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페미&퀴어] 언제까지나 도망치고 싶은 곳(유하림)

페미&퀴어

by 제3시대 2019. 5. 15. 17:10

본문

언제까지나 도망치고 싶은 곳

유하림

소설 읽기를 좋아하고, 가끔은 직접 쓰기도 하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재능이 없어서 일찍이 포기한 것도 있고 그보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없다. 어쩐지 소설가가 된 내 모습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자기 전에 가장 멋있어질 내 모습을 상상해보곤 하는데, 상상이라도 소설가는 항상 제외된다. 아마 나는 그냥 소설이 좋은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더 이상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하지 못하게 될 때 얼마나 슬플지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소설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건 2년 전 가을이었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학교에 젊고 유능한 문창과 교수가 부임했으니 그런 선생에게는 꼭 배워봐야 한다며 나를 수업으로 떠밀었다. 문학 같은 건 아무래도 그때의 나에겐 쓸모없었다. 정말 중요한 일들은 비문학의 영역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문학은 만들어진 세계고, 진짜 세계는 문학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날 때는 에세이를 읽었고, 공부해야 할 때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었다. 읽을 책은 늘어만 가는데 그 와중에 문학이 낄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스승의 말이고, 교양 삼아 들어보자 싶어 수업을 신청했다.

나는 항상 울 것 같은 마음으로 그 수업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많은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는데 수업에서는 소설의 가치, 소설의 윤리, 소설의 기술에 대한 말 들이 오갔다. 혹시나 교수님과 눈이 마주칠까 텍스트를 계속해서 다시 읽으며 흐르는 말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소설에 대한 쪽글을 2주에 한번씩 써 가야 해서 그때 적어낼 말들을 주워 담은 것이다. 수업을 들으면서 억지로 읽은 단편소설은 30편쯤이고, 알게 된 소설가도 30명쯤이다. 두고두고 읽어보고 싶은 소설가들의 이름은 일기장에 따로 적었다. 그 이후로도 소설을 계속 읽었다. 소설이 재밌기도 했지만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수업에서 애들이 떠들던 이야기들이 멋있어 보였고, 나는 멋있는 걸 동경하니까 멋있어지고 싶어서 읽은 것 같다.

그렇게 읽다보니까 좋아졌다. 인물에 애정을 품는 법, 소설을 진짜도 가짜도 아닌 그 중간의 무언가로 믿는 법, 작가와 작품을 적당히 분리하는 법을 알게 됐고,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10명도, 30개도 넘게 생겼다. 이제는 순전히 좋아서 하는 일이다. 뱉으면서도 닭살이 돋지만, 나는 소설 없이는 못 살겠다. 문학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어졌다. 다만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문학으로부터 빚을 지게 되었다.  

심심할 때, 아플 때, 우울할 때, 어떤 기분이든 잠시 기분을 유예하고 싶을 때 골라 읽을 작품들이 있다. 어떤 때는 같은 문장을 반복해 읽으면서 인물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내 마음을 헤아린다. 이런 문장들이 있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 정세랑, 『피프티 피플』 
“과거를 떠올리며 불행해하는 대신, 좋아지길 기대하며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대신 지금을 잘 살아보려는 마음가짐.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조지영은 버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나는 이것들을 버리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조지영은 ‘마음은 따뜻하지만 무언가를 잘 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주란,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
“도서관 서가에서 그날 그날 읽고 싶은 책을 뽑아서 그냥 읽었다. 책을 고를 때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 순간 내가 가장 원하는 책에 대하여 골똘히 집중하여 생각했다. 나는 매일매일, 그날의 나에 대해 그 정도만이라도 알아내고 싶었다.” 정이현, 『언니』

이건 정말 진심인데, 나는 이런 문장들 때문에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어떤 이유던 간절한 마음으로 적어냈을 문장들이 자주 나를 살려주었다. 문학이 타당하게 좋은 점은 당연히 많다. 거대한 이론이 관통하지 못하는 미시사를, 그러니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건네준다는 점.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알게 해 준다는 점. 적절한 위로를 찾지 못했을 때 인용할 문구를 만들어준다는 점. 가끔은 역사가, 정치가, 철학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문학이 해낸다는 점. 그리고 셀 수 없다. 너무 많다. 그런데 적어도 나한테는 문학이 세상에 얼마나 이로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도망치고 싶을 때 문학은 언제나 품을 내어주었다. 세상에 사랑하는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내가 얼마나 사랑을 잘 하는 사람인지 일러주는 게 문학이었고, 도저히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때, 타인이란 건 원래 절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한번 힘내 보라고 말해 준 것도 문학이었고, 정말 죽고 싶을 때, 죽음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게 해준 것도 문학이었다. 문학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문학을 싫어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언제까지나 계속 문학으로 도망치고 싶다.

다 쓰고 나니 조금은 찌질한 연애편지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데, 어떤 진심은 어쩔 수 없이 찌질 해지는 것 같다.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 웹진 <제3시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