약을 투약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은사라고 해석하는 것이 그에겐 마땅한 일이다. 문제는 박인환의 시처럼, 일요일에 무수한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지만 치료받을 수 있는 은사의 기회를 누리는 이는 절대소수에 지나지 않다. 그들에게 교회 예배는 주검의 일요일에 지나지 않다.

그때 무수한 은사집회가 전국 도처에서 일어났고, 구마사들이 열광적 집회를 통해 적지 않은 이들을 치유했다. 그 집회에는 전쟁으로 보건의료체계가 거의 무력화된 상황에서, 그나마 새롭게 건설된 의료시설을 이용할 기회를 못 누린 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대개 일자무식이었고, 정보에서도 철저히 소외된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구마사들이 다가가 치유의 손길을 펼쳤는데, 그들 중 다수가 기독교계 구마사들이었다. 

하지만 주류교회는 1950년대 중반경, 이런 이들을 정죄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표적인 구마사인 천부교의 박태선과 용문산 기도원의 나운몽이 개신교 교단 총회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되기 시작한 해가 바로 한경직이 이런 설교를 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 되었으며, 박인환이 〈영원한 일요일〉을 쓴 1955년이었다. 

어쩌면 한경직은 그가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묘사한 대중의 고통을 바라볼 때, 그의 눈에는 유일하고 완전한 책인 성경이 먼저 보였는지 모른다. 한데 그가 본 성경은 다른 해석들, 그 가능성들을 배제한 성경이다. 오직 자신의 생각이 투영된 성경만이 유일한 진리인 책이다. 해서 그는 고통의 해결책도 자신이 제시한 것 외에는 수용할 수 없었다. 결국 그가 생각한 해결책은 모든 이들이 교회로 몰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박인환은 그렇게 몰려드는 교회의 일요일을 ‘주검의 일요일’이라고 말한다. 그 날에는 복음도 없고 기도도 없다. 영원한 일요일을 주장하는 이들의 ‘영혼 없는 찬양’만 있을 뿐이다.


2014년의 12월의 일요일, 우리의 예배는 가능한가


안산, 안성, 강정, 성소수자들, 쪽방주민들,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장소, 많은 사람들이 신음 소리를 발하는 2014년의 한국. 교회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일요일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찬송이 끊이질 않는다.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를 선포하는 주님 오심의 메시지가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말이다. 한데 박인환의 〈영원한 일요일〉은 여전히 그날 교회를 향해 올라가는 길에 작은 돌이 되어 우리의 발길을 불편하게 한다. 


ⓒ 웹진 <제3시대>




  1. 사막에서 거센 모래바람으로 만들어진 작은 구릉을 말하는 것으로, 두 번째 연의 문맥에서 전쟁으로 모래언덕 같은 강토가 모조리 으스러져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현실을 시사하고 있는 것 같다. [본문으로]
  2. 볼록한 모양을 가리키는 일본어로, 평탄치 않은 고통의 시간을 뜻한다. [본문으로]
  3. 바람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질환을 가리키는 한의학 용어로, 전쟁으로 인해 상처입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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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적은 인간이 아닙니다

폭력과 비인간화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최근 미국 미주리 주의 퍼거슨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며, 저명한 흑인 학자 코넬 웨스트 (Cornell West)가 한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라크에서 하고 있는 일은 미국 내에서 흑인을 대하는 것과 똑같다. (Cornel West, Democracy Matters, 2005)” 코넬 웨스트는 이라크 전쟁 중 미군이 행한 민간인 학살과 전쟁 포로의 인권유린이 미국 내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는 흑인 청년들에 대한 조직적인 경찰 폭력, 사회적 편견 등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웨스트의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16세기 부터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흑인 노예 제도는,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당시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천부 인권론 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서구에서, 노예 매매제도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아이러니 입니다.  

            미국의 노예제도는 흑인을 철저히 비인간화 하며 지속되었습니다. 흑인 남성들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폭력적이며, 성욕과 같은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산다는 이념화 과정이 그것입니다. 비록 흑인 노예제도가 1865년 남북 전쟁과 함께 종료된 것처럼 보이지만, 해방된 흑인들은 그 후로 부터 100년 동안 짐 크로우 법 (Jim Crow Laws) 밑에서 인권을 유린 당하며 살았습니다. 짐 크로우 법은 공공 장소에서의 인종 분리 정책을 합법화한 법으로써, 이 법 아래에서 흑인들은 법정 증언도 할 수 없었고, 공정한 재판도 받을 수 없었으며, 백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어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노예 제도나 짐 크로우 법을 주류 기독교가 오랜 동안 지지했다는 사실은 역사상 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짐 크로우 법 시대에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나무에 매달아 죽인 사람들은 백인 기독교인들 이였습니다. 흑인 해방 신학자 제임스 콘은 린치 당하고 죽은 흑인이 매달린 나무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조직화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James Cone, The Cross and the Lynching Tree, 2011). 백인들의 기독교에 의해 철저한 인권 유린과 지속적인 국가 폭력을 경험하는 흑인들이 예수 안에서 자유함과 해방을 누리기 위해서는,  흑인 여성 신학자인 숀 코플랜드(Shawn Copeland)가 이야기하듯,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 그리고 정신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Shawn Copeland, Enfleshing Freedom, 2009). 그래서 흑인 해방 신학과 흑인 여성 신학은 백인 주류 신학이 이야기하는 전지 전능한 하느님이 아닌, 약자와 함께 고통 받는 하느님, 체제의 부조리와 약자를 비인간화 하는 사회구조에 끊임없이 대항하는 하느님, 공동체와 약자를 힐링하는 하느님을 이야기 합니다.

          미국 남부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에게 여섯발의 총을 쏘아서 숨지게 한 사건은,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 차별 주의가 어떻게 공권력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현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 벌리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과 군사 작전, 그리고 퍼거슨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차별, 폭력적인 공권력에 대항하는 폭력 시위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앞서서 이야기한 것 처럼, 인종 차별은 유색 인종을 비인간화 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오랜 동안 흑인들은 짐승 또는 ‘악(evil)’과 동일시 되면서 정복되어야할 백인들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실제로 유색인종에 대한 끊임없는 ‘타자화’와 ‘비인간화’의 연속입니다. 미국의 원주민 학자이며 사회 운동가인 안드레아 스미스 (Andrea Smith)의 책 ‘정복 Conquest’은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어떻게 정착 초기부터 미대륙의 원주민들을 타자화 하고, 철저히 비인간화 시키면서 그들의 땅과 문화를 파괴해 갔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미국의 부와 권력은 수많은 원주민들의 죽음과 흑인 노예들의 죽음 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소리 없는 죽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대륙의 원주민들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당시 유럽의 여성 혐오주의에 바탕을 둔 가부장제와 달리 여성의 정치적 의사 결정권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옷 차림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화 되고 비인간화 되었습니다. 비인간화된 원주민들을 살육하는 것은 동물을 사냥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또한 공동 소유의 원칙을 실천하는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빼앗아 사유 재산화 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동식물과 약품에 관한 다양한 지식도 사유화 하는데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성폭력과 함께 여성들을 대상으로한 피임약과 같은 약물 실험도 원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사회 폭력이였습니다. (Andrea Smith, Conquest, 2005)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중에도 적으로 간주된 한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은 타자화와 비인간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한국 전쟁 중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 (노근리 사건, 거창 학살 사건, 포항 피난민 학살 사건 등)과 베트남 전쟁 초기 부터 일어난 민간인 학살 (마이 라이 마을 학살 사건, 네이팜탄 사용 등)은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단순히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 한 데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미 북한군들과 베트콩의 게릴라 전술은 문명화된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미개인들이 사용하는 군사 전략과 전술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러한 미개인들과 똑같은 외모와 언어를 가진 남한 사람들, 월남 사람들은 적군과 비슷한 이들이거나, 또는 자기 방어 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간주되었습니다. 타자화된 동양인들의 생존은 미군의 자비심에 달려 있었습니다. 한편 개개인으로써의 미국 군인들은 끊임없이 왜 자신들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이국 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지를 물어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적군을 얼마 만큼 성공적으로 타자화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적군이 나와 다른 (또는 주류 사회와 다른) 성별, 인종, 언어, 종교, 문화 등을 가지고 있다면 타자화와 비인간화는 쉬워집니다. 만약 군인들이 적군을 그들과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보기 시작하면, 적군을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게 됩니다. 성공적인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군인들로 하여금 적군을 증오하도록 만들고, 타자를 끊임없이 구별해 내며, 적군을 비인간화하는 정신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정신 훈련은 군인들이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육체를 끊이 없이 정신에 복종시키는 작업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정신’이 ‘적’이라고 판단된 것을 보면 즉각적으로 ‘몸’이 반응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반사 신경’을 기르는 것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나 심각한 도덕성 장애(Moral Injury)로 일상 생활이 힘든 참전 군인들 대부분은, 군사 작전 중 전쟁과는 상관없는 민간인들의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거나, 적군에 대한 감정이입을 경험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처럼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끼며, 지켜야할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미국의 군사작전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군사작전의 일부분이란 사실이 감당하기 힘든 양심의 가책 또는 정신적 혼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은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에 양심적 가책을 느끼기 때문에, 소시오 패스나 사이코 패스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군인들은 전쟁 중이였다 하더라도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미국도 그러하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폭력성을 보면, 한국이 전쟁터 같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폭력까지 사용하는 왕따 문제,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각양 각색의 성범죄들, 외국인들 대상으로한 차별과 폭력, 장애인이나 노인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 감정 노동자들을 상대로한 무분별한 언어 폭력과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 골수 우익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무분별한 이념 전쟁까지…… 이 모든 종류의 폭력은 희생자를 나와 동일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타자화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타자화와 비인간화가 만연된 사회에서 물리적 전쟁이 일어나면, 비 전시 상황에서 타자화의 대상이 되었던 약자들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한국 전쟁 발발 시기에 보도 연맹원 학살이나, 서북 청년당이 ‘빨갱이들’과 그 가족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철저한 타자화와 비인간화가 이루어졌었기 때문입니다. 

           타자화와 비인간화는 반 기독교적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의 근간에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거룩한 존재이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 그 삶, 특히 사회가 죄인이라 낙인 찍힌 사람들과 연대한 삶을 지금의 교회들이 그리고 내가 살아 가고 있는지 묵상하는 대림절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에 대한 저항은 타자화와 비인간화에 대한 저항과 일맥상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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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말랄라”와 노벨평화상


조민아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교수)

 


열 여섯살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 

파키스탄의 스와트 계곡에서 살던  말랄라는 2009년 열 한살의 나이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의 여성 탄압과 교육권 박탈을 비판하는 글을 BBC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파키스탄 정부군과 탈레반의 전투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잃지 않았다. 2012년에는 무장괴한의 습격을 받아 머리와 목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전세계인들을 향한 말랄라의 메시지는 오히려 더 힘차고 단호해졌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극단주의자들은 책과 펜을 두려워 한다. 교육은 그들을 겁먹게 한다.” 말랄라의 말이다. 이 멋진 여성이 201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나는 말랄라의 수상 소식이 불편했다. 그녀의 용기와 업적이 찬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다. 여성교육권을 위한 그녀의 신념은 더 널리 알려져야 하고, 더 많은 이들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그녀에게 상을 수여하는 손길들이다. “그들”은 과연 말랄라에게 “평화상”을 내릴 자격이 있는가? 


노벨평화상이 “평화상”으로서의 공신력을 의심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다각적인 후보 추천과 심사과정을 거치지만, 평화상 수상자를 최종 결정하는 이들은 노르웨이 국회가 임명하는 5명의 위원들이다. 중립을 최대한 유지한다고는 해도 국제정치의 알력과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노르웨이는 미국과 정치적, 경제적 협력관계를 돈독하게 맺고 있는 대표적인 우방 국가이다.  국방 장비와 방위력에 있어서 미국에 적지 않은 의존을 하고 있는 노르웨이로서는 선정 과정과 심사에 끼치는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다. 


역대 가장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던 수상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외교관 헨리 키신저이다(1973년 수상).  그는 베트남전 당시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베트콩 사이 협상을 주도하여 평화조약을 맺게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정작 협상을 주도한 미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공산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전대미문의 학살전을 벌여 수백만명의 생명을 살상한 전쟁의 주범이다. 맹폭과 민간인 학살, 고엽제 살포 등 미국이 벌인 전쟁범죄는 키신저가 평화상을 수상했던 그 당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은 전쟁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해 키신저와 공동 수상자로 지명된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레득토(黎德壽, 여덕수)는 수상을 거부했다.  


노벨 평화상 논란이 정점을 찍은 것은 버락 오바마에게 상이 수여된 2009년이었다. 오바마는 “국제외교와 다자간 대화,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지, 또 핵무기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치적 태도(공로나 업적도 아니고)”를 인정 받아 대통령직에 오른지 불과 1년이 되기도 전에 평화상을 수상했다. 수많은 평자들이 수상 선정 이면에 작용했던 미국의 영향력을 짚어 내며 노벨 위원회가 자충수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화를 향한 의지가 돋보였다던 오바마는 이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소말리아, 리비아,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에까지 무차별 공습을 퍼부으며 무려 7번이나 전쟁을 감행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던 이전의 형태에서 벗어나  “이슬람주의 세력”의 주요 활동지역을 타겟 삼아 미국을 위시로 다국적 국가들이 참여하여 전격 소탕작전을 벌이는 형태의 전쟁을 제안하여 중동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기도 했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노벨 평화상을, 말랄라가 수상했다. 말랄라의 고향 파키스탄에서의 반응은 엇갈린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를 비롯한 정부 각료들은 말랄라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축사를 보냈지만, 파키스탄 언론들은 수상 소식을 전달하는데 미온적이었다. 가장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이들은 물론 탈레반 강경세력들이지만, 탈레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파키스탄인들 또한 말랄라의 수상 소식이 마냥 자랑스럽지는 않은 듯이 보인다. 대표적인 이유는 파키스탄에 넓게 퍼져 있는 서구에 대한, 특히 미국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1950년대 이후부터 미국과 우방 관계를 맺고 경제적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두 국가의 관계는 조지 부시 전 미대통령이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엇갈리기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의 성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두 국가가 서로 다른 의견을 갖게 된 것이다. 파키스탄 집권세력이 지속적으로 친미 성향을 유지한데 반해, 민중들은 미국 정부와 파키스탄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싸움터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실제로 지난 10여년 간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으로 야기된 일련의 폭력 사태들로 희생된 파키스탄인은 3만명에 이른다. 그중 거의 삼분의 일이 자국 군인의 손에 죽었다. 파키스탄인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내전을 겪으며 삶을 파괴당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오점을 남겼다. 파키스탄의 주권을 무시하고 이 나라 북서부에 지상군과 무인기(드론 Drone)를 투입하여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한 것이다 (“Will I be next?’ US drone strikes in Pakistan,” Amnesty International USA Report, 2013년 10월). “해당지역의 급격한 탈레반화”를 막고 “탈레반 무장세력 소탕”을 목적으로 한다는 미국의 드론 공습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정세를 감안한다면, 이번 수상 결정에 미국의 입김, 특히 “이슬람 세력의 이미지를 악화하여 중동지역에 대한 서구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말한 일부 파키스탄 언론 (“The antagonism towards Malala in Pakistan,” BBC News, 2014년 10월 10일)의 지적을 그저 과장된 음모론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다.  파키스탄인들이 갖고 있는 불편한 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말랄라에 대한 서구의 태도이다. 알다시피, 미국과 유럽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탈레반의 폭력을 거부해 온 이 젊은 여성에게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서구 언론은 “말랄라와 같은 착한 파키스탄인”들과 “이슬람주의에 경도된 나쁜 파키스탄인”들을 분리하는 수사들을 끊임없이 사용해 왔다. 그들은 말랄라가 어떻게 “악의 세력”에 맞서 싸워 왔는지를 영웅담으로 만들어 퍼뜨려왔고, “사악한 이슬람주의자들”의 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말랄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우월한 의학기술을 총동원했고, “무장괴한으로부터 언제 또 습격을 당할지 모를”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든든한 경호원 역할을 자처해 왔으며, “위험하고 가난한 고향”에서 이루지 못한 그녀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마치 이런 “인재를 썩히고 방치하고 있었냐”고 핀잔이라도 주듯 각종 국제 회의의 연사로 초청해 그녀의 얼굴에 스포트라이트를 터뜨리고 있다. 


이 이야기 구도,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무지와 폭력의 미개한 세상에서 고통 받는 원주민 소녀를 구해내는 백인들”의 이야기. 여러가지 모양새로 각색되어 디즈니 만화에도 자주 등장해 온 진부한 멜로 드라마.  탈식민 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은 그 낡은 서사. 찬드라 모한티(Chandra T. Mohanty)의 논문 “Under Western Eyes: Feminist Scholarship and Colonial Discourse”는 이러한 이야기 구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심층 분석한다. 


모한티는 “제 3세계”—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여성들을 “가부장제의 희생자들”로 일반화하여 묘사하고, 반대로 이 지역의 남성들을 “가부장적 폭력 구조를 지속,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묘사하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구를  “이미 해방된 주체들, 선진화한 조력자들”로 묘사하는 서구의 접근방식에 문제점이 많다고 비판한다. 모한티에 의하면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해방의 주체가 되어야 할 여성들이 속해 있는 지역의 역사적 상황과 정치사회적 갈등을 단순화할 뿐 아니라, “우리(서구)”와 “저들(제3세계 여성)”을 구분하여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저들”을 “우리”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로 전형화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도는 “제 3세계” 여성이 “희생자”의 위치를 벗어나는 순간 자동적으로 “억압자들과 한편”이 되거나 혹은 “서구인들과 한편”이 되는 것처럼 조장하여, 지역공동체들 내의 반목을 양산하고 연대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모한티의 주장은 말랄라가 파키스탄인들에게  “서구의 꼭둑각시”로 이해되어 비난 받고 있는 까닭을 잘 설명한다. 여성교육을 향한 말랄라의 신념이 그녀의 고향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되기도 전에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이분법의 도식에 갇혀 버리고 만것이다. 


말랄라의 메세지가 “억압받는 제 3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닿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서구의 언론들은 정작 말랄라가 부딪히고 있는 갈등과 오해를 해소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어느 블로거가 토로한 것 처럼, 서구 언론들은 말랄라를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에만 전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말랄라의 확고한 신념과 용기가 사실 그녀의 깊은 이슬람 신앙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의 아젠다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2006년, 말랄라의 고향에서 또래의 소녀가 다섯 명의 미군들에게 강간 살해 당했다는 사실은 가능한 빨리 잊고 싶어한다(Why I can’t celebrate Malala’s Nobel Prize: http://middleeastrevised.com/2014/10/11/why-i-cant-celebrate-malalas-nobel-peace-prize/). 영국의 평론가 조지 갤러웨이(George Galloway)는 서구 언론들의 양면성을 비꼬며 “만약 말랄라가 드론 공습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영국언론들은 그녀의 이름조차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트위터를 날렸다. 냉소적이긴 해도, 갤러웨이의 지적은 옳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열여섯살 당차고 현명하고 꿈많은 여성 말랄라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녀가 가진 강고한 용기과 여성교육에 대한 열정을 우리는 오래 오래 찬사하고, 그녀의 말들을 가슴에 간직해야 한다. 그러나 말랄라의 신념과 열정을 기억하기 위해 그녀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사실까지 덧붙여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없다. 거부하지 않고 받았으니, 그녀의 선택이었겠거니 존중하면 된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말랄라는 노벨평화상이라는 별로 돋보이지 않는 경력을 갖고 있는 말랄라가 아니다. 열한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과 고향땅 친구들의 꿈을 위해 목숨을 걸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말랄라, 탈레반 뿐 아니라 서구의 위압적인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밝힐 줄 아는 말랄라, 수상 이후 버락 오바마를 만나 “드론 공격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파키스탄 민중을 분노하게 한다”고 말한 말랄라,  “드론 대신 책을 보내달라”고 미국인들에게 호소한 말랄라 (MSNBC Interview, http://www.msnbc.com/ronan-farrow/watch/exclusive-ronan-speaks-with-malala-yousafzai-346760259967),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교 재건을 위해 5만달러를 기부한 말랄라. 이 벅차게 아름다운 여성 말랄라를,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지도자인 그녀가 어떻게 더 깊어가는지, 어떻게 더 성숙해가는지, 고통 속에도 꿈을 잃지 않는 세상 곳곳의 말랄라들과 어떻게 연대하는지, 나는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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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ateral Damage: 부수적 피해

‘부수적 피해’가 ‘부수적’이지 않은 이유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Collateral Damage는 군사용어입니다. 보통 한국어로는 ‘부수적 피해’라고 번역이 됩니다. 한국어로 쓴 ‘부수적 피해’는 Collateral Damage의 아이러니를 너무나도 잘 표현해 줍니다. 왜냐하면 ‘부수적’이라는 용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 중 일어나는 민간인의 죽음과 사회 기관 시설 파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군사용어로써 Collateral Damage는 전쟁 중 일어나는 ‘의도’하지 않은 피해로써, 주로 적군의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하거나 적군을 공격할 때 일어난 민간인 피해를 일컫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 중 일어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남성) 군인을 상대하는 전시 매춘업, 또는 강요된 매춘 등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Collateral Damage는 그 범위가 넓고, 피해 양상 또한 다양합니다. 또한 ‘의도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군사 작전의 목표물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실제적으로 민간인들 시설에 대해 공격 ‘의도’가 있었느냐를 판단하기는 힘듭니다.  

            Collateral Damage의 아이러니는 현대전에서 민간인의 피해가 전쟁 피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전쟁 중 사망하는 민간인의 수가 군인 전사자의 수를 넘기 일쑤이고, 1990년대 이 후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 여성들이 성폭력을 경험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보면서, 다시 한 번 Collateral Damage란 표현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반기독교적이며, 심지어 무책임한가를 생각해 봅니다. 

            CNN에 의하면2014년 8월 6일 현재,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800명을 넘어섰으며, 부상자들 또한 10,000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이 국제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이유는, 사상자들의 대부분이 민간인들이고, 이 민간인들의 대부분이 집 안이나 학교에 있던 여성들과 어린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테러집단으로 규정된 하마스(Hamas)의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서 군사 공격을 한 것이며, 이 군사 시설들이 민간인 집단 거주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가지 윤리적 질문에 맞닿게 됩니다. 하마스의 군사 시설과 땅굴을 공격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민간인 사살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과 민간인 거주 지역에 군사 시설을 설치한 하마스. 둘 중 어느 집단이 윤리적으로 더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이 민간인들을 공격을 할 때마다, 어린이들의 시체를 언론에 공개하는 하마스의 행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 정책과 팔레스타인 점령이 하마스와 같은 무력 저항 단체를 만든 원인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로켓 공격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군인들의 죽음과 부상은 민간인들의 피해와 비교해 볼 때, 윤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를 정당화할 수 있다면 그 윤리적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들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전쟁의 장기화를 피하기 위해서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대량 살상 무기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사용한 원자 폭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필연적으로 ‘부수적 피해’를 야기합니다. 원자 폭탄 투하로 미국은 일본의 항복에 마르지 않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지만, 사상자들의 대부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시민들이였고, 원자 폭탄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를 이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을 단기 간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어난 파괴 행위는 모두 ‘부수적인 피해’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또한 아이언 돔의 사용을 정당화 하였으며, 최근 미국에서 탄력을 받고 있는 드론으로 알려진 무인 폭격기와 정찰기 사용 또한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피해를 ‘부수적 피해’로 용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가이드 라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협정이나 현대화된 ‘정의로운 전쟁’이론,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 입장은 전쟁 중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의 살상을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전은 안타깝게도 무장 군인과 민간인의 구별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더구나 게릴라전과 민간인을 동원한 폭탄 테러는 적국의 민간인을 모두 불시에 공격가능한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민간인 피해를 ‘부수적 피해’로 규정하거나, 비윤리적 행위로 지탄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Collateral Damage를 최선을 다해서 줄여야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당연한 과제입니다. 결국 전쟁은 ‘죽임’의 행위입니다.  승전은 살육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합니다. 적국에 속한 군인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명제가 암암리에 전쟁 논리에 숨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이야기할 때, ‘죽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보도하는 대다수의 미디어에서도 민간인의 피해를 이야기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 죽고 다치는 사람들과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기는 하지만 죽음의 잔인성과 고통, 전쟁의 실제를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혹자는 아무리 잔인한 전쟁 영화도 전쟁의 맨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고 합니다. 시체 썩는 냄새, 조각나서 여기저기 흩어진 몸. 불에 탄 시체의 냄새는 어떠한 영화나 사진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수적 피해’는 타인의 (고통스러운) 죽음과 남은 자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고통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죽음은 결코 ‘부수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부수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전쟁 윤리 중 가장 오랜 전통의 하나인 비폭력 평화주의 (pacifism)은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라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모든 인간들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은 그 근본이 거룩합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거룩함은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힘, 고통받는 생명을 자비로 끌어 안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도로테 죌레는 기독교 영성 전통 중에 하나로 ‘타생명이 겪는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죌레에 의하면 예수의 고통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하여 인간의 고통과 분리시키고, 고통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 하도록 하는 기독교는 오히려 폭력을 묵인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격화된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몸이 폭력에 의해 야기되는 고통을 인간의 역사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형벌을 가능케 한 조직적인 폭력을 보지 못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고통, 특히 전쟁 중 겪는 고통을 끌어 안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쟁을 조장하고, 약자의 고통을 묵인하는 사회 구조에 대해 ‘NO’라고 저항할 수 있는 용기, Collateral Damage를 간과하지 않는 용기 말입니다. 수도원 전통에 기초한 영성 운동은, 고통에 감상적으로 접근하여 벗어나려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의 근원에 직면하고,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기 위한 용기를 내재화 하는 행위입니다. ‘부수적 피해’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독교 영성 운동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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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로 가자

: 무감 무통의 인간들과 아이리스 머덕(Iris Murdoch)의 도덕적 자아

조민아

(세인트캐서린 대학 조교수)

 

왜 아파할 줄 모르는가

경악스러웠던 것은 사실 평범해 보이는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4월 16일 그 날 이후 정지된 시간 속에 그저 나날이 반복 되고 있는 이 참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주범들이야, 서로 서로 추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지들도 살려고 저렇게 금수만도 못한 짓들을 하고 있다고 치자. 그러나 저 아무럴 것 없어 보이는, 집 앞에서 마주쳤으면 인사라도 나눴을 이웃들의 입에서 (혹은 손가락에서) 304명의 자식들을 잃은 가련한 부모들을 향해 상상하기도 힘든 폭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뿐이랴, 그들의 얼굴은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 움막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었던 할매들의 주름진 몸을 난폭하게 끌어 낸 후 승리의 브이를 올리며 단체 사진을 찍었던 경찰들과도 겹친다. 멀리는 수천의 무고한 생명들에게 내리치는 폭격을 스포츠 관람하듯 도시락을 싸들고 구경 하고 있는 가자지구 이스라엘인들의 얼굴과도 닮았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할까. 왜 그들은, 자신의 손가락에 박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에 아픔을 느낄 줄은 알면서 자신들의 생명과 똑같은 가치를 가진 생명들의 몸에 미사일 파편이 박혀 죽어 나가는데는 아무 느낌이 없는가.

그들의 냉정함과 무례함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모두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일까? 아니다. 그들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애틋하고 정성이 지극한 부모이며 자식이고 친구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기에 궁금하다. 왜 그들은 자신들 삶의 테두리를 벗어난 이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저리도 무감한가? 왜 누군가에게는 타인의 고통이 조롱거리이거나 경멸의 대상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는—그냥 지나칠 수 없는 통증이며 상처인가? 왜 누군가는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흔들림 없이 뻔뻔하고, 누군가는 뻔뻔한 그의 수치심까지도 떠맡아 괴로워하며 인간의 양면성에 치를 떠는가? 


아이리스 머덕(Iris Murdoch, 1919-1999)의 도덕적 자아

아일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아이리스 머덕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그들과 우리는 단순히 다른 정보와 견해를 선택하여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과 우리는 세상 자체를 달리 보기 때문에 다른 것이다” (Murdoch, “Vision and Choice in Morality,” 82).  즉,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또는 선함(the Good)의 기준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머덕의 주장을 좀더 풀어 보자. 타인의 고통에 대해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즈음의 현실이 잘 보여주듯,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서, 또 선하고 바른 것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보편적인” 기준에 동의한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도덕은 개개인이 갖고 있는 복잡하고도 모호한 상황의 차이를 반영할 수 없기에, 삶과 분리되어 존재한다면 공허한 껍데기로 남을 뿐이다. 그러므로 근대 철학에서 흔히 강조하는 “도덕적 원칙에 대한 선험적인 체득”과, 그 “원칙을 선택하는 도덕적 주체의 의지” 프레임으로 인간의 다양한 도덕적 인식과 행위를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머덕에 의하면,  도덕적 원칙과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도덕적 비전 (moral vision)이다. 선한 목적이 선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 봐야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행위는 “공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선하게 하는 원칙과 규범들을 천명하고 기술하는 데서 벗어나,  또 나와 이해 관계를 주고 받는 삶의 반경을 넘어, 다른 이들의 삶을 보고 느낄 때 비로소 내가 알고 있는 “선함”에 관한 원칙과 규범들은 얼굴을 갖는다. 그리고 우리는 경험으로 알게 된 그 구체적인 얼굴들에 기반하여 각자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나름의 지식을 쌓아간다. 이 지식은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들을 도덕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본적인 자료가 된다. 물론 자료는 확장하고 변화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인간을 선하게 하는 본질적 요소라면, 공감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혼자 만의 세상에 사로 잡혀있는 자아이다. 고립된 자아는 끝없이 불안하다.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것들을 지키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꾸만 자꾸만 안으로 숨어 들어 견고한 성을 쌓는다. 이러한 이기적인 자아를 가진 인간에겐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그 자아가 타인들로 향하는 시선을 가로막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왜곡하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 (Hannah Ardent)가 저 유명한  나치 전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보며 남겼던 글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아렌트는 평범한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이유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아이히만을 에워 싼 불통의 벽은 그를 다른 이들의 말과 생각과 현존으로 부터 분리시켰다. 결국 그는 수많은 학살을 자행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머덕 또한,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을 거부하고 자아에 갇혀 있을 때 인간은 세상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끝내는 사랑할 능력을 잃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타인과 함께 할 때, 타인의 삶을 자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만 비로소 선한 지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머덕의 말을 빌자면,  “인간은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한 첫번 째 조건은 자기 삶의 반경 너머를 보기, 그리고 아집에 사로잡힌 자아를 탈출하기이다. 머덕은 이를  “자아 벗기 (unselfing)” 라는 말로 표현했다. 자아를 벗는 것은 부단한 훈련을 요구한다. 반복적인 행위와 습관으로 자신을 잊는 연습을 해야 한다. 머덕은 주시(attention)를 훈련의 필수 항목으로 제시한다. 인내심을 갖고 겸손하게 사물과 사람을 응시할 때, 혹은 예술 작품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길 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다른 숨결들을 비로소 발견하고 잔뜩 부풀어 있는 자아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나 외에 다른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생명이 살아 있는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를 찾기 시작한다 (Murdoch, “The Sovereignty of Good Over Other Concepts,” 375).  그러므로, 머덕에게 있어서 도덕적 인식과 미학적 지각 (aesthetic perception)은 서로 통한다. 영화 <타인의삶 (Das Leben der Anderen)>에서 드라이만이 연주하는 “선한사람들을 위한 소나타”를 들으며 전율하던 비즐러를 기억하는가. 냉혈한이었던 그, 자기 세상의 원칙과 규범에 갇혀 살던 비즐러의 단단한 자아를 벗기고 세상으로 끌어 당긴 그 위대한 예술의 힘 말이다. 아름다움에 반응할 줄 아는 인간과 선한 인간은 흔들릴 줄 아는 인간들이다. 흔들리다 흔들리다 결국 자기를 내려 놓을 줄 아는 인간들이다.  

타인의 삶에 공명함, 그리고 그를 향해 나의 자아를 던짐. 머덕에게는 이것이 덕(virtue)이다. 따라서 그들과 함께 나를 나누고 그들로 인해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이 곧 도덕적인 비전을 갖게 되는 길이며 선해지는 길이다.  그러나 도덕적 자아는 금욕적인 자아가 아니다. 거북함과 불쾌함을 무릅쓰고 타인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성정 자체가 부드럽고 여리게, 남들과 공명하는 성정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물론 하루 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한 눈과 의식으로 세상과 타인을 주시하고자 반복적으로 노력할 때, 자기 중심성을 작동하게 하는 메카니즘은 깨지고 자신을 향하던 에너지는 방향을 바꾼다. 마침내 시선은 밖으로 향하고, 사랑도 밖으로 흐른다. 그러기에 타인이 고통으로 몸부림 칠 때 내 살이 베어져 나가듯 아픈 것이다. 그러기에 타인이 기쁘고 행복할 때 내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지는 것이다.


사람에게로 가자

세월호 가족들 앞의 무례한 그들. 밀양과 가자지구의 후안무치들. 그들이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 다르다.  어쩌면  그들은 피를 나눈 가족과 이해를 나누는  주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자신의 작은 세상을  벗어나 본적이 없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타인들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고, 절절한 가슴을 맞대어 본 경험이 없었을지 모른다. 단 한번 다른 이들의 부름에 흔들려 본적 없을, 단 한번 더불어 사는 삶의 뜨거움에 설레어 본적이 없을 그들은 어쩌면 미워해야 할 존재라기 보다 연민을 느껴야 할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욱한 나는 아직 훈련이 덜 되어 그들에게까지 나누어 줄 연민이 없다.  언젠간 그들에게도 비즐러가 경험한 것과 같은 은총의 순간이 다가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자식이 죽어봐야 알지,” 라는 말을 돌리고 싶지는 않다. 내자식이 죽어야만 남의 자식이 죽은 심정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죽은 아이들이 내 아이처럼 느껴지는 세상, 자식 잃은 부모들이 내 식구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희망을 건다.  

그리고 그 희망을 지켜 나가기 위해 나와 내 공동체를 점검한다. 비통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국회 앞에서, 광화문에서, 용산에서, 밀양에서, 청도에서, 강정에서, 4대강에서. 우리는 많이 울었고, 지금도 울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 울었는가? 지금 이 순간도 홀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가슴을 친다.  초단위로 정보가 업데이트 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마치 고통의 소우주같다. 수천의 사람들이 거기서 분노하고 옷을 찢고 후회하지만 정작 오프라인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적다.  SNS를 통해 소리만 요란하게 퍼다 날라지는 정보들은 감정을 극대화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인 행동이 될 가능성은 적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사람에게로 가자. 나 하나 무슨 도움이 되랴 컴퓨터 앞에 주저 앉아 혼자 울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행동을 하자. 일인 시위 피켓을 들던, 광화문에서 가족들을 지키던, 기다림의 버스를 타던, 봉사를 하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말이다. 점점 추상적이 되어 가고 있는 이 고통에 사람의 얼굴과 사람의 체온을 더하자. 사람이 없다면, 고통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사람을 통해 확인하지 않는다면 공감 또한 값싼 로맨스에 불과하다. 사람을 잃어 버린다면, 우리도 냉정하고 무례한 저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저들과 다른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 문헌: Iris Murdock, “Vision and Choice in Morality” and “The Sovereignty of Good Over Other Concepts” in Existentialists and Mystics: Writings on Philosophy and Literature, edited by Peter Conradi (NY: Penguin Books,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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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tium
    2014.08.09 1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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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찰이 담긴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통을 겪어본 자가 반드시 타인의 고통에 더 민감해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최근 댓글 중에 "내 자식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아무도 내게 와 위로해주지 않았다. 근데 유가족들은 왜 이리 난리냐"라며 독한 언설을 쏟아내는 글을 보았습니다. 때로 고통이 일상에 균열을 내고 자기중심성을 깨뜨리는 자기 초월의 계기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 계기를 선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없다면 고통도 우상이 된다'는 말씀이 깊게 다가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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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상처를 치유하기

- 회복적 정의와 인간 안보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지난 2012년 미국 인디애나주의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신학과 평화학을 가르치는 다니엘 필폿(Daniel Philpott) 교수는 “정의로운 평화와 부정의한 평화(Just and Unjust Peace: An Ethic of Political Reconcili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2)”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전통에서 발견되는 평화와 상생의 윤리를 재발견한 이 책은, 물리적 전쟁이나 무력 충돌이 끝난 후, 어떻게 살아남은 자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쟁의 끝은 정전 선언이 아니라, 포스트 전쟁 국가(post-war country)가 ‘정의’에 기반하여 평화와 사회 통합을 이루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의로운 평화, 용서와 화해에 기반한 사회 통합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력 충돌로 야기된 ‘정치적 상처(political wounds)’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해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가족의 죽음, 인권 탄압과 가해자를 향한 증오감을 치유하지 않는 한 사회 통합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필폿이 말하는 정의는 징벌이나 보복적 개념으로써의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개념의 정의(restorative justice)입니다. 회복은 사회 구성원 간의 관계, 국가와 국민과의 관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남성과 여성 구성원 간의 올바른 관계(right relationship)를 말합니다. 이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정의의 개념인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 이웃간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관계 회복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힘을 가진 집단이 사회 통합이란 미명하에 피해자 집단에게 용서를 강요하거나, 과거를 무조건 덮으려고 하는 행위만큼  올바른 관계를 위협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필폿이 이야기하는 부정의한 평화입니다. 부정의한 평화로 어정쩡하게 통합된 사회는 언제든 사회 집단 사이의 무력 충돌이나, 국가의 무자비한 인권 탄압이 발생할 수 있는 시한 폭탄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정치적 상처를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종교 집단과 사회 집단, 정치 집단들이 이 상처를 조직적으로 무시하고, 사회 통합과 용서 또는 금전적 피해 보상만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사회는 위기 관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불신은 커져만 간 것 같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정의로운 평화를 강조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학자들은 국가 안보가 아니라, ‘인간 안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국제 정치학에서는 국가의 존립에 초점을 맞추어 평화와 안보를 이야기하면서,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을 하위에 두었습니다.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국민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반해 인간 안보 패러다임은 진정한 평화와 안보의 의미를 모든 인간들이 육체적, 정신적 자유와 보호가 보장되는 삶을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권 탄압을 일삼는 국가 권력이나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그러므로 ‘안보’에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평화와 안보는 사회 집단 간에 대화를 바탕으로 한 서로에 대한 이해, 역사의 잘못에 대한 진실된 고백과 용서를 구하는 행위, 적절한 처벌과 피해자 보상, 잘못에 대한 용서 등을 기반으로 한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 갈 때 가능합니다.
           인간 안보에 초점을 둔 정의로운 평화를 세월호 참사에 비추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일주일 전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물리적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단지 그 시간에 그 배에 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참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깊은 정치적 상처를 남겼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실패했고, 개개인의 삶과 죽음은 전적으로 ‘운(luck)’에 달렸다는 운명론적 생각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예수가 세월호에서 운명을 달리한 이들과 함께 수장되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죽음은 항상 부활 사건과 함께 기억되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월호 사건에서 부활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안병무 선생과 타이완 출신의 신학자 C.S. Song은 예수가 하나의 개인 인격체가 아니라, 고통받는 민중의 집단적 정체성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고통 받는 민중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현재 우리의 삶으로 불러 들여서,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과정은 굉장한 용기와 영성을 필요로 합니다.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것 자체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유령들과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필폿이 제안하는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 볼 수 있습니다. 유일신 전통에 근거하여 ‘화해’를 ‘정의, 자비, 평화, 용서’의 개념에서 설명한 필폿은, 화해를 위한 여섯 가지 단계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필폿, 174): (1)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조직 건설(building socially just institutions), (2)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acknowledgement of past wrongdoings), (3) 희생자들에 대한 적절한 피해 보상(reparations for victims), (4) 공식적 사과(public apology) (5) 가해자에 대한 처벌(punishment for perpetrators or wrongdoers), (6) 용서(forgiveness). 이 여섯 가지 단계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몇 세대에 필요하다 하더라도, 진정한 화해를 바탕으로 한 회복적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사회적, 역사적 과제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방관자가 아니라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역사의 주체가 되기를 제안합니다. 정의로운 국가 조직, 경찰 조직, 시민 조직을 건설하여 사회 위기 관리 능력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매해 성금요일엔 세월호를 기억하는 묵념의 시간을 교회들이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충일과 6월 25일엔 국군 희생자들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없이 죽어간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억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한, ‘회복적 정의’를 향한 희망의 불꽃은 항상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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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루시다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이 세상에 존재를 알린 지 이백년도 안 된 사진은 그것의 선배 격이자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에게 ‘예술’이란 이미지를 선명하게 남겨준 숱한 천재들을 배출한 ‘회화’에게 향하는 음울한 콤플렉스에서 이미 벗어났는가.
사진의 역사적 흐름을 보자면, 대상의 절대적 재현이라는 사진만의 기능으로 말미암은 사실적 증거자료로, 또는 회화주의 사진과 같은 사진의 자기 탐색이 결여된 시기를 거쳐, 세계대전 등의 보도 사진이 보여주는 실재와 조작, 계몽과 선동, 타인의 고통과 자신의 안락, 정치와 미학 등의 혼재된 경험을 치르며 지금의 디지털 증강 사진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본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그 당사자로서의 독특한 지위를 사진은 향유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수전 손택의 말대로 모더니스트들이 ‘모든 예술이 음악이 되기를 갈망’ 했듯 이제 ‘모든 예술은 사진이 되기를 갈망’ 하는 시대에 사진의 위치가 있다.
우리 모두의 손 안에 폰카를 들고 다니며 모든 개인의 생활이 낱낱이 찍히며 원하는 모습대로 뽀샵되어 물리적 감각 없이 무제한 타인에게 전송되는 전대미문이 시대에 어찌 보면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란 책은 너무 고루하고 정적인, 그리하여 이 시대 사진 미학을 설명할 수 없는 구시대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에 출판된 이 책에서 바르트 역시 그러한 것을 예감하고 있다.

“사진의 시대는 혁명의 시대이며 거부의 침해의 시대, 파열의 시대, 간단히 말해서 초조함의 시대, 모든 성숙을 거부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이 존재했다’는 놀라움도 역시 사라 질 것이다. 그 것은 이미 사라졌다.... 나는 그 것을 목격한 최후의 증인( 반 시대성의 증인) 중의 한 사람이며 이 책은 그 것에 관한 고풍스런 흔적이다”  (P94)

바르트는 자신을 반시대성의 증인이라 말한다. 이미 도래한 새로운 감각을 거스르는 자로써 자신을 정의한다. 또한 그가 늘 사진에서 얻는 놀라움의 원인이었던 ‘그것이 존재했다’라는 존재론적인 감각도 사라질 것이라고 고백했으며 그것은 실재성 없이 컴퓨터 기술로도 대상 자체를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사진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왜 이 ‘고풍스런’ 책은 여전히 사진 미학을 논할 때 빠짐 없이 인용되고 거론되는 걸까?
그것은 바르트의 글이 사회성과 역사성을 배제한, 오로지 사진과 사진의 ‘대상’ 안으로 침잠하는 작은 구멍과 같이 그 범위는 협소하나 그 구멍을 통과하고 나면 샘처럼 순수하고 근원적인 ‘인식론’의 새 국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부분의 이론서는 사진이 갖는 사회, 역사적 의미와 이미지가 인간에게 주는 실재적 영향에 대한 글들이라면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는 ‘대상물’과 ‘갈망하는 사물’,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에 대한 파토스 넘치는 극히 개인적인 에세이인 것이다.

“가장 강한 또 다른 목소리가 나로 하여금 사회적인 주석을 부정하라고 부추겼다. 어떤 사진들을 볼 때면 나는 스스로가 야만적이고 무지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P15)

즉, 프리미티브 화가처럼 전통적 예술 문법을 따르지 않는 개인 특유의 경험과 강렬함으로 바르트 자신을 매개자로 하여 ‘보편적이 아닌 대상의 성격 그 자체에 의한 새로운 이론’을 밝히고자 한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자신에게 어떤 식의 공명을 일으키는 사진 앞에서 그 전까지의 사진이론으론 그 공명의 특질들을 설명할 수 없었음이 <카메라 루시다>가 탄생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현학적이고 구조적인 해석에 대립하여 무규정적인 사진의 특질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그의 용어는 ‘푼크툼’이다.

문화적이고 체계적인 사진 이해 용어인 ‘스투디움’에 맞서 비문화적이고 비체계적인 이해를 지시하는 푼크툼은 벤야민의 ‘아우라’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벤야민의 아우라가 어떤 때는 대상만의 유일하고도 마적인 현상으로 설명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예술의 제의적 요소로, 그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부정적 요소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 푼크툼은 대상에 밀착되어 무게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훨씬 더 날카롭고 가볍고 가변적이며 전혀 전통적이지 않고 제의적이지 않다.
푼크툼은 대상으로부터 마치 화살처럼 주체를 꿰뚫기 위해 날아오지만 그것은 대상이 소유했다기 보다는 주체와 대상사이의 지극히 은밀하고 사적인 소통가운데 있다.
바르트의 푼크툼은 철저하게 수용자 미학이다. ‘촬영자-대상-구경꾼’이라는 사진 내 역학관계에서 촬영자의 의도를 뺀, 대상의 사진적 특질과 그 것을 감상하는 구경꾼의 비의도적 재구성이 이 책을 이끄는 요소인데 이는 그의 또 다른 글 <저자의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푼크툼은 촬영자의 의도와는 무관한, 맥락을 통한 결과물이 아닌, 독립적이고 장외적인 존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르트가 라틴어 ‘점’, ‘찌름’ 등을 뜻하는 푼크툼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카메라 루시다>를 쓰기 전부터 보여 왔던 사진에 관한 그의 관심을 종합하기 위해서였을까? 그 정도의 이론적 유희에서였다면 이 책은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의 이론만을 위한 거였다면 푼크툼은 기억되었을지 모르지만 진혼곡의 회색 빛 울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사진의 증거, 사진을 바라보는 어떤 사람도 볼 수 있는, 그리고 그가 보기에 그 것은 모든 다른 영상과 구별 시켜 주는 이 사물을 찾아 내기 위해서 내 자신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야 만 했다. 나는 나의 개영시 (먼저 썼던 시를 취소하는 시)를 써야만 했다.” (P63)

즉 그는 자신 속 더 깊은 곳의 ‘어머니’란 상처를 이끌어내어 그 이전 기호적 체계로 이루어진 자신의 학문적 논리를 취소해야만 했던 것이다.

바르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그것도 어머니의 다섯 살 무렵에 찍힌 아주 오래된 ‘온실사진’에서 존재의 푼크툼, 시간의 푼크툼에 찔린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어머니다’라는 외마디 비명과 같은,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한 부수적 장치에 지나지 않다.
“어머니다!”, “참으로 어머니다!”라는 이 지칭적 외침은 그 어떤 시각 예술과도 구분되는 사진만의 황홀한 특질이며 바르트 내면의 사랑과 죽음이라는 환원되지 않는 외상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우선 그에게 사진은 ‘그것이-존재-했음’ 혹은 존재의 ‘완강함’이며 그것이 사진의 기반을 이루는 노에마이다.
‘그것이-존재-했음’에는 찍힌 대상물의 존재론적 자국과 과거에로의 시간적 역류가 동시에 포함된다. 사진에 의한 대상의 재현은 단순한 모사의 정도를 떠나 실재 존재와 ‘탯줄로 연결되듯’한 완강함이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같은 이차원의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회화를 볼 때와는 달리 사진의 대상은 실재의 그것으로 확신하며 바라본다.
이것이 바로 사진의 대상을 향한 관람자의 ‘상상적 의식 작용’에 의한 ‘아날로공’, 즉 ‘절대 유사’의 경험인데 이 아날로공은 바르트가 싸르트르의 <상상적인 것>에서 차용해와 이 책의 기반을 이루게 하고 있다.

사진에서의 대상의 재현은 대상을 해석하거나 번역하는 인공적 규명 이전에 생성된 탈코드적인 것이며 발자국이 하얀 눈 위에 찍히듯 존재의 직접적인 ‘자국’이 된다.
즉, 빛에 의해 ‘그때’ ‘거기’ ‘그 대상’으로부터 발산하는 지표인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자국으로서의 사진 현상은 후에 필립 뒤바 등에 의해 ‘사진-인덱스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진이 침묵 속에 보여주는 존재의 자국 혹은 물리적 지표들은 수용자에게 전해지며 마치 묵독이 내면화된 세계를 형성하듯 각자의 경험과 함께 또 다른 환유적 세계의 재구성을 사진을 통해 형성하게 된다.

바르트가 보았던 어머니의 ‘온실사진’은 그때 거기 어머니로부터 사출된 빛이 그에게 이른 것이며 단순히 어머니임을 알아 본 것이 아닌, 분위기라는 작은 영혼을 알아보며 “참으로 어머니!” “마침내 어머니!”를 깨닫게 된다.
그 때 “사진은 자신을 넘어선 하나의 영매가 되어 자신을 무화시키고 기호가 아닌 사물 그 자체”가 된다. 바르트가 사진을 통해 찾은 것은 ‘어머니’다. 일반적인 어머니라는 존재로 환원시키고 싶지 않은 ‘나의 어머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가 잃어버린 것은 “어머니라는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 하나의 특질, 하나의 영혼으로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는 무엇”인 것이다.
그는 사진에서 죽음을 본다. 셔터를 눌러 삶이 정지하는 그 찰라의 순간에 삶의 장외를, 자신이 타자화되는 불편한 경험을 느끼며 어머니의 온실사진에서 출구 없이 꼼짝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변형시킬 수 없는 슬픔, 해독되지 못하는 고통, 그리고 학문의 이론적 지성이 해결할 수 없는 충일한 이미지 앞에서 비환원적인 죽음의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느끼기에 바르트가 이 책에서 절규하는 것은 사진이론 자체가 아닌 “모든 환원적인 체계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사회적 의미의 죽음이나 인간 개체를 넘어선 종의 죽음이라는 진화론적인 냉혹한 설명으론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의 상실이었을 것이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의 상실은 비환원적 세계로의 깨달음을 불러오게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모성 숭배의 밀교적 제의로서 바르트는 ‘아픈 어머니를 통해 스스로가 어머니를 자식으로 낳고 어머니가 죽자 자신은 비변증법적인 죽음을 기다리며 진화론으로 환원되는 생명체의 행진에 자신을 일치시키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것은 그가 교통사고 이후에 치료를 거부하고 거의 자살하다시피 한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과 스스로의 죽음의 예감과 또한 자신만의 참 어머니를 되찾게 해준 사진적 특질들은 그로하여금 언어적인 학문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체계적이고 환원적 설명을 요구하는 사회적 질서에 대해 전복적 사고로 저항하게 하는 푼크툼의 깊은 상처가 되게 하지 않았을까?
푼크툼의 그 전복적 저항은 바로 사랑이고 연민이며, 죽음이고 비언어이며, 무규정자이며, 역류하는 시간이며, 예술에 속하지 않으며, 사회와 문화에 순치되지 않는 무엇이다.
다시 말해 푼크툼은 광기다.
그것은 바르트의 광기이기도 하고 사진의 광기이기도 하다.

* 참고로  이 글은 절판된 ‘열화당’의 <카메라 루시다>에 관련한 것입니다.
   바르트의 책은 지금은 ‘동문선’의 <밝은 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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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에 대한 짧은 단편(1) : 페티쉬(Fetish)

이상철
(한신대 외래교수)

 

프롤로그

한국으로 돌아온 지 3주가 지나간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시차적응에 꽤 시간이 걸리더군. 예전에는 열흘 정도면 가뿐했는데, 이번에는 2주가 지나가는데도 적응하는데 만만치 않다. 시차에 적응되지 않은 몽롱한 정신으로 나는,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을 만났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만났다. 역시 몽롱한 정신으로 나는, 내가 다녔던 교회를 방문했고, 많이 파헤쳐 놓긴 했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예전 놀이터들 주변을 배회하며, 지난 10년에 대한 송사를 하나씩 하나씩 바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어리버리 다시 한국사회에 적응해 가는 내게 누군가 물었다. 다시 찾은 서울의 느낌이 어떠냐고? 섬광같이 Fetish 라는 단어가 떠올라, “모두가 fetish에 취해 있는 것 같다”고 말해버렸다. 조금은 과장되긴 했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지난 3주간 내가 둘러본 서울은 그랬다. 교회는 더욱 치열해진 성장이데올로기에, 대학은 공포와 같은 대학평가제에, 개인은 예외 없이 지금 여기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모두 사활을 걸고 치열하게 지금을 버티고 있는 모습이 페티쉬에 취해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는 지루하고 재미없고 건조한 어느 포르노 영화의 주인공들 닮았다.

사전적 정의로 페티쉬는 초자연적 혼령이 머무는 장소 혹은 대상으로, 이것을 소유하거나 점유하는 집단이나 인물은 그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우상 혹은 부적 같은 것이다. 한편, 정신분석학에서 페티쉬란 성적흥분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나 대상, 혹은 신체의 일부를 가리키는 용어이고, 이런 이유로 각종 성인물 사이트에 페티쉬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나는 21세기 우상이 페티쉬 형태를 띄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모종의 연관이 있음을 이 글을 통해 보이려 한다.

자본의 진화, 소외의 심화

맑스가 지적했던 고전적 자본주의에서는 일한 만큼 못 받는 것, 즉 착취의 문제가 주된 이슈였다. 하지만 착취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만성화되어 그 체감도가 전보다 못하거나, 혹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간 감이 없지 않아 이전보다는 그 문제점이 강하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지금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착취의 문제보다는 일밖에 모른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재작년인가 어느 정치인이 말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그런 의미에서 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주 훌륭히 풍자한 표현이었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소외에 대한 새로운 의견이 등장한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소외를 설명하면서 노동자가 (노동)생산물로부터 소외되고 있으며, 이는 생산활동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고, 더 확대하여 이는 필연적으로 인간소외로 갈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면서, 자본주의속에 구조적으로 자리잡은 인간소외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해부하였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자본주의가 최대로 진화한 형태다. 자본주의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의 제도화와 조직화는 일사천리로 선택의 여지 없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사회주의 몰락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견제세력이 없어졌다는 위기감만이 아니라, 인간 본능의 한 축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을 의미한다. 현실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내걸었던 정의와 평등, 그리고 해방이라는 구호는 비록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들이지만, 그런 가련한 우리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추하고 각성케 하며, 그래서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을 여전히 신뢰하게 끔 해주었던 사회적 장치, 아니 본능이었다. 왜냐하면, 자본을 향한 맹목적 추구가 Id가 제공하는 쾌락의 원리라면, 그것에 대한 억제로서의 사회주의는 superego가 제공하는 또 다른 쾌락원리이기 때문이다. Id와 superego 모두 우리의 본능이기에, 사회주의의 몰락은 그 두 가지 본능 중 하나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 본능의 억제가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소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맑스가 주장했던 소외가 현실적, 물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소외라면, 신자유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벌어지는 소외는 심리적 차원이 더해진 소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트-라깡-지젝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에 바탕한 담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쾌락, 억압, 실재

“무한경쟁”, “2등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상은 신자유주의가 이 땅에서 번져갈 무렵 유행했던 광고 카피들이다. 한마디로 죽도록 일하라는 말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쭉~ 우리는 일터에서 어떻게 하면 성과와 결과를 내고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만을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가 시간만큼이라도 자기를 찾아야 되는데, 그 시간마저도 체제는 우리에게 그럴 여유를 허락치 않는다. 자기를 못 찾도록, 일터와 비슷한 긴장과 스피드를 유지하게끔 하기 위해 체제는 첨단 테크놀로지와 감각적인 문화로 무장된 온갖 컨텐츠를 이용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쉬지 못하게 한다. 그 단적인 예가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아버린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한국 와서 가장 낯설었던 풍경은 지하철 승객들의 모습이었다. 거의 예외 없이 모두가 고개를 45도로 숙이고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그 진풍경은 가히 해외토픽 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톡을 하는 사람들, 뉴스를 보는 사람들,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무의미하게 스크린을 터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프로이트가 말했던, 인간의 ‘방어기제’ 중 하나인 ‘억압’이 한국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과 쾌락을 추구한다. 아기 때 엄마품에 안겨 젖을 빨면서 느끼는 쾌락에서부터, 성인이 되어 사회적 인정을 받을 때 느끼는 쾌락까지, 이 쾌락을 향한 추구가 인간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쾌락이란 기본적으로 안정을 희구하는 에너지이다. 그 안정이 위협당할 때 인간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에 대처한다. 그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방어기제’라 말하고, 그 방어기제는 몇 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억압, 퇴행, 고착, 투사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억압’은 현실에 존재하는 불쾌의 기재들을 의식에서 지워, 그 불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대상을 부정하거나 혹은 왜곡함으로써 마치 그 위험과 불쾌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행위하는 것이 ‘억압’이다.

작금의 신자유주의 상황속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불쾌의 강도는 상상을 불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무일 없는 것처럼, 아니 그것을 의식에서 지우려고 모두 스마트폰 뒤로 스스로를 감추는 것이 아닐까?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마약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은 분명 ‘억압’을 위한 도구이다. 하지만, 모든 억압의 대상은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채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반드시 현실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 앞으로 귀환한다. 그것이 ‘실재’(the Real)이고, 이 실재란 기존의 실재처럼 외부 어딘가에 존재하는 흠이 없고 완벽한 사물의 궁극적 질서, 원칙, 모형으로서의 실재가 아니라, 내 안에 어딘가 이름 모를 장소에 짱박혀 있는 티끌, 혹은 얼룩과 같은 것이다. 그 얼룩으로 인해 실재가 구성되고, 그 얼룩이 어느 임계점에서 에너지가 되어 폭발하거나, 제다이가 되어 귀환하여 우리 앞에 등장할 때 드디어 사건은 발생한다.       

페티쉬의 출현…그리고, 그것의 기저에는

그렇다면, 우상의 출현은 위에서 언급한 정신분석학 용어인 ‘억압’의 등장과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출애굽 과정에서 등장한 아론의 금송아지와 남북분단이라는 안정이 파괴되는 시점에 등장한 북왕국의 금송아지는 출애굽과 분단이라는 불쾌와 불안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속물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 연장선상에서 페티쉬의 출몰과 범람이 21세기형 우상의 진화(혹은 퇴화)라 본다. 페티쉬에서 파생된 페티시즘은 여자스타킹, 속옷에 집착하는 변태적인 사람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이는 용어인데, 이는 사실 물신숭배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신자유주의가 선사하는 억압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페티시즘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일터에 가서 무조건 남보다 더 성과를 올려야만 마치 내가 인생에 성공한 것처럼,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 여자속옷에 집착하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지 않나? 여가시간마저도 현실의 자본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 않으려고 스마트폰을 끌어 안고 하루 종일 지내는 우리의 모습이, 여자 스타킹을 뒤집어 쓰고 있는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프로이트는 인간정신을 추동하는 커다란 에네르기 두 개를 에로스와 타나토스, 즉 삶에 대한 충동과 죽음에 대한 충동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인간은 앞서 말했듯이 안정과 평안을 희구하고, 불필요한 긴장과 불안은 지양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삶의 영위를 위해 작동하는 힘이 에로스이다. 그리고 그 힘은 어느 한 지점을 겨냥한다. 최초에 무의식적 차원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쾌락의 지점,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넘어오는 오이디푸스 전 단계, 즉 아기와 엄마 사이 완벽한 2항 관계가 성립했던 그 지점이다. 그곳은 무중력의 진공상태일 것이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어딘가이며, 최초의 창조가 이루어지기 직전 절대 평형이 이루어졌던 공간일 것이다. 그곳으로 우리는 가고 싶어하고, 그 에너지가 에로스일 텐데,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말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그곳은 어디인가? 죽음 아닌가? 물리학에서 긴장과 흥분이 없는 상태란 운동이 없는 상태이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라면, 죽음은 쾌락의 극치이다. 긴장과 흥분이 제로인 상태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마치 원자로 안에 있는 열이 다 식을 때까지 활활 타는 핵발전소처럼, 쾌락을 위해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다 소진할 때까지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에 대한 억압의 기재로서 우상을 만들어 쾌락의 안전성을 확보하려 하였고… 하지만 그것이 어느 지점을 지나고 나서는 죽음으로 가는 길로 바뀐다. 아마도 그 지점이 에로스에서 타나토스로 변이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마치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 마징거Z에 나오는 괴수 아수라백작의 얼굴이 남/녀로 분할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순간 인간은 삶으로 이어지리라 믿어 떠났던 그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인 줄 깨닫지만, 그 관성을 돌이키기에 인간은 너무 피로하고 역부족이다. 21세기 자본의 지배가 온 땅을 장악한 지금, 돈과 번영을 추구하는 삶의 열망만큼이나, 그것의 실패로 인한 좌절과 죽음과 공포의 지수가 급등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자살관련 소식들, 세계 제1의 자살국이라는 오명 등등의 뉴스들이 그것이다. ‘그 죽음으로 가는 쾌락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인간은 페티쉬를 고안하였다’ 라고 말한다면 너무 큰 억측이 될까?
<계속>


추신> 귀국 후 나는 스마트폰 대신 2G 폴더폰을 구입하였다. 그 선택이 그나마 이 사태와 이 문명에 대한 저항의 처음 시작일 듯 싶어 나름 숙고해서 결정한 것인데…그 얘기를 몇몇 지인들에게 했더니 ‘푸하’하고 비웃네. 첫 발자국부터 삐그덕이다. 이것들을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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