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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바두리에서 설리까지] 여성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I(신윤주)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20. 5. 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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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리에서 설리까지] 여성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I

신윤주*

A. 부바네스와리 바두리 

한 여성이 캘커타 북부의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끊었다. 17세의 나이였다. 사람들은 그이가 부적절한 관계에서 임신을 했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하)지만 사망 시점에 그이는 월경 중이었다. 사실 이 여성은 월경이 시작될 때까지 자살을 늦췄다. 그렇다면 이 일이 있었던 1926년 당시에 인도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던 여성 자살의 경우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이는 사건 안에 자신의 몸을 생리학적으로 기입해 넣음으로써 사회적으로 승인된 여성 자살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이 사건은 그이가 언니에게 남긴 편지가 발견되기까지 수수께끼로남(은 것 같)았다. 편지는 사망 시점으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후에 발견되었고, 편지의 내용은 그이가 무장 독립운동 단체의 일원이었다는 것과 자살한 당시에 정치적 암살을 지시 받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이는 이 지령에 정면으로 대항할 수는 없었고, 그럼에도 책임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던 것이다.[1]

거의 한 세기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의 주인공은 부바네스와리 바두리라는 인도 여성으로, 포스트식민주의연구자인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모 할머니였다. 부바네스와리 바두리의 죽음과 그의 죽음이 다뤄진 방식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라는 논문의 시발점이 되었다.[2]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스피박의대답은 ‘말할 수 없다’ 였다. 그가 내놓은 부정형의 결론은 이후 1999년의 수정판본[3]과 2010년의 ‹응답: 뒤를 돌아보며, 앞을 내다보며›에서 밝히듯 깊은 상심 혹은 절망에서 비롯된 명제이기도 했다. 자신의 죽음을 매개로 삼아 전하고자 했던 전복적 메시지가 그의 말을 가장 잘 들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은 사람에게조차 들려지지 않았다는 데에서 기인한 정동이었다. 가부장제라는 헤게모니 안에서 여성-서발턴이 자기 육체를 텍스트 삼아 기입한 발화는 역사적 무관심 속에 묻힌 채 가족에게도, 여성들 사이에서도,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들리지도, 읽히지도, 해석 되지도 못 했다. 그 말은 제도와 관습으로 뒷받침되는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하지 않는 표현 양식이었기 때문이다.[4] 

B. 이중의 소외

서발턴(Subaltern)은 이탈리아의 맑스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에 의해 처음 도입되고, 서발턴 연구회를 구성한 인도의 역사학자인 라나지트 구하에 의해 재발굴되면서 1980년대 이후로 국제 학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용어다. «옥중수고»에서 그람시가 도입하는 서발턴 개념은 고대 최하층민에서 프랑스 대혁명기의 부르주아까지 포괄하는 통시적인 이름으로, 다양한 종속 집단 전체를 포괄한다. 서발턴 집단들은 지배층에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나름의 제도를 운영하는 등 제한된 영역에서나마 자율성을 회복해낸다는 점, 그리고 통일된 하나의 주체성이나 결속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서발턴 집단이 종속과 자율이라는 속성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봉기를 했을 때에도 지배 집단의 담론과 활동에 예속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5] 헤게모니 담론에 예속되어 있는 서발턴 집단의 이러한 속성은 이들의 발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가는 여정에 끊임없이 재출현한다.

구하는 그람시의 서발턴 논의를 발전시켜 이를 민중 개념과 연결한다. 자신의 저서 «서발턴과 봉기»에서그는 1783년에서 1900년 사이에 있었던 식민 치하의 농민 봉기들에 관해 다루는데, 이때 이행사적 관점 대신 식민/토착 엘리트와 농민의 충돌이라는 지형을 채택함으로써 농민 봉기의 정치성과 동시대성을 확보한다. 또한 구하는 이들 농민을 서발턴으로서의 민중으로 규정하며 이들에게 부여된 전(前)정치성이라는 특징을 사회적으로 공인된 정치적인 것이 지닌 통일성에 균열을 내는 차이의 공간으로 본다. 나아가 농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사료가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반(反)봉기 담론의 구조 속에 굴절된 채로만 남아있는 농민 봉기 기록을 재해석함으로써 공백으로 남아있던 농민 의식을 재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가는데,[6] 이는 서발턴의 해독 불가능한 기호를 ‘흔적-구조 (혹은 드러냄 속의 지움)’로 명명하며 접근하는 스피박의 연구와도 맞닿아 있다. 

스피박의 서발턴 연구는 구하가 이끌던 서발턴 연구회의 작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7] 그람시와 구하의 연구를 통해 서발턴은 이미 그 자체로 이질성을 특성으로 지니고 있는 집단들이라고 정의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스피박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차/젠더의 문제에 주목하며 식민/제국주의와 가부장적 민족주의 노선 안에서 여성-서발턴이 겪는 이중의 소외를 보여준다. 식민주의적 역사 기술의 ‘대상’도 남성이며, 민족주의적 봉기의 ‘주체’도 남성인 가운데 여성 서발턴의 존재는 두 번 지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부바네스와리 바두리가 처한 피지배 위치는 경제적 계급보다 민족주의적 운동 노선 내의 지배층과 젠더에 의해 결정된 경우라는 점에 주목하고, 질문 속 성차의 요소를 특정하여 문장을 재구성한다. “여성으로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8]

 C. 이중의 소외+1

 여성-서발턴이 말할 수 없다는 명제가 성립하는 까닭은 궁극적으로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청자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했지만’ 여자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고 지금도 듣지 않는다.”[9] 물론 서발턴 집단의 종속적 특성 상 여성-서발턴이 수행한 발화의 내용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담론에 포섭되어 있어 주체성을 담지하지 못한 상태이기 쉽겠지만, 설령 과도기적 주체의 고유한 목소리로 이루어진 발화라고 해도 이는 발화자의 의도대로해독되지 못한 채 간과되거나 묵인되곤 했다. 부바네스와리 바두리의 죽음이,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후대의 방식이 그러했다. (그리고 이 글의 마지막에 다루려고 하는 다른 한 여성의 죽음과 이에 반응하는 2019년도한국 사회의 방식 또한 그러했다.) 바두리가 비언어적 행위인 자살로 치환하여 수행한 말걸기도, 훗날 발견된 편지의 내용에 드러난 언어적/문자적 발화도 스피박의 담론화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는 읽히거나 들리지 않았다. 청자들의 인식 체계 안에 건네진 말을 기입할 수 있는 해석틀이 존재하지 않거나 여성-서발턴이 제시한 새로운 해석의 계기 혹은 인식론적 균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기울이는 타자, 주체의 말을 수신하고자 하는 타자의 존재는 말하는 행위가 성취되기 위한 최초의 조건이자 최후의 조건이다. 

외국어를 사용하는 여성-서발턴의 현실에는 성차의 구조적 불평등 속에 발생하는 이중의 소외에 주변화된 언어의 사용자로서 경험하는 소외가 한 겹 더 덧대어져 있다. “드러내자 지워지는”[10]  여성-서발턴의 주체적발화 행위는 결국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여성-서발턴의 언어가 공인된 언어인 것과 그렇지않은 것 사이에는 다시 한 겹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을 통해 다루게 될 두 개의 미술 작품은 각각 1980년의 캐나다와 2007년의 한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설치 미술과 비디오 아트 작품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캐나다의 포스트 식민 상황에서 52세의 선주민 여성이 경험한 차별과 조롱의 경험, 한국에 막 이주한 19세의 디아스포라 베트남 여성이 경험한 억압과 폭력의 경험을 들여다보고, 사회의 무의식을 관장하는 지배 담론의 힘과 그것이 비가시화되는 방식을 되짚어 볼 것이다.


[1] Gayatri Chakravorty Spivak, “Can the Subaltern Speak?,” Can the Subaltern Speak?: Reflections on the History of an Idea, ed. Rosalind Morris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75-76. 

2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스피박이 1983년도에 ‘맑스주의적 문화 해석들: 한계들, 프런티어들, 경계들’이라는 학술대회에서 ‘권력과욕망’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하고, 1988년도에 로런스 그로스버그와 캐리 넬슨이 편집한 «맑스주의와 문화 해석(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의 일부로 출간되었다. Gayatri Chakravorty Spivak, “In Response: Looking Back, Looking Forward,” Can the Subaltern Speak?: Reflections on the History of an Idea, ed. Rosalind Morris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10, 238-240.

[3]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 사라져 가는 현재의 역사를 위하여(Critique of Postcolonial Reason: Toward a History of the Vanishing Present)»(1999) 속의 한 장인 ‹역사›의 후반부에 수록되어 있다.

[4] Spivak, “Can the Subaltern Speak?,” 51, 75-76; Spivak, “In Response: Looking Back, Looking Forward,” 240.

[5]  姜玉楚. “그람시와 ‘서발턴’ 개념.” 역사교육 82, (2002): 139-141.

[6] 김택현. "역사학 비판으로서의 서발턴 역사-라나지트 구하의 역사작업에 대하여." 사림(성대사림) 49, (2014): 377-392.

[7] 파르타 차테르지, “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 관한 성찰들-스피박 이후의 서발턴 연구,”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역사에 관한 성찰들», 로절린드 C. 모리스 엮음, 태혜숙 옮김, (그린비, 2013), 142. 

[8] Spivak, “Can the Subaltern Speak?,” 49-60.

[9]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 로절린드C. 모리스 엮음, 태혜숙 옮김, (그린비, 2013), 46.

[10] Spivak, “Can the Subaltern Speak?,” 77.

* 필자소개

이름마저 없었다면 무명씨가 되었을 먼지 같은 존재. 절반쯤 내면화한 타의를 따라 (한국) 국경 너머에서 살아가고 있다.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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