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평] 코로나 '이전'의 시대를 떠올린다(김윤동)

시평

by 제3시대 2020. 6. 8. 16:47

본문

코로나 '이전'의 시대를 떠올린다*

김윤동
(본 연구소 기획실장)

다들 코로나 ‘이후’ 시대를 살고 계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다들 요새 코로나 이전을 우리가 너무나 살기 좋았던 시대로 추억하고 계시더라고요. 네, 저도 그 때가 좋았습니다. 만나는 것도 자유로웠고, 사람과 사람 간에 아무 거리낌 없이 악수하고 껴안고 접촉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재미있고, 즐겁게 모임하며 친교를 나누었던 시절, 해외를 포함한 다른 지역을 자유롭게 드나들던 그런 시대 말입니다. 사람의 온도와 온기가 느껴졌던 시절... 이었다고들 합니다.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지금 등골이 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고,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하여 힘들어 죽겠는데 왜 조롱의 어투로 말하느냐 하실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왜냐하면 예상치 못한 재난 ‘이후’의 시대를 살아갈 때, 그 현재의 고통은 줄곧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풍경, 더 이상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애잔한 동경과 막연한 낭만으로 그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 ‘이전’이라는 시대를 윤색하고 나아가 탈색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은 마치 무사태평하고 안전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던 시대로 미화되고 과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이전의 시대를 회상하며 긍정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이냐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그런 ‘좋은 시절’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 짙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프로이센-프랑스(보불전쟁)을 마지막으로 장기간의 유럽 대륙 전역을 휘몰아친 살육이 끝나고 “이제 유럽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자신하던 때입니다. 바로 프랑스어로 ‘La belle Epoque’라고 부르던 그 ‘좋은 시절, 또는 아름다운 시절’ 말입니다. 그 평화의 때에 세상에 없던 첨단의 기술들과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 찬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이 ‘좋은 시절’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역사상 유례없는 더 이상 참혹할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듭니다.

그러면서 유럽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 때가 과연 ‘좋은 시절’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은 모두에게 ‘좋은 시절’이었을까요? 무사태평 좋은 시절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누군가의 괴상한 야욕에 의해 세계적인 전쟁이 ‘하루아침에’ 발발해 버린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아름다운 시절’이란 열강과 제국들과 지배 세력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었을지 몰라도, 식민 지배를 받던 나라들, 피지배민족들에게는 그야말로 착취의 악몽이 들끓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쟁 이전이든, 전쟁 이후든 고통스러운 건 별반 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그 ‘유례없는 재난’의 때에도 식민지의 땅은 곧 물자와 식량 조달의 병참기지로, 피지배민족의 인민들은 전쟁의 총알받이로 모양만 바뀌었을 뿐 고통은 ― 가중되어 ― 부과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재난 역시 과거의 잠재된 고름이 터진 것일 뿐, 하루아침에 없던 게 생겨난 사태가 아닙니다. 1차 세계대전이 제국 열강들의 멈추지 못한 탐욕이 불러온 참사였던 것처럼 현재의 이 재난 또한 인간의 생명과 타인의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주하던 무절제한 탐욕이 폭발해버린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는 ‘K-방역’을 칭찬하며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를 섣불리 예측하거나, 과거를 ‘아름다웠던 시절’로 추억을 방울방울 지을 때가 아닙니다.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는 지금은 차분히 성찰의 고삐를 죄고 인류의 길이 무엇인지를 겸손하고 담대히 물어야 할 때입니다.

*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