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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부산여행(문재승)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20. 1. 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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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

문재승 (가족신문 월간 제주살이 편집장)

7월의 부산행 KTX는 아주 그냥 여행자의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행여나 나에게 스며들까 두려워, 눈과 입을 닫은채 잠을 청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버티니 짠내 나는 부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부산대병원으로 향했고, 입원 중인 교수님을 만났다. 갑작스런 암 소식에 가족들은 슬퍼할 타이밍조차 놓친 모습이었다. 늘 건강하셨던 분이었기에, 죽음이 성큼 들어선 모습으로 누워 계신 교수님 얼굴은 생경하기 이를데 없었다. 간신히 눈을 떠 나를 응시하시는가 싶더니 머릿속 깊이 어딘가에 저장된 한마디가 불쑥 흘러나온다.

"내가, 그러니까 지난 27년을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렇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 문장은 결국 종결되지 못하고 사모님의 덧칠을 기다린다. 

"이 양반이 요새 정신이 이렇게 왔다갔다해요" ​

그 강건하던 양반이 갑자기 거동조차 어려운 상태로 누워 계시는 모습이 믿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른 입술만 연신 씰룩이며 이어가시는 말들은 남겨진 자의 고통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문 선생님요. 제가 이 양반이랑 여기 며칠 있어보니까요, 삶과 죽음이 서로 달리 있는게 아니더라니까요. 삶과 죽음이 요로케 동일선상에 있어요. 지금은 사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란 말예요"

사모님이 두 손을 나란히 이어 동일선상에 세운다. 죽음의 문턱에 도착한 교수님에게 이제 삶과 죽음은 손바닥 뒤집기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반나절만에 다시 찾은 부산역은 여전히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찬바람 가득찬 마음에 알 수 없는 생기가 번진다. 열차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까 플랫폼 어딘가에서 헤어지기 싫어 눈물을 쏙 빼던 앳된 여학생이 애처롭게 누군가를 찾는다. 주인공은 뒷자석에 자리잡은 어느 남학생. 처자는 애타는 마음에 바싹 말라버린 몸을 바스라지게 접어 남자의 여행가방에 담겨 서울로 이동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열차가 1분의 에누리도 없이 부산역을 박차고 나서기 무섭게 시작되는 그들의 전화통화. 

"하아... 방금 헤어졌는데 왜 이렇게 보고싶냐. 응 미치겠다. 쪼금만 참아. 9월에 올 거잖아. 응, 나도 사랑해."

이 눈부신 청춘들에게 9월은 곧 찾아올테지만, 그날 플랫폼에서의 쿵쾅거림이 또 찾아올 수 있을까. 삶과 죽음처럼, 만남과 헤어짐도 결국 동일선상에 혼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말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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