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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마당] 부활, 그 이후를 산다는 것 (이상철)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19. 5. 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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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 이후를 산다는 것 (막 16:6-7)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주간)

그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는 살아나셨소.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 (막 16:6-7) 

1. 

오늘 우리가 마가복음 본문에서 읽은 예수가 부활이후에 사라졌다는 소식, 그리고 그가 갈릴리로 갔다는 뉴스를 전하는 흰 옷 입은 사람의 전언은 마태복음에도 나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갈릴리가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장소가 바뀝니다. 왜 갈릴리냐, 왜 예루살렘이냐, 문제를 놓고 사람들이 많은 글과 논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갈릴리로 갔는지, 예루살렘으로 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렇듯 복음서마다 예수의 부활 이후의 행적은 조금씩, 혹은 아주 많이 다르게 쓰여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복음서의 기록들이 다를까? 그것은 복음서가 쓰여진 이유와 연관이 됩니다. 복음서는 팩트체크보다는 각각의 복음서를 쓴 저자, 편집자, 그리고 독자들 간의 서로 다른 공동체성, 당파성, 입장의 차이를 전제합니다. 서로의 신앙고백이 다르다는 것이겠죠. 각 집단마다 근원과 연원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복음서가 필요했던 것이죠. 그렇다면 과연 역사적 예수의 복원이 가능한가? 이것이 근대 이후 신약성서 해석학의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결국 예수의 생애를 파악하는 것은 무모한 시도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물론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려고 쓴 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성서가 전적으로 픽션이다, 라는 주장에는 저는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서가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려는 책이 아니고 각각의 공동체의 신앙고백과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여 그 내용이 전적으로 허구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복음서는 예수의 연대기적 사실성, 즉 예수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위해 기록한 책은 아니지만,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증언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은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건입니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의 부활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오십 번 넘게 부활을 맞고 있지만, 부활절마다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때 늘 의심과 회의 가운데 있었고, 목사가 되어 부활을 전하는 입장이 되어서도 항상 부활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부활한다는 것은 죽지 않고 영원한 삶을 산다는 것일텐데... 우선 영원한 삶(eternal life)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당장 현재의 삶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나,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저와 같은 삶과 영생에 답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은 갈릴리로 부활한 예수가 갔다고 전합니다. 부활한 예수가 갈릴리로 갔다는 말속에 삶에 대한 이야기와 부활한 이후에 삶에 대한 단서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민중신학을 접하고 난 다음부터입니다. 

“갈릴리에 대한 지정학적인 역사적 이야기를 굳이 이 자리에서 길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예수님이 자란 곳이고, 예수가 사람들을 만나고 제자들을 모으고 민중들과 대화하고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했던 곳이 바로 갈릴리입니다. 민중들의 편에서 그들의 아픔과 슬픔과 절망에 반응하면서 치유와 회복을 위해 몸부림 쳤던 곳이 갈릴리입니다. 부정의한 현실에 대한 눈뜸과 민중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대한 공감이 시작된 곳이 또한 갈릴리입니다. 그곳에서 예수의 공생애는 시작되었고,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그로 인해 다시 살아야겠다는 희망과 기대 속으로 내몰리게 되었다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가 제국의 억압과 폭력에 의해 가려져 있었던 민중들의 포텐을 터뜨린 것이죠. 갈릴리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갈릴리는 우리들의 과거와 기억,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들이 응축된 지점입니다. 레비나스는 그것을 흔적(trace)이라 표현합니다. 그 흔적이, 그 기억과 지나간 것들에게 대한 애도와 되새김과 송환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3.

오늘 하늘 뜻 나누기 제목은 ‘부활 이후를 산다는 것’인데, 오늘 본문과 어울리는 그림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한백예배에서 몇 번 소개되어서 익숙한 그림입니다. 파울 클레(Paul Klee,1879~1940)의 그림 <새로운 천사>(1920).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하고 모자라게 보이는 천사 그림입니다.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던 과거의 날개 달린 천사가 아니라, 뭔가 좀 색다른 천사의 이미지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오늘 마가복음 본문에 나오는 천사를 설명할 때 종종 인용합니다. 그 이유는 발터 벤야민의 아래 글 때문입니다. 유명한 <역사철학테제>에서 발터 벤야민은 그 천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파울 클레, (1879~1940), <새로운 천사>(1920).

“그림의 천사는 자기가 줄곧 보던 것들로부터 떠나려는 것 같다.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이런 모습일 게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그는 온갖 난파된 잔해를 쌓아 올리며, 그의 발 앞에 내던져진 대참사를 목격한다. 천사는 거기 머물며 죽은 자들을 깨우고 파괴던 것들을 복구하고 싶다. 폭풍으로 날개를 접지도 못한 채, 그저 미래를 향해 날아가면서 쌓이는 과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런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Walter Benjamin,“These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in Illuminations, with an introduction by Hannah Arendt (New York: Schocken Books, 1968), 257~258.  

여러분들은 하늘에 떠 있는 천사가 어떻게 보이시나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냥 하늘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캔버스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기도 하고, 캔버스 멀리 사라져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벤야민은 천사가 비록 폭풍에 떠밀려 뒤로 날아가면서도 그것에 저항하듯 앞을 응시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원래 벤야민이 이 글을 썼던 이유는 맑스주의의 새로운 방향 설정을 위함입니다. 앞만 보고 미래와 대의와 진보만을 기계적으로 추구하는 변증법적, 사적유물론의 사유가 더 이상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이렇듯 마르크스주의의 사물화를 경계하면서 벤야민은 우리의 구원이 미래로부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소환된다는 역발상을 마르크스주의에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벤야민은 진보와 낙관에 기대어 미래를 응시하는 천사가 아니라,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고 있는 역사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천사를 ‘역사의 천사 the angel of history’라 불렀습니다. ‘역사의 천사’는 폭풍우에 떠밀려 하늘을 향해 마지못해 올라가는 듯 보이나, 정면으로 퍼붓는 바람에 굴하지 않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여전히 지상을 바라보고 있다. 슬픔 많고 한 많은 이 땅에 대한 응시를 포기하지 않는 천사를 클레는 <새로운 천사>라 이름 지었고, 저는 저 천사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그는 살았고, 그는 그대들보다 먼저 갈리리로 갔고, 그대들은 거기서 그를 볼 것이오”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서는 하느님 나라가 어느 몽상가 집단들의 비젼 속에 갇혀 존재하는 신기루가 아닌, 지금 현재 (혹은 먼 훗날까지) 투쟁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 속에 흔적(trace)으로 존재하다 현현(epiphany) 한다고 말합니다. 천사는 바람에 떠밀려 하늘로 올라가면서도 창공을 바라보지 않고 이곳 갈릴리를 바라보는데, 이는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비참과 탄식, 폭력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갈릴리는 4.3의 제주, 혹은 80년 광주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에서 죽어간 우리 아이들의 영정을 가슴에 품고 예수는 우리보다 먼저 가서 갈릴리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라고 천사는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의 원칙을 무시하고 갈릴리로 간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하늘 뜻 제목을 “부활 이후를 산다는 것”은 이런 우리의 실존적 고민이 담겨있는 제목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제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부활 이후를 산다는 것”에 대한 하늘 뜻을 마무리하겠습니다.  

4.

사순절 시작되는 첫 주간에 문동환 목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25세가 되던 1994년 1월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수유리 한신대 신학대원에서 진행되었던 장례식이 끝나고 수없이 많은 만장들을 앞세우고 수유리에서 미아리를 지나 대학로까지 긴 노제가 이어졌습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았으며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하나도 취하지 않았던 신기한 날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3일 동안 지독히 앓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 노제를 치르고 심하게 아프고 난 후에 비로소 저는 어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싸움은 지루하고 아름답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은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저는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났고 저는 오십이 되었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의 장례식이 25년 전 당신의 형인 문익환 목사님의 장례식이 있었던 한신대 수유리 캠퍼스에서 거행되었습니다. 25년 전 문익환 목사님 장례식 때 보다는 따뜻했는데도 오한이 느껴졌고, 25년 전의 장례식과 현재의 장례식이 수시로 오버랩되면서 현기증이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현 여당 대표가 조사를 낭독하였으니 25년 전보다는 상황이 좋아진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25년 전 장례식때 함께 했던 몇몇의 사람들이 25년이 지난 그 자리에 함께 했고,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새롭게 그곳에 참여하였다. 25년 전 그때 그 사람들을 다시 보았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제자들을 보는데 와락 눈물이 나와 혼났습니다. 황급히 장례식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두 시간을 자다 깼고 냉수로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아 쓰다만 문동환 목사님 추모글을 정리하여 한겨레 신문사에 보냈습니다(한겨레 신문 3.13 기사 “아듀, 문동환 목사님”). 원고 중 일부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지난 20세기 말, 신촌이나 종로통을 거닐다 보면 전경과 백골단들이 젊은이들의 가방을 불시에 그냥 뒤지던 시절이 있었다. 안병무, 문익환, 문동환, 서남동, 김재준......이제는 신화 속 인물이 되어버린 그분들의 무용담과 발언들, 그리고 글들은 우리로 하여금 늑대들의 시간을 견디게 했던 유일한 해방구였다. 정권의 야만에 맞서 많은 기독청년들이 거리에서 싸웠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외로움과 무력감이 우리들에게는 있었다. 뿌리도 깊지 않았고 줄기도 가늘었던 우리는 위대한 스승들의 소문과 소식과 어록을 통해 잠시나마 바깥에서 받았던 상처를 잊고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을 그나마 마련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적들을 향한 비판과 저항의 칼날을 우리 자신에게도 돌릴 줄 아는 성찰과 기도의 시간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신학과 삶, 교회와 세계, 하늘과 땅이 서로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나를 향한 엄정한 신앙(학)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를 유혹하는 사이비 우상들로부터 빠져나와 성서가 지닌 진리와 정의를 비로소 믿게 되었던 것도 모두 그 무렵부터이다. 우리 세대는 어쩌면 문동환 목사님 세대의 선생님들이 만들어 놓은 틈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빛과 소리에 취한 자들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그 빛이 한신과 기장을, 그 소리가 우리를, 나를 이곳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밝게 빛나던 별이 이제 우리에게서 사라졌다. (중략)
언론에서는 이 시대 마지막 거인이 사라졌다고 난리다. 기장도 한신도 무너져내린 이 판국에, 우리 시대 마지막 어른이 사라져 슬퍼하고 망연자실하고 있는 우리에게 문 목사님은 뭐라 답하실까. ‘나에 대한 애도를 멈추지 마라. 이렇게 한번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애도를 다 했다 생각하지 마라. 그 마음을 계속 멈추지 말고 추락한 현실을 직시하고 다짐하고 변화하고 혁명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나에 대한 애도의 완성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 시대 마지막 선생을 보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5.

이 원고를 신문사로 보내고 나서 저는 책상을 정리하고 쓰레기도 치우고 옷장도 정리하고 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 그렇게 태연하게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마감하면서, 내일부터는 정말로 잘 살겠다, 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부활절 원고를 쓰는데 자꾸 25년 전 1994년 장례식과 25년이 흐른 2019년 장례식이 계속 생각이 났고, ‘갈릴리로 가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라는 오늘의 본문을 다시 읽으면서, 그리스도교는 애도(mourning)와 기억(remembering)의 종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애도가 무엇입니까? ‘죽음을 슬퍼함’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애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애도와 다르게 그리스도인들이 지녔던 애도는 단순히 얼마간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애도의 중단을 허용치 않았던 종교가 그리스도교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2천년 동안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교의 애도는 예수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고, 예수의 상실로 인한 아픔을 지속시키면서, 그 비어있는 자리를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하면서 예수를 기억해내고 예수로 살겠다는 다짐과 구체적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에서 애도란 애도의 사전적 의미, 즉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를 현재진행의 사건으로 계속 작동시키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데리다가 말하는 애도의 정치학인데, 저는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현재를 있게 했던 가장 궁극적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그 애도의 출발점이 되었던 지점이 갈릴리였던 것이죠. 그리하여 저는 흰 옷 입은 천사들이 했던 “그는 살았고, 그는 그대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갔고, 그대들은 거기서 그를 볼 것이오”라 했던 말이 애도와 기억의 종교인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한 모멘텀이 되었던 발언이라 생각합니다. 마가복음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 비어있는 공간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으로 넘어온 것입니다.  

비록 마가복음은 그것으로 끝났지만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해 용기를 낼 수 있는 단서를 천사의 말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예수가 갈릴리로 갔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슬프게 하고 노하게 하는 삶의 한 복판에 있지만 우리보다 앞서 갈릴리로 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예수를 믿는 우리이기에 마냥 넋을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다시 삶을 이어가는 것, 다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시간을 살아내는 것, 그러면서 다시 광장으로 모이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면서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외치면서 행진한다면, 어느덧 우리는 갈릴리에 도달해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라는 환상과 희망에 의지하는 공동체, 그것이 바로 교회였던 것이죠.  

저는 한백교회가 이런 부활의 신앙을 간직한 공동체였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그러한 신앙을 갖고 저마다의 삶을 감당하는 한백식구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것을 믿으며 여러분 각자에게 맡겨진 갈릴리를 향한 항해를 무사히 마치기를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예수가 부활하셨습니다.  

(*4월21일 한백교회 부활절 ‘하늘 뜻 나누기’ 원고를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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