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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드러나는 달(김윤동)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20. 2. 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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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달*

김윤동
(본 연구소 기획실장)

어둠을 뚫고 기어코 올라오는 해(日)처럼 2020년이라는 새로운 해(年)는 밝았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2010년의 마지막 해이지만, 2000년과 2010년에도 그랬듯이 이미 마음은 새 시대가 열린 듯 보인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새로운 것이 떠오르리라 기대하며 이 해를 맞이한다. 새 사람, 새 관계, 새 만남이 이전의 시간과는 달리 솟구칠 것이라 기대한다. 그래서 괜스레 새 다이어리도 사보고, 새 달력도 보고, 심지어 새 옷도 장만해 보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맺어온 관계도 다시 신선해지고, 해오던 일도 답답스럽지 않게 술술 풀릴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2019년 12월 추웠던 연말의 어느 밤하늘을 올려보았던 날, 과연 그럴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그 밤의 달은 그렇지 않았다. 거기에는 달이 있었지만 있다는 것만 알 뿐 우리가 아는 형상의 달이 아니었다. 그것을 형용할 표현으로 ‘어슴푸레하다’는 말이 가장 적절할까? 어둠 속에 묻힌 달은 구름과 흐린 공기의 흐름 때문에 빛의 밝기가 약한 것은 물론이고,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둥근 곡면을 이루고 있지 않고, 마치 물 속에 비쳐 반사된 달처럼, 흐물흐물해 보이기까지 했다. 

달은 마치 원래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다기보다, 치열한 어두움이 만들어낸 어렴풋한 ‘형상’ 또는 환상과도 같이 보였다. 정확하게 거기 ‘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있음, 곧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그런 형상이었다. 그 날의 달은 어두움을 뚫고 유일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달이 아니라, 가득 찬 어두움들이 치열하게 서로 부딪히고 얼싸안으며 힘겹게 밀어 올린 달의 모형이었다. 적어도 그 날 밤에는 달은 어둠 속 유일하게 빛이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눈에 띠지 않는 어두움들 속 마침내 들어 올려진 흐릿한 환영(幻影)이 내는 빛이었다. 

우리의 새로운 신념들과 그 에너지는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할까? 누구나 알 수 있게 그 곳에 떠 있는지 명명백백하지만 결코 눈으로 직접 쳐다볼 수 없고 그 앞에 굴복해야만 하는 그런 해와 같은 진리일까? 평론가 황현산은 그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서 “낯섦과 낯익음 사이에서 내 삶을 조종하는 드라마의 진정한 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것이 꼭 이 시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찌꺼기 같고 실패한 것 같은 내 어두운 과거를 성찰하고, 지루한 일상을 견디며 사는 것이 우선이지, ‘새해’라는 시간이 반드시 그것이 드러나야 할 필연적인 시간은 아닌 것이다.

* 이 글은 지난  2020. 1. 15 <주간기독교>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원문보기 : http://www.c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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