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신대는 ‘해석학과 윤리’를 개설했을까? (하)
: 이 냉소의 시대에 신학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유학하던 10년간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난 웹진 58호 원고는 마감되었다. 바로 그 잃어버린 10년을 추적해 들어가면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해석의 틀을 전반적으로 검토해보고, 지난 10년간 이루어졌던 윤리적 지형의 변화를 회고하면서 어떻게 신학은 반응할 수 있을지를 예단하는 것은 이번 봄 학기,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개설되는 <해석학과 윤리>의 몇 가지 주된 강의 목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너무나, 너무나도 윤리적인 Korean!

우리가 얼마나 윤리에 정통한 국민인가? 우리는 초등학교 6년 (바른 생활)-중학교 3년(도덕)-고등학교 3년(국민윤리), 총 12년의 공교육 기간 동안 국가주도하에 체계적이고도 주도 면밀한 윤리교육을 받은 백성들이다. 필자가 지금 윤리학 Ph.D 7년 차인걸 감안하면, 12년 동안 윤리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히 모두 윤리학 분야 박사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있어 ‘바른 생활’과 ‘도덕’과 ‘국민윤리’는 학창시절 각종 시험 때 마다 평균점수를 올리는 전략과목으로써 달달 외워 빈칸을 메우거나, 선생님의 구미에 맞는 적당한 말을 해주면 점수를 얻는 그런 하찮은 과목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로 시작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 쓰면 되었고, 중학교때는 국민교육헌장을 통째로 암기했으며, 고등학교때는 7.4 남북공동성명부터 전두환 정권의 통일 정책이라 할 수 있는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평화적 통일 정책이 지닌 장점을 북한의 적화통일 정책과 비교하며 남한의 손을 들어주면 그만이었다. 재수할때는 노태우의 6.29 선언의 의미를 쓰라던 문제도 윤리 모의고사 문제에 등장했었다.

이론적으로도 꽤 충실하여 ‘서양윤리사상의 흐름’과 ‘동양윤리 사상의 흐름’이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 Chapter 3장, 4장쯤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특별히 ‘서양윤리사상의 흐름’편을 보면 20-30페이지 남짓한 분량에 소크라테스부터 미국의 프래그머티즘까지 100명쯤 되는 철학자들의 이름이 현란하게 파워포인트 넘기듯 스쳐 지나갔었다.

당시에 있었던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지금도 외우고 있는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법인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 타당한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는 고2 어느 기말고사 주관식 3번 마지막 문제의 답이었는데, ‘네 의지의 준칙’을 ‘내 의지의 준칙’이라 썼다고 틀렸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윤리시험이 아니라 받아쓰기 시험이었던 게지.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초, 중, 고 12년 동안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윤리전문가가 되어 사회로 진출하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가 지닌 출생의 비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철저한 윤리교육을 받은 시민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사회는 너무나도 윤리적이지 못한 음란한 사회라는 점이다. 이유가 어디 있을까? 왜 우리는 윤리를 그토록 오래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가히 뼛속까지 윤리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윤리적이지 않을까? 혹여,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란 어떤 말하지 못할, 말해서는 안 될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혹은 대학입학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란 체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수호하는 도구로, 체제에 반하는 주의나 주장을 자행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구별 짓는 잣대로, 아울러 그들을 단죄하는 형벌의 근거로 작동해 왔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가 이 땅을 지배하던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유신헌법을 선포하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며 백성들을 헷갈리게 했었다. 언뜻 보면 보편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듯한데, 실상은 정반대다. ‘한국적’라는 개별성으로 ‘민주주의’라는 보편성을 포획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분단, 반공, 개발, 경제…등과 같은 당시 한국 상황의 특수성을 위해 민주주의를 제단에 헌납하겠다라는 선언이 유신헙법이었고 유신체제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유신체제를 편협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이렇듯 민주주의가 ‘한국적’이라는 재단에 열납되듯이, 우리에게 있어 윤리란 ‘국민의 윤리’였다. ‘한국적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종개념이고, ‘윤리’는 매개념에 불과하다. 그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분단체제 아래서 반공을 국시로 삼아야 하는 국민이고, 그 국민이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거대담론 아래 질서정연하게 줄 맞춰 삽질해야 하는 국민이며, 그 국민은 이제 자본의 재단에 몸과 마음을 기꺼이 맡겨야 하는 국민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윤리란 이런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정말 하찮았던 과목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윤리가 갖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고, 슬픔이다.

해석학과 윤리

그렇다면, 해석학과 윤리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 것일까? 해석학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본문의 이해와 관련이 깊다. 저자와 독자(해석자)의 관점에서 text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지평에서 해석은 발생하는지? 신학은 이러한 해석학적 통찰로부터 무엇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이상은 해석학과 연관되어 전통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대표적인 질문들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이 질문들은 해석학의 역사에 대한 통시적 접근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 (이번에 개설되는 ‘해석학과 윤리’는 역시 슐라이이마허부터 레비나스까지의 해석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으로 진행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는 본문의 저자와 해석의 주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해석학적 긴장을 유발시킨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해석학의 아버지라 불릴 만하다. 그는 해석자의 위상을 저자의 위치로까지 격상시켰다. 그리하여 해석학을 Text 이해의 문제, 즉 본문에 대한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 이해(Verstehen)란 무엇인가? 라는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해석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팽팽한 긴장으로 인도한다. 
진리는 이성의, 이성에 의한 인식론적 개념 혹은 인식론적 과정이 아니고, 주체의, 주체에 의한 존재론적인 개념일 수 있다는 점, 이런 이유로 해석이란 진리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해석학적 경험이라는 점을 슐라이어마허는 말하고자 했고, 그의 시도는 이후 전개되는 다양한 해석학적 작업의 시금석이 되었다. 

이러한 해석학전 전환은 실천 철학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해석자로부터 타자적 위치에 있어왔던 Text가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와,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을 조장하고, 확고했던 우리의 믿음에 혼동과 긴장을 유발시켜, 우리를 불온한 신자, 불온한 시민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해석학과 윤리가 만나는 경계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윤리는 문제적이다. 
본디 윤리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 혹은 규범을 찾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그 규범은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positive한 내용보다는 negative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부정적 강제적 규범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사회가 이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아마도 이런 금지규범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십계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윤리를 규범적 차원으로만 한정시키려는 시도는 윤리의 차원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윤리란 규범의 차원을 넘어 선택의 차원으로, 그리고 그 선택은 필연적으로 어떠한 대상과 사건에 대한 판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윤리의 어려움이 있고, 바로 그 곳에서 윤리는 해석학과 대화한다.

갖추린 Syllabus

규범이 집단주체의 것이라면, 윤리는 개별주체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봉합선이었다. 근대적 주체란 자기들이 만들어 가야 할 세계의 빛나는 모습을 자신의 경험과 언어와 전통과 신화와 역사를 동원해 그려내고자 했던 주체였고, 근대적 윤리란 그런 개인의 확고부동한 서사를 뒷바침할 만한 주체의 행동강령을 모색하는 윤리였다. 이러한 근대적 주체에 대한 반성과 근대성의 윤리에 대한 회고를 하는 과정에서, 슐라이에르마허에서부터 리꾀르까지, 이른바 근대적 해석학이 걸어왔던 길과 겹치면서, 양자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이번에 개설되는 <해석학과 윤리>의 전반부 과제다. 

하지만, 21세기, 오직 자본의 욕망만이 이 땅에 존재하는 세상에서 근대적 주체, 근대적 해석학이 만들어 놓은 tool은 자본이라는 유령을 해석하기에 뭔가 석연치 않는 부분이 많다. 이런 이유로 나는 현대의 윤리란 일차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투철하게 응시하는 시선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그리하여 강의 후반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푸코와 데리다, 라깡과 지젝을 소환하고자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본 강좌가 노리는 것은, 결국 타자의 해석학과 타자의 윤리학을 수강생들 스스로가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레비나스를 강의 맨 마지막에 배치하여 전체 강의를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에필로그

강좌를 진행하면서 수업시간에 논의되었던 이야기, 획득된 소득들, 남겨진 문제들에 대해서 웹진을 통해 소개할 것을 약속하면서 어설픈, 그리고 위태한 강의개요를 일단 접는다. 글을 쓰면서 내가 아직 얼마나 강의하기에 턱없이 준비가 안되어 있는 강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수강신청 한 학생들 앞에서 최소한 面이 팔리지는 않아야 할 텐데…..요즘 매일 악몽을 꾼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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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늙은 민중신학자의 편지(III)[각주:1]

: 민중신학이 윤리를 말할 때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1

형! 오늘은 <민중신학이 윤리를 말할 때…>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편지를 띄웁니다. 倫理의 한자를 풀이하면, 理는 ‘도리, 이치, 사리, 다스리다’를 뜻하고, 倫은 ‘차례, 순차, 나무결, 동류, 동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윤리란 사물의 이치를 마치 나무 결이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차례로, 순차적으로 정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해진 이치를 차례대로 잘 다스리고 지키는 것이 윤리의 동양적 의미인 셈입니다.
서양 윤리학의 전통에서 보자면, 애초에 플라톤이 말했던 덕(arête)은 선함이 아니라 무엇보다 우수함이었고,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윤리학의 궁극적 관심이 포괄적인 의미의 좋음, 즉 행복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런 전통을 목적론적 윤리학이라고 하죠. 에피쿠르스, 영국의 경험주의, 공리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80년대 이후 미국을 지배하는 공동체주의가 크게 이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각주:2] 어찌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선함’과 ‘좋음’은 동류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양자 사이에 별다른 구별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양인들은 칸트에 이르러 비로소 그것을 구분해냅니다. 즉, ‘어떤 목적을 위해 좋은 것’과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을 칸트는 갈라냈고, 후자를 윤리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선언하였죠. 목적론적 윤리학과 더불어 서양윤리학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는 의무론적 윤리학은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하지만, 목적론적 윤리학이나 의무론적 윤리학이 각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할 지라도, 윤리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행위에 방점이 있는 학문인지라 나름 현실에서의 실천 강령을 필요로 하였는데,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 칸트는 ‘정언명법’이라 불렀습니다. 현실세계에서 살아갈 법도와 순서를 규정한 것입니다.
이렇듯 동.서양 전통에서 윤리란 공히 삶의 이치와 그에 따르는 법도를 세우는 것이었고, 그 원리와 룰을 잘 지키는 사람을 윤리적 인간, 혹은 도덕적 인간이라 불렀습니다. 흔히 어른들이 ‘상철이가 군대갔다 오더니 사람되었네!’ ‘희선이가 시집가서 애를 낳더니 사람되었네’라고 말할 때, 한국 사회에서 남자 인간은 군대를 다녀와야, 여자 인간은 시집가서 애를 낳아야 비로소 사람대접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사회는 남자 인간을 처음 만났을 때 ‘군대 갔다 왔어?’를 묻는 것이고, 여자 인간에게는 ‘애가 몇 이야?’를 묻습니다. 군대라는 전체주의를 통과한 그 인간, 가정이라는 가부장제를 통과한 그 인간이 비로소 사람대접 받는 그 나라,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인 셈이죠.

2

지난 52호 웹진에서 저는 ‘민중신학의 위기론에 부쳐’라는 글에서 부정성에 입각한 민중신학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제가 민중신학의 부정성을 언급했던 이유는 어떤 보편적 입법에 의해 소외되는 개별자(singularity)들의 차이와 다름이 존중되고 각광받는 사회를 향한 비평적 무기를 확보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거대서사의 논리에 입각한 민중신학의 내러티브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라는 의심에서 기인합니다.
형, 솔직히 민중신학만큼 거대한 이야기가 어디 있나요? 지금도 민중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나이에도 가슴이 짠하고 뭉클하면서 눈물이 고이는 이 숭고함을 어찌 설명해야 할런지? 원래 미학이론에서 말하는 숭고함이란 우리 앞에 펼쳐진 거대한 광경, 장면, 사건 앞에서 미적 주체가 느끼는 황홀경 일반을 지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적 대상의 거대함 앞에서 미적 주체는 한 없이 작아져 그 거대함을 어찌 표현할 줄 몰라, 결국에는 추상의 형태로 밖에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위대함과 거대함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충격과 전율을 그냥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 시대의 운동 논리였고, 그 원리는 상당기간 절대적 강령이었으며, 지금도 어느 정도 그것은 유효합니다.     
우리가 자유와 민주와 정의와 통일이라는 말 앞에서 느끼는 숭고함은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그것과 사실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 역시 그 나이에 조국 근대화, 반공, 잘 살아보세!, 경제강국이라는 거대함과 위대함 앞에서 눈물을 주루룩 흘립니다. 어쩌면 한국사회는 이 두 가지 포획되지 않는 숭고함의 에너르기가 공존하는 리비도의 각축장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형과 내가 공히 좋아했던 니체가 그랬던가요?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고 말입니다. 나는 이 문장을 접하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한 착각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치부를 들켜버린 부끄러움이랄까요. 민중신학 진영 역시 전선 저편의 그들처럼 진영의 논리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 보니, 무언가를 받아 들이는 감각에 있어 더디고, 그 과정에서도 ‘의심의 해석함’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것이 마치 우리의 미덕인양 자위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난 시절이 워낙 혹독하였던 지라 우리의 의식과 영혼 역시 그 잔혹함에 맞서 싸우느라 그들처럼 우리의 영혼도 차갑게 식어간것은 아닌지? 천재 시인 이상은 이런 우리의 현실을 그의 시 <거울>에서 짧지만 아주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꽤 닮았소

 

3

이런 까닭에 부정성을 인간 행위의 근거로 내세우는 새로운 윤리적 제안은 진영의 논리안에서 긍정의 윤리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들을 혼란과 불안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한 꺼플 벗겨보면, 긍정의 윤리는 보편자(이치, 중용, 정언명법…)안으로 개별자를 일방적으로 줄 세우는 상징계의 원칙이고, 전체성의 논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본질과 토대를 상징하는 이데아를 상정한 후, 그 절대자의 음성에 따라 모든 개별자들에게 일사분란한 선택과 행위를 강요하는, 니체의 말대로라면 노예의 도덕인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웹진에서 언급한 부정성에 기반한 민중신학이 윤리와 만나게 되면 윤리 본연의 뜻은 역전됩니다. 오히려 개별자가 자기의 윤리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동시에 보편자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입증하고, 설득하고, 투쟁하고, 관철하는 이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새로운 윤리적 준칙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정해진 이치를 뒤집어 보는 것,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의심하는 것이 윤리적 태도의 첫 걸음이 되는 셈이죠. 푸코는 죽기 바로 직전 이를 가리켜 ‘자기에의 배려’(The Care of the Self)라 칭하였고, 그것이 <성의 역사III>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민중신학 역시 이제는 ‘거대서사의 윤리’가 아닌, ‘자기배려의 윤리’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지워야 할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이 있죠. 진리와 정의를 동류함으로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진리를 둘러싼 담론이 반드시 정의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정의란 차이와 다름으로 인한 충돌이 지속가능한 상태이고, 그 충돌이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국민 화합에 저해가 된다는 이유로, 국가기강을 해이하게 한다는 이유로, 북한의 개입이라는 이유로 진압이 되지 않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국적 상황에서는 그렇습니다. 이 논의는 예전에 한동안 유행했던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둘러싼 논쟁의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4

일찍이 포스트모던 논쟁을 주도했던 리오타르가 거대서사의 붕괴, 작은 이야기들의 발굴을 이야기 하였고, 이에 대한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게 등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90년대 초. 중반이 그랬죠. 당시 형이랑 불꽃 튀기며 ‘포스트모더니즘’을 놓고 갑론을박했던 날들이 기억나는 군요. 물론, 한국사회에서 그 논쟁들은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저는 지금도 리오타르의 의견에 여전히 심정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포스트모던 논쟁은 ‘이성의 합리성’과 ‘이성의 광기’를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과 해석의 차이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양자의 대결은 ‘세상에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 있는가?’라는 말로 유명한 파르메니데스와 ‘만물은 변한다’라고 반박한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시작된 고대 그리스의 일자와 다자 논쟁, 중세의 실재론과 유명론 논쟁, 근대의 이성과 실존의 문제 등으로 이어져왔던 오랜 서구철학 논쟁사의 끝자락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이러한 논쟁이 신비화되고 탈역사화 되었을 경우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과 역사속에서 어떤 함의로 다가오는지 묻지 않는다면 울리는 징과 같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하버마스와 리오타르만을 따지고 보자면, 전자의 경우 인간은 사회적, 역사적 망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고, 그 규범성이 인간됨의 조건임을 전제합니다. 후자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구요. 즉, 하버마스에게 있어 규범은 인간의 삶의 조건인 반면, 리오타르는 그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이 인간 삶의 조건인 셈입니다.
자신들의 사상적 준거점을 확보하고 나서 양자는 서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격을 가합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규범은 자칫 악용되면 전 시대와 같은 전체주의로 변모될 수 있음이, 후자를 향해서는 허무주의로 변하여 비역사성 내지 비사회성을 초래할 수도 있음이 지적됩니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 역시 양자는 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마련하였답니다. 하버마스는 유명한 대화적 이성에 입각한 의사소통 행위를 내세웠고, 반대편에서도 비역사성, 비사회성에 대한 지적에 맞서 타자성을 내세웁니다. 데리다, 레비나스 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런 계보학적인 흐름에서 볼 때, 하버마스가 내세우는 제안은 이성의 자기발전, 자기변명이라는 측면에서 도구적 이성의 질주를 제재할 만한 좋은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칫 이상적 의사소통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 주체들만의 잔치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타자성을 테마로 내세우는 윤리적 전략이 요즘 주목을 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5

제가 기대하는 민중신학의 윤리적 함의 역시 이러한 타자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민중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적당히 버무리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저지르기 쉬운 대표적인 실수 중 하나가 포스트모니즘 일반을 범박한 타자성으로 덧칠해버리는 경우입니다.
<The Weakness of God>(2006)의 저자이자 미국학계에서 아주 충실한 데리다 전달자이자 해석자인 존 카푸토(John D. Caputo)는 포스트모던 논쟁이 한창이던 1993년에 <Against Ethics>(1993)이라는 책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그 책에서 카푸토는 포스트모던 사상의 일반적 특징을 heterology라 명하였고, 더 조밀하게는 heteromorophism과 heteronomism으로 나눕니다.
전자는 니체로부터 기인하여 들뢰즈, 푸코로 이어지는 라인이고, 후자는 굳이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키에르케고르로부터 시작하여 레비나스와 데리다로 이어지는 진영입니다. 니체가 그랬듯이 전자가 디오니소스적인 축제를 찬양하고 자기에 대한 긍정과 삶에 대한 환희를 내세우는 유쾌한(?)한 세계관이라면, 후자에는 존재 일반이 지닌 무한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안, 공포, 책임, 신비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론할 때 니체로부터 이어지는 계보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근래에는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별도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더 조밀해지고 파편화 된 채 착취당하며 사라져가는 다양한 타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차원에서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타자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민중신학과 관련하여 제가 관심하는 부분입니다.
민중신학은 이제 거대하고 묵직했던 실천이론보다는 작은 진실들, 즉 혁명의 시대를 살아내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소소한 일상의 것들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는 시선의 확보를 통해 ‘민중신학의 위기’를 관통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레비나스와 데리다불러들여 민중신학과의 비판적 우호적 대화를 통해 하나씩 풀어가려 합니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민중신학의 과거에 대한 회고와 현재에 대한 진단,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가 다 아우러지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너무 큰 욕심을 내는 걸까요? 

형. 그동안 저의 넋두리를 듣느라 수고 했수다. 함께 있었더라면 저의 발언을 향해 예의 그 꼬장꼬장한 시선과 말투로 한바탕 퍼부었을텐데……형의 그 일성이 그립구려. 논문 쓰다가 답답한 부분, 풀리지 않는 매듭이 등장하면 다시 편지를 띄우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평안을…

ⓒ 웹진 <제3시대>

 

  1. 졸고는 현재 진행중인 필자의 학위 논문 [The Turn to the Other: Minjung Theology in a Dialogue with Levinasian Ethics and Derrida’s Deconstruction Ethics]중 서론의 일부를 번역 각색한 원고입니다. 글의 제목으로 사용된 ‘어느 늙은 민중신학자’는 특정인이 아니라, 논문을 웹진 원고로 번역 각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중화자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졸고의 내용은 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입장과는 무관함을 아울러 명시합니다. [본문으로]
  2. 공동체주의: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마이클 샌델, 맥킨타이어, 찰슨테일러 등이 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서구 근대를 규정하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개인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그 개인을 이 전 시대 개인과 구분하여 자율적 개인이라 부르고, 그 개인은 막 형성되고 발전하기 시작한 자본주의 시대에서 그동안 억압되었던 이드를 마음껏 분출하기 시작한다. 이 욕망은 급기야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제국주의화 된다. 이러한 욕망의 파국이 바로 1.2차 대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 세계는 나치즘과 파시즘 같은 극단적 공동체주의에 대한 경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냉전이 종식되고 전세계가 자본주의 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새로운 공동체주의가 등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현재 일고 있는 공동체주의에 대한 간략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자유주의가 지나치게 개인의 자율성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인간의 삶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공동체가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홀로 독립된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안에서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완성하는 과정적 존재이다. 결국,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표류하는 개인을 공동체 안으로 복귀시킴으로 사회전체의 행복의 총량에 관심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다. 공동체주의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은데, 이는 다음에 기회를 봐서 몇 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하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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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윤리(II) – “주체여, 다시 한번!”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프롤로그: 한국땅에서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울화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도덕과 윤리는 늘 재미가 없었다. 회상해보라, <바른생활 (초등학교) -도덕(중학교) -국민윤리(고등학교)>로 이름을 달리하여 불렸던 그 과목들이 얼마나 지루했었나를! 그것은 한국이라는 집단병영(?) 시스템 속에서 독재자들의 통치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새마을 운동(박정희)’정의사회 구현(전두환)’으로 대표되는 윤리적 슬로건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왔다.  잘 살아보세!’로 대변되는 유신정권의 국면전환용 구호와 오랜 윤리적 주제였던 정의를 자신들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끌어들여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정언명령으로 각색한 제5공화국의 그것은 서구윤리 사상의 양대축이라 할 수 있는 목적론적 윤리와 의무론적 윤리를 떠올리게 한다. 전자는 에피쿠르스학파-영국의 경험론-공리주의로 계승되었고, 후자는 스토아학파-대륙의 합리론-칸트로 이어지면서 윤리적 논쟁을 벌여왔음을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에 있었던 서구 윤리사상의 발전이라는 장에서 우리는 이미 배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전혀 섞일 수 없는 이 두 가지 윤리적 전략을 아우르는 절대적인 음성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분단이다. 한국의 분단체제, 반공이데올로기는 수 천 년간 이어져왔던 서로 다른 윤리적 행위의 원칙을 간단히 하나로 화해시켰다. 그리하여 적어도 남한 땅에서 국민윤리란(북한도 마찬가지겠지만) 북과 맞서는 거대한 상징의 체계,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며 엄하게 타이르던 아버지의 권위,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는 금기의 영역으로 등극한다. 어쩌면 한국은 이러한 틀 속에서 집단과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의한 의식의 세례가 거의 무방비적으로 이루어지는, 얼마 전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의 표현대로 야만의 사회이고, 반면 그 이데올로기가 지닌 음모가 놀라우리만큼 약발이 받지 않는 문명화된(?) 사회이기도 하다.

만일, 의식과 집단(체제), 의식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천착했던 푸코가 이렇듯 기이한 한국땅에서 활동했다면 뭐라 말했을까? 이제서야 겨우 본론으로 넘어간다.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

 


드디어, 푸코와 만나다

 

푸코는 1984 5 25, 그의 나이 57세가 되던 해에 에이즈로 사망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전개과정에서 발생했던 몇몇 뭉클한 장면이 있는데, 하나는 1995년 레비나스가 죽었을 때 데리다가 레비나스의 영전에서 행한 아듀, 레비나스라는 추모사이다. 그다지 관계가 좋지 않았던 둘이었지만 점점 본인 사상의 후반으로 갈수록 레비나스에 다가갔던 데리다였기에 그의 슬픔은 더했다. 레비나스가 죽기 10년 전 푸코가 죽었고, 레비나스를 데리다가 추모하듯, 푸코에 대한 추모는 그의 절친했던 친구인 들뢰즈의 몫이었다. 들뢰즈는 별다른 말없이 푸코가 병상에서 최후로 완성한 성의 역사2권인 <쾌락의 활용>, 3 <자기배려>의 서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다.   

 

데카르트가 보편적이면서도 무역사적인 코기토적인 주체를 말하고, 칸트가 경험에 주어진 한계를 이성을 통해 묶음으로 선험적 주체의 탄생을 기획했다면, 푸코는 성의 역사 3, <자기 배려>에서 이런 근대적 주체와는 구분된, 그 자신의 독특한 성과이자 사상사의 전개 과정에서 주체논의의 새로운 물꼬를 틀었다고 평가받는 자기 soi/self’ 개념을 기존의 주체 subject’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후 푸코의 자기개념은 지난 호 웹진에서 살펴보았던 주체의 죽음이 운운되는 시대속에서 다시금 주체에 대한 새로운 생기를 부여하였다.[각주:1]

 

그래도, 주체는 계속된다!

우리가 말하는 근대, 즉 인식주체의 인식대상을 향한 포섭과 간섭에 강한 능력과 권한이 부여되었던 그 시대! 인식주체가 기획한 구성아래 세계 축조의 가능성이 조심스레 예감되던 그 시절! 근대적 인간이란 루카치의 표현대로라면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나는 소설속 주인공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무협지의 단골 내용으로 등장하는, 어렸을 때 원수로부터 부모를 여의고 하인 (어김없이 하인은 도망 중 장렬히 사망하고 숨이 넘어가려는 순간에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을 약간 흘린다) 등에 업혀 산사로 피신한 주인공(인식주체)과 같다. 그는 산에서 우연히(아니, 필연적으로) 신의 음성을 지닌 스승을 만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경지에 이른 후 터미네이터가 되어 하산한다. 그 후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들(인식대상)을 찾아 하나씩 제거하는 내용이 무협지 후반에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삽입되어야 하는 것이 인정투쟁이다. 원수는 성장하여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주인공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 어렸던 네가…! 그때 내가 너를 죽였어야 할 것을분하다!!”, 주인공은 이를 받아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네가 아느냐? 내 칼을 받아라!” 노예의 복종(내지 패배)과 주인의 선포(내지 승리)가 만방에 알려지는 순간이다.   

 

위의 무협지 플롯은 근대적 인식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화이다. (인식)주체가 (인식)대상을 잠식해가는 과정이 진보이고 획득이며 발전이라는 근대적 패러다임하에서 객체는 무릎꿇어 인식주체를 향해 패배와 복종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 객체는 자연일 수 있고, 식민지 국가일 수 있으며, 당시에는 세상속에 섞여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았으나 지금은 사라진 정신병자, 부랑아, 동성애자, 히피들그 밖에 인식주체와는 다른 무리들, 즉 타자라 할 수 있다. 근대는 체제에 의해 타자를 향한 인정투쟁의 거대한 망이 만들어지던 시대였다. 그 망을 통과한 자만이 체제안으로 편입되고 망에 걸린 무리들은 버려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푸코의 근대비판은 시작되는데

 

말과 사물, 광기의 역사 등으로 대표되는 푸코 초기 계보학적 연구들이 역사적으로 힘과 지식의 역학속에 구성된 주체의 허위를 폭로했던 작업이라면, 성의 역사로 대변되는 푸코의 후기 작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허물이 벗겨져 탈영토화된 주체를 어떤식으로 재영토화 시키는가의 문제, 즉 자기가 자기를 형성하는 방식에 관한 몰두로 그 관심이 바뀌었다. 이를 윤리적 화두로 전환하면, 근대 주체 철학 위에 서있었던 도덕이 보편에 개별을 맞추는 입법의 차원이었고, 그러한 도식속에서 윤리란 그 명법을 내 것으로 끌어당겨서 (자발적, 의식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보편을 향해 투항하게 만드는 그런 주체를 위한 윤리였다. 반면, 푸코의 후기사상에 나타나는 윤리적 판단의 근거는 보편보다는 개별에 포커스가 있다는 점에서, 칸트류의 의무론적 윤리나 니체가 비판했던 노예의 도덕과는 사고의 지점도 다르고 전개양상도 판이하다.

 

푸코는 근대 프로젝트 안에 펴져있던 총체적 난맥의 첫 단추를 주체규명에서부터 찾았고, 이런 이유에서 주체대신 자기를 제안한다. ‘자기라는 말은 기존의 철학에서 말해왔던 주체개념과는 다른, 자기의 욕망(혹은 본색)이 더 충실히 반영된, 즉 체제가 선사하는 이데올로기로부터 기름이 빠진 주체라 할 수 있다.[각주:2] 비록 근대적 주체는 사망했지만, ‘자기라는 이름이 부여된 새로운 주체가 등장한 셈이다. 이는 데카르트이래 등장한 근대적 주체가 절대적 주체로 등극한 이래 한차례도 흔들리지 않았던 서구 주체중심의 철학에 대한 의식적이고도 악의(?)적인 반동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고대 그리스로!

 

서구 현대 사상가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당면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 많은 경우 고대 그리스를 향해 회귀한다는 점이다. 마치 교회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를 외치는 듯 말이다. 대표적으로 하이데거가 그랬다. 서구 형이상학에 대해 평하면서 존재망각의 역사였다고 비판하던 하이데거가 내세운 전략이 바로 고대 그리스로의 귀환이었다. 이는 근원적 존재체험과 기원에 대한에 여전한 미련과 애착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하이데거 안에 깃들어있는 사상적 혹은 미적 보수성을 엿볼 수 있다.[각주:3]

 

푸코 역시 자기의식의 단초를 고대 그리스로부터 끌어온다. 하지만 근대적 주체에 대한 문제제기 후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고대그리스의 존재체험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던 하이데거와는 달리, 푸코는 근대적 주체가 해체되어야 하는 이유를 오히려 고대그리스의 존재 체험에 기대어 전개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양자는 확연히 구분된다.[각주:4]

 

고대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선함이란 착함보다는 좋음이었다. 즉 내게 쾌를 선사하는 것이 선한 것이고, 내게 불쾌를 선사하는 것은 악한것이다. 물론 그것은 감각적인 쾌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정신적인 영역까지를 포함한 쾌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윤리학에서 인생의 목표를 행복이라 했을 때 이는 전적으로 좋음을 의식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푸코가 의도했던 것은 그리스적인 좋음을 다시 현대의 윤리적 테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은 어떤 보편과 규범에 의해 개인이 함몰되지 않고, 자기가 자발적으로 자기를 구성하는 테크놀로지의 추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푸코에게 있어 윤리란 미학적 성격을 띤다.[각주:5] 전통적 의미에서 미적 판단력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영향을 받아 예술작품 안에 스며있는 이데아의 순도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방(복사)의 정도가 정교할수록 진품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현대 미학에서는 미적 주체와 미적 대상간의 일치라는 전통적인 미에 대한 의식을 거부한다. 오히려 이데아가 지닌 아우라의 파괴를 통한 새로운 감동, 새로운 가치 창출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푸코는 이러한 현대 미학의 패러다임을 그의 윤리학으로 초대한다.

 

에필로그: 결국, 자기의 윤리란?

 

윤리학은 자고로 본질주의와 토대주의에 입각해 이데아를 상정한 후 윤리적으로 그 본질에 따라 사는 삶을 안내하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윤리학은 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생성으로 보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시간의 경과속에서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 그리고 동일성안으로 들어온 창조와 변화를 수렴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생성과 창조의 과정속에서 동일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즉 자기가 자기의 도덕을 어느 누군가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기의 윤리를 보편성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설득과 대화와 연대의 과정 모두가 윤리학의 범주가 된다. 종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윤리학이 등장한 셈이고, 이에 대한 발전과 도전과 응전은 지금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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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기에 대한 실천에 있어 그 실천의 주된 목표는 자기와의 관계속에서, 바로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로의) 전환은 우리 자신의 관점의 이동을 뜻한다.”- Michel. Foucault, 『The Care of the Self - Vol 3 of The History of Sexuality』, Translate by Robert Hurly. (New York: Pantheon Books, 1986), 64-65. [본문으로]
  2. “자기체험은 단순히 통제된 힘이나 언제나 반항할 준비가 된 힘에 대한 지배력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자신에 대해 느끼는 일종의 기쁨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접근할 수 있는 자는 자신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자신의 현 모습에 만족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다.”- Michel. Foucault, 『The Care of the Self - Vol 3 of The History of Sexuality』, Translate by Robert Hurly. (New York: Pantheon Books, 1986), 66. [본문으로]
  3. 하이데거가 걸어갔던 그리스전통에로의 복귀에 대한 부분은 2009년 9월 25일 웹진에 게재되었던 졸고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3)”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119)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4. 『성의 역사』 2권과 3권은 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성도덕을 다루면서 윤리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시도하는데, 특별히 자기이해와 고대 그리스와의 연관에 주목하려면 아래 부분에 주목하기를: Michel. Foucault, 『The Care of the Self - Vol 3 of The History of Sexuality』, Translate by Robert Hurly. (New York: Pantheon Books, 1986), 57이하. [본문으로]
  5. “왜 우리의 삶은 예술작품이 될 수 없는가? 사물은 예술의 대상이 되는데 우리의 삶은 왜 그렇지 못하는가?” - Michel. Foucault, ‘On the Genealogy of Ethics: An Overview of Work in Progress’ in 『The Foucault Reader』, Edited by Paul Rabinow. (New York: Pantheon Books, 1984), 3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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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윤리(I) – “주체여, 안녕히!”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프롤로그: 포스트모던 윤리의 지형

포스트모던 윤리학의 계보를 투박하게 분석하면, 니체로부터 기원하여 푸코, 들뢰즈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고, 다른 하나는 레비나스와 (후기)데리다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요근래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는 슬로베니아 학파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실재(the Real)의 윤리를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맑스와 라깡의 세례를 받은 이 그룹에 속한 학자들에는 21세기 최대의 스타철학자라고 불리우는 지젝과 칸트에 대한 라깡적 독해를 시도한 <실재의 윤리>의 저자 주판치치가 있다. 요약하면, 포스트모던 윤리는 크게 세가지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니체로부터 시작되는 자기의 윤리, 레비나스와 데리다로 대변되는 타자의 윤리, 그리고 슬로베니아 학파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실재의 윤리가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논의의 집중을 위해 전자의 두 경우에 포커스를 맞추어 내용을 전개할 것이고, 새롭게 등장하는 실재의 윤리에 대한 부분은 다음의 과제로 넘긴다.

우선 두 그룹의 공통점을 지적하자면, 서구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자행되었던 개별자를 향한 동일자의 무차별한 폭력에 반대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많은 경우 레비나스와 데리다가 성급하게 포스트구조주의[각주:1] 계열의 학자로 묶여서 알려지게 된다. 물론 해체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초기 데리다를 포스트구조주의 계열로 분류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적어도 90년대 이후 자신의 해체주의적 이론을 윤리적 테마로 이행하던 시기의 데리다는 오히려 레비나스를 닮았다. 레비나스는 애초부터 니체-푸코라인과는 다른 출발점이었다. 후설과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현상학적 계보를 따라 레비나스의 사유는 시작되었고, 특별히 유대교 신비주의의 영향이 그의 문장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포물선을 그려왔던 양 진영은 서구 형이상학이 지니는 전체성의 폭력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이루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전략적인 면에서 니체-푸코-들뢰즈로 이어지는 계열은 자기의 해석학으로 치달았고, 레비나스와 (후기)데리다는 타자의 발견에서 그 해결점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포스트모더니즘, 니체에 기대다!

영어원서를 읽다보면 Subject 라는 단어를 만날 때 만큼 모호하고 이중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체, 실체, 자아, 주제라는 뜻 이외에, ‘신민(臣民), 신하, (집합적)국민이라는 뜻도 Subject 안에 들어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더니, 급기야는 형용사로 쓰일 때는 복종하는, 지배를 받는, 당하기 쉬운,…에 빠지기 쉬운으로 해석을 해야한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주체, 강철과도 같은 불패의 정신을 지녔던 그 주체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전 깊숙한 곳에는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주체의 숨은 뜻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이렇듯 가려져 있었던 주체를 수면위로 강하게 끌어올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니체였다. 기본적으로 니체에게 있어 세상이란 더 이상 나를 어떤 합리적 구조에 가두는 아폴론적인 세계가 아닌 디오니소스적인 축제가 벌어지는 공간이다. 이런 이유로 세상은 나의 욕망이 끊임없이 활기치는 놀이터 같은 곳이 된다. 우리가 지난 호 웹진에서 살펴보았듯이,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밝힌 주인의 도덕이란 이러한 세계 속에 있는 나의 삶을 긍정하고, 그런 삶의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생성시키는 윤리이다. 이는 근대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투명하고 통합된 주체의 도덕도 아니고, 엄숙하고 너무나도 체제 순응적인 노예의 도덕일수도 없다. 어떤 에네르기에 의해 분열되고 그래서 앞날이 불투명하고 혼돈에 쌓인 그런 주체를 위한 도덕인것이다.[각주:2]

이렇듯 니체의 사상 안에 함의된, 체제가 선사하는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길들여진 주체에 대한 거부는 집단에 대한 딴지와 개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모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조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니체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밝힌 것처럼 거대담론의 붕괴와 작은 이야기들의 발견으로 전승된다.[각주:3]  진정 우리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거대담론이니 공동체니 역사의 발전이니 하는 선언적인 구호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작은 이야기들, 예를 들어 개인은 누구인가? 집단과 이념의 그늘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남아 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이다.[각주:4] 이 질문은 완강했던 근대적 주체의 붕괴를 예고하는 서술임과 동시에 새롭게 번역되는 주체에 대한 기대와 전망으로 우리를 이끈다.

Episode: 내가 주체로 서기까지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이 지적하고 있는 주체란 어떤 집단에 몸담고 난 이후에 만들어진  주체이고, 어느 특정 이념에 노출된 이후 형성된 그 주체이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 남자로서의 주체성을 담보하려면 군대에 갔다와야 한다. 병역미필자는 해외에 나갈 때도 제한이 있고, 이력서를 쓸라치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항상 꿀린다. 사람들은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그럼 군대 가기 전 사람과 군대갔다 와서 된 그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고백하자면 내 경우는 군대에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체득해야 할 온갖 나쁜 것은 다 배웠다. 굴욕에 복종하는 법, 짜웅(아첨)하는 법, 여자를 오로지 즉물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법, 가라(허위)로 보고하는 법, 인간을 격멸하는 것까지그런데 세상은 그런 군대를 나온 남자를 사람됐다고 사회적으로 인정한다.

공적차원에서 내 주체되기의 완성이 군대를 통과한 이후의 일이라면, 그것의 시작은 그 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지금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거의 다 외우고 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도덕 시험이 그것을 외워서 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국민교육헌장은 그 이후로 내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에 이어 통째로 암기하고 있는 세 번째 주문이 되었다. 당시 중간고사 시험을 보면서 국민교육헌장의 마지막 문장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를 쓰고 난 후 책상에 엎드려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 자신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있다는 것, 내가 민족의 역사를 창조할 일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웠고 그런 조국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원통하고 분하다. 그 어린아이를 그렇게 기만하다니! 어떻게 나라 전체가 이런 사기극에 집단적으로 공모할 수 있는가?

주체의 죽음! 주체여 안녕 !!

군대를 갔다오지 않아도 사람이 될 수 있고, 구태여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않아도 삶은 넉넉히 지속된다. 누군가가 창조하려했던 새 역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했는지 우리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않은가! 병역을 필해야만 비로소 한국땅에서 남자 노릇 할 수 있는 그 주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되새기며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세례를 받으며 자라난 그 주체! 어쩌면 주체란 이런 필터링을 거친 후에 걸러진 찌꺼기가 아닐까? 그 필터는 군대일수도 있고, 국민교육헌장일수도 있으며, 그 밖의 여러가지 이름과 가능성으로 현존하며 그 다음을 대기하고 있다. 현대 철학자들이 언급하는 주체의 죽음이란 바로 그렇게 필터링된 주체에 대한 사망선고인 셈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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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논쟁: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경계를 나누고 그것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필자가 보기에는 소모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구조주의의 주창자라 평가받는 레비-스트로스, 알튀세, 라깡, 푸코 등의 학자들 스스로가 구조주의의 틀 안에 묶이는 것을 거부했고, 그 거부의 몸짓들을 투박하게 포스트구조주의라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에 대한 변별점을 분석하는 작업보다는 오히려 구조주의/탈구조주의 논쟁이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유익한 논의가 되리라 본다. 서구 근대 형이상학을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생각하는 나) 중심의 철학은 시대를 달리하며 현상학과 해석학, 실존주의로 이름을 달리하면서 포물선을 그리게한 동력이었다. 물론 이것은 대상이 주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전 시대의 형이상학과는 차이가 있지만, 인식 주체가 인식 대상을 포섭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한 동일자의 폭력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주의는 이에 맞서 인간의 인식과정이 결코 투명한 의식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인간의 의식으로는 파악이 안되는 구조(언어, 문화, 역사, 무의식 등) 안에서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본다. 인간이 선천적 종합판단과 의지적 결단에 의해 행위하는것 같지만, 기실 그것은 어떤 짜여진 판에 의해 의도되어진 예상 가능한 함수라는 것이다. 이는 코기토적 주체에 대한 정면도전이라 할 만하다. 구조주의 처음 시작은 소쉬르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문화인류학등 과학적 분석방법에서 출발을 했지만, 이는 점차 영역을 확대하여 서구사상 전반에 대한 비판(반이성주의, 반인간중심주의, 반민족중심주의, 반서구중심주의 등)으로 이어지는데 그 일련의 과정을 포스트구조주의라 부른다. 포스트구조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이론, 이념, 주의등이 지닌 보편화의 가능성과 영토화의 음모를 의심하는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구조주의, 더 나가서 근대성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서 공들인 체제 어딘가에 틈이 생겨 물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서 그럴싸하게 보이는 그것이 실재가 아니라, 지금 실재라고 일컫는 것의 보이지 않는 어느 구석에 틈이 생기고 그 틈새로 무언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진짜 실재라고 말이다. 라깡은 이를 ‘증상’이라 말하고,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해체불가능자’이다. 지젝은 아예 대놓고 이를 ‘실재’라 부른다. 물론 구석에 난 틈과 그 틈을 통해 스며나오는 불순물은 이론의 체계 내에서는 비합리적, 비이론적, 비학문적 요소이지만, 포스트구조주의는 오히려 이 부분을 통해 이론의 체계가 성립된 흔적을 역으로 추적하면서 이론에 주름을 내어 결론적으로는 이론의 표면적을 넗히는 역할을 한다. 기존 이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무화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의 허위를 인정하지만 안고 나가는 애정이 포스트구조주의에 스며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구조주의는 근대라고 일컬어지는 전 지역에서 파생된 문제에 대한 변론이자 땜질이며, 그러기에 그들에게 있어 사유는 단절과 봉합이 아닌 개방과 재서술의 형태로 미끄러져간다. [본문으로]
  2. 니체식 (흔들리는 혹은 욕동하는) 주체를 잘 드러내는 문장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나의 모든 의지를 다해 의지해야만 하는 곳에, 내가 사랑하고 또 소멸하기를 원하는 곳에, 하나의 상이 단지 상으로만 남아 있지 않은 곳에 존재한다” - Friedrich. Nietzsche.「Thus Spoke Zarathustra」in the Portable Nietzsche, Edited by Walter Kaufmann. (New York: The Viking Press, 1968), 235. [본문으로]
  3. J.F. Lyotard.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 trans. Geoffrey Bennington and Brian Massumi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4), 60. [본문으로]
  4.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은 이 대목에서부터 시작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그것이다. 작은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자기의 의지와 욕망에 대한 한없는 관용이 냉전 종식 이후 몰아 닥친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교묘한 결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이야기들의 발굴을 통한 자기의 확장이 거대담론을 다시 복원하고 거시세계의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으리라는 그들의 낙관적 견해는 과연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인지? 이같은 지적은 90년대 초.,중반 사상계를 달구었던 중요했던 이슈 중 하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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